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질문) 교역자의 교회 내 인인관계 5927
서기
교회
0
24
2023.03.13 21:34
29. (질문) 교역자의 교회 내 인인관계 5927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얼마전 신학교 친구로부터 소개를 받고 많은 은혜와 놀라움을 느끼고 있는
침례교 목회자입니다.
저는 성격이 외향적이지 못하고 소극적이며, 다른 사람들이
저의 대한 좋지 않은 얘기를 하면 견디지를 못하는
너무나도 속 좁은 부족한 사람입니다.
지금 소속 되어 있는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3년이 넘어가는데
교인 몇분과 사이가 좋지를 못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는 정말 정상적으로는 이해가 가질 않는 분들이며
제가 부족해서 그렇겠지만 저를 무시하는 것 같고
집사람에게도 함부러 하는 것 같습니다.
집사람은 너무나 힘들어하고
정말 저도 마음속에서 미움과 증오만 생기고 그 사람들을 품어주고
인도할만한 실력도 안 되는것 같고
이러한 고통을 담임목사님에게 얘기를 할려니 믿음이 없는자라
야단만 맞을 것 같아서 얘기도 못하고
그분들에 행동은 날이 가면 갈수록 심한 것 같고
정말 목회를 그만 두고 싶은 마음만 드는 상황입니다.
도저히 저와 집사람은 그분들을 감당할만한 실력이
아직은 갖추어지지 안 한것 같은데
이러한 상황속에서 제가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답변) 교회 내 부목의 인간관계
1.인인관계의 만병통치 특효약은
예수님 날 위해 희생하신 그 분량과 그 고통의 정도를 새기고 느낀 다음
나도 어떻게 다른 사람 구원에 도움 되도록 희생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대속에 감격한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2.교회 내 가장 어려운 처신이 부교역자입니다.
잘해서 교인들이 따르면 담임목회자에게 의심이나 견제를 받게 되고
못해서 교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교회에 공연한 짐덩이가 됩니다.
그렇다고 너무 잘하지 않고 너무 못하지 않게 적당히 처신하려 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갈1:10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위로 담임목회자와 또 아래로 모든 교인들 사이에서 적절히 처신하는 것은 이 성구가 엄히 질책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만 보고 죽도록 충성하면 분명히 옳기는 옳은 일인데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되돌아보면 옳은 것이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또 옳은 일을 하기는 했는데 그로 인해 생기는 분란 때문에 정작 나 자신이 시험에 들거나 뒷감당을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3.정답은 다윗입니다.
모세를 만나서 여호수아처럼 충성한다면 참으로 이상적인데
모세 같은 담임을 만나는 것도 어렵고 나 자신이 여호수아 신앙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적어도 모세 밑에 고라처럼 되지는 말아야 합니다.
좋기는 다윗처럼 충성하면 교인들은 좋아할 것입니다. 문제는 담임목회자가 시기할지, 견제할지, 어떻게 할지 걱정입니다.
바로 이 경우 우리가 주목할 인물은 다윗입니다.
억울해도 주님 바라보고 끝까지 주어진 현실에서 충성하는 것으로 전부를 삼았습니다.
단숨에 뒤집어 엎을 수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면 몰라도 자기 손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사울을 빨리 없애주기를 기다리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사울이 돌이켜 그에게 충성하는 자기를 바로 거두는 좋은 선배가 되기를 노력했습니다. 오늘 부교역자나 그런 처지의 모든 이들이 잘 새겨봐야 할 대목입니다.
4.질문하신 내용에 집중한다면
①성격이 외향적이지 못하고 소극적이며 남의 비판을 잘 새기지 못하시는 성격의 경우
우선 외향적이지 못하면 세상 조직에서는 아주 단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상대해야 하고 하나님과 거리 관계에서 실력과 모든 것이 결정되는 우리 신앙세계에서는 아주 큰 장점입니다. 활달한 외향 성격은 어디 가도 잘 어울리고 윗 사람 잘 모시고 조직에 성공적으로 진입되지만 그런 분들은 인간 보기에는 장점이 많아도 자기 속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뵙고 상대하는 일에는 아주 단점입니다.
신앙은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하며 말씀으로 새겨보며 나를 돌아보며 벌벌 떨며 살아야 하는 것이 기본자세인데, 활달한 성격들은 이런 신앙의 기본 단계에 아주 단점입니다. 질문자의 소극적인 성격은 이런 면에서는 아주 큰 장점입니다. 다만 다른 사람의 비판이나 비난을 마음 속에 꽁하고 상처받는 것은, 고쳐야 할 아주 큰 단점입니다.
내 얼굴에 밥풀이 묻었다고 말하는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거울을 봐서 밥풀이 정말 묻었다면 그 사람의 말 때문에 큰 창피를 당하지 않을 것이고, 밥풀이 묻지 않았는데 잘못 보고 말했다면 그 사람이 날 사랑하고 날 고치려는 사랑의 동기로 말했는데 다만 인간이라 실수할 수 있는 것이니 이해를 해야겠고, 만일 날 비판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면 기쁘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하신 산상보훈의 보배로운 복에 해당됩니다.
