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질문) 학생이 선생에게 두둘겨 맞았다고 합니다. 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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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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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42
11. (질문) 학생이 선생에게 두둘겨 맞았다고 합니다. 2902
남의 일이지만, 자연계시로 잠깐 참고하려고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어머니가 일반 교회를 다니는 집사님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 집사님한테 고1짜리 착하고, 시골명문학교에서 전교에서 2등할 정도의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있다는데, 지각을 두 번 했다고 선생한테 두둘겨 맞았다고 합니다.
들은바에 의하면 손등을 봉걸레 자루로 몇십대를 치고, 발등도 그렇게 치고, 아파서 고개 숙였다고 해서 목을 쳤다고 합니다.
결과는, 손등과 발등에 금이 가서, 오른손을 기부스하고 못쓰는 상태이며, 발에 피가 차서, 피를 빼고 또 빼고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이번일에 책임이 전적 선생에게 있다는 중요한 증거는
1. 그 선생은 전과자입니다. 그 전에도 학생을 구타해서 잠깐 감옥인지 구치소인데 들어 간적이 있었다고 하고,
2. 학생 구타로 시말서를 여러번 썼다고 하고,
3. 그 일로 인해서 학교 교장, 교감 선생들이 집에 와서 싹싹 빌고 있다고 합니다.
들어본 바로는 학교 선생이 싸이코입니다. 어딜 가든 미친 사람은 꼭 있습니다.
남의 일이라도 이렇게 분이 나는데, 내 일이라면 어떻겠습니까?
그 맞은 학생의 누나 되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길래, 나같으면 변호사 선임해서 신고하겠다고 했습니다. 맞은 학생의 집이 재력이 어느 정도는 된다고 들었습니다. 잘은 몰라도.
목사님, 목사님 자녀나 교회 지도 학생이 이렇게 맞았다면, 어떻게 처리하시겠습니까? 만약 내 일이라면 어떻게 처리해야 신앙적인 처리입니까?
언론에 공개하고, 경찰에 신고해서, 징역이라도 살게 해야 신앙적인 처리 아닌가요?
(답변) 답변할 내용이 너무 많아서 답변을 적다가 도중에 포기했습니다.
1.믿는 사람의 원칙은 성경의 신앙원칙이 있고, 세상만물의 자연이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상대로 말씀을 가지고 자기 속에서 회개하고 기도하여 해결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세상 자연 이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키라고 내놓으셨는데 이를 잘못 맞추어서 일이 생긴 것은 그 자연 이치를 바로 맞추어야 해결이 됩니다.
하나님만 붙들고 해결하라고 하는 일인지, 자연이치를 주로 상대해서 해결해야 할 일인지, 두 가지를 함께 붙들고 해결해야 할 일인지를 먼저 구별해야 합니다. 가장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일을 당한 본인 뿐입니다. 이곳 답변자와 같은 사람은 일반적인 경우를 두고는 말할 수 있고 또 이번 사건의 경우도 짐작하는 바는 있으나, 이런 의견들은 말 그대로 참고만 하시고, 최종 결정은 본인이 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 맞은 학생이 독한 교사를 만나서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혹 그 학생이 공부한다고 하나님을 너무 멀리하거나 연애를 하거나 해서 하나님께 크게 한번 맞을 일을 했다면, 회개하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만한 나이에 특별히 그렇게 잘못한 것이 없고 또 그럴 정도의 신앙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는 세상 자연 이치에 따라 해결할 일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독감이 왔다면, 만일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이 있어 닥친 독감은 본인이 무엇인가 혼자 속으로 짚히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회개하면 씻은 듯이 그냥 해결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회개하고 기도해도 낫지 않으면, 건강 관리를 잘못 해서 닥친 육체의 병일 수도 있습니다. 육체의 고장이라는 말인데, 고장이라는 것은 사용 관리 잘못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연 건강법을 지키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자연이치를 가지고 병을 주셨으니까 건강법을 지키고 또 건강법에 의하여 치료를 하면 될 것입니다.
