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질문) 보조반사가 너무 힘들고 지겹습니다. (쉬/1679)

주제별 정리      

                           1. (질문) 보조반사가 너무 힘들고 지겹습니다. (쉬/1679)

서기 0 21
1. (질문) 보조반사가 너무 힘들고 지겹습니다. (쉬/1679) 우연히 번개 불에 콩 구워 먹듯이 갑작스레 생각할 겨를도 없이 1달전 부터 보조반사를 시작한 왕 초보 보조반사입니다. 1달 정도 밖에 안됐는데 벌써부터 힘들고 그만둘까 하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꼴에 하나님의 무서움은 알아가지고 그만두면 하나님께 매 맞을 것을 생각하니 무서워서 그만두지도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정말 힘듭니다. 목사님께서 제 글을 보고 짐작하시겠지만 전 담배, 술, 뭐 세상친구들과 어울리며 똑같이 세상 사람들과 별 다를 것 없이 사는 신앙도 너무도 약한 놈입니다. 그러다 보니 토요일, 주일이 오는 것이 무섭습니다. 감사 와 기쁨으로 해야 할 보조반사 일을 이렇게 억지로 계속해야하니 전 도대체 어찌해야 하는지 갑갑합니다! 주님께는 넘 죄송하고요. 아무튼 뭐 다른 방법이 없을까 해서, 가령 교통지도를 한다던지 안내만 한다던지 방법 좀? (답변) 어렵기는 하지만, 알고 보면 그렇게까지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 물 건너 불구경처럼 남의 말로 들리지 않습니다. 답변자 역시 그러했습니다. 답변자는 예배만 보는 것도 너무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남이 당하는 고통이 아니라 내가 당했던 경험이므로 시간을 갖고 말씀을 드리려면 끝도 없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드릴 말씀이 너무 많아서 막상 답변할 양은 아주 줄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내일 중에 참고할 몇 가지 내용을 올려보겠습니다. 기다리실 것 같아, 서론의 말씀을 먼저 드렸습니다. ----------------------------------------- 본 답변을 드리지 못하고 늦어져 죄송합니다. (04.7.17. 10:00) 1.반사 활동이 어려운 이유는 크게 2가지 정도로 생각합니다. 첫째, 맡은 학생이 '안 믿는 가정의 학생'이고 그들을 심방해야 하는 경우와 둘째, 가르치는 교재가 백목사님 작성한 공과인 경우입니다. 믿는 집 아이들만 가르치거나 믿는 집 학생들이 데려오는 친구들만 가르치는 경우라면 반사 활동이 어려울 리가 없습니다. 또 일반교회가 초등학생용으로 만든 계단식 공과라면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백영희신앙노선의 반사활동이 어려운 것은, 반사의 활동이 근본적으로 안 믿는 가정의 학생을 전도하고 심방하는 것이며 또 그들에게 장년반 설교가 요약된 내용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안 믿는 집 아이들을 주로 상대하여 전도 심방 설교 하는 것은, 목회자들로서도 가장 어려운 시기이며 가장 힘든 목회형태인 '개척초기'와 같습니다. 신앙초기에 반사를 하게 되면 목회자들도 가장 어려워 하는 '개척교회목회'와 같은 부담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정식으로 반사나 보조반사를 해보셨다면 질문자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누구든지 다 거쳐 봤을 것입니다. 2.보조반사나 반사를 정식으로 하려면, 어렵고 힘든 것은 기본입니다. 구구단을 외우는 수고와 고통을 겪지 않고 곱셈과 나눗셈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한글 알파벳을 배우지 않고는 어떤 책도 읽을 수 없습니다. 보조반사로 처음 활동하면서 겪는 고통은, 예수 믿는 사람이 진정으로 예수믿는 사람으로 자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겪어야 할 필수 과정입니다. 주님 희생으로 내가 구원 받은 것을 기억하여 우리도 다른 사람 구원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이 우리 평생 노력할 모습입니다. 일반교인으로서 다른 사람 구원을 위해 수고하는 모습을 가장 쉽게 가장 간단하게 시작해 볼 수 있는 것이 주일학교 반사입니다. 