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질문) 시무투표와 개교회주의, 결과에 대한 순종은 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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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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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34
5. (질문) 시무투표와 개교회주의, 결과에 대한 순종은 659
우리 총공회가 분열되기 전에 시무투표가 교회별로 했다는 내용을 자료실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대구 공회에서는 분열 뒤 이 법을 따르지 않기로 가결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시무투표는 백목사님대로 운영하시면 좋은 제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시무투표를 하지 않다가 시무투표를 할 상황을 가정해서 질문을 드립니다.
목사님께서 소속된 공회에서는 3년마다 하는 시무투표를 계속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공회록에서는 목사뿐만 아니라 권사, 장로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 직분에 있는 분들도 시무투표를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총공회의 전통을 나름대로 이어가시려는 정신에 비추어 다 하고 계시리라 판단됩니다.
목사님 소속 공회의 교회 수를 40개 정도로 보면 3년마다 시무투표로 인해서 목사님의 자리 이동이 불가피한데 이런 것을 교인들이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시무투표를 인해서 부결된 권사, 장로들은 그 법을 잘 준수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리고 시무투표를 안수집사까지 개교회에서 할 수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교회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이 제도를 계속 시행하시면서 생긴 좋은 점을 말씀해 주십시요. 또한 개교회주의 원칙을 볼 때 시무투표는 공회의 월권행위가 아닌지 그 관계도 한번 설명해 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답변) 시무투표는 보이는 제도 속에 신앙노선이 있습니다. 교역자의 자기 단속입니다.
1.시무투표는 1970년에 결의되어 1989년 백목사님 순교때까지 일관되게 시행되었습니다.
2.대구공회와 서울공회는 백목사님 순교전부터 이 시무투표를 반대했던 분들이 주도했습니다.
1989년 백목사님 순교 다음 해인 1990년이 시무투표를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순교 이전에도 시무투표를 하지 말자고 했던 분들이니 그분 사후에는 두말 할 것 없이 폐지했습니다. 사실 교역자에게 시무투표란 교인들에게 자기 생을 완전히 맡겨놓아야 하는 위험하기 그지 없는 제도입니다. 문제는 복음과 교회를 위해 교역자들이 스스로 자청해야 마땅한 제도라는 것은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요즘 평생 직장으로 보장하게 되면 관료주의가 되어 조직을 완전히 망친다는 것이 세상 진리처럼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종류의 평가가 그 상한선을 향하고 있습니다. 국내는 5년 안팎, 미국은 10년 안팎에서 이런 분위기가 대세로 자리를 잡았으나 공회는 1970년에 이미 제도로까지 확정했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연계시로 참고는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으로 복음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나간다면 세상이 상상도 못하는 차원에서 세상까지도 본받아 따라올 세계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시무투표도 그 수많은 예 중에 하나입니다.
목사님 순교 당시의 대구공회, 현재의 대구공회와 서울공회의 경우는 목회자들이 사석에서 모여 단 한마디로 이 제도를 없애버렸습니다. 교역자들에 의한 교역자 밥그릇 챙기기를 한 것인데,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런지가 문제입니다. 현재 대구공회는 백목사님 신앙노선에 대한 복고주의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분들이 백목사님 신앙노선이 과연 옳았다는 것을 느끼고 돌아온다 할지라도 가장 마지막까지 넘어서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시무투표제도일 것입니다.
3.답변자 소속의 공회는 만 2년, 햇수로는 3년마다 시무투표를 하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의 연도 계산은 햇수를 헤아립니다. 만 2년마다 하는 것이 법입니다. 짝수연도마다 시무투표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 해를 건너 시행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4.정식으로 결의된 것은 시무투표의 대상에 장로님까지 포함하였습니다.
