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질문) 교회 이동시 구역 식구는 5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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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34
6. (질문) 교회 이동시 구역 식구는 5728
부산공회 소속 교인으로 최근에 교회를 이동하였습니다.
더 보수적인 공회로 이동을 하였고 이동하기까지는 많은
세월과 갈등이 있었고, 주관이나 감정 사정에 의한 이동이
아니고 신앙을 살리기 위한 이동이었으며, 소속을 옮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에 소속된 교회가 대형 교회이고 저도 평교인이라서 떠난
다고하여 마찰이 일어날 여지는 없지만 혹시 불필요한 오해가
염려되었고 또 가족 같은 구역장님 면전에서 차마 이동 하겠다는
말은 할 수 없어서 다른 사정을 설명하고 조용히 옮겠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가장 기뻐한 일이 이번에
교회 이동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옮기고 보니 너무
잘 했다는 생각과 말할 수 없는 평안을 느낍니다.
제가 전도한 식구가 몇명 있는데 이분들은 교회 출석한지 몇년 되지
않았고 노선이나 소속 등에 대해 잘 모르는 약간은 믿음이 어리다고
보아야합니다.
이 분들은 기존 교회에 계속 다니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기존에 다니든 교회는 익숙해서 편안하고 옮기는
교회는 익숙하지 않아 심적으로 약간 불편한 듯 합니다.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갈 수 없고 또 깊은 신앙 길을 설명해도
잘 알아듣지도 못하니 '자신의 신앙이 성장 할 수 있고, 믿음에
유익이 되는 교회를 스스로 생각해 보고 교회를 선택해라'는
말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붙여준 식구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교회를 이동시 구역 식구는 어떻게 권면하는 것이 좋겠는지요?
그리고 질문의 범위가 넓지만 전도한 식구에 대한 책임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요? 예를들어 끝까지 기존 교회에 다니겠다고 하면
저로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으니 그분들에 대한 저의 책임은
끝나는 것인가요?
종종 연락은 하고 신앙을 챙기겠지만 출석
교회가 다르면 전에보다는 신경이 덜 쓰일 것 같습니다.
(답변) 교회 이동과 교인 책임
1.교회나 교단의 소속 문제
①소속 변경과 관련하여 기억할 2가지 원칙
이곳 문답방 게시판에서 교단이나 교회 소속 문제로 몇번 안내드린 적이 있습니다.
소속 문제를 두고는 '현실'과 '인도'라는 큰 2가지 원칙을 가지고 살펴봐야 합니다.
첫째, 현실의 원칙
현재 주어진 환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최적 최상이라는 뜻이니, 어떤 현실이든 만족하고 그 현실 속에 문제가 있을 때는 그 현실 안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신앙은 '보수'와 '충성'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둘째, 인도의 원칙
우리 평생에 순간도 그냥 두지 않으시고 늘 다음 단계로 가르치고 데려가는
하나님의 인도의 역사가 있어 이것이 우리에게 늘 '변화'와 '발전'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②하나님께서 2가지 중 어느 원칙을 요구하는가
현재 위치를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인가, 현재 위치를 옮기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인가?
직장 결혼 편입 전과 이사 진학 ... 등 세상에서도 수많은 문제로 우리는 고민하게 되고
교단이나 교회 소속 문제를 두고는 정말 고민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체질이 보수적인 사람은
현실에 충실해야 하는 '현실의 원칙'을 지키는 것은 장점이지만
하나님께서 새로운 것을 주시거나 가르치려고 인도하실 때 거역하는 단점이 있고
체질이 변덕스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새로운 세계를 따라 순종하는 면은 장점이지만
신앙에서 생명처럼 지켜야 할 본질적인 것을 쉽게 포기하는 것이 큰 단점입니다.
문제는
지켜야 할 때와 옮겨야 할 때를 어떻게 구별하고 어떤 기준으로 살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③하나님의 인도를 두고 성공과 실패의 예를 든다면
1959년 9월에 백목사님은 고신을 떠나게 됩니다.
그때 변화가 두렵거나 보수가 체질이거나 아니면 게을한 사람 또는 현재 이권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그대로 고신에 남게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인도가 있을 때는 야곱이 애굽을 향한 것처럼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난 것처럼 단번에 순종하여 향후 그들의 수십년 신앙생활에 엄청난 차이를 나타내게 됩니다.
박인순 조수옥 주경순 이인재 안용준 등 고신 내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졌던 수많은 분들이 백목사님과 함께 고신을 떠나야 할 때에 떠날 시점을 놓쳐서 역사속에 안타까운 신앙에 머문 예가 됩니다. 반대로 이말출 나인숙 김현찬 김효순 등 고신내 유명했던 몇 분들과 소수의 무명 목회자들 그리고 젖먹이처럼 안겨서 그냥 따라간 몇몇 교인들은 그들의 평생을 뒤돌아 볼 때 당시 하나님께서 다음 단계로 인도하는 변화를 바로 쫓아갔기 때문에 굉장한 신앙훗날을 갖게 됩니다.
