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질문) 무신론이 우월하다고 말하는 교수님에게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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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질문) 무신론이 우월하다고 말하는 교수님에게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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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질문) 무신론이 우월하다고 말하는 교수님에게 1937

제가 학교에서 '서구문화와 기독교'라는 수업을 듣거든요. 교수님이 철학 전공하신 분이구요. 이번에 독후감 레포트를 내라고 하시는데 읽어야 하는 책이 '지성인을 위한 무신론'이라고 다니엘 하버라는 사람이 쓴 책이예요. 교수님은 철저한 무신론자구요. 뭐 꼭 옳다고 우기는 건 아니지만 이 책에서도 무신론이 훨씬 우월하다고 주장하고 있네요.

제 1원인설, 존재론적 증명과 같은 증명의 불합리성을 하나하나 따지면서, 스파르타 능력제와 바로크 군주제(가 뭔지 자세히는 잘 모르겠지만)를 들면서 무신론은 스파르타 능력제에, 유신론은 바로크 군주제에 속하므로 유신론이 더 열등하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다 읽어보진 않았는데 앞으로도 저것들과 비슷한 논제들로 무신론을 계속 주장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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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쓰고 싶은 독후감은 어떻게 하면 교수님으로 하여금 학문적으로만 신을 증명해 내려고 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걸 알 수 있게 할까 하는 거예요. 이제 겨우 2학년이라 아는 것도 없고..철학 전공도 아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접근하자니 그쪽으로 너무 무지하고 차라리 처음부터 이 수업 듣지를 말걸 그랬다 생각도 하고 있어요.

무신론을 반박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나 논제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좋겠구요. 솔직히 이런 문제를 잘 알지 못하면서 논의하는 것 자체가 죄가 되는 건 아닌지 생각도 드네요. 아니면 차라리 지금 드는 생각처럼..나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단순히 믿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심을 확실히 체험했기 때문에 이런 논의 자체는 말도 안된다~ 교수님도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 기도로 한 번 물어보세요 그래 버릴까요. 차라리 허접한 논리로 반박하는 것보단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요...그죠?

암튼 최대한 멋진 독후감으로 교수님한테 한방 먹이는 게 지금 목표입니다!

그럼 늘 건강 조심하시구요~ 답변 기다리겠습니닷~
좋은 하루 되세요~^^


(답변) 하나님을 보지 못했으니 무신론을 주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못봤으면 모른다고 해야

1.보지 못한 사람과 본 사람의 논쟁은, 본 사람이 이기거나 아니면 비겨야 합니다.

①못 본 것과 없다는 것은 전혀 별개 문제입니다.

어려운 것은 쉽게 풀고 쉬운 것은 어렵게 풀어야 합니다. 철학과 교수들을 비롯하여 무릇 교수라는 직업은 쉬운 것을 어렵게 표현해야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남들이 모르는 것,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심오한 것을 자기만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입니다.' 하면 될 것을 다음과 같이 어렵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불합리 할 수 있다고 볼 수만은 없는데 그렇다고 그런 말을 그렇게 섣불리 주장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상대할 때는 가장 쉬운 논리와 표현으로 상대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지 못한 사람이 보지 못했으므로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문장으로서도 성립이 될 수 없습니다. 본 사람은 잘못 보았을 수도 있고 바로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본 사람이 봤다고 하는 것은 사실일 수도 있고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못 봤다고 없다고 한다면, 자기를 보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자기라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아야 되는 결론으로 나갑니다.


②보지 못해도 본 것처럼 단정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리의 경우입니다.

물질의 존재 여부는 보지 못한 사람도 말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구보다 10배 큰 짐승을 봤다고 한다면, 그 사람과 함께 있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해도 잘못 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리라는 것은 물질계 어디에서라도 다 적용되는 원리이기 때문에 물리의 법칙을 벗어나는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물리를 잘 아는 사람은 보지 않고도 상대방이 본 것을 잘못 보았다고 할 수도 있고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절대가 아닙니다. 물리는 옳은 것이지만 물리를 바로 찾아낸 경우는 아직까지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리의 범위가 너무 넓기 때문에 이런 시대에는 물리의 이런 공식으로 모든 물질에 해당이 된다고 보았는데 그후 시대가 발전되고 보니까 그 공식은 어느 한 범위에서만 적용되는 공식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③'신'이라는 존재는 인간과 그 존재 형식이 전혀 다를 때 붙이는 이름입니다.

