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질문) 예배당 건축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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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34
4. (질문) 예배당 건축 1159
안녕하세요. 목사님
예전에 어느분을 통해서 사모님의 사고소식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건강하신지요.
사모님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어렸을 때 서부교회예배당은 마치 수용소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건물에 아무런 치장이 없는 모습이었죠.
지금도 그런가요.
최근에 대형교회들이 교회건축을 하면서 몇 백억을 들여 으리으리하게
짓는다고 하는데 옳은 일인지요.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다고 마치연보를 안하면 죄를 짓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는데.
서부교회 중심으로 말씀 좀 해주세요.
(답변) 백목사님의 예배당 건축에 관련된 입장을, 서부교회 건물로 몇가지 살폈습니다.
1.교통사고 내용입니다.
특별한 일이 있으면 공고를 하는 것이 일반 교회이며 또 일반 홈들의 게시판들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개인적인 일은 공고를 하지 않는 편이어서 공고가 없었음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질문이 있었으므로 답변으로는 드리겠습니다.
2001.3.5. 가해 트레일러에 충격을 받고 그날 2회 뇌수술을 했습니다. 총 3차에 걸쳐, 절명에 이르는 순간에서 다시 생존의 기회를 받았습니다. 하드웨어는 복구되어 침상 생활은 면했으나 사고 후 소프트웨어는 전면 초기화되어 주기억 장치의 대부분이 손실되어 이전 알던 사람 중 특별히 가까웠던 분 몇 명만 기억하는 상태입니다. 생존 본능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 기능만을 갖추고 있었으나, 다행히 성경을 읽고 또 설교 노트를 보고 이 홈에 필요한 자료 입력을 하는 기능만큼은 대부분 보존되어 있습니다.
속도는 느리지만 정확성은 인정할 수 있고, 하루 10시간 이상 이곳 자료 입력작업만 한다는 것은, 사고 후 1년이 지난 시점 대학병원 신체감정서의 영구장애평가 항목에서 인간 능력의 95%이상이 영구 파손되었고 정신연령 6세정도라는 공식 발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생활 면에는 이전보다 더욱 유리하게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현재 유지되고 있는 이 한 가지 기능은 장차 모든 면으로 이전보다 더 큰 복이 될 시작이라고 보고 있으며, 현재 그렇게 되어간다는 것을 100% 확신할 수 있는 길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원래 이곳은 신학과 함께 세상의 통계나 과학의 수치를 좀 우습게 아는 신앙노선에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독자적으로 특별히 관리하기 때문에 그 모든 진행과정이 일반 통계나 과학 공식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는 것이 아주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이런 사고를 부끄러워 숨길 일은 없으나, 동시에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면도 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답변을 하게 된 이상 간단한 소식에 이어 증거하고 싶은 면이 있습니다.
사고 후 상황은, 일반 사람으로 알기로는 가장 극단적인 상황으로만 1년 이상 계속되어졌고, 그 상황은 그런 상태에서 고정된 것으로 판명이 났었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 전부를 통과하면서 이곳은, 이곳이 집중하는 백영희신앙노선의 현실관과 말씀의 이치를 사고 발생 이전부터 일부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모든 상황에서 온전히 기쁘게 여길 수 있었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특수하게 어려운 상황에 있는 분들에게 '이론적으로' 권면하고 그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나, 지금은 이 신앙노선에서 어떤 극단적 상황도 넉넉히 웃음으로 지날 수 있다는 소개를 드릴 수 있는 경력을 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감사하고, 또 어떤 상황에 있는 분이라도 그 고통을 함께 하면서 말씀을 드릴 수 있게 되어 그런 분들께 죄송함이 덜하게 된 점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2.질문하신 '예배당 건축'에 관련된 문제는
①서부교회 예배당은 '건축 구조물'로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이 건물이 건축되던 1970년경 구덕체육관과 같은 공공 시설을 제외하고는 단일 실내 공간 면적이 부산에서 제일 컸습니다. 일반 건물들은 건물 중앙에 기둥을 설치하지만, 서부교회는 본 예배당 공간 가운데를 떠받치는 기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지붕 자체를 떠받치고 있는 가로봇장만으로 공간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1986년 부산지하철 공사 때 건물 안전점검을 위해 들렀던 토목 건축 관련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콘크리이트 봇장으로 기둥없이 이렇게 큰 공간을 확보한 것은 국내 기록이라고 했었습니다. 그들은 그 분야가 직업이고 전공인 대학교수들로 이루어진 전문가들입니다. 그들의 평가로는 안전상 유지될 수가 없는 구조이며 규모라고 결론을 내렸고 따라서 이는 전문가가 했을 리가 없다고 말했는데, 실은 그 구조물 내부 철근 등에 대한 설계는 백목사님이 직접 한 것이었습니다.