1980년대 후반에 출옥성도로 유명하고 고신의 최고 원로에 있었던 분들이 서부교회를 거의 몇번씩 방문하여 목사님과 과거 대화를 가진 적이 있고 답변자는 당시 그분들의 대화와 부러움 등 많은 면을 직접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고신의 산역사라 일컫는 남영환목사님이 백영희조사건은 고신 전체가 흔들릴 사안으로 경계했던 이유가 세월 속에 전부 증명이 되었습니다.
④소속 변경을 두고 살펴볼 기준은
첫째, 신앙노선의 본질에 대한 문제냐는 것을 살펴야 합니다.
단순히 목회자의 설교 은혜가 더하다 덜하다는 문제는 우선 교인이 기도할 문제이지 성급하게 목회자를 바꾸거나 교회를 바꾸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사울의 경제정책 실패는 다윗이 사울을 떠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이스라엘의 계통문제가 근본적으로 생겼을 때는 그를 떠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내부에서 노력해야 할 때가 있고 떠나야 할 때도 없지 않습니다.
교회나 교단이 반드시 지켜야 할 근본 신앙노선을 어기고도 그것을 돌이킬 여지가 보이지 않을 때, 그런데 나에게는 그 전체의 노선을 바로 세울 위치나 실력이나 책임을 주지 않으셨을 때, 이런 경우는 소속을 옮길 수 있습니다.
둘째, 내 힘과 내 여건도 살펴봐야 합니다.
비록 신앙노선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지만 나의 신앙이 어려서 더 이상 견디게 되면 신앙자체에 손해를 보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앙원리와 남들의 경우로 말하면 옮길 문제가 아니라 해도 나에게는 신앙의 본질적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옮긴다 해도 옮기는 분들이 자기 마음 속에 임시 피난이라고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보통 첫째 기준이면 판단하기가 쉬운데 두번째 기준이 되면 판단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더 견딜 수 있는데도 괜히 한번 바꾸고 싶은 심리가 작용하여 소위 마음에 바람이 들어서 들썩거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사람들이 남들에게는 둘째 경우라고 하면서 옮기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자기 관계이므로 남들에게 이해를 시켰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⑤성경으로 살펴본다면
아브라함 시대 아브라함은 아내와 종들은 명령 하나로 데려갔고
처자식을 둔 롯의 경우는 그가 좋아서 따라와야 데려갔으며
다른 본토 칙척 아비 집의 모든 이들은 그들이 머뭇거리므로 두고 나왔습니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반대면을 열어주며 밀어내도 따라오는 것이 최고의 신앙지도입니다.
예수님이 고기잡는 어부가 되자며 먼저 제의한 제자들은 그보다 못한 신앙들이었습니다.
만일 따라나서면 엄청난 부와 명예를 안겨주겠다고 협박하고 꼬시던 출애굽의 경우는 막가는 신앙수준이었습니다.
룻의 경우는 모압 땅이 자기 현실이지만 나오미의 신앙 방향에 맞추어 자기의 과거 모든 것을 정리합니다. 나오미의 경우는 이스라엘에서 그대로 있었어야 했는데 떠난 것이 잘못이었고, 이제 모압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것은 소속을 옮겨야 할 상황을 바로 알고 바로 행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 가장 편리한 곳 가장 좋은 곳 하나님의 말씀으로 약속이 된 곳을 찾아나선 것이 성경입니다. 오늘 우리도 각자 그런 길을 찾아야 하는데 본인이 본인의 결정으로 해야 합니다.
2.질문자의 경우
①노선으로 더 가까운 곳으로 이동했으면 잘했습니다.
고신이나 합동 교인이 통합이나 기장쪽으로 교회를 옮겼으면 눈을 딱 감고 틀렸다 하겠으나
통합이나 기장쪽에서 고신이나 합동 쪽으로 이동했다면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통합이나 기장측의 중심인물이거나 처음부터 그곳에서 자라나왔다면 옮기지 않고 자기로 말미암아 그곳이 바른 길을 찾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힘이 없고 해봐야 싸움만 생겨 죄만 짓게 되거나 하여 자기로서는 자기가 감당할 사안이 아니라고 한다면 바로 옮겨야 합니다.
이 노선으로 말하면 서울공회가 대구공회로 대구공회가 부산공회로 소속을 바꾸었다면 잘한 것입니다. 만일 부산공회 내에서도 부공2에서 부공1이나 3으로 옮겼다면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넓게 믿고 싶은 분이 그리 했다면 겉으로는 잘한 것처럼 보여도 내용적으로는 굉장히 두려울 일입니다.
