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질문) 국기에 대한 경례에 대하여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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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질문) 국기에 대한 경례에 대하여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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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질문) 국기에 대한 경례에 대하여 182

요즈음 학교에서나 국가의 예식에서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경례가 2계명의 절하지 말며 이에 해당되는 것인지?
국기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기에 절하지는 않으나 손이나 거수경례를 하도록 전국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 단일교회로 구원에 관련된 총공회에서 이론적 설명이 부족함으로 인하여 제대로 정립이 되지 못하고 있어 질의 합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가 2계명에 어긴 것이라면 절은 하지 아니하나 호칭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국기에 대한 경례가 일반적으로 산사람에게만 사용되는 인사법이고 죽은자에게는 경례란 용어가 사용되지 아니하나 유독 국기에 대하여는 산사람이 아니데도 불구하고 절과 다른 방법으로 손을 올리던지 하는 것이 2계명을 범하는 것인지 에 대하여 총공회와 한국교회의 바른 구원을 이루도록 좋은 말씀부탁 합니다.


(답변1) '국법을 바꾼 주일학교' 의 서문을 우선 소개드립니다.

1.안내문:

우선 책 한권과 그 서문을 소개드립니다. 질문자는 알고 계신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반 방문객을 고려하여 이곳 홈페이지 중 '백영희관련서적'방의 '연구서적/국법을 바꾼 주일학교'라는 책 내용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그 서문은 이곳에 우선 인용하였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하루 정도 뒤에 종합해보겠습니다.


1)서적명: '백영희목사님의 주일학교목회'연구 씨리이즈 제2권
'국법을 바꾼 주일학교' 위천교회주일학교의 국기배례환란

2)출간정보: (1997.4.23. 발행. pp.198. 이영인/백영희목회연구소 연구부)

3)'서문'내용:


1.이런 자세에 동의를 하시지요?

학교의 입학식, 졸업식 또는 국가의 중요한 행사 때마다 국가에 대한 충성의 마음을 표시하는 국민의례가 있습니다. 이 국민의례 순서 중에서 ‘국가에 대한 애국심'의 표시는 대통령으로부터 유치원 아이들까지 신·불신을 막론하고 국기를 바라보면서 오른손을 왼가슴에 올리게 되어 있지요. 이는 국가의 표상인 태극기를 바라보면서 각자의 뜨거운 충심을 모두어 애국하겠다는 국민의 자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국가 의식은 우리나라에서도 어언 50여년 내려오는 미풍이 되어 있는데 혹시 이런 의식의 정확한 표시법을 모르고 국기를 요즘 젊은이들과 같이 지나치게 무시한다든지, 아니면 아직도 국기에다 대고 옛날같이 큰절을 한다든지 국기에다가 아예 예배를 드리자고 한다면, 어느쪽으로 치우쳤던 이는 ‘국기 모독’죄라 해야 될 것입니다. 혹 이런 일이 있다면 나라 밖에 사람들이 얼마나 무식하고 예절없는 사람들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불행히도 요즘 우리 젊은이들 중에는 지나치게 국기를 무시하는 일들이 있어 안스럽습니다. 아무리 막가는 시대라도 최소한의 질서, 최소한의 절도는 교육해야 되겠지요? 지나치게 방종하면 사회가 어지럽고 사회가 어지러운 것은 대개 그 시대의 교회가 어지럽다는 표시일 수 있습니다. 현 우리 교회들이 생각할 바입니다.


2.이런 과거가 있었음을 혹 아십니까?

애국심의 동기는 참으로 좋았으나 방편이 너무도 지나쳐서 미신 종교에서나 행하고 있는 ‘숭배의 예’ 즉 ‘배례’로 국기를 섬기도록 학생들을 교육시켰습니다. 젊은 분들이라도 옛날에는‘배례’, 요즘은 ‘예배’라고 쓰는 줄은 잘 알고 계시지요? 그때의 분위기는 그때를 살아본 분들에게 들어보시면 짐작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국기에 대한 배례’라는 사회자의 구령에 따라 모든 학교는 매일의 조례에서 국기에 대하여 90도로 몸을 숙여 한참 동안이나 정지 상태로 ‘배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래의 동양 종교에서 신격체에 대한 ‘숭배’ 즉 미신적 종교에서 행하던 ‘예배’의 모습으로 국기를 모시도록 했던 일본국을 본받아 교육시키고 시행하게 된 것입니다. 일장기에 대한 충성을 종교적 숭배 차원으로 요구하여 인간의 본능인 생의 애착욕을 마취시켜서 전쟁에서 목숨을 던지도록 내몰던 바로 일본국의 교육 방법이었지요.

'우상화'를 흉내 내면 뒤가 어찌 되는지 북한의 말로를 보면서 느끼는 점들이 있습니까? 우상화는 초기 출발에 막지 않으면 국단을 향해 자멸할 때까지 가속되는 속성이 있습니다. 한 민족의 두 나라, 초기는 양쪽이 다 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남한에는 우상화의 초기 단계가 막혔고 저쪽 북한에는 교회가 막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50여년을 꾸준히 남북한은 우상화와 탈우상화의 길을 달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과연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우상을 섬기면 나라가 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인데 우리 남한 정부도 초기에는 우상화는 망하는 길임을 모르니까 강행을 하였습니다. 만일 초기에 국기 우상화를 막지 못했더라면 오늘의 국가번영은 꿈도 꿀 수 없다고 아는 것이 우리 기독교 역사인들입니다.