일반 건축설계 교과서를 벗어나서 시공된 건축물입니다. 백목사님의 철근 건축물 등에 대한 안목과 식견은 그런 교수진이나 설계사 또는 시공업자들과는 비교되지 않을 면이 있고 더하여 이과적 계산에 창조적 지혜가 있기 때문에 관련 업무에 대하여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면이 많습니다.
②서부교회 예배당은, 견고성을 예배당 건축에 제일로 두었다는 뜻이 됩니다.
예배당을 짓는 일에 백목사님이 두는 우선 순위는 첫째가 '견고성'입니다. 건축 30년이 넘지만 균열이 없고 보수공사가 필요치 않다는 것은 그분의 인간적 성격인 면도 있지만 그분의 신앙노선이 그대로 나타난 것입니다. 본당 건물에 더하여 그 북쪽과 남쪽으로 본당 건물의 절반 또는 꼭같은 규모로 2차에 걸쳐 증축을 하게 되는데, 공사기간이 10년이나 차이 나는 상태에서 이렇게 4층 대형건축물을 따로 지어 단일 건물로 사용하는 경우도 없겠지만, 크랙이나 방수문제가 전혀 없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일 뿐입니다.
이는 예배당을,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건축하되 그 중심과 그 충성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열납되어 하나님이 위에서 내려 주셔서 받은 지혜로 가능한 일이지 인간이 인간의 지혜와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건축 현장에 실무를 아는 분들이면 여기 표현을 이해하실 것이고 건축을 한 걸음 비껴서서 보시는 분들이면 과도한 표현이라고 보실까 염려가 됩니다만, 이곳 표현은 사실적 묘사입니다.
③건축 실무와 현장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예배당 건축을 두고 새는 돈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건축 실무에 대한 면을 너무 강조하고 자세하게 설명하다 보니까, 혹 왜 질문과 다른 방향으로 답변이 나가는지 의아할 분도 계실 것입니다만, 사실 이 문제는 예배당 건축을 두고는 실로 중요한 핵심 사안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수많은 예배당이 '성전 건축'이라는 이름으로 건축되고 있지만, 그 실무를 모르면 건축만큼 큰 돈이 허공에 날라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건축은 '노가다'라고 합니다. 수준도 천하고 그 내막도 미개하여 시공업자든, 교회 내 건축위원이든 누구든 이 건축에 관련된 라인에서 마음을 먹으려면 큰 돈을 해먹고도 밖으로 표시가 나지 않는 분야입니다. 물론 고의로 돈을 손대지 않고 순수한 사람들이 예배당을 짓는다고 해도, 건축 실무를 알지 못하면 공연히 몰라서 헛돈을 낭비할 부분이 30%를 쉽게 넘어가 버립니다.
그 '성전 건축'을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이 눈물로 기도하고 세상에서 뼈빠지게 번 아까운 돈, 남의 돈을 훔쳐올 줄만 알았지 자기 돈을 남위해 한번도 써보지 않았던 그런 사람들이, '성전 건축'이라는 자기 교회의 복음운동이라는 설명을 듣고 참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그런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대로는 그래도 있는 힘을 다해서 아까운 돈을 몇 백만원, 또는 몇 천만원을 연보했는데, 그런 돈의 가치와 그 돈에 들어있는 개개인의 사정을 다 아는 사람이, 동시에 건축과정에서 생각도 못한 곳으로 헛돈으로 날라가고 아니면 아예 도적을 맞는다면, 그냥 넘어갈 문제겠습니까?
어느 교회가 10억짜리 예배당을 짓는다고 한다면, 대개 3억 정도는 안 들어가도 될 돈이 들어갔던지, 아니면 이 사람 저 사람이 적당하게 알아서 빼먹은 돈으로 본다면, 너무 과하게 말했을까요? 건축 자재값에 대한 시세 파악을 잘못하거나 건축자재 사용이 실제와 다른 줄 모르고 지출하거나 이런 돈을 손대는 사람은 낮은 차원입니다. 예배당 공간 배치나 미적 감각을 잘못 적용하여 후에 예배당을 지어놓고 이 부분은 필요없이 넓게 되었고 저 부분은 그런 미적 감각을 위해 그만한 돈이 들어갈 정도는 아니었다... 는 등으로 확인이 된다면, 그 순간 그 예배당 건축비의 대단한 부분이 그냥 공중에 날라가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백목사님과 같이 건축에 대한 전문적 식견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경제에 대하여는 교인 중에서도 가장 아끼고 철저한 목회자가 건축을 주도하게 되면, 적어도 건축 실무를 몰라서 당하거나 또는 도적맞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론이 있을 것입니다. 건축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예배당을 짓지 말라는 말이냐는 것입니다. 자기가 건축에 모르면 건축에 대하여 실무를 알고 또 양심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도록 하나님께 구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대개 그런 사람을 구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마저도 알고보면 거의 도적이거나 아니면 자기 나름대로 잘 아는 사람이지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많이 봅니다. 어쨌든, 지으면 짓는 것이 아니고, 도적 맞지 않고 또 꼭 써야 할 돈을 쓰면서 건축을 할 수 있으려면 참으로 복받은 교회라야 하고, 그런 교회가 되려면 평소 그 교회의 경제 처리가, 하나님께서 복을 주지 않을 수 없도록 되어 있어야 합니다.