일반 교계의 경우, 또 이곳에서 소개하는 공회 간 문제를 두고는 이제 설명드린 경우는 소속을 옮길 수 있습니다. 만일 옮기는 분들이 있다면 굉장한 결단입니다. 그러나 같은 소속 내에서 교회를 옮기는 문제는 최대한 조심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같은 노선일 때는 앞에서 소개한 두번째 경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②소속을 바꿀 때 자기 맡은 식구의 경우
자기 판단이 거의 없을 정도의 어린 사람이면 잘 설명해서 데려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혼자 넘어지면 혼자 다치지만 만일 두 아이를 업고 안고 있는 아이들 엄마가 넘어지면 3명이 다치게 됩니다. 판단없는 교인을 데리고 움직일 때는 그냥 해보는 말 정도로 책임감을 느낄 것이 아니고 그들의 영원한 호소와 감사를 두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아무리 어린 교인들이라 해도 그리고 그들이 신앙 외에 다른 문제 때문에 주저한다 해도 설명하고 타이르는 것은 할 수 있으나 무리하게 움직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신앙의 근본은 자유성입니다. 자유성을 누르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단정하시는 것이 신앙세계의 판단과 행동에서는 늘 좋습니다.
아무리 아까운 식구들이라 해도
설명하고 안내하고 잘 가르쳐 보고도 안 되면 그들의 신앙앞날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자녀들도 자기 판단이 조금 생기기 시작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런 면에서 대개 교회 내 분열이 생길 때 가족단위로 전부다 이쪽으로 또는 저쪽으로 옮기는 것은 그들 전체의 평균신앙이 엄청나게 어리다는 증거입니다. 부모는 저쪽 교회로 가지만 신앙문제에 관하여서는 나는 여기서 신앙생활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남아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남편과 아내도 서로 다르게 출석할 수 있습니다.
③한 가지만 더 소개드리면
우리가 다 부족하고 어두운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아는 대로는 잘 믿어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대할 때마다 현재 내가 아는 범위에서 단행하면 혹 판단이 잘못되었다 해도 하나님께서 나중에 수정을 시켜주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분들은 훗날 생각할 때 자기의 당시 결정과 행동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 증명되는데도 여러 가지 이유로 자기의 잘못을 복구하지 않습니다. 비록 판단과 행동은 잘못될 수 있다 해도 약간의 세월이 지나가면 우리는 그 당시 우리가 행동한 것이 옮았는지 아니면 오판을 했는지 알게 됩니다. 잘못 판단하고 잘못 행동한 줄 알게 되면 즉시 돌이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이 나뉘었는데 나뉘던 당시는 여로보암과 르호보암 둘 중에 어느 쪽을 따라야 할지 구별하기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가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법이 급격하게 달라지면서 이스라엘은 잘못된 줄 알게 됩니다. 그렇지만 잘못된 그 길에서 얼른 돌이켜 소속을 변경하는 경우는 희귀합니다.
결정한 다음 후회하지 않도록 미리 많이 연구하고 조심하되
더 중요한 것은 결정한 후에 오늘의 결정이 옳았는지 그 훗날을 살아가며 잘 살펴보시고
바로 되었다면 다음에도 그런 기회에 그렇게 기도하고 결정하면 된다는 것을 배웠으니 그대로 하시면 되고, 만일 잘못되었다면 오판을 배웠으니 우선 돌이켜 이전으로 돌아가고 동시에 앞으로 결정할 일을 두고는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④질문자의 경우는 진지하게 2-3번 정도 말한 다음 그냥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원래 있던 구역이나 교회와 외부 충돌과 싸움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하셨으면 합니다. 예배당 소송을 금지한다는 원칙은 소송장 제출만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끼리 교회끼리 발생하는 갈등의 근본적인 상황전개를 두고 전투나 미움의 관계로 나가지 않도록 노력하라는 것도 들어 있습니다. 물론 신앙사는 세상이 결정할 수 없다는 것도 있지만.
양심에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고 두고 나오는 교회의 화평과 그곳을 좋게 생각하고 신앙생활하는 분들에게 지장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른 이유를 가지고 조용히 나왔다면 지혜롭고 잘한 것입니다. 그 행동은 다른 사람 신앙자유를 침해하지 않겠다는 행동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안타깝지만 나의 신앙식구들이 잘못된 길로 간다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소개하고 설명하는 것으로 전부를 삼아야 하고 그 노력은 상대방이 알아들을 정도에서 그쳐야 합니다. 나의 안면과 노력이 고삐가 되어 그의 행동이 바뀔 정도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