지금 그 교수가 말하는 신이라는 존재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그런 인간적인 신이 아니라 교회가 말하는 개념의 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이라는 존재가 인간이 파악하고 가지고 놀 수 있는 정도라면 이미 이야기거리 신이기 때문에 이런 논쟁에서는 제외될 것이고, 사람을 만들고 사람을 초월하고 이 세상을 움직이는 절대자의 개념을 '신'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존재는 없다는 것이 '무신론'입니다.

만일 신이라는 개념을 이런 절대자의 개념이라고 한다면 무신론에 대하여 몇 가지 유치원 수준에서 할 말이 있고, 만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간적인 신의 수준을 가지고 말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라는 존재와는 상관이 없으니까 그런 무신론이라면 개입할 필요도 없습니다. 호랑이가 담배를 물었느냐 말았느냐는 것을 가지고 진위 논쟁을 벌이려면 도교와 과학자들이 싸울 일이지 믿는 우리가 상관할 바는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무신론이 만일 절대자로서의 신을 부인한다면, 그는 그 말을 할 자격도 실력도 입장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을 물질 세계의 한 존재라고 한다면 물리의 법칙이나 자기가 살아온 여러 경험과 상황을 가지고 일단 말이라도 해 볼 수 있다고 하겠지만, 인간을 초월한 절대자라면 인간이 인간 수준을 넘어서는 다른 차원을 논쟁하거나 언급한다는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우리는 우리 인간의 수준에서 하나님을 논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는 보여주셨고 알려주셨기 때문에 그래서 알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알고 보게 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신론자의 무신론 주장이 하나님을 포함하는 절대자에 대한 언급이라면, 무신론자는 발언할 필요도 이유도 자격도 없는 것입니다.


④제 마음을 못 본 사람은, 마음도 없다고 해야 하는가요?

아직까지 제 마음을 본 사람은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제가 보지 못했으니 없다고 증명하려면 제 마음도 보지 못했으므로 없다고 해야할 것입니다. 보지는 못해도 자기 마음은 자기가 느낄 수 있으니 있다고 말할 수는 있으나 남의 마음은 그 사람이 느끼지도 못하는데 말하는지 아닌지 어찌 아는가요? 또는 나의 마음이 존재하는 형식과 다른 사람의 마음이 존재하는 형식이 같다고 단정할 수는 있는가요?

인간이 제 마음이 있다는 것도 증명하지 못하면서, 증명하지 못하면 없는 것으로 논리를 세운다면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이 믿어지게 해서 하나님을 믿게 되고 알게 된 사람은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도록 하고 하나님을 모르도록 해서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것입니다. 모르면 모르니까 모른다고 해야 양심일 것인데, 모른다고 해서 모두가 다 모른다고 단정해버린다면 교수적 양심도 없는 사람입니다.


⑤대학과 학문이라는 것은 원래, 다양성을 인정하고, 나와 다른 것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야 미친놈들이니까 예수님만 믿어야 천국간다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미쳤으니까.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타 종교는 전부 귀신이 만들었고 그래서 다른 종교를 믿으면 다 지옥을 간다고 앞뒤 막힌 소리를 하는데, 그 이유는 정통 보수 기독교는 '대학'의 '학문'이라는 개념을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질문자를 가르치는 교수는 '대학' 안에서 '학문'의 길을 안내하는 교수입니다. 그 교수라는 직업은 다양한 의견을 소개하고 나와 다른 생각을 존중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university'라는 단어가 여러 많은 것을 한 자리에 모아 놓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대학교에는 '학과'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이것만 옳다고 하나만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2년제 전문대학은 여러 가지를 가르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만을 가르치기 때문에 '과'라고 이름을 붙이지 '학과'라고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대학은 '영문학과'이고 2년제 대학은 전문학교이므로 '영어과'입니다.

