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질문) 형편 어려운 분들의 교회 출석 4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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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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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34
10. (질문) 형편 어려운 분들의 교회 출석 4091
수고 많으세요!
믿음생활 하기 전에 술로 세상에서 방탕하게 살아왔습니다.
말씀에 깨달음이 시작되면서 전도하기 시작을 했는데
이전 옛사람 때에 생활이 그런지 전도 대상자가 술꾼 가난한 분들 홀아비 장애인 뿐 일반인이 별로이 없습니다.
그분들도 대체적으로 신앙생활을 어느정도 하시다가 술로 사시니 신앙생활이 계속성이 없으시고요. 교회에서도 남루한 사람이 옆에 오면 신앙이 약하신 분들은 눈치를 주셔서 시험 받는 분들도 있으시구...그러다 안나오시고...
안타까움이 많습니다. 기도생활도 많이 한다고 하지만 낙망이 될 때가 많습니다. 저도 이런데 다른분들도 그러리라 예상합니다.
언젠가 어느분이 술주정뱅이를 전도하긴 하셨는데 본인이 관리를 못하시겠다고
회피하시더라구요. 제가 붙들었지만.
주님께서 저를 택하셨으매 감사하며 현실에 순종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힘이 많이드네요.
한동안 열심을 내었는데...주님 때문에 해야 되는데도...
그런분들을 대할때에 우리 성도들의 자세와 교회에서 교훈 할 말씀이 있으시면 가르쳐 주세요.
감사합니다.
(답변) 교회의 형제 사랑
1.말씀하신 내용은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지린 냄새가 지독하게 나는 분들이 예배당에 앉으면 모두들 눈빛부터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질문자께서 지적하신 내용은 누구 한 두 사람이나 한 두 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며 모든 교인들의 실제 심정과 태도가 그러한 것이 사실입니다.
2.참고로
우리의 신앙 수준이 아직 어려서 그렇다고 이해하셨으면 합니다.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부모를 내버리는 사람을 패륜이라고 비판을 하지만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면서 자랑스러워 하거나 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안 됐지만 할 수 없어 그렇게 할 것입니다.
부모를 내버리는 것은 자녀의 경제력, 타고난 천성, 현재 가족 상황, 직업, 건강 등을 총량 계산하여 이해할 문제입니다. 흔히 TV 뉴스에서는 도덕적으로 나쁜 사람이라서 제 부모를 버렸다고 하지만, 같은 도덕 수준의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재벌이고 한 사람은 생계보조를 받는 극빈층이라면 재벌 아들은 부모를 고급 수용시설에 입원시킬 것이고, 경제가 극히 곤란한 사람은 최후 순간에 부모를 갖다 버리게 될 것입니다. 만일 이 두 사람의 경제 형편이 반대가 된다면 결과도 그 반대가 될 것입니다.
교회가 어려운 형편의 사람을 천대하는 것도 그냥 단순하게 볼 것이 아니라 여러 면을 다 고려해야 할 문제입니다. 교회의 위치 구성 경제력 신앙 소속교단 과거 등을 전반적으로 계산해 본다면, 어려운 형편의 교인을 박대한 교회 중에서도 어떤 교회는 이해를 하고 충분히 동정을 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대로 불쌍한 사람들을 극진하게 살피는 교회 중에서도 비판을 엄청나게 크게 받아야 할 교회들의 숫자도 적지 않습니다. 교회들의 내면과 내력을 알게 된다면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대부분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3.이번 질문에 대하여서는, 비판보다 우리를 다시 한번 돌아볼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①교회의 대사회 구제활동,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차별 등은 늘 비판받는 항목입니다만
교회의 존재 이유가 두고 갈 세상에 가로등을 밝히고 글공부를 가르치고 배고픈 사람을 먹여주는 것이라고 단정한 분들 때문에 오늘 교회는 뿌리채 썩어내려 앉고 있습니다. 베풀 것을 베풀지 않는 것은 종아리를 맞아야 할 일이라고 한다면, 교회가 그런 대민봉사단체라고 주장하는 것은 교회의 뿌리를 파헤치는 파렴치 범행임을 우선 단정해 놓고 늘 잊지 않고 혼동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가로등을 켜면 밤길에 무릎을 깨는 일은 줄어들지만 그대신 자연이 다 함께 쉬는 밤의 질서가 무너져 그 피해는 돈으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글을 가르쳐 놓으면 눈은 밝아지는데 그 밝아진 눈으로 남을 착취하는 것이 인간 본능입니다. 오늘 세상이 더럽고 혼탁해진 것은 못배워서가 아니고 배워서입니다. 배고픈 사람을 먹여주는 것은 하등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남을 먹여주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불쌍한 사람들의 자활능력을 초토화시켜 평생 남에게 얻어먹는 사람으로 고착시키는 중대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 이곳의 관찰입니다.
