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질문) 교회의 난립과 빚을 내서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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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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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34
7. (질문) 교회의 난립과 빚을 내서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3037
항상 목사님의 답변에 많은 지식을 쌓아가고 있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사는 곳은 광주시 택지개발지입니다. 그곳은 입주부터 교회의 건립이 난립하여 지금은 50여개의 교회가 그 지역에 세워있습니다.
심지어 100미터 내에 3-4개의 교회가 있는 곳도 있죠.
1.물론 하나님이 세웠기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한다는 견해라면 할 말 없구요. 이 모든 교회 들이 존중되어야 하는지 이런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나름대로 열심히 전도하는 교인들의 생활도 보기 좋습니다. 그러나 비신자들은 교회의 난립에 대한 비판으로 전도를 막는 경우가 있습니다.
2. 그리고 그 교회가 하나하나 영위해 가다 보면 그 경제력의 문제랄지 결국 교인들의 헌금은 교회건물의 영위에 허덕허덕 이것이 은혜로운 모습일지
3. 사회 참여의 문제- 그렇게 교회가 많아지고 교인의 수가 많아지는데 사회의 도덕과 정의 는 날로 악해지는 문제. 말세의 현상으로 취급하기는 너무 무책임한 교회의 태도.
4, 십일조의 문제- 너무 율법적인 것 때문에 이것이 혹시 전도의 걸림돌이 되는지는 생각지 않으시는지. 현실적으로 교회도 돈이 있어야 다니다는 것이 불신자들의 생각. 교회를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고 더 나은 방향의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고민이라 생각합니다.
수고하십시요.
(답변) 복음운동의 시선은 첫째가 하나님이고, 그다음이 안 믿는 사람을 향해야 합니다.
1.신도시 택지개발 지역의 교회 난립문제
①복음운동의 시선과 고려의 우선 순위는
첫째, 하나님을 먼저 상대하는 것이 항상 첫째가 되고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 다음에 생각할 것은 안 믿는 사람들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라는 의미는, 신앙이 가장 어린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신앙에 앞선 사람이 신앙어린 사람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죄되는 것이 아니면 최대한 양보하고 희생하는 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 가장 중요한 두 방향이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같은 이치입니다.
②신도시가 들어서면 예배당 종탑경쟁이 가장 치열합니다.
과연, 그 주택지에 그렇게 많은 예배당이 꼭 들어와야 할 이유가 있다면, 안 믿는 사람들이 뭐라 하든 말든 상관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곳에 그 예배당들이 과연 그들의 말대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에 따라 인도하시니까' 순종하여 들어왔는지, 그런 개념은 하나의 발표용이고 실은 고기떼를 뒤쫓는 어부들의 그물몰이를 위해 들어왔는지가 문제입니다.
③불신자에게 덕이 되려면, 교회와 신앙생활을 포기해야 합니다.
답변자는 손양원목사님이 두 아들 순교하고 자신도 순교한 바로 그 지역에서 목회하고 있습니다. 이곳 연세 많은 불신자들 머리 속에는 '그 양반 사람은 참 좋았는데.. 그만 좋은 자식 둘 그렇게 버렸지, 자기도 그렇게 비참하게 되어 버렸지... 참 안 됐어...' 이런 정도입니다. 현재 그렇게 말씀하시던 분 중에 답변자 교회를 나오는 분도 계십니다.
안 믿는 사람은 우리와 아는 것과 보는 것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 덕이 되려고 하려면 죽은 부모에게 제사를 드려야 해결이 되지 그렇지 않고는 사교집단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이 나라 선교 초기의 기독교가 섰던 입장이었습니다. 당시 천주교는 불신자에게 덕이 되어 선교에 도움이 되겠다 해서 제사를 허용했고, 교회는 끝까지 금했습니다.
