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질문) 백영희목사님의 후계자지명에 대하여 601

주제별 정리      

                           10. (질문) 백영희목사님의 후계자지명에 대하여 601

서기 0 23

10. (질문) 백영희목사님의 후계자지명에 대하여 601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제가 저의 이름을 실명으로 밝히지 않고 더러 이방인이라는 익명으로 목사님을 찾아 뵙는 것 조금 죄송한 마음이 들지만 제가 출석하는 교회의 이목도 있고 하여 익명으로 질문드리는 것 양해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홈페이지에 아무리 바쁘더라도 하루에 한번식 방문하는 애용자입니다.
저는 한때 서부교회에서 1973년도부터 목사님 돌아가실때까지 서부교회 교인이었습니다.

제가 일반교인으로 서영준 목사님에 대해서는 멀리서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분의 인품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고 논평 할 입장이 못 되지만 백목사님께서 한동안 병환으로 서부교회가 어려울 당시 서목사님께서는 총공회의 후계자로까지 거론된 사정도 잘 알고 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아마 서목사님이 돌아가시지 않으셨다면 지금 백목사님의 후계자로 지명되어 아마 총공회가 사분오열로 갈라지지는 아니하였을 것이며, 계속 발전하였으리라는 표현으로 글을 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의 표현이 잘못되었는지는 몰라도 제가 이해하기로는 목사님께서는 그런 심정으로 글을 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이 후계자 지명을 하지 않으셔셔....라는 말씀에 대하여는 저는 장로교 교인으로 도저히 이해할수 없습니다. 백목사님이 후계자 지명을 하면 백목사님의 뜻대로 후계자가 되는 것이라면. 총공회가 장로교라고 할수 있는지요.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도 역시 일반 장로교의 관습을 따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일반 장로교와 틀린점도 많지만 개교회의 목사님이 유고시에는 장로교는 당회에서, 아니면 공동의회에서 목사님을 청빙하는 것이 순리라고 할 것인데.

정확한 정보가 아니라서 자신이 없는 말이지만 제가 듣기로는 목사님사후 후임목사님으로 이재순목사님이 청빙된 것은 당회의 장로님들의 결정이 아닌 서부교회의 막강한 권사님들의 힘으로 결정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인지요?

서부교회의 당회장이 누가 되건 총공회장이 누가 되건 그건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지 백목사님이 지명한 사람이 후계자가 될 수 있다는 표현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답변) 서부교회와 공회의 안방 이야기를, 교회 성격과 역사적 사실에 의하여 몇 말씀드린다면

1.서영준목사님의 서부교회 후임은 확정이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1982.11.24. 백목사님은 서영준목사님을 서부교회 후임으로 확정하게 됩니다. 결정이 옳았는지 또 법적 절차가 어떠했는지 문제는 2번에서 말씀드리겠고, 일단 당시 백목사님의 확정은 서부교회의 결정이었습니다. 서영준목사님이 계셨더라면 서부교회 후임으로서 서부교회의 모습이 오늘과 아주 달랐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이곳에서 늘 반복하는 내용이므로 질문자가 보신 것이 맞습니다.

2.'지명을 하지 않으셔셔'라는 표현은 약간 착오가 있습니다. 지명은 되었습니다.

질문 내용 중, '백목사님이 후계자 지명을 하지 않으셔셔'라고 답변자가 표현을 했다는 말씀이 계셨으나 약간 표현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사소한 사안이지만 답변자가 너무 관심있는 부분이어서 보다 정확했으면 합니다.

백목사님이 서목사님을 후계자로 지명한 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후계자로 지명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후계자로 지명을 했는데 서목사님이 먼저 가셨기 때문에 후임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3.문제는 '백목사님의 지명으로 되는 것인가, 또 그럴 수 있는 것인가' 입니다.

①말씀하신 대로 공회 명칭이 '예수교장로회'입니다. 또 더하여 '총공회'입니다.

