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질문) 바른 설교 준비는 1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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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질문) 바른 설교 준비는 1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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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질문) 바른 설교 준비는 1682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서부교회 주교반사입니다.
목사님 공과설교준비는 어떻게 하여야합니까?
또 목사님은 어떻게 설교준비를 하시나요?
바른 설교준비를 말씀해주시고
바른 설교가 어떤 설교인지 말씀좀 해주세요.


(답변) 1.백영희목사님의 '설교준비 23가지' (1954.2.6)

1.설교에 임하는 기본 자세 23가지에 대한 자료를 1차로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이 자료는 50년 전 백목사님이 서부교회 부임하던 초기에 작성했던 노트 기록입니다. 공개용이 아니고 목사님 혼자 스스로 자신을 단속하며 주의할 점을 적었던 것입니다. 원고를 준비하라는 등 몇몇 내용은 목사님의 평소 설교관과 모순된다고 생각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때 원고라는 말은 설교를 위한 완벽한 준비라는 뜻입니다. 원고대로 설교하지는 않지만 1950년대 10여년 동안은 원고 준비를 철저히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준비하고 노력한 초기시절이 있었고, 그 훗날 평생은 원고 준비조차도 없이 설교를 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주일학교 반사라고 한다면 '주일학교 공과'라는 설교 원고가 있습니다. 이미 설교 자료가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설교 원고 준비는 새로 만들 준비로 준비하는 것이 아니고 그 공과에서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지 더욱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2./연구실/자료방/ - '55번, [목회]설교준비 23가지 - 백영희 (1954.2.6.)' 00/06/17

====================================================================설교에 권위 있는 방법 - 백영희, 부산서부교회

(1954. 2. 6.)

1.겸손히 부족감을 느낄 것

2.홀로 주님만 밀접히 교제하고 주님과 듣고 보는 시간이 많을 것

3.많은 사람을 접촉하거나 분주함을 피하고 성경을 가지고 주님과
밀접히 교제를 계속하고 영안이 열릴 시는 계속 연구할 것

4.원고를 작성하고, 평시에 주님께 구해 성경구절을 구하여 얻을 것

5.기도하고 조심하여 경외하면서 강단에 설 것

6.교인 숫자에 관계 두지 말고 하나님 존전에서 증거할 것

7.매일 저녁 설교할 것. 설교 때마다 대 집회때와 차별을 두지 말 것
준비와 진행에는 가정에서라도 설교할 것

8.요절을 찾아 집회할 것

9.명상을 많이 할 것

10.뜻밖에 알게 된 영리, 진리, 비유, 만물의 이치, 증거물 등을 암기할 것

11.열심, 간절, 절대 믿음, 인내, 대망이 강할 것. 권위로(하나님의 것)할 것

12.주님만 증거하고 나를 끼우지 말 것 (名義심)

13.주님과 성신이 하시나니 믿고 의지하여 쓰이기만 하고 자기가 하듯 하지 말 것. 믿음으로만.

14.조급지 말고 긴장하여 조직적으로

15.주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과 생명 함께 계시니 늘 재강(再講)
하여도 좋음. 은혜가 없으리라는 시험들지 말 것

16.뜻은 높고 말은 쉽게.
일주간 들은 것, 본 것, 생각한 것, 계시받은 것, 감동받은 것, 영적인 것
다 모아서 토요일 정리할 것

17.성경구절, 찬송, 비유는 미리 준비하여 실수 없게

18.군중의 심리와 태도를 보아 적합하게 해석하되 성경은 성경으로 할 것

19.책망을 말고 포옹과 부르는 격, 탕자 아버지 격으로 할 것

20.장점을 먼저 칭찬하고 후에 결점을 책망할 것. 칭찬 7, 책망 3 (평시 장점 찾기를 힘쓸 것)

21.남을 훼방하거나 편논하지 말 것. 자기 관계사를 제3자 격으로 소개할 것

22.믿음, 사랑, 소망으로 기둥을 삼고 약속, 말씀, 보혈, 성령으로 생명과 능력 삼아 증거할 것

23.증거하고는 크게 믿고 기다릴 것
====================================================================


**해설**

(설교 시간, 또는 사석에서 백목사님이 후배 목회자들의 설교 태도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참고로 적어본 것입니다.)

