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질문) 인본과 신본, 두레마을 김진홍 목사님에 대해서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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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질문) 인본과 신본, 두레마을 김진홍 목사님에 대해서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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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질문) 인본과 신본, 두레마을 김진홍 목사님에 대해서 1006

얼마전 개인적으로 신앙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두레 마을을 세운 김진홍 목사님이 쓰신 '정금같이 나오리라'는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신앙을 저에게 거의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이기에, 그리고 제 신앙양심상 그 책을 읽지 말라고 했습니다.
참고로, 교계의 사람들이 저의 이러한 행동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싶습니다.

책을 읽던 사람이, 왜 읽지 말아야 하냐고 물었습니다. (사실 저는 김진홍 목사님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고, 예전에 두레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으러 김진홍 목사님을 만났던 사람에게 노동을 중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입니다.)

책을 펼쳐, 김진홍 목사님 양력, 대구계명대학 철학과, 장신대를 보이면서 이것으로도 이 책을 읽지 않을 이유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세상신학의 바탕이 되는 세상철학의 위험성과 에큐메니컬의 위험은 가르쳐 놓고 있었습니다. (이것도 일반교단 사람들에게 '분노'의 대상임은 알고 있습니다.)

책을 읽던 사람이, 그래도 책을 읽어보니, 괜찮았다면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지적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좋은 자세라 생각해서, 아까운 시간 투자해서 책을 좀 살펴봤습니다.

저같이 먼지의 티끌 같은 사람이 김진홍 목사님 같은 유명한 분을 인터넷에서 실명이 아니라는 편리함을 이용해 평가한다는 것은 참으로 문제가 많은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제 신앙 양심상, 제가 돌봐야 할 사람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편견 독선 무지 어떠한 욕을 먹어도, 두려운 것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감히 말하건데, 나는 운이 좋아 총공회에 있을 뿐, 김진홍 목사님보다 충성, 열심면에서는 따라가지 못함을 인정합니다.

또 감히 말하건데, 김진홍 목사님의 글을 읽노라면, 감동의 물결은 올라오나, 신앙의 이치가 없고, 사람에게 대속의 은혜를 베풀어 영광의 찬미를 삼으시려는 하나님을 이해치 못합니다.

다시 감히 말하건데, 신본과 인본의 깊은 갈림길에서 김진홍 목사님은 인본을 선택했노라고 생각합니다.

김진홍 목사님에 대한 세상적인 그리고 총공회 노선의 평가를 부탁드립니다.
또, 이렇게 세상책에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요


두 줄이면 질문이 끝날 것을, 이렇게, 무리해가면서 글을 쓰는 이유는.
저를 포함해서 총공회인들이 조금 더 이런 문제들을 확정하길 바라는 마음이였습니다.


(답변) 기독교 사회개량주의입니다. 사람 좋기는 그 이상이 없으나 신앙은 아닙니다.

1.'두레마을의 김진홍목사님'의 이름같이 좋은 이름도 흔치 않습니다.

①일단, 그분의 현재까지 걸음은 자체 모순을 찾을 수 없는 희귀한 경우입니다.

비록 이곳과 그 걸어가는 방향이 달라 아쉬움은 많지만, 일단 '두레마을의 김진홍목사님'이라는 이름은 이 시대 기독교의 양심을 대표할 만한 하며 이 면에 있어 시비하는 분들은 별로 없을 듯 합니다.

사실 그 분 외에도 국내 기독교에서 대표적인 자랑으로 내세우는 인물이나 단체들은 적지 않고 또 불신 사회에서까지 그 이름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경우가 있으나 그 이름을 뒤에서 잠깐 살펴보면 아주 아닌 경우가 거의 전부입니다. 이런 점에서 아직 두레마을 목사님에 대하여는, 비록 백영희신앙노선과는 정반대에 있으나 그분 나름대로는 자기 양심대로 열심히 매진하고 있다고 평가하겠습니다.

②그 분의 문제점은, 예수 믿는 그 길과 방법을 아주 오해했습니다.

