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질문) 청년 부흥은? 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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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질문) 청년 부흥은? 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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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질문) 청년 부흥은? 457

샬롬!
목사님 평안하신지요?
항상 이곳을 통해 많은 은혜를 받고있는 성도입니다.
요즘 젊은층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끼치고 있는 서울삼일교회
전병욱목사님에 대하여 이목사님에 의견이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왜 청년들이 그분에 설교를 좋아하고 많은 청년부흥이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반면에 총공회안에 젊은층은 왜 부흥이 되질 않는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답변) 1.총공회 젊은 층이 부흥되지 않는 이유 2.서울의 삼일교회에 대한 의견

우선 총공회 안에 젊은 층이 왜 부흥이 되지 않는지를 답변드리겠으나 서울삼일교회에 대하여는 우선 질문하시는 분께서 이곳을 찾는 분들을 위해 대충의 소개를 해 주실 수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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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회의 부흥법은 두 가지입니다.

엄격하게 성경적 목회법으로 부흥하는 방법과 세상적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성경적 목회법은 사실 신학교의 강의 시간에서나 한번쯤 들어 둘 정도로 목회자들도 잘 알지 못하는 방법입니다. 세상 이치로 쉽게 설명하면 결혼하여 아이를 하나 둘씩 낳아 길러 어른을 만들고 그들로 하여금 다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손주들이 태어나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반면 세상적 방법은 유명한 학원 강사의 강의가 있는 곳에는 그 면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단순간 수백명 때로는 수천명이 모여드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관심 인기 여론 등을 파악하는 방법입니다.


2.두 가지 부흥법의 일반적 모습

세상적 방법을 사용하는 예를 든다면 이벤트식 각종 행사, 마음이 끌릴 정도의 예배당 건축 양식, 군중의 심리 성향, 사교나 사회 또는 경제 활동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기회 제공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의 밤, 남녀 청년들의 피서지 야간 행사 등은 충분히 교회의 젊은 층을 모을 수 있고 또 내부 청년들을 교회에 적극적 기둥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입니다.

성경적 방법은 전하는 목회자와 앞선 교인들이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고치고 회개하여 성경대로의 사람이 되는 경건 생활에 주력을 해야 하는 것으로 출발을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자기와 같이 말씀대로 고쳐 사는 생활로 지도하여 자기와 같은 사람으로 길러 가는 것입니다.

자기가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만 가지고 생각을 해도 자기가 성자가 되기 위해 애쓰야 한다는 말이니 그 어렵기가 이루 말할 수도 없고 또 자기가 그렇게 되지 않으면 남을 그렇게 만들 수가 없으니 세월도 너무 오래 걸리게 됩니다. 이렇게 자기와 남을 고쳐 가려면 재미있게 놀러 가는 행사, 또레 집단의 통하는 만남 등 거의 모든 외부 활동을 없애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청년 남녀가 손을 잡고 율동을 한 시간 하다보면 주님 날 위해 돌아가신 대속은 멀어지기가 쉽고 그냥 흥미있게 시간을 보냈다는 정도에서 그치기 때문입니다.


3.총공회 교회들이 젊은층 부흥에 취약한 것은 두 가지 방법을 다 제대로 사용치 않기 때문입니다.

