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질문) 십자가의 의문점 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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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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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34
6. (질문) 십자가의 의문점 3518
1. 예전에 어떤 글을 보았는데 성경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다고
되어있는데 원래는 그 시대에는 십자가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가로축이 없는 그저 하나의 큰 기둥을 지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기둥에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틀렸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그런 것입니까?
2.교회를 보면 맨 꼭대기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교회를 상징적으로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를 교회의 상징으로 하면 그것도 우상숭배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
물론 예수님의 상징이 아니라 교회의 상징이지만 초대교회 때는
그런 상징도 없었는걸로 아는데요. 분명히 하나님을 나타내는 우상을
그 어떤 것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는데 예배당에 들어가도 십자가가 걸려있습니다
교회 사무실에도 십자가가 걸려있는 곳도 있고 크리스챤 가정에 들어가도 십자가가
달려있습니다.
결국 우상숭배가 아닌지요?
집안에 십자가를 걸어놓아도 우상숭배가 아닌지요?
3.십자가를 교회에 다는 것이나 십자가 자체를 부인하는
이단들은 얼마나 있고 어떤 이단들입니까?
(답변) 십자가 모양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그 사용은 우상 숭배의 위험한 길에 들어섰다고 봅니다.
1.현재 게시판에서 2페이지 뒤로 넘어가시면 천주교 관련 자료가 있었습니다.
이번 질문은 천주교의 마리아 숭배에 대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교회가 사용하는 '십자가' 관련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 관련 문제는 천주교가 우상종교로 나가는 과정 중 하나입니다. 다음 자료에서는 마리아를 우상으로 만드는데 나아가게 된 원인으로 초대교회의 '유물'이나 '흔적'에 관련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박해가 끝난 직후 과거 신앙을 회고하는 과정에서 지난날 신앙의 걸음을 흔적과 유물 등 눈으로 보고 확인하며 눈으로 느낄 수 있는 말초신경 자극에 의한 신앙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것이 원칙은 아니지만 말씀으로 배워 실행으로 자라가는 정상의 신앙보다 우선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는 식이어서 초대교회가 급격하게 우상의 요소를 교회 안으로 가져오게 됩니다.
마리아, 예수님의 흔적, 순교자들의 유물, 십자가 .... 이런 것이 우상종교로 가는데 제일 앞선 소재였습니다. 앞서 오간 자료는 주로 마리아를 중심으로 설명을 드렸지만, 십자가도 역시 그런 분위기에 취하는 감정적 신앙에서 시작했다가 뒤에는 신앙의 중심에 눌러앉아서 생긴 문제입니다. 우선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3462번, [이단] 마리아 무죄설,승천설. 기독교인 04/02/14
3463번, 이방종교로 발전한 천주교의 전형적인 신화 형성과정입니다. 0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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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성경의 '십자가'
①성경 기록 이상으로 나가는 것은 늘 조심할 문제입니다.
성경에는 십자가의 형태를 설명한 내용이 없습니다. 그냥 '십자가'라는 그 단어만 성경에 기록하고 오늘 우리에게 남겨 주셨습니다. 따라서 이곳 신앙노선처럼 '성경중심'이라는 단어를 구호에만 두지 않고 실제 그렇게 움직이려고 노력하는 교회에서는 성경에 단어로만 남겨진 것이 '십자가'이면 그것을 단어로만 상대하지 그 단어를 가지고 더 이상 나가는 위험한 일을 잘 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가 위험한 일이고 어디까지가 안전지대이며, 또 더 이상 나가되 어떤 형태로 나가는 것이 위험한 일이냐고 자세하게 따져 물으면 신약은 구약교회와 달리 신앙의 근본 방향만을 가르치지 구체적으로 행동을 조목조목 나열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각자 양심대로 하라고 할 뿐입니다.