이 국기배례 교육을 강행하던 정부 담당자들이 그때는 '배례' 대신 '주목'이라는 바른 방법을 택하도록 주장하는 신앙의 사람들을 무참하게 처리했었습니다. 지금은 젊은이들이 국기를 마구 깔아뭉개는 듯한 행동을 해도 거저 구경만 하고 있는 그분들을 보면서, 이는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시험하시고 연단시키시기 위해서 통과시킨 순서였고 세상의 정치인들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모르고 거저 금을 연단하는 용광로 역할만 했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3.세상도 반세기를 따르고 있습니다.

각 사람의 강한 오른손을 자기 심장 위에 얹어 충심을 표시하는 ‘국기에 대한 주목’. 전 국민의 강한 힘을 심장과 같은 조국애, 그 뜨거운 충성심으로 함께 모두어 표시하는 이 멋진 애국심의 표시. 너무도 편하게 자연스럽게 그러면서도 경건하고 엄숙하게 그러나 피끓는 애국심의 표시인 ‘국기에 대한 주목’
이 책의 앞부분에 있는 사진 중 1960년 8월 장면이 총리에 임명된 후 청와대로 윤보선 대통령을 방문하고 국민의례 중 '국기에 대해 주목' 하는 사진 모습을 다시 한번 살펴 보십시오. 오늘날까지 모든 국민과 대통령까지 이렇게 국기에 대하여 주목을 하게 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는 지난날 시골에 작은 교회의 작은 십자가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비록 대부분의 분들은 잘 기억해 주시지 않을찌라도 우리가 공유하고 싶은 자랑스러운 작은 이야기를 모아본 것입니다.

물론 현재의 국가의식에서 '구령'만은 대개 '경례'라고 통용이 되는 것은 심히 안스러운 일입니다. 이렇게 '구령'만은 어느틈엔가 바뀌게 된 이유는 바로 5·16 군사 혁명의 계엄화 과도기에 있었던 사회의 병영화, 국민의 군인화, 행사의 열병화 과정에서 발생된 오류입니다. '경례'라는 병영 안의 군사 문화가 일시 사회 밖으로 진격하였다가 계엄이 끝난 후까지도 원대복귀하지 않고 탈영된 상태로 일반사회로 슬그머니 주저앉은 것일 뿐입니다.

아직도 극히 일부에서는 생각없이 ‘배례’ ‘경례’ ‘주목’등으로 혼동하여 구령하는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법령으로 50여년 내려오는 정식은 ‘국기에 대한 주목’이라는 구령에 맞춰 오른손을 왼 가슴에 얹는 주목 표시입니다. 단, 1950년 전쟁 직전의 위기상황에서 군부의 건의로 예외가 한 가지 인정되었으니 제복의 군경은 모자를 우수에 모두는 것이 기독교 선진국가들로부터 전해진 군대 사회의 전통이며, 따라서 우상 숭배의 오해가 없다면 예외를 인정해 준 것입니다.

이 국가 의식이 확정되어 내려오게 된 이면에는 한국교회사가 첫손 꼽아 새길 만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많은 숨은 종들이 있었으나 그 중에서도 우리 한국교회 주일학교 역사가 보배롭게 전할 이 신앙사는 오늘의 우리 신앙을 새롭게 하기는 커녕 오히려 기억조차에서도 없는 사실을 주목하였습니다.

1949년부터 이듬해 50년까지 적접지역이라는 준전시 산골 한편에서 시작되어 학교, 지서, 군교육위, 도교육위를 거쳐 중앙에까지 이르고 결국 중앙의 세상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기까지 십자가의 길을 걸었던 위천교회 주일학교의 부장 이하 어린 전 주일학생. 그들이 걸은 십자가는 오늘의 사회, 정부, 학교 분위기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로 인해서, 애국심은 굳게 잡고 그러나 표시의 방법은 성경에 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결정이 나게 되었고 그 후를 사는 오늘 우리는 앞에서 닦아 놓은 자유로운 길에서 적어도 애국심의 표시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교회의 주장에 세상 국가와 국민과 학교가 50여년 따라오게 됨은 앞선 신앙에 수고가 있었음을 기억합시다. 그래야 또 다른 종류의 이런 시험이 올 때 이번에는 우리가 이런 길을 걷고 우리의 십자가로 우리 뒤의 신앙길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말입니다.


(답변2) 1차답변: 상식적 수준에서 생각하면 이러합니다,


(*2차답변은 질문자를 위한 것이며, 이 1차 답변은 일반인에 대한 것임을 참고바랍니다.)

국기경례에 대한 신앙노선은 아주 확고하게 또 분명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2차답변에서 말씀을 드립니다. 우선 1차 답변은 아주 간단한 인식 문제로 해결될 일이며, 일반 교인들을 위한 것입니다.

총공회에 정리된 국기경례에 대한 입장은 아직까지 어느 단체 어떤 사람을 상대해서도 '과연 그렇겠다'고 우리는 인정을 받았지 이런 설명을 듣고서도 반항적으로 나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2차답변에서 요약 정리해 드릴 내용입니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그렇게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고 또 조리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상대방을 설득해야 하는 때가 아니기 때문에 아주 간단히 상대할 상식수준으로 요약했습니다.


1.국기경례를 대하는 기본 인식

1)죽은 귀신을 섬긴다는 제사문제와 국기경례 문제는 형제였습니다.

①제사제도를 완전히 없애야 할 때입니다.