1.
습관적으로 '부족합니다'라는 겸손이 아니고 또한 겸손하라 했기 때문에 겸손하려는 겸손도 아니다. 속으로는 자신이 있는데 겸손이라는 모양을 가져야 남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부족합니다'라는 것은 고등 교만이다.
자기를 깊이 살펴 자기의 단점을 찾아보면, 조목조목 자기의 못난 점을 열거할 수 있게 되고, 이렇게 한 후 이런 구체적인 못난 점을 가진 자기가 되어 동시에 또한 주님이 얼마나 크심을 헤아려가며 자기와 비교하게 되면 진정 자기의 부족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된다.
도매금으로 또는 습관적 표현으로 부족합니다가 아니고 진정 부족해서 느껴지는 부족한 자신을 느껴야 한다.

2.
혼자 가지는 혼자의 시간, 주님으로 깊이 들어가는 그 시간과 그 정도에 따라 설교는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비록 교인일찌라도, 비록 교회나 교단의 간부들일찌라도, 결국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사람은 사람으로 치우치게 되고 하나님을 많이 상대하는 사람은 하나님으로 가까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스런 이치이다. 성경으로 주님을 찾아나서야 영안이 열리는 것인데, 이렇게 영안이 열리게 되는 순간, 또는 진행되는 순간, 이 순간을 악령은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에 총력해서 그것을 막게 된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각나게 한다든지, 갑자기 사람을 방문케하여 그 영안의 순간을 중단시키려고 할 때, 이 주님과의 교제가 끊어지지 않도록 내적 투쟁이 있어야 한다. 기도실을 만들어 기도실로 자꾸 들어가라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

4.
백목사님의 설교는 원고 없는 강도가 제일 큰 특색이다. 그 말은 원고를 준비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성경을 다 외워버린 그였고, 설교 준비를 위해 대학 노트나 메모지에 적어가며 기록한 것이 10여년치가 아직도 남아 있다. 그리고 마지막 설교까지 여러 형태의 메모지에 그날 설교의 준비를 꼼꼼하게 요약하며 준비를 철저히 하였다.
단, 강단에 설 때마다, 주님이 그날 설교를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는지 기도 중에 찾아 강단에 선 순간의 영감으로 설교를 진행하지 준비된 원고가 있다고 그 원고대로 진행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즉 준비는 철저하게, 설교강단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전하는 것이었다.

이런 내용을 간과하고, 준비는 전혀 없는 사람이 강단에 영감을 따른다고 하면 인간의 주관적 착각의 자기 지식 전달만 하기 쉽고, 준비만 철저히 하고 그 강단의 영감을 찾지 않고 준비된 내용만 그대로 전한다면 이는 성경공부일 것이다.

5.
강단을 대할 때마다 목회자는 늘 신부의 조심성을 잃지 말아야 되며, 아이를 여럿 낳은 여자와 같은 자세로 강단을 쉽게 대하지 말 것을 늘 주의 시켰다.

6.
참석 교인이 많거나, 큰 교회에서 설교를 하게 될 때 사람은 전력하게 되고, 교인이 적고 교회가 적은 경우 설교자가 힘을 잃거나 아니면 성의없이 하기 쉬운 면을 지적한다. 앞에 있는 사람을 보지 말고 늘 하나님 앞에 증거하라는 것이다.

7.
매일의 설교와 큰 부흥회 초청 설교와 차이를 두지 말고 전력 할 것을 말한다.

8.
많은 설교가 이어지는 집회일찌라도 요절을 붙들어 증거할 것이다.

