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질문) 총공회 찬송가는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295
서기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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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42
2. (질문) 총공회 찬송가는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295
총공회 많은 교회들이 공회 찬송가를 쓰지 않는 이유는?
총공회는 일반 교계에서 거의 다 쓰는 통일 찬송가를 쓰지 않고 공회 자체에서 만든 찬송가를 사용하고 있으며, 여기에 대하여 확고한 입장과 철학이 있습니다. 공회 찬송가를 사용하느냐 안 하느냐가 노선 문제로 연결되어 교회들마다 큰 갈등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총공회 소속의 많은 교회들은 백목사님 순교 이후 공회 찬송가를 쓰지 않고 통일 찬송가를 쓰고 있습니다. 그분들 다 나름대로의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어떤 분들의 말에 의하면 공회 찬송가는 백목사님이 아닌 백목사님의 아주 가까운 혈육 중에 한 분이 만든 것이며, 그래서 그 사실을 아는 교역자들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이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찬송가는 제2의 성경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것인 만큼 정확한 내용을 알고 싶고, 혹 백목사님이 아닌 다른 분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그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유익할지, 또 그럴 경우 찬송가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되어야 할는지 여러 가지 면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될 것 같습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백목사님이 특별한 종이었던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분이 했다면 안심하지만 혹 다른 분이 만들었다면 내용 선정이라든지 기타 여러 가지 면에 있어서 여러 가지 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답변1) 이런 이유로 공회찬송가를 사용해야만 합니다,
질문을 요약하겠습니다.
1.왜 '공회'찬송가를 사용하는가, 또 사용해야만 하는가?
2.'공회' 찬송가는 누가 만든 것인가, 혹 만드는 과정의 문제점은 없었는가?
우선 1차 답변입니다.
1.현재 공회 교회 중 찬송가 문제가 제기된다면 그 '시각'은 이러합니다.
소속 교단의 방침을 따르는 원칙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싫다면 소속을 떠나면 될 일입니다. 좋다면 따르면 될 일입니다. 소속은 좋으나 '찬송가'라는 단일 사안에 대하여 이의가 있다면 '질문'하면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떠난 분들이 계셨습니다. 좋아서 지금까지 따라오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리고 '질문'이 계셨던 분들도 참으로 많았습니다. 3번째 경우가 질문에 해당되는 경우겠습니다.
이미 백목사님 생전에 '의문'이나 '이의'가 계셨던 분들은 충분히 제기했고 설명은 지나칠 만큼 이루어졌습니다. '찬송가'라는 단일 사안을 두고 더 이상의 재질문이 필요 없어야 마땅한데도 아직까지 '의문'이 있다면 '양심문제'입니다. 분명히 옳은 것을 작은 '이권' 때문에 아무 것도 아닌 '기호(嗜好) 문제' 때문에 피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사참배와 같이 측량할 수 없을 정도의 환란이 온다면 어떻게 할 사람입니까? 수도 없이 반복된 문제이지만 질문에는 최대한 노력한다는 점에서 답변을 드립니다.
2.왜 공회 찬송가를 사용하는가, 또 사용해야만 하는가?
이곳 문의 답변방의 15번과 16번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다만 한번 더 요약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과거도 그러했고 오늘은 그 기승이 하늘을 진동하고 있는 교회 타락의 3대 요소를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①영웅심, 명예심이 큰 일을 냅니다.
소위 전문분야를 가진 이들, 신학자 등 한 방면에 재주가 있는 이들은 무언가 하나를 이루어야 할 강박관념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경 다음 가는 찬송가를 자기 손에서 한번 만들어보았으면 하는 유혹을 떨칠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90점짜리 신편찬송가를 80점짜리 새찬송가로 그다음은 기어코 '개정' '수정'등의 이름을 붙여 30점짜리 통일찬송가를 만들게 됩니다.
찬송가 방면에 전문가들이 이유를 제조하여 제시하는데 누군들 수긍하지 않겠습니까? 말이 통하지 않는 무식한 총공회니까 '팥으로 메주를 쑨다'는 것을 신앙 본능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식한 타 교단들은 '팥으로 메주를 쑤게 된다'는 논리를 전문가들이 펼칠 때 이해가 되고 그 글들을 읽을 재주가 있으니 자기들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전문가들의 논리에 결국 삼켜지는 것입니다. 반식자 우환이라는 말이 바로 요때 써먹을 자연계시일 것입니다.