몸을 함부로 사용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독감을 주셨다면 몸을 함부로 사용한 것을 회개하고 그 회개하는 방법으로는 몸을 쉬게 하는 것이 바로 회개가 될 것입니다. 자연 이치에는 잘못이 없으나 하나님 앞에 매맞을 일을 한 것이 기억난다면, 회개하므로 그냥 낫게 될 것입니다.
2.고등학생 아들이 교사에게 맞아서 부상을 당했다면
요즘 아이들 중에는 어른을 무시하고 아무에게나 대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아이들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성향이 그럴 수 있습니다. 한번 혼이 나야 할 나쁜 품행의 아이인데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고쳐주시려고 교사를 동원했는지 여부를 우선 신중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말이라는 것은 어떤 경우라도 양측 말을 다 들어봐야 압니다. 그 교사가 아무리 평소 못된 교사라 해도 하필이면 그 아이에게 손을 댔을 때만큼은 그 아이가 맞을 짓을 했기 때문일 경우도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과 달리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폭이 상상도 못할 만큼 넓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인간으로까지 오셔셔 체휼로 다 겪었는데, 우리가 하물며 같은 인간 수준에서 살피는 것이 모자란다면 남을 위해 희생을 한다는 것은 빈말이 될 것입니다.
폭행한 교사를 위로하고 그쪽의 입장을 자유스런 분위기에서 충분히 경청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 앞에 믿는 사람으로서도 옳은 자세이고, 또 세상 살아가는 면에서도 큰 지혜입니다. 충분히 들어보시고 만일 맞을 짓을 했다면 때린 교사에게 너무 잘 때려 주셔서 고맙다고 진정으로 감사하고 손을 붙들고 인사를 해야 합니다.
그 아이가 까불다가 한번 그렇게 맞아봐야 다음에는 죽을 자리 살 자리를 찾아가며 눈치를 보게 되지, 어디든지 까불고 그러다가 맞으면 울고 부모에게 호소하고 부모가 나서서 마구 상대방을 윽박질러서 그 아이 기를 살려놓으면, 언젠가 한번 부모가 해결해 줄 수 없는 깡패를 만나거나 아니면 어느 구석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습니다. 넓은 면으로 상대방의 입장까지 충분히 잘 경청하셨으면 합니다.
3.만일, 학생이 맞을 짓을 분명하게 했다면?
경험상 50-70%는 맞을 짓을 해서 맞습니다. 그렇다면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 교사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또 그 교사에게 잘했다고 격려를 해 주셔야 합니다. 부모가 제 손으로 차마 때리지 못하던 것을 교사가 교직을 걸고 그 아이 하나를 바른 사람으로 만드려고 자기 가정과 자기 인생을 걸고 희생을 했는데, 표창장은 주지 못해도 인사는 아주 깍듯하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어지간히 똑똑하고 민첩해도 이런 일을 당하고 보면, 과연 끝까지 모든 상황을 다 정확하게 파악을 해도 그 아이만 잘못한 것이냐, 아니면 그 교사만 잘못한 것이냐, 아니면 몇 대 몇 정도로 상호 과실이 있느냐는 것은 여간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애매하면 상대방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일단 인사를 잘 해 놓는 것이 성경적이고 또 세상 사리적입니다.
그렇다면, 형사처벌은? 그것은 며칠 생각을 해보고 알아본 다음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진상 파악은 빨리 해보고 또 가해측인 교사의 입장을 충분히 들어보되, 최종 판단은 신중하게 또 신중하게 생각해서 최종적으로 결론이 나면 그때 처리하면 됩니다.
4.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과 교사를 형사처벌하는 문제는 별개입니다.
