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질문) 구제사역 5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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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34
11. (질문) 구제사역 5548
지금도 지구촌에서는 5초에3명, 1분에34명,1일에 5만여명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성경도 분명 구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굶주림을 채워주며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어떻습니까?
이들에게 복음도 중요하지만 그들에게 먹을 양식을 주면서 생명을 연장시켜가며
복음을 전한다면 그저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훨씬 좋지 않을까요?
(답변) 이 노선의 사회 봉사 관련 입장
질문자 한 분만을 상대로 답변하지 않고
이 홈을 방문하는 모든 분들을 상대로 답변하기 때문에
이 홈의 답변은 종종 질문자께서 오해하실 방향으로 답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질문하신 내용은 답변의 한 출발점으로 잡고
질문자 외에 이 홈을 방문하는 많은 분들의 많은 지적과 의문에 대하여
폭넓게 고려하면서 혼자 변론도 하고 반론도 하고 설득도 한다고 봐 주셨으면 합니다.
1.성경이 말씀하는 먹는 문제 두 가지
성경은
안 믿는 사람도 알고 안 믿는 사람도 먹을 수 있는 육의 양식과
믿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신령한 양식
2가지 양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입으로 먹는 것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으나
성경이 가르치는 중심은 분명히 신령한 양식입니다.
2.육의 양식을 기록한 것은
첫째, 신령한 양식을 가르치기 위해 육의 양식을 '예'로 든 경우가 있고
둘째, 신령한 양식을 전하기 위해 육의 양식을 '미끼'로 사용한 경우가 있고
셋째, 신령한 양식을 가진 이들은 본능으로 남을 돕는데 그런 '결과적 선행'도 있습니다.
바로 믿는 사람이라면
주변에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힘이 닿는 대로는 그냥 본능적으로 돕게 됩니다.
이것은 셋째 경우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런 자연스런 행동까지도 둘째 경우처럼
다른 사람에게 신령한 양식을 전하는 목적이 베어있습니다.
다음 3가지 성구를 대표적으로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두 가지 양식 문제를 한 곳에서 함께 비교할 수 있는 성구들입니다.
혹시 육의 양식 위주로만 기록된 곳이 보인다면 그것은 육의 양식 문제가 아니라
신령한 양식을 가르치는 예로, 비유로, 설명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암8: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마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요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3.신앙의 균형 문제
개인이든 교회나 교단이든
주력은, 신령한 양식을 잘 전하여 모든 이들에게 영생을 전하도록 해야겠고
보조로, 주변에 육의 양식이 없어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것도 일부 해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현 우리 교계는
신령한 양식은 아주 잊은 듯 보입니다.
신령한 양식을 말할 때는 힘이 없고 그냥 이론 전달에 그치는 것 같습니다.
신령한 양식을 전할 때는 빈 바가지로 텅빈 뒤주를 긁는 듯 공허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현 우리 교계가
육의 양식을 강조할 때는 눈에 핏발이 서는 것 같습니다.
육의 양식을 강조할 때는 강단을 뚜드리며 물만난 고기처럼 설치는 것 같습니다.
육의 양식을 말할 때는 할 말도 예화도 너무 많아 넘치는 곡간에 쌀이 쏟아지는 느낌입니다.
육의 양식 문제도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짊어지웠습니다.
육의 양식 없이는 이 땅 위에 살 수 없도록 만드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육의 양식을 소홀히 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육의 양식 문제를 대할 때는 늘 신령한 양식을 함께 생각해서
균형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한쪽에 치우치면 기형이며 장애라고 생각합니다.
신령한 양식을 강조하다가 육의 양식을 무시해도 안 되고
육의 양식을 강조하다가 신령한 양식이 변방으로 내쫓겨도 안 될 것입니다.
냉정하게 비판한다면
우리 교계는 육의 양식을 강조하다가 불신 사회의 사회봉사단체가 된 듯 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 교계가 신령한 양식에 대하여는 너무 소홀하게 되어져가고
육의 양식에는 기형적으로 관심과 주력을 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4.마치 자기변호처럼 들리겠지만, 결론적으로
일반 교계가 육의 양식 일변도로 나가는 이런 시점에
이 홈은 신령한 양식을 과거보다 더 강조해야
한국교회 전체의 균형에 유익할 듯 합니다.
신앙은 마치 바다를 가로지르는 배와 같습니다.
물에 빠져도 죽고 물을 떠날 수도 없습니다. 물에 닿아 접촉은 하되 이용합니다.
그런데 그 배에 탄 사람들이 좌로 쏠리든 우로 쏠리든 한 쪽으로 쏠리면 배가 침몰합니다.
현재 우리 교계는 전부 육의 양식 일변도로 몰리고 있으니
이 홈처럼 이렇게 작고 적은 곳이라도 교계의 균형을 위해서 신령한 양식을 과거보다 더 강조하고 고수해야겠다는 사명감을 느낍니다. 이 홈을 방문하는 이들은 한국교계 전체로 말하면 극히 소수입니다. 이런 소수라도 신령한 양식을 과거보다 더욱 강조하는 것이 본인들 뿐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 균형을 위해 시급한 일로 생각합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다고
그것에 충격을 받거나 피동이 되어 반대쪽으로 더 가게 되면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진리의 한 길만 걸어가야 하는 면에서는 둘 다 실패가 됩니다.
이 홈의 신앙노선은 앞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신령한 양식과 육의 양식, 두 가지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 주셨으니
어느 것도 무시하거나 업신 여기지 않아야 하되
다만 주력과 중심은 신령한 양식으로 생각하고 노력합니다.
