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질문) 설교록 보고 설교하는 것과 설교 준비는 3851
서기
교회
0
22
2023.03.13 21:34
8. (질문) 설교록 보고 설교하는 것과 설교 준비는 3851 항상 감사드립니다. 1.총공회 측의 교회들은 설교가 거의 똑같은데 설교 준비할 시간을 덜어서 좋기는 하겠습니다만 그렇게 해도 되는지요? 2.목사님이 설교집에서 마음에 드는 한편의 설교를 복사해서 강단에 올라 오셔서 그것으로 설교하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요? 3.설교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일까요? 4.총공회 측의 설교는 매우 길다고 생각이 되는데 인터넷에 올리는 설교만큼은 목사님들이 백목사님이 전하고자하시는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간단하게 요약해서 올리면 안될까요? 설교자체나 용어가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답변) 권면이며 지적으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설교에 대한 기본 인식이 이렇습니다. 1.공회 신앙노선은 옳은 것, 가장 좋은 것을 찾습니다. ①참 하나밖에 없는 옳은 것, 그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진리라고 합니다. 행정이든 교리든 설교든, 가장 옳고 더 좋은 것을 찾아 출발한 곳이 공회노선입니다. 미운 사람이 말을 했다 해도 옳은 것은 배우자는 것이 공회 신앙노선입니다. 남이 말을 해도, 다른 교파가 앞서 내놓은 논리라도, 경쟁하는 옆교회의 것이라도 옳으면 따라가고 옳으면 좋아하고 옳으면 흉내내자는 것이 공회 신앙노선입니다. 주일학생이 말을 해도 옳으면 따라가고, 목사가 말해도 틀리면 따라가지 않습니다. ②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것과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옳다고 생각한 것이 반드시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옳다고 생각한 것을 세상 이권이나 형편 사정 때문에 버린다면, 옳은 것을 찾아낼 자격도 없으며 옳은 것을 찾아낼 가능성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옳은 것을 찾았다고 해도 곧 손에서 버릴 사람입니다. 따라서 하나밖에 없는 참된 것, 옳은 것, 하나님의 진리를 찾으려면 우선 자기가 아는 대로, 따져보는 대로, 가장 옳고 바른 것을 잡아야 합니다. 가장 옳고 바른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옳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놓지 않는 사람이라야 옳은 것을 찾아나설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만일 현재 옳은 것을 잡지 못하고, 엉뚱한 것을 잡았다면 그는 우여곡절을 통해 반드시 옳은 것을 찾게 됩니다. ③총공회 신앙노선의 특이한 점은, 옳다는 것보다 옳은 것을 찾는 자세에 있습니다. 총공회 신앙노선의 장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 시대 가장 중심교회입니다. 그러나 총공회 신앙노선의 가장 큰 장점은, 옳은 것을 향한 자세입니다. 그 자세 때문에 총공회 신앙노선은 이 시대 교회 중 가장 옳은 노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공회노선의 초기는 엉성했고 문제점이 많았으며 여러 면에서 부족했습니다. 백영희신앙연구에 전념하는 이곳이 구체적으로 그런 사실을 가장 많이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갈수록 자라갔고 고쳐갔고 길러갔고, 온전해져 갔다는 것입니다. 교리도, 행정노선도, 크고 작은 어떤 면에서도 그러했기 때문에 초기 공회모습은 고신과 거의 같은 정도였으나, 그 나중은 아주 종자가 다른 정도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고신은 교권과 형편과 사정 때문에 옳은 줄 알면서도 정치를 했고 공회노선은 옳은 것을 두고는 죽으면 죽었지 타협이나 정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장성하고 강대했던 고신의 신앙노선은 쇠락을 거듭했고 반대로 공회노선은 고신이 원했던 그 꿈의 목표를 달성하게 됩니다. ④일반교회들처럼, 좋은 교리가 있지만 타 교회 것이라 해서 못본척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어도, 남의 것이면 못본 척 하는 것이 한국교회입니다. 아무리 옳아도 내가 주장한 것만 기억하지 남의 것은 부러 잊고 있습니다. 고신의 새찬송가가 좋아서, 공회는 고신이 버린 찬송을 지금도 사용합니다. 공회는 장로교지만 극하게 대치하는 침례교의 유아세례 거부교리를 전폭 따릅니다. 공회는 장로교지만 침례교의 개교회주의노선이 옳기 때문에 전적 따릅니다. 누구의 것이라도, 누구의 입에서 처음 나온 것이라도, 그것이 옳은 것이라면 그 사람에게 감사하며, 그 사람의 이름을 표시하며 사용합니다. 