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질문) 설교란 무엇입니까? 5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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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34
1. (질문) 설교란 무엇입니까? 5857
목사님 평안하신지요?
항상 이 홈페이지를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질문은
설교란 무엇인가입니다.
어떤분은 설교록을 보면서 읽으면 설교를 하고 있고, 어떤분은
그게 무슨 설교냐고 비아냥 거리고
과연 설교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하는지
설교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변) 설교는 젖으로 비교했으면. 이 홈의 자료를 홍보하고 싶습니다.
1.설교란 아기에게 가는 엄마의 젖입니다.
아이에게 가는 엄마의 젖은
첫째, 엄마가 먼저 음식을 먹고
둘째, 엄마 속에 들어온 음식이 엄마의 피와 살이 된다음
셋째, 엄마 속에 있는 그 피와 살의 진액이 젖으로 아이에게 건너갑니다.
교인에게 전해지는 목회자의 설교는
첫째, 설교자가 성경을 읽어 자기 지식으로 삼고
둘째, 자기 속에 들어온 말씀으로 자기 신앙을 만들고 자기 신앙을 힘있게 한 다음
셋째, 자기의 신앙을 만들고 신앙에 힘을 준 이 체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2.설교라 할 수 없는 설교는
첫째, 성경이 아니라 세상 지식이나 자기 개인 체험을 설교거리로 삼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목사가 강단에서 말을 해도 세상 강론이지 설교가 될 수는 없습니다.
둘째, 자기가 깨닫고 자기가 살아보지 않는 경우입니다.
자유성을 가진 우리가 우리의 자유성으로 그 말씀에 사람이 되어 그 말씀으로 자신을 고치고 바꾸고 움직이면 그렇게 한 것만큼 말씀은 우리 자체를 만들고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설교자 속에 이런 내부 과정이 없으면 그는 설교를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해 본 생활이 있는 만큼 그는 설교를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셋째, 자신이 살아보지 않은 말씀을 전달하는 경우입니다.
비록 성경말씀을 전달해도 자기가 살아보지 않은 말씀을 전하는 것은 설교가 아니라
녹음기나 앵무새의 정보제공일 뿐입니다.
3.설교자가 좋은 설교록을 참고한다면
설교자의 말 한 마디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지 못하고
설교자란 말을 미꿈하게 유창하게 남들이 고개를 끄덕이도록 만드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은
원고나 다른 설교 자료를 보고 읽는 설교자를 아주 시시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제일 좋기는 백목사님처럼
성경 한 권만 놓고 수많은 교인을 상대로 마구 유창하게 설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그는 성경을 전부 외운 정도가 되었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사업체고 가정이고 자기 몸과 생명을 아낌없이 던져버린 실행이 있었고
그 말씀 하나를 잘못 전하면 어떤 심판이 있는 줄 알아서 얼마나 오랜 시간 묵상하고 깨닫고 적어보고 그 깨달은 것을 다시 성경 전체를 통해 살펴보고 그리고 또 자기 생활 속에서 실제 살아보아 자기가 전하는 설교 한 말씀에 자기 생명을 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강단에서 마구 줄줄줄줄 설교를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백목사님처럼 성경만 들고 강단에 가서 자기 입에서 나오는 대로 줄줄줄줄 말을해야 설교인 줄 알지만 이런 사람은 말 잘하는 말만 보았지 그 말 하나에 걸려 있는 생명과 심판과 수없는 그 훗날 결과에 대하여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글만 적어대면 글인 줄 알고 저자가 되는 줄 알아서 기독교서점에 한달에 출간되는 책이 수천권이 넘는다는 정도입니다. 일년에 수만권 이상이 출간되고 있습니다. 이것도 설교라 한다면 설교가 되겠지만, 이곳이 말하는 설교는 그런 것을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차라리 서툴고 어리면
미리 설교를 준비해서 걸음마를 잘 배우고 정확하게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줄줄줄줄 말을 잘하려 하다가 실수가 하나 들어가는 것보다
더듬더듬 말더듬이처럼 설교를 해서 온 교인이 다 졸고 도망을 가도 한 마디라도 실수를 하지 않으려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옳바른 설교자로 자라가는 바른 자세입니다.
자기가 어두워 깨닫는 것이 흐미하면
칼빈처럼 옳고 바르게 깨달은 것을 보고 읽고 참고하는 것이 낫고
그렇게 참고한 것을 강단에서 전하려 해도 머리가 나빠서 잘못 전하겠다 싶으면
배껴서 적어가지고 하든 아니면 아예 그 분의 책을 들고 올라가서 읽으며 은혜를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를 극장 구경가듯, 코메디 듣고 웃으려 가듯, 말솜씨 경영장 구경하듯 하기 때문에
오늘 교회에는 설교자가 없어진 지 오래 되었습니다.