내 아이가 하나님 앞에 잘못해서 맞을 죄가 있었다면, 때린 교사는 무조건 용서해야 하는가? 그것은 따로 계산할 문제입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할 일 때문에 맞았다면 그 회개는 그 회개대로 잘 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 띠린 교사를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겠는가 하는 것은 하나님께 다시 여쭈어봐야 합니다.
이제 말씀하신 것처럼 폭행의 전력이 있고 또 부모가 짐작하기에도 폭행근성이 있는 교사라고 한다면, 이번 건으로 인하여 그 교사가 함부로 손을 대는 것이 아니라는 경험을 심어준다면 그 교사를 또한 사람을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나와 상관없는 사람을 사람 만드는 일에는 내가 너무 설쳐서는 안되겠지만 이번 건처럼 내가 피해자일 때는 합의과정에서 충분히 상대방이 교훈을 얻도록 이쪽에서 조처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 교사의 어떠함은 전혀 상관말고 내 아이의 회개만이 문제라고 생각되는 사건이면 회개만 하면 됩니다. 아이의 매는 하나님 앞에 맞을 짓을 했으나 그 교사에 대한 처리는 냉정하게 신앙양심으로 생각할 때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된다면, 다음에 이런 일이 없는 조건에서 교사처벌을 유보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사처벌의 유보는 자칫 그 교사로 하여금 학생들을 마구 패다가 실수를 하면 또 사과하고 대충 마무리 되더라는 식으로 되지 않도록 지혜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100% 하나님 앞에 자기 회개할 문제라고 단정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교사에게 형사고발은 약간 미루어 놓을 수 있을 것이나 보상은 요구를 하는 것이 정상이겠지요? 요즘 교사는 노동자들입니다. 학원 강사나 학교 교사나 교육법상 규정만 다르지 사회적으로는 전혀 다른 것이 없는 시대입니다.
5.만일, 하나님 앞에 특별히 회개할 문제가 아니고, 평범한 세상사라고 생각된다면
모든 일을 총괄적으로 계산해도 이 일은 꼭 세상 일반 처리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하신다면, 이곳에서 교인들에게 보통 지도하는 방향이 있지만 그것을 설명하기에는 너무도 시간과 답변 분량이 많아지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개인 메일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질문하시면 안내해 드릴 수는 있지만, 이곳 답변자의 주 업무는 이 홈의 신앙연구이기 때문에 목회하는 교인들의 일이 아니면 세상일에는 최대한 멀리하고 있습니다.
언론으로 떠들고 나서는 일이나 변호사 선임으로 형사고발을 하는 것이 대개 일반 피해자들이 선호하는 해결방식인데, 일의 방향을 잘못 잡으며 나중에 생각하지도 못한 사안들이 돌출되어 본인들이 훗날 후회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무작정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보다, 주변에 교육계의 속성과 폭행이라는 형사사건 그리고 손해배상에 관련된 민사건의 실무와 마지막으로 병원의 진료 내면을 함께 파악할 수 있는 분을 찾으셨으면 합니다.
이런 면의 속성을 조금 파악하는 분이 계신다면, 경비면으로도 또 실제 효과적으로도 또 기타 모든 면으로 전혀 다른 차원의 해결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금방 말씀드린 내용에 대하여 심도있게 답변을 해 드리지 못해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답변자가 가진 시간에 한계가 있음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재질문) 참고로 몇 가지만 더 적어보겠습니다.
사실 맞은 학생의 누나 되는 사람하고 한번 정도 인사를 한적이 있습니다.
제가 해결해 줄 수도 없고, 제 일도 아니고 해서, 책임은 질 수 없고, 나 같으면 변호사 선임하겠다고 한칸 걸러서 이야기를 전하긴 했습니다.
