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질문) 구역장과 지권찰 설명 부탁드립니다. 4532

주제별 정리      

                           6. (질문) 구역장과 지권찰 설명 부탁드립니다. 4532

서기 0 21

6. (질문) 구역장과 지권찰 설명 부탁드립니다. 4532

--------------------------
검색으로 찾은 내용입니다.
--------------------------
공회에서 사용하는 권찰의 의미는 일반 교회의 의미와 다른 점이 있음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권찰은 일반 교회에서는 집사가 될 수 없는 분에게 권찰이라는 직책을 붙여 교회 일에 충성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회는 구역장을 권찰로 구역장을 돕는 보조 권찰을 지권찰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 지권찰이 일반 교회로 말하면 권찰의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

구역장, 권찰, 지권찰, 이런 용어가 나옵니다.
서부교회에서는 구역장을 몇분이나 두셨는지?
구역장을 지역별로 보통 나누었는지?
4분의 권사님이라는 분들이 모두 구역장이셨는지?
구역장 밑에 지권찰은 몇분이나 두었는지?

요즘 공회에서는 구역장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구역장 제도를 본적이 없어서 무엇을 질문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답변) 서부교회의 장년반은 구역장제도로 이해하면 되고, 이는 주교제도와 같습니다.

1.서부교회 조직의 기본 개념은 '구역장제도'

현 교회들은 일반적으로 지역을 맡겨 교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합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은 초기부터 지역적 개념은 아주 반대였습니다. 앞서 믿은 사람에 의하여 전도되고 양육된 관계는 육의 식구와 비교할 때 신앙의 식구이므로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그 관계는 하나님께 받은 직접 관계로 대합니다.

시골 부모 밑에서 자라서 서울에서 성공한 자녀가 있다면 접촉할 시간이나 기회는 옆집 이웃만도 못하지만 옆집 이웃은 아무리 가까워도 남의 식구이고 서울에 있는 자녀는 가끔 만나도 그 관계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라는 특수한 연결입니다. 교회 초기에 가장 앞서 믿고 또 교인들을 지도할 수 있는 앞선 신앙의 사람들을 구역장으로 세우게 되면, 이후 그 구역장과 그 식구로 인하여 전도되고 양육되는 모든 식구는 아주 특단의 상황이 아니면 평생 그 구역식구가 됩니다.

서부교인이 1980년대 말 백목사님 생존 마지막 시기에는 부산 전역에 거의 다 분포되어 있었지만 주일학교든 장년반이든 앞서 전도하고 인도한 사람에 의하여 끝까지 지도가 이어지기 때문에 몇번 이사를 가든, 학교를 어떻게 진학을 하든, 한번 그 교회 안에서 반사선생님이 되었으면 항상 그 학생에게는 그 선생님이 선생님이고, 한번 구역식구가 되면 항상 그 식구는 그 구역식구가 됩니다. 출석을 챙기고 집회를 가고 교회 봉사를 하거나 어떤 상황에서도 마치 한 교회 내에서 식구가 적은 구역장은 마치 작은 교회 목회자와 같고, 식구가 많은 구역장은 자기가 대예배 때 설교만 하지 않을 뿐이지 그 외 시간은 완전히 독립된 한 교회와 같은 차원으로 구역을 관리하게 됩니다.


2.서부교회의 주일학교 부흥은, 외부에서 아는 것과 아주 다른, 평범한 제도에서 시작됩니다.

장년반을 그렇게 하듯, 어린 주일학생을 전도하고 지도하는 것도 장년반과 꼭같은 교인으로 상대하여 한번 맡은 선생님이 계속 맡게 했던 것이 서부교회 주일학교 부흥의 제일 원인이었습니다.

현재 어느 교회든, 특별하게 부흥하는 교회는 이전 교회들이 사용하지 않았던 특별한 비법이나 기술을 가졌고 또 시대 흐름을 따라 개혁을 했고 변화에 적응을 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서부교회는 의자를 놓고 스피커를 사용하는 것 외에는 100년 전 예배당 모습이나 200년 전 교회들이 가졌던 모습이나 거의 그대로입니다. 단지 장년반이 지역제로 나뉘면 천주교식으로 우선은 관리가 효율적으로 되는 것 같고, 경제 원리로 말하면 인사관리에 덕이 될 것 같으나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는 부모가 자녀를 길러가는 차원으로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비효율을 오히려 사랑과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권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성공 비결은 시대를 따라 교회가 변한 것이 아니고, 교회가 더욱 교회답게 교회가 과거보다 더 좁게 더 엄하게 더 말씀의 이치와 원칙에 철저하게 자기를 옭죄운 결과 나타난 현상이므로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신 그 시대의 사례였습니다. 바로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모델이 되고 원형이 되었던 것이 서부교회의 장년반 구역제도입니다. 그 구역제도는 지역제도로 움직이는 교회 운영은 인본적이며 세상 경제논리적 인사관리라고 백목사님은 비판하고 있습니다. 결과 여하에 상관없이 복음은 지역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사람을 길러가는 사람의 연결 관계가 바로 복음이라는 백목사님의 근본 신앙체질 신앙노선에서 비롯됩니다.