공회 노선에서 시작하여 한국교회를 빛낸 수많은 제도와 교리가 많았지만 그 출처를 밝히고 사용하는 분들을 아직까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공회노선의 교리와 주해와 설교를 사용하면서 포장이나 단어를 살짝 바꾸어 마치 자신의 독창적인 것처럼, 아니면 원산지를 알 수 없도록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이 노선은 옳은 것이 전달된 것으로만 만족하고 있습니다. ⑤알고보면, 공회노선처럼 마음 넓고 모든 교회를 형제로 생각하는 곳도 흔치 않습니다. 자기 소개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곳이어서 오해들이 많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반대로 아는 사안이 너무 많습니다. 대개 공회에 대한 비판은 기초사실 자체를 잘못 알아서 생긴 일입니다. 그리고 공회의 장점은 이곳이 이렇게 자료 전달을 위해 공개적으로 홈을 이용하기 전까지는 너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이 노선 출발에 수고한 분의 첫 걸음이 그러했고, 그 뒤를 따르는 이들이 그런 자세가 옳다고 생각하여 묵묵히 따랐기 때문에 공회는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너무 큰 장점이 많고 외부에 알려진 단점은 대개 장점입니다. 이곳 홈은 이 홈 답변자의 수고와 노력으로 이 노선을 세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노선에 대한 자랑을 서슴치 않고 하고 있습니다. 이곳 답변자도 이 노선을 몰랐다가 알게 되었기 때문에 답변자처럼 몰랐던 진리를 아는 분들이 많도록 노력하는 차원입니다. 2.총공회 소속 교회들의 설교 형태 ①공회 노선의 목회자들이 알기로는 백목사님 설교자료 이상이 없었습니다. 역사에 살다간 유명한 분들의 교리서 주해서 설교집 기타 신학서적이나 여러 참고도서들을 다 훑어봐도, 공회 소속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알기에는 백목사님 설교 이상의 자료가 없었습니다. 그분의 설교는 교리와 주해와 설교와 목회와 교인의 개인 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비교할 대상이 없을 정도로 너무 수준높은 설교였습니다. 그 설교의 가치를 이렇게 평가하는 기준은, 그 설교만큼 성경을 잘 안내하고 알려주고 성경대로 살도록 힘을 주는 자료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원어소개를 기준으로 말한다면 백목사님 설교록보다 탁월하게 나은 주해서와 설교집이 한없이 많습니다. 또 세상 시사와 만담과 연예계소식 등을 알려주는 자료집으로 말하면 이 설교록은 꼴찌에 속하지 중간에도 들지 못합니다. 성경을 알려주고 성경으로 살도록 힘을 주는 이 면을 기준으로 한다면, 공회 소속 교역자와 교인들은 이 설교 이상의 자료를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②좋으면 배우는 것이 이 노선입니다. 좋으면 배우면 됩니다. 배워서 그보다 나으면 그것을 오히려 가르치면 됩니다. 아들이 애비에게 배우고 신세를 지지만 나중에 애비보다 나아지면 애비를 가르치고 먹여 살리는 것입니다. 애비가 밥을 먹으면 새끼는 우선 흉내를 잘 내어 밥먹는 것을 부지런히 따라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애비가 밥을 먹는다고 자기는 독창적인 것을 하겠다면 똥을 먹는다든지 아니면 밥을 귀로 먹는다면, 그것은 생명체가 생존하는 기본 원리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공회는 사실 신앙면에서 강퍅하고 못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연인 줄은 모르겠으나, 하여튼 결과적으로 수준들이 대단히 낮습니다. 다른 교단들은 유능한 분들이 많아서 엇비슷한 실력들이 많으나, 공회는 백목사님의 신앙수준은 너무 높고 그 밑에서 배우는 이들의 수준은 너무 낮아서, 마치 다른 교단은 별들의 모임이라 한다면, 공회는 애비 하나에 젖먹이 자식 정도만 주렁주렁 매달린 정도입니다. 그래서 자립으로 설교하고 스스로 이 시대를 비출 교리를 발표하기까지는 일단 배우기를 노력합니다. 배우는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는 사람 자기 수준에서 제단을 해버리고 취사선택을 하면 우선은 뜀박질을 빨리 하는 것 같아도 기초가 부실하여 나중에는 자라지를 못합니다. 식물로 말하면 웃자람이 지나치면 겉보기는 쑥 큰 것 같은데 열매가 없습니다. 내실이 없다는 뜻입니다. 요즘 잘 먹여 기른 아이들이 과거 사람들보다 외모가 대단히 빨리 성숙하여 어른의 모습을 가지는데 체력과 깡과 생존력에서는 헛깨비들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의 학생은 선생님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고, 선생님이 칠판에 적는 글씨를 최대한 잘 흉내내어 적어야 좋은 학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1 + 1 = 2'라고 가르치는데, 유치원 학생이 '1 = 1 = 3'이라는 신 학설을 제시한다면? 