②성경 기록으로만 따져 '십자가'를 살핀다면
마27:38, '십자가에 못 박히니'
행10:39,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십자가'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가로지르는' 형태를 알 수 있고, 그 재료는 나무라고 했고 못을 박아 죽인다고 했으며, 마27:45-46에서는 십자가에 달린 시간 중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제6시에서 제9시'(점심 때 쯤에서 3-4시간)까지이므로 아주 고통스럽게 죽어가도록 하는 사형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정도를 가지고 '십자가'를 짐작해 본다면 2개의 나무를 가로질러 엮되 2개의 나무 길이가 같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의 키가 위로 뻗어 있지 옆으로 뻗어있지 않으며 또 매달아 올리려면 여러가지 불편한 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일반 '십자가' 형태가 거의 맞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로마의 십자가는 당시 로마제국이 공식적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일반 역사 기록에도 여러 자료들이 남아오고 있습니다. 물론 똑 부러지게 확인할 정도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과 세상 일반 상식이 어느 정도 맞아지게 되면 그 정도로 알고 있으면 될 것 같습니다.
3.문제는, '십자가'의 의미가 기독교의 중심에 있다보니까, 학자들이 발동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가로와 세로가 어떤 비율로 어떤 형태로 어떤 수목을 사용하여 어떤 접합 기술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교차되는 부분의 꼭대기는 얼마나 돌출이 되었는지... 이런 문제는 세상 불신자들이 로마 사형제도를 알기 위해 평생 노력하면 할까, 우리 믿는 사람이 성경의 십자가를 두고는 그 십자가의 그런 외형을 재현하고 파악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고, 그 '십자가'라는 단어로 알려 주신 주님의 '사활 대속'의 의미입니다.
십자가는 2개의 나무가 교차할 때 '+' 형이 아니고 'T' 형이라는 등 별별 학설이 다 제기되고 있지만, 그런 논란은 우리가 알 필요도 알 것도 없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가로지르는 나무에 예수님을 매달아 못박아 죽였다는 사실만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형태는 로마 제국의 오랜 역사, 광범위한 각 통치 지방들 중에서 실제 집행하는 과정에서 오늘처럼 대규모 공장에서 찍어내서 공급하는 형태가 아니므로 별별 형태가 다 있었을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를 우연히 발굴해서 그것을 기초로 그 당시 십자가는 다 그런 나무였고 그런 형태라고 한다면 지나친 소설입니다.
다만, 큰 기둥 하나였다는 것은 조금 성경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경의 단어가 '십자가'이기 때문에 가로지르는 형태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그 단어가 '십자가'였다고 해서 반드시 예수님의 십자가가 가로지르는 형태라야 할 성경적 이유나 필요성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십자가'라는 단어로만 중요하고 그 단어면 우리 구원에 필요한 것은 다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4.현재 교회가 십자가를 대하는 태도는, '우상'이라는 말을 듣기 꼭 알맞습니다.
①신약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볼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가는 때입니다.
그냥 하나의 상징을 하나의 상징 정도로 두고 볼 수 있습니다. 좀 엄격하게 해석하는 분들은 2계명에서 어떤 '형상'이든지 금했다고 해서 인형도 그림도 조각물도 전부 우상이라고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심지어 성경을 표절해서 제작한 이슬람교도 그런 흉내를 내고 그 흉내를 지금까지 제일 잘 유지했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종파는 수천년 된 불상을 대포로 쏘아서 모조리 파괴했던 정도입니다. 그들은 사진조차도 자기 형상이 남는다고 남기지 않는 정도입니다. 그것은 원래 그들이 생각해 낸 아이디어가 아니라 성경을 보고 그렇게 써먹은 것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읽고 써먹었던 상관할 것 없이, 우리는 원래 성경기록에 집중합니다.