교인들은 찬송가를 변경할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했겠지 라고 의례껏 '박사'를 믿고 '학자'를 의지하고 다 맡겨버렸고 신학자들과 해당 전문가들은 자기 이름, 자기 손을 거친 명품을 만들어 만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기 중심인 '악'이 들어 일을 냈고 그 증거는 '100점인 듯' '만년이나 가야할 명품인 듯' 자랑하던 그 작품들이 몇 년 가지 않으면 또 개정되어야 할 논리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영웅과 명예학위를 가진 이들이 나서서 이번에는 자기들 차례라는 것입니다. 천하 교회가 다 속고 따라 가도 '진리' 하나를 예리하게 또 일관되게 주목하는 공회 교회들이라면 어림도 없는 사안입니다.
②학자들의 영웅심과 만나 음모를 하고 있는 또 하나의 세력, 돈입니다.
학자들의 성취감, 영웅들의 호기가 잔뜩 기회를 엿보고 노리고 있는데 '돈' 냄새를 맡는데는 아주 날랜 교단주 교단집행부 교단살림꾼들이 이 대목을 지나칠 리가 없습니다.
한국 교회의 회원숫자는 단일 품목을 판매한다는 전제가 있다면 대단히 큰 시장입니다. 찬송가가 바로 그러합니다. 교단끼리 넘어갈 수 없는 신앙노선적 입장들이 많았으나 1천만 기독교인이, 당시로는 아마 5백만 기독교인이 단번에 찬송가를 구입한다는 사실, 일만 악의 뿌리인 돈욕심이 한국교회를 다 삼켜 버렸던 것입니다. 당시 찬송가 판매 수입금의 분배 문제가 빙상의 일각으로 교계 신문에 나오곤 했습니다. 찾아보시면 능히 짐작하리라 봅니다.
지금도 돈 되는 일, 돈 남는 일, 주머니에 뒷돈 들어갈 구멍만 막아 버리면, 당장에 풍비박산이 나게 됩니다. 현 교계에 돈이 진리지 성경이 진리입니까? 하나님과 맞설 상대로 하나를 뽑은 것이 바로 '돈'입니다. 이곳이 물질계이니 이연하지 않습니까?
③영웅심과 돈욕심 둘만 가지고는 불안하니까 '통일구호'가 나서서 마무리를 한 것입니다.
자기 중심의 명예심,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돈. 이 중 하나만 해도 일을 충분히 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만, 교회를 통째로 타락시키는 일은 너무도 큰 중대사이기 때문에 만에 하나라도 실수가 없도록 가장 큰 원수 '통일구호'가 나선 것입니다. 이 통일 구호라는 것은 기독교만 잡고 기독교만 죽이는 기독교에게만 일대 원수입니다. 명예나 돈, 둘을 제쳐놓고도 그 둘을 포기하고라도 큰 일이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통일구호가 명예와 돈 둘과 합했습니다. 그렇다면 못할 일이 없을 것 아닙니까? 교리와 신앙노선이라는 문제는 자고로 교회가 목숨을 걸어야 하고 교회가 간판을 내리더라도 지켜야 하는 것인데 '통일구호'를 앞세워 각 교단과 교회들이 스스로 '교리와 신앙노선'을 자기들 손으로 없애도록 해버렸습니다.
찬송가 하나가 문제겠습니까? 그 작은 문제 때문에 이 3가지 세속화 절대요소가 뭉친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이 3가지가 모인 것은 완벽하게 '찬송가'를 넘어서야, 그다음 넘을 산, '성경개정'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교단통합, 기독교 통합'으로 나갑니다. 그다음은? 종교통일입니다. 그다음은? 종교와 세상통일입니다. 그다음은? 기독교까지 포함된 종교가 통일된 세상 속에 한 분자가 된 '재림당시'가 됩니다. '재림시점'이 된 뚜렷하고 명백한 '징조'입니다. 두려운 것은 이미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장로교 안에서도 교리가 너무도 뚜렷하게 다른 기장, 통합, 합동과 고신 등이 합하여 찬송가를 하나로 만들었다는 것은 앞으로 불교 유교 기독교를 합해서 역사 이래 가장 큰 업적을 만들 노선이라고 보는 것이 이곳의 단호한 입장입니다. 죽을 일 아니면 따라 가는 것도 있기 때문에 성탄절 행사를 아직도 폐하지 않고 그럭 저럭 마지 못해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는 것이 쉽지 따라 가지 못할 일이 있는 바, 성경 개정이 그 첫째이며 찬송가 변경이 그 둘째에 세울 정도라고 하겠습니다.
