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질문) "주의 날"을 주일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약간 무리가 아닌지 5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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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질문) "주의 날"을 주일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약간 무리가 아닌지 5377

살전 5:2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살후 2:2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벧후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계 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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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1:10절의 '주의 날'을 안식후 첫날 즉, 주일이라고 해석하십니다. 과거에도 비슷한 질문이 몇개 보이는데, 다른 성구에서 쓰인 "주의 날"과 비교해 볼때 좀 무리가 아닌지 궁금합니다.


(답변) 살전5:2, 살후2:2, 벧후3:10의 주의날은 재림을 말합니다.

여러번 이 홈에서 주일 관련 날자 변경 문제를 문답한 적이 있습니다.
과거 자료를 참고하셨다는 전제로, 이번에는 약간 다른 면으로 설명을 드립니다.



1.예를 드신 성구들은 2가지로 분류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에 예를 든 3가지(살전5:2, 살후2:2, 벧후3:10) 성구는 분명히 재림을 말합니다.
마지막에 예를 든 계1:10은 사도요한이 계시록 기록을 위해 주님을 만난 날입니다.


2.앞에 예를 드신 3가지 성구는 재림날입니다.

따라서 주님이 이 세상의 왕으로 오셔서 세상을 완전히 정리하는 날
세상 전부가 완전히 주의 것이 되는 '주의 날'이라는 의미의 앞에 3곳 성구는
재림 또는 재림과 같은 성격의 세상 종말적 일자를 말합니다.


3.계시록의 주일

①계1:10의 '주의 날'의 의미를 다시 한번 살펴보셨으면

계시록 1장 전체를 우선 차분하게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계1:10을 중심으로 요한에게 일어나는 변화도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이 계1:10의 주일 날은....

'요한이 새롭게 함을 받는 날'
'과거 살아온 걸음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는 날'
'이 세상 신앙생활 과정에서 돌변하는 은혜를 받는 날'
'평소 보았지만 보지 못하고 살다가 새롭게 영안을 뜨게 되는 약속의 날'
.....
.....

이런 성격의 날입니다.


②구약의 안식일과 비교한다면

구약으로 말하면 7일 중에 이런 은혜와 변화를 주시는 날은 바로 안식일입니다.
구약 성경을 통해 안식일의 의미를 살펴본다면
그런 종류의 안식
그런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받게 되는 날을
날 중에서 골라 본다면 '월'도 아니고 '화'도 아니고 ..... '안식일'이었습니다.


③구약 안식일의 변경은 히4:7에서 확실히 말씀했습니다.

안식일을 통해 구약 이스라엘이 그 은혜들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예수님이 오셨고 신약이 시작되었으며 신약의 은혜 방편은 모든 것이 예수님 중심이므로
히4:7에서 구약 안식일을 대신하는 새로운 날을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어느 특별 사안에 대하여 단정적으로 기록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안식일의 변경만큼은 아주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④그렇다면, 변경된 그날은 어느 날인가?

일, 월, 화, 수, 목, 금요일 중에서 어느 날이 안식일을 대신하게 되었는가?
이미 신약이 시작되는 초두가 4복음으로 기록되었고
그후 초대교회로 이어지는 시기가 사도행전에서 확고하게 기록되었으므로
우리는 토요일 안식일 외에 특별하게 기록된 날을 날들 중에서 찾아본다면
그날이 토요일 다음 날인 일요일이라는 데에 도저히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8일'
'안식후 첫날'
'부활하신 날'
바로 이 주일날이 신약교회가 모이기를 힘쓴 바로 그 날입니다.

신약의 중심이 주님이고
주님의 부활은 모든 날 중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는 진정한 새날입니다.
신약의 시작이요
우리의 생명이 중생으로 시작되는 날이며
우리의 하나님 향한 모든 건설의 중심이며 시작이며 전부입니다.

안식일이 다른 날로 바뀌었다면 주일이라는 것은 달리 생각해 볼 여지가 없었고
예수님 이후 제자들, 그 제자들을 이어온 신약 오늘까지 이 날을 지키려
순교의 피로만 이어온 정통 교회 내부에서는
주일은 주님 부활 후 신약교회가 날 중에 유일하게 지켜 온 날이므로
이 날에 대한 역사적 연결은 끊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누가 어떻게 불사르고 없애려 애를 썼다 해도
성경이 교회의 제일 중심에서 이어져 온 것과 같습니다.


