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질문) 총공회의 설교학 2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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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34
2. (질문) 총공회의 설교학 2721
총공회는 설교학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나요?
(답변) 설교학은 없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1.설교학에 앞서 전도학으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유명한 설교가였지만, 그는 설교학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배운 대로 아는 대로는 예수와 그 교도들은 죽여 없애야 할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는데 그 상황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집적된 지식으로 증명되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본 대로 믿은 대로 그대로 만나는 사람마다 믿으라고 전했으니 그것이 그 유명한 '바울의 전도'였습니다.
바울의 전도는, 그 결과가 너무 엄청났기 때문에 유명한 전도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더 엄청난 사실은 그가 전도를 위해 어떤 기술이나 학문도 개발하지 않았고 그냥 보고 믿은 것을 그대로 전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바울이 힘쓴 것은 자기 속에 성령에 붙들려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려고 노력하고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할 부분에 대하여는 자기 속에 역사하는 성령이 그들 속에서도 역사해 주시기를 기도한 것 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간단하게 쉬운 바울의 전도를, 그 훗날 교회가 발전을 하고 돈과 사람이 모여지게 되자 신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고, 신학교가 세워지게 되자 무엇이든지 '학'이라는 이름을 붙여 학과를 증설해야 하고 교수직 숫자를 늘려야 하는 의외의 수요가 발생하게 되자 '전도학'이라는 학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전도는 전도학이라는 학문으로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학이라는 학문의 학자가 되어 전도학의 권위자가 되는 길은 불신자라도 세계 유수의 대학교를 학문적 입장으로만 접근해서도 거머쥘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필요한 진정한 전도는 전도학의 학문적 체계로 무장된 전도인이 아니고, 예수님을 직접 만나본 경험자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보고 믿게 된 그것을 그대로 전하면 전도의 최고봉입니다.
2.총공회의 설교학은, 요즘 유행하는 세상말로, '설교학'이 죽어야 설교가 산다는 편입니다.
굳이 '설교학'이라고 한다면, 총공회 신앙노선은 설교학이 없습니다. 질문자께서는 별 뜻 없이 일반 신학교에서 흔히 입에 익은 표현으로 설교학이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만, 설교를 그냥 설교라 하지 않고 설교를 '설교학'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을 입에 익힐 때, 벌써 진정한 의미의 설교는 없어졌고 학문으로서의 설교학만 남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앞에서 전도학으로 설명을 드릴 때 벌써 설교학에 대한 답변 방향을 아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전도학과 설교학은 서론과 본론의 차이 정도입니다. 실은 이 둘은 하나입니다. 전도학이 서론이라면 설교학은 본론입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 '예수 믿고 구원 얻으시라'고 담대히 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 이상도 그 이하도 생각할 것 없이 최고의 전도자입니다.
전도자는 자기가 보고 믿게 된 바로 그 예수님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는 것으로 전부를 삼아야 하는데, 그 전도자에게 '전도학'이라는 '학'을 붙이게 되면 붙이게 되는 만큼 그때부터는 진짜 '전도'에서는 멀어지게 됩니다. 설교학도 설교'학'을 붙이는 순간부터 진정한 설교로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게 됩니다.
예수님을 보고 믿게 된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한다면 그것이 전도이듯이, 이제 설교는 전도를 받아 믿게 된 그 사람에게 믿는 사람은 어떻게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안내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설교는 자기가 성경을 읽고, 깨닫는 대로 실행하고, 주시는 은혜로 모든 현실에서 말씀대로 살아본 그 결과를 가지고, 그다음 그렇게 살자고 전하는 것이 설교입니다.
역사에 가장 유명한 설교가를 꼽는다면 바울입니다. 바울의 설교는 성경에서 깨닫는 대로 실행했고, 자기가 살아본 말씀으로 다른 사람에게 소개한 것이 전부입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바울의 전도'였습니다. 설교만 하면 설교가 될 것인데, 설교를 어떻게 해야 더 효과적일 것이며 어떤 순서로 해야 할 것이며 그 설교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냐는 것을 학자들에게 학문으로 배워 학문으로 무장하고 설교를 하게 되면, 웅변가는 나올지라도 성령이 함께 하여 듣는 이들에게 깨닫게 하는 설교가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이 총공회의 설교학입니다.