모든 교회의 전통이 그러하듯이 총공회의 전통도 지킬 것이 있고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으니 원칙은 지키고 그 시행은 그 원칙을 먼저 생각하면서 조절하고 있습니다. 시무투표에 관한 한, 혹 연도 계산법이나 시무투표의 시행에 세부 기술적인 면은 조절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무투표가 필요하다는 신앙노선은 아주 교회를 통째로 살리고 죽이는 중요한 원칙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부산공회(3)은 시무투표를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오고 있으며 이 시행은 시무투표의 신앙노선에 대한 확신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공회들이 단순 반복으로 시행하거나 아니면 폐기하는 경우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계속될 것입니다.
5.부산공회들의 소속 교회들의 숫자는 이러합니다.
신앙노선 때문이 아니라, 공회 소속이 자기 교회와 교역자 자신에게 미치는 여러가지 이권 등 신변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공회를 정하는 교역자들은 대세를 봐가며 이 공회와 저 공회를 오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목사님 사후 한번도 각 공회는 그 소속 숫자를 확정발표할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부산공회의 경우 (1)과 (2)가 10여년 등락을 거듭했기 때문에 그 소속의 숫자를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이곳의 짐작으로 (1)은 15개 정도, (2)는 50개 정도, (3)은 6개이며 중립에서 관망하는 교회들이 5개 정도입니다. 본 답변자 소속의 공회는 불과 6개로서 공회 전체적으로 가장 적으며 그 교회들은 목회연구소 연구부 직원들의 담임 교회들로 보시면 거의 맞습니다.
6.공회의 숫자를 40개인 경우를 예로 들면서도 상호 이동을 어렵게 보셨습니다.
잘 보셨습니다. 100여개 교회가 시무투표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이동을 하던 때에도 시무투표가 문제가 아니라 그 후속 조처가 되는 이동이 문제였습니다. 명령이라고 할 수 있는 백목사님의 발언이 있었을 때에도 그러했는데 하물며 백목사님 사후는 그 어려움이 많습니다. 부산공회가 단일로 있었던 1990, 92, 94년 등의 시무투표에서도 교회의 크기 목회자의 목사 여부 등 불가피하게 고려해야 하는 많은 요소들을 생각하면 이동은 거의 불가능했다고 보면 맞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시무투표를 반대하는 대구나 서울공회에서는 부산공회의 시무투표가 있고나면 그 후에 일어나는 여러 불편과 투쟁을 예로 들어 시무투표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총공회의 신앙노선은 신앙노선의 성경 원칙을 앞세우고 현실을 그 원칙에 맞추고 나왔지 현실적 고려 때문에 소송을 할 수 없이 한다든지 교단등록을 한다든지 주일문제를 넓히는 등의 일을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시무투표라는 제도가 신앙노선 차원에서 시행해야 옳다고 생각한다면 일단 시행을 하고 그 후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나옵니다. 이런 자세를 신앙이라고 보고 싶으며 이 반대의 입장을 인본이며 세상 염려와 재리라고 보고 싶습니다.
7.시무투표란 교인과 교역자의 상호 선택을 완전 개교회주의로 맞추는 것입니다.
총공회의 근본원리는 개인은 개인신앙양심주의이며 교회는 개교회주의입니다. 교역자가 싫으면 항상 교인은 교역자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2년 정도의 기간으로 그 기회를 갖게 한다면 당시로는 모든 원칙을 다 포함하면서도 실시에 따르는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 제도는 교인은 교역자를 2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보낼 수 있으며 동시에 목회자는 찬반에 상관없이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가 원하면 그리 가도 좋다는 사전 전제를 교인들에게 달아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의견이란 결국 교인 전체의 의사입니다. 전체 의사를 일단 75% 이상의 찬성으로 잡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25% 미만의 교인들이 끝까지 찬성치 않고 따르지 못하겠다면 이는 시무투표제도보다 앞서 있는 개교회자유의 원칙과 개인신앙양심의 원칙에 의하여 다른 해결을 보아야 합니다. 즉 교회의 분립으로까지 가겠느냐 아니면 75% 이상의 의견을 25% 미만 교인들이 받겠느냐는 문제로 나가는 것입니다.