1)세상식 방법에 서툴어서 실패하는 경우

우선 성경적 방법만으로 평생 일관해 온 백목사님의 영향과 공회 전체의 분위기 때문에 세상 방법은 지극히 낙후되어 있었고 심지어 그런 방법들을 구경도 해보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백목사님이 가르치는 순수 성경방법은 세월이 너무 오래 걸리고 또 자신을 늘 꺾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이 방법에 그리 충실한 경우를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일반 교회들과 같이 많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비록 세상적이라 할지라도 그 나름대로의 생각으로 열심히 한다면 비록 남들이 문제점을 지적하든 말든 일단 교회 부흥, 특히 청년층의 부흥은 어느 정도 이룰 수가 있는데 그렇게 하는 데에는 늘 양심에 무엇인가 걸리는 것이 있어 주저하고, 또 어떤 분들은 열심히 따라 하기는 하는데 본래 세상 여러 프로그램과 활동에 전문을 했던 일반 교회와는 달리 총공회 목회자들이 그들을 따라 하는 경우는 너무 서툴어서 어색하기만 합니다. 죽도 밥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서울의 잠실동교회는 셀목회 열린예배 등의 이름으로 아주 갈 데까지 가본 교회입니다. 그리고 800여명으로 내려 온 교인 숫자가 단기간에 1500여명을 헤아리게 되었고 그 증가는 거의가 젊은층을 위주로 되었습니다. 그대신 그 교회 오래된 중년 이상의 나이와 연륜있는 중진 교인들이 반발하여 결국 교회가 분열되고 말았지만, 일단 세상식 방법을 사용하려면 아주 철저히 사용하고 따라가야 효과가 있다는 것을 보인 사례입니다. 반대로 부산공회에서 몇 교회가 그런 방법들을 도입하려고 했으나 반발하는 교인들 달래가며 또 목회자 자신도 타고나기를 점잔하여 그렇게 화끈하게 요동을 치지 못하게 되니까 부흥도 안되고 또 교회는 오락가락하게 되어 결국 부흥도 신앙도 다 놓친 결과가 되었습니다.

잠실동교회와 같은 경우는 아직 공회 내에서는 극소수이며, 대신 세상 여러 방법들을 도입하고 싶은데 체질이 맞지 않는 등 여러 문제점으로 어중간하게 하다가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2)성경 방법도 사용치 않아서 실패하는 경우

체질도 맞지 않고 또 양심에도 틀렸기 때문에 세상 방법들을 사용치 않으려면 그렇다면 있는 힘껏 성경대로의 본래 전도 방법, 즉 자신이 십자가에 죽고 이제는 주님에게 붙들린 자신이 되어 있는 힘껏 말씀만을 가지고 나서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사실 그렇게 해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왠지 게으른 것이 체질이며 또 충성할 마음도 별로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 해 주실 것이라고 해놓고는 그냥 세월만 보내고 있습니다.

성경식 방법은 부흥과는 본질적으로 거리가 먼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이곳이 집중 연구하는 백목사님은 금세기에 그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가장 정통 성경식 방법만으로도 청년층의 부흥을 크게 일으켰던 것을 아실 것이고 홍순철 서영준 목사님 두 분의 경우도 비록 젊은 시절이었으나 백목사님을 그대로 이어 성경적 방법에 충성을 합하여 큰 역사를 이룬 분들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성공사례가 없는 정도입니다.

3)결론으로 말한다면, 총공회 교회가 청년층 부흥에 취약한 것은

목회자인 우리들 스스로가 못났고 게으르며 신앙이 참으로 없는 못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답변자도 분명히 여기에 속하지 그렇지 않다고 할 아무 자료도 또 근거도 없습니다. 또 세상식으로도 철저히 해보면 어쨌든 부흥은 될 것인데 그 역시 주저하다가 어설프게 하든지 아니면 결국 이상하게 해 버리니까 양심만 어기고 결과조차 없는 경우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오늘 현실에서 우리 공회 교회들이 젊은층을 부흥시킬 수 있는지 그 방법까지 답변에 포함했다고 생각합니다. ,


(방문자 언급)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성전에서 나가실때 한 소경을 보시고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이글을 읽으면서 어제 목사님께서 설교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몇자 적어봅니다
본문 말씀처럼 교회가 부흥되고 안되는 것, 그것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고 봅니다.
누구의 탓으로 돌릴것도 아니다는거지요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실때 소경이 순종함으로 보게 된것 같이 오늘날 영적으로 소경된 우리들이 낫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을 100% 믿고 그대로 준행하면 될 것입니다.
이처럼 낫고자한다면 병고침 받기를 간절히 소망해야 하고, 부정할건 부정하고(자기를),명령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자기가 먼저 성화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세상의 어둠을 밝게 비추는 빛을 역활을 다할수 있을 것입니다.

