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질문) 교회서 불우 이웃돕기는 어느 정도로?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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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질문) 교회서 불우 이웃돕기는 어느 정도로?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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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질문) 교회서 불우 이웃돕기는 어느 정도로? 259

부산에서 작은 개척교회를 하고 있는 목자입니다.
작아도 이름이 교회인지라 간판을 보고 찾아와서 도움을 청하는 어려운 이웃들이 종종 있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니 이들을 돕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작은 개척 교회로서 때로는 말 못할 여러가지 고충이 있습니다.

주변에 있는 경제가 넉넉한 대형 교회들은 장학금 혹은 불우 이웃돕기라는 명목으로 적게는 몇만원에서 많게는 몇십만원씩 자주 돕고 있고 그것이 또 전도의 계기가 되는 것도 종종 보고 듣고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작은 교회, 가난한 교회의 전도의 한계를 느끼며 잠시 힘을 잃기도 합니다. 물질로 전도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는 분들도 간혹 있기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더군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은 교회의 당연한 사명이고 또 전도의 좋은 방법이니까 좋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정도까지 이들을 도우는 것이 좋을지 난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같은 하나님의 교회로서 교회 성장에 도움이 될 만한 좋은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이 홈페이지의 계속적인 활약을 주 안에서 기대, 기원합니다.


(답변) 교회의 사회적 책임은

1.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하는 것은

진리가 없는 세상에 진리의 빛을 비추는 것이며 대속의 십자가가 없는 세상에게 십자가의 좁은 길을 걷도록 안내하는 일에 녹아지는 자신을 말합니다. 따라서 교회가 위치한 주변 사회 속에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은, 세상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는 말씀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진리의 좁은 길, 대속의 구원으로 안내하는 일에 필요하여 한다면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런 입장을 보수라고 하며 그 반대의 주장을 자유라고 합니다. 자유주의 신앙노선은 결국 사회사업 인류복지를 위한 시민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어 있고, 우리와 같은 보수주의 신앙노선은 오직 천국, 오직 대속, 오직 예수밖에 없는 순수신앙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한국교계까지 자유주의 신앙노선이 주장하는 말만 언론을 타고 있고, 따라서 교회가 사회의 구호기관으로 변질되지 않는다고 난리들이지만 교회는 물질구호기관이 아닙니다.


2.교회가 도울 수 있는 어려운 이웃에 대하여는

1)진정 어려운 사람인가?

알고보면 참으로 나의 도움, 교회의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은 10명에 1명 찾기가 어렵습니다. 게으른 사람에게 게으름을 부채질하고, 악한 습관으로 착취하는 고등사기범에게 그들의 불같은 처세술에 기름을 부어줄 수 있음이 심히 염려스럽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되, 참으로 도와야 할 사람인지를 대단히 신중히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2)도움을 청하는 기관들인 경우,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를 상대로 자신들의 경력과 명예를 관리하기 위하여 모금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이미 진정한 봉사기관을 구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1960년대, 그때에도 모든 이들이 허가낸 도둑 3가지 중에 '사회사업가'를 '의사, 변호사' 다음에 꼽던 것을 뚜렷이 기억합니다. 현재까지도 경험상 사회사업과 선교사업의 이름 아래 숨어있는 헤아릴 수 없는 유다들을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3)진정한 도움은 적은 불씨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고양이가 많이 먹으면 쥐를 잡지 않습니다. 박대통령 시절 미국 구호물품을 갑자기 중단시켰습니다. 당시 구호기관들은 다 죽게 되었다고 했지만, 면세 조처와 종돈 종계 개량 등 불과 몇가지 조처만을 가지고 오늘의 경제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인근 마을 주변에 돈을 빌려주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세상 자연이치로 참고할 만 합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의 그날 먹을 것보다 그 사람이 하나님께 받아서 다른 사람을 도울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 전공이고 전문입니다.


4)꼭 도울 곳이라면 '자기집에 찾아온 사람에게 자기 돈을 돕듯이'했으면 합니다.

교회 돈은 공금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의 돈이라고 해놓고 목회자나 회계 담당자 공히 머리 속에 들어 앉은 인식이 '공금'수준입니다. 내 돈 아닌 것으로 인심 쓰는 것은 대단히 쉽습니다. 그러나 그 진심을 판별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내 집에 찾아온 어려운 이웃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또 해 왔던 구호와 구조의 수준과 정도로 한다면, 단번에 해결이 될 듯합니다.

교회돈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하라고 모은 것이 아니냐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연보를 그렇게 사용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수 정통 신앙노선이라면, 교회의 연보는 사람을 신앙으로 기르는 일에 다 투자해야 하며, 단 최소한 범위에서 꼭 필요한 경우 참으로 내 돈을 사용한다는 기준에서 도울 곳이 있다면 도울 수 있다고 봅니다.


3.심히 우려할 만한 일은,

신학대학의 신학과와 일반 세상 대학의 '사회복지학과'가 통폐합이 가능한 단계에 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주실 때' 그 배고픔을 그 양식을 그때 사회는 '교회의 구호활동'으로 보았고 예수님은 '육은 무익하니라'하시고 떡은 '예수가 떡이로라'고 하시면서 '영생'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어찌 예수의 살을 먹을 수가 있겠냐며 다투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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