그 반사를 따라 다니며 그 반사 밑에서 보조반사를 하는 것은 믿는 사람이 해야 할 첫 수고요 구구단을 외우고 알파벳을 익히는 것과 같은 신앙의 첫걸음입니다. 3.누구에게나 다 힘드는 과정입니다. 힘든다고 생각하면 몇 배나 힘이 들고, 이왕 한번 거쳐야 하고 또 잘 배우고 나면 힘든 것이 아니고 반사만큼 재미있고 보람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단계가 있습니다. 또 지금 힘든 것은 원래 그만큼 힘드는 것이어서 그렇게 힘드는 것이 아니고, 반사일에 대하여 알아야 할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런 면이 있습니다. 가까이 계시는 분이면 시간을 갖고 구체적인 면을 하나씩 사례로 들어가며 설명을 드리겠는데, 짧게 답변하는 곳이어서 최대한 간추려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꼭 해야 할 일이니까 열심히 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꼭 힘들어서 고통스런 부분은 이유와 해결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보조반사 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가장 어려운지, 한 가지씩 문제를 구체적으로 놓고 차분하게 풀어가시면 해결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알고 보면, 그렇게 즐겁게 하는 수준은 안 될지라도, 적어도 할 만하다는 정도의 신앙에 이르는 데까지는 쉽게 될 것 같습니다. 4.처음 적을 때 자세하게 많이 적으려고 하다가 글을 줄이게 되었습니다. 질문하신 내용은, 일반 교인들이 다른 사람을 전도하거나 심방할 때 주의할 점 미리 알아 두셔야 할 점 등과도 관계가 있고 목회자들이 시험에 들 수 있는 문제와도 연관이 있으며 교회 내에서 여러 사명을 맡고 있는 분들에게서도 발견될 수 있는 내면 갈등이기 때문에 모든 면을 고려해서 자세하게 적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질문하신 분에게 일차적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거치지 않으면 안 될 문제이니 피하려고 생각하지 말고, 그대신 알고 보면 그렇게 힘들어서 못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면이 문제인지 한 가지씩 놓고 차분하게 풀어보시기를 권하는 정도로 이번 답변은 일단 마무리하겠습니다. (재질문) 자세하게 답변해 주셨으면... 일반교인, 목회자, 교회에서 직분가진 자, 모두를 고려해서 자세하게 답변해 주시면 안 될까요? (답변)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무력감과 압박감을 크게 느낄 때가 있습니다. ------------------------ 먼저 /문의답변/ 게시판의 질문을 답변하다가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최소한 질문이 들어온 다음날까지는 답변을 하겠다는 생각이 있어 노력하고 있으나 혹 답변이 늦어질 수 있어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 1.신앙의 성장과정에서 나타나는 일반적 모습 ①신앙생활 초기 또는 중간에 참으로 즐겁게 믿을 때가 있습니다. 처음 교회를 다니면서 바로 그렇게 즐겁게 믿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냥 남들에게 이끌려 교회를 무료하게 다니다가 어느날 갑자기 신앙생활을 힘있게 할 수 있는 은혜를 체험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신앙을 자발적으로 은혜를 받아서 즐겁게 하는 시절이 한번씩 거쳐가는 것은 공통적입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은 주로 신앙 초기에 은혜생활을 했던 경험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은혜를 주실 때는 신앙생활 전반에 큰 기쁨을 가지고 교회를 다녔을 것입니다. 교회가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수고하고 싶고, 믿는 사람을 만나면 누구보다 반갑고, 왠지 성경도 보고 싶어지는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평소 늘 듣던 그 설교인데도 그 시절에는 은혜스러웠고, 세상 생활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찬송가를 늘 부르며 살던 때가 있습니다. 