성경은 구약 어두운 시대에게는 제사제도를 중심으로 보이는 것을 통해 가르치는 과정을 주셨습니다. 이 시기에도 정해진 것 외의 것을 만드는 것은 금지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약으로 오면서는 이 외형에 속한 것을 전부 다 없애버렸습니다. 성전도 이제는 믿는 우리를 성전이라 했고, 성소도 히9:1에서 ‘세상에 속한... 예비한 첫 성소’ 대신에 11절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또 롬2:29에서 사람에게서 난 육체의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이 아니고 이제 하나님에게서 난 신령한 이스라엘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골3:1-2에서는 ‘위엣 것을 찾으라..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②물론 어떤 ‘형상’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어떤 종류의 형상도 부인해야 한다면 이는 신약의 '사용주의' 원칙을 생각할 때 고려할 점이 많습니다. 돈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돈을 사랑하는 그 태도가 일만악의 뿌리입니다. 그런데 돈을 사용하는 것이 문제지 돈 자체는 죄가 아니라 하면서 그 가정에 그 행동에 그 생활에 온통 돈밖에 없다면 그 사람의 그 말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그 행동이 결과적으로 돈이 우상 된 사람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림 자체나 무슨 십자가 모양 자체를 두고 무조건 우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가 예배당에, 간판에, 강단에 '십자가' 형태나 그림이 없으면 이단이 아닌가 하고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데 상징으로 하나 기억하기 좋게 그려 놓아 보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넣지 않으면 예배당이 아니라는 인식은 분명하게 우리 현실 교회의 현재입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분명히 교회의 '십자가' 형태는 상징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우상의 초기 단계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거기에 절을 하지 않고 또 저 십자가가 나에게 복을 줄 것이라는 마음을 실제 얼마나 가지는지, 또 저 십자가를 훼손하면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몸을 사리는 그 중심이 실제 어느 정도인지 모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정죄하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많은 기독교인들이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그 십자가 목걸이 때문에 위안을 받고 위험에서 안보를 받는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벗을 때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들이 어린 신앙이라면 아직 철이 없어 가르치면 된다고 봐 줄 수 있으나, 알만한 신앙이 그렇게 한다면, 그 선을 정하기는 곤란하지만 벌써 우상에 접어들었습니다.
③십자가 문제를 두고는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까지 끼어들어 복잡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스람의 탈레반처럼 모양이나 형상 그 자체를 부인합니다. 예를 들면 여호와의 증인 사회나 국가의 체제도 그 체제 자체를 죄라고 하여 부인합니다. 이 여호와의 증인들이 이단이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전부 이단설로 취급되는데 이 여호와의 증인들의 교리 중에는 국기배례를 거부하고 또 십자가를 우상이라고 부인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오늘 교회의 십자가 사용이 우상 수준에 이르렀다고 지적을 하게 되면 반론하는 측에서는 여호와의 증인에게 영향을 받았느냐고 합니다. 답변하기가 난감해집니다. 그러나 같은 논리로, ‘여호와의 증인들이 성경을 본다면, 교회는 성경을 보지 않아야 하는가?’라고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십자가 사용을 반대한다고 해서 교회는 십자가 사용을 가일층 많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무식한 말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무어라고 하든 말든 그들의 말은 ㄱ 짖는 소리로 취급해 놓고 우리는 우리 연구할 일만 하는 것입니다. 현 우리 교계의 방향이 보이는 예배당의 외모에 그 교회 역량 전부를 다 기울인다고 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대하여는 그 모양과 조각을 절에 가면 부처 그림만큼 그려 놓고 있는 정도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가진 성경을 금박으로 입혀 돌부처에 금을 칠해서 금불상을 만들어놓고 흐뭇해하는 불교인들처럼 나가고 있습니다. 1980년대 초반 이런 현상이 처음 시도될 때는 금불상처럼 금박한 성경이 돋보였는데 지금은 전부가 금박이다 보니까 앞으로 또 무슨 장식을 해서 성경 출판업자들은 돈을 챙기고 교계는 교인들의 마음을 붙들려고 노력할지 모르겠으나, 탄식할 일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5.우리의 신앙이 연약하여 가끔 한두 가지로 도움 받을 때도 있습니다.
①신앙 유익을 위해 눈에 보이는 표시를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교회 그림이 있는 달력을 걸어두어 아이들에게 교회 생각을 한번 더 하게 한다든지, 또는 기도하는 그림을 놓고 기도의 경건한 마음을 재촉한다든지 하는 것을 두고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금할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 알 것은, 그런 그림이나 보이는 표시 때문에 신앙에 도움이 되거나 힘을 얻는다고 하면 그것은 어린 신앙입니다. 정말 어린 신앙이어서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자라게 되면서 말씀의 이치를 알게 되면 저절로 그런 것을 돌아보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어린 신앙이 아닌데도 보이는 그림이나 표시를 통해 신앙에 힘을 얻는다고 하면 그것은 ‘장애’입니다. 20세가 되어서도 아직 네 발로 기어 다닌다면 6개월 된 아이가 네 발로 걸어 다니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②적어도 성경에 직접 관련된 것은 금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을 비롯하여 성경에 직접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 등에 관련된 묘사는 엄금해야 합니다. 이는 성경이 기록하여 우리에게 알리시려는 내용을 변경시키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를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면 그 그림은 성경이 가르친 묘사가 아닌데도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마다 그 그림의 베드로가 눈 앞에 그려지게 됩니다. 우리에게 그렇게 베드로를 기억하도록 만든 그 화가는 자기 그림의 영향력을 키웠기 때문에 성취감을 느끼겠지만, 그로 인하여 성경 기록이 그 그림을 본 사람들 마음 속에서 얼마나 변질되게 했는지를 계산해본다면, 제 정신을 가지고는 손을 댈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성경 기록 이외의 교회역사나 자기 교단의 걸어온 걸음 등을 ‘교회사’라는 측면에서 살펴보고 당시의 어려움을 느끼며 다시 한번 자기 앞날에 닥친 미래를 각오하는 등으로 사용한다면, 마치 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참고 자료 정도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재질문) 교회를 표시하는 것과 우상으로 섬기는 것이 다르다면
고맙습니다. 목사님.