9.
2번 3번에 더하여 또 주의를 반복하고 있다.

10.
일상 생활에서조차 명상의 연속이 많았고, 이런 긴장 속에 순간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 많았고, 그럴 때는 바로 적을 수 있도록 작은 연필과 메모지는 늘 가지고 다녔다.

11.
하나님의 것으로 전하면 권위가 있는 것이니 권위의 기준부터를 바로 알 것이다. 하나 하나 열거한 조목들을 깊이 새겨 볼 일이다.

12.
설교자가 주님을 증거해야 하는데 하다 보면 설교가 자신이 불쑥 나와버려 주님과 자기를 바꾸는 실수는 너무도 많은 면을 주의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식의 설교가들이 초기 한국교회를 주도하면서 이런 현상은 심했고 그것이 일반교회에 편만하게까지 되어 강단에서 자기를 가지고 나타나는 경우가 너무 허다했다. 그렇다면 유교적 기본 소양이 나타난 듯 오해하기 쉽겠으나, 나는 죽고 주님이 살아야 대속의 기본이다.

14.
말씀을 전하려는 열심히 조급으로 나타나기 쉽다. 차근차근 체계적으로 설교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15.
한번 전한 말씀을 또 다시 전하면 은혜가 없으리라는 것은 모든 설교가들에게 공통된 인식이다. 창조의 능력과 생명이란 동일한 것이 아무리 반복이 되어도 또 새로움이 있고 성장이 있는 것이니 과연 말씀은 능력과 생명의 것이라 인간 생각으로 설교를 자꾸 바꿀 노력을 할 것이 아니고 같은 말씀이 그 속에서 생명과 능력으로 나타나도록 힘을 쓰는 것이 옳을 것이다. 백목사님의 설교는 단 한 절을 가지고 한달 이상 설교하는 경우도 있었다. 애양원교회 1961년 사경회에서 단 한 말씀으로만 집회를 끝까지 인도하였고 그 교회 교인들이 아직까지도 그때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16.
신학자일수록, 학식있는 목회자일수록 단어와 수사를 어렵게 만들어 가기 쉽다. 성경부터가 가장 쉬운 말로 그러나 그 속에는 무한을 담고 있듯이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도 알 수 있는 쉬운 말로 그러나 그 속에 뜻은 무한을 향할 것이다.

17.
성구의 장절과 찬송의 장수 등을 혼돈하여 강단의 진행에 흠이 없도록 할 것이다.

18.
교인의 고통을 체휼치 않고 그 양떼의 갈급함이나 어린 신앙의 그 어려운 형편에 상관없는 설교자의 자세가 문제이다. 평생을 '목회'설교를 하였고 정해진 궤도를 이어가는 '강의'를 하지 않았다. 박사의 강의가 아니라 목회자의 목회설교라야 할 것이다.

19.
백목사님의 설교는 설교 중에 실명으로 불러 야단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흉내를 젊은 교역자들이 같이 내고 있지만, 실은 그는 교인의 종의 종이었다. 야단을 쳐서 감사히 받을 사람과 오히려 목사가 종노릇을 해야 될 어린 신앙을 구별하였다.
그러나 그 야단도 그를 위해 친 아버지 이상의 사랑과 정성을 들인 후 꼭 필요한 범위 내에 조심스런 책망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그의 책망은 뒤탈이 없고 오히려 책망받기를 기다리는 교인이 되기까지 만들었다.
목회자가 교인을 위해 희생한 것은 없고 권위있게 책망하는 것만 가지기 쉬운 점을 조심할 것이다.

21.꼭 자신의 예를 들 필요가 있을 때, 어느 사람이....라는 말로 시작하여 제3자적 소개로 하 는 것이 좋다. 그의 설교 중 많은 대목에서 자신의 경험이었으나 제3자로 돌려놓은 곳이 대단히 많다.