지금 질문자께서 어느 청년 교인이 질문자처럼 친구들에게 그런 비판을 받고서 마음이 상하여 질문자께 상담을 한다면 질문자께서는 '괘씸한 놈' 하면서 꽁하라고 시키겠습니까? 아니면 답변자의 이런 안내를 하겠습니까? 목회자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 이유는 목회자 자신이 이런 비판을 받을 때 직접 자기 잘못 된 자세를 고치고 다른 사람의 비판을 신앙으로 상대할 수 있어야 교인들에게 실제 그렇게 하는 것이 복이라고 설교를 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부목회자로서 질문자께서 남의 비판을 종종 받게 되고 마음이 상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질문자의 단점을 임상실험을 통해 고칠 수 있고 그런 단점을 고칠 때 어느 정도로 어려움이 있으며 그 단점을 어떻게 해서 고쳤는지 경험을 쌓게 하셔서 앞으로 맡길 질문자의 모든 교인들에게 말만 하는 목회자가 아니라 말씀대로 자신이 실제 살아보고 그 살아본 생을 양식으로 전달하는 참 목회자를 만드시려고 주시는 굉장히 좋은 실전 훈련입니다.
물론 초두에 소개한 대로 주님 날 위해 못들을 그 모든 비판들을 참으신 것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주님께서 나에게 그런 말을 들을 때 날 위해 죽으신 주님이 참으신 것을 생각하며 상대방 구원 위해 너도 참으라 하심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참은 것을 잘했다 하시고 상주시고 기쁘하신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의 비판으로 날 고쳐서 좋고 아니면 날 예방해서 좋고 아니면 참음으로 주님 참음을 경험해서 좋고 그래서 하늘의 상이 많아서 좋고, 그래서 성질나고 말많이 하고 싶은 이들이 자기들끼리 그렇게 하다가 더 큰 싸움이 나서 교인들끼리 교회를 안 다니는 결과까지 가는 것보다 차라리 부목인 나를 비판했으면 하는 분이 되셨으면 합니다.
답변자 교회 장로님이 한 분 계십니다. 장로님 세울 때 교인들께 답변자가 그렇게 부탁했습니다. 혹시 패고 싶을 때 혹시 화풀이 하고 싶을 때 혹시 실컷 욕하고 싶을 때가 있으면 우리 교회 장로님에게 그렇게 하셔서 마음을 푸셨으면... 다른 분들에게 그렇게 하면 싸움이 될 것이나 우리 장로님은 바로 그렇게 애매히 고난 당하는데 온 교인들 앞에 앞장을 서겠다 하여 장로님이 되셨으니 그분에게 그분 소원대로 해 드리시고 그대신 교인끼리는 참으셨으면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만일 장로님 하나로 성이 차지 않거나 장로님이 그렇게 당하지 않겠다 하시거든, 이 교회에서 그런 일을 제일 잘하겠다며 자진해서 부임한 이 담임목사를 그렇게 하시고, 만일 그렇게 하는 것을 잘 새기지 못한다면 다음 시무투표 때 불신임을 시켜 다른 곳으로 보내달라고 합니다.
이런 자세는 목회자로서 훌륭한 자세라고 하기보다는 당연하며 평균 정도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 단계가 제대로 연습되지 않는다면, 부목을 유지하며 경력을 쌓거나 우선 매월 생활비를 받는데 급급하지 마시고 그런 단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까지 노동을 하거나 장사를 하면서 내 속아지를 고쳐야 합니다. 지금 목회자 숫자가 적어서 복음운동에 지장되는 일은 없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목회자의 기본이라도 가진 목회자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신학교 졸업과 목사 자격증 취득이 목사를 목사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 속에서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이런 인인관계를 바로 새기고 바로 처신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상대로 바른 관계를 가지겠습니까? 보이는 바 사람에게 하지 못하는 자가 볼 수 없는 바 하나님께 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했습니다.
