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질문) 개척에 동행할 수 있는 식구에 대한 질문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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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질문) 개척에 동행할 수 있는 식구에 대한 질문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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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질문) 개척에 동행할 수 있는 식구에 대한 질문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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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문답방에 올려진 질문으로 그 답변의 분량이 이곳에 적당하므로 간단한 답변은 그곳에서, 자세한 답변은 이곳에서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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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교회를 할 때는 설교록을 보면 여러가지 백목사님의 의견을 알 수가 있는데 개척할 때는 자기를 추종하는 사람을 해당 교회에 놓고 새로이 시작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러한 개척교회를 시작할 때 어떤 준비가 있어야 되고 또 가족들 특히 출가한 가족들도 추종자로 구별이 되는 것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기존교회에서 나와 개척교회를 할려 할 때 총공회 그리고 백목사님의 교훈이며 성경에는 어떻게 나와 있나요.

두서없는 질문이지만 자세한 답변 부탁드리며 많은 은혜를 받고 있으며 감사를 드립니다.


(답변) 개척교회를 할 때, 함께 할 수 있는 교인의 범위에 대하여

(1)개척교회 출발 때 동행하는 교인에 대하여

①개척교회는 적게 시작할수록 좋다는 것이 백목사님의 지도 원리입니다.

롬15:20, '내가 그리스도의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고 명문으로까지 우리에게 주신 원칙이 있습니다. 따라서 개척교회라는 것은 아직 이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 듣지 못한 곳에 처음으로 시작한다는 뜻이니 누구를 막론하고 개척에는 기존 믿는 식구를 대동하지 않는 것은 원칙이요 기본이며 상식입니다. 그러나 말이 개척하는 목회자이지 속으로는 자기 사업을 시작한다는 야심도 있고 기존 교회에서 내쫓기듯 하여 달리 방법이 없으니 피난하듯 시작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입니다. 욕을 하고 비판을 하자면 한이 없겠으나 오히려 목회 일선에 나서다 보면 하나님을 이전보다 더 자주 만나야 되고 그러다보면 사업에 대한 야심이나 피난으로 내쫓긴 처지를 회개하고 진정한 개척전도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그런 소망으로 상대하는 것이 우리가 가질 일반적 태도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분들은 말이 개척전도인이지 내적 신앙은 어리기를 한이 없는 이들입니다. 이들에게 개척 초기 가장 어려울 때 여러모로 큰 힘이 된다고 느끼는 주변 인물을 떼놓고 가라고 지도한다는 것은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개척교회를 사업이나 피난처로 삼고 시작하는 사람에게 교인 한 사람에 대한 욕심보다 복음을 전하는 순전한 전도인이 되라는 말은 전혀 상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살인죄인에게 그 사람 다치게 하지 말라는 말이나 같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개척의 원칙은 이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겠다는 것이 개척입니다. 그렇다면 이 복음을 전하는데 필요한 인원, 즉 자기 가족만 움직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출가한 자녀가 따로 생활하고 있다면, 이미 그는 개척교회의 취지라는 기준에서는 새 복음을 받을 새 전도의 대상이 아닙니다.

②개척초기에 움직인 교인의 숫자는 초기에는 도움이 되고, 후기에는 꼭 분란의 원인이 됩니다.

백목사님이 소속 교역자들의 개척이 있을 때마다 탄식한 내용입니다. 집안 식구 등을 비롯하여 연고가 있는 여러 교인들이 동행을 하면 우선 출발에는 큰 힘이 되는데 뒤에 새로 전도되는 교인들에게는 초기 동행했던 교인들은 늘 그 교회의 기존 지배계급처럼 느껴져 한 교회 안에서 하나되는 일에 극히 방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외부에서는 한 교회인데 안으로는 두 그룹으로 교인들이 나뉘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큰 바위가 그 구성물이 서로 다르면 그 경계선에 금이 나타나고 언젠가 그 금에 외부 충격이 가해지면 그 경계선으로 두쪽이 난다는 자연계시입니다.