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모세의 제자로 자칭하는 바리새인들은 헛된 자만 때문에 빛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영적 소경임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도 이들처럼 자만에 빠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주님이신데, 자기 능력으로 된 줄 알고 교만하여 주님 영광을 다 가리는 불쌍한 자들이 너무나도 많은줄 압니다.

오늘날 유명한 부흥강사들이 간증 하는것도 과연 진정으로 주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믿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하는건지 아니면 자기를 드러낼려고 하는건지 의문스러울때가 많네요. 만약 후자의 생각으로 하는거라면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얼마나 부끄러울지.

지금 거창에도 몇몇 교회들이 부흥되고 있는데, 목사님께서 언급하신 것처럼
말씀이 우선이 아니라 세상적인 방법을 앞세워, 질적인 부흥보다 양적인 부흥을 하고 있음을 저는 느낍니다. 물론 그 교회들을 비난하는게 아니라 안타까울 따름이죠.
전 우리 총공회 교회들이 자랑스럽습니다.

故백영희 목사님의 신앙 사상을 이어받아,
피와 성령과 진리로 하나 되어 참 자기를 만들어 가는데 전심전력을 기울이는 목회자님 성도님들의 성품을 닮아가는 저희들이 되었음 하는바랩입니다.
또 변치않고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 양떼들이 찾는것은,
"오늘날 사람들은 광문다학한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광문다학한 사람.
그러나 참 사람들은 그거 찾지 안하고 이제 그 속에 있는 피와 성령과 진리의 기름부음이 가르치는 그 기름부음의 음성을 들을라고 찾고 있는 것이 실상은 양떼들입니다"

젊은층이 부흥되지 않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모세 같은 훌륭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 8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그를 연단시킨것 같이 천하보다도 귀한 한 어린영혼을 위해 천하만물을 다 투자하실만큼 노력과 정성을 쏟으심을 믿고 낙심하지 말고 인내함으로 늘 기도하는 者들이 되었음 합니다.


(답변) 대부분 말씀에 동감입니다.

여러 가지 말씀을 마음 깊이 잘 읽었습니다.
대부분 말씀에 동감입니다.

80년을 준비시켰다가 이스라엘 앞에 내놓은 모세는 그 80년 세월이
부흥되지 않았던 청년의 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80년
세월이 침체되었던 시절이 아니라 80년 이후의 부흥을 준비했던 시
기였다면 모세의 부흥기는 80-120세가 아니라 0-120세로 보아야 하
겠다고 계산이 되어집니다.


(재질문) 세상적인 방법을 쓰기 보다는 리더의 역할로 인해

위에서 목사님께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만
웬지 세상적인 방법이라는 말로
오늘날의 또 다른 전도 방식을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몰아가는 경향이 드러나는 군요.
어쩌면 이것은 외부를 대하는
우리 교단의 성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마음을 씁쓸하게 만듭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는 다른 이유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삼일교회의 성장의 원인은 "리더"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과거 우리 교단이 부흥을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때에는 그 누구라도 존경하며
따를만한 분이라고 생각되어지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말씀이라면 죽도록 순종했습니다.
그 영향력은 아직까지도 이르고 있지요.