3.굳이 총공회 설교학이라고 한다면
설교할 때, 이런 것을 주의하라고 몇 가지 주의사항을 백목사님이 평생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주의사항은 2-3페이지 정도면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감동을 연출하려고 억양이나 음의 색깔을 변경하지 말고 가장 평범하게 사용하는 일반 언어로 말씀을 전하라, 또 성구를 많이 읽고 여러 말씀을 전하려 말고 꼭 한번 설교에 한 말씀 전하는 심정으로 전하라는 등의 몇 가지 주의만 주는 정도입니다.
특별히 자기에게 주시는 말씀이 없고 또 설교를 해보지 않아서 전혀 첫 마디도 떼기가 어려운 첫 설교자라고 한다면, 예를 들어 가정 예배를 인도하는 평범한 교인이나 목회자 없는 시간에 새벽강단을 맡은 시골교인이라면, 자기가 가장 은혜받고 좋아하는 설교록 일부를 차근차근 읽는 것으로 설교를 대신하라고 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이전에 은혜롭게 들었던 설교를 그 시간에 한번 더 읽게 되면 설교하는 자기도 다시 한번 은혜를 받고, 또 듣는 이들에게도 자기가 특별히 준비한 설교가 없다면 차라리 자기가 은혜 받은 그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자는 자세를 취하여 그 설교 일부를 읽어 들릴 때 듣는 사람이 비록 작지만 마음 깊이 와닿는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전하다 보면, 설교하는 자신이 다음에 전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라도 설교를 더 잘 듣게 되고, 더 잘 들으면 은혜를 받게 되고, 더 은혜를 받게 되면 다음에 전할 때, 비록 몇 페이지 읽어주는 설교라도 전하고 듣는 이들에게 은혜가 더 많게 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전하는 양도 조금씩 많아질 수 있고, 또 준비도 더 잘하게 되고, 또 설교록을 읽는 것도 자연스러워지면서 또 익숙하게 됩니다. 그렇게 상당 기간 하다보면 젖먹던 아이가 젖을 떼고 자연스럽게 밥으로 바꾸듯이, 그렇게 하다보면 조교하던 사람이 교수가 되듯이, 그렇게 하다보면 세발자전거가 두발자전거로 바뀌듯이 저절로 자연스럽게 성장해 가며 자기 자신의 독자적인 설교를 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설교학을 통해서 설교의 훌륭한 그릇은 다 준비를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설교의 본질, 즉 자신이 말씀으로 살아본 경험이 없으면 울리는 꽝과리만 될 뿐이고, 또 살아본 경험은 있다 해도 자기가 은혜 받는 설교자의 설교록을 인용해가며 조심스럽게 출발하지 않으면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자기가 은혜를 받고 있는 설교는 그 말씀에서 배웠고 그 말씀대로 살았기 때문에 충분히 전할 수 있는데, 이왕 같은 내용을 전하려면 자기가 배운 선생의 것으로 전하면서 자꾸 배우라는 것입니다.
참고로, 총공회는 백목사님 설교에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주로 모인 곳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백목사님 설교를 원고로 하여 설교를 준비하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총공회 설교학은 이곳 홈의 활용자료에서 제공하고 있는 백영희설교자료가 그 중심에 있을 것입니다. 그 설교에서 은혜받고 그대로 전해보는 것이 총공회의 전통적 설교인데, 총공회는 설교에 관해서는 일반 교회와 비교할 때 대단히 특별하게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그렇게 평가를 받고 있다고 감히 말씀드릴 정도입니다.
현재 질문자께서 가장 은혜를 받고 있는 설교가 있다면, 바로 그 분의 설교에서 은혜를 받고 그 말씀대로 살아본 바로 그 내용의 일부를 가지고 교인들에게 또박또박 전해 보셨으면 합니다.
(재질문) 본문설교, 강해설교, 주제설교에 대하여
본문 설교와 강해설교, 주제 설교에 대하여 명료한 구분이 되지 않아서 다음과 같은 글을 뛰어 봅니다. 본문설교와 강해 설교, 주제설교의 내용과 순서에 관하여 그리고 서로 간의 차이점을 좀 설명해 주세요?
그리고 백목사님은 이 세가지중에 어디에 해당이 되나요?
(답변) 이곳 답변자가 아는 범위에서 몇 말씀드리겠습니다.
