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질문) '단군상 철거를 위한 집회'에 대한 신앙인의 자세는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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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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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28
6. (질문) '단군상 철거를 위한 집회'에 대한 신앙인의 자세는 402
단군상 철거 및 구속 성직자 석방을 위한 규탄 집회가 대구, 포항 지역에서
열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일 오후 3시쯤 모여, 주일 오후예배 대신 참석하는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경북 기독교 총연합회'라는 곳에서 주최하는 것 같습니다.
헌금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예배 후 시가행진을 하는 것 같습니다만,
주일 오후에 하는 일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혹 평일날 한다고 해도 기독교인이 대하는 자세를 알고 싶습니다.
(답변) 단군상 철거에 대한 교계의 접근은 총체적으로 틀렸습니다.
1.우선 '민족중심'이 귀신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①민족마다 귀신으로 이어지는 위험한 장난감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불장난은 쉽게 시작하지만 그 결과는 태울 수 있는 전부를 다 태워 잿더미와 타죽은 비참한 가족들을 남겨두게 됩니다. 불장난이란 시작이 장난이라는 말이지 장난으로 끝난다는 말이 아닙니다. 민족이 힘을 합해 타 종족으로부터 살아남아 보자는 등의 유치한 골목싸움식 발상은 그 동기나 수준이 참으로 장난수준이며 유치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장난이 2차 세계대전으로까지 발전되었으니 이를 장난으로 보는 이들은 죽어도 마땅하겠고 제 정신이 있다면 장난으로 끝날 장난과 장난으로 끝나지 않을 장난은 엄격히 구별하여 그 초기 대응에 생사를 걸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단군상에 대하여 우리 교계가 보여주고 있는 여러형태의 뉴스들은 '장난으로 끝나지 않을 작은 장난까지 통찰해 보는 참으로 귀한 행동들'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②단군상 역시 '역사적 의미'라는 포장 속에 '종교제작'팀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신사문제가 있다면 한국에는 단군 문제가 있습니다. 역사 속에 죽어간 전사자를 추념키 위해 만든 것이 신사입니다. 우리 말로는 전국 시군에 하나씩 있는 충혼탑이 되겠습니다. 이 충혼탑이 전몰자 기념에서 그치지 않고 일본을 지키는 '신들'로 변신을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단군문제 역시 한반도 초기 부족장으로서가 아니라 5천년 반도의 '수호신'이며 일본의 태양신인 천황을 맞설 '국산품 귀신'을 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거에는 이런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고도의 전략가들이 없어 만들지 못했지 만들고 싶다면 제작비용이나 그 과정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현대 과학에 의하여 이런 유치원 수준의 장난이 잘 먹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최근에는 시대의 조류와 인심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며 타이밍까지 계산을 해야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즉, 종교제작이 현대사회에서는 쉽지 않기 때문에 역사 기념을 늘 앞세워 두고 종교로 전업할 기회를 찾습니다.
③'역사'라고 시작했다 '종교'로 전업한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인간심리문제입니다.
반대가 심하게 되면 역사적 인물이며 그들을 기념한다고 주장하여 학술의 분야로 일단 빠져 나가서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관심이 흩어지고 기회가 주어지면 슬쩍 '신의 자리'로 밀어올리는 방법입니다. 김일성이 북한에는 신이 되어 있고 김일성 뺏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가는 목이 날라가기까지 합니다.
문제는 불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없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무엇인가 인간 자신을 맡길 만한 가설을 만들어 놓는 것이 타락한 인류의 공통심리라는 것입니다. 즉 기본적으로 이런 허무맹랑한 장난이 오늘 21세기에도 통할 수 있는 토양은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 마스코트를 상대로 반복하여 자신의 허무함을 달래는 장난을 하다보면 처음에는 장난인데 곧 미신수준으로 발전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약간의 세월 속에 자라게 된다든지 또는 그 논리나 마스코트의 이미지가 대중성을 띄게 될 때에는 어느날 '종교'로 커져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에게 더욱 집중하도록 시대상황과 잘 맞아지게 되면 군중심리의 상승작용을 얻게 되면서 어느날 움직이는 귀신으로까지 승격이 됩니다. 그다음은 칼을 들고 그 반대편을 죽이는 등 극단적인 일을 하게 됩니다. 일본전몰장병을 받들다가 너무 많이 높인 형태가 신사참배입니다. 지질나게 못난 민족이 죽은 조상 이름이라도 팔아 위안제로 만든 것이 단군문제입니다.
④애들 장난으로 두고보기에는 그 결과가 너무도 큽니다. 막아야 합니다.
