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질문) 예배 때 여자는 두건을, 뜻을 돌이키셨다는 뜻은? 3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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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질문) 예배 때 여자는 두건을, 뜻을 돌이키셨다는 뜻은? 3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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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질문) 예배 때 여자는 두건을, 뜻을 돌이키셨다는 뜻은? 3808

질문1.

예전에 사도시대 때에는 여자들이 머리에 두건을 쓴 것 같은데,
사도바울도 머리에 두건을 쓰라고 한 것 같은데 지금의 개신교는
왜 안 쓰는건지요? 천주교는 아직도 여자들은 머리에 두건을
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쓰도 되고 안 쓰도 되는건지?
어느 쪽이 옳은 건지 궁금합니다.


질문2.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뜻을 돌이켰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예를들어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는데 그 때에 원래 하나님의 뜻은 히스기야가
죽는 것인데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돌이켰다는 구절이 있는
데 이 구절을 가지고 알미니안주의 사람들이 칼빈의 예정은 틀렸다고
그럽니다. 이런 구절들은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또 하나 참고하시고, 그리고 보충 설명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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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여자가 머리에 무엇을 써야 하는 문제와 관련 다음 자료도 잠깐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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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0번, 건설구원에서 매일 노력할 많은 면을 말씀했습니다. 0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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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질문 내용이 천주교와 관련 된 것이므로, 천주교를 중심으로 관련 성경 문제를 살핍니다.

①질문 내용에 대한 답변이지만, 질문자가 아니라 천주교인들을 직접 상대하여 발언합니다.

이곳은 변론을 위한 변론은 최대한 삼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주교와 같은 타종교나 이단을 상대할 때는 상대방이 정상적으로 대화를 하지 않기 때문에 불필요한 대화를 줄이자는 취지로 1-2가지 변론적 표현을 사용하여 오가는 변론이나 대화의 양을 줄일 때가 있습니다.

이번 질문자를 천주교인으로 봤다는 것은 아닙니다. 질문자께서 다른 천주교인들의 논리를 듣고 궁금해서 이곳에 질문해 보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질문자를 상대로 변론하는 것이 아니고, 질문자께서는 가운데서 그냥 보고만 계시고, 이곳 답변자가 천주교인들에게 직접 이 문제에 대하여 답변한다고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즉, 이번 답변 내용은 질문자의 질문 내용에 대하여 답변을 하지만, 답변의 내용은 질문자가 아니라 고전11:5에 대하여 천주교인들에게 직접 답변하는 내용이라는 점을 양해하셨으면 합니다. 질문하신 분은 천주교의 발언에 대하여 스스로 답변하기가 어려웠던 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②고전11:5에 의하여 두건을 쓰려면, 눅18:1 엡6:18에 의하여 24시간 두건을 쓰야 합니다.

'기도'하고 '예언'할 때 남자는 쓰지 말고 하라는 것이 고전11:4절이고, 여자는 머리에 반드시 무엇을 쓰야 한다는 것이 5절입니다. 그리고 성경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천주교니까 이렇게 구체적으로 하나씩 따져보면 그래도 천주교가 더 성경적이지 않느냐는 내용으로 질문을 읽었습니다.

성경이 명령했기 때문에 천주교는 여자들에게 머리에 무엇이든 쓰게 하고 있다면, 같은 논리로 천주교는 '눅18:1' '엡6:18' 등의 말씀대로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 문구 그대로를 눈에 보이도록 반드시 지켜야 바른 신앙이라고 천주교가 주장한다면 천주교 여자분들은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을 지키기 위해 24시간 기도해야 하고 24시간 머리에 무엇이든 쓰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천주교 여자분들은 머리를 감지 말아야 하고 목욕탕에도 갈 수 없습니다. 그리 된다면 성경이 말한 대로 항상 기도하라는 명령을 어긴 것이 되고, 항상 머리에 쓰라는 말씀을 어긴 것이 됩니다.


③이곳은 실제 말씀대로 살려면 너무 불편하다 해서 '축소해석'을 하지 않습니다.

실제 말씀대로 살려면 너무 어려워서 말씀을 에누리하고 건너뛰고 하는 것이 현 교계의 실상입니다. 그러나 백영희신앙노선은 어렵고 쉽고를 떠나서 먼저 원래 성경의 가르침을 성경 전체로 해석하고 파악한 다음, 성경의 뜻이 꼭 그렇다면 어떤 희생과 불편이 있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늘까지 내려왔습니다.