이것은 크기도 전에 되바라져서 쓰지 못할 아이가 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적는 칠판 글씨를 따라 기억 니은 디귿을 흉내내어 적어야지 자기가 무슨 한석봉 필체를 미리 개발한다고 알파벳을 배우면서 선생님과 다른 식으로 글을 적는다면 공부는 아주 못할 아이일 것입니다. ③수준으로 본다면, 이곳에서 제공하는 백영희설교자료를 성실하게 옮겨 전하면 좋겠습니다. 공회 소속 교역자들 중 1989년 백목사님 생전 최후의 순간에 목회자였던 분들은 이곳 답변자가 개인적으로 상당히 내면적인 것까지 파악하는 것이 많습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 수준들이 백목사님 설교 자료를 한 자도 빼지 않고 더하지 않고 그대로 또박또박 읽어가며 교인들에게 설교를 했으면 참 좋겠다는 정도입니다. 수준이 초등학교 1학년이나 유치원생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이 1년만에 초등 6년 과정을 떼고, 2년만에 고졸 과정을 끝낸 다음 자기대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서 백목사님과 필적할 만한 선지자로 자라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배껴서 옮기는 것도 제대로 못해서 차라리 녹음기를 틀면 더 은혜롭겠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너무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시겠지만 대체적으로는 그러했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이 시대 공회노선 교역자와 교인들이 알고 깨닫기로는 가장 성경을 잘 가르치고 잘 안내하여 성경대로 살게 하는 그 설교 자료를 성실한 학생이 선생님의 지도를 따라 배워가고 흉내내어 기초를 닦아야 하듯 했는데, 대부분 웃자란 분들이 많아서, 그 설교 몇 번만 접해보면 그만 자기들도 입에서 척척 나오는 대로 굉장한 설교가 될 줄로 착각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현상이 백목사님 생존 최종 연도에 이르러서는 너무 많아졌고, 그분 사후 지금은 몇 분이나 그런 과거 배우던 자세를 견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3.질문 내용에 집중하겠습니다. ①백목사님 설교를 원본으로 하여 공회 교회들의 설교는 거의 꼭 같다는 말씀에 대하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대로 하는 분들은 몇 분 없습니다. 1970년대에는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1980년대 후반 들면서 급격하게 그런 현상이 사라지게 됩니다. 지금 이 홈의 /초기화면/총공회/현황/에서 '대구공회' '서울공회' 등으로 표현한 곳에서는 거의 그런 교회가 없을 것이고 '부산공회2'에서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너무 아쉬운 부분입니다. ②백목사님 설교 그대로 전하면 설교 준비할 시간이 적을 것 같다는 말씀에 대하여 대개 일반 교회들의 목회자 설교 준비는 주석 신학서 예화집 등을 짜집기하여 하나의 설교를 만들어내는데, 무분별하게 일시 유행에 맞추고 교인들의 그 당시 취향을 고려하여 그렇게 날림으로 준비하는 것보다는 공회 목회자들의 이 설교록 이용이 여러 면에서 장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설교 준비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설교를 준비하려고 그 내용을 읽다보면 우선 목회자 자신을 찌르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그 설교를 그냥 읽어주고 내려오려면 예수님을 파는 가룟유다의 상황에 이르기 전이라면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 원고를 만드는 수고와 시간을 전부 단축시킨 다음, 그 시간과 노력으로 자기가 읽을 그 설교록 내용에 목회자가 먼저 은혜를 받아 자기 속에 깊은 죄를 회개하고 그 말씀이 주는 은혜에 취하게 되어 그 말씀으로 자기가 우선 살아야 하는데, 전할 말씀으로 실제 자기가 먼저 사람이 되고 나서 그다음 교인들에게 소개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장점도 많습니다. 대개 설교라는 것은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나는 이렇게 의롭고 착하니까 너희들도 날 본받아서 배우라는 식입니다. 이 설교록을 충실하게 전하려는 분들은 그런 자세를 가질래야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 설교 내용을 몇 줄 읽다보면 자기 상황이 너무 기가막혀 자기가 제일 죄인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설교 준비에 들어가는 시간이 아껴지는 것은, 원고 작성의 시간은 단축되지만 전달할 그 설교 내용에 목회자가 먼저 비판을 받고 그 말씀에 의하여 회개를 하는 등 그 말씀을 접하며 목회자가 고쳐지는 단계가 있기 때문에 실제 설교준비가 최상의 상태로 바뀌게 됩니다. 