문제는, 동기는 좋으나 그 걸어가는 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곳에서는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70여년 전 공산주의 초기 운동가들은 진정한 공산주의자들이었으니, 그들은 티없이 순수한 양심과 열정을 가지고 1900년대 한 세기동안 세계 지성인과 양심가들을 열광시켰습니다. 그러나 결국 철없는 아이들의 집태우기 장난에 불과했습니다.

김진홍목사님의 현재까지 모습은, 이곳이 아직까지 듣는 대로는 참으로 희귀할 정도로 깨끗하고 순수하게 자기의 기독교 이상을 실현하고 있는 중이나 그가 택한 길 자체는 건설구원에 관한한 전멸로 이르는 길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 믿고 가는 천국 길에 대하여는 아직 별 이의가 없으나, 예수 믿은 사람이 평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는 문제에 대하여는 총체적으로 그 길을 잘못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말대로 믿고 나가면 남은 세월 살아봐야 세상은 좋아할지 모르나 하늘 나라 건설은 그냥 아무것도 없겠다는 생각입니다.


2.김진홍목사님의 두레마을에 대한 면을 살펴보겠습니다.

①우선 두레마을에서 스스로 소개하는 글입니다.

"두레공동체운동은 70년대 가난한 이웃이 모여 살던 서울 청계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빈민선교는 1971년 <활빈교회>를 중심으로 병든 자, 약한 자, 고아, 가난한 자, 무의탁자 등 ‘잃어버린 자’를 찾으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 후 청계천의 판자촌 철거로 일해 <활빈귀농개척단>이 1976년 남양만으로 이주했습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농촌선교와 지역운동이 일어났으며, 성숙한 농촌선교를 위해, 예수공동체 <두레마을>을 만들었
습니다.

더불어 함께 잘살기 위한 공동체운동은 <두레마을>을 중심으로 교회갱신과 사회개혁을 이루는 운동으로까지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두레선교회>, <두레연구원>, <북한·중국 두레마을 추진본부>, <두레시대>, <두레유통>, <(주)두레마을> 등 다양한 부문의 운동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두레공동체운 동은 하나님의 통치와 사랑이 모든 피조물에게 넉넉히 임하게 하는 총체적인 하나님나라 운동입니다. 아울러 복음의 힘이 구석구석에 미치도록 하는 온전한 복음 운동이며, 파괴된 인간을 ‘연대적 인간’, ‘공동체적 인간’으로 회복하는 ‘사람살림’운동입니다."


②두레마을의 문제점은, 교회가 할 일과 세상이 할 일을 혼동했습니다.

청계천 철거민들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여러 생활 고통을 몸소 해결하도록 지도하여 사회 개량 운동을 주도한 것은, 교회와 목사가 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교회와 목사가 할 일은, 말씀을 가르치고 그 말씀대로 교인들이 살도록 하는 일이며, 그들이 자기 현실에서 자기가 받은 말씀대로 살 때 그들에게 필요한 경제와 사회와 생활 형편은 그들이 실행하려고 노력하는 그 말씀이 주실 은혜요 그들을 지켜 보시는 하나님이 직접 주실 일입니다.

예배시간에는 말씀을 가르치나 그것은 하나의 지식으로만 전달한 것이고, 그 교인들의 실제 사회 생활 경제 모든 현실의 개선은 목회자가 사회적 지도자로서 주도한 것은, 교회와 국가가 통합된 형태의 교회입니다. 거창하게 말하면 '국가'지만, 가깝게 말하면 '생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진정한 신앙 지도자는 교인들의 세상 형편까지도 지도하고 또 그 내밀한 사정을 훤하게 살펴 그 가야할 길을 낱낱이 지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에 대한 신앙지도차원이 아니고 교회가 필수적인 임무로 맡고 나설 때는 교회와 세상이 혼동되는 것입니다.

③복음이란, 세상 생활 형편을 기준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천국 준비가 기준입니다.

기독교로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들자는 것은 기독교 사회개량운동이라고 합니다. 노숙자들의 생활 대책을 교회의 설립 근본으로 아는 운동도 있고, 해외 굶는 아동을 먹이는 일을 복음운동의 전부로 삼고 있는 단체도 있으며, 고아나 양로원 또는 나환자를 위해 그렇게 하는 곳도 많이 있습니다. 시골 교회 남는 뒷방에 할머니 한분을 배려한다든지 대형 도시교회가 양로원을 한번씩 찾는 일까지 금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이 주업이며 무엇이 그 주업에 따라 자연스럽게 파생되는 잔업이냐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두레마을 김목사님의 경우는, 교회의 존재와 그 형식 그리고 그 주업무를 세상에게 맡긴 세상일로 삼았습니다.

