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질문) 주일의 영적 준수에 대한 칼빈의 글에 기초하여 질문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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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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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42
13. (질문) 주일의 영적 준수에 대한 칼빈의 글에 기초하여 질문드립니다. 5450
안녕하십니까? 주일의 영적 준수에 대한 칼빈의 글에 기초하여 주일과 안식일의 개념과 그것의 혼동으로 인한 주일의 율법적 준수에 대해 질문드리고자 합니다.
아래의 글은 주일에 대해 혹자가 질문한 것에 대한 목사님의 답변입니다.
1.사58:3 말씀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2.구약에는 안식일이라 하고 신약 오늘날에는 주일이라고 합니다.
주일날은 주님의 날이니 주님 기쁘게 하는 일을 하는 날이고
자기를 기쁘게 하는 날이 아니기 때문에 오목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목 두는 것을 주님이 즐거워하신다면 주일날 해도 됩니다.
그런데 오목을 두는 것은 오목을 두는 우리가 즐거운 것이지
주님이 즐거워하지는 않을 것 같지요?
3.만일 주일날 오목을 하지 않으면 심심해서 견디지 못하는 학생이 있다면?
오목을 두지 않으면 등산이라도 해야 한다면?
오목을 두지 않으면 심심해서 낚시라도 가야 하는 어린 신앙이라면?
등산이나 낚시를 가는 죄보다는 조용하게 앉아서 오목을 하는 것이 낫겠지요!
공부 시간에 떠들고 장난을 치는 것도 잘못이고
공부 시간에 선생님 몰래 만화책을 보는 것도 잘못입니다.
그러나 떠들고 장난을 치는 잘못보다는 차라리 몰래 만화책 보는 것이 낫습니다.
4.주일날 무엇은 해야 하고 무엇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①주일날 해야 할 일
주일날 오전예배는, 믿는 사람이면 좋든 싫든 무조건 가야 합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신앙이 있다면 주일 오전 오후 2번은 교회를 가야 합니다.
만일, 신앙이 점점 많이 자라기를 원하면
예배 참석 외에 남는 시간에 성경 읽고 기도하면서 점점 주님 기쁘하는 일을 늘려가면 됩니다.
주님이 기쁘하시는 일을 많이 할수록 신앙은 많이 자랍니다.
공부를 열심히 할수록 공부 실력이 느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②주일날 하지 말아야 할 일
주일날 돈을 사용하거나 공부나 일을 하는 것은 무조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신앙이 있다면, 주일날은 모든 행동을 조금 조심해야 합니다.
만일, 신앙이 점점 많이 자라기를 원하면
낚시 가는 것, 등산 가는 것처럼 활동을 많이 해야 하는 것부터 줄여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이 더 많이 자라고 싶으면 자기를 즐겁게 하는 일을 줄이면 됩니다.
5.따라서 주일날 오목두기는 자기 신앙에 따라 각자 알아서 결정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날 오목을 두도 되고 어떤 사람은 평일에도 두면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니까, 현재 자기 신앙을 자기가 살펴 자기 양심대로 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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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강요 제 2권 23. 주일의 영적 준수
그러나 옛 사람들이 우리가 말하는 주일로 날을 대치시킨 데에는, 매우 신중한 분별이 없지 않았다. 고대의 안식일이 나타내었던 바 그 참된 안식은 바로 우리 주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그 목적이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주님이 부활하신 그날이 그 그림자를 종결지은 것이요,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그림자와 같은 의식을 고집하지 말도록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일곱"이라는 숫자에 집착하여 교회를 그것으로 묶어두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나로서는, 미신이 개입되지 않는다면, 교회들이 다른 날을 엄숙히 지적하여 모임을 갖는다 할지라도 그것을 정죄하지 않을 것이다. 