우리 공회는 그 명칭을 '예수교장로회'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질문자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일반 장로교의 관습을 따르는 것이 있다는 점도 분명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물론 '총공회'라는 이름을 마지막에 붙여 놓은 것은 수 백개나 되는 다른 장로교회들에게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인데 이 이름을 굳이 붙인 것은 '장로교회'와 확실하게 다른 것도 있다는 점을 함께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문제가 되는 '담임목회자 선임'에 관련된 경우만을 가지고 말한다면, 공회는 장로교와 분명히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장로교의 경우를 기준으로 말하기는 곤란할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교회의 체제와 운영을 달리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출발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②장로교가 교회를 '당회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을 아주 반대하는 것이 공회입니다.

장로교는 교리와 역사 또 행정체제 등 많은 점에서 뚜렷하고 확실한 독자적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을 '장로'교라고 붙인 것은 교리나 역사보다는 교회의 운영체제를 목사님과 장로님들의 모임인 '장로 회의' 중심으로 한다는 점을 특별하게 강조한 것입니다. '목사+장로=당회, 당회=장로교'라고 보신다면 틀림없습니다. 다만, 이때 '장로 회의'라는 말은 장로님들을 위주로 한다고 '장로' 회의라고 한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는 목사님도 장로님도 다 '장로'라고 부르겠다는 것입니다. 신앙에 앞서 있는 분들이 교회를 주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개별 교회를 주도하는 장로회의를 '당회'라고 하고, 그 인근 지역의 교회들을 주도하는 장로회의를 '노회'라고 하고, 전국의 모든 교회들을 주도하는 장로회의를 '총회'라고 합니다. 담임목회자의 선임문제를 두고 말한다면, 개별 교회는 장로님과 목사님이 합해서 '당회'라는 장로회의를 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담임목회자를 선정하고, 최종 결정은 교인 전체 모임인 '공동의회'가 하는 것이 일반 장로교의 모습입니다.

공회의 신앙노선은 장로교에는 장점이 너무도 많은데 목사님과 장로님들만이 개별 교회, 지방 교회, 전국 교회를 주도하는 것은 너무도 문제가 많고 아주 잘못된 것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바로 목회자 선임일 수 있습니다. 어쨌든, 교회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놓고 어느 회의 어느 법으로만 한다고 못을 박아 버리면 그때부터 탈선하게 된다고 하는 것이 공회의 입장이기 때문에 목회자 선임을 두고도 역시 장로교의 방법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③그렇다면, 백목사님의 서부교회 체제를 분석하고 연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백목사님 생전의 서부교회 체제는 백목사님의 확정이 서부교회의 결정이고 백목사님의 지도가 서부교회의 실행이었습니다. 이것은 일반 장로교가 목사님과 장로님들로만 주도를 해도 잘못이라 한 것을 고려한다면 큰 모순으로 보일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 다 맡겨놓고 따르는 서부교회식은 최악이라 해야겠습니다.

4.백목사님이 평생 걸어갔던 신앙노선, 교회의 결정과 주도는 누가 해야하는가?

①법과 제도를 만들어 법치와 시스템이 운영을 해야한다는 것이 오늘 선진교회 상식입니다만.

현대 사회가 오랜 역사와 경험을 토대로 단정하는 것 중에 하나는 사람이 다스리는 인치(人治)가 되면 너무 위험스럽기 때문에 법과 제도가 다스리는 법치(法治)제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역시 이 주장을 모르는 교회가 없고 교단이 없기 때문에 모두들 교단의 헌법과 많은 규정을 만들어 인치를 막고 법치주의로 나가고 있습니다. 이는 상식입니다.

그러나 공회의 신앙노선은 장로교가 '장로 회의(會議)'인 당회 위주로 운영을 하는 것이 틀렸다고 주장합니다. 사람의 신앙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늘 변하는 것인데 한 순간 자격이 있다고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었는데, 그들에게 늘 다 맡겨놓는 그 체제가 틀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직 어리지만 사무엘이나 다윗이 당대를 맡아야 할 신앙이었는데 사울과 엘리가 직책상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전체 재앙을 맞게 됩니다.