2. 위 자료에 더하여 몇 가지 참고로 말씀드린다면

1.설교 준비의 모든 것은 위에서 참고할 수 있겠으나, 질문자를 중심으로 몇 가지 추가합니다.

서부교회 주일학교 반사선생님이라고 한다면, 백영희목사님 공과를 사용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공과는 항상 장년반 주일 오전 오후 예배 설교의 핵심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해서 주일학생들에게 암기식 주입식으로 가르치도록 마련된 것임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공과모음'책에서 그 공과의 원래 날자를 찾으시고 그 공과의 바로 앞 주일 본문과 설교 내용을 살펴보셔서 해당되는 설교를 꼭 참고하셔야 할 것입니다. 80년대 후반으로 들어가면서는 수요일 밤예배 때 다음 주일 공과를 가지고 반사선생님들을 위해 설교한 경우가 대단히 많았습니다. 이곳 /초기화면/활용자료/원본설교/녹음본/ 게시판의 제일 밑부분 '검색'의 돋보기 모양을 클릭하시고 제일 밑줄의 '본문글'이라는 곳에 공과제목을 적으신 다음, 제일 왼쪽 칸에 있는 'OR'와 'AND' 중에서 'AND'에 클릭을 하시면 해당 공과에 대한 집중적인 설교를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찾아진 자료 중에서 '수밤' 자료가 있다면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는 좀더 쉬울 것이고, 주일 오전 오후 설교는 설교의 전반적인 면을 포함하고 있어 약간 파악하시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2.주일학교 공과설교를 할 때 특별히 주의하셨으면

①선생님이 먼저 공과 내용을 외우셨으면, 외우지 못한다면 외울 만큼 숙지하셨으면

주일학교 공과는 많은 설교 내용을 함축시켜 단 몇 줄로 줄여놓은 고농축 우라늄입니다. 섣불리 해설을 붙인다면 원 뜻과 달라지기 쉽습니다. 그 내용은 비록 성경 본문은 아니지만 교리 정도로 생각하고 전달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공과 내용을 선생님이 그대로 외워 두시는 것이 선생님에게나 학생에게나 가장 좋습니다. 짧으면 외우시고 길면 외우지는 못해도 거의 눈앞에 그 내용이 보일 정도로 익혀야 합니다.

선생님 입 속에 외워진 내용은 선생님이 어떻게 설교를 해도 결국 그대로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이 말씀을 그렇게 외우지 않으면, 윤곽은 공과 내용을 잡겠지만 학생들에게 사용하는 말투나 표현은 세상 다른 책에서 듣고 보고 익힌 대로 나가게 됩니다. 설교자는 설교하는 표현부터가 기본적으로 성경과 교리와 말씀 내에 있어야 합니다.

특히 주일학교 공과는 선생님이 그 내용을 외우고 있어야 선생님의 눈이 학생들을 보면서 설교를 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과 시선이 맞아지지 않으면 금방 떠들어버리고 한번 흩으러진 토끼들을 다시 한곳에 모두어 놓으려면 짧은 설교시간이 금방 다 지나가버립니다.


②외운 공과 내용을 가지고 한 주간 늘 마음에 새기며 그 말씀대로 살도록 해야 합니다.

일반 교회들의 공과는 주일학생용 성경공부식 내용이어서 수업시간 내에 주고 받을 내용에 그치는 경우가 거의 전부입니다. 백목사님 공과는 장년반 주일예배 때 교인들이 일상 생활에서 살아야 할 말씀으로 전한 내용입니다. 주일학생들에게도 그대로 해당되는 것입니다. 우선 반사선생님의 자기 신앙과 자기 생활에서도 사활이 걸린 교훈입니다.

먼저 선생님이 내용을 외우시고, 외워진 만큼 평소 생활에서 그 말씀을 묵상하며 새길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져야 자기 생활 속에서 그 말씀대로 사는 노력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이 공과는 주일학생에도 동시에 전달해야 하는 말씀이니 학생들에게 이 말씀대로 살아라고 가르치려면 그들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차분하게 따져 봐야 합니다.