이런 시절을 렘2:2에서는 첫 사랑에 눈이 먼 두 남녀의 기쁨과 어린시절 친구가 좋아 멋모르고 행복하기만 했던 시절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공부의 부담도 부모의 걱정도 모르고 그냥 좋던 때를 말합니다. 닥칠 어려움은 눈앞에 전혀 보이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재미에 푹 빠진 시절을 가르칩니다. 신앙의 첫 은혜를 받고 교회를 다니는 분들을 본문은 그렇게 알기 쉽게 비교하고 있습니다. ②즐거웠던 때가 지나가고 신앙생활이 무거운 짐으로 바뀌는 때가 있습니다. 거의 모든 교인들에게 해당되는 패턴입니다. 첫 은혜에 감격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신앙의 침체기가 찾아옵니다. 겉으로는 이전 첫 은혜를 받고 힘있게 활동하던 그 모습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남들은 잘 모르고 여전히 신앙생활을 모범적으로 하는 줄 아는데, 정작 본인은 식어지는 내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너무 앞장서서 활동을 했기 때문에 이제 뒤로 빠질 수도 없는 정도가 되었고 또 질문자께서 말씀하시는 그런 여러 직책들을 맡았기 때문에 책임감 없이 한순간에 사표낼 일도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첫 은혜 시절에는 직책이나 남들의 시선에 상관없이 내면에서 솟구치는 감사와 기쁨으로 죽도록 충성하고 교회를 찾았는데, 이제는 그 내면이 식어져서 겉으로는 말과 행동을 이전처럼 해도 나 자신이 맥빠진 소리와 힘빠진 활동 때문에 신앙이 무력해지고 압박감만 자꾸 가중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③그리고 이런 상태가 조금 더 진행되면 두 종류의 신앙모습으로 고착됩니다. 우선, 교회 내의 주력 교인으로 살아가되 행정관료처럼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은혜를 받고 활동을 할 때 교회 내에서 여러 중책을 맡아서 그 후 자기 내면 신앙이 식어져도 교회 분위기 때문에 식어진 신앙을 따라 직책을 내놓거나 밑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늘 그 자리를 유지하고 오히려 연륜이 쌓여졌다 해서 교회 내 위치는 점점 올라가는 경우가 하나 있습니다. 마치 공무원이 되고 교사가 된 사람들이 처음에는 열의를 가지고 넘치는 수고를 아끼지 않다가 도중에 처세술과 눈치를 배워서 적당히 움직이며 세월에 따라 자기 위치를 조금씩 높여 가는 경우입니다. 또 하나는, 교회의 재적 교인 또는 방청인과 같은 위치로 살아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한 교회의 교인 통계를 낼 때 기본식구로 늘 이름이 올라가고 예배 때는 뒷자리에 앉아서 손님처럼, 방청객처럼, 선거에 동원된 주민처럼 평생 신앙생활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과거 한때 은혜를 받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 적이 있었고 그런 때를 기억하고 있으나 지금은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이제 양심이 있어 교회를 다니지 않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교회의 중책을 맡아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최대한 피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에 분규가 일어나서 상처를 받았든지, 교인끼리 사적 관계에서 공연히 혼자 속으로 큰 상처를 받았던지, 또는 세상생활 속에서 큰 일을 겪으면서 힘을 잃은 경우입니다. ④대개 이런 분들은, 최근에 은혜를 받고 열심히 뛰는 분들을 헷병아리로 봅니다. '나도 과거에 너처럼 그렇게 했던 시절이 있었지!' '좋은 때다, 멋모르고 그럴 때가 좋았지!' '나도 처음에는 목사 설교를 진짜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지!' '저 햇병아리, 멋 모르고 설치네. 조금 더 지내 보거라!' 교회를 다닌 세월이 오래될수록 교회내에 고참교인이 됩니다. 