질문에 직접 답변이 될 수 있는 사안으로, 이 문제는 국내에서 또는 시내에서 제법 잘 짓는다고 소문난 예배당의 경우는 그 예배당 건물이 사치스럽게 지었느냐 너무 호화스럽게 지었느냐는 문제도 문제지만 그것에 앞서 그 건물을 두고 얼마나 많은 도적떼들이 여기 저기를 뜯어 먹고 배가 불렀을까? 그 도적 중에는 목사도 일부 얻어 먹었을 것이고, 그 건축물을 주도한 장로님은 순진해서 당했든지 아니면 어느 교회처럼 1-200억에 지어준다 해놓고 나중에는 3-400억이 들어가서도 완공이 되지 않고, 그 후에야 한국교회 예배당 건축 사상 최고의 사기극에 빠졌다고 교계에 웃음거리가 되는 경우가 꼭 멀리만 있는 경우가 아닙니다. 그런 소식이 들릴 때, 속으로 뜨끔뜨끔할 분들이 예배당마다 거의 다 있을 것입니다.
④서부교회 예배당은 진짜 예배당입니다. 예배당 건물을 예배당으로 짓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교회 건물을 쉽게 말하면 예배당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예배보는 모임입니다. 따라서 교회 건물은 바로 예배당이라는 말과 같은 단어로 사용되어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서부교회 예배당은 진짜 예배당이지만, 서부교회 예배당을 빼놓고 예배당답게 지은 건물 중에 정말로 예배당 '전용'으로 사용되는 예배당이 있는지 주변에서 보신 적이 있다면, 한번 예를 드실 분이 계실까요?
서부교회의 외관은 실내 사용 면적이 가장 많이 나올 수 있는 면으로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건물의 순수 실내 사용 용적률에 있어서는 그 비할 바가 없습니다. 특히 건물 대비 예배 사용 면적률에 있어서는 국내 교회 중 최고입니다. 꼭같은 1천평 실내면적이라도 일반 교회는 순수 예배실 사용면적은 1/3이 채되지 않습니다. 친교실, 사무실, 식당, 휴게실, 중고등부 회의실, 당회실 등으로 나누고 있지만 서부교회 건축물은 1층에서 4층까지 본관 건물 전체를 통틀어 10평 정도되는 앰프실 외에는 전부가 예배실입니다.
돈 많은 교회부터, 많은 사람이 모이는 큰 예배당부터, 규모가 좋고 보기에도 잘 지은 예배당부터, 그래도 예배당 답게 마음먹고 지었다는 예배당 치고 예배 전용건물로 지은 것을 아직까지 답변자는 보지 못했습니다. 서울에서도 1년 정도 살아봤고 이런 저런 기회 때문에 공회 교역자로서는 타 교단이나 여러 교회들을 찾아야 할 업무가 제일 많았지만, 아직까지는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서울에 손꼽는 대형교회 예배당도 그 예배 전용 면적으로 비교할 때는 서부교회와는 비교되지 않습니다. 대형예배당은 예배실이 대형인 것이 아니라 그 부대시설 지원시설 별도시설 기관시설이 그 면적의 절반 이상 또는 2/3이상을 차지해버리기 때문입니다.