학문을 배우는 학생은 '무신론' 또는 '유신론' 한 가지를 열심히 주장하고 우겨대고 근거를 찾아야 학생입니다. 그러나 학문의 길로 인도하는 교수는 네 말에도 일리가 있고 저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유도를 하고 각자가 주장하는 논리에 가능성을 찾아주고 밀어주는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교수는 무신론은 이런 면에서 무신론이 옳다고 주장을 하고, 유신론은 이런 시각에서 유신론을 주장한다고 해야 교수요 학자입니다. 만일 교수가 학생에게 한 가지 시각을 주입하고 반복하려고 한다면 그는 고등학교 또는 그 이하의 교사로 스스로 내려 앉는 일입니다. 신성한 대학의 학문 세계를 초중고교 수준의 유치한 학습 수준으로 비하 시킨 아주 나쁜 인간입니다.

무신론을 주장하는 교수가, 그렇다면 기독교는 왜 배타적이냐고 한다면? 그래서 진짜 기독교는 대학교나 교수나 학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 백영희신앙노선처럼. 지금 전국에 50개가 넘는 신학대학교 또는 대학원이 있습니다. 그들은 대학교나 학문이나 교수의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은 기독교를 믿고 기독교를 중심으로 주장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무신론을 주장하거나 불교를 주장해도 그것을 무조건 반대하거나 부인하지는 않겠다는 자세를 가지고 그런 이름들을 붙이고 있습니다.

이곳은, 타 종교나 무신론을 아주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신학을 하지 않고 신앙을 추구합니다. 대학교나 학문의 이름을 붙이는 것을 아주 몹쓸 타락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무신론에 대한 일반 상식 차원에서 잠깐 말씀드렸습니다.

좋기는 무신론자와는 논쟁을 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무신론자에게는 전도를 하는 것이 옳습니다. 남대문을 가보지 않은 옛날 시골 사람들이 남대문도 문이니까 문턱이 있을 것이다, 남대문은 문인데도 문턱이 없더라, 이런 논쟁과 같습니다. 있더라 없더라 말로 할 것이 아니고, 다음에 시간 나거든 한번 들러 보라고 말해야 옳습니다. 그렇게 한 두 번 말한 다음에는 얼른 일을 하러 가야 합니다.

옛날 시골 이야기를 잠깐 소개한 것입니다. 교수의 무신론 강의를 한번 속 시원하게 꺾어보겠다는 마음은 좋습니다만, 그것이 다시는 빠져 나올 수 없는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참 주장하다 보면 자기 속에 무신론이 절반 쯤 배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때는 돌이킬 수 없는 침륜에 빠지게 됩니다. 자기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부인되지는 않는데, 밖에서 줏어들은 이야기는 전부가 반대되는 주장이기 때문에 늘 자기 속에는 싸움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짓을 하다가 세월만 보내게 됩니다.

공산주의가 옳으냐 자본주의가 옳으냐 이것으로 논쟁만 하다가 세월을 보낸 나라들은 중진국이나 후진국으로 내려 앉았습니다. 따질 것도 없이 그만 권총을 들고 공산주의 주장하는 사람들은 몽땅 죽여버리고 오로지 자본주의로만 밀고 나온 나라들은 마구 경제가 부흥이 되어 부자가 되었고 공산주의만 그렇게 주장한 나라는 완전히 거지가 되었고, 어느 것이 옳으냐고 논쟁만 하던 나라는 죽도 밥도 아닌 신세가 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철학이라는 과목을 들은 것이 실수입니다. 철학이라는 것이 그 간판이 멋지기 때문에 흔히들 쉽게 생각하고, 심지어 신학교들이 철학을 신학 배우는데 최고 좋은 학문이라고 하는데, 오늘 기독교가 인간 사상으로 완전히 오염되어 더럽혀진 원인이 바로 철학이 신학과 비슷한 줄로 알고 심지어 철학이 신학의 기본 필수 교양과목인 줄 아는 한심한 생각 때문입니다.

철학은 인간 머리에서 나온 짐작으로 상상과 공상을 묘한 말로 뒤섞어놓은 것입니다. 신학은 하나님께서 알려준 것을 받아 적고 따라가는 길입니다. 그 출발과 진행과 결과가 완전히 반대입니다.


3.아직 깨끗한 신앙의 좋은 시기이므로, 깨끗한 믿음의 디모데에게 바울을 통해 주신 말씀을 소개합니다.


딤전6:20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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