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질문) 말에 실수가 많은데 어떻게 고쳐야 하나요? 2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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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질문) 말에 실수가 많은데 어떻게 고쳐야 하나요? 2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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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질문) 말에 실수가 많은데 어떻게 고쳐야 하나요? 2281 말에 실수가 많습니다. 어떻게 고쳐야 하나요? (답변) 질문이 자세할수록 답변도 정확해집니다. 범위가 넓으면 답변은 헛돌 수 밖에 없습니다. 1.말에 대하여 주의할 때는 ‘잘못 말한 실수’와 함께 ‘말하지 않는 실수’도 생각해야 합니다. 체질적으로 말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말이 많으면 실수는 많은 법입니다. 그래서 말 많은 사람을 욕하는 말은 많고 또 본인들도 자기 입을 한번씩 쥐어박기도 하지만, 고치려고 노력을 해도 어려운 것이 문제입니다. 질문은 이렇게 고치려 해도 잘 안되는 것을 고민하고 있습니다만 실은 이 문제로 고민할 때는 항상 그 반대편 문제도 동시에 생각하셔야 합니다. 말을 해야 할 자리에 말을 하지 않는 문제점도 지극히 잘못입니다. 말을 실수하는 것은 집에 불을 지르는 것과 같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신고를 받고도 출동하지 않는 경찰과 같습니다. 말에 실수가 많은 사람은 생사람을 수술하는 사람과 같고,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아파서 들어온 환자를 방치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2.할 말을 하지 않는 경우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①말하지 않는 죄도 큰 죄입니다. 말이 없는 사람을 두고 흔히 좀 갑갑하다고 생각하고 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 죄는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정도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가죽이 모자라서 입을 찢어놓은 것이 아닙니다. 할 말이 있어 입을 만들어놓았는데 만일 그 입이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거부하는 대역죄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②말하지 않는 사람은, 영어를 배우듯 해서라도 말을 하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말을 해야 할 때 하도록 하는 문제는,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재산이고 또 얼마나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느끼게 교육을 시키고 또 말을 하도록 훈련을 시키면 됩니다. 영어에 관하여는 우리가 다 입이 무거운 사람들인데, 그 필요성과 가치성을 TV에서 사회생활에서 느끼게 되니까 국가적으로 총력을 기울이고 개인적으로도 발악하듯 노력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영어에 대하여 그렇게 입이 무겁다 못해서 벙어리라 할 만한 것이 우리들인데 영어가 너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느끼게 되니까 결국은 영어로 입을 떼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물며 한국사람이 한국말로 한국사람을 상대하여 말하는 것은? 그것은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니까, 하고 그냥 방치를 해서 그렇습니다. 영어를 못하면 학원을 보내고 숙제를 내주고 어떻게 볶고 달래서라도 하게끔 만드는 것처럼 그렇게 중요성을 느끼게 되면 결국 말을 하는 사람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전과 비교해서는 확연히 달라졌다 할 만큼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어릴 때는 그 부모가, 하면 좋고 말면 그만이고 하는 식이고, 또 나이가 들어서는 본인이 말을 잘하면 좋고 못하면 말지, 하는 생각을 가지기 때문에 병신 아닌 사람이 병신이 되는 것입니다. ③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분명히 장애자입니다.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말을 완전히 못하는 사람은 벙어리라고 합니다. 농아장애가 100%인 사람만 과거에는 장애자로 취급했으나 현대 사회는 몇 % 장애를 가졌느냐는 것으로 세분시켜 관리하고 있습니다. 50% 농아도 있고 70% 농아장애도 있습니다. 할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주변에서 답답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 중에는 농아장애 50-70%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90% 이상 장애를 가진 사람도 대단히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신사참배가 가결된다고 총회장에서 선포될 때, 한부선선교사 단 한 사람만이 농아장애가 없었고 나머지는 100% 농아들이었습니다. 벙어리라는 말입니다. 수도 없는 현실에서 우리는 해야 할 말을 하기 싫어서 또는 손해 볼까 봐 또는 무관심이기 때문에 포기하고 살고 있습니다. 말에 실수가 많은 면을 살펴보면서, 동시에 꼭 짚고 넘어갈 문제는 바로 할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심각히 생각하는 것입니다. 말에 실수가 많은 사람은 비교적 할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할 말을 하지 않는 죄인들은 말에 실수하는 죄는 덜 짓는 편입니다. 좋기야 할 말은 하고 하지 않을 말은 하지 않는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일인데, 이 훈련은 사실 평생을 두고 훈련을 해도 제대로 되는 사람이 적습니다. 젊어서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펑펑 해대서 문제고, 나이가 들어서는 해야 할 말을 몸조심하느라고 하지 않아서 또 문제입니다. 할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영어하기 싫은 사람이 그 필요성 때문에 억지로 배워서 잘하는 사람이 되는 과정을 참고하셔야 된다고 요약하겠습니다. 3.이제 질문에 집중하겠습니다. 말에 실수가 많은 면을 두고 살펴본다면 ①우선, 어린 시절부터 말에 대하여는 그 뒷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기가 뱉은 말은 책임을 지게 만들고, 책임 못질 말은 시키지를 말아야 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 말이 통할 수 있는 나이라야 할 것입니다. 어린 나무 가지는 쉽게 방향을 잡아 돌릴 수 있지만 어느 정도 굵은 가지는 휘려고 하면 부러집니다. 