현재 부산공회(1)과 (2)는 지난 10여년 간 시무투표를 4-50여개 교회단위로 실시해온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경우를 두고 말하자면 시무투표는 다른 공회에 소속한 교회나 교역자를 탈락시키거나 자기 공회로 데려오는 스카웃의 방법으로 사용되었지 정상적으로 사용된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부산공회(3)의 경우는 첫째 그 수가 6개교회밖에 되지 않고 그 단합이 설교록 출간 등 이곳의 연구중심이라는 뚜렷한 신앙성향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별 이견이나 문제가 없습니다. 즉 교역자 6명의 의견이 교회들의 의견이며 공회의 의견이라 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바로 이런 때는 교역자가 마음만 먹으면 독행 독주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때입니다. 심지어 예배당을 다 팔아 없애도 별 문제가 없을 정도입니다.
공회나 교회가 이런 경우일 때, 우리는 백목사님의 교회 운영을 잘 기억하고 참고하고 있습니다. 교인이 교역자를 전적 믿고 공회 전체가 공회의 운영을 전적 믿을 때, 바로 이때는 공회를 운영하며 교회를 책임진 교역자들은 교인이 원하고 공회가 요구하기 전 스스로 자신들의 생활과 평생 그리고 모든 거취를 자진해서 다 공개하고 교인에게 알리고 맡겨서 역시 교인들이 원하면 교인들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교역자 스스로 만들고 제공하는 조처로 교역자를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하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조처들을 공개하면 다른 공회 교역자들의 입장이 필요 이상 난처해질 수 있기 때문에 이 공개 답변은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이 홈은 부산공회(3) 교인들도 보고 있을 것이니 달리 말 할 수 없는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백목사님이 시무투표를 제의하여 시작시킨 시기는 1970년입니다. 당시 공회 운영은 백목사님의 손에 전적 매여 있었고 그대신 각 교회는 그 교회의 담임 목회자들에 의하여 완전히 일임되고 있었습니다. 좋게 말하면 교훈과 정치가 일치된 이상적 교회시대라고 하겠고 욕을 하고 싶은 이들이 본다면 공산독재같은 교회라고 할 것입니다. 교회의 이상은 교훈과 정치의 일치입니다. 목회자에게 교인들이 모든 것을 맡긴 상태에서 교역자는 스스로 하나님 앞에 교인들에게 필요한 교훈과 교회 운영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시대나 그런 환경이 주어진다고 해도 이곳은 아직 타락한 세상이며 아직도 지상에 있는 교회입니다.
이런 면을 고려하여 백목사님은 시무투표라는 제도를 시행하여 이상적으로 진행하던 공회의 교훈과 행정 일치 시대 중에서 교역자들이 자진하여 자기 목을 교인들에게 내놓았습니다. 이런 점까지를 보게되는 당시 공회의 교인들로서는 지상에서는 몇 세기, 혹은 1-2천년에 한번 올까 말까 하는 천국을 옮겨놓은 듯한 교회와 공회의 분위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현재 부산공회(3)은 그 당시를 내용으로는 재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당시를 어림풋하게 짐작할 정도의 중요한 몇가지는 가지고 있는 정도입니다.