이런 면 때문에 대개 공회 목회자들의 설교 실력은 일반 교회 목회자들과 비교하면 아주 탁월하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혹 원고준비시간조차도 들지 않는다 하여 잠을 더 자고 세상 다른 일에 더 취한 분들이 있다면 배나 악한 사람이 되어 타락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될 사람들은 애당초 공회처럼 목회자들에게 자유가 없고 시집이 센 곳에는 가입을 하지 않거나 혹 잘못 알고 들어왔다면 얼른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③목회자가 자기 마음에 드는 설교 한 편을 복사해서 올라간다면? 자기중심의 자기 취향대로 그 설교를 골랐는지, 기도하여 하나님 앞에 그 설교의 필요를 느껴 골랐는지, 일반 교인들이 안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물론 짐작은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그렇다고 발표하는 것은 곤란한 일입니다. 예컨데, 기도하여 꼭 그런 설교가 자기 교회에 필요하다 해서 골랐다면 잘 골랐다고 해야 할 것이고, 그렇게 고른 설교 내용을 목회자가 잘 증거하기 위해 먼저 읽고 은혜를 받는 중 그 말씀이 너무 심오하여 그 내용을 보지 않고 전하다가 토씨 하나라도 착오가 생겨 교리적으로 이단 문제가 되는 등 염려스러운 점이 있다면 복사를 해서 그대로 읽는 것이 더욱 좋겠지요? 또 더 정확하게 전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목회자 뿐 아니라 온 교인들이 다 볼 수 있도록 설교를 교인 숫자대로 복사해서 다 나눠 주고 함께 읽으면 더 은혜스러울 것입니다. 이곳 답변자가 참석하는 5월과 8월 집회는 1989년 이래로 현재까지 늘 그렇게 해오고 있습니다. 어쨌든 문제는 은혜입니다. 은혜는 원고를 읽었는가, 교인들도 함께 보며 읽었는가, 아니면 목회자가 내용을 외워 전했는가, 아니면 자기 독창적인 설교를 자기 아이디어를 따라 임기응변으로 쏟았는가, 이런 것에 달린 것이 아니라, 성령이 그 예배와 그 인도자의 중심과 교인의 자세를 보며 은혜를 주면 은혜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냉랭하게 되는 것입니다. ④설교준비는? 이미 이곳 문답방 초기에 관련 내용으로 문답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미 오간 자료를 한번 봐 주셨으면 합니다. 설교준비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긴 글로 설명을 해야 하는데, 또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주일학생도 알 수 있는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일반 신학교의 설교학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20가지 단계, 24가지 단계 .... 등등의 공식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것은 교육심리학의 청중파악 등을 고려하여 적당하게 버무린 기법인데, 그런 책들을 적은 분들은 설교라는 세계의 근방에도 가본 냄새가 없습니다. ⑤공회 교회들의 설교시간으? 현재 이곳 홈에 올리는 설교 자료는, 이용하시는 분들의 수준과 차원이 너무 많습니다. 이 설교를 전혀 접해 보지 못한 분들도 있고 또 백목사님의 설교 내용이 너무 깊은데 서툰 직원들이 자기 수준에서 '어'를 빼고 '아'를 빼다 보니까 이단 교리가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김이 새서 밥맛이 없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불평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선 이 설교 세계를 전혀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설교 길이보다는 설교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편집한 자료가 /초기화면/활용자료/정리설교/'소선집'입니다. 조금 설교록에 가깝게 한 것이 /석의본/입니다. 그리고, 설교의 길이 문제는, 이곳 홈에 올려진 내용이 많으므로 그 중에 짧은 설교를 읽는 분들이 찾아 읽어야 할 단계입니다. 앞으로 이 홈의 시간과 인력이 더 보충된다면, 현재 5천여 개의 녹음본 설교를 하나씩 그렇게 여러 차원의 교인들을 위해 일일이 작업을 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 이 홈은 그 작업은 우선순위에서 가장 멀리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소선집이나 석의본 또는 스스로 새벽기도 등 짧은 설교를 몇 개 또는 몇 십개 정도 접하면서 백목사님 설교세계를 알게 된다면 그다음부터는 이곳에서 설교자료를 될 수 있으면 손을 대지 말고 있는 그대로 놔두라고 권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4.같은 내용이라도 표현법이나 단어들이 어렵다는 지적은? 충분히 이해 합니다. 