좁게 보고 짧게 보면 우선 먹는 곶감이 달지만 넓게 보고 길게 보면, 복음만이 우리가 전할 전부이고 그 외에 것은 할 수도 있고 하지 말아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사회사업 빈민구제 등은 정말 임시로, 과도기에, 잠깐동안 필요할 경우도 있다는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는 점을 확실히 못박아 두었으면 합니다.
②교회가 전담하고 전력해야 할 일은, 말씀으로 사는 사람을 만드는 일입니다.
가난한 사람의 쌀독에 쌀을 채워주는 것도, 냄새나는 교인의 옷을 세탁해 주고, 그들과 어울려 그들을 편하게 교회 출석하게 하는 것도,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여 그들이 말씀의 사람이 되도록 하는 일에 필요해서 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걸어갈 정도(正道)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할 말이 없는 것은, 과연 오늘 우리들이 복음을 위해서 필요한 희생이 있을 때 그런 희생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세상면으로 돕지 않을 때, 우리가 복음 위주로 교회를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돕지 않았다고 말을 하는데, 그렇다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진정 우리의 희생이 필요할 때는 희생을 했느냐는 반론이 있을 때 과연 할 말이 있겠는가?
따라서, 사회 봉사를 하지 않는다고 선을 긋고 있는 이곳 신앙노선에 있는 사람이거나 이런 주장을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만일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말씀으로 가르치기 위해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할 때 이를 거부한다면, 그동안 사회적 봉사를 하지 않은 것도 교회가 할 일이 아니라서 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남을 위한 수고는 어떤 수고든지 하기 싫어 하는 이기주의고 교회를 핑계거리로 삼은 죄까지 더해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습겠니다.
자유주의 교회들은 교회가 불교처럼 지옥갈 세상길을 밝혀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 정통교회는 교회가 할 일은 천국으로 향하는 진리의 길을 밝히는 것이 우리가 주력할 일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말씀으로 바로 인도하는 일을 위해서는 가릴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이런 면에서 이번 질문을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③다른 사람을 말씀으로 지도하는 일은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점 사업입니다.
말씀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여 말씀대로 살게하는 것이 앞서 믿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말씀만 전해놓으면 나머지는 말씀이 그 사람을 만듭니다. 복도 주고 필요한 모든 것은 전부 저절로 해결됩니다. 그 사람이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살면 그 사람이 복을 받아서 남을 오히려 돕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말씀이라는 이 보배를 전할 때 누구에게는 전하고 누구에게는 전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요? 주님이 우리에게 전하라 할 때는 땅 끝까지 이르러 누구를 만나든 어떤 형편 어떤 사람에게라도 전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문제는, 냄새나는 못난 사람들을 상대할 때는 나 자신이 그렇게 하기가 왠지 싫어지는 것이 지금 이 문답방 대화 중에 가장 큰 문제입니다.
④주님 날 구원하러 오실 때 나의 형편은?
교회에 처음 출석한 못난 사람과 그 교회를 주도하는 고급 교인들의 차이를 비교하되, 만일 주님과 그 고급교인과 차이나는 것과 비교를 한다면 어느쪽이 얼마만큼 더 차이가 있을까요? 냄새나는 교인과 교회 올 때 샤워하고 향수를 뿌리고 깨끗하게 차려 입고 온 고급교인의 차이는 얼마만큼 될 것이며, 그 고급교인을 구원하러 오셨을 때 주님과 그 고급교인의 차이는 얼마만큼 될 것인지!