그러다 여름의 절정기를 지나면서 가을 바람이 불게 되면 전부들 제 정신으로 돌아오게 되고 허파에 바람들이 빠지게 되면 나치의 횡패, 공산주의 70년의 피로 물들인 역사를 '실수한 애국주의의 경험'이라면서 그냥 종을 쳐버립니다. 그러나 그 피해 당사자가 된 사람에게는 있어서 아니되며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상처가 됩니다만 인간사의 가장 큰 죄악성 중에 하나가 '망각성'이니 과거를 잊어버리는 이 약점 때문에 이제 말씀드리는 역사는 또 반복이 됩니다.
2.역사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아이들의 한 때 장난으로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①지난 100여년 역사만 들추어도 장난으로 시작할 때 이미 목숨을 걸고 준비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소련, 중공, 캄보디아, 베트남, 북한 등으로 예를 들 수 있는 공산주의 허망 하나 때문에 70여년 세월 얼마나 많이 굶어죽고 총맞아 죽었는지 계산을 다 한다면, 또 장차 이런 오류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는 운동이 있다면 미리 막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신사참배로 요약될 일본의 불장난에 죽어나간 아시아인을 계산한다면, 오늘 이 나라에 단군상도 그런 의미에서 시도되는 것이라면 이는 초기에 막아야 할 사안입니다. 대개 불장난이란 초기에는 정말로 장난일 뿐입니다. 타죽고 재가 된 후에는 불장난이란 장난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집단살해이므로 이는 사전에 반드시 막아야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②한국교회는 특별한 경험을 어제 경험했으며 이런 과거가 특별합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 특히 한국교회는 세계기독교사에 몇 안되는 순교사를 가졌고 박해 승리사를 가진 교회이기 때문에 불꽃같은 눈동자로 세계사와 한국사 먼곳과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는 장차의 신앙박해흐름에 대하여 미리 대처하고 미리 투쟁하며 미리 준비하여 환란을 예비하는 슬기로운 다섯처녀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성경적 예지입니다. 한국교회가 세계사에 유례없는 분열을 가지게 된 원인 중에 하나는 분명히 신사참배 문제와 해방후 처리과정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신사참배를 반대했던 적이 있던 이들은 고래고래 고함지르며 한국교회의 정통성을 주장했고 몇 안되는 그들은 그 정통성으로 실제 고생한 고생의 수십 수백배의 이득을 챙겼으며 그 반대측에서 신사참배 참가측이라고 지적받은 교회들은 항상 죽어 지내야 했습니다.
③그러나 이를 준비하는 일도 역시 장난이면 안됩니다. 장난 이상으로 준비하는 교회를 볼 수 없는 것이 진정한 탄식입니다.
이런 교회사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교회에서만큼은 신사참배와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때 먼저 이를 반대하는 이들은 특종보도를 하는 언론과 같은 효과를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경쟁심리 덕분에 정작 우리 총공회 교회들은 적잖은 덕을 보고 있습니다. 말로 끝나는 싸움이 아니고 정말 죽고사는 문제로 발전하게 된다면 끝을 보고 죽을 사람은 총공회 교회계통 뿐입니다. 그러나 말로만 싸울 때는 총공회 교회는 어디 있는지 흔적도 없이 조용한데 이때는 말로만 싸울 교단과 교회들이 앞서 나서 자신들이 다 죽을 각오를 가진 듯 고함을 질러댑니다. 마침 현재 사회는 많이 떠들면 어지간한 것은 해결이 되는 묘한 때라 그런 분들의 수고로 우리들은 아직 무풍지대에서 다른 많은 준비를 할 수 있게 되는 점이 있습니다.
어쨌던 한국교회가 신사참배와 동일한 성격으로 장차 나타날 단군상문제를 걱정한다는 것은 백번 천번 고맙고 감사하고 죄송하지만 대견스럽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길 교회는 아주 없다고까지 내심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데모를 하는 방법으로 단군상문제를 부각시키고 그 앞장에 서 있는 이들, 그리고 그 운동에 동참해야 할 일반 교인들의 자세에 대하여 백영희신앙노선에 있는 이들이 가질 시각은 무엇인가?
④다시 한번 요약하겠습니다. 아이들 장난에 영생의 건설구원이 오가고 있습니다.
단군상이 오늘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는 현상에 대하여 그 족보와 유래 그리고 이것을 반대하는 한국교회의 역사와 심리 등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요약한다면 유치원 아이들의 골목싸움에 나타나는 현상정도로 유치한 문제인데 교회는 이런 장난이 장차 가져올 수 있는 만에 하나를 생각하여 미리 신사참배와 같은 환란을 초기에 진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노력을 우리는 대단히 죄송한 표현이지만 대견하게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대견하다는 칭찬만으로 그냥 볼 수 없는 지극히 위험한 일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음은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수준입니다. 신사와 단군을 신으로 제작하는 기술과 군중심리를 이용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것을 대응하는 교회의 방어도 꼭같은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군중심리를 업고 한국교회가 전체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힘의 배경, 현 사회가 이 문제를 가지고 그렇게 극단적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정치적 예견, 또한 어려움을 당한다 해도 이는 미미한 것으로 오히려 경력관리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는 전제가 있다는 것을 염려합니다.