3.서부교회는 백목사님 부임하던 1952년, 그 초기 구역장들이 있었습니다.

1-2년씩 앞서고 뒤서는 차이는 있지만, 이말출 이경순 이복순 김현찬 김효순 나인숙 박정자 박혜영 추순덕 서봉월 등 10여명의 구역장 이름들을 서부교회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말출'은 백목사님의 부임 이전부터 서부교인이었고 그 외 다른 분들은 백목사님 신앙노선이 좋아서 부근 다른 교회를 다니다가 교회를 옮겨온 분들입니다. '추순덕'은 앞에 다른 분들보다 대개 10여년 늦게 합류했지만 백목사님의 서부교회 부임 이전부터 거창에서 백목사님 신앙을 따르던 분입니다.

일단 서부교회가 백목사님 부임으로부터 새출발을 하게 되면서 초창기에 급격하게 형성된 10여개의 가지가 앞에서 말씀드린 이름들로 대표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좀 뒤에 합류했으나 가장 중심에 선 분이 '추순덕'이고, 초창기 구역장으로 첫 가지의 위치에 있었으나 구역식구가 거의 없어 초기의 원 구역장이라는 이름만 있지 실제로는 거의 활동이 없었던 '박정자' '박혜영'과 같은 이름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이런 출발의 이름들은 서부교회에서 어떤 면으로든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출발은 비슷하게 했으나, 일단 출발이 되고 나면 백목사님은 실적주의를 엄격히 적용하는 분입니다. 무조건은 아니지만, 일단 교회가 정상적으로 발전하고 있고 교회의 내부 관계가 목회자를 중심으로 정상적이라면 이제 남은 것은 열심히 충성하는 일입니다. 신앙은 내면이 중요하나 내면은 평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어릴 때는 외부 보이는 면으로 속에 들어 있는 내면을 일부 읽을 수도 있고 또 어릴 때는 눈에 보이는 평가를 통해서 충성을 하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백목사님은 각 구역의 교인 출석을 가지고 각 구역과 구역장의 교회 내 실력평가를 했고, 교회 안에서 무슨 일이든 순서를 정해야 할 일이 있으면 이 구역 서열에 맞추었습니다. 그 결과 1950년대부터 시작된 서부교회의 구역제도가 백목사님 생존 마지막 순간인 1980년대 말에 이르러, 이말출 김현찬 김효순 추순덕 나인숙 이복순 서봉월 .... 이런 순서로 거의 고착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백목사님의 구역평가제에 대하여 일반 교계처럼 외부적인 실적을 기준으로 한 것은 이 노선답지 않다고 불평하던 사람들도 구역장의 신앙은 몰라도 구역장의 실력으로만 본다면 구역의 성과는 구역장의 실력과 거의 일치 된다는 것을 알고 수긍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4.서부교회 초기 구역 10여개가 1980년대에 150여개로 분구됩니다.

주일학교도 많은 부흥이 있었지만 그 부흥은 반사의 숫자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장년반도 주일학교의 모체였고 원형이었으나 1970년대 주일학교 부흥기를 거치며 오히려 장년반이 주일학교를 보고 배운 점이 있었으니 곧 구역장의 숫자에서 장년반의 부흥을 가장 빨리 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초기부터 존재해 오던 10여개의 원래 구역과 그 구역에서 분구되어 10여개가 더 존재했던 총 20여개 구역을, 1980년대에는 150여개까지 확대하게 됩니다.

각 구역에 핵심 교인들에게 분구를 통해 원구역 아래 분구역으로 독립시켜 나가게 된 것입니다. 이 분구역확대와 주일학교에서 자라서 올라가는 교인들 때문에 서부교회는 그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부흥의 궤도에 올라서게 됩니다. 소위 한국교회 손꼽는 초대형교회가 되자, 과거 구역장의 세세한 생활 일정까지 파악하고 지도하던 백목사님은 이제 원구역장을 통해서 그 밑에 이제 막 출발한 구역장들을 챙겨야 하는 단계가 됩니다.


