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질문) 지나간 10년 집회모습을 있었던 대로 설명해주셨으면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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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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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42
3. (질문) 지나간 10년 집회모습을 있었던 대로 설명해주셨으면 141
집회를 재독으로 하느냐 설교로 하느냐는 문제는 이미 찬반이 충분하게
설명되었습니다. 서로 주장하는 이유가 그렇다면 그 정도로 일단 알아
들을 수 있습니다.
정말 궁금한 것은 이미 10년이 지나왔으니까 지나온 10년간 집회모습을
있었던 사실, 이것은 이미 하나의 역사고 또 들어난 것이니까, 이 10년
간 집회장소 예배 분위기등을 알아본다면 재독과 설교집회를 비교하는데
아주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관적인 것말고, 최대한객관적으로 지나간 10년 총공회(총공회를 분류
하는 것도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내부집회모습을 뉴스로 전하듯, 다큐멘타리
로 전하듯 설명해주신다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 아이디를 빌려 들어왔습니다)
(답변1) 총공회 집회 10년 모습
1.집회 형태
10여년 계속된 집회 모습 중에서 객관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숫자는 대략 추산일 뿐입니다.)
1)재독집회:
집회내용: 백영희목사님 생전에 녹음 또는 녹화된 설교를 복습하는 집회
해당공회: 부산공회 소속 3개 공회가 10년간 유지
집회장소: 부산공회 소속 (I)과 (II)는 5월 대구노곡동, 8월 거창장생골 기도원에서
(I)측 주도로 현재까지 계속, 공회간 소송건 발생이후 (III)은 외부에서 진행
참석교회: (I)(II)공회는 60여개 교회, 8월기준 초기 2,500-3,000명, 현재 1,500-2,000명
(III)공회는 7개 교회, 8월기준 250명,
운영모습: 부산공회 소속은 대체로 1990년 이전 모습을 유지
2)설교집회:
집회내용: 일반적인 부흥회 또는 사경회 형태의 집회
해당공회: 서울공회와 대구공회 소속 공회가 10년간 유지
집회장소: 1992년까지는 상기 장소, 1993년 공회간 소송사건 이후는 외부에서 진행
참석교회: 대구공회는 60여개 교회, 8월기준 1,000-1,500명,
서울공회는 20여개 교회, 8월기준 500명
운영모습: 타교단 수련회 모습을 선별적 사용
2.집회의 외부적 성격
10여년 계속된 공회별 신앙노선과 그 성격은 이미 대략의 윤곽이 드러나 있으며, 따라서 대체적인 집회 성격을 설명드릴 수 있다고 봅니다.
1)재독집회의 부산공회
①공회의 기본 신앙방향
부산공회는 대구나 서울공회 측으로부터 '무엇이든 옛날 그대로만!' 주장한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아직까지는 대체적 노선이 1990년 이전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공회 간판, 공회 찬송가 사용, 시무투표, 학생회 등 타교단과 모습에서 구별되던 차이점이 아직 분명하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부산공회(II) 소속 교회들 중에서는 이런 외형 유지가 변경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가진 분들이 있으며, 내적 신앙성격도 달라져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곳 문의답변방에서 재독이나 서부교회 후임문제 등에서 확고하게 반대측 의견을 제시한 분들의 입장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공식적으로 또 외부적으로는 부산공회 소속 공회들은 그 신앙노선이 1990년 이전을 보수하고 유지하는 측이라고 보는 것이 객관적일 것입니다.
②집회 성격
10년에서 20년 이전 설교된 내용을 순수 설교만으로 1회 120-180분, 하루 3회, 한 주간 계속한다는 것은 부흥회라기 보다는 사경회라는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말씀 연구 중심이라는 말이며 그 중에서도 현존 교회 중에서는 거의 유일할 정도로 말씀만 전하고 받는 집회입니다. 준비찬송이 유일하게 30분간 있지만 순수 예배 찬송을 예배시간의 연장선에서 부르며 일반이 생각하는 복음성가는 전혀 없습니다.
이 시간 외에는 냇가 씻으러 가는 정도가 활용시간이며, 어린 학생들에게는 예배 사이 놀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잠깐 주어지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타 교회들이 볼 때는 갑갑하기 이를 때 없는 정도일 것입니다. 예배시간 이외 자유시간에도 엄숙과 조심이 강조되는 집회 분위기라고 한다면 일반 부흥회와는 아주 그 집회 성격이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2)설교집회의 대구/서울공회
①공회의 기본 신앙방향
대구나 서울공회는 부산공회 측으로부터 '변질, 타락되었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1990년 이전 모습을 많이 변경시켰습니다. '총공회' 교단 표시를 대외적으로 하는 교회가 거의 없는 정도이며, 공회 찬송가 사용, 시무투표, 학생회 운영 등에서 전반적으로 타교단의 많은 면이 수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변경된 부분은 그들대로의 분명한 이유와 필요 또 그래야 하는 설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타교단에서 본다면 아직도 너무 보수적이라고 평가할 교회가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전반적 흐름에서 변경이 좀더 많다는 것이 대구나 서울공회이며, 변경이 좀더 적다는 것이 부산공회라고 한다면 반론이 없을 것입니다.