3.문제는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①단군상 반대는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방법이 너무너무 틀렸습니다.
단군상 문제는 분명히 우리 교회에게 앞으로 각오해야 할 생사문제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말씀 때문에 닥칠 환란을 준비하려면 말씀대로 준비를 해야 하는데 말씀 때문에 닥칠 환란을 미리 막겠다면 그 방법은 전부 세상방법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군상을 절단하는 일, 교회가 피켓을 들고 주일날 행진을 하는 일, 다수를 앞세워 힘으로 사법부에 압력을 넣는 일 등 모든 일은 전부 세상 불신자들의 생존투쟁과 동일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벌써 이것만으로도 한국교회는 단군상 투쟁을 할 실력도 위치도 아니라는 것을 보이고 있습니다.
②교회는 세상식 방법과 세상힘은 '칼'로 정의를 하며, 이를 사용치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온 말고의 오른쪽 귀를 칼로 잘라낸 베드로는 중심과 동기는 좋습니다만 그 방편이 칼이기 때문웨 베드로도 칼에 망해야 할 잘못을 했다고 주님은 똑똑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천주교가 이단을 막는다고 화형으로 불살라 죽인 숫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천주교가 이단을 막는다고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단자를 불로 태운다고 이단사상이 없어지는 줄로 아는 우맹을 탄식하는 것입니다. 단군상을 도끼로 찍어 그 형태를 없앤다면 이 나라에 기독교 자유가 오겠으며 이 나라가 미신으로부터 해방되어 신앙 자유가 확보되겠습니까?
③단군상을 절단하여 해결된다면 자폭단을 만들어 단군상마다 공중분해를 시켜야 진정 믿음의 용사들일 것입니다.
너무도 잘못 짚었고 너무도 잘못 본 것입니다. 단군상 문제를 제외하고라도 오늘 주일문제가 박해로 인하여 주일을 못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 5일 근무제까지 나오면서 휴일차원에서라도 주일을 쉴 수 있게 되었으나 교회가 스스로 주일성수를 반납하여 주일지키는 교회가 거의 없게 되었습니다. 그 극단적인 예가 바로 주일날 피켓행사를 하는데 이것이 교계적 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단군문제가 이 운동으로 없어진다면 단군운동에 비교못할 정도로 많고 또 세력이 강하여 실제 교회탄압을 교묘하게 수없이 했던 불상들과 불교도들은 어찌할 것입니까? 전, 노대통령은 승려급이었으며 역대 최대 실세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씨는 극렬한 불교신도였습니다. 육여사와 함께 불탄일을 휴일로 몰고 간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일에 대하여 물론 교회가 교회의 뜻을 밝힐 수 있으며 이런 교회의 의사표시는 이 땅에 대한 축복과 저주의 결과로 그 표시가 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피켓을 들고 노동자들처럼 철없는 대학생들처럼 한 때의 울분으로 울컥울컥 터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4.현 단군상 관련 규탄대외가 주일에 이루어지는 것은 이미 싸움에 진 것입니다.
2계명을 어길까봐 4계명을 이미 어겨버렸습니다.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들면 안된다는 세상 칼을 들었습니다. 세상사람이 사용하는 세상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일의 개념 자체가 없어진 것이 수십년씩된 교회들이 중심되어 계명사수를 외치는 것도 우스운 일이며 교회가 손을 잡아서 안되는 세상과 손을 잡고 현재도 일을 벌이고 있는 사업이 몇가지며 그 종류가 몇가지입니까? 월드컵에 교회가 앞장서고 88올림픽에 앞장서고 남북정치 관계에 들러리를 서는 것이 부족해서 환경운동 시민운동에 이르기까지. 종교통일에 앞장서는 불신기독교인들이 교계 간판직을 다 맡고 있는 오늘 현상은 이미 걸레가 되어도 더 이상 더러워질 것도 없을 만큼 걸레가 된 것이 적어도 한국교계입니다.
5.이렇게 한국교계를 비판한다면, 현재 단군상 반대운동은 잘못된 것입니다.