잘하기만 하면, 어떤 다른 종교원리나 도덕원리로 사회를 개량하는 것보다 기독교원리로 사회를 개량하는 것이 훨씬 많은 성과가 있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또한 이렇게 눈에 보이는 사회개량의 성과만이 세상과 어린 신앙에게는 가장 확실한 '복음'이 될 것입니다. 현재 북한 땅에는 빵 한개가 가장 확실한 복음이겠지만, 그것은 남한 정부나 이웃나라들이 해야 할 일이고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심방갈 때 성의를 표시하는 쥬스 한 병 정도에서 그칠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 기준에서 복음이 되는 잘 먹고 잘 살고 손잡고 즐거워하는 것은 세상이 주력할 일이고, 교회는 세상이 볼 수 없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④신앙은, 세상 좋은 것을 말씀대로 사는 생활 때문에 없애 나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전하는 복음은, 전적 악령 안에 있는 세상에서 말씀대로 사는 생활이 계속되어야 하고, 그렇게 하려고 할 때 세상에 속한 모든 좋은 것이 뺏겨지고 없어지고 포기되는데,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 전부 천국으로 옮겨진 나의 건설이므로 세상에서 말씀대로 살려는 과정에서 없어진 세상 것으로 기뻐하고 만족하며 이것을 성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 신앙세계라는 것은, 세상에서 소외되고 세상이 볼 때 불쌍하게 된 이들의 그 형편에 대하여, 내심으로는 동정하고 불쌍하게 보지를 않습니다. 신앙의 세계라는 것은, 나환자의 비참한 현실에 대하여 그들의 병 낫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병 속에서 그 병의 고통 때문에 예수를 믿기 원하고, 그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가 소망하는 하늘나라가 흐려지지 않기를 노력합니다. 그 병이 낫기를 구하는 것은, 어린 신앙을 위해 필요한 표시인 경우거나 또는 꼭 그 사람에게는 나아야 할 신앙의 이유가 있을 때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신앙의 구함을 보고 필요하여 낫게 하시면 그것을 감사하게 받기는 하지만, 그 나음을 복음이라고 혼돈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복음이라면, 기독교 전파로 인하여 이 세상은 이 세상이 끝나기 전에 지상낙원이 되어야 합니다. 신학적으로는 예수님이 오기전에 천년왕국이 온다는 인본주의 사회개량주의의 노선이기도 합니다. 이는 복음의 본질 자체를 완저히 세상 기준의 개선으로 오해를 한 것입니다.


3.두레마을 외에도 풀무원, 가나안 농군학교, 거창고등학교 등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①이제 예를 든 운동들은 서로가 다르다고 펄쩍 뛰겠지만, 대동소이입니다.

이름은 다를 수 있고, 그 주 사업의 방향도 다를 수 있으며, 그것을 주도하는 분들의 신분과 그 운동의 중심 추진 세력도 각각 다르기 때문에 다르다면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공통적인 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 중에, 일반 교계나 교인들이 자기 이익만 집착하고 교회가 교권싸움에만 몰두하기 때문에, 진정 예수 믿는 사람들의 참 모습을 보여주되, 세상을 개량할 수 있는 면에다 주력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입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나가는 방향을 크게 둘로 나눌 때 이제 예를 든 분들은 기독교 사회운동가들로 분류할 수 있고, 이분들이 그렇게 반대하고 혐오하는 기존 교회의 일반적 방향은 전통적 교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백영희신앙노선도 전통으로 내려오는 교회의 폐단이 극에 달했다고 보고 그 개혁을 전면적으로 단행한 신앙운동입니다. 그러나 사회개량운동가들과 다른 것은, 교회가 잘못된 것은 사회개량을 위해 빛이 되지 않았던 것이 잘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말씀대로 가르치지 않고 신학화가 되었기 때문에 신학화된 교회를 말씀화된 교회로 개혁한 것이고, 교권집착의 교회가 된 것을 교권탈피 교회로 개혁한 것입니다.