②집회 성격
서울공회는 부흥회의 성격으로 바뀌었다고 보면 될 것이며, 대구공회는 내부에서 부산공회로 향한다고 분류될 소수의 보수적 신앙과 보다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는 다수의 자유로운 신앙이 있어 아직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대체로 설교시간 자체가 줄어들고 또한 한주간 계속 한가지 말씀을 중심으로 심층화되던 것이 지금은 주제가 많아지고 따라서 한 주제에 대한 깊은 사려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것은 분명합니다. 또한 예배외 기타 활동이 많아지며, 집회 기간에 집회 장소 외부로 출입하는 것이 자유로운 정도 등을 참고한다면, 전체적인 비교는 될 수 있다고 봅니다.
3.집회에 내재된 갈등
1)부산공회
①내부갈등의 10년
부산공회는 교권투쟁이 10여년 계속되었고, 따라서 집회 참가는 상대측을 의식한 동원이 분명히 있었으며, 또한 집회 사회자 또는 강사 선정을 두고 표대결이 대단한 관심사였습니다. 심지어 재독설교 직전 2-30분 정도 사회자가 재독할 설교 내용에 대한 소개형식의 설교가 있었으며, 부산공회 (I)에 속한 교인들은 이 소개형식의 설교에는 행동이 자유로웠고, 반대로 부산공회 (II)에 속한 교인들은 설교 이후 계속되는 재독시간에는 예배에 대한 집중력이 현저하게 흐트러져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예배 외 시간에는 양측의 주도적 교인들이 1년간 있었던 서로의 갈등을 두고 논전도 많았고, 또한 같은 소속 교인들끼리는 자체 교육 내지 홍보에 해당될 발언들이 계속되었습니다. 이런 갈등은 집회 장소 경내에 또는 집회 참석으로 비게 된 예배당에 삐라, 스프레이 등으로 상대방을 비방하는 일이 있게 되고 그런 문제로 인하여 갈수록 내분이 격화되어 1999년에는 집회예배당 강단이 상대측의 물리적 공격을 방어하도록 설비가 되어진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배경 분위기 또 내재된 투쟁심 때문에 집회는 외형적 유지와 내부적 암투로 계속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②기도원소유권과 총공회정통성 문제
집회는 말씀을 듣고 자신을 고쳐 은혜생활을 바로 하겠다는 모임인데, 이렇게 양측의 갈등이 계속된 것은 부산공회의 특성인 보수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1990년 이전 모습 그대로를 주장하면 일단 신앙변론에서 상대방에게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 부산공회의 분위기이며 따라서 집회를 이전 모습으로 계속하는 것은 기도원이라는 막대한 재산과 함께 총공회 정통성을 확보하는 교권투쟁에서 대단히 유리한 심리적 작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양측은 논리적으로는 집착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인의 심리적 동요를 고려 같은 장소 같은 시간 같은 예배를 고수하게 되고, 그러나 내부적 노선은 이미 반대가 되었고 남은 것은 투쟁의 양상뿐이라는 것입니다.
③집회 결집력의 급격한 약화
초기 양측의 대결과정에서 교인동원 또는 교인불참을 유도하여 참석교인 숫자가 가감되고 심지어 연보액수 발표까지 관리되는 문제가 발생되었으나 결국 10년 세월이 흐른 지금은 대결을 위한 관리와 동원은 그 힘이 한계에 이르고 내부 문제로 인하여 집회 결집력은 전반적으로 감소되고 있다고 봅니다.
이런 과정에서 그 대결이 격화되는 초기, 부산공회 (III)으로 표시되는 측은 집회가 재독이라는 내용을 유지한 것은 아주 적절한 선택이지만, 교권과 재산문제로 집회 장소에까지 투쟁이 반입되는 것은 비신앙적이라고 판단하여 양측의 교권싸움에 상관치 않고 순수히 설교 재독만을 듣기 위한다는 이유로 비록 소수지만 재독만으로 조용히 집회를 유지하겠다는 분리 집회를 1993년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 교회로 시작된 것이 지금은 7개교회로 확대되었으며, 참석 숫자가 초기 50명에서 현재 300명에 이르지만 이들은 1990년 5월 부산공회 집회가 재독집회가 되도록 결정하는데 중심역할을 했던 두 그룹 중에 하나이며 또한 재독을 가장 선호하는 교인들이라는 점에서 재독집회를 특징으로 하는 부산공회의 결집력이 약화되는 또 하나의 원인일 것입니다.