적어도 초등학교를 다니는 정도라면, 말이라는 것은 뱉으면 그 말에 대한 결과가 있다는 인식을 자꾸 심어주어야 합니다. 별 것 아니라도 좀 엄하게 야단도 쳐야 하고, 또 어떤 때는 매도 가야 합니다. 그냥 재미있게 아이들이 나불거리는 말은 재미있게 하게 내버려 두어야하지만, 아무리 장난이라도 할 말과 안 할 말은 구별하도록 어릴 때부터, 평소 습관으로 차분하게 길러 가면 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너무 쉽게 장난삼아 한번 말한 것을 두고, 부모가 함께 웃어넘기다 보면 아주 잠깐 사이에 쑥대밭이 된다 할 만큼 나쁜 습관은 가속도로 자랍니다. 그러나 사소한 것처럼 보여도 점잖게 시정시키게 되면 큰 무리없이 자연스럽게 잡초를 뽑게 되어 소리 없이 잘 자라게 됩니다. 지금 질문하시는 분은 혹 자기 문제 때문에 질문하는지 모르겠으나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는 이 문제를 두고 먼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어릴 때 바로 잡아놓아야 할 문제라는 점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②성년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에 뒷책임이 따르는 사람은 벌로 말하지 않습니다. 공무원들에게 업무에 관련된 문제로 질의를 해보시면 그들의 말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 것입니다. 말 한 마디 때문에 직장에서 징계를 받거나 심지어 사표를 내야 하는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에 실수가 많은 것은 그 말을 하고 나서 그 말 때문에 아무 손해를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리면 매나 꾸중으로, 나이가 많으면 다른 형태로 자기에게 통증이 와야 중단될 수 있는 것이 말의 실수입니다. 말의 실수라는 이 면의 죄를 두고만 말한다면,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의 차이 때문에 말의 실수가 있고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현재의 직책과 말하고 있는 면이 어떤 면을 두고 말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중요한 직책에 있을수록 말 실수는 줄어듭니다. 직책이 높을수록 그렇습니다. 심지어 장사꾼이라 해도 그 사람이 다른 면에는 말의 실수가 많을지라도 거래와 관련해서는 티끌만큼도 오차가 없고 신의있는 말을 하게 됩니다. ③자기 말을 반론할 사람 앞에서는 모두들 말을 조심하게 됩니다. 종교인들을 만나면 종교 이야기를 쉽게 꺼내거나 쉽게 말하지 않습니다. 예리한 반론이 나오며 자칫 창피한 일을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자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남존여비를 자신있게 주장할 사람이 드물 것입니다. 사상이 다르고 계산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과거 ‘녹화설교’로 예배를 보면 우상예배가 된다고 주장한 분들이 지금은 아무도 그 말을 반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디서 말을 해도 인터넷을 통해 그 말이 삽시간에 공개가 될 것이고 자기 말이 공개가 되면 반론측의 주장이 바로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④그렇다면 말의 실수는, 우물 안 개구리나 다리 밑에 오갈 데 없는 거지들의 것입니다. 더 이상 책임질 것도 내놓을 것도 당할 것도 쫓겨날 곳도 없는 거지들이 모여 사는 다리 밑에서는 마구 천하를 향해서 큰소리를 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양로원에서도 그렇습니다. 남편과 자식이 다 나가고 할 일 없는 주부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는 자리에서는 실수가 많습니다. 어려운 사람 반대하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만 사는 분들을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합니다. 더 넓은 세계를 접할 수 없는 못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말의 실수입니다. 따라서, 말의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우선 앉은 자리, 만나는 사람, 현재 자기의 위치를 두루 살펴보아야 합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없고 더 이상 나갈 자리가 없는 사람이라면 말을 실수하지 않으려 해도 실수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고속도로 매표소에 앉아 있는 직원이라면, 매연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직장을 바꾸기 전에는. 현재 살고 있는 자리가 만족스럽고 편하고 또 현재 만나는 사람들이 만만한 사람이라면, 어느 인간도 말의 실수를 하지 않기는 어렵습니다.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성경입니다. 야고보서 3장입니다. 말이 많은 체질로 태어난 사람이 만만한 사람들과 자리를 함께 한다면 말의 실수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말이 많은 체질로 태어난 사람이 만일 할 일이 없고 책임질 일이 없다면 말의 실수를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말이 없는 사람이 말의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은, 비록 죄를 짓지는 않았다 하겠지만 그렇다고 의가 될 것도 없습니다. 그 사람은 벙어리이기 때문입니다. 4.이제 답변을 요약하겠습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입니다. ①천하며 할 일 없는 사람인데, 체질이 말많은 사람이라면 말의 실수는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이 이런 상태가 되면 말을 실수하지 말라고 주의를 시킬 것이 아니고 포기하는 편이 낫습니다. 3살 때 버릇이 80세를 간다는 말이 있는데 20-30세 된 사람이 말 실수를 아직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500-800년 동안은 고칠 수 없다는 단순 계산이 나옵니다. 참고할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는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이므로 어떤 죄나 어떤 실수도 우리는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주어져 있습니다. 좋기는 자기의 현 위치가 책임을 져야 하거나 또는 주변 사람들이 자기 말에 허점을 찾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면 실수를 하라 해도 하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를 우리는 살펴야 할 것입니다. ②안 믿는 사람에게 우리의 말 한 마디 실수는 그 사람 구원을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도 안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을 볼 때는 남달리 보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앞으로 믿을 사람은 먼저 믿는 사람을 반드시 유심하게 보게 됩니다. 