지금 죽은 조상이 귀신이 되어 죽은 날, 설 또는 추석 명절에 제사 밥 얻어먹으러 집으로 온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있습니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 미신 신앙 때문에 제사 문제가 한국교회의 큰 박해문제가 되어 왔던 것입니다. 지금은 온 식구가 놀러가기 위해 또 교통정체 때문에 또는 직장이나 학교 결석 문제 때문에 제사 날을 옮겨가며 지내는 때입니다.

그렇다면 '불신자 너희들은 죽은 귀신을 믿기 때문에 어제까지 그렇게 제사를 크게 생각했고 교인을 그렇게 욕을 했는데 오늘은 그 귀신을 굶겨서 한번 더 죽게 만들고 있으니 제사 제도 자체가 틀렸던 것 아니냐, 그러니 수백년 잘못 알고 내려온 미신을 미리 알고 안해왔던 우리 믿는 사람이 옳았고 그 제사를 강요해서 오늘까지 하도록 만든 그 유교 유학자들, 그 사람들이 다 폐기처분해야 될 사람들이며 그래서 오늘 그 유학이 완전히 사라졌지 않느냐' 고 해야 할 것입니다.

②효도의 표현이란 말장난도 역시 폐기시킬 수 있는 때입니다.

효도하는 방법이라 그렇게 했지 진짜 죽은 귀신 밥 먹으라고 했겠느냐는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에 지내 왔던 제사는 분명히 죽은 귀신을 섬기던 종교행위였습니다. 현재도 시골 나이 많은 분들은 죽은 귀신을 상대로 제사하는 흔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문제는 효도하는 하나의 전통이며 미풍양속이라고 미화된 제사 문제를 어떻게 우리가 상대하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듯이 사람마다 효도하는 방법이 다른 것이고 믿는 우리 효도 방법은 제사를 안 함으로 효도하고 안 믿는 사람은 변질된 제사로 효도하는 표시를 하는 것이니, 머리를 빨간 색 노란 색으로 온통 바르고 다녀도 제 잘난 맛에 제 좋아서 하는 것을 남이 말하지 않는 시대에 효도하는 방법을 기어코 유교식으로 해야 된다면 그 주장을 하는 사람이 이 시대를 너무 모르는 사람이며 국제화와 인터넷 시대에 폐기처분될 구품들이라고 당당하게 그들의 표현으로 그들의 행위를 지적해 줄 수 있다고 봅니다.

'김정일 만세'를 부르고도 '애국의 깊은 뜻을 이루기 위해 그렇게 해 본 것이다'는 말로 넘어가는 때입니다. 아니 그런 말장난으로 오히려 이 시대 애국자로 표창 받는 때입니다.

③당할 고난과 당하지 않아도 될 고난을 구별한다면, 제사문제는 당할 필요가 없는 때입니다.

우리는 제사가 죽은 귀신을 섬기는 법이 아니라고 분명히 선교초기부터 확실하게 말해왔었고 우리 한국사회는 죽은 귀신에게 불경했다고 수많은 사람이 죽고 수많은 고초를 당했습니다. 지금 2000년 추석명절을 한 주간 앞둔 이 시점에 우리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에게 100년 앞섰던 시대의 선구자요 개명자로서 표창을 받아야 할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빌어먹던 거지 근성이 있어 장승 앞에도 빌어먹고 긴다는 말처럼 되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우리는 세상을 능히 가르칠 지혜와 모든 진리를 성경 한 절 한 절에서 배워 아는 우리입니다. 그렇다고 세상에게 교만하게 나가지 않습니다. 그들 전부를 가르쳐 이 복음의 길을 걷도록 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늘 그들로 하여금 감화와 감동으로 따르기를 기다리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당하지 않을 고난을 당하는 것이 순생이나 순교로 생각지도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시민권을 제시하고, 또 유대인들이 공연히 고소했을 때 그 유대인들이 사두개와 바리새 두 파로 구성된 것을 보고 그들이 늘 서로 싸우던 '부활'문제를 말하자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끝이 났습니다. 공연히 고난이 두려워 꾀와 기술로 빠져나간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풀려날 수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로마 감옥을 향했고 결국 그곳에서 순교한 분입니다.

우리는 당할 때와 참을 때, 그리고 당하지 않을 때와 이길 때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죽은 귀신을 전부 매장하고 짓밟고 있으면서 기독교인들에게만은 제사문제를 들고 불효자로 사이비 종파의 이상스런 교리로 몰고 가는 경우가 아직까지 있습니다. 2000년 오늘 이 시점에서는 제사문제로 무조건 당하고 무조건 말도 못하고 무조건 죄인처럼 되는 것은 적어도 이 나라 이 땅에서 이런 분위기에서는 각자가 충분히 벗어날 때라고 봅니다.

제사가 본래 옳고 좋았던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죽은 귀신을 유교의 정통 법도대로 다 지켜라! 우리가 우리 사회를 향해 외쳐 볼 수 있는 말입니다. 제사가 하나의 효도하는 전통 습관이라고 변질된 발언을 한다면, 왜 한국사람이 잘못된 중국제 효도를 하느냐, 그들이 납을 넣어 오늘도 우리를 무시하는 대국 사람 노릇을 하는데 그 납을 먹어 드리는 또 하나의 사대주의 습관을 이어 가야겠느냐! 제사 문제로 어려운 형편에 있는 교인이라면 한번쯤 지적해 볼 수 있는 말입니다. 중국제라도 옳고 좋다면 본받는 것이 성경사상입니다. 틀린 것이라면 내 것이라도 포기하는 것이 성경사상입니다. 오늘 국제화라고 그 뜻도 모르면서 온 나라가 떠들고 있는 바로 그 국제화에 알맞은 표현을 우리 믿는 사람은 100년 전부터 해 나왔습니다.