부산공회 집회가 재독으로 진행되게 만든 또 하나의 그룹은 서부교회 내 중간반이며, 이들 역시 집회를 재독으로 유지할 가장 중심에 있을 교인들인데, 집회장소를 두고 일어나는 교권투쟁 등의 과정에서 이번 2000년 5월 집회부터 분리하여 따로 재독 집회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분리된 집회보다 두배 정도의 교인들이 더 이상 교권투쟁에 상관없이 집회를 진행할 것이지만 일단 장생골의 재독집회로서는 그 결집력을 대단히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두 그룹은 재독에 대한 신학과 신앙에 뚜렷한 확신과 신앙노선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재독을 가장 오랜 후까지 유지할 중심이라 할 수 있고, 이제 남아 있는 교권투쟁의 양측은 집회가 재독으로 진행되어야 할 이론적 또는 신앙노선적 입장을 구성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기도원 재산문제와 총공회 정통성의 향방에 따라 언제든 그 집회의 성격을 변동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2)대구/서울공회
①설교강사 체제 10년의 집회 역량
재독에 관한 한, 예배 설교를 대신하면 죄가 된다는 입장과 아예 사적 성경공부로도 해서 안된다는 소수 극단 주장까지 있었던 공회였기 때문에 집회가 선임 강사의 설교로 진행된다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런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집회는 재독을 하면 안된다는 주장과 설교만 하면 된다는 주장만으로 집회가 은혜롭게 되는 것은 아니며, 설교할 강사의 설교력에 의하여 집회가 유지되는 것이라 한다면, 대구와 서울공회의 집회는 현재까지 특별한 전망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동안 백태영목사님, 백영침목사님, 백영익목사님, 이재순목사님 등 백영희목사님 다음이라고 할 수 있다는 분들로 집회를 인도케 하였으나 과거 개최되던 집회를 계속한다는 정도 이상으로 유지되지는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집회강사가 자주 교체된 것은 집회 강사를 두고 원로 대우, 목회 권위 고려, 적절한 안배주의 등이 원인이었습니다.
②은혜가 위주되지 않고 행정이 위주된 집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구나 서울공회측의 주도 인물들은 은혜있는 사람에 의한 집회 주도보다 교단이라는 체제가 집회운영을 관리차원에서 진행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고, 초기에는 원로나 특별한 경우로 은혜면을 고려 집회를 진행시켰으나 결국은 시스템에 의한 집회 운영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쉽게 말하면 은혜 있는 한 분을 주로 세워 그 분의 입장에서 집회가 진행되는 것보다, 강사란 집회의 설교 부분을 당번으로 맡은 직책이며 전체 교단의 운영차원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고 집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 진행이 한 인물의 은혜에 주도되다가 그 후 시대가 되면 체제가 교회를 운영하는 전형적인 단계를 밟는다고 봅니다. 좋게 말하면 교회의 민주적 합리적 발전이며 따라서 긍정적이라 할 수 있겠고, 비판을 한다면 교회의 세속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본인은 후자라고 단정합니다.
③총공회의 상식 역량으로는 비관적으로 봅니다.
대구나 서울공회의 집회 운영은 일반 교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며 따라서 백목사님 생전 집회를 재현치는 못해도 어느 정도 일반 교계 집회 모습은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총공회는 후발 교단으로 특별히 세상 일반 상식을 무시하거나 아니면 상식 자체를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최소한의 사회 상식 단체 유지 상식이라도 있어야 유지될 타교단 집회 규모나 운영을 할 역량이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10여년 계속된 것은 백목사님 생전 집회의 결집력이 교역자와 교인들에게 관성으로 아직 남아 있는 바가 있고, 그것이 현재의 설교역량 이상의 집회참석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관성적 참석력은 계속 힘을 잃게 되고 집회운영은 결국 일반교계의 상식 수준을 갖춘 조건에서는 일반 교계의 수많은 기도원 부흥회 형태로 유지될 것이고, 상식 이하의 요구나 주장이 엇갈리게 되면 그마저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고 봅니다.
④1980년대 초반 이미 그런 예가 있었습니다.
거창과 대구의 대규모 집회를 보고 서울 삼각산 기도원 집회를 구상하고 추진했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백목사님 생전의 공회 교회와 교인들의 결집력 있는 배경에도 불구하고 결국 단명하고 말았습니다. 단명할 설교가 아니었고 단명할 이유도 없었으나 총공회 우리 교인과 교역자들의 상식 이하의 행동이 단명을 가져왔고, 그렇다고 백목사님 정도를 따라갈 실력은 없었기 때문에 결국 이도 저도 아닌 형태로 끝났던 것입니다.
