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질문) 구멍가게식 목회는 (쉬/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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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34
8. (질문) 구멍가게식 목회는 (쉬/363)
1.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하였는데 그 몸은 어디에 속한 것입니까
일반인처럼 땅에 속해 있는 것인지? 사람이 흙으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이 죄로 인한 사망의 해를 받지 않았다는 것인지요?
2. 백목사님이 어떤 목회를 구멍가게에 비유하여 질책하셨다는 것을 주변을 통해 들었는
데 구멍가게식의 목회는 어떤 목회이며 지향해야할 목회라는 것은 어떤 목회인지요? 구 멍가게식의 목회와 비교하여 말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변1) 1.에녹의 죄 아래 있던 세상 육체가 '홀연한 변화'를 통해 영계로 이동한 것
1.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고 하나님이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않았다는 것은
에녹은 창5:22,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죽음에 속하지 않고 영생에 속한 것임을 말씀하고 보여주는 성경입니다. 에녹에게는 실제로 일반인이 죽는 사망의 고통과 임종으로 남겨지는 시신의 괴악한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하였고 그 육체를 가지고 그대로 옮겨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죄값으로 인하여 이 땅 위에서 가지고 있던 육체의 모든 상태를 그대로 하늘나라로 가지고 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신령한 영계이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인간의 몸이 어떻게 깨끗하고 거룩하게 관리되었더라도 그것은 시공에 제한을 받는 물체일 뿐입니다. 에녹의 몸이 시공을 초월하고 영물들만 사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려면 이 땅 위에서 가지고 있던 그 물체적 기능과 성질을 신령한 것으로 변화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땅 위에서 물체적 존재로 있던 몸이 영계에서 살 수 있는 신령체로 변화되는 이 과정에서 일반인들은 '임종의 고통' '시신의 부패' '해골만 남는 인체' 등으로 그 순서를 밟게 된 후 예수님 재림 때 그 모든 육체의 흩어진 요소들을 재집합시켜 생전의 모습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에녹의 경우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전부 생략되어 세상에서 그의 육체가 활동을 중단할 시점에서 바로 영계의 신령한 존재로 옮겨지는 '순식간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동안 종노릇'하게 되는 보편적 인간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보다 더 큰 복이 없을 것이고 이보다 더 부러운 것이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 면을 두고 성경은 에녹이 그 육체까지 함께 영계로 옮겨진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죽음의 일반적인 순서를 외부 모습으로까지 다 밟고 있지만 에녹은 이런 순서를 거치지 않고 바로 영계로 옮겨졌으므로 모든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대상이 되었으니 성경은 '하나님과 동행'한 생애란 이렇게 '사망을 초월'하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에녹이 평생 가지고 사용하던 육체도 우리 육체와 같이 죄로 인하여 저주받은 둔탁한 한 물체였습니다. 그러나 에녹의 육체는 하나님과 동행에 순종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죄로 인하여 저주받은 물체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하여 에녹의 육체에는 세상 땅 속에 두어 땅 속에서 썩혀 두었다가 이다음 부활할 때 조사를 해서 따로 지옥에 보내야 할 부분이 없었기 때문에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는 과정만을 통과시켜 그대로 옮겨가신 것입니다.
이 원칙은 엘리야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며 또한 예수님 재림 때까지 살아 있다가 세상 종말을 육안으로 이 땅에서 맞을 최후 성도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교리적인 내용이 있어 /초기화면/연구실/자료방/ 2002.5.19. 글에서 보충 내용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답변2) 2.목회가 돈 중심이면, 교회는 구멍가게일 수밖에 없습니다.
1.목회자가 돈 중심이면, 그 교회는 그 목회자의 '구멍가게'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 자기가 맡고 있는 교회가 자기 신앙양심과는 다른 신앙노선으로 가는데도 당장 사직하게 되면 생활문제가 있어 조용하게 눌러 있다면, 이는 교회를 구멍가게로 상대하는 목회자일 것입니다. 반대로 현재 교회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목회자가 자기 신앙성향과는 다르나 목회조건이 좋은 곳에서 초청한다고 간다면 이는 세상생활 형편을 중심으로 목회하는 싻군 목회자, 즉 교회를 구멍가게로 아는 사람일 것입니다. 일상 목회에서는, 교회의 행정 하나 교훈 하나가 경제적 곤란이 어떻게 닥쳐도 꼭 말씀 중심으로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문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백영희목사님이 목회자들에게 항상 지켜야 할 3대 조심 중에 첫째가 '경제결백'이었습니다. 경제결백을 가지라는 말은 경제문제를 초월한 목회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말이 아니라 실제로, 아무리 굶고 헐벗어도 목회자가 꼭 진리노선에서 신앙양심으로 걸어가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겠는가? 연보를 가장 많이 하고 또 교회 회계 지출을 거머쥐고 있는 장로님에게 목회자가 꼭 해야 할 말과 조처를 신앙양심에 따라 하겠는가? 아직까지 그런 경우는 보지 못했습니다. 혹시 있다면 그런 분들은 아직도 갈 곳이 있고 뒤로 저금해 둔 것이 있어 여차하면 딴 살림을 차릴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는 신앙양심이라기보다는 먹을 것이 있기 때문에 목회자가 배부른 객기를 부리는 것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2.목회자가 교회를 구멍가게로 알았던 것을 회개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로 상대해야 할 것입니다.
대속의 피로 진리 노선에 세워 사람을 믿게 하고 믿는 사람을 더 잘 믿도록 모아주신 곳이 교회입니다. 죄를 짓고(죄) 인간 자율로 행하고(불의) 하나님과는 멀어지고(원수) 세상과 가까워질지라도(절망) 사람을 모아 교회 경제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이 자세가 바로 하나님의 교회를 도적의 소굴로 만드는 십자가의 원수라고 알아야겠습니다. 비록 경제적 곤란은 지극하겠으나 교인 중론보다는 말씀원칙에 철저히 나가고(사죄) 하나님이 기뻐하는 뜻을 찾고(칭의) 하나님이 동행할 수 있는 길로 나가며(화친) 천국이 점점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매사를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3.총공회 교회를 두고 예를 든다면
극소수의 교역자를 제외하면, 총공회 신앙노선의 목회자들은 박수치고 찬송을 하거나 예배당에서 기타 드럼을 사용하는 일, 남녀 학생회 청년회의 여러 활동 등을 거의가 다 싫어하는 신앙양심과 신앙노선을 가졌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거의 다 그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은, 교인을 붙들기 위해서입니다. 그 속에 깊은 중심은 그렇게 해야 교회의 경제가 돌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목회자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교인들을 달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목회자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것과는 분명하게 또 또렷하게 틀린 것과 잘못된 것을 허용하게 되고 이런 조처를 합리화 하기 위해 그럴 수 있다는 설명을 하다보니까 목회자 자신의 신앙까지도 이전과 다른 길로 변질 속화 타락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오늘 총공회가 그러하지만 이미 타교단들은 40여년 전에 그러했습니다. 우리 모든 교계와 목회자가 경제를 초월하는 초보 단계를 벗어나지도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면을 두고 백목사님의 탄식과 호통이 교역자들을 향했던 것입니다. 공회와 교계의 모든 교회들이 어지러운 원인 중 절대다수는 바로 목회자의 돈 중심이 들어있고 교계의 큰 문제에는 명예문제가 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