그들 앞에 이제 막 은혜받고 이전 자기처럼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을 보며 이제 말씀드린 이런 마음과 자세를 갖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자기 과거를 생각하며 지난날의 추억으로, 어떤 분들은 조롱으로 후배교인을 지켜보게 됩니다. 이런 원리는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이 이제 막 사랑에 미친 남녀를 보며 자기들과는 이제 상관없는 남의 일로 또는 옛날 추억으로 상대합니다. 후배 직원에게 선배 직원들이 자기들은 노숙해서 꾀를 부리고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요령을 몰라서 철없이 충성을 한다고 생각하고 속으로 조롱합니다. 교회 내에서 후배 교인들이 은혜를 받고 열심을 낼 때 선배 교인이나 원로 교인들이 이런 자세를 가집니다. 그리고 세상 원리와 이치까지 동원해 가며 심지어 어린 교인들에게 자중하라고 권면까지 합니다. 어린 신앙의 마음 속에 솟구치는 성령의 불길을 끄는 소방수, 하나님께서 참으로 진노하실 일인데, 교회 현장에서는 너무 흔한 일입니다. ⑤숫자는 참으로 적지만, 참 신앙은 사40:31 본문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세상은 그 속에 생명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쳐지고 늙어지고 힘이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요령을 부리고 자기 이익만 교묘하게 챙기는 처세술로 살지 않을 수가 없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그 속에 참 생명이 있기 때문에 바로만 믿고 노력하면, 갈수록 힘있게 더욱 열심히 충성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어린 시절의 충성은 철이 없어 효율이 떨어졌으나 이제는 익숙하게 충성하여 처음 은혜를 받고 힘쓰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신앙으로 자라갈 수 있습니다. 신앙이 참 신앙의 모습을 갖는다면, 평생 새힘을 계속해서 공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끝없이 창공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또 지칠 줄 모르고 달려가는 뜀박질 선수처럼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은 처음은 강하고 뒤는 지치게 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산 생명의 이 길은 가면 갈수록 더욱 더 힘을 가지고 자라갈 수 있습니다. 2.신앙생활을 하는 일반 교인들이 신앙의 무력감과 압박감에 시달리는 것은 ①두 번의 질문을 통해 교회 내 여러 직책을 예로 들며 그 이유를 질문하고 있습니다. 보조반사를 하는 분이 그 맡은 일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 고통을 느낀다고 말씀하셨고 또 다른 분께서는 반사 뿐 아니라 교회 내 여러 직책이 있는데 어느 직책이든지 그런 고통과 무력감 속에서 맡은 일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질문자들께서는 일반 교인들의 직책을 질문하셨지만 사실 목회자들도 교인 몰래 목회자들끼리만 눈치를 채고 아는 그런 고통을 느끼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교인이든 교역자든 상관없이 신앙세계의 원리는 동일합니다. 이번 질문의 첫글을 올린 '보조반사'의 경우는, 아직 신앙의 첫 은혜 시기조차 갖지 못한 분이신가 하는 짐작을 가집니다. 그래서 첫 질문에 대한 답변은 그런 경우를 전제하여 안내했습니다. 이번 두번째 질문의 경우는 일반 교인들 전체를 두고 질문하셨기 때문에 답변이 많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②맡은 직책이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침체기에 들어서면 누구든 그런 고통을 느낍니다. 일반 교인 거의 대부분이 첫 은혜의 시기를 한번씩 갖게 되고 그후에는 침체기가 있는데, 첫 은혜의 시기 이전이나 그 이후에 직책을 맡게 되면 그때는 첫 질문자와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교회 내에서 맡은 직책 중에서도 순수한 복음 직책을 맡은 경우는 이런 현상이 굉장히 크집니다. 