8.시무투표의 결과에 대한 순종
시무투표에서 거부가 되어도 교역자가 이동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서부교회의 이재순목사님이나 서영호목사님의 경우에서 보듯이 보내는 법은 없습니다. 교회는 어떤 경우에도 강제라는 것은 사용할 수도 없고 해봐야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부교회의 경우 서목사님을 두고 양쪽으로 나뉜 상태에서 시무투표를 했기 때문에 장로님 전원이 1992년 시무투표에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을 비롯 모든 장로님들은 그 시무투표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시무투표 때문에 그리 된 것이 아니라 시무투표 이전에 이미 양측이 나뉘어져 있었고 시무투표는 표현될 수 있는 기회로 사용된 것 뿐입니다. 따라서 그 분출의 기회를 찾지 못하고 양분된 교회가 그냥 진행하게 되면 썩을 대로 썩고 곪을 대로 곪아 버려 결국 공중분해가 되고 마는 것인데 서부교회의 경우에서 보듯이 시무투표란 아주 분란의 소지가 되고 교회를 파탄에 이르게 한 제도라고 보이는 경우를 상정해 봐도 옳고 좋은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차라리 2년마다 오는 시무투표에서 그 내적으로 잠재된 양측의 주장을 허용한 제도로 표현하는 것이 더 나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정도로 갈등을 해온 정도라면 양측은 이미 나뉘어져 각각 다른 교회를 운영했어야만 교인, 교회, 복음 모든 면에서 유익했을 것입니다. 바로 이 면을 먼저 보았고 그런 주장으로 부산공회(1)에 속한 서부교인들을 많이 설득하였으나 받아들이지 아니함으로 본 답변자는 부산공회(3)에 동의하는 분들과 그 갈등의 초기에 개척을 나왔고 그로 인해 교회의 갈등에 10년 손해 보는 일은 피하게 된 것입니다. 이 경우는 시무투표의 가장 대표적인 폐단으로 지적되는 경우를 두고 말해도 과연 시무투표제도 때문에 갈 길을 바로 가게 되었다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9.부산공회(3)는 시무투표의 결과에 하등 문제점이 없으나 예로 들기는 곤란합니다.
타 공회와 비교하여 말하기는 곤란해도 현 부산공회(3)의 경우는 시무투표의 결과를 두고 교인들이 그 찬반의 비율로 교역자들에게 요구할 수 있는 25%의 반대 수치에 이르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나 각 교회의 결과를 스스로 판단하여 불과 5-10%의 반대가 있었던 경우라 해도 미리 자숙해야 하는 교회도 있고 또 그 정도의 반대라면 이동 대상이 될 정도라고 미리 징계를 자청하는 교역자도 있습니다. 교역자의 자세가 이리 되면 문제 자체가 발생할 수 없습니다. 결국 시무투표란 교역자가 어떤 근본 자세로 교인을 상대하느냐는 문제입니다. 교인의 반대가 있으면, 나같이 불충하고 못난 것 때문에 교인들이 손해 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될래야 될 수가 없는 것이고 이 질문 앞에 있었던 예수님의 십자가 상에서의 자세에 대한 문답에서와 같이 잘 한 것이 있고 떳떳한 것이 있는 교역자라면 시무투표제도에 상관없이 그 결과에 상관없이 교회와 교역자는 불행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를 두고라도 시무투표제도라는 것은 그 이름만 전해 들어도 그 제도 시행의 여부가 의논만 되어져도 교역자는 이미 죽은 목숨처럼 속으로는 떨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미리 떨었으면 시무투표 시행을 앞두고 떨릴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떨리지 않는 강퍅함이 있기 때문에 시무투표라는 것은 이런 강퍅함을 잡는 좋은 이름이요 제도요 그 시행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10.시무투표를 두고 공회는 권하는 데에서 그쳐야 합니다. 간여하는 것은 월권입니다.
시무투표를 할 필요가 없거나 하지 않아야 하는 현실이 어느 개교회에 있게 된다면 그 확정은 그 교회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무투표를 시행해온 부산공회들의 경우는 공회의 소위 집행부를 형성한 분들이 자기 사람을 심고 자기 반대측 교회를 흔들기 위해 시무투표를 가지고 아주 교회 파탄의 폭탄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공회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개교회가 공회에 의하여 요동을 하고 공회의 결정을 무시하지 못한 어린 신앙이었습니다. 다른 교단과 다른 점이 바로 공회가 공회의 권위로 명령해도 틀렸고 잘못되었으면 그 결정을 귀신의 장난으로 알아야 할 터인데 총공회 붉은 도장을 찍어 내려 보내면 그냥 타교단 총회장 직인처럼 국가의 관서 도장처럼 알고 따랐던 것입니다.