물론 그 깊은 속에는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는 것이 모든 신앙출발의 근본 원칙인데, 창12:1의 말씀과 반대로 본토 친척 아비집을 의지하고 힘을 삼아 그것으로 개척교회의 터를 잡는 것은 어떻게 설명을 해도 잘못된 시작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즉, 이 모든 설명은 굳이 개척교회에서 지킬 법이 있어 식구들을 데려가지 말라는 시각으로만 듣지 마시고 오히려 개척교회를 시작하는 분이 수고롭게 시작하는데 그 끝이 잘 되고 그 운동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영육간에 진정으로 잘 되려면 여러 종류의 식구들을 데리고 나간다는 것은 본인이 스스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뒤에 잘 되려면 따라 온다는 사람이 있어도 스스로 말리고 피하라는 것입니다.

③이런 경우는 식구 뿐 아니고 원하는 사람들도 동행할 수 있습니다.

한 교단이 교리와 신조 그리고 행정이 하나로 나가며 이런 신앙노선 상에 문제가 없을 때는 위에 말씀드린 원칙은 분명히 지켜져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 감정이나 경제 이권 또는 교권 다툼 때문이 아니라 신앙노선이 달라서 개척하고 나갈 때라면, 입장은 아주 달라집니다. 현재 있는 교회가 기본구원적으로는 한 교회이지만 같은 구원을 받았으나 어떤 식으로 믿느냐는 문제를 두고 신앙노선이 달라서 한 교회에 있게 되면 아브라함과 롯과 같이 모든 면에 충돌이 발생하게 되는 경우가 있게 됩니다. 물론 현재 예배당을 확보하는 것이 인간적인 모든 면에서는 유리하지만 꼭 신앙노선 때문에 진정 바른 길을 걷고자 한다면 거의 개척으로 나와야 하는 경우로 현실이 돌아가게 됩니다.

이런 형편으로 개척을 하게 된다면, 개척하는 본인이 현 교회의 신앙노선이 틀렸는데도 나 혼자만 개척으로 나갈 것이고 형님집 아우집 사촌집은 그대로 있어야 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 깊은 목적과 동기는 다 의심을 하겠지만, 남들이 좋게 봐 준다고 좋은 것이 아니며 남들이 의심한다고 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심은 하되, 신앙노선 때문에 새로 출발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리고 아브라함을 따라 나서는 롯과 같이 또 엘리야를 따라 나서는 엘리사처럼 본인들이 스스로 원하고 원하는 마음으로 동행한다면 금지하고 막는 법이 아니라 오히려 잘 인도하여 옳바른 길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

대구공회와 부산공회처럼 신앙노선 문제로 나뉠 때 개척을 해서 자유롭게 믿는 곳을 찾아야 한다면, 오히려 같은 신앙성향에 있는 이들에게 현재 예배당과 직책에 미련을 두고 내부에서 끝없이 투쟁하는 것보다 상대편에게 알릴 대로 알렸고 또 설득할 만큼 해도 안된다는 선에서 이후 모든 것은 하나님께 맡겨두고 자신과 속한 사람들로 나가는 것이 옳습니다. 현재 서부교회와 같은 경우는 신앙노선이 아니라 교권투쟁으로 무한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대치하며 싸우는 것보다 조용히 복음운동을 하겠고 그대신 세상 조건은 불리해도 감수하겠다고 한다면 좋은 길일 것입니다. 그런 투쟁의 길이 아니라 현재 서부교회의 신앙노선은 이미 바른 길에서 벗어났다고 판단하는 분이 있다면 그런 분들은 신앙노선의 기준에서 개척하는 것이 옳을 것이며 이런 경우는 어떤 육적관계에 있든지 신앙노선만 옳다면 동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④그래도 한가지 당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인간이 연약하여 자꾸 거짓으로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개척교회의 교인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하고 또 경제력 있는 교인의 십일조가 사택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세상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인 욕심이 제일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 말로는 '기존 교회가 신앙노선에 맞지 않아서....' '지금 가는 길이 틀리니까....' 라고 신앙노선을 핑게로 앞세우는 것이 거의 전부라는 점을 깊이 인식하셨으면 합니다. 답변자는 1989년 백영희목사님 생전의 마지막과 사후 노선분립기의 총공회를 내부에서 파악할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입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꼭 신앙노선 때문에 개척해야 했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불과 몇 손가락 꼽을 정도입니다.

