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질문) 자라가는 교회 성장하는 교회 (쉬/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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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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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34
1. (질문) 자라가는 교회 성장하는 교회 (쉬/299)
주일학교가 장년반의 2/3 채 되지 못하는 죽어가는 교회, 충성이 부족한 교회 , 예배시 많은 자가 졸음으로 은혜를 받지 못하는 교회, 개척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주의 은혜로 생기가 돌지 않는 교회, 귀한 총공회의 은혜는 받은 교회
이렇듯 알고 있는(주관적 견해) 교회의 현상을 열거하였습니다.
1. 이런 교회에 대해서 따끔하게 진단을 해주신다면
2. 각 위치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 교역자 나. 반사 다. 성도
3. 주일학교, 중간반, 장년반이 각각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요.
4. 자라가고 성장하는 교회란 어떤 현상이 있는 것일까요.
5. 충성이란 것은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 것일까요.
6. 총공회 교인들이 귀한 은혜를 받았는데 잘못 삐뚤어져 갈 수 있는 위험요소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7. 교인들을 자라가게 하는 방법으로 [성경공부]에 대해서 단계적인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위의 사항은 개인적 판단입니다. 무엇보다 더 자라가기 위한 방법을 듣고저 하는데 있으니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답변1) 우선 교계 전반의 분위기와, 일반 교회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질문하신 내용보다 약간 범위를 넓혀 서론적으로 우선 말씀드렸으면 합니다. 어느 한 교회가 침체된다는 느낌을 가지는 경우, 어느 교단 어느 교회를 막론하고 아셨으면 하는 뜻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1.'맥빠진 교회 상황'은 모든 교단 교회들에게 해당되는 일반적 현상입니다.
'개척한 교회들이 은혜도, 충성도, 부흥도 없이 맥빠진 상태로 주저앉아 있으니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지적하신 말씀, 총공회 교단 소속 교회들 뿐 아니라 오늘 우리 나라 전 교계의 모든 개척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전반적 현실입니다. 다른 사람이 감기에 걸렸으니 내가 감기에 걸린 것이 당연하다는 설명은 아닙니다. 다 걸려도 나는 걸리지 않아야 합니다. 일단 객관적 상황은 사실대로 파악한 다음 총공회에 해당된 문제는 총공회 신앙노선에서 살피겠다는 것입니다.
2.부흥되는 교회들이 많이 보이는 위기감 속에서, 자신의 개척교회만 가라앉은 듯하게 보입니다.
부흥되는 교회들, 살아 움직이고 일어서는 교회들이 자기 주변에 많이 보이는데 자기 교회만 냉랭하게 가라앉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 교회 애착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이 이상 마음 무거울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치 않으면 교회 내에서 목회자는 교인들의 불충을, 반대로 교인들은 목회자의 불충이나 무능을, 또는 교인이 교인끼리 탓하다가 아주 가라앉아 버리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힘없는 교회를 자칫 완전히 내려 앉히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1970-80년대는 개척만 해 놓으면 일어서는 교회들이 많았고, 1990년대 이후는 개척은 했으나 오히려 가라앉는 교회들이 많아서 교단을 막론하고 전 교계적으로 큰 숙제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일단 오늘의 전체 형편입니다. 주변 부부들이 다 잘 살고 있는데 자기 부부만 불행스럽게 보일 수 있습니다만 속으로 들어가면 그렇지 않은 가정들이 별로 없습니다. 다만 외부로는 좋은 것이 많이 나타나고 좋지 않은 것은 덮어놓고 있기 때문에, 또 남의 사과는 좋아보이는 인간 심리가 있기 때문에 실제보다 자기 집 걱정은 더 심해지기 마련입니다.
3.자기 교회는 더욱 침체된다는 심리가 교회를 살리는 동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지나친 걱정은 자기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입니다. 참으로 걱정할 사람은 자기 가정이나 자기 교회에 있는 문제를 쉽게 생각하거나 아니면 걱정도 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절망일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자기 교회의 침체를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문제점을 인식했다는 것이니 다행입니다. 우리에게는 전능의 도우심이 바로 지원되는 믿는 사람이므로 세상과는 아주 다른 해결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신앙이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기 때문에 남들이 볼 때 좀 지나치다 할 만큼 자기를 채찍질하는 것이 옳습니다. 다만 그것이 지나쳐 절망에 이르게 된다면 이는 예수님이 대신 죽은 4가지 죄 중에 4번째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절망으로 나아가는 자책은 죄가 되고, 소망을 가진 자책은 교회를 살리는 능력입니다.