마찬가지로 머리에 여자들은 무엇이든 쓰야 한다는 이 고전11:5 말씀을 지키려면 여자분들이 너무 불편하겠다 해서 여성인권보호를 위해서 성경을 삭감하지는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천주교는 인권의 수호자로 자처하며 현대사회에서 인권과 민주를 천주교의 등록상표처럼 사용하며 세계각국에서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 인권을 남성과 동등하게 만들려고 갖은 투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번 질문 내용은 교회 내의 전형적 성차별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천주교는 여자들 머리에 수건 씌우는 문제를 두고는 고전11:1-16 내용이 철저하게 남성절대주의 남성우월주의라하여 성차별 개선을 위해 이런 주장을 앞서 철회해야 논리적으로도 맞습니다. 천주교의 1천여년간 반대파 숙청 등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가장 철저한 인권유린까지도 거론하고 싶지만 내용이 길어질 것이고, 이런 몇 표현이면 천주교의 철저한 모순을 파악하실 것 같아서 원래 질문 내용으로 집중하겠습니다.

여자가 불편하든 남자가 불리하든 상관하지 않고 일단 성경을 성경대로 먼저 살핀 다음, 그 연구 결과에 따라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사는 것이 이곳 노선입니다. 또 오늘처럼 지나치게 타락하기 이전 원래 우리 기독교는 천주교로부터 16세기에 벗어나기 위해 수도없는 생명을 내놓았습니다. 여자들 머리에 수건씌우는 문제는 당시 여자의 값을 사람 값으로 치지 않았을 때 여자들에게 그런 수고를 시키는 것이 기독교가 너무 어려워서 시키지 못할 일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기독교가 천주교로부터 벗어날 때 자기 교회 여자들 머리에 수건 씌우는 문제보다 천배 만배 더 어려웠던 일은 교황청을 어기면 화형 등 여러 종류로 처형되는 것이 더 어려웠습니다. 그런 생사를 넘고 온 기독교에서 여자들 머리에 수건 둘러쓰고 폼내는 것쯤이야, 만일 꼭 그 성구가 그 내용을 가르친다고 생각했다면 천주교보다 더 철저히 했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천주교와 성경을 읽고 깨닫는 차원이 달라서 그랬을 뿐입니다.


③구약과 신약의 차이점을 천주교는 헷갈렸고, 기독교는 바로 알고 있습니다.

천주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을 세밀하게 말씀드리려면 너무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 몇 가지를 말씀드린다면, 교황 무오설과 66권 외에도 성경을 인정하는 것과 인간노력으로 천국간다는 구원론 등이 있는데, 이런 문제는 신학적으로는 큰 문제지만 일반 교인들에게는 이런 문제보다 성경을 구약의 율법적으로 상대하라고 가르치는 내용이 더 크게 와 닿게 되어 있습니다.

천주교는 여자들 머리에 수건을 씌우는 것뿐 아니고, 교황의 옷을 구약 제사장이 입던 성의를 흉내내서 입혀놓고 활동하게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어떤 근거도 찾을 수 없는 추기경이니 대주교와 같은 법을 만들어 이런 서열과 권위와 활동을 성경 명령과 같은 차원에 놓고 지키고 있습니다. 신부들의 결혼금지법도 그들에게는 성경법과 같은 차원에서 지키는데 이런 내용은 아예 성경에 없습니다. 바울은 결혼을 하지 않았고 베드로는 결혼을 했습니다. 천주교가 자랑하고 항상 써먹는 1대 교황 베드로는 결혼한 사람입니다.

구약은 외부 외형 외모까지 1차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외부적으로 지킬 명령을 주신 이유가 무엇인지는 2차적으로 알아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신약교회는 외형 외모 외부적으로 지켜야 할 일은 십계명과 십일조와 성찬 등 몇 가지에 그치고 나머지 말씀들은 왜 그렇게 말씀했는지 그 내용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어떤 문제는 외부적으로까지 지켜야 하고 어떤 문제는 그 내용만 지켜야 하느냐는 것은 각 교회와 성도들이 자기 신앙양심과 성경깨달음의 수준에 따라 자신들이 결정합니다. 다만 성경을 국어사전이나 다른 세상 상식을 가지고 해석하지 않고, 성경은 성경 전체를 가지고 한 성구를 해석하고 따져보고 살펴본다면 세상 사람이 세상 상식으로 성경을 읽을 때와 다른 깨달음과 교훈을 알 수 있는데, 기독교가 머리에 수건쓰는 일을 강제하지 않고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로 자유하게 한 것은, 이런 문제는 성경이 반드시 외형적으로 행동으로까지 꼭 지킬 계명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④이번 질문을 확대하게 되면 신약 성경 전체를 해석해야 하기 때문에 답변을 줄이겠습니다.