그 교회들이 권징과 선한 질서의 유지를 고려하여 그렇게 정했다면, 나는 얼마든지 용인할 것이다. 정리하자면, 유대인들에게 그림자 아래에서 진리가 전해졌든지, 우리 앞에는 그림자가 없이 진리가 제시되어 있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일에서 벗어나 영원히 누리게 될 그 안식을 평생토록 묵상하여, 주께서 그의 영을 통해서 우리 속에서 일하시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틈이 있을 때마다 우리들 각자 하나님의 일들에 대한 경건한 묵상을 부지런히 시행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말씀을 듣는 일과 성례의 시행과 공적인 기도를 위하여 교회가 세운 정당한 질서를 모두 함께 지켜야 할 것이다. 셋째로, 우리의 밑에 있는 사람들을 가혹하게 억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 옛날 유대인의 사고로 사람들을 감염시켜 놓은 거짓 선지자들의 하찮은 이야기들이 사라진다. 그들은 이 계명에서 의식적인 부분만-그들이 쓰는 말로는 일곱째 날을 "지정한 것"만-폐지되었고, 도덕적인 부분은, 즉 일곱 날 중 하루를 정하는 부분은 그대로 존속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유대인들을 책망하는 의미로 날짜만 바꿀 뿐, 그날을 신성한 날로 보는 것은 그대로 지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똑같이 그날에 신비한 의미를 붙여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그런 가르침을 통해서 그들이 얼마나 이들을 얻었는지를 잘 볼 수 있다. 자기들의 규정을 고집하는 그런 자들은 안식일에 관하여 유치하고 더러운 미신을 조장하는 면에서 유대인들보다 세 배는 더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사야서에서 나타나는 책망들이, 선지자 당시의 사람들에게와 똑같이 오늘날 그런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가르침을 특별히 견지해야 할 것이다. 곧, 우리들 가운데서 신앙이 쇠퇴하거나 무너지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거룩한 모임들을 자주 부지런히 가져야 하고,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돕는 외형적인 보조 수단들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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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칼빈은 고대 유대인들의 안식일의 개념을 오늘날의 주일의 개념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유치하고 더러운 미신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백영희신앙노선에서는 고대 유대인의 안식일 개념을 그대로 주일에 적용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주일성수'란 유대인들에게 부과된 안식일이란 개념을 그대로 존속시켜 '주의 날'을 일주일중의 가장 특별하고 신성한 날이라 하여 또하나의 율법적 짐을 성도들에게 지우는 것이 아닌지요? 칼빈의 글에 근거한다면 '주일성수'라는 말 자체가 없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하며 그것에 대한 율법적 강요 또한 폐기됨이 마땅치 않을까 합니다.
(답변) 지적하신 지적에 대한 칼빈과 이 노선의 주일관은 같습니다.
(05.8.13. 답변)
1.좋은 주제지만 간단하게 답변하겠습니다.
심층적으로 답변해야 할 주제로 읽었습니다.
그러나 집회 이후 집중 된 일정 때문에 윗글 질문에 대하여
아쉽게도 우선 간단하게 답변의 방향만 잡겠습니다.
2.역사 교회 전체를 위해 내신 종들의 발언
이 홈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숨겨둔 7천의 종들을 통해 인간들이 전혀 알지 못하고 꿈도 꾸지 못한 일을 오묘하게 진행한다는 점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도 그런 역사가 우리 주변에서 어떻게 진행하며 어떻게 우리 눈에 접하게 될런지 찾아보는 노력을 잊어본 적은 없습니다.
동시에 이 홈은
하나님께서 역사 교회 전체를 통해 몇몇 종들을 대표적으로 세워 각 시대를 연결하며 교회의 생명줄이 이어지게 하는 역사가 있다는 것도 늘 잊지 않고 있습니다. 칼빈과 같은 분들의 이름을 들을 때는 늘 이런 면에서 접하고 있습니다. 칼빈도 흠이 있는 사람이지만 그의 이름을 역사 교회 차원에서 특별하게 하나님께서 붙들고 사용하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칼빈의 설교나 발언은 극단적으로 조심스럽게 그리고 존중하며 늘 대하고 있습니다.