②교회를 주도하고 지도하는 것은, 당시마다 하나님이 붙들고 사용하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한 사람이 맡는 교황체제든 몇 사람의 간부가 맡는 장로교체제든 전 회원이 함께 결정을 하겠다는 침례교체제든, 교회 운영의 주체를 누가 해야 하느냐는 한 가지 문제만 가지고 말한다면, 문제는 이것입니다. 전체 교인이 원하고 좋아서 맡긴다면 한 사람이라도 상관없고 장로 회의에게 맡겨도 상관이 없습니다.

교황체제를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한 사람의 결정이기 때문이 아니라 교황이라는 자리에 올라간 사람은 항상 전권을 쥐야 하고 그의 결정은 정확무오하다는 것입니다. 즉, 교황제가 틀린 것은 법치이기 때문이지 인치이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때 인치라는 말은 어느 한 사람이 교회를 주도하게 한다면 그것도 인치가 아니고 법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장로교의 의사 결정도 비록 사람의 숫자가 여러 명이라는 것만 다르지 결국 목사님과 장로님들에게 교회의 전권을 항구적으로 다 맡겨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타락이 바로 오늘 장로교의 현재 모습입니다.

천주교 교황제도는 교황 혼자 탈선을 주도했다는데 문제가 있고, 장로교는 전국의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비록 숫자는 많지만, 그들이 법과 제도에 의하여 받아가진 위임으로 항상 전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별별 기괴한 일들이 다 발생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천주교와 교단을 합하는 문제라 해도 장로회의인 당회 노회 총회가 의결 선포해버리면 그대로 끝나버립니다. 그리해서는 안되는데....라고 한다면, 천주교는 그리 해서 되는 일을 했습니까? 그리해서 안되는 일을 그리한다면 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가 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장로교를 대표적으로 예로 들고 천주교와 비교를 한다면, 위험 발생의 가능성이 약간 차이가 있을 뿐이지 본질적으로는 동일합니다.

이 점을 크게 염려하고 탄식했던 것이 백목사님입니다. 그리고 주변과 역사에 전혀 개의치 않고 옳다는 확신이 섰을 때 그대로 실행해 버리고 출발한 것이 총공회의 신앙노선입니다. 혼자 옳다면 가겠다는 것입니다. 단, 옳다고 생각되고 좋아서 따를 사람은 따르라는 것입니다. 강제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훗날의 변동을 고려치 않고 법과 제도를 만들어 묶는 일을 하지 않고 나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변화 무쌍한 현실과 변화 무쌍한 신앙의 변동 변질 속에서 항상 절대 권위를 두고 따를 바는, 현재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뜻을 찾겠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일에 백목사님이 늘 앞장섰고 또 옳았다면 따르라는 것입니다. 따르되 법과 제도 때문에 따르지 말고 현재 각자가 생각할 때 옳고 좋아서 또 과연 하나님이 현재도 함께 하시니 그를 인도하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만일 백목사님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라 해도, 평생을 옳고 바르게 나가다가 이번 결정에는 오류가 있고 착오가 있을 때는, 그가 놓쳐버린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그 사람이 어린 아이인지 처음 믿는 사람인지 아니면 장로님들인지 상관없이 따르라는 것입니다. 배신이라 생각할 것 없이 주님이 가는 방향, 주님이 현재 붙드는 사람, 주님이 현재 인도하는 길을 가자는 것입니다.

③따라서 얼른 보면 서부교회 백목사님의 체제는 교황제 같습니다. 그러나 알고보면, 성경입니다.

성경으로 봐도, 현재 정통 교리를 전체적으로 맞추어봐도, 또 현재까지 2천년 교회사를 연구해도, 현 우리 교계를 봐도 과연 백목사님의 이 신앙노선은 대단합니다. 옳습니다. 그 유례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점이 있기 때문에 그의 신앙노선을 이곳에서는 집중 연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5.이제 서영준목사님을 후임으로 확정했던 서부교회 문제로 돌아오겠습니다.

백목사님이 서영준목사님을 후임으로 확정하던 1982년 11월, 그 당시 서부교회는 어느 때보다도 백목사님을 따르던 때입니다. 좋아서 원해서 따르던 때입니다. 말씀에 은혜가 어느 때보다도 넘쳤으며 특별히 이 기간에는 백목사님을 거부하고 반기를 들어도 가장 쉽게 가장 문제가 없을 때입니다. 그는 당시 살았으나 죽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식물인간의 상태에 있었다 할 만큼 어려웠을 때입니다.