(답변2) 1.총공회 교회의 침체를 두고 그 내부를 자책한다면
1.공회 교회들의 현황입니다.
총공회는 백목사님 사후 100여개 교회에서 현재 200여개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기존 교회에서 분리되어 그 출발부터 비교적 든든한 교회도 10여개로 파악되지만,대부분은 질문자께서 말씀하신 대로 개척교회인데도 불구하고 은혜도 충성도 부흥도 없이 그냥 맥빠진 교회로만 나아가고 있는 듯 합니다. 백목사님 생전 마지막에 개척된 교회들과 몇명되지 않는 시골교회들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말씀하신 맥빠진 교회들은 현재 총공회 전체 200여교회 중 약 100여개로 파악됩니다.
2.공회 뿐 아니라, 교회들이 분리개척하는 대부분 경우에는 이런 잘못된 원인이 있습니다.
①'일시 충동', 즉 감정으로 시작했으니 쉽게 식고 가라앉을 수 밖에 없습니다.
공회 소속 교회들의 개척은 그 유형과 내막을 거의 파악하고 있는 편입니다. 개척하지 않을 수 없었고 개척을 해야만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물론 개척하는 교회 대부분은 그 개척을 해야 할 명분, 이유는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개척이라는 '실행' 단계에서 그 실행을 실행하도록 했던 가장 큰 힘과 원인은 주도하는 교인들과 목회자의 '감정'이었지 '이성'은 아니었습니다. 이성은 믿음에 이를 수 있는 기본 자세가 되어 있고, 감정이란 요소는 믿음에 힘을 보태주는 것이지 믿음에 이르는 데에는 오히려 방해만 될 뿐입니다.
세상일도 주도면밀하게 계산한 다음 시작해야 할 터인데, 하물며 주의 일 주의 교회를 시작하는 일을 오기와 감정, 섭섭함과 억울함, 철없는 동경심과 모험심으로 '욱 - '하는 자세로 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동행치 않고 인간들만 모여 왁자지껄하게 됨으로 개척의 처음은 그 사기가 하늘을 찌르게 되어 있고, 몇 달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면 김빠진 사이다가 되어 맹물이 된 것입니다.
②대부분 개척교회는 지도급 목회자들의 사업확장 대상이었습니다.
개척 현장에 있었던 교역자와 교인들은 순수했을지라도 그분들을 지도하고 개척하도록 안내했던 분들이 개척교회를 자기들의 사업확장 대상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물론 개척교회 교역자와 교인은 하나님 앞에 순수하게 했다고 자부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자신들의 주관감정일 뿐이고 자신들이 잘 보지 못한 높은 세계에서는 개척'교회'가 아니라 사업'개척'으로 사람들을 내몰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자기들이 신뢰하고 따르는 지도자 '인간'으로 선 것이니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③모든 것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척교회 교역자입니다. 순수하지 못한 경우가 거의 전부입니다.
지도자들이 다른 목적으로 충동시켰다든가 아니면 개척 당사자들이 감정에 충격을 받았다든가 하는 문제가 보통 큰 문제는 아닙니다만 비록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시작이 되었다 하더라도 개척교회에 가장 앞서 모든 책임을 가지고 있는 목회자가 진정 순수하고 충성을 한다면, 출발의 오류는 하나님께서 어린 신앙이라 그렇다고 봐 주실 수 있습니다. 문제는 개척교회 목회자의 중심과 충성조차도 대개는 순수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가 먹고 살아야 하는 구멍가게로 개척교회를 택했는가, 아니면 죽어도 이 신앙길이 아니면 안된다는 사명감에 의하여 개척을 하고 있는가? 사명감이 정말 순수하다면 이렇게 이합집산으로 큰 세력과 대세를 보아가며 좌로 갔다 우로 갔다가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한 동기 목적 심지어 중심까지 잘못된 경우라 해도 열심히 노력을 한다면 이렇게 가라앉아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답변3) 2.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에게는 절망이 없습니다. 대속의 4번째 요소입니다.
1.일반 교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심층적인 면을 중심으로 교계와 공회 내부를 살펴보았습니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의 모든 교회들이 그 동기도 그 목적도 그 중심도 그 과정도 너무 너무 세상 사업 세상 이권식으로 변질되어 있습니다. 개척교회 뿐 아니고 기존 교회들도 현재는 그 내부 사정이 거의 다 이렇게 변질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교계와 공회와 우리 전부가 처한 환경은 극단적으로 절망적인 상태라고 보시는 것이 옳습니다. 주님이 오늘 우리 시대를 두고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옳아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까지 희망없는 시대를 희망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2.그러나, 우리에게는 모든 절망을 사하시고 소망을 주신 대속이 있습니다.