3.배우지 못했고 듣지 못한 이들, 배웠고 들었던 공회 소속 교회들의 심판은 다릅니다.
한 의인, 한 성자, 한 선지자가 우리 살던 성읍에 있었고 그가 마지막 자기 증거하는 말씀 때문에 결국 강단에서 칼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렇게 전해 준 복음, 그렇게 전해 준 '복음을 걸어가는데 필요한 주의'를 우리는 들었습니다. 그 중에 아주 쉽고 간단하여 주일학생도 알만한 기초 산수가 바로 '통일찬송가'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문제가 되다니요? 공회 밖에서가 아니고 공회 안에서. 찬송가 문제가 또 다시 재론이 되고 아직도 의문이 남았다니요? 그것이 몇 년 전에 예수 믿은 초신자, 첫신앙의 인물들에게서가 아니라..... 목회자들에게서.
아닙니다. 잘못 들었을 것입니다. 공회 이름이 붙은 교회이며 교역자라면 피치 못할 다른 사정, 말못할 다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다윗이 제사장만 먹는 진설병을 먹었으나 이 명백한 죄가 알고보니 예수님의 증거를 듣고 보니 '구원에 사용된 필수불가결한 양식'이었고, 동시에 영감 인도가 있었습니다. 목회자들에게 '통일찬송가'를 아직 사용하고 있다면, 그들은 지금 다윗과 같이 한 시대가 진동할 구원준비에 한갓되게 순종하는 남다른 하나님의 특명이 있었을 것입니다.
단언코 공회는 '공회찬송가'를 사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공회찬송가만 사용할 시대적 이유가 있습니다. 어느 한 총공회 교회에 이해 못하는 타교단 출신 교인들 몇 명이 오해하고 말고 하는 정도로 그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공회 찬송가 외에 다른 찬송을 불러보니 더 은혜가 되더라는 3살짜리 아이의 간식타령을 하는 할 정도로 그렇게 신앙어린 교역자는 없을 것입니다.
(답변2) 백목사님의 결정, 백목사님 신앙의 요약된 표현입니다.
백영희목사님의 결정이었습니다.
1.백영희목사님의 100% 결정입니다.
①1차답변에서 주장한 이유 때문입니다. 너무 당연한 것 아닙니까?
②여러 사람들의 요청을 검토한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함께 불러오던 찬송가들, 그 찬송가들 중에서 어느 곡들을 선택하느냐는 문제를 두고 서영호목사님이 즐겨부르는 찬송가도 들어 있습니다. 이은숙집사님 가정의 애창 찬송가도 들어있습니다. 오은혜집사님의 간청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종 결정은 백목사님이 했습니다. 서목사님 애창 찬송가가 들어있다고 중간반측에서 공회찬송가를 거부하지 않습니다. 이집사님 가정의 애창 찬송가가 들어있다고 공회 찬송가의 권위가 낮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집사님의 간청 때문에 공회찬송가가 고신측에 가까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고 여러 층 여러 종류 여러 시각 여러 입맛 여러 음감 여러 청감까지를 다 고려하고 마지막 기도하여 결정하였으니 더욱 더 은혜롭고 더욱 더 신앙어린 우리까지도 감사한 것입니다.
서목사님이 자기 애창 찬송가를 백목사님께 추천하면서 돈이 함께 건너가지 않았습니다. 주지도 않을 분이지만 그렇다고 받기를 하실 분입니까? 이집사님 가정의 애창곡을 요청드리면서 인정상 고려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인정이 있는 분입니까? 오집사님의 간청에 고신의 입김이 있었다고 오해해서야 되겠습니까?