그러나 더 쉬운 표현으로 바꾸다가 그 원 표현 속에 들어 있는 깊은 의미들이 변동될까 해서 쉽게 작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이 아니므로 어떻게 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그러나 피카소 그림이 어렵다고 해서 답변자가 붓으로 줄 몇 개를 긋는다든지, 또 박목월의 시에다 몇 글자를 집어넣게 되면, 우선 우리끼리는 좋다고 할 수 있지만 훗날 많은 면을 생각하게 되면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고 후회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시들을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 외우게 하여 좋은 문장 좋은 표현을 익히게 하고, 그것을 국어교육과 언어교육 나아가서는 인간미를 함양시키는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또 하나 참고할 것은 이전 10살 꼬마들에게 천자문 등 별별 어려운 한문을 그대로 다 가르쳤는데, 요즘은 아이들 이해를 편하게 한다 하여 만화로 모든 학습을 처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선은 편리하지만 인간을 너무 얕게 만드는 결과가 있습니다. 하물며 신앙의 세계는 성령이 깨닫게 하시고 말씀의 은혜를 받게 하면, 표현과 단어의 난이도는 상관이 없었다는 것이 과거와 오늘까지의 경험입니다. 좋은 지적과 충고를 주셨으며, 또한 쓴소리일 수도 있고, 이곳을 사랑하므로 권면하고 좋은 방향으로 나가도록 안내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쓴소리를 듣기 싫어서 저항하는 자세 때문이 아니라, 백목사님 설교를 두고는 답변자부터 참으로 그 설교를 들어야 했던 지옥같은 오랜 시간들이 있었고 그 뒤에 완전히 반대생활을 하면서 오늘까지 나오기 때문에 쉽게 듣고 답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재질문) 감사합니다 정성스러운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백목사님 살아계실때부터 백목사님의 설교를 접했던 사람입니다. 백목사님의 설교가 제 자신의 삶에 스며들어 열매를 맺기를 원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을 뿐입니다. 총공회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의 배경을 잘 모르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알고 있을 뿐이지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백목사님의 설교를 묵상하며 성경중심의 삶을 사는 자가 되고자 합니다. 목사님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설교를 복사해서 올라오신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는 말씀을 먹어야 하는데 너무 안타까워서 드린 말씀입니다. 그 목사님이 항상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만 종종 그런일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설교를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이 되기 때문에 가슴이 아픈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설교를 잘 준비하여 성도들에게 먹이는 것외에 무슨 할일이 그렇게 많다는 말입니까? 복사본을 성실히 전하시면 무어라 말하겠습니까, 그 복사본에 예화를 하나 말씀하시고 몇마디 하시고 설교가 끝났습니다. 목사님? 교회를 옮기는 문제는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교회가 우선이 아니라 내 영적인 상태가 바로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답변) 교회이동에 관련된 몇 가지 주의할 점입니다. 1.말씀에 은혜가 된다면, 만사 해결인데 ①앞에서 오간 대화는 원칙적인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말한다면, 설교를 독창적으로 만들든지 좋은 설교를 옮기며 설교자 자신도 배우든지 어떤 형태로도 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방법은 절대 안되고 어떤 방법은 절대 해야 한다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보다 좋으냐는 정도로 비교하고 각자가 자기 양심을 따라 결정할 따름입니다. ②문제는 말씀의 은혜입니다. 중요한 것은, 설교의 방식이 아니고 과연 '은혜'가 있느냐는 문제입니다. 담임목회자의 설교가 객관적으로 볼 때 10점 짜리 밖에 안 된다 해도 그 교회 교인들이 그 설교에 큰 은혜를 받고 그 말씀 때문에 신앙생활에 힘을 얻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왜 그런 설교에 은혜를 받느냐고 꾸중을 할 일이 아닙니다. 병신 애미라도 그 젖을 먹는 그 집 아이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입니다. 옆집 대졸 출신 새댁으로 엄마를 바꾼다면? 