2)국기경례문제입니다.

①복잡한 국기경례 문제를 이렇게 쉽게 일단 인식했으면 합니다.

외국에서 무슨 짓을 하던, 세상에 아무리 '국기'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지만 사람이 사람도 아닌 천 조각에다가 경례를 하는 이런 미신, 이런 지나친 고대국가 행사를 그대로 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오늘날 한 사람의 죽음을 두고 대통령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며 나라 모습 자체를 전부 뜯어고치고 사는 인권과 자유만능 시대입니다. 최소한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으면 자유와 개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시대에 내가 내 양심에 사람에게 절하지 사람도 아닌 것에 절을 하다니,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 생각이 남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니까 하고 싶은 사람은 실컷 하고 하기 싫은 사람은 하지 않아도 자유라고 해야 되는 때입니다. 그런 건전한 사회인, 남을 침해 하지 않으나 자신의 자유와 개성을 떳떳이 관철하는 건강한 자유인을 기르는 곳이 학교요 그런 내용을 전하는 것이 교육이며 그런 사람으로 살아보도록 실험까지 하는 곳이 학교의 현장 체험이고 실습입니다.

학교 담임에게 교장에게 말은 정중하게 그러나 시대의 흐름과 인식은 확실하게 인지시킬 때입니다. 수 백만 명을 죽인 북괴를 그들대로 가치관을 가진 사회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자고 국가가 학교를 통해 교사들에게 명령을 하달해 놓은 때입니다. 학생들로 하여금 그렇게 인식하도록 만들어 라는 것입니다. 북한도 북한대로 가진 가치관이 있다고 인정을 해 주자는데 그들이 가진 가치관은 아직까지 남한을 무력으로 적화통일하자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자꾸 관용하고 양보하면 그 마음이 바뀔 것이라는 일방적 기대에서 위험한 도박을 해 보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절하지 사람이 사람 아닌 것에다 절하는 것은 남들은 해도 나는 하지 않겠다면 이런 자유, 이런 개성, 이런 각자가 가진 각자의 다름이 바로 사회의 다양화이며 그 다양화를 촉진하고 분발시켜 키워주는 곳이 학교입니다.

②태극기라는 국기는 중국산 사상에 국산 옷을 입혀 놓은 것입니다.

통일 한국이 바로 내일로 다가 왔다고 생각하고 모두들 시계만 보고 있습니다. 해방후 몇 사람이 성급하게 그려 본 것이 태극기가 되었습니다. 원래는 일본으로 가는 배 안에서 만들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더 성급했다는 말일 것입니다. 어쨌던 성급해서 탈이고 날림이라 탈 많은 것이 우리 한국인의 뱃속입니다. 이 악습은 분명히 고칠 우리 전체의 암적 요소입니다.
태극기를 국기로 정하던 시절, 그 시절 한국사람은 국산 하드웨어에 중국산 소프트웨어로 구성되었습니다. 중국에서 만든 중국제 사상을 수천년 받다보니까 자기 속에서 내놓는 모든 사상이 전부 중국산입니다.

현재 중국에서 수입되는 납 꽃개도 중국산이라고 그냥 먹지 않고 검사 검역하여 여러 가지 조처를 하지 않습니까? 나라 이름인 국호도 큰 대(大)자를 붙여 놓았으나 그것도 중국산이지 국산이 아닙니다. 알고 보면 창피해서 다 버려야 될 일입니다. 제사도 국호도 국기도 거의 모든 것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수적 신앙을 견지하는 사람이라 받아들일 때도 조심하지만 또 내 버릴 때도 그렇게 쉽게 버리지 않고 싶습니다. 더구나 국산품 유일주의로 나가는 국수주의, 이북이 좋아하는 자주국가 우리말 사용 등등에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제일주의 성경유일주의이고 싶고, 성경은 우리가 사는 사회를 존중하라고 하기 때문에 전체 사회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할 뿐입니다.

③국기에다 90도 절을 시켜 이 나라를 일본식으로 출발시킨 유례를 아십니까?

독립한국의 교육지표가 있을 것인데, 어린 아이들에게 애국행위를 고취시킨다면서 일본식 국기배례 일본식 최경례를 주창했던 사람이 이 나라를 위해 평생을 애국했던 안호상 초대 문교부 장관입니다. 우리는 그가 비록 단군종교의 지도자일찌라도 애국의 중심과 노력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그 사람 방식으로 우리 믿는 사람의 신앙양심을 꺾어 애국하는 방법까지 강요했던 것은 단호하게 거부했었습니다. 1950년 '국기주목'이 국법으로 시행되고 오늘까지 내려온 역사였습니다.

현재 교육부와 행정자치부에 국기경례에 대한 기록을 물어보셔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단순히 현장의 습관 현장의 관례를 따라 그냥 해 내려왔던 것입니다. '국기 주목'이 어느날 '국기경례'로 바뀐 것은 5.16군사 정권의 군인식 습관 때문이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④오늘 국기가 비를 맞고 있어도 그대로 두고 있습니다.