교회 내의 직책 중에서도 운전이나 전화 안내나 서무 처리나 회계처리 등은 복음운동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일들입니다. 이런 일들은 말하자면 불신자를 시켜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 내 직책 중에서 전도, 심방, 설교, 봉사 등과 같은 일은 남을 위해 내가 손해를 봐야 하고 남을 가르치되 말씀을 가지고 가르쳐야 하며 그런 활동 속에는 하나님의 직접 역사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반사나 구역장이나 설교나 심방을 맡은 권찰직을 맡은 사람들은 그 일이 복음을 위한 직접적인 수고이기 때문에 이런 일은 내면으로 신앙이 가라앉으면 정말 하기 힘든 일이 됩니다. ③세상을 지배하는 원리는 노쇠현상입니다. 신앙의 법은 갈수록 청청해집니다. 이렇게 복음과 직접 관계된 일을 중심으로 살펴본다면, 교회 내 직책은 신앙의 참된 본질을 잊으면 비록 교회 내 직책이라 하지만 세상의 원리가 적용됩니다. 즉, 처음은 새것으로 힘있게 출발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무엇이든 노쇠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다만 신앙세계는 참 생명이 있기 때문에 이 노쇠현상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신 신앙의 길, 노쇠 현상이 적용되지 않는 길, 가면 갈수록 오히려 더 새로워지고 더 감사가 나오는 길, 처음에는 뜨거운 물에 들어간 음식처럼 겉만 익어서 펄펄 뛰었는데 이제 시간이 지나가니까 그 속 깊은 곳까지 점점 익어가게 되어 처음보다 현저하게 신앙이 깊어지고 무거워지고 실속있는 신앙이 되는 길, 그 길은 어떤 면으로 접근해야 할 것인가? 3.신앙의 무력감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원하십니까? 기쁨과 감사로 충성하기 원하십니까? ①주님의 대속을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그분의 부요, 그분의 존귀, 그분의 지위, 그분의 영광을 연구하여 그렇게 크고 큰 분이 이 복음으로 날 살리기 위해 어떤 수고를 했는가? 그것을 깨달아 느끼고, 느끼므로 자기 속에 우러나오는 감사와 그 감사 때문에 느끼는 기쁨을 가질 때, 우리에게는 주님이 함께 동행하시며 신령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만일 주님의 어떠하심을 연구하고 기억하고 살펴보는 일을 잊고 그래서 그런 사실을 아득히 책 속에서 읽은 기억 정도로 가지고 있게 되면, 그에게는 외부에서 영양 공급이 차단된 생명체처럼 슬슬 가라앉게 됩니다. 주님의 자존, 주님의 완전, 주님의 영원, 그 전지전능 주권 창조 등을 하나씩 새기며 그런 하나님께서 날 위해서!! 그런 하나님께서 이 죄인의 모든 허물을!!! 이것을 2배속 영상으로 영상자료 검색하듯 넘어가지 말고 오히려 느린동작으로 화면을 움직이며 조금씩 되새겨 씹어봐야 합니다. 이 면으로 저 면으로 깊이 깊이 느껴보고 따져보고 살펴보게 되면, 우리 속에서는 주님의 대속으로 인하여 생겨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주님 대속을 기억하여 포도주와 떡을 먹는 성찬으로 가르친 방법입니다. 교회에서 정한 시기에 정한 방법으로 성찬을 갖는 것도 해야 하지만, 평소 생활 속에 늘상 그 대속의 희생을 새길 때 우리에게는 그 대속이 주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주님 대속을 새김으로 얻게 되는 힘은 참된 양식이며 참된 음료입니다. 이 양식을 먹고 배가 부르게 되면 마치 세상사람이 배부르게 먹고 일을 하듯이 신앙생활의 어떤 가라앉던 상태도 다시 일으켜 세우게 됩니다. 주님 날 위해 어떻게 희생했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내가 어린 학생 하나를 교회로 데려오기 위한 이 일의 중요성과 필연성이 어떠함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또 그 가치를 알게 됩니다. 또 그로 인하여 어떤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깨달음을 통해 얻어지는 힘이 신앙의 참된 양식입니다. 물론 한번에 되지 않습니다. 두번에 되지도 않습니다. 