그때부터 불행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백목사님 필기를 불러주는 것으로 설교를 하든, 아예 그분 녹음테이프를 틀어서 설교시간을 대신 하든, 아니면 설교자가 백목사님보다 나은 설교 원고를 작성해서 신제품을 내놓든, 교인이 말씀에 은혜만 받으면 만사가 해결되는데 만일 은혜가 되지 않으면 백목사님 밑에서 직접 설교듣던 서부교인들도 고통을 많이 겪는 분들을 봤습니다. ③말씀을 듣는 시간이 사모되고 기다려진다면, 교회는 만사형통입니다. 교인은, 일단 말씀에 은혜를 받으면 목회자가 천사로 보이고 또 천사처럼 대우하는 것이고 또 그 대접을 하나님께서도 기쁘하십니다. 문제는 은혜가 되지 않으면 설교자를 미워해서는 안 되는데 그 자리에 앉아있으며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고통과 불편과 원망이 결국 강단을 향해 쏟아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목회자가 설교를 철저히 준비하고 또 말씀에 은혜가 있도록 성령님께 뜨거운 기도로 간구하고 그 강단에 오를 때 두려워 떨면 좋겠는데, 처음 목회하고 출발하는 신참 목회자들은 그렇지만 불과 3년만 지나가면 강단 위에서 노망한 늙은이처럼 아이 3명 낳은 아줌마처럼 아무렇게나 설교시간을 땜방하고 넘어가는 것이 흔합니다. 백목사님의 평생 탄식이며 지도였습니다. ④설교자는 늘 결혼식장을 들어가는 신부와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이 시대 최고의 설교가였던 백목사님은 후배 목회자들에게 죽는 날까지 맡은 강단을 상대할 때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신부의 조심 준비 두려움을 가지고 머리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는 그 깨끗하고 정성스런 걸음이 되라고 합니다. 또 아이 셋 낳은 나를 설마 어떻게 하겠느냐 해서 푹 눌러앉아 아무 곳에서나 아무렇게 행동하는 것을 그렇게 경계했습니다. 말씀에 은혜가 더해지면, 교인도 좋고 설교를 맡은 목회자가 교회 목회하는 것도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고 그 좋은 점은 수도 없이 많으나, 문제는 목회자도 교인 출신이고, 그가 목회라는 수고는 하지만 그 본질과 수준이 교인들처럼 변동도 많고 변덕도 많고 대접은 좋아하고 하기 싫은 것은 게을러서 미루고 아니면 제 성질대로 모든 것을 처리하여 교인들에게 수없이 고통을 주게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어느 누구를 두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고 그냥 우리 거의 모든 교역자들의 현실이며 현황입니다. ⑤답변자 교회에서도 말씀에 은혜를 받지 못하여 교회를 떠나는 분들이 계십니다. 설교를 두고 이런 저런 말씀을 드리는 여기 답변자도 그 맡고 있는 교회에서 교인들이 말씀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교회를 떠나는 것을 큰 고통으로 목도하고 있습니다. 대개 이런 저런 다른 이유 때문이라고 말씀들 하지만 답변자 내심으로는 말씀에 은혜를 받지 못한 교인의 고통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말씀 은혜에 붙들리면 가라고 밀어내도 예배당 문밖에 서서 창문으로 흘러나오는 말씀이라도 들으려고 할 것입니다. 물론 다른 형편 때문에 교회를 옮기는 분들도 가끔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 말씀 은혜에 붙들렸다면 그런 정도의 외부 요인은 교회를 옮겨야 하는 문제로까지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어떤 말을 하든지, 말씀 은혜를 받지 못하는 분이라고 판단되면, 그 분이 말씀은혜를 받을 수 있는 교회를 선택할 수 있도록 편안하게 가시게 합니다. 어떤 경우는 설교 자체가 문제있는 것은 아닌데 그 교인 자체가 이 설교와 전혀 맞지 않아서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중국식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항상 된장국만 내놓으면 싫어할 수도 있고, 당뇨병이 있는 분인데 양식만 내놓으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한 분의 특별한 사정 때문에 식당의 종류를 바꾸는 것은 문제고, 그 손님이 즐길 수 있는 다른 식당을 소개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나의 교회에 출석한 교인 한 사람이 움직일 때는 나의 수족 하나를 끊어내는 아픔을 가져야 하는 것은 어떤 목회자라도 기본적으로 가질 자세이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는, 조금 더 참고 있으면 신앙이 자라면서 참 말씀의 은혜를 알게 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라고 생각되면 적극적으로 만류하고 그런 설명을 드려서 참고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여러 경우가 있습니다. 2.