물론 개교회가 이유 없이 시무투표를 거부하며 시무투표의 신앙노선을 반대하게 되면 공회는 그 개교회를 회원에서 제외할 수는 있습니다. 이것은 시무투표 외에 어떤 문제로도 그리 될 수 있습니다. 우스운 것은 천주교에서 제외되면 지옥갈까봐 떨었던 때가 있었던 것처럼, 소속 공회에서 제외되면 그리 되는 듯이 떨고 결국 공회의 처리가 명백히 틀린 줄 알면서도 결국 공회가 원하는 것을 수용하여 공회 집행부로 하여금 없는 권한을 만들어 교권주의로 나가게 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이곳은 이런 면에서 담대하며 또 잘못된 것의 권위는 그 자체를 아주 우습게 보기 때문에 부산공회가 소송에 반대했다는 것을 이유로 제명 등 제거 조처를 할 때 오히려 옳은 노선에서 비록 적지만 바로 나가라는 명령으로 알고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성경이 그러하고 교회사가 그러하며 공회역사가 그러하고 백목사님의 신앙걸음이 그러합니다. 공회가 좋고 옳기 때문에 교회는 스스로 소속하는 것입니다. 그 공회가 잘못되고 오히려 바로 나가는 교회를 제재하면 그 처리는 거부하는 것입니다.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개교회주의이니 동등한 자격과 위치에서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 가게 되면 혼자 가는 것입니다.
(재질문) 백영희 목사님의 시무 투표
예전에 총공회의 어떤 목사님이,
"백영희 목사님이 서부교회 시무투표에서 떨어졌는데 교회를 옮기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저에게 그 말을 전해 주신 총공회 분들은 그렇게 말한 목사님이 분명 거짓말 한 것이라고 덧붙이셨습니다.
1998년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답변자께서 알고 계시는 대로 백목사님이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세요.
(답변) 그런 사실은 없으나 혹 잘못 들을 수 있도록 설명하신 적은 있습니다.
1.중간에 들어온 질문이어서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지나간 자료들도 확인하여 지나간 날들에 대한 답변도 소홀치 않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연락을 원할히 하기 위해 한 페이지 이상 지나간 것에 재질문을 달 때에는 문의답변방 제일 앞부분에 몇월 몇일 몇 번에 대하여 재질문 등을 하셨다고 한 자 적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뒷 부분에 재질문 한 것을 확인하면서 앞 부분은 답변자가 지우겠습니다.
2.백목사님이 시무투표에서 떨어졌다는 말씀은 잘못 들어셨습니다.
시무투표에 떨어진 분들이 교회를 옮기지 않거나 또는 교인들의 의사를 반영치 않으면서 백목사님의 경우를 제작해서 사용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달 과정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참고로 백목사님은 시무투표의 찬성률이 대개 95-96%였습니다. 1980년대 마지막 시점에도 수백명의 반대표는 늘 있었습니다. 물론 그 찬성과 반대의 표시에 대하여는 일반인들이 섣불리 단정할 수 없으며 여러가지 설명을 들어야 정확하게 참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3.재질문에 인용하신 경우는 아마도 이런 경우라고 생각했습니다.
백목사님의 시무투표 관련 사실은 어느 개인이 실수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도 명백한 것입니다. 바로 사실이 드러날 일이고 또 그런 확인은 굳이 이곳에까지 질문할 필요도 없이 그 많은 서부교인 대부분이 다 알고 있는 일이니 그렇게 쉽게 확인이 가능한 것이므로 그렇게 말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다만 잘못 전해 질 수 있는 경우로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나 백목사라도 25% 이상의 반대표가 나오면 이동하겠다' 라는 가정이 잘못 전해 진 것일 경우가 있습니다. 아니면, 비록 시무투표에서는 25% 이상의 반대가 나왔어도 그 교역자를 옮기지 않고 새로운 교역자를 모시는 투표에서 그 교역자를 다시 모시도록 찬성표가 많이 나오게 되면 이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 부임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일 것입니다.
시무투표의 여러 가지 원칙과 실제 예를 들어 설명을 장황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설명을 단순하게 듣게 되면 백목사님이 25% 이상의 반대표를 받고도 옮기지 않았던 경우를 변명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들을 수는 있습니다. 실제 그런 설명을 하고 난 그 당시 그렇게 질문하는 분들이 혹 한 분씩 계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