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질문) 교회 직분자 임직식과 관련하여 여쭙니다.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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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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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28
9. (질문) 교회 직분자 임직식과 관련하여 여쭙니다. 390
여느 교회들에서는 교회직분자들을 세울 때 투표로 선출한 후
임직예배를 통해 이들을 세우는 것을 봅니다.
특히 임직예배라는 것을 드리면서 축하객들 접대나 순서 맡은 목사님들의 접대
뿐 아니라 임직기념헌물이라 해서 임직자 1인당 수백만원의 비용을 치루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임직 당사자들은 적잖히 부담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인 듯 합니다
총공회에서는 이러한 예식 관례에서 자유하고 있는 줄 압니다.
그 근거를 성경관점에서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답변1) 종이 임금 자리로 올라 앉으니 그 병폐가 오죽하겠습니까?,
1.'종놈'이 '종님'이 되고 '종님'이 아주 '주인'의 자리로 앉아버렸습니다.
교회는 주님만 주인이고 나머지는 전부 '종'입니다. 창세기로 계시록까지 '주' 여호와' '주 하나님' 등 '주님'에 대한 표현은 다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그 전부가 당신은 주인이고 우리는 '종'이라는 것입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등 교회의 모든 직분은 편리상 별별 이름을 다 붙이지만 기본 속성은 '주의 종' 곧 '종놈, 종년'들입니다. 설교하는 일을 심부름하는 종놈, 교회 여러 면을 살피라는 종놈, 여러 가정들을 특히 심방 권면으로 살피라는 종년들입니다. 목사 장로부터 종놈근성이 있고 종놈의 처지임을 확실히 안다면 하나님은 저절로 '주인님' '주님' 대접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종놈 종년이 제 마음대로 제 주관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주인이 '종놈'이 되는 것은 굳이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것입니다.
2.종은 제 몸도 제 것이 아닙니다. 권리까지 확보하여 몸이 귀하게 되었다는 인식이 문제입니다.
교회가 직분자 임명을 받는 사람들에게 의례 '한 턱'을 내는 분위기를 만들고 또 직분을 받는 분들은 '한 턱'을 내야 할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는 인식이 문제입니다. 장로는 장로직에 임명되는 순간부터 큰 주장 큰 주관 큰 권리행사를 하게 됩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 그런 결정이 되다니!' 이 사상 이 사고방식이 들어서 이미 교회의 직분은 다른 세상 단체의 '간부' '고위층'에 해당되는 직분이 되었습니다. 과장으로 진급을 했고 시의회 감사위원으로 임명을 받았으니 집안의 경사요 본인의 자랑이며 주변 여러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또 혜택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잔치를 해야 하고 그 잔치는 출세한 사람이 한 턱을 내야 하는 것입니다.
3.교회의 직분은 '종놈'이며 '종년'이라야 틀림없이 옳습니다.
"당신이 아니면 이 머슴살이는 감당할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종질을 좀 더 잘해야 하는데 종질 할 실력조차도 없어, 좀더 종질을 잘 할 당신에게 내가 할 종노릇까지 맡기게 되었으니 미안합니다, 고생하십시오, 어린 교인들 화장실 청소 시킬 수 없으니 장로님이 제일 능숙하게 제일 오래 해 본 경험을 가지고 앞장 서서 종질 좀 해 주십시오, 하나님을 더 잘 아는 장로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을 보고 우리도 자꾸 따라가고 배워 갈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도 종의 형체를 가지고 종으로 살다 종으로 죽었습니다. 성자로서는 성부 하나님에게 완전 순종으로만 살았습니다. 우리는 죄인이었고 지금도 죄짓기를 밥먹듯 하는 더러운 인간들입니다. 이런 죄인들이 우굴거리는 곳이 교회입니다. 다행히 고치려고 모였으니 소망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죄인들 중에서 제일 나은 사람에게 다른 사람을 위해 걸레질 화장실 청소 별별 뒷닦기를 다 할 사람을 하나씩 세워 나가는 것이 교회의 직분자입니다.