답변자가 이 홈을 운영하기 오래 전, 설교자를 찾아 설교를 듣고 싶어 1976년에 서울 여러 이름 있는 교회들을 찾아본 적이 있었습니다. 세상 상식을 전하는 유식한 사람들은 많았고, 인간의 도덕과 예절을 가르치는 윤리강좌식 설교도 많았으며, 사회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혁명가와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회사업가의 설교도 많았으며, 가장 건전하다 싶은 것이 성경공부 설교였습니다. 그러나 설교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사직동교회를 다녔는데 사직동교회는 설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노선을 비교 평가하여 확정하게 되었습니다.
과거 시절은
칼빈의 설교록이나 주석을 통해 설교자가 연구하고 전하려 노력하는 것이 성경을 바로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칼빈 시절에 생각하지 못했던 현실이 닥쳐있습니다. 또한 칼빈보다 한 걸음 더 발전한 교훈과 교리체계가 있습니다. 이 홈의 운영은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이거나 나도 홈을 한번 운영해 본다는 자기 나타내기 때문에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이 홈이 아니면 전할 수 없는 자료가 있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홈에서 제공하는 백목사님 설교자료를 가지고 설교자료로 참고하고 활용해 본다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감당할 수 있는 진정한 설교자들이 대거 나올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어렵고 까다롭지만
설교자가 말씀을 자기 것으로 삼고 진정 설교의 내면을 알게 된다면
이 자료들만큼 성경을 바로 전할 수 있고 바르게 설교할 수 있도록 하는 자료는 답변자로서는 아직 접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자료를 잘 참고한 분들마다 현재 설교에 관한 한 더 이상 부족을 느끼지 못하여 성경 외에는 어떤 것도 참고할 것이 없는 설교자로 목회하는 분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재질문) 일반 신학교의 설교학은?
일반신학대학원에서 가르치는 실천신학 가운데 일반적으로
설교학을 가르치는데요.
일반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설교학은 우리들이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요.
(답변) 이 노선과 일반신학교의 접근법 비교
1.세상이 좋아하는 '학'이라는 글자를 이 노선은 엄청나게 혐오하고 있습니다.
학이란
학문 또는 과학이라는 뜻입니다.
어느 한 사람의 일방적 주장만을 따르지 아니하고
두루 여러 의견을 종합해서 그 속에서 하나를 만들어 가는 방편입니다.
학문의 세계에서
내가 이렇게 말했으니 이 말만 옳고 다른 것은 들어볼 것도 없다 하면 학문을 모르는 무식한 사람입니다. 미개한 사람이라 하여 사람 취급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든 학문은 많은 사람의 많은 의견을 많이 소개하는 것을 자랑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린 학도들에게는
꼭 필요한 몇 가지 간단한 것만 알려주니 이를 '학교'라 하고
제법 배워서 이제 본격적으로 학문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대학교'라는 곳에 모아
크고 높은 학문을 가르치게 됩니다.
이곳에서는 한 사람의 한 주장만 듣고 배워야 한다고 한다면 큰일 날 일입니다.
누구는 이렇게 말했고 누구는 저렇게 말했고 .....
이런 공부법을 광문다학이라 하기도 합니다. 많은 말을 듣고 많은 사람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2.신앙이란, 교회란
오로지 성경 하나만 듣고 읽고 배우는 길입니다.
이 박사의 소리든 저 학자의 주장이든 몇 사람이 무슨 소리를 어떻게 했는지
모든 인간 소리는 전부 잡소리 개짖는 소리로 취급하고
오로지 하나님이 무엇이라 하셨는가?
그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한 곳에서 나오는 한 가지 소리만 듣고 배우고 따라가는 것이
신앙이요 그곳이 교회요 그렇게 가르쳐야 목사요 그런 목사를 길러야 신학교입니다.
3.목회자 양성 방법론을 두고
일반 교회는 과거는 '신학교', 현재는 '대학원' 체제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 세상 공부를 세상식으로 가르치는데
저서가 필요하니까 신학교도 저서를 저술하여 저서를 가지고 가르치고
책걸상이 있어야 하니까 신학교도 교구를 세상학교처럼 갖추고
방학이 있으니까 신학교도 휴식기간 방학이 세상학교 식으로 운영되고
가르치는 방식도 학자들의 학설을 소개하니까 신학교도 이 소리 저 소리를 소개하는데
세상과 무조건 달라야 할 것도 없지만
세상과 무조건 같아야 할 것도 없으니
세상에 있는 교회가 예배당 건물을 지을 때는 세상 건물처럼 세멘트를 재료로 사용하지만
예배당 짓는 목적과 동기와 모양과 자금조달 방법과 내외관의 꾸미기가 세상과 같다면 이는 크게 생각해 볼 문제듯이 신학교가 세상 학교와 같아도 되고 달라도 되는 그런 사안이 아니라 성경유일의 교육만이 신학교인데도 마치 세상 학자들의 학설들을 존중하며 참고하듯이 성경과 다른 말을 하는 학설까지도 소개하고 공부하는 식으로 운영된다면 이는 세상 학교 중 종교계 학교일 수는 있지만 참 신학교일 수는 없습니다.
이 노선은
성경이 설교를 무엇이라고 가르치는가?