신학교마다 또 가르치는 교수님마다 용어를 조금씩 달리 표현할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3가지 형태의 설교를 답변자가 조금 혼동하고 있습니다. 짐작은 하고 있지만 좀 더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안내해 드릴 수 있도록, 죄송하지만 간략하게 그 차이를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주제 설교는 절기 설교처럼 주제를 먼저 놓고 그 주제를 중심으로 설교하는 형태라고 짐작이 됩니다. 그러나 본문 설교와 강해 설교는 어떤 면을 기준으로 분류하시는지 먼저 간략하게 다시 설명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일반 교계나 신학계에서 통용되는 상식 수준의 용어도 종종 못 알아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반 외부 소식은 최소한에 그치고 있는 편이어서 그렇다고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먼저 올려진 질문을 충실하게 잘 했더라면 덜 죄송했을 터인데, 앞에 답변이 동문서답과 같은 식이 되어 이번 질문에 바로 답변드리지 못함을 너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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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9.18. 08:00 답변추가 - yilee)
질문자께서 질문하신 내용 중 '3가지 종류의 설교'에 대하여 본 답변자가 그 표현을 잘 알지 못하여 답변 대신에 질문 내용을 다시 한번 설명해 주시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첫 답변에 이어 두번째 답변에서도 질문자께서 원하시는 내용을 중심으로 글을 적지 못해서 혹 질문자께서 이곳 답변 태도에 실망을 하시고 이곳 요청을 상대하지 않으셨는지 걱정입니다.
일단 다른 말씀을 하시지 않으시므로, 이곳 답변자가 질문 내용에서 언급하신 '본문설교' '주제설교' '강해설교'를 그 단어 표현만으로 짐작하고 평소 백목사님의 설교 내용을 중심으로 간단하게 설명을 올리겠습니다. 혹시 질문자가 알고 계신 의미와 다르다 해도 이해 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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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백영희목사님의 설교 방식
1.주제설교, 본문설교, 강해설교
주제설교는 성탄절, 부활절, 이웃사랑 등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설교를 하되 성구는 그 주제에 관련된 성구를 성경 전체에서 인용하는 설교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설교는 어느 한 성구를 중심으로 본문에 충실한 본문 위주의 설교라고 생각합니다.
강해설교는 주해설교라고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성경을 순서대로 계속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2.백목사님의 설교는 위 3가지 형태 중 하나라고 표현하기는 곤란합니다.
주제설교를 할 때도 가끔 있고, 본문설교를 한다고 보이는 경우는 거의 전부입니다. 강해설교는 과거 1960년대까지는 한번씩 있었습니다. 창세기로부터 시작해서 출애굽기 레위기 식으로 장기간 계속한 경우 등입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의 설교를 규정하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그 모습은 본문 설교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3.중요한 것은, 백목사님 설교는 예배 시간에 막 이르러 본문을 택하고 그 본문으로 설교합니다.
성경 전부를 평소에 외우고 있었던 분입니다. 예배 때가 되면, 그날 설교 본문을 알려 달라고 기도하게 되고, 기도 중에 본문을 가지게 되면 보통 예배시간 5분 전이거나 아니면 예배시간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사회자가 따로 있는 주일예배 경우는 예배가 진행 되는 도중에 그날 설교 본문을 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단 어느 성경 말씀을 전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잡게 되면, 그 순간 바로 설교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설교 내용은 이곳 홈의 /초기화면/활용자료/설교자료/녹음본/에 올려진 모든 설교 내용 그대로입니다.
4.가끔, 미리 어느 한 주제를 택하고 손바닥만한 메모지에 설교 줄거리를 적어나올 때도 있습니다.
이 홈의 초기화면 상단에 '나는 독립으로, 무언의 용사로, 주님만 모시고, 어디까지든지'라는 표어는 1987.9.20. 주일오전 설교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목사님이 예배 시간 전에, 오늘은 특히 주일학교나 중간반을 졸업하는 학생들이 의존 신앙을 벗고 이제 독립 신앙을 갖도록 가르쳐야겠다는 주제를 먼저 생각하여 손바닥만한 메모지에 그 주제 내용을 적어두고 예배 때 그대로 설교한 내용입니다.
교회에 특별한 일이 있거나 또는 꼭 전해야 할 내용이 있게 되면, 그 주제를 먼저 잡고 그 주제를 위해 가장 적절한 성구를 찾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주제설교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5.강해설교는 앞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1960년대에 좀 있었고, 아니면 양성원 강의에 있었습니다.
양성원에서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때는 혹 야고보서 1장 1절에서부터 본문을 따라 계속해서 강해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성경공부'라고 이름을 붙여야 할 경우이지, 일반 예배 때는 그렇게 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설교는 그 날 그 예배 시간에 주님이 전하라는 뜻을 찾아 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미리 설교 원고를 만들어 놓고 그 원고대로 설교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