여러 신앙 성향들을 다 고려하고 여러 말씀들을 다 상고하며 주님의 뜻을 오랫동안 찾다가 확신하고 마지막 한 곡씩 한 곡씩 다 들어보고 확인하고 최종결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백목사님의 가족 중에 찬송가를 만드는 과정에 일한 분이 계십니다. 그러나 그 분 옆에는 또 다른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지금 부산공회에 있지 않습니다. 통일찬송가를 사용하는 타 공회에 소속한 분입니다. 그런데 왜 부산공회와 목사님의 가족을 거명하고 있습니까? 백목사님께 받은 은혜를 측량할 수 없이 많았던 분 중에서 자기 주관의 오판으로 오해 했던 분이 지나치면서 백목사님을 걸고 넘어진 것입니다. 말하자면 유다도 그런 유의 사람이었다고 하고 싶을 정도겠으나 감정 개입이 들어가겠다 하여 답변 표현을 극히 자제해 보겠습니다. 목사님의 가족 중에는 우리 일반 교역자들이 따라 가지 못할 높은 신앙 차원을 가진 분이 있습니다. 분명히 현 총공회 교역자 중에서는 그만한 신앙이 없다고 할 분이 바로 찬송가를 만들 때 심부름하고 백목사님과 한 자리에 앉아서 목사님이 시키는 일을 수종들었던 10여명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2.공회 찬송은 백목사님 신앙노선을 가장 잘 요약, 표현되는 예입니다. 잘 사용하십시오.
여간 드리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공회 찬송은 완제품이 아닙니다. 그러나 통일찬송가가 명백히 죄가 되고 해가 되며 삐뚤어진 산물이어서 그 통일찬송가를 피해 차선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차선일 수밖에 없다고 차선의 노력을 기울인 것은 아닙니다.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것입니다. 총공회 백목사님의 신앙과 평생의 역량이 집결된 것입니다. 이 정도라면 목숨을 걸고 사랑하고 아껴 볼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는 증거, 그렇다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곳이 이곳입니다.
(답변3) 1987년 4월 7일 새벽예배 설교내용을 깊이 새기셨으면 합니다.
*한국교계의 '찬송가'에 대한 입장을 반대했던 백목사님의 신앙걸음,
그 걸음을 통해 백목사님의 신앙노선 전반에 일치하는 신앙사상을 알
수 있는 설교입니다.
1.한국교계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찬송가에 대하여 성경 새번역 버금가는 정도로 비판했던 것이 백목사님의 신앙입장이었습니다. 찬송가에 대한 백목사님의 신앙 입장이 현재 '공회찬송가'입니다. 1987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2.교계에서 따돌릴까 두려워하던 몇몇 공회교역자들 중에서 엉뚱하게도 그 찬송가는 다른 사람이 배후에서 주도했다는 소문을 내고 그래서 공회찬송가를 사용치 않는다는 논리를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오늘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의 시체를 제자들이 도적질하였고 '부활'이라는 사기극으로 이룬 것이 기독교라고 합니다.
3.현재 사용하는 우리 공회 찬송가가 백목사님이 직접 주관한 것이 아니라는 소문 때문에 '통일찬송가'를 사용한다는 논리는 잘못된 것임을 '문의답변방 질문 00번/ 답변00번'을 통해 밝혔습니다. 이런 시비는 그 시비에 응하는 것이 벌써 절반 손해를 보게 됩니다. 시비가 될 필요도 없는 사안이지만 혹 한 분을 위해서라도, 또는 훗날 더 큰 속화를 막는 '안내판'이라도 되겠다는 뜻에서 다음 설교내용을 발췌 소개합니다.
4.백목사님의 신앙노선에 취사선택할 것이 있더라는 입장 때문에 공회 신앙노선을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버리는 사람은 양심이라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이 주관하지 않았던 찬송'이라며 공회찬송 대신 통일찬송가를 사용한다면, 그는 백목사님이 주관했던 모든 신앙노선을 따르겠다는 사람이라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유독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을 힘써 버리는 분들이 '찬송가'에 대한 자기 변호에서는 이런 '시체 도적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5.다음에 소개하는 글은 설교록에까지 명백하게 기록된 내용입니다. 그리고 수도 없이 반복되었던 내용입니다. 백목사님이 '정치적 발언'으로 설교했다면 백목사님의 모든 흔적을 자신들에게서 지우시고, 그가 영감에 붙들려 자신들을 인도했던 우리 시대의 스승이었다면 회개를 하시라는 권고, 소개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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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1987년 4월 7일 화요일 새벽예배
본문: 계14:9-12
설교: (찬송가에 대한 설교가 전반부였고, 따라서 전반부 설교만 그대로 소개합니다.)