목사님 그러면 결국 교회의 십자가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형상이 아니라 교회를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물로 볼 수 있는거죠?
하나님을 나타내는 형상으로 십자가를 표시했다면 그것은
죄가 되겠지만, 교회건물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죄는 아니라는거죠? 그런것입니까?
하나님을 나타내는 형상은 안돼지만 교회건물을 알기 쉽게
나타내는 상징물이나, 교회 믿는 가정대문 앞에 물고기 표시를 하는 것들은
죄가 되지 않는 것 입니까?
그러면 교회를 나타내는 상징들은 많아도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까?
지금 대표적으로는 교회를 나타내는 십자가와, 크리스찬 가정을 표시하는
물고기상징이 있는데, 더 나아가 크리스찬 고등학생을 나타내는 뱃지를
만드다거나, 크리스챤을 나타내는 뱃지를 만들어도 그것은 죄가 되지
않는 것입니까? 그런 것들을 많이 만들어서 크리스찬을 자랑스럽게 감사
하게 생각하며 세상에 알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생각이 짧은 것 같기도 합니다.
어째든 교회를 나타내는 상징은 죄가 되지 않는다에 대해 명확하게
성경구절을 인용해서 답변을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니면 그런 것은 성경에 없지만 당연한 것입니까?
그리고 신약의 사용주의 원칙에 대해서 좀더 알고 싶습니다.
처음듣는 용어라 좀 생소합니다.
(답변) 출20:4-5 본문이 우상죄와 표시조각물을 구별하는 기준입니다.
1.'십자가' 등의 조각물이 우상죄가 되는 것은 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 우리에게 복을 주고 화를 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모르는 미개인들은 돌이나 나무나 금으로 조각물을 만들고 그것이 자기들에게 복도 주고 화도 준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출20:4-5의 우상죄에 해당됩니다. 우상의 여부는 그 성구에서 '절하고' '섬기는' 것으로 말씀했습니다.
절하고 섬기는 대상으로 만들면 '우상'이고, 꼭같이 조각물을 만들어도 절하고 섬길 존재로 만들지 않으면 우상이 아닙니다. 절하고 섬긴다는 의미는, 그 존재가 인간보다 높은 존재로 인간에게 복과 화를 주기 때문에 그 존재를 섬기고 절하여 그 존재에게 복을 받고 그 존재에게서 화를 받지 않기 위한 것입니다.
인간이 섬길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무형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가 고개를 숙여 절을 한다면 어느 방향으로 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 외에 다른 존재에게 절하고 섬긴다면 그것은 하나님 외에 나에게 복과 화를 주는 존재로 나 이상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니 그 이름을 우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하나님 바로 밑에 있고 만물은 다 우리 밑에 있는 존재입니다. 어떤 조각물도 어떤 형상도,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다 우리 인간 밑에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조각물에게 절을 하고 섬긴다면 그것은 그냥 표식일 리가 없습니다.
2.따라서 출20:4-5 말씀에 의하여 절하고 섬기는 존재가 아닌 것은 우상죄가 아닙니다.
인간에게 복이나 화를 준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두고 보기 위해서 만들거나 식별의 표시로 만든 뺏지 개념의 조각물들은 우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교회 표식으로 사용하거나 기독교의 팻말처럼 사용한다면 그것은 우상죄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교회가 교회를 나타내는 표식물을 만들어 사용해도 되느냐는 문제는, 꼭 따지려면 우상죄가 아니라 교회가 왜 세상처럼 표식물을 흉내내느냐고 별도로 따질 문제입니다.
