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질문) 선교현장에서의 복음전도의 수단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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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질문) 선교현장에서의 복음전도의 수단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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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질문) 선교현장에서의 복음전도의 수단 2251

제 가장친한 친구가 얼마전 귀국했습니다. 현재 이 친구는 말레이시아 단기선교중인데 경제적인 부담이 많아 잠시 귀국한채 기도중입니다. 다음주 중에나 다시 선교지로 돌아갈 듯 합니다. 말레이시아는 회교국입니다. 따라서 법적으로 공공연히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방전도나 기독집회등 말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초청하여 복음을 접촉한 자가 복음을 듣기 원했을 때는 제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친구가 잠시 몸 담은 선교배에서는 제 3국 부두에 선박을 정박하고 선상에서 (이는 타국선박의 경우 치외법권의 권리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각종 행사를 개최합니다. 주로 찬양집회류의 행사입니다.

문화적인 접촉이 많이 없어 그런 것인지,
찬양이 들어간 행사에서는 제 3국의 회교인들도 많이들 참석합니다.
개중에는 복음을 진지하게 접하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사람끌기'의 수단으로서의 찬양이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지만,
선교현장에서는 '불가피'하기도 하고 가장 '효과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제 3국의 선교에 있어 많은 부분이 제재되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위장술을 써야하는 형편입니다.
총공회의 선교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선교현장에서의 일종의 이러한 방편, 수단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그리고 제 3국에서의 선교는 어떠한 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까?


(답변) 선교 현장은, 가장 큰 원칙 몇 가지만으로 방향을 잡고, 모든 조처는 선교사가 결정

1.대소변을 가릴 줄 모르는 아이를 대할 때는 도덕, 법률, 상식이 다 무시됩니다.

도덕은 일어서고 앉는 것까지 순서를 정해놓고 있습니다. 법률은 돈 1원이 지출될 때에도 지급 규정에 따라 신청이 있고 심사가 있고 결제가 있으며 또한 줄 돈을 주더라도 주는 순서가 있습니다. 상식이라는 것은 도덕과 법률을 포함하여 가장 넓은 개념입니다. 상식이 없으면 몰상식한 인간이라 하고, 도덕이 없으면 짐승이라 하고, 법률을 어기면 죄인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1살짜리 아이는 상식도 법률도 도덕도 무시하고 삽니다. 그래도 웃음만 주면 주변에서는 전부 귀하다고 총력을 기울이고 소망을 두고 바라보게 됩니다.


2.선교라는 유아기를 지나고, 교회가 제 자리를 잡게 되면

교회는, 교리의 토씨 하나 때문에 생사 투쟁을 벌여야 합니다. 또 교회 운영에 관련된 모든 일을 법으로만 다 정할 수 없는데 그런 부분은 신앙양심의 법을 지켜질서 정연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심지어 교회가 지켜야 할 노선의 상식선 하나를 지키기 위해 수없는 희생을 감수하기도 합니다.

마치 말 한 마디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신사의 처신이 있고, 심지어 파선하는 배에서도 질서를 지키기 위해 죽을 줄 알면서도 여전히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평상 생활에서도 정상적인 시민이라면 수천 수만도 넘는 법을 다 지키기 위해 조심해야 하고 만일 하나를 실수로 어겼다면 그 행동에 대하여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첫 선교'라는 시기를 지나고 그 사회에서 선교로 출발한 교회들이 제자리를 잡고 발전하게 되면 교회의 모든 처리도 함께 제자리를 잡게 됩니다. 선교 초기는 개개인의 신앙이 하나로 모여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교회가 체계화가 되고 나면 소속 교인 전체의 신앙이 한 몸을 이루게 되면서 대단히 큰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즉, 교인 5명이 한 몸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유아처럼 존재할 때는 '1+1+1+1+1=5'라는 힘을 가졌다고 할 수 있으나, 5명이 한 몸이 되어 움직일 수 있도록 체계화가 되고 신앙이 장성하게 된다면, '1+1+1+1+1=5'라는 힘은 그대로 존재하면서 동시에 5명 교인 전체가 합하여도 이룰 수 없는 더 큰 힘을 추가로 갖게 됩니다. 말하자면 20이나 30의 힘을 갖고 복음운동을 하게 됩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복음운동을 크게 할 수 있는 때가 되면 교회가 속으로 속화되면서 그런 잠재력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분실합니다. 이 답변에서는 교회의 그런 훗날 속화되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선교 초창기를 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3.선교가 절실한 그 지방 '첫 선교 시절'에는 금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선교지에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주민들과 접촉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말레시아처럼 회교국에서는 위장 전입도 해야 하고 배를 타고 국경 밖으로 데려 나가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찾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경제력만 있다면 의료, 집짓기, 고아원 등 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이곳에서 선교의 원칙이나 교회의 전도 방향에 대하여 한번씩 대단히 보수적이고 엄격한 기준으로 발언할 때가 많습니다. 선교의 방향을 원칙적으로 말한다면 어느 시대 어느 환경에서라도 꼭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 선교사가 자기 주어진 곳에서 선교 현장에 필요해서 조처를 했다고 구체적으로 말씀을 하신다면, 이곳은 아이를 기르면서 그 가정 형편에 따라 시아버지 밥상 밑에 며느리가 아이 젖을 먹인다고 드러누울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정합니다. 그런 가정을 두고 누가 예절이 없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인생을 모르고 자기와 다른 형편의 사람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니 한 몸된 교회에 들어갈 요소는 거의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구체적인 가정을 말씀하지 않고, 그냥 선교의 큰 방향을 말씀하면서 돈이나 사회사업으로 접근하면 어떻겠느냐고 한다면 이곳은 일언지하에 말리고 나서는 편입니다.