진정한 설교는 자기가 그 말씀으로 살아보고, 그 살아본 것으로 '증거'할 때 그것이 설교입니다. 이 증거에는 성령이 함께 하시고 진리의 능력이 동행하여 듣는 사람에게 변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학자들 박사들 신사들의 설교는 '이런 내용이 있더라' 하고 교인들에게 뉴스 전달하는 앵커들처럼 소개에 그치는 수가 너무도 많습니다. 자기는 실행해 보지 않고 교인들에게 '해 보시라'고 하는 것은 바리새인들이 백성들에게 짐이나 얹여 놓는 일입니다.

자기가 익혀본 만큼, 자기가 살아본 만큼, 살아보며 느낀 만큼, 살아보며 회개한 것 만큼, 살아보며 체험한 기쁨 만큼 전해지는 것이니 설교는 설교자를 통해서 넘어가게 되어 있고 설교자를 통해서 넘어갈 때는 설교자의 귀를 통해 입으로 그대로 쏟아지는 것은 맹물이 되고 설교자의 온 몸을 돌아 나와서 젖으로 나와야 비로소 아이들에게 양식이 됩니다.


③모든 설교도 그렇지만, 특히 아이들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거저 기도할 뿐입니다.

공과를 외우고 또 그 말씀대로 살며 묵상하고 새기는 것으로 일단 설교준비를 두고 사람이 해야 할 충성은 다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 하신 말씀대로 충성한 것 뿐입니다. 충성했다 하여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구하여 감화와 감동을 시켜 주시라고 해야 합니다.

말씀을 전하겠으나 성령이 듣는 이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성령이 제가 전하는 이 공과로 직접 저들에게 가르쳐 주시라는 기도와 소원이 간곡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하고 준비해도 혼자 전하기가 너무도 쉽습니다. 분명히 주님을 꽉 붙들고 설교를 시작했는데 어느새 주님은 내버리고 나 혼자 열심히 강의하는 모습을 볼 것입니다. 평소에 이 말씀 증거에 주님이 함께 해 주시기를 차분하게 기도한 만큼 설교 때 주님을 잊지 않고 동행할 것입니다.


④예배 때는 '한 말씀만' 전하겠다는 생각을 잊지 마셨으면 합니다.

학문에 밝은 사람들은 복잡한 것, 많은 것, 오묘한 것을 전하려고 노력하는 실수를 많이 합니다. 또 부흥사적 기질이 있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자기 말에 감동받을 것을 찾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설교자라면 전하는 내용은 '한 말씀만' 전하겠다는 정도로 내용을 간단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으로 진정 고치는 사람, 이 말씀대로 되어지는 사람이 만들어져야 하겠다는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공과 내용은 비록 많을지라도 오늘 공과 내용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겠다.'는 학생을 만들겠다, 오늘 설교에서는 '죄를 짓고는 망하지 않는 수가 없다' 이 한 말씀을 전해야겠다. 죄를 짓고는 반드시 망한다는 이 말씀에 붙들린 학생을 만들겠다, 그래소 죄를 피하는 사람을 만들어야겠다 는 식입니다.


⑤주교 예배시간 진행에는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학생은 예배 진행에 조금이라도 빈 시간이 있으면 그 마음이 금새 달아나버립니다. 한번 달아난 마음을 제 자리에 앉히고 진정을 시키려면 대단히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이들은 주입으로 자라가게 했고 어른이 되면 비교 비판으로 자라가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주교 시간은 모든 순서가 1초도 비어있는 틈이 없도록 진행해야 합니다. '묵상기도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소리가 나오면 바로 기도의 첫 마디가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아멘'하고 나면 바로 '찬송가 몇 장'이라는 사회 목소리가 나와야 합니다. '몇 장 찬송' 소리가 떨어지면 반주자의 첫 음이 바로 나와야 합니다.

