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질문) 교회노선과 개인노선이 다른 경우 2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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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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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34
5. (질문) 교회노선과 개인노선이 다른 경우 2818
목사님 교회의 노선과 저 개인의 노선방향이
많이 다르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그리고 목회자와 성도들간의 마음의 골이
깊어져 교회가 계속 죽어가고 있고
그 영향에 따라 청년들과 학생들이
믿음을 점점 잃어가고 세상에서 방황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개인적으론 목사님을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를 해보고픈 마음도 있습니다.
좋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답변) 질문 내용이 간단하여 간략하게 소개했습니다.
1.노선이 다르면 나누어 서는 것이 복입니다.
신앙의 노선이 다르면 각자 옳다고 느끼는 방향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노선이 다르다는 말은 가는 길이 다르다는 말인데, 가는 길이 다른 사람끼리 나뉘지 못하고 한 자리에서 갈등하고 있다면, 신앙의 본질을 바로 파악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장로교 신앙노선이 옳다는 사람이면 침례교회에 있으면 안 됩니다. 반대로 침례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면 장로교회를 다니는 것은 비양심입니다. 인정에 끌렸던 사정에 끌렸던 신앙노선을 꺾고 세상 이유나 어떤 인간적인 이유에 매여 자기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교회를 다닌다면 이는 죄가 된다고 보셔야 합니다.
2.교회 내의 갈등 중에서 신앙노선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음을 유의하셔야 합니다.
문제는 '신앙노선'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설교를 30분만 하면 좋겠는데 설교를 50분이나 하는 목회자가 있다고 할 때, 교인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신앙노선이 아니고 개인 취향이며 개인의 체질 문제입니다. 대개 교인측에서 목회자를 반대할 때, 내 입맛에 맞지 않아서 반대한다는 말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목회자의 신앙노선에 문제가 있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진정 신앙노선이 무엇인지를 모르면서 신앙노선이라는 말을 하기가 쉽습니다. 현재 질문자께서 고통 중에 계시는 문제는, 과연 신앙노선 문제인지 아니면 질문자와 교인들의 취향인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면 목회자가 사례를 챙기는 것은 아무리 많이 챙겨도 신앙노선 문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목회자가 술을 좀 마신다고 해도 그런 것은 노선 문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따지다 보면 목회자가 신앙노선 문제로 걸리는 경우는 비교적 적습니다.
신앙노선 문제가 아니라, 그냥 사람마다 달리 생각할 수 있고 또 사람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반대로 생각할 수 있는 문제는 교인으로서 입을 닫는 것이 옳습니다. 꼭 발언을 하시려면 창세기 9장 20절 이하 끝절까지에 나타나는 셈과 함과 야벳에 대한 자세를 면밀하게 살펴보시기를 권합니다. 이곳 홈 /초기화면/활용자료/녹음본/에서 1983년 창세기 9장 설교를 참고하시면 충분할 것입니다.
요는, 어느 교역자 어떤 형편의 어떤 사람이 와도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은 쉽게 표현해서 '신앙노선' 문제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에 따라 또 형편과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는 대개 신앙노선 문제가 아니라고 보시면 거의 맞습니다. 이곳 홈이 견지하는 노선은 '백영희신앙노선'입니다. 이 신앙노선으로 예를 든다 해도 노선문제라고 잘라 말할 수 있는 사안은 거의 없는 정도입니다. 거의 모든 교회 문제들은 따지고 보면 교인들의 감정, 이해부족, 성격, 오해 등으로 발생하는 '접촉사고'입니다.
이런 경우라면, 교인으로서는 공개적으로 교역자를 반대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또한 이런 경우라면 교인들이 연계해서 공동 행동을 취하는 것도 극히 위험한 일입니다.
3.꼭 신앙노선 문제라고 한다면, 조용하게 교회를 떠나는 것이 옳습니다.
