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질문) 총공회에서의 사모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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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질문) 총공회에서의 사모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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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질문) 총공회에서의 사모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2212

총공회에서의 목회자의 아내 즉, 사모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또한 세상직업을 가지는 것은 성경적으로 합당치 못한 일인지 궁금합니다.


(답변) 초창기에는 사택 안에 연금을 해 둔 정도입니다. 후반부에는 할 일을 찾도록 했습니다.

1.교훈의 일면을 보실 때는 늘 교훈의 뒷면과 전체면을 보셨으면 합니다.

이곳에서 제공하는 설교록은 대단히 많은 면을 담고 있습니다. 한 면만을 보시거나 어느 기간 설교들만 집중적으로 보시면 한 면으로 지나치게 나갈 수 있습니다. 재독만 해야 한다는 사람, 설교만 해야 한다는 사람이 모두들 같은 설교록에서 인용을 하고 있지만 한쪽에만 치우쳤다고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1970년대까지는 사모의 역할은 사택 안에 연금을 해 둔 상태로 보시면 거의 맞을 정도입니다. 목회자가 독신이면 교회에 많은 지장이 있을까 해서 결혼하게 된 그런 존재 정도, 또는 목회자가 먹고 입을 때 수발하는 식모 수준이었습니다. 법으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당시 신앙어린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해서 사모 한 사람에게 무거운 짐을 지웠던 것입니다. 신앙노선에 관련된 정도가 아니면 최대한 신앙어린 사람들을 위해 앞서 믿는 사람들이 불편해야 하는 것이 십자가로 가는 길에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즉, 1970년대까지로 말한다면 교회를 출석하는 교인들이 비록 발표는 하지 않아도 깊은 속에 사모의 활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고 또 사모님들도 그런 우려를 넘어설 정도로 실력있는 분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 다른 교회들은 선교사들과 해외 교회와의 교류가 활발하여 목회자들이 사모에 대한 인식이 일반 교인들보다 앞서 있었고 이것이 보이지 않게 손해가 되었습니다. 백목사님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교인들의 깊은 마음 속 불만을 목회자로서 충분히 고려했던 것입니다.


2.비슷한 예로, 연보 문제가 있습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교회들이 연보주머니를 회계집사님들이 들고 예배시간에 교인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들이밀며 연보를 '수금'하고 있었습니다. 백목사님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예배당 입구 밖에 둔 연보궤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어린 교인의 깊은 속마음을 상대하여 그들을 신앙으로 지도하는 일에 과연 어떤 것이 더 복음적이겠는가를 고려한 것입니다.

지금은 교회들 경제가 넘쳐나기 때문에 모두들 점잖하게 바뀌었지만 당시로서는 교회의 기본 운영을 위해서는 그렇게 무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린 교인들의 마음에 상처가 있어도 교회의 경제운영을 먼저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그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그대신 목회자가 내핍생활을 할 것인가 라는 문제입니다. 이런 것도 보이지 않는 목회자의 십자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모님들이 활동을 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유교에 젖었던 분들이 수많은 전도 끝에 이제 겨우 교회로 출발하고 있는데 사모님이 설치는 모습을 보고 시험에 들까 하여 사모에게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도하고 좋아 보이는 모든 활동은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하도록 한 것도 일종의 그런 십자가였을 것입니다.


3.1980년대가 되면서, 세상사회가 세상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뒤바꾸고 있었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집집마다 자기 딸이나 자기 며느리들이 사회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안 믿는 사람들도 그 인식이 완전히 바뀌고 있었습니다. 이제 여자들이 실력있게 활동을 하느냐는 것으로 판단을 하게 됩니다. 이전에는 여자라는 것이 나섰다는 것 자체를 두고 내심으로 불쾌하게 생각하던 인식이 급격하게 없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점에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변화는 교회 내 교인들의 인식과 활동 형태였습니다. 예로부터 교회는 여자분들이 중심이 되었고, 따라서 교회 안에 사모님이 나서지 않아도 여반들이 많았기 때문에 불편이 없었습니다. 당시는 여자분들이 사회활동이나 개인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반 교인들은 사모님이 별로 필요없을 만큼 교회일을 발로 뛰고 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가 되면서 교회 경제는 급격히 호전되고 여반 교인들도 여러가지 사회활동 때문에 교회일을 이전처럼 전념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리고 사모님이 활동을 해도 그 활동 자체를 두고 비판할 분위기도 지난 날이 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교회들은 급격하게 교회 안에 전념해야 할 사모님의 공간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소형 중형 교회에 해당되는 일입니다.

자연스럽게 백목사님은 1980년대를 넘어서면서 사모님들에게 또 한번의 십자가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교회를 위해 반사를 하고 구역장을 하고 교회 운전기사노릇을 하고 안내원 노릇도 하고 목회자와 함께 동반목회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4.이런 변화를 두고, 백목사님도 세월 속에 변화했고 적응했다고 비약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교회가 바꾸지 말아야 할 신앙노선을 바꾸면서 마치 철을 따라 옷을 갈아입지 않느냐는 논리를 제시하거나 아니면 예배당 건축 모양이 시대마다 달라졌지 않느냐고 합니다. 또 총공회 내에서는 백목사님도 이전 사모님들에게는 밥이나 잘하라고 했는데 1980년대 이후에는 심방 전도 설교 행정까지 두루 잘 해야 한다고 그 방향을 전환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잘못 본 것이 있습니다. 성경과 교리와 신앙노선에 관련된 문제는 바뀌지 않습니다.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 사모님 문제를 두고 말씀드린다면, 복음을 위해 목회자는 보이는 십자가를 지고 사모님은 보이지 않는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즉, 1970년대까지는 여자들이 외부 활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던 때였습니다. 그때 사모님들은 교회라는 곳에서라도 한번 휘젖고 싶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가 지나가면서 교회에 경제가 좋아지고 사모님들도 신세대가 되니까 이제는 사모님들이 교회일과 사택일을 구별하여 사택은 교회와 별개의 공간으로 만들고, 또 사모님들도 자기들의 개인 사생활을 가지고 싶어하게 되었습니다.