②사모님의 고통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목사야 자기가 좋아서 목사가 되었지만 대개 사모님들은 어느날 남편이 목사를 하겠다니까 할 수 없어 사모님이 되는 분들도 계시고 혹 좋아서 사모가 되려고 지원을 했다 해도 교회 내 주력 교인들이 여반들이므로 사모님은 못나면 못나서 무시 당하고 잘나면 잘났다고 질시를 받게 됩니다. 또 교인들이 자세가 자기들이 주는 월급으로 먹고 사는 임시직처럼 상대하기 때문에 부자집 몸종 부부로 사는 듯 느낄 수 있는데 부목회자는 교회 내 예배인도처럼 교인들이 조심해서 상대할 위치라도 있는데 사모님은 늘 교회의 쓰레기를 치우는 걸레같은 신세가 됩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고난은 목회자보다 사모의 고난이 더 많기 때문에 백목사님은 목회로 출발해야 하는 부부가 있으면 반드시 부인을 불러 각오와 결심 그리고 목회 출발의 결정을 의논합니다. 여자에게 주권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모가 더 십자가를 져야 하니 그에게 십자가를 부탁하는 사람이 사모를 불러 간곡하게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모의 십자가를 해결하는 방법은 남편에게 달렸습니다. 남편이 앞서 자기에게 닥치는 고통을 주님 십자가 생각하고 그 비판과 고통을 기쁘게 당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자기 아내에게 그렇게 살 수 있도록 가르치고 부탁하고 격려하고 위로하여 그런 길을 걸을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 만일 부목회자이신 남편이 교회 내에서 그런 고통을 고통으로 받는다면 자기 아내에게는 참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훈련이 되지 않았다 해도 일단 교회직책을 가졌으니 얼른 자신을 고치는 것이 옳고 만일 교회 직책을 가지고도 장기간 고치기 어렵다 생각하면 세상에 나가서 세상 돈을 한번 벌어보실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목회자 부부가 세상 어느 직자이나 일터에 가더라도 남에게 월급을 받고 일당을 벌어보려면 교회의 교인 시집만큼 시달리지 않고 돈을 버는 곳은 없습니다. 대형백화점 입구에 서서 그 수많은 손님들에게 90도 허리를 숙여 있는 정성 다하여 절을 하는 안내원들을 한번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그런 백화점 입구의 인사하는 사람은 젊고 잘 난 사람들입니다. 집에 가면 부모에게 뻣뻣하게 큰소리치고 동네 어른들을 깔아뭉개고 보는 여자들입니다. 그런데 월급 때문에 그렇게 극진하게 절을 하고 있습니다.
목회자 부부가 이것 저것 다 두고 꼭 참기가 어렵다면, 이 취직 어려운 세상에 직장을 가졌으니 의례껏 더럽고 어렵고 힘든 것은 상식인데 그래도 교회니까 세상 막가는 직장만큼이야 그러하겠습니까? 교회 내의 인인관계를 어렵다 하면 다른 곳에서는 더 어려울 것입니다.
③교인들의 행동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면
그것은 교인들의 태도가 실제로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질문자 부부가 억울하고 고통스럽게 느끼기 때문에 이제는 약간만 자극을 받아도 더욱 참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본인들이 느끼는 주관이 문제일 것입니다. 1960년대 군대서 탈영한 사람들은 매맞고 배가 고파서 그랬다고 합니다. 요즘은 따귀 하나라도 잘못 때렸다가는 난리가 나고 일반 사병들이 살이 찔까 해서 다이어트까지 시키는 군인데도 여전히 탈영과 심지어 대형 살상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매가 더 많아서가 아니고 과거보다 듣기 싫은 말을 참지 못하는 세대가 되어 과거에 비하면 아무 말도 아닌데 조금만 자극을 주면 바로 터지는 신세대 속아지가 잘못되어 그렇습니다. 이제 현재 목회를 배우고 시작하는 많은 분들이 가정에서 부모들에게 온갖 사랑을 받고 큰 세대입니다. 그래서 듣기 싫은 말을 별로 듣지 못하고 자라나온 세대들이 급격하게 목회일선을 채우고 있습니다. 말은 과거처럼 목사지만 듣기 싫은 소리를 듣지 않고 외부 다른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자라나왔기 때문에 그렇게 큰 고통이 아닌데도 스스로 큰 고통으로 느끼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마치 요즘 시집살이야 시집살이라고 할 수 없고 오히려 시어머니들이 며느리들에게 시집을 사는 세대인데도 혹시 시어머니가 인상이라도 한번 찌푸렸다가는 이혼문제까지 가는 시대입니다. 그 며느리들의 시집살이 불평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시집살이가 어려워 시집살이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고 신세대 새댁들의 근본 사고가 공주병에 걸려 생긴 문제이니 성장과정의 잘못이라고 비판하고 싶습니다. 질문자의 개인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우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혹시 이런 문제들에 해당되지 않는다 해도 이곳을 찾는 다른 젊은 목회자들을 위해 참고 들으셨으면 합니다.
④다시 한번 부탁하고 싶은 것은
목회자란
주님 고난이 그립고 그 고난으로 내가 구원받은 것이 감사해서
나도 조금이라도 그 주님의 그 고난에 흉내라도 내겠다며 출발한 직업입니다.
그리고 교인들에게서 듣기 싫은 말을 듣는 등의 고통이 있다면
바로 그런 고통도 주님께서 날 위해 담당한 고통이니
목회자 부부라면 그런 고통을 즐겨 당해 보겠다고 약속하고 출발했음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주님 날 위한 고통
나도 주님 명령 따라 조금이라도 지기를 원하여
감히 목회자의 길을 시작하셨으니
이왕이면 교인들이 목회자 부부를 못살게 굴어야 자신을 돌아보며 고치든지 아니면 십자가를 지는 연습을 해볼 것입니다. 이런 생활 속의 작은 십자가 지는 연습이 쌓여서 절정에 오르게 되면 그때야 비로소 순생순교자였던 손양원목사님과 같은 목회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