②기독교 사회개량운동에 대하여, 공회는 특별한 접촉과 파악하는 바가 있습니다.

두레마을과는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으나, 두레마을이 빈민의 생활 개선을 통해 사회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라면, 자라나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현장에서 기독교 교육을 통해 사회를 개선하겠다고 나선 운동이 있었습니다. 초기에는 총공회처럼 거창군 내부에서나 주목받는 정도에 머물렀던 거창고등학교의 경우입니다. 그곳은 1980년부터 국내 교육계에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열린 교육 운동의 표본적인 성공으로 극찬받게 되는데 바로 그 시점이 백목사님의 존재가 한국 교계를 강타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학교를 예로 드는 것은, 그 활동 무대만 좀 달랐을 뿐이지 그 근본 사상과 그 근본 추진 방향 그리고 많은 역경을 이기고 세상이 공통적으로 인정하게 된 성공담까지 모든 면에서 그렇게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인데, 그 학교에서 김진홍목사님과 같은 위치에 있는 창립 및 성공 신화를 일으킨 분이 총공회와는 참으로 많은 접촉과 인연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고신에 있었고, 고신의 교권화 과정에서 백목사님과 그 교장선생님은 각각 소장파 거두였으나 백목사님은 세상과는 완전 단절하고 교회는 오직 교회로서 말씀대로 바로 걸어갈 길로만 가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었고, 그 교장선생님은 교회의 사회 참여 및 사회 개량운동에 전념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백목사님은 세상이란 신앙이 그 속에서 싸우고 이기고 빼앗기며 이용해야 하는 현실로 보았고, 그분은 세상을 기독교 사상으로 잘 만들면 지상낙원이 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현 서부교회 나인숙권사님은 그 교장선생님이 거창고등학교의 살림을 다 맡아달라고 몇번이나 서부교회로 찾아와 설득했던 인물입니다. 서부교회 교인으로 사느냐, 거창고등학교 서무책임자로 사느냐는 갈랫길은 얼핏 직장 선택 문제처럼 보였지만, 기독교의 두 갈랫길 즉 기독교 사회 개량주의로 믿을 것인가 아니면 기독교유일주의로 믿을 것인가의 길이었습니다.

대구공회 양성원장인 신목사님은 그 교장선생님이 대구로 나올 때마다 자기 집처럼 쉬고 자고 가던 사이입니다. 고신이 자랑하는 SFC 창설의 두 핵심이었고 신목사님은 대구에서 대표적으로 성공한 개업의사로 거창고등학교를 재정 등으로 지원해야 할 가장 유력한 사람이 되어야 할 터인데, 과거 인연으로 가깝게는 지냈으나 결국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을 충실히 지켜 그분에게는 섭섭하게 선을 긋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거창고등학교 예배 시간에 총공회는 심심찮게 극단적 바리새파로 가차없이 비판을 받게 되지만, 사실 서로가 걸어가는 신앙이 다르기 때문에 그리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③총평을 하자면, 교회가 나갈 방향을 잘못 잡았습니다. 그 해악은 측량못할 정도입니다.

두레마을 김진홍목사님과는 직접적 접촉이 없었으나, 그분과 같은 수준에 있는 신앙운동을 하나 예로 드는 것은 이런 사회개량운동에 대하여 백영희신앙노선은 쉽게 파악하고 섣불리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개량운동에 대하여는 의외로 아주 소상하게 또 그 내부적 문제점을 일반인들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런 류의 기독교 사회개량운동의 위험은, 겉으로는 이 시대 이 사회의 마지막 양심이며 기독교로서는 특별한 자랑이라고 보이기는 꼭 그렇게 보이는데, 이런 운동들은 한결같이 기독교 교리 통합 운동, 기독교 진리 구별 반대 운동, 세상과 교회의 혼합 혼잡으로 나가는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외형 운동만을 두고는 방향을 잘못 잡았다고만 말할 뿐이지만, 만일 가까운 사람이 옆에 와서 내심으로 어찌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사이비신앙이니 접촉을 금하셨으면 할 정도입니다.


