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질문) "삼일, 오일"이라는 요일 이름에 대해서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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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질문) "삼일, 오일"이라는 요일 이름에 대해서 176

유대인의 안식(토요일) 후 "첫 날"이 "주일"이 된 우리에게 수요일이 왜 "삼일"로 불려야 하는지, 마찬가지로 금요일은 왜 "오일"로 불려야 하는지, 우리 신약 교회의 역사에나 한국 교회사에 어떤 유래가 있는지, 또는 어떤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주일이 아닌 월요일을 첫 날로 삼아야 수요일이 "삼일"이 되고 금요일이 "오일"이 됩니다. 토요일을 "제칠일"이라고 부르는 안식교회에서는 금요일을 "제육일"로 여기고 있다는 점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 주일 기준으로 헤아리던 초기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곳 안내문과 같이 질문자를 위주로 하나, 일반 방문객을 고려한다는 점을 양해바랍니다.)


1.우선 '요일' 문제가 나오면 여호와의 증인들이 '일요일'을 우상 축제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 부정이 핵심교리이며 이 땅에서 볼 수 없는 세계를 부인하고 이 땅에서 이룰 수 있는 것만을 목표하는 것이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성경과 하나님을 전면에 내놓았지만 우리와 정반대 방향인 '지상낙원만'을 최종목적지로 삼은 이들이므로, '공산주의'을 기독교 페인트로 도색한 정도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안식교와 여호와의 증인은 원래 한 뿌리였습니다.

예수님의 사활대속으로 시작되는 신약교회, 그 출발일로 주신 '주일'을 흔들기 위해서 항상 사용하고 나오는 것이 '일요일'은 로마 태양(日)신의 축제일이며,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킬 교회가 쉬는 날이 달라서 발생되는 불편과 박해를 피하기 위해 태양신의 날로 안식일을 옮긴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늘 여러 역사적 인물, 연대, 지명,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며 증빙서류를 많이 제출합니다.

그들 이상으로 일반교회들이 역사적 자료를 연구 제시하지만, 이곳은 모든 면에서 신학적 접근은 최소한으로 그리고 신앙적 접근을 주로 하는 곳이므로 다음과 같이 반증합니다.

교회는 극심했던 로마 박해 150여년을 통과하면서 단 한 마디 한 교리의 타협이면 평안을 가질 수 있었으나 말씀대로만 갔었고 그 박해의 정도는 세상 역사도 상식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이 아니고 초대교회 그 당시 순교정신은 교회가 가던 한 길이었습니다. 오늘 19세기 중반, 문명국 미국에서 발생된 여호와의 증인들이 볼 때는 한 마디 타협으로 편한 길을 택했겠다고 생각할 만하며 그 주장을 위해 역사적 자료를 제시하는 것은 사학과 학생 정도면 충분할 것입니다만, '순교'를 아는 교회, 교인이라면 한번 웃고 지나갈 '가벼운 가설'입니다.

예수님 말씀, 제자들의 순교, 이후 로마 150년으로 이어진 초대교회는 주일을 변경하라는 박해를 순교로 맞는 길을 걸었고, 박해 후 로마의 기독교 자유화는 불과 수년도 가지 못해 기독교 유일주의로 되면서 교회가 요구하는 것은 로마가 국법으로 맹종하는데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교회가 세상을 좌지우지하다 1000년을 천주교로 나갔던 역사는 최소한의 상식이며 따라서 여호와의 증인들이 '일요일' 주일을 부정키 위해 동원하는 수많은 신학적 연구와 자료를 무식하지만 이렇게 간단한 신앙경험, 최소한의 상식으로도 정죄할 수 있습니다.


2.수요 밤예배를 삼일예배로 금요 밤예배를 오일예배로 부르게 된 것은

1)구별에 남 달랐던 초기 교회의 모습을 간직해 온 것입니다.