그처럼 지금 서울의 청년들에게는
그들이 따를만한, 그리고 청년들을 충분히 이끌어 줄만한
리더로서의 목사님을 만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 교단은 어떠합니까?
사역자보다 오히려 다방면으로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는 현대의 청년들을
얼마나 수용하고 포용해서
그들에게 비전을 제시해 주며
이끌어 줄 수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전망이 그리 밝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시간이 부족하여 생략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면,
그 모든 것은 "리더의 부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말씀 위에 바로 선 리더가 서면
그 리더로 말미암아 기도가 시작되고
무너진 성전을 향해 통곡하게 될 것이고
그리고 그 무너졌던 성전(예배)를 세우며
말씀이 흥황하는 진정한 부흥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방문자 언급) 다르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저도 님처럼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불만이었지요.
근데 요즘은 목사님 설교때 하시는 말씀을 녹음해서 듣고 또 듣고 하면서
그 말씀이 곧 나에게 하시는 말씀인줄 알고 이 말씀대로 살려고 힘을 쓰고 있지요
그래서 지금은 하나라도 놓치지 않을려고 애를 쓰는데 사실 잘 안 될때가 많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윗 글에서 언급한거와 같이
남을 탓하기 전에 나 자신이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고 보거든요
항상 준비된 자로써 삶을 살때 영적인 귀가 열리고 눈이 뜨여질테니까요.
말씀이 너무나도 깊고 오묘하기 때문에 그 속에 있는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세상 것을 쫒게 되고 세상에게 피동 되어 옛사람의 길을 걸어가는 불쌍한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돌이켜 회개하게 하시기 위해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셨지만 결국엔 멸망당하고 말았지요.

예레미야 애가서를 잃으면서 눈물을 흘린적도 있었지요.
예레미야 선지자가 페허가 된 예루살렘을 보며 슬픔에 잠겨지은 이 노래
얼마나 처절하던지.
그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목회자님들께서 하시는 말씀들이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닫고 다시 이나라가 회복되고 부흥되는 놀라운 역사가 임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답변) 궁금하게 생각하는 면을 잘 이해하며 동시에 이곳을 이렇게 살펴주셨으면 합니다.

자세한 설명으로 모든 질문을 답변드린다고 하지만 결국은 이곳이 주장하는바만 옳고 다른 곳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부정하는 경향을 말씀하셨습니다.

솔직히 그렇습니다. 바로 보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속의 중심을 가루고포장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곳은 그렇게 본다고 꾸준히 또 단호하게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이곳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연구해 봐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혹시 다른 전도 방식을 세상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무슨 말씀을 차분하게 해 주신다면, 진심으로 또 한번 되돌아 보겠습니다. 이곳을 공개하고 열 때에는 많은 세월 속에 거진 다 검토했다고 할 만큼 되었습니다. 비록 서울삼일교회의 세부사항을 잘 알지 못함은 있지만 들게 된다면 무엇인가 장단점을 요약할 수 있는 대상이겠다는 느낌은 있습니다. 잘 모를 때는섣불리 선입견으로 상대하는 것을 조심합니다. 따라서 삼일교회의 경우는 이곳에서 전혀 언급치 않았습니다.

만일 그곳의 운동이 앞의 글에서 제시한 대로 보다 성경적 방법론에 가깝다고 한다면 서슴치 않고 마음을 열겠습니다. 그러나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현대 교회들의 프로그램 중에 하나로 분류할 정도라면 그 문제점은 또 다시 연구할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미 역사에 나타날 종류는 거진 다 나타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어디에 해당되는지를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우선입니다.

리더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전적 동감합니다.

단체의 성공, 양떼의 향방은 한 사람의 리더에 의하여 얼마만큼 좌우가 되는지는 쉽게 느끼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이 서울에서 목회를 했더라면, 순복음을 능가하지 않았겠는가? 또 그가 거창 시골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서부교회만은 못했을지라도 거창 사회로서는 비견될 수 없는 부흥이 있었겠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서부교회의 침체는 시스템과 운영의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한사람의 리더 역할을 잘 볼 수 있는 현상으로 봅니다. 비단 서부교회 뿐 아니
라 거의 모든 대형 교회나 성공한 사례들도 그렇다고 봅니다.

그러나 논점에서 하나 누락이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서울삼일교회의 리더의 역할에 대하여는 이렇게 전폭 동감합니다만, 그 리더가 사용하는 방법이 무엇이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이 세상 방법을 주로 썼다면 세상 방법에서 큰 부흥이 되었을 것이고 그분이 성경 방법에 보다 주력했다면그 교회의 부흥은 현재 성경의 잣대로 들이댈 때 많은 점에서 일치될 것입니다.

현재 서울 삼일교회에 대하여 보다 자세한 안내를 해 주도록 부탁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아마도 객관적이기 보다 비판적일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면에서 서울 삼일교회를 이곳에서 소개해 주셨으면합니다.