십자가나 물고기를 교회 표시로 다는 것은 우상죄가 아닙니다. 다만 교회도 세상처럼 그렇게 뺏지를 달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해서 교단별로 마크를 만들고 교회 내 각종 단체들이 깃발을 만들어 표시를 내는 것은, 우상죄라는 것보다는 무엇이든 세상을 흉내내고 따라가는 '속화'면에서 큰 문제입니다. 우상죄를 심장마비 계통의 질환으로 비유한다면 세상을 닮는 속화죄는 암병과 같습니다. 속화의 죄는 그 화가 우상죄만큼 다급하게 임하지는 않지만 쉽게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교회가 통째로 공중분해되는 문제입니다.
세상에서 남다른 좋은 회사나 일류 학교 또는 남들이 부럽게 생각하는 회의 회원이 되면 마크를 만들어 붙이게 됩니다. 이 표식은 내부적으로 단결과 친밀을 도모하고 밖으로는 자긍심을 가지게 하는데 실은 과시용입니다. 교회가 세상처럼 보이는 표식으로 내부 단결을 도모하고 외부적으로 과시를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신앙적일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스스로 죄인 중의 괴수라며 고개를 들지 못했고 복음을 더 잘 전하지 못해서 빚진 사람같다며 늘 부족감을 느꼈는데, 오늘 우리는 바울보다 천배 만배 부끄럽게 믿고 있는데 우리가 뺏지를 맞추어 달고 다니며 세상 다른 사람들에게 또 다른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00교회 조직원'이라는 것을 나타낸다면, 무슨 뒷골목 골목대장 밑에 따라 다니는 아이들도 아니고 무슨 양아치도 아닌데 너무 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망각했다고 봅니다.
백영희신앙노선에서는 교회차량에도 교회 이름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승합차량으로 유아납치 사건이 잇따라 일어나기 때문에 심방가는 동네에 납치차량이 아니라는 표시를 달기 위해 아주 조그만하게 붙인 정도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교회 이름과 표시를 내놓고 개인적으로나 단체로 다니면서 남들에게 빛을 보이는 것보다는 그 반대의 경우가 훨씬 많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죄되지 않는 정도에서는 그런 표시를 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오히려 더 빛이 되지 않겠나 하는 것이 이곳의 신앙노선입니다.
3.신약의 '사용주의'란
일반적으로 나쁜 것으로 인식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재벌' '권력' '돈' 이런 것들로 예를 든다면,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그것을 가지기 위해 잘못된 행동을 한다면 그 행동이 잘못된 것이고, 또 그것을 가지고 잘못 행사를 한다면 그 행동이 잘못된 것이지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구약에서는 아예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 해서 손도 대지 못하게 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신약은 그런 제한이 거의 없다 할 정도입니다. 재벌이라는 그 자체가 잘못 된 것이 아니고 재벌이 그 재벌의 돈과 지위를 바로 사용하면 의가 되고 복이 되고, 그 재벌의 돈과 지위를 잘못 사용하면 죄가 되고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구약에는 제사장은 무조건 하나님의 종이므로 그를 맞상대하여 비방하면 하나님께서 왜 나를 비방하느냐고 매를 들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목사라는 인물 자체는 별 의미가 없고, 그 목사가 목사 노릇을 바로 하면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나 목사라도 목사 노릇을 잘 못하면 마귀의 종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 주신 자연 만물 눈에 보이는 모든 용품 이런 것들은 바로 사용하면 복이고 잘못 사용하면 화가 되는 것이니 '사용'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는 것을 '신약의 사용주의'라고 합니다. 어떻게 사용하든 그 사용에 상관없이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신약에는 없다고 아시는 것이 거의 다 맞습니다.
심지어 술이나 담배나 마약이나 춤이나 도박 같은 것도 바로 사용하면 복이고 잘못 사용하면 화가 되는데, 이런 것들의 경우는 바로 사용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고 그대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것에 손을 대면 결국 패가망신을 하게 되기 때문에 아예 그 자체가 죄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론적으로 엄격하게 말한다면 그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너무 그런 경우가 많아서 강조를 지나치게 해야 할 필요가 있어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