진정 백목사님을 아는 분들은 백목사님만큼 교회 똥을 많이 퍼고 교인 종살이를 많이 한 분은 없다는 것을 단정합니다. 손양원목사님은 나환자 고름을 입으로 빨았던 분입니다. 종놈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주인이었던 하나님께서 그토록 좋아했던 것입니다. 종이 종놈 노릇을 않고 주인노릇을 하니 주인되신 주님이 물로 쓸어버렸고 불로 쓸어버릴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4.이 나쁜 풍습을 천주교라고 합니다. 지금은 교회도 다 천주교가 되었습니다.
천주교는 아예 교회의 모든 직분은 성직자들이 독점 해버리고 그리고 그 직분은 구약의 직분으로 변형시켜 중세 1천년 교회를 다 삼켜버렸습니다. 그 병폐를 고친다고 출발한 것이 우리 기독교입니다. 그러나 수백년 내려오다 보니까 오늘 기독교 역시 또 다른 천주교가 되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 질문하신 '직분'을 두고 말한다면 분명히 천주교가 되었습니다. 교회의 바른 자세는 분명히 종놈입니다.
따라서 직분을 받아 가진 분이 있다면, 백목사님이 생전 서부교회 권사님들을 세웠을 때 처럼, 교회가 교회 돈으로 한복 한벌씩 해 드리면서 '교회 위해 교인 위해 어린 신앙의 이웃들을 위해 앞서서 죽으시고 앞장서서 매맞으시고 걸레가 되어 아이를 많이 낳은 어머니가 훌륭한 아이를 많이 길러놓고는 쇠잔해서 곯아 녹아버리듯 그리 하실 것이니 우리 온 교인이 감사하고 또 죄송한 마음으로 옷 한 벌이라도 선물합니다.'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직분을 맡게 되었다고 맡은 사람이 돈을 내어 잔치를 벌이는 것은 이미 교회를 내 마음대로 요리하여 날 위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지극히 큰 광란의 잔치를 열게 되는데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를 잊어버린 교회, 신앙에 앞선 자가 먼저 죽어야 하는 교회, 진정 섬겨야 하는 교회가 교회인데 이 본질적인 교회가 없어지므로 교회 아닌 교회가 생겨지고 교회 아닌 교회로 변형이 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그것이 직분 받는 분들의 잔치 한 턱 내는 것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5.천주교로 비교하면 펄쩍 뛰겠지만 그만 못할 것도 없습니다.
참고로, 몇 억의 돈을 써야 총회장이 된다하여 수십년 교단선거 때마다 경찰 고발 사건으로 얼룩진 것이 교회들이며, 그중에 한국에서 가장 큰 교단은 2000년도에 결의하기를 앞으로 총회장은 제비뽑기로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돈으로 교회의 최고직을 사는 것을 막아보자는 것이었고 이런 주장을 교단 신문에 계속 광고까지 했던 것입니다. 교단 총회장 휘하에 대학병원이 있고 대학교가 있는 줄은 아실 것입니다. 교단 총회장이 임명할 수 있는 대학과 대학병원의 이사직, 그 이사들로 인하여 그 대학병원과 대학교의 교수가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을 일일이 다 열거하지 않아도 알 것입니다. 한 사람 잘못 임명하면 딤후4:1-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심판받을 것을 두고 엄히 명한다고 적혀 있지만 그런 말이야 책속에 글이고 우선은 그 이권이 그 권한이 여간 큰 것이 아닙니다. 결국 속화되는 큰 도로에서 볼 수 있는 별별 일 중에 하나입니다.
