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질문) 성경 순서대로 설교하는 것은 옳은 방법인가요? (쉬/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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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질문) 성경 순서대로 설교하는 것은 옳은 방법인가요? (쉬/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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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질문) 성경 순서대로 설교하는 것은 옳은 방법인가요? (쉬/447)

먼저 이곳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며 은혜 받고 있습니다.
언젠가 라디오를 통하여 어느 목사님이 자신에 교회에선
성경을 차례되로 읽으시면서 설교를 하신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순서 되로 모든 예배 설교를 그렇게 한다고
하시면서 많은 부흥을 하고 있다고 방송에서 하시는 말씀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이 방법이 옳은지요?


(답변) 1.짧은 요약 답변 (성경순서를 따라 설교하는 방법론)

1.예배설교가 아닌 성경공부시간이라면, 성경을 창세기부터 공부할 수 있습니다.


2.그러나, 예배시간 설교를 창세기부터 순서대로 설교해 나가는 것은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정해진 틀에 따라 엄격하게 진행되는 '공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더하고 빼게 되면 바로 하나님이 치셨습니다. 따라서 구약의 제사는 어느 시대 어느 제사장이 어느 형편에서라도 제사의 종류 방법 그 내용이 정해진 공식에 따라서만 진행됩니다.

이에 비하여 신약의 제사가 되는 예배는 신령과 진정이 내적 성격입니다. 형식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로지 하나님이 시간마다 교회마다 그 현실마다 각각 달리 보여주시는 뜻을 찾아 전하는 것이 강단의 설교가 되어야 하고, 듣는 사람은 그 말씀 속에서 자기에게 해당되는 뜻을 찾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리고 예배 후 일상 생활은 그 전체가 예배 때 받은 그 뜻대로 사는 실행의 장소가 되는 것이니 실은 우리 생활 전부가 예배입니다.


3.이곳이 집중하는 백영희신앙노선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 성경을 공부할 때는 최대한 본문 순서대로 접하는 것이 좋으나, 예배 설교는 그 시간에 하나님께서 그 교인들과 그 교회를 향해 어떤 말씀을 원하시는지, 비록 어렵지만 전력을 다해 그 면을 찾고 전하는 것이 예배 설교라야 할 것입니다.


2.(*답변전체)

1.예배설교가 아닌 성경공부시간이라면, 성경을 창세기부터 공부할 수 있습니다.

성경전체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할 첫째 일입니다. 신학교나 성경학교에서 성경을 연구할 때는 순서대로 살펴보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물론 개인이 정해놓고 성경을 읽는 경우나 아니면 혼자서 성경공부를 할 때에도 우선 할 일은 성경 본문을 따라 충분히 익히고 파악한 다음 특별한 문제를 가지고 성경 여러 곳을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2.예배시간 설교 본문이라면 창세기부터 순서대로 설교해 나가는 것은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신약 예배는 요4:23과 롬12:1-2 등에서 그 성격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정해진 틀에 따라 엄격하게 진행되는 '공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더하고 빼게 되면 바로 하나님이 치셨습니다. 따라서 구약의 제사는 어느 시대 어느 제사장이 어느 형편에서라도 제사의 종류 방법 그 내용이 정해진 공식에 따라서만 진행됩니다.

이에 비하여 신약의 제사가 되는 예배는 신령과 진정이 내적 성격입니다. 형식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로지 하나님이 시간마다 교회마다 그 현실마다 각각 달리 보여주시는 뜻을 찾아 전하는 것이 강단의 설교가 되어야 하고, 듣는 사람은 그 말씀 속에서 자기에게 해당되는 뜻을 찾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리고 예배 후 일상 생활은 그 전체가 예배 때 받은 그 뜻대로 사는 실행의 장소가 되는 것이니 실은 우리 생활 전부가 예배입니다.

따라서, 성경본문을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정해놓고 순서를 따라서 그냥 나가는 설교와 다음 주일에 설교할 내용을 미리 주보에 발표하고 준비한 원고대로 행해지는 설교는 원칙적으로 신약예배의 본질을 모르는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이 두 가지 경우도 혹 어느 교회 어느 목회자에게 특별한 뜻이 있어 그렇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경우는 있을 수 있습니다만, 요즘 일반 교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설교 방식은 현 교회가 잠들어 있다는 하나의 증표라고 보고 있습니다.


3.성경본문대로 설교해 나가는 식이 호응을 얻고, 또 결과도 있는 것은?

1950년대까지는 한국교회로 말하면 모든 강단들이 성경중심이었으나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교회는 교회의 대형화가 주제가 되었고 이 과정에서 일반 교인들의 취향에 순간적으로 맞춰가는 목회가 한국교회를 주도하게 됩니다. 교인의 취향에 따라 유행가식 찬송이 예배의 중심에 서고 그대신 강해 중심의 설교는 시간과 내용면에서 코너에 몰리게 됩니다. 교인이 대중으로서 교회 주체가 되고, 목회자는 이 대중을 자기에게로 집중하기 위해 별별 아이디어와 기술을 선보이게 되면서 1980년대에 이르게 되면 세상인지 교회인지 도무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가 됩니다. 그러나 교회가 너무 세상이 되고 보니까 인간이 반발심리라 할까, 옛적을 생각하는 향수심이라고 할까. 1990년대를 전후하여 말씀 중심을 앞세우는 교회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개별 교인을 상대로 성경공부가 강조되고 강단에서는 성경본문대로 설교하는 방식이 무슨 '신선한 충격'이라는 되는 정도로 복고풍이 불게 된 것입니다. 물론 세상 뉴스를 논평하고 사회적문제를 두고 도덕교과서 말하듯 하던 설교들이 성경성구를 중심으로 본문을 따라 설교하는 방향으로 바뀌는 것은 분명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를 혹평한다면, 안 믿는 불신자들 수준의 설교가 이제 구약설교로 진보되었다고 할 정도이지 그것이 오늘 신약교회가 걸어갈 수준에서 본다면 얼른 벗어던져야 할 일이라고 보겠습니다.