그 맞은 학생이 교회를 다니는지, 안다니는지도 모르겠고, 일방적으로 구타 당한쪽의 말만 들어본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제 들어본 바에 따른 판단에는 무조건 선생 잘못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제가 신앙에 관해서 질문했으나, 오히려 신앙적인 판단이 아닌듯 합니다. 학생의 신앙상태를 확인해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정황 증거만 본다면,
맞은 학생을 병원에 데리고 간 사람은 그 학교 컴퓨터 선생이라고 합니다. 옆에서 보니까 너무 심하게 구타하는 것 같아, 그 때린 담인 선생에게 아이좀 제발 병원에 보내달라고 같은 편을 들어야 하는 컴퓨터 선생이 사정해서, 겨우 병원에 보냈는데, 발에 피가 고여 빼고 또 빼도 고인다고 합니다.
학교에 대부분의 선생들이, 교무실에서 구타당하는 것을 보았는데, 때린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오히려 학생편을 들고 있습니다.
단, 교감과 교장은 정년을 무사히 퇴직하려고 집에 와서 싹싹빌고, 눈물로 호소하면서, 제발 봐달라고 빌고 있다고 합니다.
때린 선생은 오히려 때려 놓고, 맞은 학생을 조퇴시킨뒤, 자기 반 학생들의 눈을 감게 하고, 누가 몇대 맞았다고 집에 가서 이르냐고, 호통을 쳤다고 합니다.
이런 선생은 형사처벌이라도 한번 시켜야, 다시 이런 일이 없지 않을까요? 물론,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런 사건을 접했을 때, 분한 마음이 든다는 것 자체가, 제 개인의 신앙 수준의 낮음을 보여주는 것이겠습니다.
그러나, 학생시절 싸이코 선생들을 몇몇 봐서, 스트레스 해소할겸, 때리는 것 재미삼는 그런 못된 선생들이 기억나서, 그냥 그런 선생은 사형이라도 시켜야 속이 시원할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원래 세상이 이러하니, 조용히 주님과 동행하는 것에나 더 신경써야 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왜 이런 세상을 주셨고, 왜 이런 세상에서 살게 하셨는가?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는 말씀을 한번 더 생각해 봅니다
(방문자) 억지해석이 아닌지 걱정됩니다.
자연계시라고 억지로 잘못 풀이하여 심판 때 벌 받을 말이 아닌지 걱정됩니다만..
한국에 샤머니즘적인 요소가 기독교와 연관이 되어서
한국에는 사이비 같은 교회가 너무나 많았던 것 같습니다.
목사님들을 너무 우상시 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84년도8월 집회 설교록에 주님대신목사가 그 자릴 차지하면
목사가 간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이비 목사말 듣고 몸 주고 재산 바치고 정신 나간 년들도 많은데요
참 말세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세 환난 때 개인 신앙자유로 주님과 동행하려는 사람은 점점 그렇게 될 것이고 아닌 사람은 다같이 타락할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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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샤머니즘적 요소
기독교는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 일 신앙입니다. 그 중간에 누구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중보자로서 즉 하나님 앞에 우리들의 보증인으로 계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인이라고 하실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 받았다는 것을 보증하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요즈음 한국 기독교에는 목사를, 장로를, 권사를 마치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켜주는 존재인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나 스스로가 변화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기독교의 근본 교리와는 어긋나는 것입니다.
샤머니즘의 대표적인 모습은 나와 신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샤먼이 신과 만나고 그 결과를 나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샤먼이 신과 만나는 데에 필요한 물질을 제공하는 것 정도입니다.
한국 기독교에서는 성령을 마치 샤먼처럼 취급하고 있습니다.
기복신앙이라는 말이 기독교의 정신과 어긋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비는 복의 내용이 무엇이냐 하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복을 받는데, 그 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받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복을 받기 위해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한다든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 전에 복을 먼저 받겠다고 하는 이 모든 것이 잘못된 기복신앙이며, 그렇게 복을 받기 위해서 성령을 끌어다 대는 것이 바로 기독교 안의 샤머니즘입니다.