질문자의 경우를 집중하여 말씀드린다면 ①백목사님 설교 세계를 접해보신 분이라면, 단어나 표현의 어려움은 초월하셨으면 선악과라는 단어를 쉽게 고친다고 에덴동산 관련 말씀이 깨달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학교 공과에서 에덴동산 선악과 타락을 어떻게 묘사해야 어린 아이들이 이해를 하겠느냐고 모든 교회 교육책임자들이 연구를 하고 여러 대안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부 속았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것 뿐입니다. 선악과라 했으니 그 말씀 그대로 전하면 됩니다. 이해와 깨달음과 말씀의 은혜로 이어지는 것은 성령이 하실 일입니다. 이해로 말한다면, 우리가 하나님과 천국을 보지도 못하고 그 소망 때문에 항상 기쁘고 즐거운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비록 설교는 성경이 아니므로 쉽게 표현해도 되고 다른 단어로 교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어라는 것은 셋트로 이해되는 면이 있습니다. 자동차 브레이크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이전에는 고장을 일으킨 고무판 하나만 교체를 하는 식으로 수리를 했으나 요즘은 셋트 단위로 전체 교환을 해버립니다. 삼위일체라든지 예정이라든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라든지 등 토씨 하나도 바꾸거나 달리 표현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 그 면에 정통한 분이 뜻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조금 달리 설명하며 이해를 돕는 경우도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하다가 오히려 크게 잘못될 수 있기 때문에 그대로 전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대한 은혜는 성령에게 맡기고 전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문장이나 단어 표현 등의 난이도와 상관이 없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②설교록 복사를 통해 설교하는 분들의 폐단도 이곳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각양 백태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특히 어린 교인을 처음 전도하거나 인도해서 예배당에 앉혀놓고 오늘 말씀에 은혜를 받아서 신앙출발이 되게 하려고 마음을 기울일 때, 목회자가 원고 몇 장 들고나와서 그것마저도 설교하는 사람 자체가 무슨 소리인지 모르고 횡설수설 할 때는 그 목사를 저 예배당 뒤로 끌고가서 한번 패놓고 싶은 정도로 끓는 분노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런 표현을 교인 입에서 내놓는다는 것은 극히 조심해야 하지만, 답변자는 목회자이므로 자신을 포함한 경우이므로 말씀드립니다. 과대표현이 아니며 극단적인 표현이 아니며, 사실상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한 교인들이 한번씩 겪는 일입니다. 그 교회 담임목회자라는 자리는, 설교의 은혜면만을 가지고 그를 평가하는 전부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분명히 그 교회의 말씀 은혜는 그 교회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문제 때문에 설교가 은혜롭지 않아도 기다려야 할 때도 있고, 또 교회가 가진 다른 사명 때문에 설교 은혜를 포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심지어, 그 목회자를 배척한 다음 그 분보다 나은 분을 모실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면 목회자 없는 교회보다는 현 상황을 유지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것은 한 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본 결정사항이기도 합니다. ③만일, 목회자에 상관없이 교회를 책임진 분이라면 교회를 떠날 수 없습니다. 교회 소속과 교회 이동 문제를 두고 이곳 홈에서 이미 오간 자료들이 여러 건 있습니다. 절대로 옮기지 못한다거나 절대로 옮겨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조심하고 가장 신중해야 할 사안입니다. 관련 자세한 내용은 검색어를 통해 상식선에서 한번 참고하시기를 권합니다. 