이번 질문 내용은 마태복음부터 계시록까지 전 성경을 다 해석해야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따라서 질문자의 시간과 읽는 일반인들의 입장까지 고려해서 이번 질문 내용인 여자 머리에 수건 씌우기라는 한 가지만 가지고 답변하겠습니다. 이 문제를 잘 살펴 보시면 나머지 문제는 같은 방법으로 이곳을 찾는 분들이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여자는 기도할 때는 예언할 때 머리에 무엇이든 쓰라는고 말씀하신 이유는 고전11:1-16 말씀 전체에서 알 수 있듯이 여자는 자기가 최종 결론을 내리거나 결정을 하는 머리 노릇을 하지 않고 남자가 여자를 지도하고 머리 노릇하도록 역할을 따로 맡겼으니 그 명령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머리에 수건을 쓰도록 한 것입니다. 따라서 여자가 항상 남자의 지도를 받아야 하도록 하나님께서 여자를 만들 때부터 그렇게 만들어놓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잊지 않을 수 있다면 수건을 쓰지 않아도 되고 만일 그렇게 기억하는데 유리하다면 쓰도 되도록 한 말씀입니다.

만일 이 본문을 실제 생활에서 행동으로 그대로 지킬 명령으로 주셨다면 항상 기도하라는 눅18:1의 말씀에 의하여 이 행동은 순종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이 본문은 그대로 행동하는 그 행동 자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명령하신 명령을 가지고 왜 이렇게 가르쳤는지를 살펴 그 말씀의 뜻을 지키라는 것으로 순종할 말씀입니다.


⑤이 글 '1번'에서 제시한 자료는 '세족식'에 관련 된 것입니다.

요13:1-15 에서 예수님께서 저녁 먹는 도중에 일어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겼습니다. 그리고 14절에서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앞에서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을 성경이 명령한 것으로 알고 실제 기도와 예언 때마다 수건을 쓰고 있다면 천주교는 형제를 만날 때마다 발을 씻기든지 아니면 최소한 저녁식사 때는 식사 도중에 늘 다른 사람의 발을 서로 씻겨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서로 발을 씻기는 문제를 두고 그것이 구원에 필요한 주님의 명령이라고 한다면 그 정도 수고로 구원얻는 것은 공짜와 다름없고 그것은 학교 다니며 수학이나 영어공부하는 것에 비교한다면 너무 쉬워서 아무 수고라고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그 정도 수고로 천국을 준비할 수 있는 순종이 된다면 정말 누워서 떡먹기입니다. 누워서 떡먹는 수고가 귀찮아서 기독교는 머리에 쓰는 것을 하지 않고 천주교는 그렇게 죽을 고생을 하며 천국준비를 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천주교는 성경 어떤 말씀도 구약적 율법으로만 상대하여 성경의 내면 교훈과 뜻은 돌아보지 않고 외형으로 지키기만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여 인간이 노력해서 구원얻는 길을 개발해왔고 그래서 무엇이든 철저히 외형적이고 외식적이고 외부적으로 보이는 수고에만 주력했습니다. 물론 지도부가 천주교 운영에 필요한 사안을 선택적으로 찍어서 어떤 것은 꼭 해야 한다고 부과를 하고 어떤 것은 또 면제를 시키고 있습니다. 그 예는 상식적인 것이어서 다른 교회 홈을 찾아 질문하면 그 사례를 수도 없이 나열하고 설명을 잘 해 주실 것 같습니다.

제자들에게 발을 씻기신 다음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신 요13:14 말씀은 예수님이 발을 씻기신 그 이유와 내용을 살펴서 다른 사람이 살아가면서 묻히는 죄를 털어 없애는 사죄활동에 전력을 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발을 씻는 의식을 예수님 재림 때까지 신약교회가 계속 지켜야 하는 것으로 명령한 것인지?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을 의식적으로 지켜야 할 것이라고 말씀한 것이냐는 것이 요13장에는 나타나있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자 머리를 씌우라는 고전11장의 말씀도 그런 의식을 교회가 지켜야 할 의식으로 삼아서 재림 때까지 교회의 여성도 모습은 그런 모습을 고착해서 살아가도록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시행시킨 것인지, 아니면 그 말씀이 무엇을 가르치는지를 살펴 그 말씀대로 항상 자기 신앙의 지도자에게 순종하는 자세를 견지하라는 것인지? 이것이 문제입니다.