주일을 지나 삼일이 지난 날 드리는 예배라고 삼일예배라는 이름은 고신계통을 비롯하여 옛날을 기억하는 분들은 지금도 삼일예배를 알아듣습니다. 초기 교회들이 예배 중 남녀반을 분리 착석시키는 등 예배당 분위기를 전반적으로 경건하게 유지해 왔으나 지금은 개방 사회에 영향을 받아 보다 편하고 자유로운 착석과 함께 강단까지도 개방형으로 바뀌었습니다. 백목사님은 초기 교회들의 이런 장점을 세월에 상관없이 그대로 이어왔습니다. 초기 교회들이 귀신을 섬기던 우리 사회의 전통 제사를 철저하게 단절시켰으나 지금은 전통과 문화라는 포장으로 교회 안에까지 자유 출입을 하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은 초기 한국 교회들의 이런 장점을 세월에 상관없이 그대로 이어왔습니다.

수백년 내려온 주일학교 운영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꾸던 과감과 단행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바꿀 것과 지킬 것을 구별하여 교회의 생명과 성장을 함께 가졌던 경우이며 기독교계 역사에 몇 되지 않는 이상향이었습니다.

초기 교회들이 모든 전래 전통 속에 있었던 이교적 요소를 분별하고 조심하면서 요일에 대하여도 해와 달을 지칭하는 요일들 대신에 1, 2, 3일로 하게 된 것입니다. 그 유례가 분분하지만 가장 성경적 모습은 구약은 창세기 1장에 창조 첫째 날, 둘째 날로 기록을 하셨고, 또 날 중에 중심되는 안식일을 제 7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기록되고 구약 교회가 그 모습을 성막과 성전으로 나타나게 되면서 실제 신앙생활의 중심은 날 중에 제일 귀한 안식일이었고, 이 안식일의 제사를 통하여 구원의 예표를 가지게 되기 때문에 안식일이 기준이 되고 그 안식일을 기준으로 주일날이 '안식후 첫날'로 신약성경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2)'안식후 첫날'이라고 기록된 신약성경들은 아직도 구약제도가 이어지던 때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으나 구약의 율법을 지키셨습니다. 할례를 하셨고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전체적으로 율법을 지키시면서 내용적으로는 생명과 구원에 속한 큰 일들은 전부 안식후 첫날에 하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 승천 후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행전 초대교회에서도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친 내용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골로새서 2장 16절에서 폐지를 분명히 했고 히브리서 3장 4장에서 새날을 확실하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이미 신약교회는 주일을 변경된 안식일로 지켰으나 유대인들을 전도하기 위하여 안식일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 안식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얻는 복음을 전하는 날로 사용한 것입니다.

따라서 외부 모습으로는, 안식일의 계명들이 신약교회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고 보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볼 수 있는 성경 명문이 있으며, 부활로부터 신약교회는 주일만 지켰다고 단정을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구약교회를 유대교라고 이름을 붙여 이교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교회를 신약교회를 위한 어린 때요 준비의 때로 보고 구약교회로부터 신약교회가 출생되었다고 보는 입장이기 때문에 구약의 안식일도 신약의 주일을 출생시킨 의미로 봅니다.

따라서 안식일을 지키는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율법주의 유대인을 상대할 때는 안식일을 비판하였고, 구약에서 신약이 출발되는 이 면에서는 모든 구약의 모습들을 소중하게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변화시켜 나갔다는 면을 생각한다면 '안식후 첫날'이라는 표현은 그 표현까지를 지킬 '내용'이 아니라 '안식일'을 기준으로 날짜 표시를 하신 이유를 연구하고 그 뜻을 살피는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이를 행하라고 하신 요13:15 말씀을 근거하여 지금도 목사님이 교인 발을 꼭 씻기는 교단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의 뜻, 그 교훈을 지키고 있습니다. 명문대로 그대로 지킬 것과 이렇게 교훈으로 지킬 것이 있다면, '안식후 첫날'의 표현은 신약의 변경된 새 안식일의 고유명사로 주신 것이 아니라 그 표현으로 기록된 그 성구를 연구하고 그 뜻을 살필 문제로 본다는 것입니다.

3)따라서 우리는 신약교회로서 날 중에 가장 귀한 주일날을 기준으로 1, 2, 3일을 헤아려 왔습니다.