백목사님의 후임 자격으로 서부교회 강단을 맡았던 서영준목사님은 비록 내적 실력은 충만했으나 외적으로는 아무 실권도 권위도 인맥도 없이 그냥 한 사람의 직원과 같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서부교회 전체는 백목사님이 지명한 후임으로 서영준목사님을 환영했고 좋아했으며 이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뜻으로 따랐습니다.

바로 이것이 서부교회의 백목사님 정치의 실체입니다. 그 분석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실명으로 책임있게 반론하고 나설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이전에도 이 문제를 두고 몇몇 반론하신 분들이 이곳에 있었으나 없는 말로 감정문제로 험담만 해야 했기 때문에 익명으로 한 두 마디 욕만 하시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이곳이 변론에 능하기 때문이 아니며 이곳이 반론자를 수사 의뢰할 사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너무도 뚜렷하고 환한 과거 역사가 실재했기 때문에 이를 뒤집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 만을 헤아리는 초대형 교회 안에서 한 사람과 두 사람의 반대도 없었다면 이 역시 비성경적일 것입니다. 그분들이 계셨고 또 시도했으나 일반 교인들은 전혀 알지 못할 정도에서 그쳤습니다. 심지어 교회 내부의 모든 깊은 소식에 정통한 십 수명의 사람들 외에는 일반 장로님 직원 간부들까지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 수는 미미했습니다. 교회가 가장 이상적인 교회 모습으로 지상에서 존재할 수 있는 상태라고 하겠습니다.

6.백목사님 사후 서부교회 후임을 결정한 과정의 일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①백목사님의 갑작스런 공백에 대하여 실무 총책임자들이 임시 조처를 했던 것입니다.

1989년 8월 27일 주일에 백목사님 순교하시고, 이어 31일 목요일 장례식이 끝났으며, 9월 1일 금요일 저녁 9시에는 5층 백목사님 서재에서 서부교회 후임 문제 때문에 의논이 있었습니다. 백목사님을 마지막까지 모셨던 5분야의 실무 책임자 5명이 모였으며 이 자리의 결정은 백목사님이 없는 서부교회에서 바로 결정이었습니다. 서부교회 진로 자체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 라는 문제는 백목사님의 신앙노선, 총공회 차원의 모든 자료, 서부교회의 역사와 당시 현황 전체를 파악할 수 있어야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서부교회의 규모는 초대형이며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의 차원은 특별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일반 교회가 진로를 결정하는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백목사님을 마지막까지 모시고 중요한 업무를 총괄하던 5명은 백목사님 사후 서부교회의 첫 방향을 결정하는 과도기에서 그들이 결정할 바에 대한 이견은 전혀 없었습니다. 백목사님을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은 백목사님의 갑작스런 사망에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는 너무도 뚜렷했기 때문이고 또한 백목사님의 신앙노선 상에서 그들이 지도받아온 방향은 너무도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②서부교회의 성격은 '임시목회자'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우선 무엇을 해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필연성으로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무 총책임자들로서는 교회를 앞으로 이끌고 나갈 힘과 실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런 상황에서 당시 가장 시급한 문제를 임시 임시 해결할 판단은 충분히 할 수 있었습니다. 백목사님이 그들을 통해 그렇게 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이 오래 갈 수는 없었습니다. 아는 것도 부족했지만 우선 그럴 실력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실력문제 중 가장 큰 문제는 서부교회에는 백목사님이 아니고는 전혀 통제가 될 수 없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당장에는 몰라도 얼마의 과도기가 지나가게 되면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정식으로 후임이 될 수 있는 분은 여러 과정을 통해 다음에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것이고 당장 비어있는 자리를 잠깐 맡는 정도는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③정확히 말하면 임시목회자가 될 것이지만, 일단 '후임'에 대한 기준은 이러했습니다.

첫째, 서부교회는 백목사님의 설교 은혜를 당분간 고려할 수밖에 없고 그 면을 생각한다면 재독 설교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연히 재독에 가장 적절한 목회자를 찾게 되었습니다.

