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질문) 백목사님이 인도하신 찬양예배 질문 4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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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질문) 백목사님이 인도하신 찬양예배 질문 4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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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질문) 백목사님이 인도하신 찬양예배 질문 4527

84년도에 서부교회에서도 찬양예배가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찬양예배'하면 우리는 드럼과 기타로 치장한 찬양예배를 떠올립니다.
그래서 찬양예배하면 속화된 예배를 떠올리게 됩니다.

mp3가 없어서 들어보지는 못했는데, 아
마 경건하고 지금 말하는 속화된 찬양예배와는 다를 것 같습니다.

백목사님이 찬양예배를 종종 하셨는지, 찬양예배의 역사와 발전이 궁금합니다.


--------------------------------------------------------------------오늘 밤에는 광고한 대로, 늘 우리가 예배 드리는 것은 찬송, 기도. 설교 그렇게 세 순서를 다 합해 가지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보통 예배입니다. 오늘 밤에 찬양 예배로 드리기로 그렇게 작정을 하고 광고한 것은 오늘 밤 예배는 특히 찬송하는 그 시간을 많이 잡아서 평소 때보다 찬송을 더 많이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 은혜를 입으려 하는 것입니다.

(8402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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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수십 년만에 한번, 찬양예배를 드렸던 바로 그 예배입니다.

1.고신에서 제명된 직후 1961년까지는 학생회 등 일반 교회와 비슷했습니다.

고신을 소속 교단으로 가지고 있는 이상,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될 수 있으면 마찰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생회도 있었고 남녀성인 찬양대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 교계의 학생회나 찬양대는 요즘처럼 탈선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서부교회는 다른 곳보다 엄했기 때문에 더 건전했으나, 근본적으로 남녀 청년들이 함께 모여 자율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그들의 신앙정도와 그들의 심리 통제력으로 본다면 단점이 장점보다 많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아예 폐지시켜 버렸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찬양대나 학생회 자체를 죄라고 보거나 잘못된 제도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 운용을 하다보면 특수한 시기에 한번씩 필요할 수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본다면 교회 내에서 담임목회자로부터 분리되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이 있다는 것은 교회론적으로 볼 때 분명히 문제가 있고 더구나 그 조직이 청년 남녀라는 점에서 아주 위험스럽다고 하겠습니다.


2.서부교회는 1961년 이래로, 완전히 산속으로 들어간다고 표현할 정도가 됩니다.

1961년부터 서부교회를 출석하는 교인들은 교회 내에는 찬양대나 학생회가 있으면 죄가 된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주일예배 밤예배 새벽예배는 일반 교회의 대예배처럼 상대하고 그 외의 교회 거의 모든 행사나 활동은 없다고 보시는 편이 맞을 정도였습니다. 말하자면 초대교회 그대로의 모습이었습니다. 예배 외의 시간에 간부회 재직회 당회 청년회 회장단모임........ 심지어 반사 모임조차 없게 됩니다. 교회에 회의와 모임이 없고 예배만 있는데도 서부교회는 그때부터 성장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합니다.

초대교회가 성령에 붙들려 모이면 예배보고, 예배가 마치면 예배 때 배운 말씀대로 살고, 만나는 대로 전도하는 일만 전념했으며 그 외 세상적 조직이나 제도는 너무 찾아볼 수 없게 됩니다.


3.그러나 1979년 이후 서부교회가 주일학교 때문에 유명하게 되자

한국의 거의 모든 교단들이 서부교회를 방문하게 되는데 방문하는 분들마다 왜 이 초대형 교회에 찬양대가 없고 찬양예배라는 것이 없느냐고 계속 질문을 하게 됩니다. 심지어 찬양대도 없는 것을 보니까 무슨 사이비가 아니냐는 정도로까지 보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이미 20여년 찬양대 없이 교회를 조용하게 성령에 붙들려 말씀으로만 살던 때가 좋았는데 외부로 알려지고 유명하게 되자 이제는 외부 교단을 향한 영향이 어떻게 되는지도 고려해야 하는 고통스런 때가 된 것입니다. 서부교회와 그 주일학교 그리고 그 주도하는 백목사님과 그 교훈까지 한국교회에 엄청난 폭발력으로 전해지고 있는 때에 찬양대가 없는 문제로 한국교계에 논란거리를 주는 것이 득과 실에서 어떤 면이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 결론을 내린 것이 1984년도로 기억되는데 주일학교 여학생들만의 찬양대로 찬양대를 조직하되 예배 때 예배 진행의 특별 행사 발표 시간을 갖지 않고 묵도 때와 송영 때 피아노 반주처럼 자연스럽게 찬양하는 최소한 운영으로 찬양대를 다시 운용하게 됩니다.

단순히 남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신앙의 초기에 조심과 성장을 위해 특별하게 자제했던 것을 이제는 온전한 수준에서 신앙에 필요한 모든 면을 다 포함하고 고려한 조처였습니다. 이미 20여년 조심시켜 온 교회 분위기를 볼 때 이제는 서부교회의 신앙 내성은 최소한의 찬양대 운영을 감당할 정도가 되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물론 그 다음 세대에 또 다시 이전처럼 탈선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후 시대가 맡을 책임이고 백목사님으로서는 자기 맡은 시대의 최종 조처로 그렇게 하게 됩니다.


4.찬양대의 연장선에서 찬양예배를 한번 했던 것이 역시 1984년이었습니다.

이미 일반교회는 예배라 해도 전해야 할 말씀이 없어 기갈이 만연했고 그 해결책을 세상식 감정자극 찬양예배로 때우고 있었는데, 꼭 찬양예배를 해야 한다면 그런 세상 노래방식이 아니라 기독교의 참 찬양예배가 무엇인지 한국교회에 한번 보여주고 또 외부 교계와의 접촉으로 일부 혼동을 가지고 있던 서부교회인들에게 찬양예배의 진수를 보여주려고 찬양예배를 한번 하게 됩니다.

일반 교회로 말하면 그런 식 찬양예배라면 차라리 하지 않겠다고 할 정도일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교회가 찬양예배를 할려면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는 정도로 보여준 예배였습니다. 그 한번이 전부였습니다.


5.아이들 보는 데는 찬물도 마시지 못한다고

서부교회가 주일학생 여학생으로만 찬양대를 시작했다고 하니까 지교회 멀리서는 벌써 노래방에 밤무대를 만들 기세로 물리 끓다 못해 뚜껑을 열고 넘치고 있었습니다. 찬양예배를 한번 했다고 하니까 이제는 찬양예배라는 이름은 어떤 종류든지 다 할 수 있고 좋은 것으로 여기는 정도로 나간 교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회 노선의 중심을 아는 이들은 그때 그 한번 찬양예배 이후 다시 20년이 지나가는 지금까지 찬양예배를 한번도 하지 않았고 그 반대에 있는 이들은 그후 일반 다른 진영과 다를 바 없는 오늘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참고로 답변자도 이제 다시 20년이 지난 오늘, 언제 한번 찬양예배를 하려고 생각하지만 한번 시간을 낸다는 것이 벌써 수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시간마다 전해야 할 시급한 말씀이 있어 찬양예배로 대신할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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