7. (질문) 마음속에 스쳐지나가는 생각들? (쉬/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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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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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42
7. (질문) 마음속에 스쳐지나가는 생각들? (쉬/1271)
안녕하세요!
우리 모든 사람들이(택자와 불택자) 살아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 수많은 생각 중(걱정, 회상, 기억, 암기, 공상.......등등) 옳지 못한 생각 그러니까 예를 들면 좋은 자동차를 타고 가는 어떤 사람들을 보고 와! 멋지네 나도 저런차 타 보고 싶다! 거리를 거닐다 예쁜 여자를 보구 와! 예쁘다! 이런 번쩍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은 죄에 해당 되는 건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존재인데 수억만의 스쳐지나가는 생각 중 전제의 예와 같은 성도로서 옳지 못한 생각이 스쳐 지나갈 때 어찌해야 하는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답변) 주님과 할 일만 생각으로 집중해보면, 틀림없이 됩니다. (생각의 죄)
1.질문하신 면을 두고 고심한 성자들 중에 이렇게 정리한 분이 있습니다.
'사람이 생각으로 지나가며 짓는 죄는 막을 수가 없다.
까치가 나무에 앉았다가 가는 것은 할 수 없지만
그 까치가 집을 짓고 눌러 앉게 하는 것은 막을 수 있다.'
2.우선, 죄를 3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죄 중에서 가장 초보적인 죄는, 담을 넘는 도둑처럼 말씀을 어기는 죄입니다. 이런 죄를 회개해야 하는 단계에 있는 사람은 이제 막 예수님을 처음 믿는 사람입니다. 제사도 치워야 하고 술담배도 끊어야 하고 주일날 친구집에도 가지 말아야 합니다. 할 일은 많고 또 남보기에 변화는 많으나 신앙생활의 초보입니다. 이것을 건설구원 교리에서는 '사죄' 문제라고 합니다.
첫 신앙에 좀 열심을 가진 사람이면 눈에 보이는 죄를 크게 정리해 버리기 때문에, 집사님들 정도라면 그런 죄는 거의 해결했을 단계입니다. 이제 이런 분들에게 눈 앞에 닥친 어마어마하게 큰 문제는, 말씀을 어기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찾아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을 두고 자책감을 느끼고 그 면으로 회개하는 것을 건설구원 교리에서는 '칭의' 문제라고 합니다. 죄는 죄지만 말씀을 어긴 죄와 자기가 할 일을 하지 못한 불충을 회개하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이제 아주 높은 신앙의 단계로 진입하면, 말씀을 어기고 회개하는 것은 거의 없고, 또 마땅히 해야 할 바는 늘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할 일을 하면서 그 마음 속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을 얼마나 계속하느냐는 것을 두고 고통을 받고 또 그 면으로 부족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겉으로 교회 일과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면서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심방은 열심히 하는데 질문하신 것처럼 심방 가는 길에 이것 저것을 보거나 아니면 예쁜 여자나 남자에게 한눈을 파는 것이 문제입니다. 만일 그 마음이 주님과 동행하는 긴장감이 계속된다면, 그런 죄는 아예 접근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 단계를 건설구원에서는 '주님과 동행' 또는 '화목'이라고 합니다.
3.질문하신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생각에서 일어나는 죄를 막는 방법은 3번째 차원문제입니다.
순간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은, 나무가 많은 정원 있는 집에 사는 주인이 나무 가지에 새를 앉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어렵습니다. 그러나 새들이 집을 짓도록 하는 것은 얼마든지 막을 수가 있습니다.
막는 방법은, 저런 생각을 하지 않아야지, 하는 식으로는 막지 못하는 것이 생각의 죄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집착을 하면 더 많은 죄를 불러들이게 됩니다. 그런 마음의 죄는 그 마음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열심히 하도록 하면 딴 생각이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위에서 설명 드린 3가지 죄 중에서 특별히 두번째 죄는 충성하는 행동에 중점이 있고, 세번째 죄는 마음에서 결판이 나는 문제입니다.
혹 반문하시기를, 그렇다 해도 언뜻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막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새가 집을 짓지 못하게 하는 정도로 먼저 수고하시고, 그다음 근본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어오지 못하게 주님과 동행하는 마음을 만들어 그 마음이 쉬임없이 말씀을 생각하거나 아니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집중하게 하면, 거의 그런 일은 없을 것이고, 또 그런 일이 있다해도 이렇게 꾸준히 자기 마음을 붙들어 보시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얼른 눈에 들어오는 생각의 죄까지도 방어가 되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아마 1달만 노력해 보시면 누구든지 공통적으로 경험하실 것이고, 아마 2주만 꾸준히 긴장하고 자기 마음을 붙들어 보시면 거의 자기 마음 자체가 바뀌고 자기의 인지 방식이 달라진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1-2일, 또는 1주일 안팎을 노력하는 분들은 잊으려고 머리를 털면 돌아서서 그 생각이 더 나는 등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생각하기를 '이렇게 며칠간 최선을 다해도 안되는데!'하고 중단하면 그 사람에게는 생각의 죄라는 것은 이 땅 위에 사는 인간으로는 절대 넘어설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비를 넘겨 본 사람은 무슨 의인이 따로 있고 성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요 1달 안팎의 고비만 넘기면 누구나 다 의인이고 성자의 반열에 올라가겠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4.만사 인간은 연습으로 되도록 해놓았습니다.
순간적으로 다 될 것 같으면 우리를 70-80년씩 이 세상에 살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반복으로 자라가는 면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처음 해 보면 고비가 나타나게 되고 그 고비를 도저히 넘지 못할 듯 보입니다. 그러나 한 고비를 넘겨만 보면 이전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수월한 세계를 볼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다른 면까지도 함께 수월해져서 거의 모든 면으로 가속도로 변화가 됩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보면 의인과 죄인은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나는데, 의인이 되고 죄인이 된 그 갈랫길에 수고와 땀의 양을 보면 그렇게 적습니다. 마치 종이 한 장 차이같다고 백목사님이 평생 회고한 것을 쉽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백두산 천지못으로 떨어지는 물 한 방울이 오른쪽으로 1센티 더 가면 동해 바다 깨끗한 물이 되고, 왼쪽으로 1센티 더 가면 서해바다 꾸중물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황톳물과 맑은물 차이인데 그 갈랫길의 순간은 그렇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노력하는 수고는 2주에서 1개월, 혹 실수해서 반복하다 보면 그 이상도 걸릴 것입니다.
이곳 질문이 문답으로 해결되는 것도 있으나, 이번 질문은 답변은 사실상 출발점의 도로 안내판 정도고 나머지는 질문하신 분이 땀흘려 해 보셔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