(1.찬송가에 대한 주의깊은 통찰)
그전에는 찬송가에 주기도문 사도신경이 기록돼 있었는데 지금도 찬송가에 있습니까? '새찬송가'에 있어요? 주기도문이 끝에 있습니까, 앞에 있습니까? 찬송가가 너무 가사가 변해가고 또 장수도 변해져 가니까 우리가 익혀놓은 것이 다 헛일이 되고 또 익혀야 되고 익혀야 됩니다.
(①찬송가 변동과 변질의 역사)
우리가 '신편찬송가'를 보다가 '합동찬송가'를 보게 될 때에 이것이 좀 더 구비하고 더 정확한 그런 찬송을 하게 되는가보다 하고 좋아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또 합동찬송가가 없어지고 새찬송가가 나와서 좀 얼떨떨했습니다. 그러나 살펴보면 새찬송가에 가사가 좀 틀린 것이 있어도 그래도 조금 발달적이겠다, 발전적이겠다, 좀 더 정확한 걸 찾아간다... 이렇게 생각했었습니다. 그 뒤에 또 개편찬송가가 또 나왔습니다. 개편찬송가는 보니까 개인의 마음대로 너무 찬송가의 뜻을 자주 변개시켜서 처음에 창작한 사람의 근본대로도 되지 않았고 또 교리와 신조에도 바뀌어진 것이 있었습니다. 그 뒤에는 또 '통일찬송가'가 나왔는데 그 찬송의 느낌이 각각 다르겠지만, 그 통일찬송가는 너무 가사가 현저하게 바꾸어져서 너무 엄청나게 그렇게 바꾸어졌습니다.
(②찬송가의 의미)
찬송가는 사람이 지은 하나의 교리라 신조라 볼 수 있습니다. 자기 깨달은 대로 자기가 믿는 대로 이렇게 해 놨기 때문에 교리라든지 신조라 하는 것은 그것은 성경과 같이 그렇게 바로 되어 있는 것도 있고 잘못돼 있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우리가 정확무오한 성경으로 믿지마는 찬송가는 그것을 정확하다, 틀림이 없다는 무오 라고 우리가 그렇게 믿을 수는 없습니다.
(③공회찬송가 추진 동기)
그렇지마는 그래도 일반 어린 신자들은 찬송가를 성경 다음가는 성경으로 이렇게 보고 있기 때문에 찬송가에 가사가 잘못돼 있으면 이는 어린 교인들로 하여금 잘못된 성경을 보는 거와 같기 때문에 이래서는 안 된다 해서 아무래도 우리가 새로 만들 실력은 없고, 그대신 처음에 은혜 받아서 영감으로 지은 그 사람들이 근본 저술한 그대로 우리가 옮겨 받아서 찬송을 하자, 또 이것이 성경에 틀렸나 맞았나 그것을 봐서 성경대로 해 가지고 이 찬송가를 만들어 가지고 우리가 사용하도록 하자고 결의를 한 것입니다.
세상이 자꾸 변질되어 나가지만, 두 가지입니다. 무엇이든지 보면, 두 가지로만 구별하면 잘 알 수 있는데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 가지고 모든 사색도 연구도 비판도 평가도 이렇게 하는 그런 노선도 있고 또 하나님보다도 먼저 사람이 가깝기 때문에 사람에 대해서 비위를 맞춰야 된다고 해서 사람 중심 사람 위주로 이렇게 모든 것을 사색하기도 하고 연구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고 평가하기도 하는 이런 주장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노선이 됩니다. 길이 되는 것입니다.
(2.찬송가 제작과정)
(①원본과 번역원본에 충실키 위해)
그래서 아무래도 이걸 좀 어떻게 해야겠다고 해서 오래 전부터 이 찬송가를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옛날 그 저자, 또 우리 상고 때부터 내려오는 족보 그런 것을 좀 따져 가지고, 이렇게 자꾸 세상 따라서 이렇게 타락해 가지말고, 은혜 받아서 찬송을 지은 그 당시 그 사람들의 은혜를 그대로 우리가 전달해서 은혜 받고 전달해 가자 하는 그런 뜻에서 위원들이 나서 가지고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그 중에 수고를 제일 많이 한 분은 서영호목사님입니다. 바쁜 데도 1주간 동안을 꼬빡 기우려 모든 찬송가 족보도 참고하고 또 뭐 원어도 참고해 가지고 하는 대로 또 수정을 했습니다. 또 다른 위원들이 이제 목사님들과 또 평신도들 중에 찬송에 많은 관심을 가진 그런 사람들이 모여 가지고 여러 날 동안을 그렇게 합동 연구를 하고 대조를 했습니다.
