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질문) 말씀이 은혜가 안 됩니다. 6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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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질문) 말씀이 은혜가 안 됩니다. 6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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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질문) 말씀이 은혜가 안 됩니다. 6624

타교인입니다
경기도 평촌에 있는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저희 목사님은 청교도 신앙에 많은 감동을 받아
청교도식 말씀으로 설교하시는 분으로 교계에서 유명하신분임에 틀림없습니다.
시중에 나와있는 저서도 30권 이상이 되시고
저도 그 책중 한권을 읽고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설교가 처음에는 좋았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너무 힘들어 집니다.
집중을 하면 할수록
은혜가 되기보단
목사님의 논증력에 감탄하게 되고
방대한 지식 체계에 감동할뿐
다른 은혜 작용은 없어 샘솟는 힘이 잘 나질 않습니다

물론 제가 너무 게으르고
더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아 그런걸수도 있겠으나
주위에 사람들도
말씀때문에 교회에 등록하였다가 말씀으로 인해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백영희 목사님의 말씀을 듣다가 비교가 되어 문의 드립니다.
물론 백목사님 말씀 들을 때는 읽으면서 듣는 차이가 있습니다.
집중도에 차이가 있긴 하겠습니다만
말씀을 들을 때 깊이 다가오는 은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넘 감사하지만,
왜 이런 은혜가 저희 교회에서는 잘 없는 것인지
뭐가 문제인지 알고 싶습니다.
저의 잘못이 많이 크겠지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변) 설교 은혜

1.설교의 내용면과 은혜면

설교는

그 내용이 첫째 성경대로 바로 되어야 하는데, 만일 그 내용이 정상적이라면
그 설교의 은혜 역사는 그 설교자의 진실과 충성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용의 정확성

설교는 첫째 그 내용이 성경에 맞아야 합니다.
성경에 틀렸거나 상관이 없는 내용이라면 그 설교는 이미 설교가 아닙니다.
설교의 내용은
목회자의 지식과 노선 그리고 일반 노력에 달려 있다고 보시면 되지만


-말씀의 은혜면

설교는 그 말씀을 듣는 이들이
그 말씀에 감동이 되고 그 말씀으로 양식을 삼아 그 말씀대로 사는 결과를 맺어야 하는데
이 면을 '은혜면'이라고 합니다.


그 설교자가 정말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으로 사는지 그 진실과 충성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설교 내용이 20점이라도 은혜는 90점짜리로 주실 수도 있고
그 설교 내용 수준이 90점에 이른다 해도 듣는 교인에게 20점 밖에 안되게 할 수 있습니다.


2.설교의 말씀 은혜는 오직 성령의 역사

따라서
설교 내용이 아주 잘못 나가는 경우가 아니라고 한다면
사실 설교의 은혜는 그 설교자의 내면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바로 이 면 때문에
다른 학문이나 강의나 다른 세계에서는 지식과 실력을 가지고 사람의 눈을 가룰 수 있지만
설교자의 설교 내용이 교인들에게 실제 어떻게 은혜가 되느냐는 면을 두고는
설교자가 어떤 웅변과 지식과 실력을 동원해도 성령을 매수하거나 달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므로 설교자의 실력은 여지없이 그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3.예를 든다면

이 홈이 소속한 총공회 내부에서
설교 내용 면만 가지고 비교한다면 답변자 앞서 나갈 분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의 은혜면으로 본다면
답변자보다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 더 진실하게 내어놓고 더 충성한 종들이 허다하여
교인들이 들을 때 하나님께서 은혜가 되도록 만들어 생명의 역사가 실제 나타나는 면에 있어서는 답변자는 중간에 서기가 어렵습니다.

말씀의 정확성은
교회 전체의 걸어가는 방향을 바로 잡아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내용이 바로 되어야 그 말씀 속에서 성령이 마음대로 역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의 정확성 자체가
성령이 듣는 교인들에게 역사하여 은혜가 되도록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정확한 설교에 더하여 설교를 하는 설교자의 내면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느냐?
하나님 앞에 얼마나 깨끗하며 진실한가, 얼마나 충성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는가?
여기에 따라 은혜의 역사는 달라집니다.


4.이런 면에서 본다면

답변자가 알기로는
국내 어느 목회자와 비교를 해도
그 설교 말씀의 내용 면에서도 백목사님과 비교할 분이 거의 없지만
그분처럼 하나님 앞에 도저히 생각못할 만큼 진실되게 충성한 분이 없습니다.

1960년대 초반에 계셨던
서울의 아현교회 김현봉목사님이라는 분의 경우는
백목사님처럼 설교의 내용과 그분 자신의 진실과 충성이 일반 설교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의 탁월함을 가졌다고 들었습니다. 또 그렇다고 답변자도 짐작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느 교회 어느 목사님이라고 말씀하지 않아서
마음 편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김현봉목사님 사후 한국교회에서 백목사님과 비교할 정도의 인물은 아직 답변자로서는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마무리 단계에 있는 백목사님 신앙생애를 한번 살펴 보실 기회가 있다면
그 분의 설교의 은혜가 왜 특별한지 그 배경을 짐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5.질문자께서 말씀하신 교회의 경우

청교도 신앙 전통에 철저한 분이라면
칼빈 이후 5백년 내려온 정통 교리에 충실한 분일 것입니다.
이런 분들의 설교는 거의 칼빈주의 정통 신학서적에서 나오는데
그 정확성과 내용은 설교로서 교인들에게 얼마든지 은혜를 끼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바로 그 신학 수준과 그 설교 내용의 정확성을 가지고
그분 앞선 과거 청교도 신앙의 많은 설교자들은
칼빈 이후 오늘까지 세계 정통 교회 교인들의 말씀 은혜를 감당해 왔으며
비록 최근에 오면서 그런 현상은 급격하게 허물어지고 있지만
그것은 다음에 설명드릴 '은혜면' 때문에 생긴 현상이지
적어도 설교의 내용면, 즉 정확성의 부족 때문은 아닙니다.