(답변) 신앙과 상관없이 세상 일반 사례로 처리한다면 방법은 많습니다.
우선 몇 가지 참고사항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1.피해사실 확보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를 당한 사람은 피해를 물적증거로 남겨두어야 나중에 물적증거에 의하여 피해보상을 받습니다. 폭행피해자라면 병원에 가서 치료 기록을 최대한 충실하게 받아 두어야 합니다. 진단서와 진료기록으로만 피해를 호소할 수 있습니다.
맞아서 아픈 것은 그 아픈 것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릅니다. 아무리 몸이 좋아졌다고 해도 어떻게 골병이 들어서 뒤에 어떤 증상으로 악화될지 모르니까 합의는 최대한 미루는 것이 좋습니다.
부상에 대하여 가장 확실하게 보상을 받는 것은 입원일수입니다. 통원치료한 것은 아무리 골병이 들어도 마지막 손해배상 소송에서 거의 피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또 입원을 한다 해도 만 20세 이전의 학생에게는 그 손실인정이 현저하게 낮습니다. 20세가 넘는 사람은 한 달 기준으로 115만원 정도 돈을 벌지 못했다고 해서 무직이나 학생이라도 손해배상을 계산하고 있습니다. 또 아팠던 것도 고생했다 해서 1달 입원에 대충 1백만원 안팎으로 계산해 주고 있습니다.
2.병원치료는 의료보험
어느 병원을 갔든지 폭행으로 들어왔다고 하면 자비부담을 시킵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합의를 거부하고 치료비 지출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의료보험으로 일단 치료할 수 있습니다. 우선 자기 돈이 들어가지 않아서 좋고 나중에 가해자에게 받을 때에도 자비부담 20%만 상대방에게 받는 것이 편리합니다. 의료보험에서 부담한 80%는 의료보험과 가해자가 해결할 문제입니다.
3.과실문제
교사가 학생을 때렸을 때는 피해자 과실 부분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교사의 100% 책임이니까, 교통사고와 달라서 피해자 과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피해보상을 따질 때 과실문제가 나오면 상황이 아주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집 아이가 옆집에 가서 놀다가 다쳐서 사고가 났을 때는 그 아이의 나이 등 형편에 따라 서로 계산이 아주 달라지기 쉬우므로 함부로 다른 사건을 수평비교하면 곤란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과실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4.변호사선임문제
변호사를 선임하면 든든하게 생각하는데, 대개 변호사들에게 당하는 것이 부지기 수입니다. 변호사 의사라는 직업이 외부 발표용으로는 손님을 위해 진심을 다해야 하지만 돈벌려고 사업하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그 전공과 전문이 다르고 그 경력과 개인간의 실력에 따라서, 성격에 따라서 아주 다릅니다. 특히 잘 아는 사람을 통해 선임했다는 것에 속는 경우는 거의 전부입니다.
변호사를 선임해도 얼마나 본인이 성실하게 피해 사례를 잘 연구하고 증명하느냐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변호사가 그런 사소한 데까지 꼼꼼하게 잘 챙겨주는 사람이면 무능해서 일을 별로 맡지 않았거나 아니면 인도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유능한 사람이면 크게 생각해서 몇 가지만 방향을 잡지 맞은 사람의 아픈 마음을 일일이 상대할 수 없습니다.
변호사 비용은 받지 못한다고 보시면 맞습니다. 원래는 승소하면 재판비용을 받게 되어 있지만 이런 경우는 중도에 거의 합의로 액수를 정하기 때문입니다. 합의를 거부하면 법원에서 불이익을 주겠다고 아주 협박을 하는 정도입니다.