(참고자료) '한국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는 [복음주의 신학회] 논문 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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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의 문답은, 교회의 사회에 대한 책임을 두고 살펴본 것입니다. 다음은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측 신학자들의 모임인 '복음주의 신학회'에서 발표된 내용입니다. 김진홍목사님의 두레마을과 그 반대노선에 있는 이곳의 입장을 두고 말한다면, 김진홍목사님처럼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답변과 관련된 내용이어서 잠깐 인용 소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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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사회적 책임 약해”

복음주의신학회 논문 발표회…복음의 사회성 강조


“복음이 언제부터인가 한국 교회 안에서, 종교적 제도권 안에 머물고, 점차로 삶의 현장보다는 예배 안에서만, 부름 받은 신앙공동체 안에서만, 가진 자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측면에서 편중적인 기현상이 만연해지고 있는 상황에 처해있다.” 김국환 교수(성결대)는 한국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삶이 이원화되는 이런 현상을 “영적으로 기형적인 현상”이라고 불렀다. ‘복음과 사회적 책임’을 주제로 내 건 한국복음주의신학회(회장:한영태) 제40차 논문 발표회는 한국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해 온 것에 대한 신학적 반성으로 시작됐다.

김 교수는 한국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원인으로 “예배중심 지향의 기독교, 성장중심의 교회 운영체제, 지식매개 중심의 교회교육, 불균형적 신앙지도, 영적 감화력이 결여된 가정과 부모의 신앙자세”를 들었다. 신현수 교수(평택대)는 한국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사회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원인을 “믿음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복음이 갖는 사회성을 놓친 데 있다”고 지적했다.

노영상 교수(장신대)의 주제발표 ‘복음의 사회적 책임-유형론적 연구를 중심으로’에 이어 교육·선교·구약·조직·역사·윤리·상담·신약·실천의 9개 분과학회별 발표회가 진행됐다. 분과 발표회 역시 사회적 책임에 대한 한국 교회의 의식과 실천의 빈곤이 현실이라는 깊은 공감과 각 분야별 고유의 전문성이 결합된 토론의 자리였다.

노영상 교수는 에른스트 트뢸취, 리차드 니이버, 제임스 거스탑슨, 에드워드 롱, 로널드 사이더 등이 제시한 교회의 사회윤리에 대한 각 유형론을 검토하고 영혼구원과 사회변혁, 교회의 제사장적 역할과 예언자적 역할의 상보성을 강조했다,

윤리분과에서 ‘교회적 디아코니아와 국가적 사회복지’를 발표한 김동춘 교수(천안대)는 ‘사회복지’ 개념이 기독교적이면서 교회적 책임윤리의 이념적 근거로서 타당한 것인지를 되물었다. 김 교수는 ‘사회복지’의 이념적 토대에는 이웃사랑의 신학적 근거들(성경적, 기독론적, 교회론적)이 결여되어 있다고 지적하고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기 위한 신학적 근거는 ‘사회복지’가 아니라 사회봉사로 표현되는 ‘디아코니아’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국가적’ 사회복지와 이웃사랑의 교회적 정체성을 담고 있는 ‘교회적’ 디아코니아는 엄밀히 구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약분과의 김상훈 교수(총신대)는 ‘요한신학에 나타난 교회와 사회, 요한문헌의 사회성 이해’를 제목으로, 신약에서 사회성이 가장 약한 정경으로 이해되고 있는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의 사회성의 성격과 경향을 새롭게 그려냈다. 김 교수는 요한신학에 나타난 사회적 책임의 성격을 “신앙, 윤리, 사랑에서 세상과 다르지 않고는 세상을 구원으로 이끌 수 없다. 그것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책임이다”라고 요약해 “사회에 대한 교회의 역할의 최소한의 기준선”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발표의 말미에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란 교회가 사회를 위해 뭔가 행해야 한다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중에는 교회가 핵심적인 가치(신앙, 윤리, 사랑)에서 세속 사회와 단연히 차별되어야 한다는 이 평범한 사실이 포함된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교육분과-신앙발달을 위한 종교적 판단 발달-복음과 사회적 책임을 위한 기독교교육학적 접근(김국환 교수·성결대) △구약분과-고대 이스라엘의 왕권형성의 동기와 왕권에 대한 다양한 이해(한동구 교수·평택대) △조직분과-복음과 사회적 책임(신현수 교수·평택대), 상담분과-한국복음주의 교회의 주요과제로서의 복음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목회 상담학적 고찰(강병문 교수·총신대).

