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질문) 부활절에 가져할 자세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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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34
8. (질문) 부활절에 가져할 자세 1851
부활절에 우리가 가져야하는 자세는 어떠하여야 합니까?
(답변) 1.'기념일' 수준으로 넘어가는 것 조심하고 2.참 부활절은 '주일'임믈 기억하셨으면
1.부활절이란
주님이 우리 위해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부활하신 그 날을 기념하는 날이 부활절입니다. 2003년 올해는 4월 20일 주일날을 세계 교회가 부활절로 기념하였습니다.
부활절에 특별히 기억하고 기념할 주제는 바로 '부활'입니다. 그러나 이 부활을 부활로 바로 알려면 부활에 앞서 있었던 십자가 죽음을 알아야 하고, 그 죽음 이전에 33년의 고난을 알아야 하고 그 고난 앞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그 희생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영원한 때 전부터 이렇게 하기로 목적을 정하시고 그 시간 순서를 잡아놓은 예정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정도는 부활절을 맞아 정도 차이지 많이 듣고 배우고 또 다시 새겨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을 것입니다. 이번 질문은 특히 부활절에 가져야 할 '자세'였으니 오늘 이 시대를 사는 교인들이 '부활절'이라는 단어를 떠 올릴 때는 어떤 시각으로 보고 어떤 면을 주의해야 할지를 몇 가지 적겠습니다.
2.부활절을 대할 때의 자세나 주의할 점
①부활절은 기쁜 날이 아니고 한없이 '죄송한 날'입니다.
일반적으로 부활절이라고 한다면, 3일간 무덤 속에 있었다가 다시 생명을 찾아 살아났으니 성탄절과 같이 기쁜날이라고 알고 축하하는 날입니다. 성탄절을 '예수님 생일'로 알듯이, 부활절은 예수님의 '제2의 생일'로 아는 인식이 너무도 많습니다. 성탄절을 통해 예수님은 생명을 가졌고, 부활절을 통해서는 다시 한번 더 생명을 찾아 가졌으니 기쁜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거의 모든 사람들의 인식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자기 태어난 생일을 1년 중에 가장 기쁜 날이고 또 축하를 받아야 하는 날이라고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인간 자기를 기준으로 생각하여 예수님에게도 생일날을 만들어놓고 축하를 해드리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태어나므로 부모는 죽을 고생이고 평생 원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또 하나의 경쟁자가 태어나므로 바짝 긴장하겠지만, 자기가 세상에 나온 날이 생일이니 남 생각할 것 없이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고 축하를 받아야겠다는 날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일은, 하나님이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마치 우리 사람들이 화장실 구더기로 태어난 것처럼 더럽고 고생하게 된 첫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원해서 기쁨으로 하시겠다고 하신 날이니 하나님 기준으로 보면 좋은 날이지만, 하나님 기준으로 본다면 생일날의 의미가 없습니다. 생일날이라는 것은 인간 우리 기준으로 우리 식으로 우리의 출생을 축하하는 날이므로, 예수님에게도 우리 인간 기준으로 생일을 정해놓은 것인데, 그렇다면 예수님의 생일은 사실상 너무 슬픈날이요 기가막힌 날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부활절 역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으로 33년 살다가 죽었으므로 이제 하나님만으로 계시면 될 터이니 예수님의 죽음은 제2위 성자 하나님으로서는 짐을 벗고 고생을 끝내게 된 날입니다. 사람으로 오시기 이전 하나님으로 자유롭게 계실 그때로 돌아간 좋은 날입니다. 그런데 3일 후에 다시 사람의 몸을 되찾아 입었는데, 이번에 사람의 몸을 되찾아 입고 부활을 하게 되면 영원히 사람의 몸을 벗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부활 이전보다는 좋은 몸이겠지만 그래도 하나님으로서는 아무리 부활의 육체라 해도 인간을 입고 있다는 것은 영원히 독방 감옥생활을 하는 것처럼 답답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람의 몸을 입고 부활을 해야,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이 인간의 몸을 가지고도 하나님처럼 영원한 자유를 영원토록 입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첫 출생인 성탄절은 하나님이 구더기같은 인간이 되어 인간을 구하러 고생하는 첫날이었고, 부활은 이제 영원무궁통록 우리가 하나님과 같은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인간 몸 속에 갇히기로 시작한 날입니다. 사람들의 눈과 인식이 잘못되어 무덤에서 살아났다고 하니까 예수님에게 크게 축하할 날이라고 하는데, 정 반대로 알았습니다.
이날에는 우리가 고개를 들 수 없고, 너무 죄송해서 땅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어야 옳습니다. 즉, 부활절은 기쁜날이 아니고 한없이 죄송한 날이 되어야 합니다.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던 나를 살리고 내 부모가 대신 빠져 죽은 날이 있다면, 이 날을 자기 평생에 기쁜 날로 기념을 해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슬프고 죄송한 날로 기념을 해야 하겠습니까? 물론 제 목숨이 다시 살아난 면만을 본다면 좋은 날이지요.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 바로 그날 부모가 대신 죽은 날이니 슬픈 날이기도 합니다. 둘 중에 어느 면에 중심을 두어야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최소 기본 양심에서 알 수 있습니다.
②부활절을 포함해서 모든 기념일을 '기념일'로 지내는 폐단을 꼭 고쳐야 합니다.