(답변2) 소망하는 집회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4.집회를 두고 바라는 소망
질문자는 비록 10년 현황의 객관적 설명을 원했으나, 덧붙혀 제가 소망하는 우리 공회집회의 모습을 이렇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1)지나침의 양극단이 양떼를 전부 흩었습니다.
현재 우리 공회의 여러 갈등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이러합니다. 첫 갈등은 지나치게 감정폭발이 심하여 군중심리로 과도한 결집현상을 나타내며, 그 다음 단계가 되면 지나친 자기 비하와 심리적 공황으로 정도 이상 분산되는 현상이 있습니다. 앞 단계에서는 현저하게 냉정을 가져야겠고 뒷 단계에서는 현저하게 소망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백목사님 직후 집회가 지나치게 동원의 모습이 된 것이 오늘의 지나친 냉각을 가져왔다고 봅니다. 결국 은혜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게 되는 것이 우리 집회라면, 백목사님이 계시지 않으니까 당분간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권할 것은 아니나 자연적 현상으로 보면 되고, 그러니 더욱 힘써 집회은혜를 사모하도록 하여 자연 증가가 되도록 했어야 했습니다.
2)현재 내재된 갈등은 다음으로 미루고, 일단 같은 노선끼리 집회를 모아야 합니다.
공회 집회를 백목사님 없는 상태에서 지나치게 단일 위주 한 사람 주도에 묶어 놓은 것이 오늘의 분산 집회를 가져오면서 역효과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집회 참석의 관성과 감회를 가진 분들이 있을 때, 서로가 좋아서 뜻이 맞고 은혜가 될 수 있는 소그룹으로 집회가 나뉘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부산공회 (I)과 (II)는 재산문제와 정통성 명분싸움을 버리고 얼른 분리 집회가 되어져 자기측 교인들이 진정으로 은혜 받을 수 있는 방법, 그런 집회 운영을 해야 건설적 앞날이 있게 된다고 봅니다.
교권 장난에 자기측 존경하는 목사님이 강사에서 제거되었다고 느끼는 부산공회(II) 교인들이 현재 참석하는 집회에서 은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일 것인데, 왜 그 골짝까지 기어코 따라 가야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부산공회 (I)의 지론은 그 골짝에 길로 진리와 생명이 있다까지 믿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II)에 속한 분들은 그 반대 의견을 가진 분들인데 왜 10여년 계속되는 싸움을 그 골짜기에까지 가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III)측에 있는 사람들은 모든 조건 모든 투자했던 것 다 포기하고 현재 개별 집회를 하고 있으며, 이렇게 하게 된 것이 분명히 옳았다는 결과를 보고 있습니다.
대구공회도 내재된 흐름은 두가지일 것이고, 결국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유지되면 좋을 것이고 부산공회와 같이 나갈 정도라면 미리 좋을 때 둘로 나누어 두가지 형태의 집회를 교인들에게 제공하게 된다면 자신들 맞는 방향대로 갈 것입니다. 어린 교인의 어리석음을 조장하라는 말이 아니고 길러 가는 방법에서 여러 시도는 해 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3)이유는 전국 교회의 여러 신앙을 한 사람이 한곳에 모을 역량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공회에 주신 현실이, 백목사님 생전 때는 함께 모임으로 은혜가 더 컸었고, 지금은 그럴 종이 보이지 않고 크고 작은 범위의 차이는 있을찌라도 서로가 맞는 범위 안에서 지도가 있고 권면이 있으며 또 존경과 복음 협조가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자기와 다른 신앙길을 걷는 이들에게까지 따라가서 시비를 걸 것까지는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대구에서 집회하던 분들이 거창까지 야밤에 습격하러 갈 것까지는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들만으로 일단 고요한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겠다는데 그 기도하는 모임에까지 방망이를 들고 갈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비록 아주 소수지만 자기들끼리는 고요한 가운데 재독하게 되어 참으로 다행스럽다고 느끼는 것을 막겠다고 나설 것까지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공회에 속했든지 현재 자신들이 옳다고 느끼는 자신들의 길을 자신들의 힘으로 걸어가는 데에만도 걸음마 겨우 하는 정도입니다. 자신이 먼저 살고, 자신이 택한 노선이 확실히 하나님 함께 하심을 확신한 다음, 얼마든지 다른 공회에 간증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아니, 간증하고 선전하기 전에 알고 배우러 오게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결국 백목사님의 목회와 성경 깨달음을 배우러 한국교계, 특히 지도급 인물들부터 수많은 숨은 노력을 기우렸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직전에 보아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