목회자와 교인이 신앙노선 문제로 엇갈리게 되면, 첫째 해야 할 일은 상대방의 주장과 행동을 가지고 인간적 감정이나 느낌과 같은 것은 최대한 배제하고 순수하게 원리원칙대로 따지고 볼 때 과연 이것이 신앙노선 문제에 해당되는지를 살펴보셔야 합니다. 만일 신앙노선 문제라고 확신이 되면 그다음에는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해 보는 것이 옳습니다. 충분히 토론을 하고 따져봐도 나는 이쪽이 옳고 상대방은 저쪽이 옳다고 한다면? 나뉘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뉘게 될 때에도 나뉘는 방법을 서로 이치로 따져서 최대한 신앙양심대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어느 한쪽이라도 옳은 노선을 찾아 바른 자세로 나뉠 방법을 찾게 된다면 전혀 소란이 일어날 필요가 없게 됩니다. 물론 너무 그 정도가 심한 경우는 잠깐 소란한 경우는 있겠지만 그것이 계속되거나 그 이상 격화된다는 것은 둘 다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의 그 교회 경력과 수고, 교회의 특별한 과거, 교인들의 전체 향방, 그 교회 중심교인들의 결정 등을 고려해서 두루 살펴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게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적지 않은 교회 분규를 직접 상대해 보았지만 그 해결방법이 양측을 비롯하여 외부 불신자까지 다 불러놓고 따져봐도 너무 간단하고 쉽게 그 선을 정할 수 있었지, 애매해서 어려운 경우는 없었습니다. 문제는 막 가는 사람이 있는 경우입니다. 그렇게까지 나오는 분이 있다면 하나님께 맡겨놓고 옳은 것을 주장한다는 측은 양보할 수밖에 없는 것이 교회입니다.
4.비록 노선문제 때문이라고 해도, 이런 면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 교회가 자기 원래 모교회인 경우는, 자기가 견디고 버틸 수 있는 데까지는 기도하고 인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교회에 다니게 된 배경과 그동안의 과정에 따라서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또 교회를 옮긴다고 해도, 막상 옳겨간 교회에서도 꼭같은 일이 생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때 가서 그렇게 될 것 같으면 차라리 옳기지 말 것을, 하고 후회하는 분들을 적지 않게 보고 있습니다. 노선이 맞지 않다 해도 나가봐야 마찬가지고 또 집에서 예배를 본다 해도 오랜 세월을 그렇게 할 수 있는지를 잘 살펴서 행동하는 것이 올을 것입니다.
서로가 냉정하게 깊이 따져보고 꼭 노선문제로 맞지 않으면 비교적 적은 쪽이 개척을 나가고 많은 쪽에서 충분히 개척 비용을 부담하면 좋을 터인데, 아직까지 이성적으로 이런 문제를 냉정하게 처리하는 분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재질문) 담임목사님의 목회 방향이 문제입니다.
담임 목사님의 목회 방향이 신앙보다는 공부를
신앙보다는 일을 신앙보다는 세상에서 성공을
교회보단 자신의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방향인 것
같으면 어떻하죠?
(물론 제 관전에서 그렇게 보이는 거지만요)
(답변) 목회의 강조와 방향은, 신앙노선이라 하기에 너무 어렵습니다. (보충)
1.목회자가 목회차원에서 말하고 행동했다고 하면, 거의 모든 것이 다 묻히게 됩니다.
공부가 신앙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교리'로 말한다면, 이는 신앙노선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밤 예배를 빠지더라도 공부를 잘 해야 한다고 강조하거나 교인들을 지도하는 것이 '목회 현장의 지도 차원'이라고 한다면, 이는 신앙노선으로 섣불리 단정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학생은 밤 예배 참석보다 학교 밤자습을 해야 할 정도의 신앙밖에 안되는 경우도 있고, 또 그 학생의 현재 신앙의 상황이 그런 내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게으른 사람이 일하기가 싫어서 하루종일 잠이나 자고 가족들에게 짐덩이만 되어 있는데, 누가 1개월간 3교대로 일할 곳이 있다고 제의를 할 때, 목회자로서 그 사람이 밤예배 빠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일을 가라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은 일하기 싫어하는 그 인간성이 가장 큰 단점이므로 그 인간성을 고치기 위해 예배를 빠지더라도 1개월간 일을 가도록 하라고 지도를 해야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2.사람을 지도하다 보면, 설교보다 매를 맞아야 좋겠다고 판단될 때가 더러 있습니다.