⑤너무 쉽고 간단하고 명확한 것일수록 기록이 불필요합니다.

조선 500년 왕조실록이 500년 조선국정의 모든 것을 다 기록하고 있지만
임금들이 매일 숨을 몇 번 쉬었는지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임금들 중에는 귀나 코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근거로 귀나 코가 없던 임금이 있었다고 표현하려면 조선왕들 거의 전부가 아마 장애자라 해야 할 것입니다.

너무 당연한 것은 오히려 기록에서 빠집니다.
이것이 성경을 억지로 풀어 오해하는 이들에게 늘 이야기거리가 되지만
한번 그 면을 알게 된 사람에게는 성경이 기록하지 않은 엄청난 분량의 과거 기록을
자기 마음의 영안이 밝아지는 만큼 엄청나게 많은 양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원래 정통교회를 이어오는 곳에서는 주일 관련 질문이 질문으로 성립되지 않습니다.
교회를 흔들어보려고 귀신이 던지는 밑져봤자 본전식의 장난입니다.
정상적인 남한국민들에게 6.25가 북침이냐 남침이냐는 질문은 질문이 될 수 없는데
북한에서 남쪽에다 밑져봤자 본전식으로 던진 것이 의외로 남한사회의 1990년대를
어지럽게 만들었고, 오늘까지 그 잔불이 남아 사회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6.25를 거쳐본 사람들
거쳐보지 않아도 남한 내에서 6.25의 흔적을 체감할 수 있는 이들에게는
모든 문제가 너무 환한 것인데
이것을 남의 나라 일로, 학적인 말 장난으로 한번 던져보는 사람들에게는
역사 1천년이 더 지나가도 갈수록 숙제거리가 되지 명쾌하게 끝날 문제는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 역사에서 우리가 자연계시로 볼 수 있는 현상 중 하나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세계 내에서 제기 되는 몇 가지 말도 되지 않는 소리인데
실은 신앙어린 이들이게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악령의 깊은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이 존재하는가?
성경이 과연 정확무오한가,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맞는 말인가?
하나님이 과연 삼위일체인가?
주일이 과연 안식일의 변경된 날인가?

바로 믿고 나온 이들에게는 이런 것은 질문으로서 성립이 되지 못하고
신앙에 의심이 있는 어린 시절에는 이 하나 하나가 전부 신앙 뿌리를 흔들어 놓을
사안들입니다.


4.주일문제는, 안식교와 여호와증인을 앞세워 말세 교회를 흔드는 악령의 유혹입니다.

6.25가 진행되던 3년 동안은 남침과 북침 문제가 거론될 리가 없었습니다.
6.25가 지나고 세월이 흘러가고 나니까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소리가 나옵니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그냥 내놓는 것입니다.
6.25 당시 사람들에게는 체험적 지식이므로 따로 증명이 필요없는 사안이므로
그런 소리를 하면 미친 사람 소리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일단 지난 오늘에 그 말을 하면
남침이라 하는 사람도 남침을 눈에 보여주며 증명할 수 없고
북침이라 하는 사람도 북침을 눈에 보여 줄 증거로 증명할 수 없으니
실제는 남침이지만 북침을 주장하는 사람으로서는 북침을 주장해서는 손해 볼 일이 아닙니다.

안식일이 주일로 바뀐 것은 초대교회 시절에는 직접 목도한 일인데
초대교회에서 멀어져 역사가 지나갈수록 이 사안은 말로만 따지다가 서로 상대방에게 눈에 보여줄 증거가 남지 않는 과거사이므로 주일을 부인하는 이들에게는 밑져야 본전식 장난거리가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의 명백성과 보편성입니다.
성경은 어떤 누구라 해도 쉽게 다 같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말 믿는 이들이라면 성경을 조금이라도 차분하게 읽으면 구약의 안식일이 주일로 변경된 것은 너무 쉬워서 두번 재론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세상 증거주의 법정처럼 상대방에게 그들의 눈에 보이는 증거로 증명하고 그런 증거에 의하여 믿으려는 이들에게는 죽는날까지 연구해도 밝힐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런 점에서 백영희신앙노선은
이런 문제와 관련하여 정통신학이 세상이 말하는 과학적 방법으로 이런 논제를 증명하려는 모든 노력을 헛되다고 반대하고 그런 노력을 하는 순간 그 신학은 이미 악령에게 넓은 면에서 삼켰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재질문) 참으로 맞는 말씀인데 어린 신앙에게는

질문한 사람도 살전등의 성구는 재림을 말한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요한계시록의 '주의 날'도 재림을 말하는 성구가 아닐까 해서 질문을 드렸습니다.