혹 개척교회이기 때문에 아직 돈이 없어 본 건축에 앞서 임시 가건물로 지었거나 아니면 일부 건축만 끝난 경우는 예배당 전용 예배당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교회는 자신들이 원하여 그렇게 지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예배당을 예배당 전용 예배당으로 짓지 않았다면 무슨 말입니까? 상가와 주택을 합하여 도심에 복합상가를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파트 전용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가 전용도 아닙니다. 그런 경우 경제 활동이나 생활의 편리성에 있어서는 탁월하게 장점이 많습니다. 이와같이 교회가 예배당 전용 건물만을 지어서는 안되고 예배당과 다른 용도의 공간, 즉 예배 외에 놀고 먹고 마시고 만나고 노래하고 춤추고 박수치는 공간을 많이 확보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전념이고 전공인지, 아니면 예수 믿는 것과 다른 문화 생활을 뒤섞겠다는 것입니다. 유치원이 들어가고, 심지어 도심 예배당 중에는 주차장을 유료로 운영하여 교회의 부수입까지 올리거나 아니면 사회에 봉사한다고 주민 활용공간으로 제공하는 일 등이 아주 복잡하게 섞여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순수한 복음운동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순수하게 예배보는 성도의 모임으로 교회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배당으로만 사용될 소위 '성전 건축'을 한다 해놓고, 예배당 건물에 들어올 필요도 없는 공간과 시설이 수없이 들어온 것도 문제인데, 심지어 예배당 건물 안에는 들어와서 안될 것들까지 들어오는 경우를 보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좋은 예배당일수록 비싼 예배당일수록 대형 예배당일수록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엉뚱한 용도를 포함하는 예배당일수록 그 외형은 별별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 외형들이 한결같이 그 교회 목회자의 성공한 자기 과시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오늘 바벨탑으로까지 지적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 지적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바로 그 교회 내의 실정을 잘 아는 분들 중에서 교회를 참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이, 이렇게 지으면 이런 예산이면 되는데, 저 외형 하나가 첨가됨으로 건축비가 이렇게 상승되고 그 건축비 상승 때문에 닥칠 교인들의 어려움이 눈에 보이는 경우, 과연 그렇게 지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문의하게 됩니다. 어느 후배 목사님도 이 정도로 지었는데, 어느 친구 목사님이 예배당이라고 한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그러니까 나도 체면이 있지 하는 식이고 그런 인식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밖으로 표출이 되었고 그런 내면을 읽은 분들은 바로 시험에 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고대 피라밋을 지어 그 왕은 역사에 이름을 남겼는데, 그 피라밋 하나 밑에 깔려 죽은 사람과 흘린 땀을 계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미개했던 고대사회의 참으로 미련한 짓들이었을 뿐입니다. 오늘 예배당 건축을 두고, 과연 이런 지적을 받지 않을 곳이 얼마나 있겠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그 밑에서 순수하게 그 교회가 어디로 가든지 어떻게 일을 벌이든지 그저 하나님의 종들이 알아서 영감대로 할 것이라 하고 열심히 기도만 하고 연보만 하는 분들, 그 분들의 순수한 면은 좋지만, 또 그 면으로 받을 복도 분명히 있지만 건설구원은 아는 가운데 자라가는 면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예배당을 짓고도 그 교회에 별 문제가 없다면 그 교회 전체의 건설구원의 수준을 알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에 반하는 반대 운동을 해서는 안되지만 다윗에게도 잘못이 있을 때는 지적할 수 있는 것이고, 또 하나님이 금하지 않는 면으로 무엇인가 바로 잡기 위해 탄원이 있고 그 교회를 바로 잡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⑤예배당 건축을 두고, 공회에는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공회 내에서 예배당 건축으로는 가장 권위있는 목사님이 미국 내 공회 교회를 부임했던 1979년의 일입니다. 막 개척했던 교회에 도착한 목사님의 제일성은 성전을 건축해야 하고,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미국에서 이미 잘 살고 있는 교인들이 집을 팔아서라도 예배당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를 했습니다.
그 교회 여권찰님 한 분이 했던 내용입니다.
목사님, 한국에서 예배당을 많이 지었다고 이름을 날렸는데 이제 미국에 오자말자 예배당을 지어 목사님이 예배당을 건축했다고 이름을 남기려고 그렇게 야단입니까? 예배당 건축하기 위해 집 팔아라고 강조하지 마시고, 그냥 설교만 잘 해서 양떼들에게 배나 실컷 부르게 만드시지요. 양떼가 잘 먹고 배가 부르면 목사님이 젖을 짜려고 하지 않아도 우리가 젖 좀 짜시라고 연보하겠다고 먼저 그럴 것입니다. 설교에 은혜를 받도록 힘쓰는 것은 하지 않고 예배당 건축했다는 업적을 남기려고 애쓰는 분에게 은행에서 융자받아 2-30년씩 빚갚아야 할 이 집들을 팔아 목사님 밑에 넣어라고요?