얼마든지 교역자를 설득하여 바른 길로 세울 수 있는데도 야당체질이고 변덕성이 많아서 이런 기회를 이용한 분들, 평소의 다른 사적 감정을 이런 기회에 표출시킨 분, 교회를 분립시키면 자기 계열의 교회숫자가 늘어 총공회 투표권에서 대의원을 확보하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개척운동을 하신 분, 또 그런 분들에게 이용당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본인들은 주님 뜻에 부름을 받았다고 백마고지 백병전에 차출되었다가 이후 오늘까지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목회자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분들, 그 이름을 다 대라면 수도 없습니다. 거의 전부라고 하면 될 정도입니다.

실상이 이러하니 개척에 데려가는 식구들에 대하여 성경이 가르치고 백목사님이 안내하는 지혜를 참고할 리가 없습니다. 오로지 교인이 확보될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오늘 공회요 일반 교단은 수십년 역사가 그러했습니다. 아무도 비판할 수 없고 누구도 정죄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면입니다. 과연 신앙노선 때문에 식구를 인도하여 출발했는가 아니면 교인 욕심을 위해 회원모집 차원으로 징발했는가? 삼가 하나님 앞에 각자가 미래 책임을 두고 살필 일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출발이 잘못되면 그 앞날은 갈수록 더 삐뚤어진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 최면을 걸면서 '나는 진정 복음을 위해서 그리했다'고 반복을 하는데 혼자 아는 거짓말이 자꾸 반복이 되면서 이후 회개도 못할 거짓말로 자기 속에 뿌리박게 됩니다. 오늘 새로운 공회의 분립도 거의 다 이런 경우라고 한다면 얼마나 이 문제를 초월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조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2)기존교회에서 개척교회로 출발할 때 조심할 일

①있는 교회에서 충성하다가 현실이 개척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할 때 해야 합니다.

본인이 개척의 뜻을 세워 기획하고 추진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맡고 나서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기 그지 없습니다. 있던 교회에서 죽도록 충성하다가 그곳에서 죽기를 각오하였으나 하나님이 현실을 변경시켜 나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주변 현실 때문에 움직이지 않을 수 없도록 되어진 결과 부득이 내몰리듯 시작하는 것이 옳습니다. 현재 모든 개척전도인들이 그리 되었다고 하는데 실은 자기 최면에 착각이 전부라 해야 할 것입니다.

②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도 주님과 현실이 인도하는 대로 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오늘을 봐서는 이곳인데 다음을 봐서는 사실 모르는 일입니다. 인생 경험만 많아도 섣불리 자기가 자리를 정하지는 않게 되어 있습니다. 하물며 주권 예정 섭리의 주님을 믿는 우리들입니다. 좀 늦어도 더뎌도 인내함으로 참고 기다림이 있어야 하는데 벌써 시작하면서 조급함으로 참새 머리가 움직이듯 바쁜 경우가 전부입니다. 마음이 떴다고들 표현합니다. 술렁이는 감정으로 할 일이 아닙니다. 개척교회와 학원이 자리를 찾는 기준이 같고 그 심정까지 같아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③아브라함이 가나안 사지(死地)를 향했으나 그 훗날이 우리 앞에 있음을 기억하셨으면

적어도 '개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면 그야말로 아브라함의 앞선 길을 가겠다고 나선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출발한 창12장 설교를 이곳 자료실에서 찾아 참고하시고 그대로 하셨으면 합니다. 과거 개척은 거의 이러했으나 지금은 그렇게 하는 모습이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렇게 다시 출발하는 분 한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의 눈이 이 우주 가운데에서 그 분에게 집중될 것입니다.

④삼가, 하나 참고하실 일은

개척으로 출발하면 모든 것이 새롭고 산뜻하나 얼마 지나지 않고 안정이 되고 나면 원래 있던 교회에서 있었던 모든 모순과 과정이 정확하게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될 것이면 왜 개척을 한다고 그렇게 날뛰고 분주했던가 하며 후회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꼭 신앙노선 문제 때문에 죽어도 가야 할 길이 아니라면 현재 있는 곳을 지키는 것이 옳습니다. 현재 있는 곳이 만들어지기까지는 현재 나보다더 더 건전했던 때, 더 기도하던 종들이 더 많은 수고와 더 뜨거운 중심으로 시작한 곳입니다. 내가 다시 출발하는 곳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 또 이와 같이 될 곳입니다.