김정일 사진이 비를 맞고 있다며 울면서 난리를 부린 북한 사람의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2000년 8월, 남한 사람들은 그 뉴스를 들으면서 참으로 미개국이라고 웃고 있지만,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우리나라 국법이 국기를 다룰 때, 비오는 날 비를 맞도록 하면 안되게 규정이 있었습니다. 밤이 되면 국기가 추울까봐 따뜻한 함 속에 보관케 했습니다. 생각이야 기특하나 그 행동은 도를 넘었던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이 법이 바뀌었습니다. 국기를 하나의 휘장으로 문장으로 생활 속에 친근하게 우리가 애용할 수 있도록 다 허락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국기의 인격성을 삭제하여 '야간 게양' '비오는 날 게양'도 하도록 인식 발상이 되었습니다. 국기를 일부러 짓밟는 행위만 아니면 국기를 하나의 깃발로만 상대하도록 비로소 제 자리에 앉힌 것입니다.

애국의 방법이 많고 애국의 표현이 수도 없습니다. 학교란 과거에 모든 것을 단일로 주조하는 곳이라고 알았습니다. 지금은 학교란 남에게 침해되지 않는 범위에서 상대방의 자유와 개성을 존중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교리이기 이전에 내 양심에 사람이 사람 아닌데다 절하는 것은 어디에라도 하지 않아야 하는 상식을 가졌습니다.

⑤오늘 학교와 교사가 실종되었다고들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사회가 그렇게 썩은 도덕을 가져도 우리는 학교를 존중하고 교사를 존중하고자 합니다.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고 교사가 교장을 폭행하는 시절에 우리는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5계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 5계명 앞에 있는 2계명이 사람은 사람에게만 절하라는 내용이 있고 그래서 절은 안합니다. 애국의 표시로 오른손을 왼가슴에 올려 주목으로 하라는 나라 법이 있어 그 법을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애국의 경직된 한 가지 의식만 반복하고 강요하지 않는 것이 오늘의 교육이니 이미 국기경례문제는 복잡한 사상전, 논리전이기 이전 아주 단순한 상식 문제로 인식발상문제로 접근할 때라고 봅니다. 학교측에 한마디 직접 점잖게 예절을 갖추어 대화하면 그냥 문제될 것 없는 때입니다.


(답변3) 2차답변: 이런 여러가지 면을 다 생각하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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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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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국기경례는 분명히 우상숭배의 동기와 방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머리를 90도로 숙여 '배례'라는 구호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경례'라는 표현을 하고 있지만 이 역시 '국기'라는 물건에다 사람이 절하는 것이며, '명백한 우상'행위입니다.

②국기경례가 '국기주목'으로 변경된 정부의 조처는 아직도 유효합니다. 현장의 습관입니다.

따라서, 현장 구령자의 착오로 '경례' 발언을 할찌라도 자기는 자기 신앙을 따라 그리고 정부의 공식 조처에 따라 '주목'의 행동을 취할 수 있습니다. 애국심의 표현은 여러 가지로 할 수 있으나 '절'하는 것만 반대하는 것입니다.

③국기경례라는 구호에는 전혀 몸을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경례라는 구호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고 몸을 움직이지 않겠다면 자신 신앙대로 할 수 있습니다. 단, 다른 사람의 신앙은 다를 수 있고 정죄하는 일은 성급하며, 우리는 신앙어린 사람을 정죄하기보다 신앙장성을 지도하고 기도할 사람입니다.

④국기경례에 대하여 불편을 느낀다면, 현 사회는 이를 전폭 '존중'하고 있습니다.

간첩을 '양심수'로까지 좋게 보아주며 여러 사람의 입장을 다 수용하고 있는 현 사회이며 학교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며 단순한 나의 개성 나의 신앙, 나의 행동이기 때문에 이러겠다 또는 저러겠다는 자세를 분명히 할 수 있고, 그런 경우 그런 행동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존중하는 것이 현재 사회입니다. 과거의 대립적 사고 방식보다 현재의 수용적 사고 방식을 가진 기관 단체장에게 그들이 지향하는 개방사회 개성 자유표출의 자유를 당당히 요구하면 됩니다.

⑤진정, 떨며 생명을 바쳐야 할 사안들은 오늘 말세의 보이지 않는 죄들입니다.

단군신상 문제 등을 두고 교계가 행동으로 지나치게 과잉반대하는 것은, 우리는 지켜 볼 정도로 생각합니다. 현재 사회는 자기 신앙을 자기가 타락시키도록 하고 있습니다. 폭넓게 악령의 주진공로를 살펴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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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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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우상'에 대한 2계명을 다시 살펴보신다면

①하나님만 생사화복의 주권을 가지심을 알라는 계명입니다.

생사화복의 주권은 하나님만 가지고 계신데,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게 생사화복을 구하는 것은 전부가 우상죄가 됩니다. 돌, 나무, 금 등 여러 재료를 사용해서 하나님 외에 구할 대상을 제작하는 행위, 그것을 유지, 관리하는 것이 다 죄 되는 것이며, '그것에게 무엇이든 구하는 행위'까지 일체를 금했습니다. 금한다는 성구가 따로 없어도 당연히 하면 안될 일입니다. 명문으로까지 적어주심을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②고대는 보이는 것 위주로, 오늘은 보이지 않는 것 위주로 '우상죄'가 진행됩니다.

금불상, 돌부처, 무당 굿풀이, 조상제사 등이 그러했습니다. 오늘은 불신자들도 극소수 정신분열증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들은 '마음의 위안'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돈, 지식, 자녀, 사랑하는 사람 등등이 과거의 우상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웃어넘길 일이 아닙니다. 이 사람에게는 우상인데 저 사람에게는 하나님께 받은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③'우상'이 되는 기준은 '그 존재 이상의 대우나 대접'입니다.