두번째, 서부교회는 장차 많은 변화가 있겠지만 당분간은 백목사님의 신앙노선 상에서 내려온 교회의 진로가 일단 유지되도록 해야 하며 이후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다음 인도를 따라 새로운 방향이 결정되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도기에 해당될 기간동안에는 당시 서부교회의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5명의 실무자들을 따라 주어야 할 목회자가 필요했습니다.

세째, 그리고 이 모든 결정에 대하여 해당 목회자가 이해가 되고 또 자원함으로 희생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이 모든 조건은 필연이었고 그 조건에 맞는 분은 인산교회 이재순목사님뿐이었습니다.

당시 서부교회의 대사를 결정했던 5명의 실무 담당자들에게는 백목사님의 후임으로 서부교회를 담당할 목회자가 없었습니다. 백목사님 자신이 마지막 순간을 그렇게 내다보고 기다렸으며 가는 순간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처를 다하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후임문제에 대하여는 하나님이 현재로는 주지 않는다고 단정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정할 서부교회의 후임은 약간의 세월이 지나가야만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임 문제는 적어도 당시 목회자들 중에서는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자라나는 다음 세대에나 있든지 아니면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이 유지되지 않고 서부교회가 일반 교회화 되는 과정을 밟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백목사님을 마지막까지 모셨던 실무자들로서는 당장 공백이 되어버린 교회의 담임 목회자를 결정하되 일단 당분간 계속될 과도기에 임시목회자라는 차원에서 결정하고 이후의 진행은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방향을 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④후임 결정이 서부교회의 공식 결정이 되는 과정은 옳았고 바로 되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면으로 확정하고 정리한 것이 9월 1일 밤 11시경이었고, 일단 확정된 계획이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의 원칙에 따른 결정이 되려면 서부교인 전체가 이해가 되고 찬성이 되며 자원함으로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당시 서부교회의 교회적 의사 결정은 일반 교회와는 전혀 달랐기 때문에 다른 교단의 경우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었다는 것은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심지어 원한다면 실무자들의 결정은 바로 서부교회의 결정이 되도록 할 수 있고 또 집행이 가능했지만, 백목사님의 권위는 백목사님 생전에 백목사님 자신의 신앙과 충성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백목사님이 없는 상황에서 실무자들이 극도로 조심했고 따라서 모든 결정은 가능한 한 범위를 넓히고 시간을 늦추어서라도 결국은 가장 반대 입장에 설 수 있는 분들까지 자원함으로 적극 앞서 찬성할 수 있도록 조심했습니다.