6.백영희목사님이 평생 살아갔고 또 가르쳤던 원리만은 꼭 참고 하셨으면
총공회도 목사님 생전에는 위에서 설명드린 교훈으로 충만했으나 지금은 거진 잊어버렸습니다. 백목사님 생전에 없었던 잔치와 선물 예물 축하가 줄을 잇고 있으며 어느 지도급 목사님이 인도하는 개 교회 부흥회가 열리면 목사될 전도사님들, 좀더 큰 교회로 이동하려는 작은 교회 목사님들, 차기의 중요 직책을 보장 받으려는 꿈많은 직분자들이 줄줄이 눈도장을 받기 위해 앉았다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공회 껍데기는 아직까지 다른 교단에 비해 건전합니다. 그러나 그 방향은 분명히 일반 교회의 속화를 급격히 따라 가고 있습니다. 다만, 일반 교회의 타락은 그 교리와 행정이 타락으로 가지 않을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총공회노선은 그 교훈과 행정이 타락을 막고 교회가 바로 설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총공회 신앙노선은 연구할 만 하다 보며 총공회 교회를 교회 전체로 보시는 것은 너무도 조심스럽습니다.
--------------------------------------------------------------------잠30:21-23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종이 임금된 것과 ..... 계집 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
눅17:10
이와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찌니라
(답변2) 교회 행사에 외빈 내빈의 모양만 가지고 교회를 축내는 분위기도 문제입니다.
--------------------------------------------------------------------예전 부흥회, 또 최근에도 비교적 이전 모습을 유지하는 부흥회에서는 한 교회 부흥회 개최에 주변 또는 내빈 목사님들이 많이 참석을 하게 됩니다. 그리 해 주시라고 초청장을 발부하는 것이 관례이고 또 많은 고위급들이 오셨다는 것은 그 부흥회가 성황을 이루었다고 표현되기도 합니다. 비록 분위기는 바뀌어가고 있지만 이전의 경우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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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회가 부흥회를 개최하는 진정한 의미는
한 교회를 1번 답변과 같은 자세로 섬겨 참된 종으로 살았다면 그 한 직분자 때문에 한 교회가 일어서고 불이 붙게 되며 모든 교회 분란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 그 수고를 했던 종은 영육간에 지쳐서 주저 앉을 지경이 됩니다. 이런 앞선 종들 몇 사람이 다시 은혜를 받게 된다면 또 다시 교회가 장기간 힘을 가지게 됩니다. 새로 나온 교인, 예배도 잘 참석치 않는 교인들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렇게 한 교회를 오랫동안 섬기는 중요한 교인들이 자기 목회자의 교훈으로는 부족한 것이 있어 힘이 약화될 때, 특별히 그 약점을 보완키 위해 해당되는 면에 은혜가 많은 분들을 강사로 모시고 부흥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2.내빈 귀빈들 방문은 외부적 성황은 되지만 말씀양식 먹는 일에는 분명 손해입니다.
다시 일어사자는 것이 '부흥회'입니다. 그렇게 부흥이 되려면 성경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되기 때문에 '사경회'라고도 합니다. 이런 의미없이 모두 모였다는 뜻으로는 '집회'라고 합니다. 우리는 집회, 사경회, 부흥회 순서로 용어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부흥회를 한 교회가 개최하는 것은 그 교회를 실제 종놈으로 받들다가 지친 중직들의 심령 소생을 위한 것인데도 부흥회마다 몰려 다니는 고위급 목회자들 때문에 그들을 부흥회 기간에 대접을 한다고 분주하다가 잔치는 열어놓고 정작 먹고 힘내야 할 일군들이 말씀양식을 못 먹게 됩니다.
부흥회라는 천국잔치는 거창하게 열었으나 거물급 또는 내빈 목회자들의 육체만 살찌우는 세상잔치가 되었고, 정작 말씀으로 충만히 먹을 그 교회 주역들은 내빈들 모시느라고 설교시간에는 졸거나 아니면 지각, 또는 조퇴를 해야 하는 일까지 있습니다.