우상문제를 두고 만물을 분류할 때 우리는 위로 하나님 한 분, 그다음 우리 인간, 우리 밑에 만물로 3등분만 합니다. 인간을 인간 이상으로 대접하면 우상이 됩니다. 로마황제 일본천황 단군 등을 인간 상한선 범위 안에서 올린다면 아무리 올려도 우리는 '미화'로 보지 '우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뒷골목 무당이라도 그가 인간이 올라갈 수 없는 그 윗자리로 올라가면 그때부터는 '우상'으로 분류합니다. 로마박해시절 '황제숭배'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인간 최고의 존재로서가 아니고 인간계를 살짝 벗어나는 '숭배'를 요구했으므로 '순교'로 대처했습니다. 천황을 향한 '동방요배', 그리고 오늘 단군종교들의 '단군'을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입니다.

금과 은을 값비싼 장식용 금속으로 본다면, 돌과 나무를 흔한 조각재료로 상대한다면 하나님이 내놓으신 좋은 선물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그 자리 이상으로 위치를 변경한다면 그리고 그 위치 변경의 방향이 수직상승을 하여 인간계로 올라오거나 그 이상으로 진행된다면 가차없이 '우상'이라는 낙인들을 찍어버립니다. 불상이 석공의 기술이나 예술성까지만 간다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지식도 자녀도 사랑하는 사람도 각각 그 자리 그 범위 안에서 가지면 선물들입니다. 그 자리를 이탈하여 올리면 '무엇이든 우상'입니다.


2.국기 취급을 그 성격에 따라 3가지로 분류하겠습니다.

①국기 취급은 국가 발전 단계에 따라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일류대학교 뺏지, 삼성그룹 상표, 특공부대 마크, 심지어 조폭들의 문신 단일화 등과 같은 원리에서 만들어진 것이 국기입니다. 삼성이라는 직원마크는 '우수한 인재'라는 뜻이며, 일류대학교의 뺏지는 '영원한 지성인'이라는 의미이며, 특공부대나 조폭들의 마크는 늘 생사를 드나들기 때문에 '특수 신분'을 확인시킵니다.

국가가 하나의 특공부대나 조폭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미국은 남북전쟁시절, 독일과 일본은 2차대전, 우리나라는 전대통령 정도까지, 북한으로 말하면 아직까지 그러합니다. 미개에서 개화되어 나오는 단계로 보면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이런 시절, 국가는 전쟁터에서 군인들이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표시를 하나 만들게 됩니다. 이 표시는 생사의 기로에서 사용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생명을 쉽게 바칠 수 있도록 제작이 되어야 하고 자연스럽게 그 국기의 위치는 인간 위로 부상하게 됩니다. 위치가 올라가면 그기에 맞는 대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수천년 접했던 서양열국은 '우상'으로 분류되지 않는 한도에서 사용했고, 일본은 미신으로 유명한 민족이라 손쉽게 국기를 '신격화'시켜 극진히 섬겨온 것입니다.

②우리나라는 2단계 '애착물'에서 3단계 '회사로고'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가가 일류대학들처럼 '평생 소속감을 가질 수 있는 단체'로 개화가 되고 나면 대외적 자랑, 대내적 유대감 정도로 국기를 사용합니다. 1차 2차 세계대전 중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국가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며, 2차대전 이후는 독일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 단계의 국가들은 국기를 '자기 자존심, 자기 긍지의 대변'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애착물로 극진히 사랑하는 정도입니다.

국가가 거대한 기업정도의 의미가 되는 경우까지 발전(진보주의적 시각에서), 또는 타락(국수주의적 시각에서) 할 수도 있습니다. 삼성보다 좋은 직장이 있으면 옮길 수도 있고, 또 돈을 벌 수 있다면 국기라는 상표를 얼굴에 바를 수도 있고 휴지에도 찍어 변기속에 들어가게 할 수도 있습니다. 국적변경을 회사를 바꾸는 정도로 국기를 회사 상표 정도로 사용하는 단계가 되면 상표를 가지고 놀 듯이 국기를 가지고 별별 장난과 놀이를 다 할 수 있습니다. 1단계 조폭수준의 국가였다면 사형시킬 일이고 2단계 일류대학교 정도의 국가라면 경찰에 조사받을 일이고 3단계 경제 위주로 경영하는 국가라면 저 사람 회사를 그만 둘려는가, 아니면 광고를 저렇게 한다고 매출이 얼마나 늘까? 이런 시각에서 보게 됩니다.

③1단계 시절 국기 '경외', 오늘 3단계 시대는 오히려 '애착물'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자기가 소속한 사회에 대하여 죄되지 않는 범위에서는 모든 것을 존중합니다. 우리 사회가 국기를 1단계로 취급하여 인간이 국기를 숭배하고 경배할 대상으로 만들었던 때가 있었고, 우리가 반대한 것은 당연하였습니다. 국법이 바뀌어 국기는 애국심을 모으는 표시로 인식하고 '국기 배례'가 '국기 주목'으로 1950년부터 시행됨을 안내 드렸습니다. 그동안 유신시대를 거치면 군사정부들이 군대식 시행으로 국기를 취급하여 1단계 시절로 되돌아 간 적이 있었으나, 지금 1990년대 사회가 개방되면서 국기를 국민이 편하게 대하는 생활 속에 국기로 자리잡도록 관련 법령을 개정하였습니다.


3.현재 우리나라는 국기 취급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변경시켰습니다.

①장군님이 비를 맞고 계신다고 울부짖는 소리를 지난 8월에 들으셨습니까?