한편, 이번 학회 중 한국복음주의신학회 기독교교육분과학회는 정기총회를 열어 한춘기 교수(총신대)를 회장에 선출했다. ▲부회장:이은규 교수(안양대), 총무:강용원 교수(고신대), 서기:박종석 교수(서울신대), 회계:윤화석 교수(천안대).


/기독신문/ 김은홍 기자 등록일 200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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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간 연합 빙자 신앙공유 잘못


기독교 정체성 제대로 깨달아야


다일공동체 최일도 목사가 “한국종교 공동체 연대”라는 단체를 발족시켰다. 이 단체의 대표자 면면을 들여다보면 이것이 어떤 단체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최일도 목사, 김진홍목사, 도법스님, 법륜스님, 오수영신부” 총 5명으로 이들은 8월 15일날 발기인 대회를 가졌다. 또 참가 단체들도 다일공동체, 두레마을, 길(실)상사, 오순절평화의 마을, 정토회 등이다.

이들은 이날 “종교는 올바른 삶에 대한 근원적 해답을 추구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길을 제시하는 것이 종교의 본질적 기능입니다. (중략) 각 종교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잘 아우르면 참으로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오히려 자기 정체성을 보다 명확히 하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이웃종교’들로 종교본연의 책임을 각성하고, 한국종교공동체연대는 열린 마음과 예언자적 사명을 실천하기 위하여…”라는 선언문으로 하며 10가지의 목표를 지향하는 공동선언을 하고 단체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종교는 신을 섬기는 행위를 말하며, 신이란 살아서 인간에게 역사하며 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절대적으로 믿는 종교나 신앙을 벗어난 것은 신앙단체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최 목사가 지향하는 각종교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어우른다거나 이웃종교로서 영성수련 및 수행방법을 서로 나눈다는 것은 유일신 사상을 믿는 기독교를 유일종교가 아닌 모든 종교들을 똑같은 위치에 두고 있는 듯하다. 물론 최 목사는 선언문에서 자신의 종교와 타종교를 무차별하게 용인하는 상대주의적 종교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변했지만 이미 종교 다원주의를 표방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젠 범 교단차원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또 개신교 목사로서 최 목사는 이런 종교다원주의가 교회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타당한 설명을 했으면 한다.

물론 사회 활동을 위해서 타 종교 지도자들과 협력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종교 신앙을 공유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이들이 첫번째 목표가 “종교간의 벽을 넘어선 자유롭고 개방적인 대화와 수련을 통하여 상호 연대하며 공동체성을 지향한다”는 것인데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서로의 신앙을 공유해야만 하는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인터넷 독자


/기독신문/ 2003.9.24. 칼럼에서


(방문자) 수준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준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과 속을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사고(흑백논리)의 잣대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자기만 알고 자기가 속한 공동체속에서만 누리는 것은 죄악입니다.
세상은 심판의 길로 치닫겠지만 그래도 예수님처럼 치료하고 먹이는 일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계실 때 복음만 전하셨나요.
그것만큼이나 배고픈자 에게 먹이고, 병든자를 고치고, 또 기적이 필요하면 베푸셨습니다. 왜요 사랑하니깐요. 가난하고 소외된 불쌍한 사람을 교회가 외면한다면 강도만난 사람을 외면한 제사장과 레위인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의 수준이 어느 정도 되면 세속적이라고 생각되는 일이 사명이 되는 것입니다.
죄가 아니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당장 배고파 죽어가는 자에겐 복음보다도 더 절실한 것은 당신 손에 들린 빵한 조각입니다.
백목사님의 가르침이 훌륭한 것도 있지만 그분도 한계가 있고 오류가 있습니다.
비판할 것은 비판하시고 백목사님의 수준을 훨씬 뛰어 넘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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