노력은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어느 정도 그 노력대로 바로 걸어가고 있는지에 대하여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백영희신앙노선의 중심을 유지하고 있는 교회들과 교인들은
일반 사회도 알아주고 지켜보고 있는
해외돕기나 빈민구호나 사회연대 활동 등에는 거의 눈길도 주지 않지만
자신들의 가까운 이웃과 주변을 돌보는 생활 속의 실제 이웃돕기에는
국내 어느 교단 어느 교회도 흉내내지 못할 정도의
사랑과 봉사를 펼쳐 왔습니다.
하나를 하고도 열을 한 것처럼 사진을 찍고 보고서를 발간하는 일은 해보지 않았고
하나를 할 것이지만 열을 할 것처럼 계획서를 돌리고 모금운동을 하는 일도 하지 않았으나
소리없이 그러나 정말 무섭게 진심으로 자신의 가족과 생활을 팽개치고
이웃사랑에 나선 이야기는
이 홈이 소개하는 백영희신앙노선에서 너무 많아서 글로 다 담아낼 수도 없습니다.
가진 돈 일부를 아껴서 구제헌금에 내거나
바쁜 자기 생활의 일부 시간을 할애해서 자원봉사에 나서는 그런 정도는
이 노선에서 아주 어린 아이들 소꿉장난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이 노선의 교인들이 소리없이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60여년 넘는 세월 이웃을 위해 바친 시간과 경제를 만일 자기 보유 전체 시간과 경제를 기준으로 비율로 따져본다면 감리교 순복음 기장측 성공회처럼 국내 대표적인 육의 양식을 돕자는 교단들과 아예 비교를 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하다는 통계와 내부 자료를 이 홈은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교파들은 자신들에게 이런 면이 있다면
일반 사회나 타 교단들 또는 자기 교파의 어린 교인들에게 눈으로 나타나도록 논문과 자료와 전시를 하는데 아주 월등하지만
이 노선은 세계 10위권, 국내 5위권 교회를 보유하던 시절에도
주보 한 장을 내본 적이 없었고
세계 최대 주일학교를 운영하고 있던 시절에도
그런 규모라는 사실을 불신 언론이 취재를 통해 알려 주어서 알았습니다.
이 노선 외에도 이 노선처럼
정말 성경이 말씀하시는 두 가지 양식 문제를 바로 알고 바로 실행하는
노선이나 그런 교인들이 있다면
이 곳처럼 외부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외부에는 육의 양식을 위해 얼마나 소리없이 본능적으로 희생하고 있는지
남들이 알지 못해서 오히려 비판을 받을 듯 합니다.
5.복음을 전하면서 육의 양식도 함께 전한다는 질문자의 제안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육을 먹이고 그다음 신령한 양식을 말씀하셨을 때
유대인들이 다 물러가버리고 제자들만 몇 명 남았음을 기록하며 우리에게 보이고 계십니다.
육의 양식을 미끼로 삼아 전도하고 말씀을 전하는 일은
죄 되는 일은 아니나
그와 관련하여 많은 문제가 있고 그런 문제점을 잘 알고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처럼 이렇게 먹을 것이 많은 한국사회에 있는 우리들은
신령한 양식만 전하라고 해야 할 만큼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시골 보신탕용 사육 개들도 쌀밥을 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본인들이 신청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국가가 먹이고 입히고 치료하고 좋은 아파트를 제공하여 거주공간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육의 양식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활용할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물론 아프리카 오지 등에는 아직도 그렇게 선교해야 할 곳이 있으므로
그런 특수선교지 사역을 맡은 분들에게는 이 글을 적기가 죄송합니다만
이 곳을 방문하는 거의 모든 대부분 교인들에게는
우리 사회의 불쌍한 이웃들의 굶주림은 과거 굶주림이나 현 미개국의 굶주림과 분명히 다른 차원의 복합적인 가정 내부 문제와 그 사람의 숨겨진 다른 인격적 내부 질병이 도사리고 있다고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속병 때문에 나타나는 피부이상을 일반 피부연고만 바르고 계속 위로하게 되면
그 사람이 사망에 이르는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피부 연고만 계속 발라 준 사람을 좁은 의미로 보며 환자를 도왔다 하겠으나
넓은 의미로 본다면 환자를 죽게한 살인자라는 자책까지도 느껴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6.질문자의 진심과 우려하는 방향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홈을 방문하는 분들이
이 노선의 내면을 이번 설명처럼 잘 아는 교인보다 전혀 알지 못하는 외부인들이 많기 때문에 변론처럼 장황하게 자기 변호를 했습니다. 이 노선이 사회구제사업에 소홀하다는 내부 비판과 외부 비판을 동시에 고려하여 마치 변론처럼 적었으나 내심 이런 지적을 받을 때마다 혹시 자만과 현실안주로 나가는 것이 아닌지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번씩 안팎에서 지적하는 분들 때문에
이 노선이 스스로 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으므로 종종 지적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이 홈도 이 홈 운영을 통해 오직 신령한 양식 문제만 다루고 있다고 보실 것 같습니다. 이 홈은 육의 양식으로 다른 사람을 살피는 경우는 없다고 보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홈은 이 홈에서 표시는 하지 않지만 이 홈의 역량을 기준으로 비교한다면 어떤 곳 못지않게 활발하게 육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일반 사회생활의 이웃돕기를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