북한 교향악단이 KBS 주최 연주회를 위해 서울거리를 통과할 때 김정일과 김대통령이 함께 웃는 사진 광고가 벽에 붙었고 비가 많이 왔었습니다. '장군님이 비를 맞고 계신다!'며 울어대는 북한 여자분이 있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사진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절에 가서 불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수준에서 큰 죄가 됩니다. 그들에게는 분명 장군님이 비를 맞고 계셨고 그 여자는 생명을 내놓고 비를 맞지 않게 하라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코메디로 들리는 뉴스였을 뿐입니다.

태극기가 비를 맞고 '계셔서' 되겠느냐, 이 나라 국기'께서' 밤 이슬을 맞으시고 찬바람에 시달려서 되겠는가, 이런 사상에서 국기에 대한 취급 요령은 정부에서 비가 오거나 밤에는 반드시 국기함에 극진히 모시도록 했었고 이것은 1990년대까지 내려오던 바로 우리의 역사였습니다. 국기를 국기함에 극진히 모시는 미군 모습을 TV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명예'인 국기이며, 우리에게는 '모실 어른'이었던 국기였습니다.

태극기에 대한 지극 정성에 문제가 있으면 매국 반역 행위로 이어졌던 남북 대치 상황에서 정부로서는 태극기에 대한 자세에서 국민을 표시나게 장악할 수 밖에 없었음을 우리는 잘 이해합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국기'를 인간이 '섬길'대상으로까지 올렸던 것은 지나쳤고, 신앙인으로는 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②지금은 국기가 국기로 가질 수 있는 위치를 결정하는 국체까지 혼동되는 시대입니다.

지금 태극기 아래 목숨 바쳐 싸운 군인들이 반통일 매국노가 되는 시대입니다. 그들이 사수하고자 했던 국가가 그들을 향해 '미개하던 시절 철없이 저질렀던 장난'으로 취급하는 시대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이 사회 전체가 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개방 사회, 다원 사회, 문화 사회, 모든 종류의 주장이 건전하게 오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최근 정부의 자세 때문에 갑첩이 '자기 사상을 지킨 양심가'도 되는데 국기를 전 근대적 발상으로 '경례'의 대상으로 방치시키고 있는 것은 단순히 실수일 뿐입니다.

수십년 내려온 이 사회의 모든 구습 폐습을 어찌 하루 아침에 고치겠습니까? 그러나 부단히 노력하여 분명히 우리 사회는 70년대 보다, 80년대가, 또 80년대보다 90년대가, 그리고 지금 2000년대가 자유와 개방, 그리고 모든 개성을 다 흡수하는 사회, 단지 남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정정 당당하게 자기 실력으로 자기 성취를 이루라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방향에서 국기에 대하여 즉각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 '경례'구호입니다. 정부가 과거처럼 고집하고 버티거나 우리를 사이비 종파로 매도할 일도 아닙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입에 붙은 구호'이다 보니 '경례'가 '경례'로서가 아니고 그냥 '반복하던 구호'일 뿐입니다.

참고로, 여호와의 증인들이 국기경례를 하지 않는다고 기억합니다. 그들은 그 문제가 아니라 세상 모든 기관을 다 부정합니다. 정부라는 기관 자체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소속된 사회를 '성경에 죄되지 않는 범위에서는' 존중합니다.

③주로 학교가 문제입니다.

어린 학생, 그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절대권은 대단히 힘있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2000년에는 학생이 교사를 때리는 데까지 나가고 있습니다. 학교는 학생에게 가정마다 가지는 가정가치를 위해 부모와 함께라면 학교를 오지말고 집에서 며칠 씩 지내라고까지 말합니다. 이렇게까지 교육현장이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공무원, 물론 교육공무원도 포함이 됩니다만 그들에게는 내려오던 습관을 바꾸라면 몸을 사립니다. 다치지 않으려는 직업본능이 있습니다. 따라서 부모가 학교에다 '국민의례' 수정건으로 말을 하면 될 것도 안 될 수 있습니다. 학교는 교육행정의 말단 현장 집행처로서 상부 지시가 없는 사항을 변경하는데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만 앞으로 시대를 살아갈 우리 아이가 국기에다가 '경례'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가르치고 싶고 이런 뜻에서 우리 아이가 국기경례를 하지 않는 것은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하면 끝날 문제입니다.

현재 학교는 교사가 노동자로 선포를 했습니다. 돈내는 학부형은 사장입니다. 교육현장이라는 점을 감안해 주더라도 얼마든지 '가정 교육 차원'에서 학부형의 정중한 부탁은 학교가 반드시 존중해야할 의무가 있고 실제 그렇게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국기 경례'라는 구령으로 아직까지 국기를 사람이 섬기고 모실 상대로 가고 있다면 당연히 지적을 하여 위해서라도 이런 구령을 바꿔야 한다고 우리가 지적을 해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사회개량주의는 우리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크게 나설 필요는 없어도 최소한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그런 인식을 그런 소개를 당당히 드릴 수 있다고 봅니다.


4.이제 국기경례에 대하여 우리가 가질 행동을 소개합니다.

①몸이나 머리만 숙이지 않는다면 '국기경례'에 대하여 다른 표시를 할 수 있습니다.

오해 소지 자체도 없애는 신앙, 말 한 마디의 오해도 없애고 싶은 신앙, 가장 높은 차원의 신앙에서 취할 수 있는 행동은 그 구호가 '경례'로 나왔다면 아예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신앙으로는 '국기경례'라는 구호에 머리나 몸만 숙이지 않으면 됩니다.