서부교회는 그 교인의 숫자가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한 자리의 회의라는 것은 그 당시까지는 사실상 불가능했고 따라서 전체 회의란 성립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의 목회방향은 서부교회 내의 구역제도를 구역장을 작은 범위의 목회자로 길렀기 때문에 구역장은 자기 구역의 의사를 백목사님과 같은 권위와 차원에서 발표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구역장 전체의 의사가 바로 전 교인의 의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구역장 전체의 의사는 10여명의 대구역장에 의하여 집약될 수 있었고 그 10여명의 대구역장의 의사는 4명의 권사님 구역장에 의하여 요약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일반 교회의 단순 편제상 계통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으니 서부교회의 경우는 이런 구역 계통이 전체 교인의 의사를 개별적으로 실제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실체였습니다. 사실 16명의 장로님들이 있었으나 서부교회의 장로님들은 소속 구역으로 의사가 결정되는 특별한 체제에서 선출되었고 활동하였으며 당시에도 그 위치와 성격이 그러했습니다. 그렇지만 장차 서부교회의 성격이 변하게 된다면 선출 과정과 근본 위치가 전혀 일반 교회와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 외형적 영향이 지대할 것이기 때문에 그분들까지 다 포함하는 의사 결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9월 2일 토요일부터 4일 월요일에 이르기까지 서부교회는 백목사님이 없는 상태에서 서부교회의 전체 교인 개별의사의 총합을 모으게 됩니다. 이렇게 단정할 수 있는 것은 당시에 있었던 사실이며 이 사실은 지난 13년의 시간이 이론이나 반론이 없도록 증명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훗날 서부교회 후임 이재순목사님과 그 후임를 결정하는 과정을 두고 극단적 반대 의사를 발표하는 분들은 전부가 그 당시 실무자 5인의 결정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분들이었으며 그 외 일반 교인들 중에서 몇몇 분들이 이의를 제기한 것은 서부교회가 백목사님 사후에는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자신들의 주장이 받아지지 아니하자 교회 주도권 투쟁 차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재순목사님이 서부교회의 담임목회자로 결정하는 과정과 부임, 이후 목회자로서 교회의 모든 일을 처리하고 나가던 때에는 담임 목회자 결정에 대한 이의가 전혀 없었고 전부가 다 자기들 대로의 기대와 희망으로 의논 건의만이 있었을 뿐이었으니 이것이 백목사님 사후 서부교회 후임 결정이 가장 이상적으로 되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서부교회의 후임 결정은 그 성격으로 보나 공회 신앙노선으로 보나 서부교회 내부의 전원일치 결정이 있게 되면 공회는 그렇다는 통고를 받는 것으로 전부입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이 없는 상황에서 이제 총공회, 총공회원, 개교회, 개교회 교인 전부가 개교회자유 원칙이라는 가장 큰 신앙노선에 충실해야 할 시점이어서 서부교회는 그 후임을 내적으로만 확정하고 공식 의결을 미룬 상태에서 공회의 의견을 먼저 듣게 되었습니다. 9월 4일 월요일 저녁 월례 교역자회가 예정되어 있고 그 교역자회의는 당연히 서부교회 후임문제를 서부교회에 문의하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⑤백목사님 사후, 장례식에 이어 후임 결정을 두고 서부교회는 전원일치의 참 모습이었습니다.

그날 밤 10시, 서부교회 행정실 3층에 있는 응접실에서 탁자 한 줄을 사이에 두고 서부교회 전 교인의 의사를 취합하고 발표할 수 있는 권사님 구역자 4명과 서부교회의 실무 교역자 및 책임자 전원, 그리고 장로님 16명이 한 자리에 모였으며 전례가 전혀 없는 서부교회의 당면한 사안을 두고 하나님 앞에서 그 회의에 참석한 전원이 전 교인의 의사 총합으로 결정을 하는 것임을 일일이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 당시 절차와 방법 그리고 원칙 등 제반 사항에 대하여 이의가 있는 교인이 있다면, 그 교인은 1989년 8-9월 당시 또는 현재 자기의 소속과 신앙계통에 우선 관련이 있는 당시 참석자에게 이의를 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당시나 현재 자기가 소속한 계통에서 이곳의 설명이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이 있다면, 답변자는 그렇게 주장하는 분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조건에서 얼마든지 그 주장이 잘못되었음과 그 주장하는 분이 그 당시 어떻게 자발적이며 단 마음으로 그렇게 그 결정을 찬성했는지 자세하게 설명해 드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장로님 두 분이 각각 제3의 안과 문의를 하였으나 바로 이해되었고 또 찬성되었으니 참석자 전원이 기권이나 반대없이 전원일치로 감사하고 확정했던 일입니다.

7.이 결정의 성격을 질문하신 내용으로 분석한다면

서부교회 장로님 당시 16분 전원이 참석하였고, 원하는 대로 발언했고 질문했으며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다른 대안을 제시하였습니다만 간단한 설명만으로도 전원이 이해 동의 찬성하였습니다. 16명 장로님 중 13명이 얼마 되지 않아서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을 수정하고 장로님들만의 회의체인 당회체제로 서부교회를 주도해야 한다고 나서게 됩니다. 당회가 교회의 중심이 되고 교회 운영을 주도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문제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으며, 그것보다 이런 입장을 발표하게 된 것은 일단 후임을 결정했던 당시는 이들 장로님들 전체가 전혀 반대하지 않았고 전원일치의 결정에 하등 이상이 없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그 다음 교회를 주도하는 교권문제에서 발생된 것인데, 서부교회의 초기 투쟁은 서부교회를 백목사님의 신앙노선 상에서 그대로 지속하느냐 아니면 일반 교단의 교회 운영으로 수정을 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어느 측이 교회를 주도하느냐는 문제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내부 흐름을 전혀 모르는 분들이 보면 단순한 교권투쟁으로 보았을 것이고 조금이라도 양측의 주장을 비교해 본 사람이라면 서부교회의 방향을 그대로 잡고 나가느냐 아니면 전면 수정하느냐는 문제가 본질이었음을 단박에 알 수 있었습니다. 현재까지 당시 모든 주장 자료가 양측이 발행한 상태로 보관되어 있으며 이곳에서는 앞으로 기회 되는 대로 이를 자료방에 제공할 것입니다.