교회 나와서 기도할 때는 1등이고 찬송 인도 할 때는 천사인데, 자기 집에 가서는 제 부모를 발로 차는 못된 놈들이 가끔 있습니다. 말도 잘하고 억지도 잘 부리고 어릴 때부터 얼러 키운 호로자식인데, 이런 것을 교회에서 가르치려니까 목회자의 권능이 부족하고 집에서는 아무도 당해낼 재주가 없습니다. 이런 경우는 교도소를 한번 갔다오든지 군대 가서 죽도록 맞아야 사람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과거 백목사님이 어떤 청년을 해병대 지원하도록 지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일찍부터 집을 떠나 신앙도 가정도 인생도 다 포기하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 청년은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세상 노는 것과 주먹 쓰는 것을 배운 사람입니다. 그 청년을 사람 만드는 방법으로는 어떤 규율에 얽매이고 제 마음대로 하려고 하면 매를 맞아 강제를 당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청년이 중학교도 졸업을 못했기 때문에 당시 해병대 기준으로 지원자격이 되지 않자 아는 사람에게 졸업장을 하나 부탁해서 해병대 지원을 하게 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목사님에게 해병대 면접 시험이 주일이어서 주일을 범할 수 없어 지원을 못하겠습니다 라고 하자, 백목사님은 너는 주일을 어겨도 괜찮으니 해병대를 가라고 지도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지도는 공개적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신앙어린 사람이나 현실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칫 혼동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목사님 자신은 주일을 위해 목숨을 수도 없이 내놓고 살아왔고 그 밑에 교인들도 대부분 그러 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의 경우는 주일을 지키는 것이 급한 것이 아니라 먼저 매를 맞고 윗사람에게 눌려서 통제가 될 수 있는 생활 자세를 만드는 것이 급했던 것입니다.
3.중심이 삐뚤어졌는지 옳은지는 잘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목회자 반대가 그래서 어렵습니다.
혹 질문자 교회 목사님께서 이런 중심을 가지고 교인들에게 돈이 더 중요하고 일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친다면, 그 표현만 가지고는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목사님의 중심을 다른 사람이 판단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그 목사님이 속으로는 세상과 돈이 더 좋다 해도 겉으로는 이런 논리로 말한다면 교인으로는 알아도 반대할 수 없게 됩니다.
총공회 소속 교회는 목회자 시무투표 제도를 2년마다 시행하게 되는데, 바로 이런 애매한 문제 때문입니다. 평소 애매한 것은 목회자가 자기 원하는 대로 마음껏 목회를 하되 그 대신 2년이 지나고 나면 교인들이 비록 목회자에게 뚜렷한 흠과 잘못이 없다 해도, 교인들의 소신껏 불신임을 시켜버리면 됩니다.
목회자는 평소 목회에 있어 소신대로 처리하고 그대신 2년마다 한번씩 교인들은 자기 소신대로 자기 취향대로 목회자의 거취를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인이 시무투표에서 어떤 이유로 불신임을 하든지, 목회자는 그 결과에 아무 이유를 달지 못하게 합니다. 심지어 교인이 사적 감정으로 목회자를 불신임해도 목회자는 이유를 달지 말라는 것이 그 제도입니다. 이유는, 평소 목회자가 어떤 행동을 해도 교인으로서는 목회자 처분과 행동에 따질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4.목회자 신임투표제도로 교인들이 마음껏 투표할 수 없다면, 목회자 탈선은 막을 수 없습니다.
목회자가 진심으로 충성하고 진정으로 충성했다면, 2년 후 신임투표에서 교인들은 그냥 자신들이 은혜가 되기 때문에 신임을 할 것이고, 목회자가 증거가 어디 있느냐 하면서 속으로는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평소 행동한다면 교인들은 2년 후 그 목회자에게 은혜가 되지 않는다는 교인들의 주관 판단을 가지고 불신임을 시킬 것입니다.
지금 질문자께서 총공회 신임투표 제도를 시행하는 교회 소속이라면, 2년간은 목회자가 불상을 강단에 올려놓는 정도가 아니라면 입을 닫는 것이 옳습니다. 그대신 2년 후에는, 질문자가 자기 양심에 현 목회자가 세상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면 양심에 전혀 거리낌없이 불신임하면 됩니다. 또 주변 교인들 중에서 그 목회자의 내면 문제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설득을 시켜서 불신임을 지도해도 됩니다.
그러나 지금 질문자께서 신임투표처럼 그런 제도가 없는 곳이면, 거의 목회자를 대상으로 목회자의 잘못된 방향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오로지 기도할 뿐입니다. 그리고 목회자가 시정할 희망이 없고 본인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면 그 교회를 조용히 떠나는 것이 옳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