이번 질문자의 경우는, 우선 현 교회 목사님의 설교에 은혜를 주시도록 얼마나 기도하고 그 말씀을 바로 듣고 은혜를 받아보려고 노력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다 연약함으로 인간이 노력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수준으로 노력하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옮긴 뒤에 훗날 생각해도 나로서는 그 당시 그 말씀으로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다고 후회하지 않을 정도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말씀 은혜를 찾아 교회를 이동하여, 그 사람의 평생과 신앙에 크게 도움이 된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목회자와 이런 저런 사소한 다른 감정 문제 때문에 그 목회자를 못 보겠다고 토라져 도망을 가면서 핑계를 댈 때 말씀의 은혜를 거론하여 그 목회자와 교회와 남아 있는 교인들에게 못을 박아놓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④한 가지 각오하실 것은 말씀 은혜를 더 잘 받을 수 있는 교회를 찾는 것은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자기의 개인 취향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고, 말씀의 은혜 자체만을 가지고 더 은혜롭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교회는 찾기는 어렵지만 찾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교회를 찾아 그 교회에 소속을 두었다 해도, 그 교회는 말씀 은혜는 더 있는 대신에 교인들간 파벌 싸움에 교회의 밑독이 깨져서 모든 은혜가 다 유출되는 경우도 있고, 그 목회자가 설교는 잘하는데 교회 돈을 전부 절단내기 때문에 교인들로부터 도둑이라는 비판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가 시작될 때 자기가 그 교회의 최후 교인이라야 할 의무가 부과된 그런 차원의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목회자가 스스로 교회를 나가면 나가야지 그 교인으로서는 끝까지 교회를 지켜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죄를 지어가며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세상식으로 생각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다른 교인들에 비하여 자기가 가지는 책임의 정도가 훨씬 크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교인은 일반 교인으로서 참고 지키고 할 일을 다 하되 더 이상 자기 신앙으로 버틸 수 없고 더 이상 현상황을 지키다가는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최선은 아니라도 차선을 택하여 교회를 옮기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혼은 성경이 금하지만, 이혼하지 않으므로 더 큰 죄를 짓게 된다면 이혼하는 죄를 짓고서라도 차선책을 찾아야 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습니다. 아이를 엄마가 직접 젖을 물려 키워야 하지만 엄마의 사회진출 기회 때문에 아이를 유아집에 맡기는 것이 아니고 그 가정의 특별한 상황 때문에 엄마가 눈물을 머금고 아이를 유아집에 맡기고 돈을 벌러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옳지만, 엄마의 건강에 더 이상 감당되지 않을 상황이 발생할 때는 산아제한을 할 수 있습니다. 산아제한 자체는 분명히 죄가 됩니다. 그러나 그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자신의 현상황이 있을 때는 여러 면을 놓고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교회 건축을 할 때 자기 집을 다 팔아서 연보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신앙으로 그것이 감당될지도 생각해야 하고 훗날 오늘 연보 때문에 자기 신앙에 더 큰 손해가 있을지도 면밀히 검토해 보셔야 합니다. ⑤신중하게 검토하시고, 만일 살 길을 찾아야겠다고 판단되시면 살펴보시기를 권합니다. 다른 교회를 한 두 번씩 방문해 보고 말씀도 들어보고 여러 면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교회를 옮겨 실패하고 후회하고 자타에 큰 죄를 짓는 분들도 수없이 봤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고통 속에 진실되이 살아가던 분들이 더 이상 자기 신앙으로 견딜 수 없어 말씀의 은혜를 구하다가 새로 다니게 된 교회에서는 평생 그 교회를 알게 된 감사와 기쁨 속에 진실되게 살다가 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문답을 하는 곳이어서 여러 가능성을 두고 살폈습니다. 답변자의 안내를 충분히 이해하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요는 본인의 양심으로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본인이 최종 판단을 하셔야 합니다. 순간적 충동을 성령의 강한 지시라고 오판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오랜 기간 꾸준하게 쌓여온 자신의 과거 말씀생활 등을 스스로 돌아보며 나 혼자 결정해서 한번 밖에 없는 짧은 이 세상 기회를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영원히 복될까 하는 문제를 두고 기도하시고 성령의 인도를 따르도록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