과거 첫 은혜로 감격스러웠을 대는 한번 듣고도 한없이 감사했고 오랜 세월 뛸 수 있는 양식이 되었으나 이제 몸이 커졌고 덩치가 몇 배가 될 만큼 신앙이 자랐기 때문에 과거 우유 한병 먹고 배가 부른 때와 달리 곰국을 해먹고 압력밥솥에 힘들여 밥을 하고 많이 먹어야 유지가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먹고 힘을 얻는 그 힘과 그 활동은 과거 젖먹고 방긋거리며 웃던 때 신앙의 성과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 점은 아셨으면 합니다. ②신앙의 힘이 중간에 가라앉지 않고 계속되게 하려면, 진리의 힘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북치고 장구치고 함께 모여 율동을 함으로 얻게 되는 힘은, 지금 노사데모하는 사람들이 손짓 발짓을 연습해서 착착 순서대로 짝짝 맞아떨어지게 행동을 맞추고 그 행동에 따라 노래까지 곁들이니까 그들 스스로 가슴이 뭉클 해서 회사문이 닫히도록 밀어붙이는 힘을 얻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혁명가들이 붉은 깃발을 보며 느끼는 감동, 그들이 적군가를 다같이 부르며 행군할 때 가슴속에 치밀어오르는 일치된 적개심, 그런 것으로 70여년 공산혁명운동을 밀어붙이는 힘을 삼았습니다. 심지어 무당이 둥둥둥둥 북소리에 맞추어 땀이 흠뻑 젖도록 굿을 하게 되면 그 신들린 힘으로 일반 사람 이상의 지혜가 나오기도 하고 무슨 기운을 얻기도 합니다. 교회가 청년 학생 수십 수백명이 모여 손뼉을 같이 치고 율동을 같이 맞추어 동작하고 노래에 화음과 악기 반주를 넣어 가슴이 뭉클하도록 하여 얻어지는 힘은, 세상 힘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 힘을 가지고는 교회 내 써클 활동은 할 수 있고, 불신자들도 하는 불우이웃돕기 자선행사는 할 수 있지만, 전도를 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는 금방 피곤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진리를 살피고 연구하고 그 진리를 깨닫고 실행하는 가운데 그 진리의 말씀이 주는 힘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지 않게 되면, 신앙도 노쇠하게 됩니다. 따라서 교회 내의 직책을 가진 분들이 현재 가진 직책을 그대로 가지고 노력하고 충성하시되, 속으로 얼른 진리가 주는 힘으로 그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신령한 힘을 얻지 못하면, 인간이 세상 사명감이나 세상 차원의 활동으로 교회 내의 일을 계속 맡는 것은 너무 힘이 들게 됩니다. 특히 복음에 직접 관계되는 일인 경우는 엄청나게 피로감을 빨리 느끼게 됩니다. 말씀을 연구하셨으면 합니다. 말씀을 신앙의 양식으로 먹는 첫째 방법입니다. 말씀대로 실행하기를 노력했으면 합니다. 말씀이 자기의 양식이 되는 둘째 방법입니다. 자기 교회 목사님의 설교말씀과 자기가 읽는 성경 본문을 중심으로, 말씀은 무엇이라고 가르치는가, 나는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나는 그 말씀을 들을 때 무엇을 회개하고 고쳐야 하는가, 나는 이 말씀을 읽으며 들으며 어떤 사명감을 가져야 하는가, 내 생활 속에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은 무엇인가, 이렇게 자꾸 따져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부터 하나씩 실행하며 그렇게 실행하기 위해 따지고 살피고 마음속에 묵상을 하게 되면 이것이 바로 말씀을 양식으로 먹는 사람입니다.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이렇게 살피고 실행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이 말씀대로 살아야겠다는 힘이 조금씩 생기는데 이것이 바로 신령한 힘입니다. 이 힘은 하나님과 연결된 생명의 힘이기 때문에 이 힘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세상사람들의 노쇠현상과 같은 그런 일이 없습니다. 세상일은 갈수록 노쇠하여 꾀는 늘고 충성은 줄게 되는데, 신앙의 힘은 갈수록 점점 힘을 더 얻게 됩니다. 진리를 배우고 살피고 연구하고 실행하는 일을 자꾸 하다보면 처음 믿을 때보다 신앙의 힘이 더욱 더 강해지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힘은 대속의 은혜로 주시고 진리의 능력으로 주십니다. 