3.칼빈의 주일관에 대한 기억
윗글 질문자께서 소개한 칼빈의 주일 문제 발언 내용은 답변자가 20여년 전 접해 본 기억이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칼빈이 주일에 대하여 어떻게 발언했는지 그 전체 방향과 중요한 핵심 내용은 당시 살펴본 기억이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이 홈의 백영희신앙노선과 칼빈의 주일 개념은 기본적으로 같았습니다. 칼빈의 주일관을 요약하자면 날자의 변경은, 구약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고 신약은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도록 변경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일을 지키는 접근법은, 구약교회가 율법주의 자세를 가지고 그림자만 쫓다가 실패한 그런 자세를 버리고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 신약교회에 주어진 새로운 은혜를 실제 받는 주일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정도로 가르쳤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윗글 질문자께서 소개하셔서 당시 칼빈의 주일관을 다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소개한 내용을 읽으면서 당시 답변자가 기억한 내용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 칼빈의 글을 읽으면서, 역사교회가 주님 오실 때가지 늘 싸워야 할 문제점 하나를 새삼스럽게 느낀 것이 있었습니다. 그 문제점은, 역사교회가 모처럼 바로 가르치는 훌륭한 선지자를 가지게 되었다 해도 그 선지자 당대에는 큰 문제가 없으나 그 선지자가 죽고 나면 그 후시대에서는 그 선지자의 발언과 가르침을 놓고 그 해석 문제만 가지고도 또 다시 신앙노선이 나뉘겠다는 면입니다.
여호와증인에게 성경이 없어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잘못 읽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호와증인의 조상급이라 할 수 있는 사두개인들의 문제점도 그러했고 정통교파를 유지했던 바리새인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칼빈주의 신앙노선을 엄하게 지키는 교파 내부에서 칼빈의 발언과 가르침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를 존중하기 때문에 역시 두 신앙길은 나뉘고 있습니다.
4.칼빈의 주일관과 이 노선의 주일관은 일치하고 있습니다.
언뜻 읽으면 질문자 소개하신 칼빈의 표현과 이 홈에서 소개한 이 노선의 주일관은 서로 맞서는 듯 보일 수 있습니다. 칼빈은 주일을 거룩한 날로 만들어 특별한 규제를 하게 된다면 구약 율법 의식을 탈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심지어 미신적인 날 지키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홈에서 소개하는 주일 개념은 구약을 옮겨놓은 듯 규제가 많고 자세하며 주일의 의미를 특별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질문자 염려는 칼빈이 경계하고 조심시킨 바를 이 노선은 현저하게 넘어서고 있다고 읽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면밀하게 살핀다면 칼빈의 표현은 주일관에 대한 총론이며 이 홈의 소개는 그 총론을 가지고 현실 교회 내부에 있는 어린 신앙을 실제 가르칠 때 필요한 현장 지침의 성격입니다. 칼빈은 총론만 가르쳤다는 것이 아니고 또한 이 노선은 칼빈에게 총론을 배우고 각론은 이 노선에서 독자적으로 발전시켰다는 것도 아닙니다. 칼빈의 많은 가르침 중에서 윗글 질문자가 소개한 부분은 칼빈의 주일관 중에서도 총론 부분만 소개 되었다는 것이고, 또한 이 홈에서는 주일에 대하여 각론만 소개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이 홈의 다른 부분, 또는 이 홈에서 소개하는 백영희신앙노선의 총론적 소개 글들을 살펴 보시면 칼빈이 염려하여 주일의 성격을 설명한 부분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내용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따로 어느 자료를 소개해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혹시 이곳 문답을 읽는 일반인들 중에서는 칼빈의 주일 성수에 대하여 각론적 자세한 행동지침이 따로 있다면 답변자에게 소개를 요구할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칼빈의 가르침은 주로 총론적인 면이 많습니다. 이유는, 천주교 1천년으로 인하여 기독교는 거의 모든 부분이 완전히 변질되었는데 칼빈의 손으로 그 모든 분야를 전부 다 복구시켰기 때문에 그가 각론에 치우쳐 일일이 글을 적으려 했다면 한도 없는 분량의 글을 남겼을 것입니다.