히브리서 말씀도 한 1년전에는 아무리 읽어봐도 안식일이 주일로 변경된 말씀으로 받아드려지지 않았는데 요즘 읽어보면 안식일이 변경된다는 말씀이 분명함을 느낍니다.

또 목사님 글을 읽고 생각해 보니, 계시록의 '주의 날'이 주일이라고 충분히 생각이 되어 집니다. 실마리를 잡았으니 묵상하다보면 '주일'이라는 단정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사도들의 행동이나 교회 전통이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곰곰히 생각해 봤을 때 안식일이 주일된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게 주일을 잡고 나면, 이제 안식일의 엄한 법칙까지 주일까지 끌어다 놔야 하는 미혹이 생깁니다.

목사님 말씀에는 참으로 동감하는데,
저처럼 눈이 어두운 어린 신앙에게는

'안식일이 주일이 된 것은 영감으로 보면 너무나 명확한 일이라'고 말씀해 주시면 마음에는 한두가지 미혹이 남으면서도 더 이상 반론할 수가 없어 주일됨이 맞는 것 같으면서도 찜찜합니다.

아뭏튼, 개인적으로
안식일이 주일로 바뀐 것을 히브리서 말씀으로 명확히 잡았고,
이번 질문을 통해 '주의 날'에 대한 의구심이 풀리면서 앞으로 묵상해 보도록 할 것이고,

주일에 안식일의 법칙을 복음으로 접하여 매매등을 금하는 것이 분명 옳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주일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말씀을 더욱 생각해 보겠습니다.


(답변) 단숨에 열리는 것도 있고, 불씨만 살려놓고 불피워 가는 것도 있습니다.

1.깨닫는 과정을 통계적으로 살핀다면

①건설구원론 관련 교리는

거의 모든 교파와
거의 모든 종류의 교인과
거의 모든 정도의 신앙차원들에게
한 자리에서 단숨에 설명하고 듣는 이들은 한순간에 눈이 열려서 해결되는 교리입니다.
이런 교리들은 주로 지성인들에게서 엄청난 반응을 경험합니다.


②삼분론과 영에 대한 존재는

설명을 하기는 쉬우나
듣는 이들이 들을 때는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
돌아서면 그런지 안 그런지 혼동을 하며
확고히 개닫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 대개 경험칙입니다.
이런 교리들을 전할 때는 늘 지성인은 불행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③삼위일체와 예정론과 같은 교리는

설명하는 것부터가 극히 어렵고 위험합니다.
토씨 하나에서 바로 이단이 될 사안이 많고 달리 세상에서 비교할 것도 없습니다.
설명하는 사람도 한참 말을 하다보면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자기도 모르고
듣는 사람은 약장수 말장난으로 들리는 정도입니다.
이런 교리들은 그야말로 깨닫게 해 주시는 은혜로만 깨닫지
인적 요소의 노력으로는 오히려 점점 그 교리들로부터 멀어지는 결과 뿐입니다.
이런 교리들을 살필 때마다 우리는 진리 연구에 대한 우리의 노력과 열정에 회의가 들면서 맥이 탁 풀리고 계1:10 이하의 사도요한처럼 하나님 앞에 아주 죽은 자처럼 되어지는 지경에 이르지 않고는 그 다음 단계에 나갈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2.안식일의 변경 문제는

안식교처럼 반론하는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그냥 가르치면
첫번째 경우처럼 한 자리에서 듣고 그 자리에서 단정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외부든 자기 내부든 일단 반론이 제기되어 따지기 시작하면
두번째 경우처럼 논리적으로 설명은 가능한데 문제는 혼동의 기간이 오래 가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 성장이
'믿는 사람'인 상태와 '믿어지는 사람'의 상태를 반복한다는 것과
그렇게 교차시키며 길러가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게 되며 또한번 하나님께 크게 감사하게 됩니다.


3.이번 문제를 두고

단숨에 해결하신 분들은
'믿어지는 은혜'를 받았으니 복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높은 신앙으로 자라가야 하는 단계가 되면
'믿는 은혜'만 주시고 '믿어지는 은혜'를 감추시는 듯 하면서 길러갑니다.