예로 든 이 2가지 문제에 있어 해당 본문은 구약에 수없이 만들었던 제도와 의식을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께서 다 없애버렸는데, 이제 신약에 또 다시 구약처럼 그런 수많은 의식과 제도를 만들어 구약과 또 다른 형태의 제도식 신앙, 의식적 신앙, 형식적 신앙을 세운 것인가? 이 면을 생각하면서 구약과 신약 전체를 차분하게 살펴 보신다면, 신약은 근본적으로 격식과 제도를 다 없애 버리고 복음의 내용과 실제 생활을 강조했고 구약은 일단 외형적 제도와 격식을 무조건 지켜야 하는 때로 운영하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유는 구약은 어려서 몽학선생 아래 있는 아이와 같았으며 그래서 눈에 띄이는 제도와 격식을 우선 지키게 한다음 그 속에 들어 있는 진정한 의미는 뒤에 알게 했으며, 신약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구약의 모든 격식과 제도가 가르치려 한 것이 완료되었고 알게 되었으므로 이제 대속 받은 성도가 진리와 영감대로 자기 현실에서 자기에게 대한 개별 명령에 순종하여 각자 자기가 해야 할 천국준비를 따로 마련해 나가는 시대라는 것이 기독교의 깨달음입니다.

이렇게 성경 전체를 전면적으로 살펴 성경이 참으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았기 때문에 신약 교회는 세족식이나 여자의 머리에 수건을 씌우는 것은, 각 교회와 교인들이 그 말씀이 가르치는 구원의 지도 원리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죄에서 벗어나도록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을 생활 속에 지켜 순종하라고 깨달은 것이 기독교입니다.

천주교는 무엇이든지 격식과 제도를 만들어 사람을 외형으로만 옭아매는 것만 1500여년 개발하였기 때문에 아예 기독교에서 벗어나 서양불교가 되었습니다. 격식과 제도를 만들면서 자기들대로는 논리대로 이치에 맞아야 양심이라도 있겠지만 자기들의 논리에 의해도 너무 황당한 것이 많습니다. 교황의 그 복장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요? 교황이 교회를 지배하고 천국문을 열고 닫는 것까지 마16:19을 그대로 해석하여 교황이 인간 구원을 결정한다고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3.천주교와 같은 이단이나 다른 종교에 대한 문답은 몇 번 이상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이곳을 찾는 분들의 질문에 대하여는, 이곳 답변자 아는 범위에서 힘대로는 최선을 다하려고 이곳을 운영하고 있지만, 답변자의 유한한 힘과 시간을 가지고 이왕이면 건설에 사용되는 문제에 주력했으면 합니다. 천주교와 같은 이단과 다른 종교의 문제점은 이곳 홈이 아니라도 한국교계에 수많은 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이 넉넉히 설명할 수 있고, 특히 이곳보다 더 자세한 자료로 안내를 할 수 있습니다.

혹 자료와 논변은 많으나 이해가 곤란한 부분이 있으면 그곳 자료를 이곳에 인용해서 제시하면 이곳에서 해당되는 어려운 부분만 설명했으면 합니다. 지금 천주교에 관련된 질문이 자꾸 누적되고 있는데 이는 이곳 홈이 원래 주력하려는 방향과 다르기 때문에 질문을 대할 때마다 고통이 많습니다. 천주교와 같은 이단의 잘못은 그냥 1-2가지 핵심 사안을 가지고 판단한 다음, 나머지 문제는 아예 쳐다보지 않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주교에서 잘못된 말을 한 마디 할 때마다 그것을 알아보고 해명하느라고 보내는 시간은 너무 아깝고 허송하게 됩니다.

바로 악령이 노리는 바입니다. 속으면 좋고, 안 속으면 해명하느라고 건설에 대한 시간을 뺏기게 되므로 악령의 묘한 궤계입니다. 어떤 것은 싸워 이겨야 하고, 어떤 것은 싸움 자체를 하지 않아야 이기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싸움은 싸워서 이기면 작은 것에 이기고 큰 것에 지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천주교의 잘못을 자꾸 캐고 들어가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즐거움 중에 하나인데, 논리에서 이겼다고 즐거워하는 기독교인을 멀리 지켜보며 즐거워 하는 귀신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참고) 수건을 써야 하는 이유 및 쓰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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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수건을써야하는이유가무엇인지?
답변 : 예배 때 쓰는 여자분의 수건은 내 머리 위에 남자를 늘 모시고 있다는 뜻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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