조용히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분들은 교회에 아무 짐을 지고 있지 않은 어린 교인들인데, 실은 이분들은 아직까지 자기 목회자에게만 말씀을 듣고 자라도 충분한 분들입니다. 새벽예배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이들이 자꾸 이 목회자 저 부흥사의 각종 설교만 듣다보면 식당밥맛에 습관든 분들이 자기 집 3끼 식사에는 입맛을 잃어버려 큰 폐단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자꾸 고급 설교 다양한 형태의 설교자를 접하다 보면 말씀으로 자기를 차근차근 고쳐가는 것은 없어지고 귀만 높아져서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는 습관이 드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3.대단히 죄송하나 할 일 없는 교역자들의 유흥거리가 되지는 말아야 합니다.
과연 목회자들이 헌당예배로 임직식으로 개척예배로 부흥회로 몰려 다니는 것이 천사들의 귀한 걸음으로만 대접 받아야 할 것인가? 목회자들이 자기 교회 교인들의 백일잔치 돌잔치 환갑잔치 개업잔치 축하사절로 출장다니는 일들이 심방과 축복주는 일로만 치장되어야 할 것인가?
참고로, 백목사님은 어떤 형식의 걸음에서든 그 자리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말씀을 주러 갔지 잔치로 간적은 없습니다. 과연 오늘 우리 교역자들이 잔치에 가는 것이 아니라 진정 말씀을 전달하러 가고 있는가? 대단히 의문이 많습니다. 어느 목회자 어느 누구를 초청하고 기도시켜도 똑 같은 판에 박은 주문같은 기도문 설교내용 반복이 전부가 아닌가 돌아 볼 때입니다.
현재 총공회 교역자들도 임직 헌당 등 무슨 식만 있으면 몰려다니는 것이 완전히 관례가 되었고 그때마다 들어오는 연보 액수가 이미 이런 초청장을 돌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수입'이 되고 있습니다. 결혼식에 어떤 대접도 부조금도 주고 받지 말라고 했던 뜻은 이미 실종된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더욱 백영희신앙은 연구되어질 시급하고 급박한 때로 여겨집니다.
4.몰려다니는 일이 많아지면 결국 유다서 말씀을 염려치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목회자의 과영양이 정도를 넘고 있습니다. 복음은 분명 가난한 복음인데 복음 전할 영양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식당을 찾고 요리의 종류를 찾아나서는 오늘입니다. 반비례하여 말씀의 영양은 강단마다 거의 사라지고 있습니다.
바람에 불려가는 물없는 구름이요
유행 따라 세상 흐름을 따라 움직이는 것도 기막힌 일이지만 그보다 비도 없는 마른 구름이니, 애타는 농부의 갈증과 갈급이 심해지면 종을 부리는 주인의 심판날이 있게 됩니다. 목회자는 있는데 강단이 없고, 강단은 있는데 말씀은 없으며, 말씀은 읽고 전하지만 참 말씀은 없는 시대입니다. 물없는 구름, 오늘 우리 교역자들의 큰 심판거리이며 이 점을 염려한 것이 이곳 홈페이지 개설의 주 목적 중 하나입니다.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나무라면 뿌리가 생명이요 그 생명이 새로운 결실 새로운 시작을 계속 생산하고 만들어야 하는데 이 면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숙달된 전문가, 판에 박힌 일만 반복하는 기능공 같은 오늘 우리 목회자들이 거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결국 생명도 말씀의 양식도 없는 목회자가 되면 자기 속에 숨겨진 것이 밖으로 드러날 것이며 그것은 온갖 종류의 탐욕과 세상정욕들일 것이니 잘못된 교역자 속에서 나와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병폐의 종류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이 별은 지옥으로 들어갈 악령이며 동시에 악령에 붙들려 평생을 헛살아간 불택자들입니다. 그리고 이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 뒤를 따라 흑암으로 돌아갈 뒷자리에는 우리가 가지고 살았던 우리의 한 부분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물없는 구름노릇하며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로 살았던 그 순간, 그 생애, 그 기능들은 우리가 천국갈 때 지옥에 버리고 가야 할 것이며, 지옥에 버릴 때는 지옥으로 앞장 서서 들어가는 악령과 함께 뒤 딸려 보내야 할 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