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질문) 사모와 자녀에 대해서 (쉬/1408)

주제별 정리      

                           37. (질문) 사모와 자녀에 대해서 (쉬/1408)

서기 0 27

37. (질문) 사모와 자녀에 대해서 (쉬/1408)

1. 사모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2. 사모가 자기 남편이라 할 수 있는 목회자에게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
어떤 이유가 있으며 또 교인입장에서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합니까 ?

3. 목회자의 자녀는 교인들의 신앙생활에 많은 보이는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친다고 봅니다. 목회자의 자녀들이 소위 바르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잘 하지 못한다면 예를 들어 설교중 거의 잠을 잔다든지 등등 그 자녀를 보면서 목회자 또는 사모 중에 누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판단을 해야 할까요?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바른 깨달음은 무엇일까요

4. 목회자가 말로는 혈육적인 면에서 떠났다고 하는데 단상에서 제외한 일상적인 생활에 있어서 자기 혈육에 대해서 지나치게 집착하는 면이 보인다면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합니까 ?

5. 목회자가 자기 사람에 대해서 많은 집착을 보이고 그러한 것이 소위 교회의 일꾼으로 나타날때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 그리고 자기를 추종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눈이 멀고 귀가 멀어서 외부로부터 보는 시각을 좀처럼 느끼지 못하고 또한 그 주변에 있는 사람이 여러면에서 은혜를 가로막고 그것을 목회자가 자기 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답변1) 1.사모의 어려움, (*이곳 질문은 최대한 짧은 답변을 원할 때 사용)

1.사모가 남편 목회자에게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은 크게 2가지로 봅니다.

남편 목회자가 평범한 목회자인 경우

첫째, 늘 먹는 세끼 밥맛과 오래 입은 옷은 사모의 취향을 항상 새롭게 자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살다보면 남편보다 다른 남자가 마음을 더 자극하는 인간의 나쁜 악성 때문입니다. 현재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 늘 새롭게 새겨보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광야 시절을 잊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에게는 불행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배가 부르면 배부른 짓을 합니다.

둘째, 일반 교인들은 남편의 설교와 남편의 세수한 모습만 상대하는데, 아내는 목회자가 설교대로 살지 않는 헝컬어진 모습을 항상 상대하기 때문에 존경심이 없어 그렇습니다. 목회자가 도를 덜 닦아 그렇다고 해도 되고 또 사모가 철이 없어 그렇다고 해도 맞습니다. 마23:2-3 말씀대로 모세의 가르침에는 은혜를 받고 실행을 하되, 모세가 이방여인을 취한 것은 본받지 않아야 합니다.


남편 목회자가 정상적인 목회를 하지 않는 경우

지금은 막가는 목회자가 많기 때문에 남편에게 은혜를 받지 못한다 해서 위에 예로 든 2가지 원인으로 사모를 독촉하기 어렵습니다. 마치 정치가 아내가 남편의 연설을 들으며 청중들이 저 소리에 설득을 당해야 할 터인데 라는 생각만 있지 그 남편의 연설을 들으며 우리 남편은 저렇게 깨끗하다며 존경할 리는 없을 것입니다.

현재 대단히 많은 목회자 부부가 힘을 합해 교회와 교인을 상대로 목회자 부부 자신들의 행복과 성취감 그리고 사택의 번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자기 남편의 설교는 손님을 유치하는 사장님의 영업으로 볼 것인데 은혜라는 개념이 생길 리가 없을 것입니다.


2.목회자 가정의 사모와 자녀를 대하는 교인들의 자세

누구든 그 자리에 서게 될 때, 그 사모보다 나을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하나님도 사람되어 오셔서 죄인의 고통을 '체휼'하시고 구원했는데, 하물며 인간이 남의 사정에 대한 체험적 고통을 느끼지 않고 비판한다면 못된 교인이라 할 것입니다.

특히 사모 중에는 목회를 소원하여 자원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목회자와 꼭같은 입장에서 교인이 비판하거나 책임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목회로 나서는데 아내는 이혼을 할 수 없어 따라 나온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시집 간 내 딸의 장 담고 김치 담그는 것이 서툴 때 친정 어머니가 가지는 마음으로 상대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 내에서 주로 나이 먹어가는 여자 교인들의 화풀이 손찌검 대상은 주로 사모와 사택 아이들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손을 숯불에 집어넣는 행위일 것입니다.


(답변2) 2.목회자가 특별히 아끼는 사람

1.사택 자녀의 신앙과 교육책임

사택 자녀들 문제는 두말 할 것 없이 사모의 신앙입니다. 애굽의 학살 현장에서도 요게벳은 모세를 낳고 길렀습니다. 사모가 가정 경제 교육 등 모든 여건이 아무리 어려워도 자녀 교육에는 오히려 좋은 기회입니다. 한없이 좋은 여건의 교회에서도 사모가 말 몇 마디 잘못하면 그 자녀들에게는 적개심이 심어집니다. 가장 극단적인 환경에 있는 사모라도 그 환경에서 감사해야 할 이유를 잘 설명하고 가르치면 역경만큼이나 좋은 작품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목회자 가정이나 일반 가정이나 할 것 없이, 자녀의 신앙은 여자를 통해 영향을 받게 했고, 자녀가 모르는 객관적 복과 화는 남자를 통해 내려가도록 했습니다. 성자 밑에 성자 없고, 성녀 밑에 성자가 있다는 말은 이곳 뿐 아니라 모든 교회의 공통 관찰 결과입니다.