주님 대속을 잊은 사람, 주님이 주신 진리의 말씀을 새기고 실행하는 일을 멀리한 사람에게는 주님이 주시는 신령한 힘은 없어지고 그대신 세상사람이 세상직책을 맡아 일하듯 교회일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교회일을 하게 되면서 마치 세상일을 할 때 생기는 뇌쇠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③자기 신앙양심을 통해 감동하시는 영감으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으로 기록하여 말씀을 가르치셨고, 우리를 구원하신 대속을 생각하므로 힘을 얻도록 했습니다. 또 하나를 더한다면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자기에게 꼭 필요한 개별 인도를 우리의 신앙양심을 통해 직접 알려주시니 이것을 영감이라고 합니다. 주님이 그 사람에게 직접 감동시켜 주시는 그 뜻을 거절하고 그 뜻을 듣지 않고 거부한다면 주님으로부터 그에게 주어지는 힘은 전부 차단됩니다. 이것이 신앙직책을 가진 분들이 초기 은혜생활을 할 때는 힘있게 기쁨으로 감사로 충성을 하다가 도중에 무력감에 빠지는 이유입니다. 한번 은혜를 주셨으면 죽는 날까지 그 은혜가 늘 함께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첫 은혜는 내 노력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각자 정한 때를 두고 그에게 크게 한번 일어날 수 있도록 보여주는 역사를 하십니다. 그러나 그 후로는 마치 본인이 자기 노력으로 신앙생활을 다 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지켜보며 기다립니다. 구하면 주시고, 구하지 않으면 모른 척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실력있고 성숙한 인격체를 만들어가시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하삽니다. 마치 어릴 때는 미리 부모가 아이를 위해 모든 조처를 다하지만 자라갈수록 스스로 하게끔 하고 부모는 그 역할을 간접위치로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시는 영감을 찾고 그 영감에 붙들려 살기를 노력하면 주님과 동행하며 우리 현실 생활에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참 평안과 감사에 충만할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보다 나중이 더욱 자기 맡은 직책에 충성하고 더 기뻐하고 더 감사하게 됩니다. 4.이곳에 올려지는 모든 질문은, 답변을 자세히 하려다 보면 한이 없습니다. 이곳 홈의 /초기화면/활용자료/설교류/녹음본/에는 5천여 개 설교 자료가 올려져 있습니다. 그 내용들은 일반 교인들이 실제 생활 속에서 마주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백영희목사님이 성경을 읽고 성경으로 가르친 내용입니다. 이곳에 올려지는 질문을 정확하게 또 자세하게 답변하려면 그 설교록에서 질문과 관련된 내용을 찾아 정리 요약해 드려야 옳습니다. 답변자의 시간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평소 기억하고 정리해 둔 내용을 바탕으로 설교록의 방향에서 이곳 질문을 답변하고 있습니다. 조금씩 답변을 깊게 하다보면 결국 답변이 하나의 설교가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이곳 홈의 설교자료 어딘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인들이 스스로 설교 자료를 통해 직접 배우는 것이 좋으나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하는 분들도 계시고, 또 설교 내용을 요약하기 어려워 질문한다고 생각해서 간단하게 답변하고 있습니다. 요는 이곳을 찾는 모든 분들이 이곳에서 제공하는 설교자료를 통해 신앙의 근본 원리를 잡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접촉할 신앙의 모든 문제들을 이 말씀으로 해결했으면 합니다. 이번 질문을 처음부터 자세하게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모든 질문에 대하여 답변을 본격적으로 하다 보면 이렇게 길어지고, 답변자는 또 다른 업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답변의 양을 늘 그때 개인 일정에 따라 조절하고 있습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