정화조 속에 들어 큰 아들을 부모가 건져놓고 씻어놓았는데 그 사람이 하수도에 빠진 동생을 향해 냄새난다고 비웃는다면, 부모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반대로 생각해서 내가 그 부모라치고 내 자식 둘이 그런 형편에서 큰 애가 동생을 향해 그런 태도를 가진다면! 우리 자신의 어떠함을 자꾸 연구해야 해결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4.우리는 어떤 사람이었는지요?
①거지나 부자나, 한 줌의 흙으로 만든 존재들입니다. 알고보면 출신이 같습니다.
귀골과 천출은 얼른 보기에도 다른 점이 많습니다. 그런데 족보를 제대로 따져보려면 아예 근본을 따져야 합니다. 우리는 다 같은 한 줌의 흙이었습니다. 마지막, 묘지에다 묻어놓으면 꼭같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갑니다.
②같은 흙을 가지고, 하나는 부자로 하나는 거지로 만든 분이 하나님입니다.
출신이 같다 해도 한 사람은 노력해서 부자가 되고 한 사람은 노력을 하지 않아서 거지가 되었다면, 실력 차이 때문에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은 할 수가 없겠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부자가 되고 거지가 된 것은 인간 노력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일입니다.
한 사람은 거지로 살아야 필요하겠다고 생각해서 하나님께서 거지로 만들었고
한 사람은 부자로 살아야 좋을 일이 있어 하나님께서 부자가 되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부자가 된 사람은 거지된 사람들을 보며 미안하고 죄송하고 부끄러워 낯을 들 수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인간의 기본 양심일 것입니다.
아버지가 꼭 같은 아들들을 두고 사는데 그 중에 한 아들에게 더 맡겨서 부자로 살게했다면 그렇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옛날 집집마다 장남에게 재산을 다 맡기는 것은 위로 조상을 섬기고 밑에 나이 어린 동생들을 부모 대신에 잘 길러 거두워서 혹시 부모가 없어도 부모 노릇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남들이 입을 닦고 혼자 먹어버리고 나몰라라 하는 수가 많았습니다. 놀부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냥 만든 이야기지만, 우리 사회와 우리 인간 모습의 근본이 그러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임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는, 맡긴 것이 많아서 부자가 된 사람이 자기가 많은 것을 맡은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챙길 사람을 붙여 주시고 그들을 맡으라고 한 것인데 그 일을 등한히 하고 사람을 무시하면 거두어가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불쌍한 사람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최소한 자기나 자기 자식이 앞으로 그런 불쌍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현재 자기 눈에 보이는 불쌍한 사람을 극진하게 돌보고 돕는 것이 필요합니다.
순수하게 사랑의 동기로 그를 사랑할 수 없다면 최소한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자기가 앞으로 그런 불행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불쌍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③형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와 그런 사람이 되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주님 날 위해 어떤 희생을 했느냐는 것을 늘 새기는 일입니다. 자기가 죄를 지어 어떤 지옥형벌을 당하기로 되어 있는지를 기억하고, 주님이 어떤 분인데 날 위해 어디까지 어떻게 낮아졌는지를 기억한다면, 근본적으로 모든 문제는 전부 해결됩니다. 이 일을 기억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말로도 어떤 조처로도 해결의 방법이 없습니다.
교회가 주님의 대속을 잊어버리고 앞서 나온 교인들이 자신들의 원래 상태를 잊었다면, 그 교회는 인간들이 볼 때 교회지 하나님 앞에서는 이미 교회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을 천대하는 일이 없습니다. 돈으로 총회장이 될 수 있는 교단이 있다면, 세상 소경들은 그 교단의 간판을 보고 그 교단을 기독교 한 종파로 보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구약이 아니고 신약이므로 그 교단이 그런 수준이 되었다면 이미 교회가 아니고 교단이 아니라고 분류해버립니다.