7일을 단위로 엿새 일하고 하루 안식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는 기본 인식입니다. 어느날을 기준으로 삼느냐는 것은, 신약교회로는 주일이며 따라서 구약교회가 안식일을 기준으로 날짜를 헤아렸던 것처럼 신약은 주일을 기준으로 날짜를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헤아리는 것이 될 수 있는 대로 중생의 본능으로 말씀대로의 새생활 새언어 새습관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며 반드시 지켜야 할 문제로 보지는 않는다는 것은 재차 강조드립니다. 성경 위에는 절대로 다른 물건이나 다른 책들을 올려놓지 않는 초기교회의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이 지상이라는 뜻입니다. 또 성경을 반드시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을 평생에 지키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행위들을 두고, '지켜야 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중생의 본능이 저절로 그 방향으로 향하게 되고 또 그런 행위를 통해서 연약한 인간에게 교훈과 사상이 굳게 박히게 함이라'고 하는 정도입니다. 20가지 회개할 것 중에도 있는 내용이지만 그 차원은 여러 면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오늘 총공회의 혼란 중에 하나가, '재독이 죄다'고 단정했던 많은 분들과 '재독만 해야 한다'는 몇 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양측에 대하여 잘못되었다고 단정을 합니다. 은혜스러워 많이 하는 분이 있을 것이고, 죄는 아니지만 하기 싫어 안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기 싫어 안하는 경우와 죄가 되기 때문에 안하는 것은 다르며, 은혜스러워 늘 재독하는 분과 '재독만 해야 한다'는 분과는 아주 다르다고 봅니다.

1, 2, 3일로 요일 표시를 하는 것도 이런 경우였습니다. 목사님의 교훈은 비록 계명적 강조는 아니더라도 교인들의 현실적 신앙을 보며 지도가 필요할 때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의 계명적 수준으로 들리도록 강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때에 설교록 전체와 백목사님 교훈 전체로 그 한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면 극단적인 행위들이 나옵니다. 재독, 요일, 국기주목, 성찬참석의 깨끗에 대한 기준 등 그런 경우가 허다하며 이런 경우들을 오해하여 이렇게 어지러운 원인 중에 하나입니다.

4)참고로,

목사님의 평소 요일 언급은 '요일'로 말씀합니다. 유독 수요일예배와 금요일예배는 삼일예배와 오일예배로 말씀하십니다. 교역자회의를 월요일부터 한다고 말씀하시지 일일 또는 첫째날 등으로 표현치 않습니다. 예배에만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밤예배의 이름에만 그렇게 꼭 그렇게 하셨으나 또 한번씩 수요일 밤예배라고 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설교록을 출간하면서 설교 본문을 매 장의 왼쪽에 그 날짜는 오른쪽에 표시를 해 왔었습니다. 목사님 설교록은 목회설교록이며 또 매 설교가 전부 수록이 되고 있었기 때문에 요일 표시라는 것은 사용의 편리성과 함께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요일을 표시하지 못하게 하셔서 '1985. 8.2. 밤' '1985. 8. 3. 새벽' 이렇게만 표시를 했고 주일은 '주일오전, 오후'까지를 표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다보니까 어느 요일 밤예배인지 어느 요일 새벽예배인지를 찾아보는데 불편이 많았고, 주일 표시가 된 페이지로 가서 다시 헤아려가며 계산을 해야 했습니다. 혹 설교가 빠진 요일들이 있을 때는 계산이 더 복잡해집니다.

목사님께서 요일을 적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꼭'이라는 단서는 붙이지 않으셨으나 그냥 '적지마라'고 하셨기 때문에 목사님 생전에는 100여권 설교록 전부에 요일이 없습니다. 지금은 제가 설교록 출간할 때 (월 새벽) 이런 식으로 붙이고 있습니다. 계명적 지시가 아니고 백목사님의 특유한 '신앙본능적 성향'이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며 그 성향을 지키는 것과 오늘 일반 교계에 내 보낼 설교록으로 요일이 필요하다는 것은 첨부가능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는 예배당 수리 문제에서도 종종 있었습니다. 아무 설명없이 또 특별한 지시없이 목사님이 아시는 대로는 예배당 내 시설 때문에 못을 박을 경우가 생기면 최대한 적게 최대한 못을 박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을 자꾸 말씀하십니다. 왕상6:7에서 '성전 안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하신 말씀 때문이라는 느낌이 많았습니다. 물론 목사님은 콘크리이트 건축물에 관한한 최고 수준의 전문가이며 '진동'을 극히 경계하는 기술적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예배당을 예배보는 하나의 시설로만 생각하는 분도 드문데 유독 이런 한 면씩을 보게 될 때 느끼는 부분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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