성경이 말씀을 전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전하라 하는가?
그것만 연구하고 그 면만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일반 신학교들은 신학대학원이므로 대학원 차원의 학문적 표현과 형식과 절차를 유입시켜 뒤섞고 있습니다. 일반 신학대학원의 설교학이라는 '학'이 붙은 교과서를 가지고 그 학문을 가르치는 박사님들에게 교육을 받아봤다면 답변자 설명이 무엇을 비판하며 무엇을 탄식하는지 잘 알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자기 현실에서 자기가 실행해야 할 말씀을 실행하느라고 고생도 투쟁도 희생도 피도 흘려 보지 않고 교과서에서 '설교학'이라는 것을 세상 윤리교과서 공부하듯 사범대학생들의 강습학 공부하듯 이론으로 읽고 배우고 노트에 받아적고 실습하여 설교자가 된다? 이는 천부당 만부당한 방법입니다.
그렇게 설교학을 공부하고 훈련받아 설교학 'A+' 받은 신학생이 그러면 앞으로 목회를 하고 교회를 담임하면 그의 설교는 'A+'가 될 것인가? 천번 만번 생각해도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말입니다. 성경을 읽고 배웠으면, 그 말씀대로 자기가 살아보고, 그 말씀이 주는 은혜와 힘을 가지고 체험한 것을 그다음 다른 사람에게 전달했으면 그것이 설교의 핵심이요 설교의 생명입니다. 세상 연사 변사 웅변가 대중연설가 교육과 설교학의 설교교육이 무엇이 다른지?
차를 파는 차장사와 보험상품을 파는 보험장사와 월부책을 파는 책장사의 장사법이 다른 것이 있습니까? 물론 그들 입에 한 사람은 '책'을 말하고 한 사람은 '차'를 말하고 한 사람은 '보험'을 말하지만 장사는 장사입니다. 손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장사 자기 이익을 위한 것이고, 손님에게 공급하는 물건과 손님에게 받아야 하는 판매대금의 차액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
설교학을 세상 대학원의 학문 중 하나로 편입을 시켜 놓은 이상
일반 신학교의 설교학을 이 자리에서 비교하고 비판하는 것은 시간낭비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4.이 노선은 학교라는 것을 아주 무시하는 편입니다. 특히 신학에 관련해서.
이전에는 '신학교'라고 했고
요즘은 '신학대학원'이라고 합니다.
신학교란, 신학을 학교식으로 가르치겠다는 정도의 개념이고
신학대학원이란, 신학을 대학교와 대학원의 대학차원 학문적 교육 개념입니다.
이 노선은
성경과 신앙을 세상 '학교식' 접근법 자체를 아주 우습게 알고 무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은 인간이 인간 지식으로 인간을 가르치는 식이고
하나님 모신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는 식입니다.
'주일학교'나 '신학교'라는 단어는 이미 수백년 세월 속에 굳어진 말이어서
그 단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주일학교'의 '학교'도 우스꽝스런 표현이고 '신학교'의 '학교'도 아주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
특히 '신학대학원'이란
정확하게 대한민국 정부의 '고등교육법'이 규정한 목적과 법규정에 따라 설립된 교육기관이니 '고등교육법'은 '교육기본법'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교육기본법은 교육의 목적이 단군할아버지의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모든 국민을 개조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교회의 목회자를 단군종교 교리인 홍익인간으로 개조하겠다고 만든 법체계에 속한 신학대학원으로 교육을 해야겠는가? 세상 속에서 살도록 하셨기 때문에 믿는 사람의 세상생활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범위가 있으나, 순수한 신앙내부사를 세상에 맡겨 세상으로 처리하게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문제입니다.
5.질문자처럼 '신학생'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일반 신학교의 신학교육 체제는 그 신학교의 설립 근거와 방향 자체조차도 이 노선은 고개를 돌리고 있으며 그 곳에서 가르치는 신앙교육조차도 새포도주를 헌부대에 넣어 죽도 밥도 되지 않게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천하 모든 교회들과 매일 말싸움만 하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식 교육체제가 좋으면 그렇게 나가고 또 이 노선처럼 가끔 세상과 좀 떨어져 걸어가는 교회도 하나쯤 있으면 요즘 '자연친화적'이라 해서 문화상품으로 개발도 되고 또 다른 사람 눈요기도 되며 나름대로 개성이 있다고 호평도 받을 수 있으므로 이 노선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비판하기보다 그냥 그렇게 좋게 봐 주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곳도 다른 신학교를 향해 기독교 박해가 없도록 이 사회와 씨름하느라 수고한다고 격려 해주고 또 불신자들에게 기독교인들은 이 사회 안에서도 고등문화인이라고 인정받도록 해 주어 고맙다고 인사한다면 화평을 위해 좋을 것 같습니다.
속으로는
일반 교회들이 이 노선 알기를 막가는 무식쟁이로 알 것이고
이 노선은 일반 교회를 전부 타락 탈선해서 쓰지 못할 교회가 되었다고 탄식하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