정권에게 덕이 되려면 정권의 앞잡이가 되어야 하고, 시민운동이 자리잡는 현대 사회에서는 도덕적 기독교가 되어야 합니다. 교사들을 위해서는 교회가 교육지원단체가 되어야 하고, 노동자를 위해서는 교회가 인권신장을 위한 강의장이 되어야 합니다. 전주 이씨들을 위해서는 조선왕통을 오늘에 다시 재건하자고 해야 하고, 다른 성씨들을 위해서는 왕조정권을 밀어내야 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불신자 전체를 위해서는 기독교가 안 믿는 사람은 지옥을 간다는 과격한 표현을 철회하고 오늘 불교처럼 고기도 먹고 도시민들 산책로와 문화재 유지센타로 변해야 합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 덕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할 때는 항상 이 면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 앞에 죄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앞서 믿는 사람이 자기가 참을 수 있는 불편을 참는 정도로 덕이 되는 것이지 그 이상은 덕이 되고 싶어도 될 수가 없습니다.
④한 도시에, 몇 개의 교회가 적절한가?
이것은 안 믿는 사람의 시각입니다. 믿는 사람으로서는 그 교회가 그 지역에 꼭 필요한가를 생각할 뿐입니다. 예를 들면 꼭 같은 교리를 가르치고 꼭 같은 신앙노선에 있는 합동측 교회가 아파트 단지 하나 안에 2개나 들어선다면, 생각해 볼 일입니다. 꼭 같은 내용을 가르치는 감리교가 한 지역에 2개가 동시에 들어간다면, 좀 세심히 그 연유를 살펴볼 일입니다. 그러나 고신측 교단은 자기들만 옳다고 생각하는 교단인데, 어느 한 지역에 교회가 수십개 수백개가 들어섰다 해도, 고신 교단 교회는 하나도 없다면, 그렇다면 그 교회는 그곳에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같은 교단 소속 교회는 한 지역에 같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원칙을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외형적으로 동일 소속 교단의 교회들을 가지고 예를 드는 것은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 실은 내적인 문제가 더 큰 문제일 것입니다. 어느 한 지역에 찬송을 총공회 교회들처럼 조용하게 부르고 성경만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교회가 수십 수백개가 있는데, 어느 목사님이 예수는 그렇게 믿는 것이 아니라 밴드를 동원하고 풍선을 띄워 이벤트 행사를 하고 찬송 부를 때는 온 교인이 밤새도록 발을 구르고 손뼉을 쳐야 잘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교회는 기존 교회 숫자에 상관없이 들어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목회자 개인과 그 교회마다 인도하는 방향은 다릅니다. 그러나 어느 지역에 목회를 해야 하느냐는 문제는 하나님께서 개별적으로 인도하여 그 목회자가 개척을 하게 되는 경우보다 대개 사업적 안목으로 개척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그 사업의 기본 상식과 원칙에 따라 사업장을 마련해야 옳을 것입니다. 과연 그렇게 할 목회자나 교회가 있느냐고 반문한다면 현재 우리나라 교회의 양심 수준에서는 전혀 기대할 바가 못됩니다. 장사는 돈만 벌면 되듯이 교회는 교인만 많이 올 수 있다면 못할 일이 없는 것이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⑤조심할 것은, 사회나 국가가 외부에서 교회를 관리하는 것은 안됩니다.
교회의 타락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손으로 하도록 맡겨놓아야지 교회의 타락과 문제를 세상 정권이나 시민운동이나 사회 어떤 가치관이 개입한다면, 이는 구약으로 말하면 성전 침입죄에 해당되는 가장 무서운 죄가 됩니다.