과거 사모님들이 교회 일에 앞장 서서 나서고 싶을 때, 다른 교단은 실력껏 나설 수 있었고 또 목회자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으나 총공회는 사모님들을 꾹 눌러두었습니다. 그런 기회를 양보하므로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교회는 사모님들이 교회에서 받은 월급으로 사생활을 누리고 싶은 시대인데 이제는 교회에 일할 사람들이 없어지고 사모님들도 땀흘리기 싫어하는 시대입니다. 시대가 이렇게 바뀌면 다른 교단들은 사모님들이 교회의 경제 형편만 허락된다면 평안한 사생활을 가질 수 있는데, 총공회는 충성하는 사람이 있어야 할 바로 그 자리가 비고 있는 것을 사모님들이 나서서 전부 감당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시대나 저 시대나, 목회자는 보이는 십자가를 지고 사모님은 그 밑에서 보이지 않는 십자가를 지라는 이 시각에서 본다면 변한 것이 없습니다. 물론 1980년대 이후 설교에서도 사모님들은 밥이나 짓고 빨래나 잘 하라는 말씀을 한 적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설교 앞뒤를 잘 살펴보시면 이제 답변드린 내용이 중심에 있을 것입니다.


5.목회자 사모님의 세상 직업

목회자 부부의 직업은 목회가 전업입니다. 사모님의 세상 돈벌이는 사택의 부수입이 될 것인데 이는 목회자의 부수입이 됩니다. 따라서 당연히 금하는 것이 옳습니다.

다만, 목회를 나오려는 남편과 못 나오겠다는 아내로 출발한 사택이라면, 그 사모님이 아직도 목회에 찬성을 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금할 수 없는 일입니다. 교회가 그런 입장을 이해하면 상관이 없습니다. 교회의 허락을 받아 결정할 문제입니다.

또, 교회가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목회자 부부가 목회는 해야 하겠고 교회 경제만을 가지고 내핍생활을 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 그 고통을 감당하지 못할 때는 그 목회자 부부의 실력이 어리고 신앙이 어리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목회자가 설교를 잘 해야 하는데 은혜를 끼치지 못하는 것도 고장이고 목회자가 아무리 어려워도 교회 경제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그 경제 고통을 감당치 못하는 것도 목회자의 고장입니다. 설교 못한다고 면직시킬 수 없듯이 부업한다고 면직시킬 수는 없습니다. 이것도 역시 교회의 양해사항입니다.

목회자가 세상직업을 가지지 않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요즘 목회자치고 또 정상적인 목회자가 있습니까? 굳이 말한다면 교회 경제 내에서 생활하는 것이 옳은데 그 경제로는 사택이 생활을 못할 정도라면 결국 목회자가 돈이라도 벌러 가야 할 것입니다. 좋기는 돈벌러 갈 시간과 노력을 가지고 기도하고 전도하면 당장에 교회가 부흥이 되어 해결되겠지만, 그런 이치를 알지도 못하는 분들이 적지 않고, 또 알기는 해도 아예 시도도 해보지 않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도 목회자들이 세상직업을 가지지 못한다 하여 다른 교회 보조를 받는 것은 차라리 세상 직업을 가지는 것만도 못할 수도 있습니다.


(재질문) 전도사와 강도사등 목사이전의 시기에

총공회에서는 '조사'라고 불리고 있는 '전도사'와 '강도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이들의 아내 또한 마찬가지로 답변하신 것과 같습니까?
그리고 목회자양성원의 목회자후보생들의 생계는 어떻게 경영되는지요?


(답변) 전도사나 목사를 '목회자'라는 단일 시각에서 보고 있습니다.

1.공회는 교역자의 개념이 '목회자'로 단일화 되어 있습니다.

'안수' '축도' '세례 성찬' 외에는 목사와 조사(전도사)의 차이가 없습니다. 사실 장로와 집사의 차이도 안수를 받았다는 정도만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집사와 권찰의 차이도 그렇게 반사와 장로의 차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이름이 목사든 조사든 '목회자'라는 의미로만 통하고
그 이름이 장로든 집사든 반사든 '일반 교인' 정도의 의미로만 통합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차이가 있다면 현 신앙을 가장 중요하게 봅니다. 어제 성자가 오늘 사울이 될 수 있고 어제 목동이 오늘 다윗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과거를 잊거나 무시하지 않습니다. 흔히 목사는 전문의로, 강도사는 수련의로, 또 전도사는 의과대학생 정도로 생각하지만 공회는 동일한 의사로 보고 있습니다. 강도사 개념은 공회에서는 없습니다. 될 수 있으면 모든 것을 단순화하기 때문입니다.


2.다만, 개교회에서 교육전도사 차원에서 일하는 분들은, 일반 교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잠깐 교회 일을 하다가 일반 교인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또 겸업도 할 수 있습니다. 남편만 교회일을 하고 그 부인은 같이 교회일을 하는 경우도 있고 또 세상일을 하면서 남편의 앞날 진로가 어느 방향으로 확정될지 지켜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를 하는 조사님이나 목사님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그 평생을 목회에 바치기로 서원한 사람들입니다. 원칙이 동일합니다.


3.목사 과정인 '양성원 과정'의 학생

양성원 학생은, 목회를 하면서 공부를 하는 사람과 세상 직업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대학생처럼 공부만 하는 식으로 양성원을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양성원학생이기 때문에 달라질 사안은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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