(②찬송가 곡의 숫자)
찬송가 안에 이렇게 많은 찬송을 뜻 없이 이렇게 그 곡의 수를 많이 넓히면 우리가 다 부르지 못하는 그런 찬송들이 있어 복잡하니까 거기서 예배드리는 찬송으로만 440여곡을 간추렸습니다. 물론 개인이 부르는 거야 얼마든지 자기 개인주의고 또 성경에 위반되지 않는 그런 찬송은 자기가 지어 가지고 얼마든지 부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거는 다 내버려두지만 우리가 표준으로 삼는 예배 찬송으로서는 그렇게 간추려 본 것입니다.
(또 그 순서는,첫째는 하나님의 존영에 대해서 영광에 대해서 하고, 그거 다 하나님의 자체에 대해서 먼저 생각했고 그다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했고 그다음으로는 우리들이 하나님께 대해서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는 데 생각했기 때문에 그 순서가 이렇게 그 바꿔졌습니다. 그런 것을 잘 이해하십시오. *87.5.9.)
(③공명심을 특히, 극히 주의하며)
그러나 이렇게 찬송들을 간추려 만드는 것은 우리가 무슨 별개의 찬송을 하나 만들어 보려는 공명심이나 그런 것은 하나도 아닙니다. 첫째 성경도 속화되어 번역들이 자꾸 이상하게 타락해 나가지 또 찬송도 그리 되어지지. 그런데 이 둘이 함께 보조를 맞춰 내려가니까 어린 교인들이 뭐인지를 모르겠고 또 후배들이 무엇이 무엇인지를 모를 것이기 때문에 간추려 본 것이 440여곡이었습니다.
작업을 할 때에 우리가 이 찬송가를 만드는 것은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과거 우리 선조들이 모두 만들어 놓은 것, 이미 지어 놓은 그 찬송가를 그대로 받아나가려는 것이며, 또 비성경적인 표현이 섞여 있는 것은 제거하고 성경에 맞추려는 것이며, 또 단순하게 부르고 사용하기 위해서 만드는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앞으로, 될 수 있는 대로 세계 교회들이 다 한가지 단일 찬송을 쓰도록 됐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세계 교회가 단합해서 단일 찬송가를 사용하는 것이 좋기는 좋지마는 그보다도 찬송가가 성경대로라야 하기 때문에 성경대로의 찬송가로 이렇게 다 통일됐으면 좋겠다, 그리 될 때에는 우리는 그것을 기쁨으로 맞이해서 사용을 하겠으나, 그때까지는 부득이 간추려 몇 장을 빼 가지고 우리가 예배 찬송으로 불러야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만든다는 것이 아니고 있던 찬송가 중에서 다시 주어 모으고 고쳐서 한다는 우리 의도를 찬송가 서론에 발표를 하고, 좀 더 수정할 것이 있어 가본으로 열 권만 만들어 놨습니다. 이 가본이 완성품이 되면 이 찬송가를 우리 세계 교회들이 불렀으면 좋겠다, 그러나 세계 교회는 찬송에 능한 분들이니까 따라 올 리는 없고 그래도 우리 총공회 산하에 있는 교회만큼이라도 이렇게 이 찬송가를 사용해야 되겠다 싶습니다. 우리 공회에서만 사용하는 찬송가라도 그렇게 완전한 가본을 만들라고 하는데 아직까지도 그 가본도 완성이 덜 됐습니다. 그래도 많은 시간을 걸쳐서 수고한 사람들은 많이 수고를 했습니다.
(3.찬송가 통일에 대한 문제)
(①찬송가에까지 따라 붙은 돈)
물론 교계에서 '통일찬송가'를 만드는 사람들의 정신들도 우리와 같이 어쨌든지 단일 교회이기 때문에 단일 찬송을 부르는 것이 좋다, 단일 대속, 단일 성경, 단일 또 교회, 단일 찬송가 이렇게 되는 것이 좋기 때문에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정신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찬송가를 그렇게 하게 되면 찬송가를 판매하는 판권이라는 돈이 왔다 가고, 이 돈은 참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는 것을 찬송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 분들이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과거로 보면 돈이 여기 붙었기 때문에 나중에 돈벌이가 되겠다 해서 이 찬송가를 통일시키고 다른 찬송가는 다 없애버리자 하는 것입니다.