교회의 숫자가 오늘 어느 지역을 보더라도 문제가 있다는 것은 말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교회들 중에서 어느 교회들이 문제냐는 것은 섣불리 말할 수 없습니다. 뒤에 들어온 교회라고 잘못했다 할 수 없고, 작은 교회들이라 해서 잘못이라 말할 수도 없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여러 가지 상황을 가지고 판단해야 하는데 이는 서로가 속으로 짐작하는 것으로 그쳐야 할 문제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 세상 사람들이나 교인들 중에서도 교회를 하나의 산책로 걷듯 그 정도로 믿기를 원하는 감상주의 교인들은 괜찮은 교회 몇 개만 남기고 뒤에 들어오는 교회나 작은 교회들은 없애기를 원하는 발언들이 서슴치 않고 제기됩니다. 한 동네 어머니들의 숫자를 80 - 90% 없애버리되 유지시킬 어머니의 기준은 대학을 나오고 교양이 있으며 .... 이런 식으로 통폐합할 수가 있는 문제인가를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물론 요즘 진짜 어머니는 희귀종이 된 시대입니다만 그렇다고 연애해서 결혼하여 어머니가 된 어머니들은 질이 나쁘다 해서 제거해 버리고, 또 선천적 질병을 가진 어머니들은 좋은 품종 유지에 문제가 있다 해서 제거해 버리는 식이라고 한다면 히틀러가 한번 해 봤던 일이니 역사에서 한번 구경하고 말 일이지 그런 일을 오늘 교회를 향해서 그렇게 해 봤으면 하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이런 의논은 주로 진보주의 기독교, 소위 사회 활동을 앞서 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에 의하여 제안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비록 신학자요 목회자들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불신자급입니다. 그들의 말을 듣는 것보다는 불교 유신론을 제창한 한용운이 말을 듣는 편이 오히려 세상 양심에 가까울 것입니다.
⑥총공회는 다른 교회들이 없는 곳에 주력하고 왔습니다.
아무 교회도 없는 면에 교회를 세우거나, 아니면 다른 교파들이 도시 밀집지역에 교단의 세력 확장을 위해 총력을 기울일 때, 있던 목회자들도 빠져 나가는 시골 교회에 교단의 주력 목회자들을 파송하여 시골 강단을 오늘까지 지켜오고 있습니다.
잠실동에서 대형목회를 하던 총공회 유력 목회자 한 분이, 총공회가 발전하지 못하는 원인을 지적하면서, 총공회에서 가장 유력하고 희망있고 실력있는 젊은 교역자들을 시골 몇 명 있는 교회에 전부 하나씩 쳐박아두고 있으니까 다른 교단들은 쑥쏙 자라가는데 총공회는 도태되고 있다고 백영희목사님의 공회 교역자 인사방향을 질타한 적이 있었습니다.
백목사님의 답변은, 다른 교단들은 교회의 교세 확장이 중심이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이 세운 교회를 하나님 앞에 교회로 상대하고 또 시골 한 두 사람 앉아 있는 그 교인도 하나님이 맡긴 신앙의 자녀이므로 부모된 심정에 자기 출세를 위해 자기 새끼를 던져 버릴 수 없는 면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만일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백목사님과 같은 목회관이 정말 그들 마음 속에 있다면 한국교회의 모습은 이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답변에서 백목사님의 목회를 소개하거나 타 교단의 교회 운영방향을 비판하기에 앞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그것이 옳지 않으면 나는 가지 않으면 되고, 남에게는 설득이나 권면은 할지라도, 남들의 잘못 가는 방향을 뒤따라 다니며 늘 욕하고 사는 것은 우리 할 일이 아니며, 더구나 한 지역에 수많은 교회가 들어왔다 해도 속으로 짐작은 하겠지만 겉으로 교회가 많아서 탈이라는 표현을 할 때는 대단히 신중해야 합니다.
교회가 지나치게 많은 것은,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정상대로 개척하고 교회를 교회로 상대하며 나간다면, 교회는 지금보다 그 숫자가 더 많아져야 합니다. 이 나라가 예배당으로 다 뒤덮일 때까지 우리는 개척을 하고 또 교회 부흥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합니다. 다만 현재와 같이 목회자의 구멍가게 오픈이나 신장개업이나 가게 이전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은 그런 가게가 한 지역에 하나만 있어도 그 자체가 불행입니다.
⑦교회가 어떤 동기와 이유 때문에 많아져도, 많아져서 유익된 것 하나가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이 교회를 다닐 확률은 높아집니다. 무엇이라고 욕을 해도 교회가 많아지면 안 믿는 사람이 교회를 다닐 기회는 확실히 높아집니다. 따라서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은 자기 영업 때문에 구멍가게로 오픈을 하겠지만, 그 가게를 찾아갔다가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는 분들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교회가 많아져서 생기는 문제점은 불신자들을 향한 것이 아니고 교회 내부를 가속도로 썩게 만듭니다.