①교역자가 자기 위치에서 할 일은
두말 할 것 없이 감정에 붙들려 출발한 자기 첫 모습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덮어가룬다고 가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강단에서 '이 교회의 출발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이 있어...'라고 외칠 것입니다만 그렇게 해당되는 교회는 거의 없습니다. 누가 충동시킨다고 피동된 것도 회개해야 합니다. 현재 이권에 매여 진리노선을 앞세우고 걸어가지 못하는 삯꾼된 목자임을 회개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자기 앞길을 향해 '어떤 손해가 있어도 절대로 옳은 것만 찾아나서겠다' 이 면으로 단정하고 실행한다면 과거는 어렸기 때문에 성장과정의 실수로 하나님께서 봐 주실 것입니다. 지금도 속으로는 '그래도 자리를 유지하려면 ...' 이렇게 처신한다면 출발은 어렸으나 지금은 현저하게 발람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심만 깨끗하게 회개하고 진실되다면, 남은 문제는 충성 하나뿐입니다. 죽도록 열심히 뛰면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충성한다고 하지만 사실 구멍가게 주인만큼도 부지런하지 못했고 친절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교회에 연보하기 위해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의 스트레스 근면 노력 등을 생각하여 목회자가 그들보다 더 고생하고 노력하겠다고 한다면 필히 뜨거운 교회 일어서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백목사님이 목회자들을 앉혀놓고 '경제결백'을 말씀한 뜻은, 교회 경제를 부정하게 빼돌리는 문제도 포함되었으나 그보다는 사례를 받는 교역자가 밥값도 하지 않고 게으른 것도 교회 경제를 축내는 경제불결로 보았던 것입니다.
③반사와 성도가 할 일은
우선 자기 교회 교역자가 위에서 말한 그런 교역자가 되도록 만들어 달라는 기도와 소원을 하나님 앞에 있는 힘을 다해서 제일 급하게 해야 합니다. 머리가 바로 가지 않고는 몸이 바로 나갈 수 없습니다. 물론 교역자의 문제점을 두고는 기도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말로 지도하거나 행동으로 제재하려면 참으로 극히 조심해야 하는데, 아직 교인으로서는 그렇게 하는 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대신 이렇게 언행을 조심하며 애타게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매를 들고 그 교역자를 직접 상대해서라도 바로 잡을 것입니다.
반사란, 자기 맡은 학생들에게는 그 개척교회의 목회자와 같은 입장입니다. 목회자를 향해 혹독하게 요구한 앞의 글을 자기 문제로 보고 자책해야 할 것입니다. 아이를 낳아보고야 자기 어머니를 비로소 알아보기 시작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반사로서 자기 학생을 보고 반사로서 자기 목회자를 보게 되면, 교인으로서 목회자에게 어떻게 해야 할 것이며, 목회자와 같은 입장의 반사가 반사로서는 어떤 면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장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면 때문에 반사를 바로 한 사람에게는 모든 원만한 신앙이 다 나올 수 있습니다.
(답변4) 3.교회 부흥을 장년반, 중간반, 그리고 주일학교에서 본다면
3.'주일학교, 중간반, 장년반이 각각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요' 에 대하여
주일학교 중간반 장년반은 각각 그 부흥방법이 목회설교록에 수도 없이 나와 있습니다. 간단한 비법이나 특별한 방법이 따로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 우리 신앙노선입니다. 굳이 꼽아 보라면, 하나님과 나 사이가 얼마나 가까와지느냐에 따라 교회의 부흥도 따라 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생명이니 이 연결이 가깝고 강할수록 교회가 살아 움직일 것이고 하나님과 멀어질수록 교회는 생기를 잃게 될 것입니다.