서부교회 예배당은, 교인들이 앉을 자리가 없든지 아니면 주일학생이 벽을 밀어 그 벽이 밀려서 확장이 되면 되었지 예배 볼 공간을 남겨 두고 예배당을 확장하거나 공사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예배당을 지을 때는 예배 볼 공간을 추가로 확보하는 오직 이 한 목적뿐이었습니다. 따라서 서부교회는 예배당을 지었지 예배당 아닌 것을 짓지 않았습니다. 만일 예배당 외에 다른 공간이 있었다면, 이는 예배보는 일에 없어서는 진정 안되는 시설이었고 그 시설이 없이는 예배 자체가 지장이 될 정도였습니다. 자세한 내막은 백목사님 전기작업에서 다루어지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예배당 건축을 두고 '성전 건축'이라는 이름을 씌워놓고 수없는 낭비 허비 사치 업적쌓기 돈 떼먹고 헛돈 날리는 일들이 너무 심하여 이 면 하나만으로도 교회다운 교회가 없다할 시대입니다. 백목사님처럼 예배당을 그렇게 유지했던 분이 또 한분 있습니다. 김현봉목사님의 아현교회도 예배 볼 수 있는 예배처소로만 지어지고 유지되어졌습니다. 사실 이것이 바로 개혁교회의 개혁신앙입니다.
그 반대개념을 가지고 주장하고 오늘까지 그 중심으로 믿어오는 곳이 바로 천주교입니다. 중세기 수없는 돈을 끌어모아 지은 것은 성전건축이 아니고 인간들의 눈요기 성취감 예술놀음 거석문화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성령이 없기 때문에 규모가 큰 건축물로 인간의 마음을 압박해야만 유지되는 종교입니다. 불교와 같이. 성당과 불당은 기와장 하나 벽지 하나 그 곳에 새겨지고 칠해지는 선하나 색깔 하나가 바로 당대 최고의 예술이라야 합니다. 불신자 건축학자나 미술학자들이 볼 때는 가치가 높은데 하나님이 볼 때는 우상 놀음이고 인간 놀음일 뿐입니다.
천주교에서 루터와 칼빈이 개혁하여 나온 우리 기독교는,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이 역사하셔서 그 인도를 따라 걸어가는 것으로 전부를 삼고, 이 말씀을 전할 때 비를 피하고 바람을 막고 그 말씀을 듣기에 편리한 건물이면 신약의 예배당으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말씀과 영감은 식어진 자리를 인간의 건축과 다른 프로그램의 열기가 그것을 대신한다면 이는 천주교로 돌아가는 반개혁주의 노선입니다. 천주교 회귀현상입니다.
오늘 대리석 등으로, 현대 예술미 등 여러 형태의 세상 기술과 예술로 치장한 건축물은 여기 백영희신앙노선이 지적하기 이전, 일반 교계 자기들이 그 출발점이라고 자기들 교회 소개란에 적어놓은 '개혁주의 신앙노선'이 정죄할 일입니다.
3.그러나, 오늘은 공회 노선의 교회들도 대거 따라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백목사님 생전은 그분의 가르침이 너무 밝았기 때문에 안면이 부셔서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남 눈치 볼 것 없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돈이 없어 그렇게 못하면 못했지, 돈만 동원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일반 세상 교회들을 따라 부지런히 짓고 있습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일반 예배당처럼 짓고 있기 때문에 그냥 속화의 과정이라고 이곳은 단정해 버립니다. 그 교회 내부를 조사할 필요도 실은 별로 없는 정도입니다. 예배당 외형만 봐도 이미 그 내부가 비취어 나오지 않습니까.
이런 시대에, 그 대형건물을 건축하고 마지막 마감처리를 시멘트가루를 물에 풀고 그 시멘트 물로 가지고 건물 외벽 전체를 칠하고 끝냈던 분이 백영희목사님입니다. 시멘트 물로 건물 외벽 전체를 다 칠하게 되면 건물의 외벽 방수로서는 가장 이상적입니다. 지금 별별 방수제와 마감처리재가 다 나와도 아직까지 그렇게 싼 가격으로 그렇게 완벽하게 방수가 되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구청에서 도시 미관상 서부교회 건축물이 그 규모가 너무 큰데 외형도 너무 보기가 흉하고 그 색상마저도 너무 촌스러워 꼭 고려해 달라고 정중하게 요청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페인트칠을 한 것이 현재 미색(?)계통의 그 색상입니다. 그분의 덧붙이는 말은, 남 눈에 보기 좋게 띄이려는 것은 죽으려고 애쓰는 것이라는 지혜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목회한 건물은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하신 사53:2의 예수님 모습 같았으나, 그 속에는 그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을 십자가의 좁은 길로 인도한 말씀과 영감이 있어 그 외형에도 불구하고 세계기독교 역사에 많은 기록들을 남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