나야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제일 뒷자리에 앉아 대충 믿고 있는데, 안 믿는 사람은 나를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말의 실수를 많이 하는 만만한 사람들도 나와 재잘거리며 아무 허물없이 말을 할 때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하지만, 속으로는 믿는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보려고 내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말 한 마디 실수가 다른 사람의 신앙출발을 막아놓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셨으면 합니다. 세상적으로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통해 믿게 될 수 있다면 먼저 믿었다는 이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는 예사롭지 않은 존재입니다. 공직에 있는 사람보다, 교직에 있는 사람보다, 정치지도자들보다 더 중요한 직책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 위에서 자기와 제일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와 같은 직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실까지를 망각하기 때문에 말의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줄도 모르고 또 대통령 자리의 말 한 마디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직 인지를 하지 못해 한 마디 했다가 국가가 휘청거리는 것을 우리는 최근에 잘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적으로는 말단지 말이지만 이 복음 앞에서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제각각 다른 사람의 구원을 책임진 면이 있습니다. 이 면을 생각해서, 먼저 믿는 사람의 말 한 마디는 뒤에 믿을 사람의 구원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또 앞서 믿는 사람의 말 한 마디는 뒤 따라 믿고 오는 후배 교인들에게 그 신앙을 죽이고 살리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자기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자기의 말 한 마디로 인하여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를 아는 것만큼 말의 실수를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말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정도로 가볍게 후회하는 정도라면, 말 실수는 고치지 못합니다. 세상적으로 더 높고 중요한 자리로 나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자기의 말 실수를 저절로 줄이는 결과가 될 것이지만, 우리는 신앙문제로 고민해야 할 사람들이니, 나라는 사람의 위치와 입장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정해 주셨는지를 살펴서 이 면을 느끼면 저절로 해결될 것입니다. ③믿는 우리가 말에 조심해야 할 또 한 가지 이유는, 우리는 원수 속에 싸여 있습니다. 마10:16에서 믿는 사람은 이리 가운데 둘러 싸여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이리 가운데로 밀어 넣었습니다. 우리의 말 한 마디는 전부 영원히 하나님 앞에 심판받게 됩니다. 이 면은 이미 상식으로 아는 것인데 다시 한번 잘 깨달아 느껴야 할 것이고,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잊어버리기 쉬운 면을 주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지금 아무 허물없이 아무 부담없이 그냥 수준낮은 내가 나와 같은 수준에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있기 때문에 말에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둘러 모여 앉은 사람 전부를, 성경은 이리라고 했습니다. 교역자회의에 목회자들만 모인 자리라면?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은 목회자들이겠지만 그 목회자들이 순간이라도 주님 잊어버리면 바로 양을 잡아먹을 이리들이 됩니다. 그 이리들 사이에서 아무 말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미 우리는 죽은 자들입니다. 경쟁자 앞에서도 혹시 싶어 말을 조심하게 되는데 하물며 원수 앞에서 조심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만일 그렇게 조심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모든 환경은 항상 우리 신앙을 통째로 삼킬 이리로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니, 그 사람은 말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통째로 삼킨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④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말 한 마디에 따라 훗날 하나님 앞에 그 말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는 심판을 생각하고 우선 이 말 한 마디에 다른 사람이 이 땅 위에서 어떤 영향을 받게 되는지를 생각하고 또한 자기를 둘러싼 현실 환경 인간 전부는 누구든지 이리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말 한 마디에 어떤 대가를 당해보고 통증을 느껴본 사람만이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실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당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는 체질적으로 말이 많은 사람은 말 실수를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실제 당해 보지 않아도, 미리 이 말 한 마디로 인해 내가 하나님 앞에서 또 인인관계에서 어떤 큰 손실을 당하겠는가 하는 점을 많이 묵상하고 새겨서 실제 당하지 않아도 당한 것만큼 실감이 느껴지게 된다면, 비로소 해결될 일입니다. 동시에 이 말 한 마디 실수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또 그 손해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았다면 지금이라도 내가 기르고 있는 아이들 또는 내가 책임지고 있는 어린 신앙의 사람들을 어릴 때 미리 단속시켜 말을 실수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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