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질문) 사례의 뜻과 퇴직금을 적립하는 것은? (쉬/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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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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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28
9. (질문) 사례의 뜻과 퇴직금을 적립하는 것은? (쉬/467) 목회자의 급여는 왜 사례비라고 표현하는지요. 일반교회의 경우입니다만 제직회에서 담임목사님 본인의 제안으로 본인의 퇴직적립금을 통과시키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일반회사 근로자의 급여와 다른점이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저는 목회자분들에게 교회 재정형편이 허락되는한 사례비를 많이 드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성도들의 도리라고 생각하지만 사례비는 어디까지나 사례비가 아닌가 합니다. (답변) 몸 가정 생애 목숨까지 다 바쳐 산다 하여 감사한 표시란 말이 '사례'입니다. 1.목회자란 그냥 자기 전부를 복음 위해 바쳤다는 뜻입니다. 몸과 생애와 생명까지를 바쳤다고 약속한 사람이 '목회자'입니다. 따라서 경제활동의 댓가로 지출되는 '월급'의 개념은 원칙적으로 해당이 될 수 없습니다. 가진 것 있는 것 전부를 다 바쳤다는 것이 목회자의 기본개념이니 경제적으로 준 만큼 받는다든지 아니면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계산을 한다는 것은 불가하다는 것입니다. 일한 사람에게 그 댓가로 무엇인가를 준다는 표현이 '급여'입니다. 매월 준다는 뜻으로 '월 급여' 즉 '월급'입니다. 목회자의 월급을 '사례비'라고 하는 이유는, 목회자는 그냥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쳤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도 자기 활동의 '댓가'를 받을 수는 없으나 인간으로 기본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 기본생활을 하시라고 '수고'와 상관없이 그냥 복음 위해 바친 사람에게 감사해서 드린다는 뜻으로 '사례'라고 합니다. '감사의 표시'라는 뜻입니다. 월급이든 사례든 매월 살아가는 돈으로 주는 것은 같지 않느냐고 한다면 물론 같습니다. 2.그렇다면 '사례비'는 일반 급여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게 됩니다. 목회자의 월 생활비의 적정선이나 일반 직장 등의 경우를 참고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교인들로서는 어떤 계산이나 조건없이 그냥 복음에 수고하는 종이라 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그냥 드리는 것이니까 많이 드리고 싶으면 눈이라도 빼어 주고 싶어했던 초대교인들처럼 아낌없이 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목회자로서는 목회에 불편이 없는 '최저 최소 생활비'만 받으려고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받는 목회자로서 자기의 최저 최소 생활비 이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면 그 남는 액수는 연보로 되돌아 가야 '목회자'이겠지요? 교인들은 감사가 넘쳐야 옳고 그래서 힘있는 대로 액수도 많은 것이 정상일 것이고 목회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저 최소 생활을 하여 그 이상은 교회로 돌아가는 것이 정상이지만, 지금 교회는 정반대로 되어 있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일 것입니다. 3.'퇴직적립금' 등 요즘은 다양한 '급여 형태'가 있습니다. 퇴직적립금은 훗날을 대비한다는 말인데, 목회자란 기본적으로 내일일은 내일 염려하고 오늘이라는 주신 현실만 살아 움직인다는 자세라야 합니다. 목회로 희생하고 나서 노후 책임은 누가 지느냐는 문제를 두고, 재정 운영상 '적립'의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이는 하나님은 설 곳이 전혀 없어집니다. 하나님의 훗날에 대한 책임 등은 완전히 무시하고 배제시킨 개념입니다. 물론 질문 내용이 '목회자' '사례' 등이므로 이렇게 설명드리지만 같은 원리로 오늘 교회의 조직과 운영을 살펴본다면 세상 회사, 사회 단체, 학교 등과 하등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말세를 만난 우리가 꼭 성경대로 살고싶고 그런 시각을 가지고 하나 하나 뜯어본다면 일반 교회를 다닐 수가 없을 것입니다. 