찬송가를 만드는 일에 돈 문제가 생겨서 우리는 판권을 줄 수 없다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러면 판권을 우리에게 팔면 우리가 얼마를 주고 살 것이고 또 이 찬송가 만들어 가지고 이익이 나면 그때 이익 배당하겠다 이렇게 서로 의논이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 다른 나라들은 모르지만 우리나라 전국 교회가 찬송가를 전부 돈을 주고 사 가지고 전부 이렇게 해서 이제 통일찬송가를 만들었습니다.
(②유행을 좋아하는 교계의 타락상)
또 만들어진 통일찬송가는 그 가사가 엄청나게 틀리니까 그걸 잘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뭐 아무나 따나 사니까 뭐 찬송가야 성경도 아닌데 합니다. 이래서 찬송가가 제2의 성경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상관이 없고 또 보수성이 적고 시대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하자 하는 시대를 따르는 사람, 무엇이든 보수성이 없는 사람, 또 옳고 그른 진가를 구별하지 안하려는 사람, 또 잘못된 사상이 하나 들어오면 그것 때문에 자기가 현실이라는 실상을 당했을 때 그 사상이 자기에게 큰 미혹이 됐다는 그런 것을 생각해서 신앙생활을 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아닌 사람들은, 그만 될 수 있는 대로 이렇게 자꾸 유행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좀 어폐가 있을는지 모르지만 실상은 지금 이 찬송가가 유행입니다. 유행이라 해도 누가 정죄를 못 할 만치 뚜렷이 나타나 있습니다. 유행이라, 속화라 이렇게 할 수 있을 만치 이렇게 돼 나가고 있습니다.
(4.공회찬송가 출간)
(①찬송가 출간자유가 없는 교계)
새찬송가를 사용하던 교단이 통일찬송가에서 이권배당도 받았는데, 만들어 놓고도 이 통일찬송이 너무 허무하다 해서 따로 몇가지를 더 넣자고 했다가 시비가 나고 중지를 당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런데 우리도 이렇게 사백 몇 곡을 해 가지고 찬송가를 만들어 쓰려고 하면 시비가 들어올 것입니다. ‘우리가 이 찬송가 지은 사람에게 돈을 주고 사 왔는데 왜 도용을 하느냐?' 시비가 나면 저작법에 걸립답니다. 한 일억원 정도면 우리가 하겠는데 돈이 그렇게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만일 허락하신다면 언젠가 출판할 수 있는 자유의 때가 오지 않겠나? 또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힘을 쓰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좋은 찬송가를 좀 힘있는 누구를, 실력 있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에게 줘서라도 할 수도 있지 않겠나? 그래, 그때까지 기다리자. 그러나 우리대로는 좀 수정할 대로 수정해서 그래도 좀 바르다 한 것을 이렇게 만들어서 보장을 해 놓자 하는 그 이념으로 낙망하지 않고 만들고 있습니다.
(②교계와 돈시비를 피하고 출간되는 공회찬송가)
언제 우리가 문공부에까지 허락을 맡아 가지고 그럴지도 모르겠고, 시간만 자꾸 흘러가도 안되겠다 하여, 찬송가 몇 장만을 더 간추려 뽑아 가지고 몇 장만을 인쇄해서 사용하자고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100곡으로 생각을 했으나 은혜 받는 찬송들이 너무 많이 없어지겠고, 하다 하다 보니까 192곡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서 머리말도 없고 다른 아무것도 없고 그저 뽑아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은 하지만 그것을 팔지 않고 교인들에게만 한 권씩 나누게 되면 아무 법적 문제도 없습니다. 한 권에 4백원 정도로 제작비가 들 것입니다. 그래서 요번 주일 안으로 나옵니다.
지금도 우리는 '새찬송가'를 제일 좋아하는데, 통일찬송가가 나온 뒤 새찬송가는 다 회수가 되었으나 아직까지 남아 있는 새찬송가를 살 수는 있으나 그것이 내막으로는 불법으로 인쇄해서 나오는 것일 수 있기 때문에 뒤에 말썽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새찬송가에서 몇곡을 뽑아서 우리 교단 교인끼리 나누어보는 것이야 시비하겠나? 만일 시비가 나면 그때 하는 대로 해 보겠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