어쨌던, 강단에서 세상 정치 사회 평론이나 하고 도덕 훈계나 몇 마디 하고 넘어가면서 교인들의 취향에만 맞추던 한국교회에 성경말씀 그대로를 읽고 그대로를 공부하고 그대로를 설교하자는 운동은 과거에 비해 분명 발전이며, 또 조금이라도 더 말씀을 강조하는 이런 교회들이 부흥을 한다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성경공부식 설교는 그동안 한국교회를 놀이집단으로 끌고가는데 앞장 섰던 통합측 교단이나 합동측 교단에서 최근 복고풍으로 주목을 받고 있어 그분들이 앞장 선 것처럼 보이지만, 계약신학대학원을 주도하는 이병규목사님은 시대가 이리 가거나 저리 갈 때에도 변치않고 평생토록 성경본문을 따라 주해하는 설교로만 내려왔습니다. 한국교회 중앙무대에서 조명을 받는 위치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분들의 성경중심 강해설교는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았을 뿐이고, 통합이나 합동교단은 교세적으로 볼 때 한국교회의 뉴스 중앙에 있기 때문에 그분들 중에서 시작된 것은 마치 한국교회의 첫 사례로 보일 뿐입니다.


4.이곳이 집중하는 백영희신앙노선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 성경을 공부할 때는 최대한 본문 순서대로 접하는 것이 좋으나, 예배 설교는 그 시간에 하나님께서 그 교인들과 그 교회를 향해 어떤 말씀을 원하시는지를 찾도록 설교자가 있는 힘을 다해 기도하고 묵상해야 할 것이고, 그다음 그 예배에 원하는 말씀을 잡았을 때 그 감동 그대로 전해야만 살아있는 설교요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붙들고 그 교회에 전하는 말씀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자면 자기 맡은 교회의 현재 형편을 살펴야 하고 그 형편에 대하여 감사가 있어야 하며 탄식이 있어야 하며 그 형편에서 각오 결심할 바가 늘 새롭고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꼭 원하는 말씀을 전하려고 마지막 확정을 하고나면 그 말씀에 거치는 교인들에게 잘못 보여 목회자가 쫓겨날까봐 그만 대충 좋은 말로 얼버무리고 마는 시험도 올 것입니다. 반면에 자기 교회에 필요한 말씀이라는 것만 생각하고 목회자 자신의 실력 부족 자기부터 회개할 것은 안중에 없이 교인들만 야단치기를 할아버지가 손주 앉혀놓고 훈계하듯 하는 엉뚱한 경우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은 전하되 먼저 그 말씀으로 목회자가 자기를 치고 자기를 죽이고 그 말씀으로 자기를 채찍질하여 자기가 그 말씀 앞에 가장 큰 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자기를 그 말씀 앞의 첫 제물로 죽여놓은 다음 다른 분들에게 이렇게 가는 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같다고 할 때, 비록 말은 부드러워도 그 말 속에는 말씀이 역사하고 감동으로 순종하는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방문자) 예배와 설교

예배와 설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 4:23-24)

많은 분들이 이 말씀도 잘못 이해하고 있고
사실 번역도 좀 잘못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헬라어 원문대로 번역을 제대로 한다면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에게"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에게" 예배할지니라
(요 4:23-24)
이렇게 번역해야 옳습니다.
왜냐하면 거기 신령이라고 번역한 단어는 "프뉴마타이"이고
진정이라고 번역한 단어는 "알레데이아--"인데 두 단어가 다
명사 단수 여격(--에게)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신령(神靈)과 하는 말은 영(靈)에게와
진정으로 하는 말은 진리(眞理)에게
로 번역해야 제대로 된 번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의 참된 의미를 바르게 해석하자면
하나님께 참으로(알레디노이) 예배하는 사람들은
이 산(山)이나 저(山)이나
예루살렘이나 베델에서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즉, 예배(禮拜)하는 장소(場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나니
예배(禮拜) 대상(對象)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수가성 우물가에서 만난 그 여인은
자꾸만 예배 장소 문제를 가지고 왈가 왈부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러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에 앞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요 4:22)
오늘날 많은 교회 많은 설교자들, 그리고 예배 인도자들이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예배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 많은 설교자들이 이 말씀을 인용할 때도
거의 의미를 모르고 원문의 뜻도 살펴 보지 않고
말씀하신 분의 진의를 파악도 못하고
아무때나 써먹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영(靈)이신 하나님께 진리(眞理) 되시는 말씀을 들으며
예배(禮拜)하는 것이 가장 바른 예배(禮拜)라고 믿습니다.
사람의 설교는 진리에 대하여 혹은 관하여(about) 말하지만
성경 말씀은 진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 봅시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7:17-19)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가장 신령한 것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시며
성령께서 하신 사역 중에 가장 신령한 것은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사역이요
다음으로 신령한 사역이 있다면
사람들에게 그 성경을 읽어주고 들려주고
가르쳐서 지키게 하는 사역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이보다 더 신령하고 더 거룩한
그 아무것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 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신 지상명령 즉 유언과 같은 말씀이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 하셨다고 믿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의 예배는 그 대상이 영이신
하나님께 그리고 진리의 말씀으로 임하시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가장 거룩한 예배라고 믿습니다.
주님의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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