따라서 교회 난립이라는 표현은, 실은 사회나 불신자들에게는 더 없는 행운이고, 믿는 교회 내부를 본다면 교회의 단체 속화 타락으로 교회가 스스로 생명을 잃어버리는 말기적 현상으로 봐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 난립이라는 표현을 두고, 불신자나 일반 교단의 시각과 이곳의 시각은 전혀 다릅니다. 걱정은 함께 하는데 걱정하는 이유는 정반대입니다.
2.연보 문제도 현재 교회 안팎에서 지적되는 문제입니다.
①경제에 관한 한, 지금 이 시대는 배가 너무 불렀습니다. 체중 감량이 절실한 때입니다.
분명한 것은, 현재 교인들의 생활은 배에 기름이 너무 많이 깔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답변자가 살고 있는 시골에 사는 개들도 쌀밥만 주면 맛이 없다고 입을 닫습니다. 장애자 부부가 사는 집에도 옷이 넘치고 먹을 것이 넘쳐 부부가 함께 지금 고혈압 당뇨 걱정을 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따라서 현재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 먹느냐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어떻게 덜 먹어서 살을 빼느냐는 문제를 심각하게 직면하고 있습니다. 과도하게 먹어 과도하게 살이 찌고, 과도하게 살찐 것을 빼느라고 병원과 건강센타들이 돈을 벌고, 먹는 것을 조절하지 못한 사람들은 병원에서 환자로 남은 생을 보내야 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남한 사회를 평양의 정권을 잡은 사람이 1년만 대신 경영해 주면 남한 사회 전체가 비만과 비만으로 인한 공포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북한에서 온 장관들의 얼굴과 풍채를 보시면 알만 하지 않습니까?
②정상대로 체중관리가 안 된다면, 착취자가 나서서 강제 감량이라도 해야 할 때입니다.
교인들도, 지금 선배들이 잘 믿은 덕으로 신약교회 역사상 일찌기 누려보지 못한 신앙자유와 경제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물론 목회자들은 돈에 걸식 귀신 걸린 사람들이 되어 죽을 동 살 동 모르고 더 빼먹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역으로 이런 목회자들의 착취 행동은 교인들에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과도한 경제와 생활력을 일부 살빼기를 하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사람의 몸도 지나친 영양을 가지면 건강에 치명적 손상을 입히지만,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경제도 적정선 이상의 경제를 보유하고 있으면 경제적으로 그 가정에 치명적 성인병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교인들의 경제 보유 현황을 잘 파악하여 그들에게 복이 가도록 연보 길을 터주는 목회자도 있겠지만, 대개 목회자들은 목적이 그렇다고 해놓고 실은 교인들이 먹고 찐 살을 빼앗아 자기들 체중을 늘리는 일에 전념을 하고 있습니다.
③목회자들의 연보 모금운동은 교인에게는 적정 체중 조절의 효과가 있습니다.
답변자는 내심으로 목회자의 경제 몸무게를 사례의 1/2로 계산하고 있습니다. 100만원 사례 받는 목회자는 몸무게가 50kg 밖에 나가지 않기 때문에 잘못하면 영양부족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만일 목회자 사례가 월 200만원이라면 그분의 체중은 100kg, 만일 사례가 월 400만원이라면 그분의 체중은 200kg 가 되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너무 살이 쪄서 일찍 죽고 복이 없을까 해서 목회자들이 대신 먹고 대신 죽어가는 세상입니다.
교인의 입장에서는 목회자가 사례를 많이 받아 타락할까 해서 덜 주자는 것은 복이 없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교인의 경제를 최대한 짜내어 그들에게 복을 주자고 하면서 자신들의 입을 배불리는 일은 자살행위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정상적으로 짜낸다면 교인은 교역자의 연보 모금행위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이 바로 믿기 위해 연보법을 따라 성실하게 연보하는 것이 옳습니다. 만일 자신의 연보 뿐 아니라 교회의 경제 관리 전체가 교회라 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교회 자체를 옮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④예배당 사치에 대한 말슴도 하셨는데, 이는 목회자가 입어서 없애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자기 배를 불리는 방법은 먹어 없애는 것도 있으나, 입어 없애는 것도 있습니다. 예배당 건축이 교인들의 일반 경제에 비하여 과도한 경우는 먹어 없앤다는 표현보다 입어 없앤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추위를 피할 정도의 옷, 질겨서 잘 헤지지 않는 옷, 남에게 눈쌀을 찌푸리게 하지 않을 옷, 청결한 옷, 이런 정도면 될 것인데, 예배당을 10만원짜리 오리털 파커 대신 1억원짜리 모피로 둘러쌓고 있는 것은 목회자의 사치입니다.