혹 목회자가 자기 자녀에 대하여 교인 중에 하나에게 하듯 한다면 그것은 목회입니다. 교인 자녀의 공부와 진로까지 철저하게 지도하고 팔을 걷어붙이는 목회자가 교인 중 하나로 자기 자녀에게 그렇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평범한 가정의 부모가 자녀에게 집착하는 것인지는 교인들이 알 것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원칙은, 목회자가 자기 가족에게 쏟는 투자가 많으면 하나님은 그만큼 발을 빼버립니다.


2.목회자가 교인을 편애하는 경우

목회자가 교인을 상대할 때는, 공평이라는 원칙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버리고 이삭을 후계로 삼은 것은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자기 개인 취향에 따라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결정이었고 또 그 둘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가 그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마엘에 대한 아브라함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사랑한 것은 요셉의 신앙과 하나님의 계획이 특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볼 때 야곱은 요셉을 아버지 취향으로 편애한 면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편애 때문에 요셉은 죽게 되었고 형들은 아우를 죽이고 아버지를 속인 죄를 지게 됩니다.

사람이 사람을 상대할 때, 자기 눈에 희망있게 보이고 이쁘게 보이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의 사랑과 관심과 지원을 집중하게 됩니다. 이것은 사람을 기를 때 하나님께서 앞서 나가시고 우리는 뒤따라가며 수종을 해야 하는데, 수종을 해야 할 종놈이 제 눈에 좋은 인재를 발탁하고 기르면 종놈이 자기 왕국을 건설하는 일이 됩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을 상대할 때도 그렇고, 특히 교회 안에서 인재를 기를 때도 그러하고, 목회자는 결정적으로 이런 면을 보지 못하고 제 기분에 취해서 열심을 내다가 훗날 따져보면 전부 헛일을 했다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회자는 모든 교인을 향해 꼭같은 사랑과 소망과 희생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주려고 해도 도망을 갈 때는 돌아오기를 기다릴 때도 있습니다. 교인들은 포기를 했다거나 사람을 아끼지 않는다고 비판할지라도 본인은 하나님 앞에 양심에 떳떳해야 합니다. 다른 교인에 앞서 집중적으로 챙길 교인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형편에서는 교회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고 그런 형편이 있어서 그러해야 합니다. 매번 꼭같을 수는 없지만, 교인 전부를 향해 목회자의 소망과 사랑과 희생은 동일해야 합니다. 이것은 오늘 세상 사회가 말하는 평등원칙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명령입니다.

문제는 우리 속 깊은 중심에 목회자가 자기 취향에 맞는 사람을 따로 두고 있거나 또 그런 처신이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 목회자 개인의 왕국을 만드는 것이라고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입니다.


목회자 편애에 대한 교인의 자세

교인으로서는 자기 목회자가 그런 면에 신령한 눈을 가지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말로 먹고 사는 목회자에게 왜 누구를 편애하느냐고 했을 때 그 목회자가 할 말이 없어서 편애했다고 인정하겠습니까? 그 문제는 목회자와 하나님 사이의 은밀한 부분이므로 교인들이 개입하고 나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면이 있습니다.

어떤 것은 눈에 보여주면서 불을 끄라고 알려주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것은 하나님께서 눈에 보여 주기는 하지만 속으로 기도하라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것은 알려주지도 않는 것도 있습니다. 목회자의 교인 편애는 그 목회자가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또 세월 속에서 스스로 깨달아 돌이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교인이 할 일은 하나님 앞에 영안을 띄워 주시라는 기도가 전부입니다.

참고로, 하나님께서 거의 제한없이 목회자에게 일임한 권한 중에 하나가 교인에 대하여 누구를 어떻게 상대하느냐는 문제인데 이렇게 권한이 많이 주어져 있는 항목에 대하여는 하나님의 책임 추궁이 상상을 넘어서게 됩니다.


(답변3) 목회자의 자녀도 평범한 학생으로 봐야 합니다.

>3. 목회자의 자녀는 교인들의 신앙생활에 많은 보이는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친다고 봅니다. 목회자의 자녀들이 소위 바르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잘 하지 못한다면 예를 들어 설교중 거의 잠을 잔다든지 등등 그 자녀를 보면서 목회자 또는 사모 중에 누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판단을 해야 할까요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바른 깨닫음은 무엇일까요
>

이 세상에 어른들을 포함해서, '바르고 신앙생활 잘하는' 분이 몇분이나 계시겠습니까?

아직 어린 학생에게 목회자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바르고 신앙생활'을 잘하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큰 죄라고 봅니다.

오히려 목회자의 충성이 그 자녀에게 복으로 가도록 기도하며 지켜보는 것이 평신도의 할 일이라 생각됩니다.

학생들 치고, 그 신앙생활 전반이 우수하여, 존경심이 들 정도의 학생은 단 한 명 본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장단점이 다들 있는 평범한 학생들이나, 하나님께서 세월과 현실 속에 어떻게 기르실지는 모르는 것입니다.

특히, 예를 든 것이겠으나, 예배시간에 잠자는 것으로 예를 드신다면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잠자는 것이 옳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 자식도 잠을 자고 집사님 자식도, 장로님 자식도 다 한번씩은 졸게 마련입니다.

사택 아이들이, 교회 어른들께 인사 잘하는 정도라면, 저는 훌륭하다고 봅니다.

사택 아이들의 장난이나 우쭐함이 좀 심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사택입니다. 그래도, 말씀을 듣는 통로의 가정입니다.

사도바울도 회심을 하니 핍박자가 순교자로 바뀌었습니다.

사택아이들이라면 특별히 소망속에 더욱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