이런 면에서 현재 말세를 만난 이 시대에, 그 누가 최후의 교인이 될지 또 최후의 교회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오늘 교회가 없고 교인이 없어 거의 멸종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하면 맞습니다. 주님과 대속을 잊어버리고 구원받기 이전 우리 상황을 모르고 있다면 그 사람이 답변자든 이곳 방문자든, 이 교단이든 타 교단이든 교회가 아니고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천국 가는 문제는 무조건 해결을 해놓았기 때문에 어떤 죄를 지어도 가지만, 그 현실에서 그런 행동과 자세를 가진 그 모습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지옥에 버리고 가야 할 생활쓰레기들입니다.
④마지막으로 하나 당부할 일은, 형제를 사랑하지 않은 행위에 대한 판단은 조심해야 합니다.
답변자 교회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누구든지 들려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별별 사람들이 다 찾아옵니다. 그런데 찾아올 때마다 공식이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돈 내놔!' 이런 자세입니다. 은행에 맡겨놓은 돈 찾아가듯 그렇게 당당하고 떳떳합니다. 그래서 10명 중에 9명에게는 사택에 사는 목사로서 그들을 상대하며 어떻게 해야 한 푼이라도 덜 줄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상대합니다. 시내버스를 한번 탈 수 있는 돈을 주려고 노력해서 거진 다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을 두고, 어떤 기준으로 또 누가 볼 때 그런 문제를 판정하느냐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 교회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그들 마음으로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여러 면을 따져 봐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기준으로만 말한다면, 물이 없고 옷이 없어 냄새가 날 정도가 되는 분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꼭 몸이 불편하고 시설이 없다면 국가에서 국고로 지출해서라도 해결해 주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답변자 교회가 시골에 있고 교인 중 10가정 이상이 그런 경우에 해당되기 때문에 관련 상황을 많이 아는 편입니다.
만일 아직 이 나라에 옷이 없어 떨어진 옷을 입고 교회에 나온다면, 그는 중고옷을 버리는 것을 주워다가 씻어 입으면 되는데 그런 일도 하기 싫어서 하지 않거나 아니면 자기 입은 옷이 남루해야 모금운동을 하는데 필요해서 나름대로는 생존의 방편과 지혜로 그렇게 한다고 봐야 할 정도입니다. 10여년 전만 해도 정말 불쌍해서 자기 몸에서 나는 냄새를 해결하지 못하는 분들을 답변자 교회에서도 몇 분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도 그런 상태에 계신 분들은, 주변에서 무시를 하고 천대를 해서 서럽게 만들지 않으면 그들의 나쁜 습성이 고쳐질 수 없겠다는 위기감을 느낄 정도입니다.
나는 술꾼이고 너희들은 잘난 고급교인들이니까 나는 마음껏 술을 먹고 아무곳에서나 싸고 토하고 교회를 와서는 일부러 드러누워도 너희들은 나를 사랑으로 씻고 닦아야 된다는 식으로 교회를 상대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곳은 2가지로 대처법을 안내하겠습니다. 성프란시스처럼 끝까지 그들의 손발이 되어 그들을 씻고 닦고 평생 기쁨으로 하든지, 만일 그 정도의 신앙이 되지 않는다면 아주 냉대를 해서 그가 자극을 받고 서러워서 부지런하게 되거나 아니면 현실 타개의 어떤 시도를 하게 했으면 합니다.
⑤어느 한 사람을 두고는 그 내막을 알기 전에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경우를 두루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점들을 우선 참고하시고, 그다음 자기 주어진 현실에서 불쌍한 사람을 냉대를 하든 극진하게 봉사를 하든 매를 들든 아니면 자기 재산을 다 내어주든, 구체적인 결정은 각자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개별적으로 원하는 바를 찾아 순종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냉대를 했는데 하나님께서 너무 기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꼭같이 냉대를 했는데 하나님께서 진노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웃을 위해 자기 것을 다 내어놓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사 절에나 가거라 하고 교회로부터 쫓아낼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이웃을 위해 자기 모든 것을 다 내놓는 모습을 보고 영생을 얻으라고 할 사람도 있습니다.
적어도, 현재 교계와 사회 언론들과 지성인들이 말하는 '사랑'과 '희생'은 교회가 전혀 상관하지 말아야 할 일들입니다. 교회는 교회가 진정 사랑과 희생으로 수고할 사안이 따로 있고 차원이 다르며 전혀 그 접근로가 다르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