8.'백목사님의 지명으로 후임이 선정되는 것은 잘못'이라는 마지막 지적에 대하여

백목사님 생전에 서부교회의 모든 결정은 백목사님에 의하여 되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이 잘 되었던 잘못 되었던 일단 그 당시는 그렇게 되어진 것이니 그렇다는 사실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백목사님의 지명이 있으면 후임이 되어야 하는 것이냐 라고 묻는다면, 그분의 결정이 옳으면 따르는 것이고 아무리 백목사님의 결정이고 지시라 해도 옳지 않으면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너무도 당연한 것이니 이는 성경이 그러하고 백목사님 자신의 신앙노선이 그러하며, 그를 따르는 이곳의 입장이 너무도 당연히 그러하기 때문에 재론할 필요를 사실 느끼지를 못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표현에 대한 지적이 있다면 이곳에서는 다시 한번 지적하시는 분이 그렇게 지적을 하게 된 많은 면을 생각하게 되면서도 동시에 충고란 한번 더 들으면 좋은 것이고, 다시 듣고도 문제가 없는 것이면 듣는 본인에게 좋을 뿐이라는 입장입니다.

9.결론

질문하신 분의 뜻이 선의이기 때문에 비교적 소상한 과정을 13년만에 처음으로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결론을 드리자면 일반 장로교의 법은 우리 신앙노선에서 인용하는 것이 있는 반면, 전혀 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후임 선정을 두고는 당회를 거쳐야 하는 개념이 공회에는 없다는 점에서 비교 자체를 할 수 없습니다만, 장로님 전원의 일치가 분명히 있었다면 일반 장로교의 헌법을 그대로 인정한다 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공동의회의 결정이란, 형식적으로 거치려면 서부교회의 집행부가 만장일치로 가결한 이상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수천명의 교인들이 공동의회를 개최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 때문에 일반 초대형교회들은 담임목회자가 교회 전체 의사를 마음대로 제작하고 있습니다만, 백목사님은 시무투표라는 방법을 통해 자기 자신의 임기를 매 2년으로 정해놓고 스스로 그런 폐단을 제거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백목사님 사후의 서부교회는 전혀 그 유례가 없고 전례가 없는 사안을 두고 총공회 원래 신앙노선 상에서 공동의회를 실질적으로 개최하려면, 전혀 불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일반 교단은 초대형교회의 경우 공동의회가 사실상 불가능한데도 헌법으로는 명시하고 있으나 서부교회의 경우는 그런 선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전 교인의 실제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특별한 구역제도가 있었고 그런 제도를 통해 실질적으로 공동의회에 해당되는 전 교인의 의사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백목사님 사후 후임 결정 과정은 일반 장로교의 예로 보아도 자랑할 만한 예가 될 것입니다.

더구나 이후 서부교회 수정측 노선에 선 장로님들이 그 실현이 불가능하다고까지 말했던 전원일치제로 서부교회의 장래를 두고 가장 큰 문제였던 후임을 결정하게 된 것은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될 수가 없었던 사안입니다. 이후 서부교회는 오늘까지 단 한번도 전원일치의 결정을 보지 못했고, 10년 이상 교권투쟁에다 모든 시간과 힘을 다 허비하고 있습니다. 그 후 문제에 대하여는 말씀드릴 기회가 따로 있을 것이고 이번 질문에 대하여는 상기 답변으로 모든 설명을 다 드렸다고 하고 싶습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