그래도 한 세대 전에는
설교의 정확성과 함께 하나님께서 자기 내면을 꿰뚫어 보며 중심을 보신다는 사실 앞에
두려워 벌벌 떨며 엎어져 죽은 자처럼 경건하게 살았던 분들이 더러 많았습니다.
바로 그런 분들에 의하여 교회는 말씀의 은혜를 누리고 그 시대를 감당했는데

최근 현 교계를 두고 살펴본다면
그럴 분위기 자체가 생길 곳이 없다고 보입니다.
경건이나 충성이라는 단어는 교회마다 서로 사용하고 있지만
멀리 갈 것도 없이 불과 수십 년 전 바로 이 나라 이 한국교계 약간 선배들과 비교를 한다 해도
도저히 경건이라는 표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오늘날에는 너무 죄송한 분위기입니다.

물론
그런 분이 전혀 없다고 말하지는 못합니다.
숨겨둔 7천명의 의인을 말씀하신 것은 비단 아합시대 뿐 아니라 바로 오늘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작년에 이 홈 일반자료방에 이 노선 외부에서 일반 정통신앙노선상에서
이런 경건으로 말씀의 은혜를 과거 시대처럼 재현하는 교회가 있어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질문하신 분의 교회는
그래도 외형이나 설교의 내용 면 많은 면에서 그런 분의 유형을 갖추었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그 실제 말씀의 은혜 역사는 어느 정도인지 들어보지 않아서 단정할 수는 없으나, 만일 듣는 분이 그 교회에서 열심히 믿으려고 노력을 하고 자기 듣는 면에 큰 문제가 없다면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전하는 분이 설교의 지식면에는 장점이지만 내면 경건과 진실과 충성의 면에서는 과거 종들만 못한 경우일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 전하는 분은
이 홈에서 한번 소개한 것처럼 말씀의 은혜가 과거 정통교회의 생명을 이어온 그런 차원인데
듣는 분이 말씀을 듣지 못하는 단점을 속에 두고 있어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일단 이 홈의 설교 재독을 통해 말씀을 듣는 귀를 가진 분이라면
그곳 전하는 목사님도 그곳 차원에서는 과거 훌륭한 분들을 이을 정도인데
질문자의 자라가고 있는 신앙을 계속해서 채워가며 올라갈 정도가 되지 않아서
말씀을 잘 받고 잘 자라는 분들에게는 지속적으로 은혜를 끼치지 못하고
그대신 이곳 백목사님 설교는 그 설교가 이끄는 수준에 이를 데까지는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에 그 수준에 이를 때까지는 계속 늘 새로운 은혜가 반복되는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6.일단 질문자께 권하고 싶은 것은

소속 교회의 교인이 되었다면
그 교회 내에서 은혜를 받고 신앙생활을 바로 하기 위해 끝까지 있는 힘을 다하는 것이 옳습니다.
교회 소속은 부모를 가진 자녀의 호적과 같아서
성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함부로 뽑아다 이곳 저곳에 접수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더 나은 부모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못난 부모를 나에게 주셨을 때에는 내게는 내 부모가 더 좋은 이유가 있습니다.

천하의 부모를 성적 순으로 나열해서
순위대로 부모를 평가하여 등수는 매길 수 있지만
자기의 부모를 택하는 것을 그 점수 순서대로 매긴다면 이는 생명과 인간과 가정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다만 자기 마음에 말씀의 은혜를 따라 가야 할 특별한 사유가 있는 분들
예를 들면 목회자라든지 아니면 목회를 소망한다든지 그에 준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분들이라면
또 더 큰 은혜의 세계를 접하여 받은 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가야 할 특별한 깨달음을 가진 분이라면 말씀의 은혜를 찾아 교회를 찾아 나설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인들이 이 교회 저 교회를 찾아다니며 자기 귀를 즐겁게 하는 면이 있을까 하여 크게 두려워하고 삼가해야 할 일입니다. 마치 질문자 한 사람을 두고 거론하는 것 같아서 죄송하지만 이 홈의 문답은 많은 분들이 읽고 참고하며 검색을 통해 거듭 활용하고 있으므로 이 홈 방문 모든 분들의 일반 상황을 놓고 고언을 드린다고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답변자도 1976년에 서울에서 1년간 학교를 다녔고 당시 말씀의 은혜를 크게 갈급하다가 백목사님 집회 설교를 듣고 모든 것을 단념하고 무조건 부산으로 찾아갔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 길을 걷지 않았다면 얼마나 애통할 일인지 그때 감동이 늘 생생합니다.

이렇게 주체할 수 없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역사가 있다면 앞뒤 가릴 것이 없으나, 대개 교인들의 교회 이동 99%는 겉으로는 말씀의 은혜나 기타 여러가지 신앙의 특별한 면을 거론하는데 깊이 따져보고 오랜 세월 되돌아 새겨보면 우리의 성격이 화급해서 섣불리 이리 저리 움직이는 단점이 많다는 점을 잘 고려하셔서 현재 답답한 상태를 주신 하나님 앞에 내 속의 무엇을 고쳐서 현 교회에 충성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현 교회나 현 자신의 신앙은 크게 문제가 없지만 자신이 자라가야 할 특별한 앞날이 있어 말씀의 은혜를 확실하게 찾아 나서야 할 사안이라고 한다면 자기 속에 역사하는 인도를 찾아 나서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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