이런 진행 과정에 1초 2초 틈이 생기면 아이들은 이곳 저곳 쳐다보기 시작하고 웅성거리게 됩니다. 혹 조용한 아이들은 어른스럽게 그런 순간들을 경건한 마음으로 선생님의 다음 인도를 기다리겠지만, 그 마음 속까지 그렇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아이는 아이일 뿐입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행동에 절제가 있느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특히 예배 진행 중에 '조용히 합시다' '여기 보세요' '장난치지 마세요' 이런 말은 아예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설교 시간이 아니면 이런 말로 주의를 집중시키는 것보다는 찬송을 바로 시작해서 아이들로 하여금 해야 할 일을 주는 것이 옳습니다. 기도 같으면 기도를 빨리 시작하면 금새 조용해지고 그 마음이 기도를 따라 오게 되어 있습니다. 설교 시간 중이면, 학생들의 주의가 산만해지거나 소란이 있을 때는 공과 내용이나 설교 때 강조할 내용을 따라 하라 하면 저절로 해결이 됩니다.

종을 치거나 조용히 하라거나 아니면 손을 들고 따라 하자 하여 다른 행동으로 주의를 집중시키는 것보다 예배 때 해야 할 순서와 내용을 '진행함으로 다른 행동들이 저절로 따라 오도록'해야 합니다. 앞서 가면 뒤를 따라 오는 것이 양들입니다. 목자가 뒤를 돌아보고 또 되돌아가면서 양을 오라고 하면 더 흩어집니다. 자꾸 앞으로 가면서 뒤를 따르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⑥마지막으로, 좋은 설교란

들을 때 감동보다, 예배 마친 뒤에 얼마나 오랫동안 그 날 말씀이 기억되느냐는 것으로 설교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들을 때 감동보다 그날 말씀이 설교를 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말씀을 마음에 기억하고 생활에서 실제 행동하도록 하는 것으로 설교는 평가할 수 있습니다.

백목사님이 서부교회를 부임한 것이 1952년 7월이지만 1년이 지나도록 거의 모든 교인들이 예배 시간에 졸거나 한 눈을 팔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예배 시간에 앉는 자리도 앞자리 가운데자리를 피하고 벽쪽으로 퍼져 앉았더라고 합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면서 한 사람씩 두 사람씩 필기를 하기 시작하고 앞자리로 한 사람씩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50년대 10년간은 고신 최고의 부흥강사 정도로만 알았는데 1960년대가 되면서는 이 시대 최고의 신앙가로 알게 됩니다. 1970년대를 거치면서는 역사에 몇 손 꼽을 신앙인물로 평가를 받게 되고, 1980년대가 되면서는 비로소 외부 교단에까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백목사님의 거창집회 인도는 1957년에 시작되는데 처음에는 50여명씩 참석했었습니다. 10여년이 지나면서 200여명이었고 또 10여년이 지나면서 1천여명을 헤아렸고 또 10여년을 지나면서 1만여명을 헤라리게 되었습니다. 첫 시작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씨 하나 심듯 하지만 가면 갈수록 커져갔던 걸음입니다. 보통 목회자들은 그 출발은 범같고 그 중간은 늑대같고 그 나중은 토끼만큼 줄어드는 것이 통계입니다.


⑦참고로, 설교 중에 틀린 말이 나왔을 때는 얼른 수정해야 합니다.

아이들 하나를 앉혀 놓고 가르쳐도, 가르치는 사람이 한번 했던 말은 합리화를 시켜 덮어버리려는 기질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이단으로 나가는 아주 악성종양과 같은 조짐입니다. 아니면 듣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염두에 두고 목소리나 분위기를 몰아가는 것도 그런 종류입니다.

하물며 실수로 틀린 말이 나오면 그 말을 수정하기는 쉽지 않으나 그렇게 해야 합니다. 설교 내용의 첫 생명은 정확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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