주일학교 중간반은 부장이, 장년반은 목회자가 하나님과 가까와지는 길 밖에 없을 것입니다. 책임자가 그렇지 못하다면 반사나 구역장이 직접 하나님과 가까와짐으로 자기 맡은 반과 구역이 생기가 돌고 일어서면 전체가 곧 그리 될 것입니다. 제법 큰 교회라도 한 사람 혹 두 사람이 일어섬으로 전체가 일어서게 되는 것을 봅니다. 서부교회 백목사님 마지막 때에는 초대형 교회였으나 결국 한 두 사람이 일어서면 옆으로 옆으로 소리없이 번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플래카드를 붙이거나 이벤트식으로 일을 벌리는 것은 거품입니다. 조용히 천천히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워놓고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가장 정확하고 확실한 방법이지만, 우리 마음이 조급함으로 전광석화처럼 해결되는 특효약을 구하게 됩니다만, 총공회 신앙노선이란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워 그분만을 보고 나아가는 방법으로 모든 성공을 다 이루었습니다. 적은 교단이지만 교회사에 결코 적지 않은 많은 뚜렷한 성공과 업적이 있었습니다. 서부교회 주일학교, 거창집회, 목회설교록 등 그 모든 것이 다 그러했습니다. 초창기 다른 곳에서는 날라가고 뛰어갔는데 우리는 기어갔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자 우리는 날라갔고 그들은 주저앉았습니다. 오늘 백목사님 없는 시대에 총공회 교회들은 다시 한번 총공회 초창기의 신앙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주일학교로만 생각한다면, 어리다고 무조건 묻어버리지 마시고 주일학생에 해당되는 모세의 유아기와 사무엘의 성전생활, 그리고 다니엘의 포로되어 가던 당시가, 전멸된 이스라엘을 일으켜 세우는 중심이었습니다. 중간반으로 생각한다면, 한 교회 신앙의 중심에 서고도 남을 때입니다. 어른이 되면 그 육체가 쇠함과 같이 그 신앙도 급격히 노쇠의 길을 걷는 것이 일반적 현상입니다. 역사에 이 현상을 거스려 주 앞으로 나아간 이들은 별로 없습니다.
어린 것은, 세상 사회의 질서 안에서 어린 것이지 주 안에서 어린 것이 아닙니다. 중간반이 미숙한 것은, 사회 경험에서 아직 섣부른 것이 많다는 것이지 교리와 깨달음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장년반이라면, 다시 아이가 되어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자라나는 움싹을 가로막는 십자가의 원수일 확률이 99%입니다. 돌이켜 회개할 일이 너무도 많을 것입니다.
정답을 드리기에 어려워 참고될 말씀을 두서없이 했습니다.
(답변5) 4.어떤 형태로든 뜨거움이 내적으로 보여야 하고 5.지나친 면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4.자라가고 성장하는 교회란 어떤 현상이 있는 것일까요
성장하는 교회를 논할 때, 100에 100이 양적성장을 기준으로 말합니다. 백영희신앙노선은 양적성장을 성장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틀림없으나 양적성장과 동시에 그 내부가 하나님 앞에 진리와 영감으로 자라가는 내적 성장이 있는지를 반드시 살펴보고 있습니다.
자라가는 현상은 우선 교회 안에 있는 자기 교인 스스로 볼 때, 교회 내에 뜨거움이 있는지가 가장 빠른 척도가 될 것입니다. 생명은 반드시 체열을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기도로 뜨겁든 전도로 뜨겁든 회개로 뜨겁든 뜨거워야 그 다음 단계로 부흥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하다못해 놀러다니는 일로도 뜨거워야 넓은쪽으로나마 부흥이 될 것입니다. 어느 교단을 막론하고 부흥되는 교회는 그 활동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어떤 방향으로든 뜨거움이 있다는 것은 공통적인 문제입니다.
5. 충성이란 것은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 것일까요
자기 있는 힘을 다할 때 이를 충성이라고 합니다. 충성이 진정으로 있다면 반드시 무리한 일이 나타납니다. 어느 면에서라도 너무 지나치다 할 만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싸우지 않을 싸움을 하는 사람도 무작정 야단칠 것이 아닙니다. 습관적인 사람도 있고 본래 패역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충성이라는 것은 여간 원숙한 신앙이 아니고는 남들에게 눈총을 받도록 그 행동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답변6) 5.이 신앙에 있는 이들은 받은 말씀으로 자기르 쳐서 고치는 데 주력해야
6.'총공회 교인들이 귀한 은혜를 받았는데 잘못 삐뚤어져 갈 수 있는 요소는'에 대하여
백목사님 교훈노선에 있는 교인들은, 백목사님 외에 어떤 목회자를 상대해도 그를 정죄하고 가르치고 야단칠 수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승이 되어 남을 가르칠 사람이 남 밑에 배우는 사람으로 있다는 것은 한 마디로 불행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남의 눈에 티끌을 잘 보았다는 것으로 자기 성화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그 밝은 눈으로 자기를 얼마나 잘 보고 고쳤느냐입니다.
또한 구별하고 따지라는 교훈이 강한데 이 문제를 가지고 자기 이권을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싸우고 다투면서 이를 좋은 신앙으로 알기 쉽다는 것입니다.
7.성경공부에 대하여는
/초기화면/연구실/성경공부방을 천천히 훑어 보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