예배당 건축 문제와 십일조 등 경제 운용을 두고는 /연구실/쉬운문답방/에서 며칠 전 살펴본 자료가 있으므로 우선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찾기가 쉬운 위치이므로 바로가기를 걸지 않고 목록만 제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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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0번, 십일조와 교회운영 성도 03/10/25
1421번, 1.십일조는 ①분량으로는 1/10 ②사용방법으로는 하나님 처분.. 03/10/25
1422번, 2.문제는 내가 십일조를 무조건 믿고 맡길 교회란 어떤 교회냐.. 03/10/25
1423번, 3.이제 말씀드린 경우에 다 해당이 되지 않으면, 본인이 십일조 .. 03/10/25
1424번, 4.예배당 건축 규모 0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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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교회의 사회 참여 문제
교회가 세상의 도덕과 정의에 대하여 빛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시각에 대하여는 이곳의 시각은 일반 교계나 세상과는 정반대입니다. 교회가 정상적으로 잘 믿게 되면 세상에게 하나님을 믿어 천국가는 신앙을 알게 하고, 이 세상은 두고갈 거짓된 곳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만듭니다.
가난한 사람이 굶는 것에 대하여 교회가 귀를 기우리고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식이 소위 기독교의 사회 참여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그 가난하여 굶는 사람에게 구호품이나 돈을 희사하는 것은 너무 너무 위험하여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런 구호활동보다는, 왜 가난한 그 사람이 가난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고, 또 말씀을 모르고 살아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가난의 원인인 죄를 가르쳐 하나님과 말씀을 알게 하면 나머지 문제는 저절로 해결이 된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진정한 방법은, 그 가난한 사람들을 신앙으로 바로 인도할 수 있는 교회와 목회자와 앞서 믿는 사람을 그들에게 접촉시키는 것이니 그들을 전도하고 심방하는 것이 교회가 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깨달아서 돌이키게 되면 그들에게 필요한 돈과 물품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직접 제공하실 것입니다. 이 방법 대신 현 교계나 사회 일각의 시민운동가들이 노력하는 바는, 거지들에게 복받을 길은 막아놓고 자기들이 가진 것을 동냥해서 자기들 이름을 내고 있다고 개탄하는 것이 이곳 시각입니다.
4.덧붙여
이번 질문은 무거운 질문이어서 답변에 힘이 들었습니다. 마치 답변자만 빼놓고 나머지 목회자만 해당된 병폐라고 지적한 듯 하여, 이런 답변을 드릴 때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분명한 것은, 경제면으로만 말한다면, 또 교회를 교인 숫자 확장에만 주력시키는 문제만을 가지고 말한다면, 이곳 백영희신앙노선에 있는 목회자들은 비판보다는 모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이 문제만 신앙에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항목도 수도 없이 많은데, 그런 분야에 대하여는 이곳도 다른 목회자보다 더 단점이 많아서 책망받을 일이 있을 것입니다.
서로 단점을 자꾸 지적하여 함께 깨어 고쳤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신앙 어린 첫 교인에게는 장점만이 필요한 단계입니다. 그들은 안 믿던 사람들이니 그들의 단점을 말한다면 한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좀 철이 들만큼 신앙생활을 한 교인들 그리고 목회자들의 경우는, 고쳐야 할 단점을 집중적으로 살피는 것이 하늘나라에 가서는 조금이라도 후회를 줄일 것이고, 서로가 칭찬만 하다가 서로가 정말 잘 믿는 줄 알고 그곳에 갔다가는 생각못한 모습을 봐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