4.질문하신 친구분의 경우를 가지고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린다면

먼저 그 나라에서 그분이 일대일 전도도 해보고 가장 초보적인 전도의 원칙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노력을 해보았는데도 전혀 길이 열리지 않았다면, 그래서 선상 선교를 생각하는 방면으로 나갔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선상 선교로 나갔다 해도 그 방법 외에는 달리 길이 없을 때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또 그 방법을 사용하면서도 언제든지 그 방법 외에 발로 움직일 수 있는 길이 열리면 발로 움직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문화 사회 교육 의료 등 순수한 복음 방법 이외의 방법이 우선 먹기는 곶감 먹듯 달고 빠르고 직효가 나는데, 선교 현장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사용을 한다 해도 불가피하게 잠깐 사용하는 것이지 그것이 선교의 정식 방법처럼 알게 되면, 그 선교로 설립된 교회들이 그 훗날 가속도로 속화되지 않을 수가 없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셔야 합니다.


5.총공회는 '선교'라는 표현부터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현재 교회가 자기 주어진 현실에만 전념하라는 것이 가장 큰 원칙입니다. 현 위치에서 가능한 복음운동에 매진하다가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 범위를 넓히면 순종으로 따라나서라는 것입니다. 신학생이 '선교학' 과목을 수강하다가 느낀 바가 있어 세계지도를 펴놓고 현재까지 듣고 아는 자기 상식을 가지고 그 지도 상의 어느 한 지점을 꾹 찍은 다음, 그리로 날라가는 식은 선교의 기본 개념도 모른다고 비판하는 편입니다.

선교사들의 간증에 마음이 움직여 갑자기 선교 현장으로 뛰어드는 사람들도 많고, 또 교단이 교세 확장의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정치적으로 또 해외 무역망 확보와 같은 경영전략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주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현재 한국과 세계 교회들이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선교 활동은 총공회의 선교관과는 하늘이 다르고 땅이 다른 만큼 다른 점이 많기 때문에 신학교의 선교학이라는 상식에서 본다면 총공회는 선교라는 개념이 없다고 보시면 맞습니다.


6.비록 선교의 방향과 중심과 활동은 크게 틀렸지만, 복음은 그런 오류에서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복음은 그 전하는 자들이 싸우면서 전해도 전해지고, 시기와 경쟁심과 오기로 전해도 전해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전한 사람들이 그렇게 크게 땀을 흘리고 수고했으나 하늘나라에서 결산을 할 때 쓰임만 받고 버림받게 될 것을 두고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리는 것입니다. 또 전하는 이들의 신앙노선이나 성격이 불순하면 그 복음이 기본구원적으로는 전해져도 결국 그 훗날 선교된 교회의 모습은 더 불순하게 자라나갈 것입니다.

피흘려 바로 전한 복음은, 인간 생각에는 아주 없어지고 묻힐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전하고 간 사람들의 수고를 거두어 결국 사람이 생각못할 결과로 길러가십니다. 선교사라는 책에서 주로 가르치고 배운 사람들의 상식은 선교의 깊은 내면과 그 훗날을 파악하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어쨌든, 피흘려 전하고 발로 전하고 모든 방법을 다해도 안된다면, 그 현장에 계신 선교사님들이 주어진 그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은 할 수 있다 또 없다 그렇게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교 첫 걸음은 마치 1살 된 아이를 기르는 과정과 같기 때문에 20대 30대 청년에게 적용하는 그런 도덕이나 예절이나 법률적 기준을 들이댈 때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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