신학교가 교육부의 교육이념에 따라 설립되고 고등교육법에 의하여 사회인재를 양성하겠다고 각서를 쓰고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 시험이 사전 유출될까 호들갑이고, 총회장 선거에 서로 하고 싶어 선거운동을 하고, 그 선거운동법이 있어 사전 선거운동이 되면 처벌을 받고, 장로님 되는 과정, 회계 예산 결산 등등 거의 하나도 성경적 운영은 남아있지 않은 때입니다. 고요히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들과 투쟁과 시비 논란보다는 마음 깊은 속 주님을 찾아 한없이 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재질문) 급여라는 표현도 어울릴 듯 요즘 목회자들은 신령한 면보다는 세상이 요구하는 인격적이고 도덕적이며, 지적인 것을 흠모하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저의 생각으로는 사례비라는 표현보다는 생활비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 싶군요. 좀더 심하게 말씀드리면 목회자가 신령한 면이 없고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다면 굳이 사례비, 생활비라는 표현 보다는 급여라는 표현도 크게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결국 교회는 주님도 없고 영혼을 구원하는 곳도 아닌 어려울때 돕고 상부상조하는 든든한 상조회이며 목회자는 상조회장이니 급여라는 표현이 그렇게 나쁘게 와 닿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세상으로 나아가는 교회와 목회자를 보고 하는 말입니다. (답변) 누구 할 것 없이 현재 목회자 전부를 상대로 그렇게 해야 할 때입니다. 쌀가마니에 모래 한 알이 섞여 있는 경우, 우리는 이를 쌀가마니라고 부릅니다. 모래 한 알이 섞여 있다고 해서 '쌀과 모래' 가마니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콩자루라고 할 때 그 속에 팥 한 알이 섞여 있는 경우는 많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콩팥자루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례비라고 말할 시대는 사실 아니라는 말씀으로 읽었습니다. 사례비는 커녕 생활비라고도 할 수 없는 시대라는 것을 모두들 인식하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기초생활에도 미치지 못하는 목회자들도 있을 것입니다만 이들은 지금 사업을 새로 시작했거나 아니면 고소득 직종에 수습사원으로 취직한 분들이니 당연할 것입니다. 판검사 초봉이 얼마쯤인지 우리가 다 알지 않습니까? 뒷날을 보고 들어갔지 어디 그 돈이 그들의 표준소득이거나 기대월급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목회자들의 사례비는 생활비라고도 할 수 없고 '급여' 즉, '월급'이라고 해야 할 시대입니다. 여기까지 계산하기는 참으로 쉽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고통스럽게 계산해 보아야 하는 것은, 세상은 월급을 주면 월급만큼 일을 했는지 살펴도 보고 시집도 살립니다. 어느 정도 기다리다가 끝내 월급만큼 움직이지 않거나 실적이 나오지 않으면 요즘 흔한 말로 '구조조정'을 해버립니다. 이것을 거부하면 그 집단 전체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자멸하겠지요? 좀 늦어도 자동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즉, 최소한 활동한 만큼 받거나 아니면 활동한 이상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매월 받는 돈의 겉봉은 '사례비'라고 적혔으나 그 봉투 속에 들어있는 내용을 보니까 사실상 월급인데, 월급이라고 한다면 목회자들은 자기가 교회로부터 받고 있는 월급에 대하여 그 월급만큼, 또는 그 월급 이상으로 교회를 위해서 존재하고 움직이는가? 받는 돈 이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백목사님 표현으로는 '도둑놈들'입니다. 교회돈을 도둑질하는 놈들 중에 첫째가? 목사라는 표현인데, 아무리 되씹어봐도 과연 그렇습니다. 우리는 교회 덕에 취직하고 교회에 붙어 사는데 교인을 대할 때마다 고맙고 죄송한 마음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얻어먹는 거지가 되레 큰소리를 치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 앞에 내가 교회를 위해 '희생'을 하고 있는가? 과연 하나님을 팔고 교회를 이용하여 '생활' 그 이상을 누리고 있는가? 희생하는 사람은 쌀가마니 속에 모래 한 알같이 희귀하고, 이용하여 제 실력 이상으로 누리고 사는 사람은 쌀 가마니 속에 쌀 만큼 많으니 복잡하게 말할 것없이 우리 목회자 전부는 사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죄책감을 느껴야 옳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