8.15광복절이 되면 온 나라가 일본에서 해방되었다고 기뻐하고 지금 광복 60년이 다 되어가도록 아직도 그날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날 하루를 제외하면 아직도 일제 물건 사느라고 정신없고 일본 노래 만화에 빠져 정신이 없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또 그날 하루동안은 반일 극일을 해야 한다고 별소리를 다하지만 365일 이 나라 사람들이 하는 짓을 보면 또 한번 일본의 밥이 되고도 남을 짓만 하고 있습니다. 6.25도 그렇습니다. 모든 세상 기념일이 다 그 날 하루 '전시용'으로 지나가고 있습니다.
성탄절, 부활절, 추수감사절, 맥추절 등을 오늘 우리 교회들이 세계적으로 다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날들도 그 날 하루 행사로 그치지 그날이 지나가면 다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1년을 그 은혜로 늘 감사하지만 특히 이 날에는 이 면을 한번 더 집중적으로 강하게 느껴서 그 다음 1년동안 늘 그 정신에서 살아가도록 그렇게 기념일을 가지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세상식 기념일에서 그치고 있을 뿐입니다.
부활절은, 주님 날 위해 영원히 사람의 몸을 입고 다시는 그 몸을 벗지 않기로 고생을 자취하신 날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그 인간의 몸을 벗지 않으시므로 우리는 인간의 몸을 가지고도 하나님과 같은 영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감사, 이 죄송, 이 느낌을 부활절 하루만 가져서 될 일이겠습니까? 물론 부활절에 이 부활절의 정신을 늘 잊지 말자고 모두들 말은 하지만 실제는 그 반대입니다. 부활절 행사가 크질수록 부활절 외의 날들에는 부활절을 잊고 있습니다. 또 잊어버리도록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성탄절이 크질수록 성탄절 외의 날들은 성탄절 기간이 아니라는 의미로 강조되고 있습니다.
신약의 기본 방향은, 외부가 아니고 내부입니다. 형식이 아니고 실질적인 것입니다. 떠드는 것이 아니고 조용히 해결하는 것입니다. 부활절에 플래카드를 내걸고 무슨 행사로 복잡하게 하는 것을 우선 다 없애버려야 합니다. 계란이니 무엇이니 하는 그런 행사들이 교회를 천주교로 만들어가는 아주 무서운 염병입니다. 외부 행사를 크게 벌일수록 내적으로 정말 조용히 자기를 부활절의 사람으로 만드는 일은 손해를 봅니다. 냄비를 끓일 것이 아니고 가마솥을 데워야 할 일입니다.
③부활절을 두고 가장 크게 알아야 할 일은, 주일이 바로 부활절입니다.
원래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도록 구약교회에 명령을 했는데,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에 신약교회에게는 주님이 부활하신 요일을 안식일로 바꾸어 지키게 했습니다. 따라서 모든 주일날은 바로 부활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날 위해 죽으신 주님이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다시 사람의 몸을 입고 영원히 그 몸을 벗지 않기로 작정하고 출발하신 날입니다. 영원토록 희생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예수님의 고난이 끝이 났다고 생각하고 부활하심으로 이제 웃고 살게 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크게 잘못 깨달았습니다. 부활하심으로 이제 영원한 고난의 본격적인 시작을 하신 것입니다.
주일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이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에서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죽은 우리에게 모든 종류의 새생명, 새 것, 새 생활에 속한 것을 주시기 위해 다시 사람의 몸을 입은 날이 주일이니, 평생 주일을 준비하고 주일을 맞을 때마다 부활의 의미를 새겨야 합니다. 즉 '부활'의 개념이 빠진 주일은 바리새인이 형식적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부활'이 있는 주일로 주일을 지켜야 비로소 바른 주일을 지킨 것입니다.
이 '주일'에 대한 것은 성경이 명문으로 가르쳤으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날에 대한 것은 인간들이 공연히 자기 식대로 이런 저런 행사를 만들어 교회를 어지럽고 복잡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는 부활절 성탄절 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초대교회가 순교로 이어지던 그 고난의 수백년 세월에서는, 날 중에는 오직 주일날만 날이었습니다. 이 '주일'을 중심으로 7일을 계산하여 7일을 하나의 단위로 살았지 1년을 하나의 단위로 삼아 1년에 한번 지키는 행사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수없이 피를 흘려 이제 신앙의 자유를 찾게 되니까 그 후시대는 배부르게 살게 되었고 그렇게 되자 배부른 짓을 하기 시작했으니 그것이 천주교로 나타나게 됩니다. 예배에 말씀의 은혜는 식어지고 그대신 예배보는 집은 치장하고, 부활의 희생과 감사에 넘치던 주일은 없어지고 1년 한번 기념일로 행사하는 부활절은 날로 유명한 기념일이 되어졌던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석고화 과정이었습니다.
신약 마지막 시대인 오늘로 말하면, 그 신앙의 내면이 고도에 이르러 그 높이를 측량도 하기 어려워야 할 때인데, 오히려 오늘 교회는 구약을 껍데기로까지 따라 가려고 완전히 이성을 잃고 있습니다.
부활절은 일년에 한 번 있는 행사라 하여 부활절이 있는 주일은 '부활절' 주일이지, 부활절 '주일'이 아닌 형편입니다. 주일 앞에는 아무 수식어도 붙이면 안됩니다. 주일은 주일이고, 그 주일날 부활절에 대한 기념을 더한다는 개념이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