5.형사고소 문제
형사고소는 상대방에 대한 보복일 뿐인데 교사와 같이 공무원신분에 있는 사람에게는 직장 문제를 걸고 압박해서 가장 확실하게 합의금을 도출할 수 있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액수를 뽑아내면 때린 교사나 그 이상을 뽑아낸 사람이나 비슷해진다는 것은 생각하셔겠지요? 비록 안 믿는 사람이라 해도 정도가 지나치면 자연조절기능에 의하여 자기가 손해를 입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형사문제는 최대한 피하기를 답변자는 주변에 권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처벌을 받아서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할 만큼 그 사람과 사회를 책임질 정도의 수준에 있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보복은 뒤끝이 자기에게 좋지 않습니다. 다만 그 사람 때문에 당한 나의 피해를 최대한 보충하겠다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좋겠지요.
6.문제는, 어지간히 이런 문제를 잘 장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자기 손실도 많아집니다.
고소를 하고 또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서 움직여 보면, 확실하게 다리가 부러졌든지 하는 문제가 아닌 경우는 상대방의 잘못을 증명하고 나의 피해를 증명하려면 온 가족이 긴장해야 하고 흥분해야 하고 초조해야 하고 일이 어찌 되는지 밤낮 거기 매달려야 하는데, 경찰에 고소를 하게 되면 경찰 조사 기간 보통 1개월 검찰 3개월 재판까지 나가게 된다면 다시 몇 개월... 이렇게 해서 한 학기를 완전히 소진해야 합니다. 그러는 동안에 마음 고생, 걱정, 불안, 학생의 학습에 미치는 영향 등은 전혀 보상을 받지 못합니다. 그런 것 때문에 심적 고통이 있었다는 것은 본인들이 못나서 그렇다고 치기 때문입니다.
그냥 교장 등 학교 관계자들과 직접 협상을 해서, 형사 문제로 나가고 민사소송으로 피해 보상을 받고 학생을 언제라도 정신병 치료를 받게 하면 그로 인하여 발생하는 소요 경비나 가해교사의 피해가 얼마가 될 것이니 조용하게 돈으로 해결하자고 하고, 그대신 가해교사의 추후 행동을 학교와 가해교사에게 일정한 각서를 받아 그 행동을 신중하도록 묶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7.이곳 홈의 답변은, 신앙 연구에 집중하고 있음을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맞았을 때, 어떤 회개를 해야 하느냐는, 또 세상처리의 범위는 어디까지 가능하냐는 등으로 신앙인의 신앙방향에 대하여는 최대한 자세하게 답변을 하고 있으나 이번 경우처럼 가해교사에 대하여 피해학생의 대응에 대한 세상방식의 처리는 이곳 홈을 통해 답변하기는 처음입니다.
물론 답변자의 교회 교인 문제면, 답변자가 거의 전부를 지도하고 있습니다만 이곳은 신앙연구실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통용되는 기술에 관한 문제는 최대한 보지 않고 듣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현재 여러 인터넷 홈에서 이번 문제에 대하여 일을 해 주는 곳은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곳에서 지도를 충분히 받으신 다음, 신앙인으로서 과연 해도 되는 방법이냐 아니면 그런 방법 자체는 포기를 해야 하는 것이냐 라는 그런 질문을 이곳에 해 주셨으면 합니다.
앞 부분에서 조금이라도 성의를 보였으니, 이번 건과 관련해서는 더 이상의 보충질문이나 재질문을 피해 주시기를 요청하겠습니다. 참고로, 어디든지 나서기를 좋아하면 분명히 자기 혼자 책임져야 하는 자기 본임무에는 반드시 소홀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과 자본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딱 한 번에 한 번 쓸 것 밖에 주지 않았습니다.
잔인해서가 아니라, 어떤 때는 다른 사람의 불행을 그냥 지켜만 보고 지나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복음에 관련된 십자가의 희생을 요구하면 어디까지든지 자기 몸을 내놓겠지만, 그냥 체질이 다른 사람 일에 잘 나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세상에서 박애주의자는 될지 몰라도 신앙으로는 알맹이 없는 외식 신앙에서 그칠 확률이 너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