가끔 믿음에서 믿음으로만 모든 성경을 깨달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독수리 하늘을 향해 치닫는 것처럼 거침없이 단숨에 차고 오르는 분도 있고
대개는 미리 머리 속에 들어와 있는 인간 지식과 자기 강퍅 때문에
믿는 은혜와 믿어지는 은혜를 반복하며 자라가는 경우입니다.


일단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보셨으면 불씨는 잡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단숨에 열리면 좋지만, 안식일과 주일 관련 문제를 불씨만 살려주시고
그다음에는 스스로 불을 지펴나가도록 한꺼번에 다 열어주지 않으신다면
본인이 이 문제를 두고 늘 은혜를 구하면서 노력하셨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방법으로 길러가시겠다면 그렇게 노력해야 믿어지는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4.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신앙 관련 연구와 깨달음을 두고는
미리 깨닫고 단숨에 깨닫는 것은 '믿어지는 은혜'로 되는 것이지만
우리 믿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하나님께서 적용시키는 깨달음의 법칙 중 하나는
열매로 나무를 알아보는 결과적 단정법입니다.

바른 깨달음 성경에 맞는 교리는
세월이 가면 갈수록 빛이 나고 점점 더 자라가게 됩니다.
어떤 인간의 두뇌와 아이디어도 세월만큼은 넘어서지 못하게 하나님께서 막아놓았습니다.

그래서 불씨를 잡았다면, 조급하지 마시고 그러나 꾸준히 지켜보고 살펴보시면
갈수록 점점 더 뜨거운 확신이 들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주일로 바뀌었다고 반대할 수는 없다'는 정도에서 시작하지만
다음에는 '주일로 바뀌었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다'로 자라가게 됩니다.
그후에는 '주일로 바뀐 것이 정말로 맞는 것 같다'라는 단계가 오고
최후에는 '주일로 바뀌었다는 것에 서슴치않고 목숨을 걸겠다'는 단정이 옵니다.


그래서 빨리 단정을 주시면 좋고
나에게 믿는 은혜만 주시고 믿어지는 은혜가 올 때까지 노력하도록 원하시면
불씨를 찾기 위해 노력하시고, 불씨를 찾았다면 안심하고 차분하게 살펴보시면
그렇게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고도

성경에 명문이 없는데도 단정할 수 있는 것도 주시고
성경에 명문이 없기 때문에 잘못 추론한 것이 결과적으로도 잘못 되었다는 것도 세월을 통해 또 우리가 노력하는 과정을 보시고 각자에게 적당한 시기에 그렇게 확신을 주십니다.


5.한 가지 덧붙인다면

성경과 자기 속에 확신을 주시는 영감 외에는 우리가 믿어서 안 되지만
아주 중요하게 '참고'하고 '존중'할 만한 것 중 하나는
2천년 기독교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는
교회가 옳고 바르게 나갈 때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런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교회의 교리로 확정해 놓은 수많은 선례가 있고 사례가 있습니다.

여론은 이 홈에서 애당초 가치로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깨닫고 노력해 온 선배들이 우리 앞서 우리처럼 그런 단계를 반복했으며
그런 반복 전부가 무조건 다 맞다는 것도 문제지만
그런 과거 정통의 깨달음이 다 틀렸고 참고할 것이 전혀 없다는 것도 엄청난 실수입니다.

과거 깨달은 것이 적어도 교회 관리와 발전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님에 의하여
비록 어릴지는 몰라도 그 당시 당시로서는 교회가 가질 가장 옳고 바른 깨달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셨고 교회는 역사 2천년을 통해 그런 정통의 깨달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참고해야 합니다.

이는 사람을 통해 사람을 길러가시는 하나님의 섭리 역사의 중요한 궤 중의 하나이고
이는 믿는 사람 전체를 한 몸으로 만들어 사용하시려는 목적의 성질과도 통화는 부분입니다.

과거는 무조건 옳고 그 과거에서 더 나가도 안되고 덜 나가도 안된다는 것을 우리는 경계하는 것이고 그런 원리는 성경에만 해당된다고 강조하는 것이지
우리의 모든 깨달음은 항상 과거 하나님께서 앞서 세우시고 사용하신 종들을 통한 역사를 성경 다음에는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참고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도 주일과 같은 문제는
그 사안이 외부로 표시가 나고 그 사안은 교회 역사에서 7일간이 통째로 사라져 버린 적이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다음에는 연속적으로 지켜 내려 오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도 다른 논리가 필요없을 문제입니다.


주일날 무엇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문제는 다른 문답에서 많이 살폈고
또 다음 기회에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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