성경에서나 또 어느 사회에서나 통용되는 '절'은 몸이나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머리나 몸을 숙여 절로 표시되지 않는 경우는 없다는 상식에서 우리는 그 구호가 '주목'이라 해도 몸을 숙여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그 행동 외에, '군인들의 받들어 총'이나 모자에 손을 올리는 표시, 기타 여러 방법으로 행동을 통일하며 국기를 향하여 애국심을 각오하는 행사나 그런 행위는 상관이 없습니다.

백목사님의 설교는 종종 앞에 설명한 '어떤 행동도 취하지 말 것'과 '머리나 몸이 숙여지지 않으면 상관없다'는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앞의 설교만 기억하고 무작정 그렇게 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시 잘 살펴 볼 일입니다.

②1975년 반사회 때, 몸이나 머리가 숙여지는 행위만 일단 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1970년대 유신 정권의 서슬 퍼런 칼이 교회를 향하여 국기경례 문제로 시비할 때입니다. 이미 일반 교회는 과거 역사를 대부분 잊었고 또 정부가 원하는 대로 했었습니다. 고신에서 약간의 마찰이 있었고, 대부분은 우리 총공회 교회들 문제였습니다. 어떤 학생은 모자에 손을 올리는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학생은 손을 올리는 것은 했었습니다.

행동 통일에 문제가 있었을 때 목사님께서 발표하신 소개가 그러했습니다. 사람 아닌 어떤 것에게도 몸이나 머리 숙이는 것은 단정하고 2계명 우상죄가 된다, 그러나 몸이나 머리를 숙이는 외의 여러 가지 표시 전부를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다, 구호는 그들이 몰라서 하는 것이고 그들은 잘못된 구호로 그들 원하는 대로 할 때,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이미 '기독교인들을 고려 주목'으로 바꾼 정확한 개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인 식 애국표시인 주목을 하면 자기 양심에는 상관이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오해는 있을 수 있으나, 그들의 오해 때문에 국기경례라는 구호에 만일 몸을 움직이지 않는 부동자세가 경례 법이라고 지정한다면 우리는 그 반대로 일부러 몸을 움직일 것인가, 그들이 모르고 그들대로 할 때, 우리는 우리의 국기주목으로 확정된 주목의 방편으로 몸과 머리 숙이는 외의 방법은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만일 우리를 향해 국가적 탄압이 극심하니 말로서 핑계대고 빠져나가는 패전이 아닌가 라고 한다면, 우리는 과거에 주일학교 1학년 학생으로도 학교를 다 이기고 국가를 이기고 우리의 양심이 옳다는 인정을 받았다, 현재는 더욱 더 그럴 힘이 있는 시대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보이는 우상, 국기라는 것이 일장기와 같은 우상노릇할 때는 지났고 지금 우리 신앙의 적은 보이지 않는 우상이다, 이런 때에 '절하지 말라'는 말씀의 절이라는 행동을 어떻게 보느냐는 것을 두고 우리는 이렇게 깨닫고 이렇게 할 수 있다, 우리가 환란이 두려워 피하는 핑계라면 우리 하나님께서 다른 큰 환란을 주셔서 우리를 시험하실 것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그후 1981년, 정부가 교단통합법으로 기독교를 분해 조립하려 할 때, 끝까지 거부하고 그 조처에 조금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교단은 총공회 밖에 없었습니다.

③국기경례라는 말 자체에 어떤 행동을 보이지 않고저 하는 분이 있다면 개인자유입니다.

자기 양심 자기 신앙에 그것이 좋으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알아둘 것은 몸과 머리를 숙이는 표시 외의 것을 '주목'으로 알고 또 구호가 '경례'로 된 것은 구령하는 자의 착오로 취급하고 우리는 우리 할 일만 한다는 양심으로 하는 사람도 그 사람의 신앙양심이며 그 신앙을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만일 따지자면, 올림픽이 극심한 우상종교로 세계 최고였던 그리스 신의 제전입니다. 이는 명백하게 그 출발을 선언하며 그 이름과 그 의식, 심지어 올림픽의 시작을 그 신전에서 체화한 '성화'라는 의식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하여 올림픽에는 참가도 참관도 TV시청도 않겠다는 분이 있으면, 그리고 그분의 전반적 신앙이 매사를 그렇게 조심한다면 우리는 잘한다고 할 일이지 치우친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올림픽 구경하는 사람을 정죄한다면, 그것은 생각해 볼 일입니다. 한 사람은 이러하고 한 사람은 저러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이 사람이든 저 사람이든 반드시 이렇게 해야만 하는 행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추석이 전통명절이지만 그 추석의 시작에서 끝이 전부 토속종교적 요소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는 추석을 전혀 평일같이 지냅니다. 그렇다고 다른 교회나 다른 교인에게 그러 해야만 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내 신앙과 내 양심에 추석이 구정 명절을 전혀 평일처럼 지내는 것이 좋아서 그럴 뿐입니다. 그러나 추석명절에 제상을 차리거나 절을 하는 것은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 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은 분명합니다.

이런 경우일찌라도, 믿는 사람이 제사에 참가는 집마다 따라 가며 막거나 참견할 일도 아닙니다. 나와 내 신앙에 관련된 정도에 따라 할 말 안 할 말, 할 행동 안 할 행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 사역에 우리 교회를 참가시킨다면 교회는 복음기관이지 정부 통일 운동에 나설 기관이 아니라고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 사역에 앞장서겠다는 교회가 있다면 우리는 따라가서 말 일 입장은 아닙니다. 물론 우리 교인들에게 교회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외치는 설교는 간섭이 아니며 '양떼를 지도'함이기 때문에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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