이 복음 아니면 안되겠고, 이 길이 아니면 안되겠으며, 이 복음 이 길을 걷는다 해도 내가 이곳에 개척하지 않고는 안되며 다른 이로는 안되는 단 한 길, 좁은 길이어서 둘도 함께 할 수 없는 좁디 좁은 곳을 향하여 가는 길이 개척입니다.


(쉬운 문답방 277번의 답변)

(답변) 개척은, 이 말씀 듣지 못한 이를 상대하는 것입니다.

1.개척교회를 할 때, 함께 할 수 있는 교인의 범위에 대하여

(1)개척교회 출발 때 동행하는 교인에 대하여

롬15:20, '내가 그리스도의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고 명문으로까지 우리에게 주신 원칙이 있습니다. 따라서 개척교회라는 것은 아직 이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 듣지 못한 곳에 처음으로 시작한다는 뜻이니 누구를 막론하고 개척에는 기존 믿는 식구를 대동하지 않는 것은 원칙이요 기본이며 상식입니다.

중요한 것은, 개척의 원칙은 이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겠다는 것이 개척입니다. 그렇다면 이 복음을 전하는데 필요한 인원, 즉 자기 가족만 움직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출가한 자녀가 따로 생활하고 있다면, 이미 그는 개척교회의 취지라는 기준에서는 새 복음을 받을 새 전도의 대상이 아닙니다.

한가지 더 알 것은, 개척초기에 움직인 교인의 숫자는 초기에는 도움이 되고, 후기에는 꼭 분란의 원인이 됩니다. 외부에서는 한 교회인데 안으로는 두 그룹으로 교인들이 나뉘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큰 바위가 그 구성물이 서로 다르면 그 경계선에 금이 나타나고 언젠가 그 금에 외부 충격이 가해지면 그 경계선으로 두쪽이 난다는 자연계시입니다.

물론 그 깊은 속에는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는 것이 모든 신앙출발의 근본 원칙인데, 창12:1의 말씀과 반대로 본토 친척 아비집을 의지하고 힘을 삼아 그것으로 개척교회의 터를 잡는 것은 어떻게 설명을 해도 잘못된 시작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즉, 이 모든 설명은 굳이 개척교회에서 지킬 법이 있어 식구들을 데려가지 말라는 시각으로만 듣지 마시고 오히려 개척교회를 시작하는 분이 수고롭게 시작하는데 그 끝이 잘 되고 그 운동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영육간에 진정으로 잘 되려면 여러 종류의 식구들을 데리고 나간다는 것은 본인이 스스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뒤에 잘 되려면 따라 온다는 사람이 있어도 스스로 말리고 피하라는 것입니다.

(2)이런 경우는 식구 뿐 아니고 원하는 사람들도 동행할 수 있습니다.

한 교단이 교리와 신조 그리고 행정이 하나로 나가며 이런 신앙노선 상에 문제가 없을 때는 위에 말씀드린 원칙은 분명히 지켜져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 감정이나 경제 이권 또는 교권 다툼 때문이 아니라 신앙노선이 달라서 개척하고 나갈 때라면, 입장은 아주 달라집니다. 현재 있는 교회가 기본구원적으로는 한 교회이지만 같은 구원을 받았으나 어떤 식으로 믿느냐는 문제를 두고 신앙노선이 달라서 한 교회에 있게 되면 아브라함과 롯과 같이 모든 면에 충돌이 발생하게 되는 경우가 있게 됩니다. 물론 현재 예배당을 확보하는 것이 인간적인 모든 면에서는 유리하지만 꼭 신앙노선 때문에 진정 바른 길을 걷고자 한다면 거의 개척으로 나와야 하는 경우로 현실이 돌아가게 됩니다.

이런 형편으로 개척을 하게 된다면, 개척하는 본인이 현 교회의 신앙노선이 틀렸는데도 나 혼자만 개척으로 나갈 것이고 형님집 아우집 사촌집은 그대로 있어야 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 깊은 목적과 동기는 다 의심을 하겠지만, 남들이 좋게 봐 준다고 좋은 것이 아니며 남들이 의심한다고 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심은 하되, 신앙노선 때문에 새로 출발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리고 아브라함을 따라 나서는 롯과 같이 또 엘리야를 따라 나서는 엘리사처럼 본인들이 스스로 원하고 원하는 마음으로 동행한다면 금지하고 막는 법이 아니라 오히려 잘 인도하여 옳바른 길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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