결과가 늘 비판적이어서 죄송스러우나 냉정한 연구적 자세를 잃지 않으려는 곳입니다. 또한 사실적 연구적 비판이면 어떤 비판이라도 솔직히 초대하고 싶은 곳입니다. 그 속에서 답변자만 모르는 답변자의 key word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대한 비판에 때로는 강하게 답변하는 것은 오로지 비판 목적만을 위해 온 분들에게 시간 소비를 하지 말라는 연구실적인 방어를 했기 때문입니다. 연구적 비판이면 연구적 대화로 이어가고자 합니다. 이런 경우에 강한 표현은 반발이나 맞고함으로 보지 마시고 아직까지 상대방의 논리에 너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자세로 보시고 그 자세에는 한번 이해가 되고 설득이 되면 전적으로 전환하고 회개할 준비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질문자) 존중합니다.

간단하게 내 생각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익명으로 남겨서 웬지 죄송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제 이름을 먼저 밝히고 용서를 구합니다.
저는 부산 거제동교회를 섬기고 있는 청년입니다.

목사님의 인터넷 사역을 존중하고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주장이라고 하기는 너무나 부족한 제 이야기를
이렇게도 관심 있게 봐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시각에 대한 단호한 목사님의 의지를 존중합니다.
그것은 당연히 연구자로서의 가져야할 것이기 때문이고
그것이 있을 때 더욱 비판적으로 세상을 보며
성경적인 것을 구해 내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 성경적인 것을 찾으려 애쓰시는 모습이 제게 많은 감동이 됩니다.

다만 제가 올린 것은 목사님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는
먼저 제 자신을 향한 씁쓸함입니다.
그렇게 자라 왔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세상을 그렇게만 대하고
세상에 어려움을 가슴에 품지 못하는 제 자신을 한탄함에서 나온
넋두리임을 양해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삼일교회에 대해서는
다른 것은 말씀드리지 않고
다만 전병욱 목사님이 리더로서 서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에 동의 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작년에 청년부 회장을 하면서
청년의 부흥을 위해 많은 고심을 했고
그러다가 전병욱 목사님의 책들을 여러권 대했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것인데
삼일교회의 부흥은 무엇보다도 리더로서의 목사님이 뚜렷하게 보이는데
그 속의 내용은 세상적은 방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더 성경적입니다.
(사실 삼일교회는 다른 큰 교회와 같은 큰 이벤트가 별로 없습니다.)

청년들은 삼일교회에 무언가 육체적인 것을 얻기 때문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
전병욱 목사님 때문에 모인다고 생각됩니다.
자세한 것을 제가 전하기엔 역량이 부족합니만
제 개인적으로 느낀 것을 요약한다면
1. 기도로서 시작되었다는 것이고
2. 목사님의 설교에 목숨을 건다는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책을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비판 소지가 있는 전목사님의 설교 색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이것에 도전을 받아서 부족하게도 제가 청년회장을 하면서
금요일 저녁 9시에 2명이 기도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더욱 성장해서 토요일 저녁 8시에 평균 15명 정도가 참가해서
같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예배에 참석하던 청년의 숫자도 늘어나서
지금은 주일 오후 예배는 청년부가 따로 드리는데
(청년부 전담 목사를 초빙했음)
평균 56명 정도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을 부흥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진 않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앞에 썼던 글에서도 숫자가 느는 것을 부흥이라 하지않고
말씀이 넘쳐나는 것을 부흥이라고 썼습니다.

우리가 용기를 가지는 것은 비록 교세가 작다고는 하나
우리는 그 말씀의 중심을 찾기 위해 날마다 노력하고 있고
그 말씀을 그 무엇보다도 중시하기 때문에
지금은 그 영향력이 줄었지만
곧 다시 말씀이 흥황하고
성장은 자연스러울 때가 오리라는 믿음입니다.

급하게 적어서 얼마나 제 생각을 바로 전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비록 글이 너저분 하더라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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