5.'네분의 권사님'이라는 이름은 이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10여 명의 원래 구역장이 있었으나 앞서 하늘나라로 가신 분들이 있고 또 어떤 분들은 역사적으로는 초기 구역장이지만 실력 면에서 서부교회 전체 교인들에 앞선 정도가 되지 않아서 조금 쳐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백목사님 생존 끝까지 구역장으로 있으면서 가장 큰 구역을 이룬 분이 이말출 김현찬 김효순 나인숙구역장님들 순서가 됩니다. 서부교회로서 교회 전체 차원에서도 1차 서열에 올려놓고 감사할 분이라는 뜻으로 서부교회 '첫 권사'가 됩니다.

실력으로는 이말출권사님이 첫째이지만, 신앙으로나 장래 가능성으로 봐서는 4위에 있던 분이 추순덕집사님이었는데 이분은 권사 임명 이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분이 빠지고 그대신 나인숙권사님까지 포함하여 4명의 1차 권사님들이 서부교회 권사님들이 됩니다.

그리고 백목사님은 교회 중대사가 있거나 또는 어린 구역장들에게 교육을 위해 필요하면 '네분들의 권사님들'이라는 표현을 자주하게 되는데, 교육적 측면에서 사용하게 되는 이 표현은 현재 서부교회를 유지하고 있는 주도 교인들에게는 '신앙의 4명 권사님'이라는 표현으로 오인이 되어 그 4명 권사님들의 결정은 마치 백목사님 생전의 백목사님 결정 정도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실은 이 4명의 권사님 중에서 한 분은 총공회 신앙노선과는 다른 노선을 가졌는데 그대신 정치력이 있어 다른 권사님들을 주도했고, 따라서 백목사님 사후 서부교회는 네분의 권사님이라는 이름 때문에 원래 백영희신앙노선의 생명력을 잃게 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고 이곳은 아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백목사님 사모님은 구역 실력에서는 교회 내에서 네분 권사님보다 더 앞서는데도 백목사님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일차 권사님 임명에서 제외했다가 오랜 후 1988년에 2차 권사님 명단으로 추천하게 되는데, 이때 이 네 분의 권사님들 중에서 두 분이 합력하여 자기 구역식구들에게 반대표를 집단으로 행사하게 하여 백목사님 사모님이 서부교회 내에서 권사 투표에서 낙오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렇게 구역장이 마음을 먹으면 담임목회자를 반대할 수도 있도록까지 구역장의 권위와 입장을 지켜준 것이 백목사님의 구역장제도입니다. 이유는, 그 구역 식구들에게 있어 구역장의 위치는 마치 어머니와 같아서 신앙의 자녀들에게는 일단 어머니의 양육이 절대적이고, 비록 그 어머니에게 단점이 있어도 그 자녀들은 그 단점으로 영향을 받을지라도 더 큰 범위에서 본다면 그 어머니와의 관계가 우선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 때문이었습니다.


6.한 구역장의 식구들의 범위

이말출권사님과 같은 경우, 구역식구들의 숫자만 해도 1천여 명이 되었을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밑에 분구된 큰 구역장님들도 여럿 있었고 작은 구역장님들까지 합한다면 정확한 통계는 다른 서류를 복잡하게 찾아봐야하기 때문에 잘 모르겠으나 20여개 구역이 되었을 것입니다.

'지권찰'은 구역장이 아니라 구역 식구들 중에서 조금이라도 교회를 잘 나오는 정도면 임명한 정도였기 때문에 그 숫자에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 지권찰이라는 숫자는 마치 일반 교회에서 요즘 쉽게 임명하는 집사 숫자 정도 되었을 것으로 기억합니다. 크게 보면 주일학교와 장년반은 거의 같은 식으로 진행되었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7.부산공회는 거의 이전 구역장제도이고, 대구공회나 서울공회는 외부식일 것입니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부산공회들은 거의 구역장이 마치 주일학교 반사와 같이 한번 자기 식구로 삼으면 계속 그 구역장에게 속하는 체제로 이어질 것 같고, 대구공회의 경우는 그런 곳도 있고 그렇지 않고 지역제인 교구제를 일부 시행하는 곳도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서울공회쪽은 더 심하다고 듣고 있습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