우선 간단하게 살펴볼 수 있는 방법은, 소개하신 칼빈의 주일관을 가지고, 일단 칼빈 시대 칼빈이 장악하고 있었던 칼빈의 통치 범위 내에서 주일을 어떻게 지켰는지 살펴보신다면 답변자의 소개는 그렇게 낯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칼빈의 상기 소개하신 주일관에 의하면 칼빈이 목회한 교회와 칼빈이 통치한 주민들이 주일날 각자 일정과 개성과 생활 여건에 따라 소위 세상 기준에서 볼 때 자유롭게 여가를 즐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실제 칼빈이 다스린 사람들의 주일 행동과 일정은 마치 오늘 이 노선에서 소개하는 생활과 가장 흡사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모습은 이 노선 뿐 아니라, 얼마 전가지만 해도 칼빈주의의 전통적인 주일 성수의 기본 모습은 거의 모든 보수 교회들에게 칼빈시대 이래로 수백년 내려온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최근에 들어서 급격하게 각 보수교단들이 자신들의 과거 건전한 주일성수를 버리고 자신들의 선배들이 그토록 자유주의에 물들어 속화되었다고 비판한 자유주의자들의 논리와 주일 모습을 자신들이 수입하여 자신들이 소속한 신앙노선을 스스로 이탈하고 있습니다.
지금 질문자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고 우연히 이번 질문자의 지적하신 내용은 정통 칼빈주의들이 최근 급격하게 자유주의화 하면서 자신들의 변질을 변호하기 위해 변질을 거부하고 있는 이 노선을 비판할 때 주로 사용하는 논리와 너무 흡사합니다. 이번 질문자의 경우는 정확하게 어떤 입장에서 나온 것인지 답변자가 알지 못합니다만 전체 질문 글을 통해 우연히 결과적으로 그런 모습이 되었다고 읽고 있습니다.
5.칼빈주의 주일성수 모습
현재 국내 교계를 두고 말한다면, 5백여 년 내려온 정통 칼빈주의의 주일성수를 두고 이론과 모습 등에서 칼빈주의의 원칙과 원래 모습을 가장 잘 보관하고 있는 곳이 이 노선입니다. 그리고 국내 최고의 칼빈노선이라고 자부하는 고신측이나 합동측의 주일성수는 이 홈에서 비판할 것도 없이 그들 스스로 그들의 50년전 선배들의 신앙이 옳았는지 현재 그들의 신앙이 옳았는지, 그들의 선배와 현 그들은 서로가 세상에서 가장 칼빈주의에 정통하다고 자부하는 이들이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논쟁을 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순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선배들이 율법주의로 잘못 믿었고 현재 그들의 주일성수 모습이 옳다면 이 홈은 그들에 의하여 정죄받을 사안이 많습니다. 그러나 고신과 합동측의 50년 전 주일성수가 정통 칼빈주의에 가깝고 오늘 그들의 주일 성수는 탈선이며 타락 차원에 가깝다고 판단이 된다면 이 홈은 정통 칼빈주의를 실제로 오늘까지 보수하고 있다며 극찬을 받아야 할 상황입니다. 그들 선배들의 과거 주일 성수가 잘못되었다고 만일 오늘 칼빈주의를 자처하는 이들이 입증을 하게 된다면, 이 홈은 그들과 함께 그들의 선배들을 대신하여 정통 칼빈주의의 주일관에 대하여 차분하게 재론할 수 있습니다.
6.이 홈에서 제시하는 여러 주일성수의 각론들은
주일성수의 절대적 기준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홈의 주일 관련 많은 자료를 면밀하게 살펴보신다면
이 홈의 주일관은 칼빈의 주일관과 총론적으로 또 신학적으로 하나일 것이고
이 홈이 교인들에게 주일을 알기 쉽게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안내하는 바는, 칼빈 시대 자료를 살펴보신다면 이 노선보다 더 엄했을 것으로 밝혀질 것입니다.
윗글 질문자가 소개한 내용은 사실 그 기준을 어느 정도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칼빈의 윗글 입장으로 칼빈 자신의 주일 행동을 비판한다면 칼빈 역시 율법주의로 정죄받을 수 있는 상대적인 기준입니다. 실제 기독교 내 '보수 정통'이라는 개념을 조금 넓게 잡는다면 칼빈은 율법주의자라고 비판하는 교파들이 적지 않습니다.
7.자세하게 살피고 싶은 사안이 많으나
여러 일정 때문에 이번 문답은 일단 이 정도 글로 대신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