①단군상 반대 운동 속에 한국교회는 이미 천주교로 진행할 모든 요소를 다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일에 그런 운동을 한다면 주일을 범한 죄에 세상식으로 교회 운동을 하는 죄까지 더하게 됩니다. 평일에 행사를 하게 된다면 주일 범죄는 빠지겠지만 사실 주일 한번 어기는 죄보다 교회가 세상 방편을 교회의 힘과 방편으로 사용하는 위험성은 천주교로 가는 길에 들어섰음을 알아야 합니다. 천주교가 태동되던 당시 가장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가 세상 국가에 대하여 초대교회가 당한 박해를 세상 국가에 맞설 세상 힘을 보유함으로 막아보겠다는 발상이었고 이 발상이 일을 저진 것이 바로 교황제도였습니다.
②성경은 신앙박해를 이기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그 방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굳이 예수님이 걸어가신 걸음, 사도들의 걸음을 다 예로 들지 않겠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되어 간 이스라엘 백성 전부가 몰살 당할 위험에서 구원받은 것은 많은 사람의 행진과 단결로 된 것이 아니라 한 두 숨은 성도가 세상 전체를 움직이는 하나님 앞에 자기 모든 것을 다 맡기고 매달렸던 숨은 기도에 있었습니다. 무력을 사용하도록 허락했던 구약교회도 실은 무력으로 교회를 지킨 것이 아니고 내적 하나님과 관계로 전부 해결했습니다. 신약에서는 아예 무력 자체를 주지도 않으셨고 또 사용치 말라고 명언을 했습니다.
③한국교회는 이미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런 일을 한두번했던 것이 아닙니다. 이제 고질병이 되어버렸습니다.
6.25전쟁 휴전 직후 유엔군이 한국에서 철수하려고 결정했을 때 한국교회는 총체적으로 단결하여 유엔군 철수는 한국의 공산화로 이어질 수 있다면 한국교회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유엔군 철수를 반대한다고 하여 오늘 단군상 반대운동에 비할 수 없는 운동을 벌렸습니다. 백목사님은 당시 전도사로서 한국교회 가장 보수파였던 고신 수뇌부에게 신사참배는 강간당한 죄라면 유엔군철수반대운동은 좋아서 범한 간음죄라고 외쳤습니다.
④단군상의 쌍둥이 형인 국기배례문제는 통째로 삼켜놓고 아직 일도 벌이지 않고 있는 단군상을 두고 죄를 지어가며 반대하는 한국교회를 도저히 이해치 못하겠습니다. 제정신이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진정 우상숭배에 목숨을 걸 정도라면, 그리고 그 숫자가 불과 몇 십명만 된다 해도 단군상 문제는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현재 국기배례에 대하여 '퇴학'이라는 조처에 놀라서 한국교회 전체가 손을 털어버렸습니다. 총공회 소속교회 외에 국기배례 문제가 아직도 교단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곳은 답변자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오히려 국기배례를 거부하는 우리를 보고 다른 교회들이 별스러운 예수를 믿는다고 이단 아니냐는 말까지 하고 있음이 현실입니다. 단군상은 앞으로의 문제라면 국기배례는 지금도 한국교회가 다 굽히고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단군상 문제에 대하여 진정으로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교단은 우리 공회뿐일 것입니다. 우리 공회의 입장은 우상 반대를 하는 형제 교회들을 향해 수고하며 애쓴다는 긍정과 대견하다는 자세를 가지면서 동시에 반대하는 방편에 대하여는 너무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신앙이란 저런 것이 아니며 믿는 사람의 박해준비는 저런 식으로 해서는 백전백패라는 마음입니다.
백목사님도 생전에 이 단군상문제를 두고 교계의 서명운동에 동참한 적이 있었습니다. 서부교인들과 공회 교인들로 하여금 서명 숫자에 보탬이 되도록 한 것입니다. 위에 있는 이런 시각을 가진 상태에서 서명에 협조를 했다는 것은 어느 시각 어느 차원에서 그리 했겠느냐는 것은 자명할 것입니다. 그 서명으로 반대가 된다거나 또는 그 서명으로 그 환란이 막아질 수 있다는 것은 추호도 생각지 않은 분입니다. 교인의 연보가 왜 우상제작에 사용되느냐는 것을 당시 반대했던 것이며 반대는 국가에 대하여 '그것은 잘못이라'는 의사표시에서 그치는 것입니다. 단군을 100% 국내 기술로 만든 국산품 신으로 만들고자 했던 가장 중심에는 안호상초대교육부장관이 있었습니다. 그를 상대로 사선을 넘어 승리했던 진정한 신앙투쟁과 승리는 50년전 이미 백목사님 지도 하에 주일학교 반사와 어린 학생들에 의하여 확인되어졌음을 이곳 홈페이지 출간서적란에서 소개하고 있음을 상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