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질문) 트랜스젠더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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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질문) 트랜스젠더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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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질문) 트랜스젠더 1434

목사님 하리수란 분을 아시는 지요.
어느 사이트에 그 사람에 관한 내용이 있더라구요.

하리수씨가 하나님의 택함을 입어 계획속에 태어났던가 아님 택하지 않은 버린바 된 사람인지는 토기장이 되신 주님밖에 모르지만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성을 자기가 함부로 바꾸면 안된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런 사람들 중에도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지만 신앙이 바로 선 자들 올바른 신앙관을 가진 사람들이 과연 목숨을 담보로 하고 하나님주신 성을 바꾸는 그런 무모한 행동들을 감행할까 참 의심스럽습니다.

그런데 글을 올린 많은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이해한다는데 저는 아주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정죄할 수는 없지만 그의 행동을 절대로 이해하거나 동정해서는 안 된다는게 제 생각인데 글 올린 사람들 중 다수가 그의 행동을 이해하고 기도해주는게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과연 그런 트랜스젠더를 우리가 이해해줘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기도만 하면 되는지요.

목사님 바쁘시지만 성경에 비춰볼 때 우리가 그 사람을 볼 때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답변) 여자는 남자의, 남자는 여자의 의복도 입지 말라는 신22:5 말씀을 기억하셨으면

1.자동차로 비유를 해 보겠습니다.

같은 수준의 사람들 중에서 머리 좋은 사람들을 뽑아서 자동차 회사에서는 차량 제작 연구팀을 구성합니다. 약 2만여개 부속품을 가지고 자동차 하나를 만들게 되는데 그 부속들은 쇠로 된 것, 고무로 된 것, 긴 것, 짧은 것, 둥근 것, 모난 것, 뽀족한 것, 뭉텅한 것 등 별별 것이 다 있습니다. 속이 들여다 보이는 유리창도 있고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볼 수 없는 엔진 내부도 있습니다.

오랜 세월 연구해서 설계 제작 실험을 했기 때문에 그 수만개 부속품 하나 하나가 우리 운전자들은 이유를 몰라도 설계자와 제작진들에게는 반드시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있고 이치가 있어 그런 것입니다. 공연히 무거운 것은 오랜 세월 거치면서 최소한으로 무게를 가볍게 하여 차의 성능을 개량했습니다. 너무 가벼우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부러 그만큼 무게를 가지도록 해 놓은 부속품도 있습니다.


오늘 새로 산 차 한대를 마당에 세워놓고 질문자와 답변자가 한바퀴 둘러보면서 바퀴가 왜 네 짝이나 된데? 귀찮으니까 두 짝은 내버려! 유리창에 그리고 앞바퀴와 핸들대를 서로 바꿔버려! 그리고 이 차에는 무슨 전기선이 이렇게 많어? 선 4-5개는 잘라버려!

이것이 말이 되는 소리겠습니까? 이제 말한 말 중에 단 하나만 손을 대도 생명이 오가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바퀴 하나를 귀찮다고 빼버리면 그 차는 자리만 차지할 것이니 어디에 쓰겠습니까?


2.하나님께서 전지자신데, 그 분이 설계해 놓은 것을 두고 평을 하는 인간들입니다.

사람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한번 차근차근 살펴보십시오. 눈을 현재 그 위치에 2개로 그 크기로 만들어놓지 않는다면 어디로 보내야 더 좋을지, 얼마만한 크기로 어디에 갖다 붙여야 더 아름답고 더 성능이 좋아질까요? 요즘 여자분들은 눈이 크야 이쁘다고 전부 눈을 째든데, 주먹만큼 째가지고 허벅지에 찰까요 아니면 턱밑에 둘까요 아니면 뒷통수에 달아볼까요? 아무리 따져보고 생각해봐도 현재 그 위치에 그 크기로 그렇게 생긴 것이 그렇게 박혀 있어야 이쁘기도 이쁘고 또 그 눈이 제 할 일을 할 것 같습니다.

엄지 손가락을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 어디에다 붙여야 더 좋을까요? 코는? 귀는? 심장은? 뼈는?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 생긴 그 모양 그 크기 그 기능 그 역할을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좋겠고, 만일 옮기거나 바꾸거나 변형을 시킨다면 참으로 큰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부속품 2만여개로 만든 차량 한대도 우리같은 범인들이 멋대로 손대면 안 될 것인데, 하물며 수조억도 넘는 세포를 가지고 오늘 나라는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꼭 필요하고 좋도록 만들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출고도장까지 찍어 이 세상에 내놓은 것이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주신 눈 크기에 0.1mm를 더 키운다면 그냥 눈감아 드리겠습니다. 주신 머리털의 방향을 복슬강아지처럼 좀 볶는 정도로 손을 댄다면 그냥 모른 척하고 말겠습니다. 그런 것까지 이곳에서 사정없이 비판했다가는 다른 일은 하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신 눈을 2배로 키운다든지 그 위치를 코 밑으로 가져간다든지 하여 기본적인 형태 모양 위치 기능 등을 바꾼다면? 그것이 할 짓이겠습니까? 핸들과 바퀴를 둥글기는 마찬가지라고 바꾸고, 눈과 엄지손가락을 그냥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꿔버린다면? 이런 짓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3.말세가 되기는 분명히 된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런 말이 있습니다. 미친 사람의 행동은 멀쩡한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 할 수 없습니다. 말세입니다. 죽을 짓, 망할 짓이 극단적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정신병원에 들어가든지, 아니면 동물원에 가든지 해야 할 일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동물원이 별 것 있습니다. 인간이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과 어떤 면이 그렇게 크게 달라서 하나는 인간이고 하나는 동물입니까?

눈과 코를 바꿔놓아도 동물원 감인데, 여자를 남자처럼 바꾸어 놓았으니 해괴망측일 뿐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 보겠다는 짓인데, 과학과 기술로 가능한 것은 하는 데까지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범위는 물질계 안의 물질의 이치로 가능한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니 성형수술도 하고 화장도 하고 이런 저런 재주를 한껏 부리고 있습니다.

물론 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인간이 하기는 하게 될 것입니다. 말려도 할 것이고, 붙들고 사정을 해도 별별 짓을 다 해 보기는 해 보겠지요? 이런 인간들에게 한 마디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입에다 대변을 넣어보면, 그것도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이지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성전환이니 무엇이니 하는 짓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냥 '변태'입니다. 그 행동을 따라 다니며 두 눈에 담게 되면 눈이 그만큼 더러워집니다. 그 행동을 이번 답변처럼 몇 마디 언급하게 되면 이 입이 그만큼 더러워집니다.


3.한번 정도 뉴스에서 들어시고 그것으로 끝내버리시기를 권합니다.

벼슬하는 사람들을 더럽게 보던 한 사람이 냇가에 귀를 씻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냇가 조금 밑에서 소에게 물을 먹이던 친구가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재수없게, 아 글쎄 오늘 날 보고 벼슬하라는 말을 들었지 않는가? 에이 귀가 그만 더러워졌어.' 그 말을 듣고 있던 농부가 '에이, 자네 그 더러운 귀를 씻은 물을 우리 소가 마시겠네. 이럇, 얼른 저리 가자' 소를 끌고 얼른 냇가에서 물러나버리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원치 않게 들어셔야 하는 시대입니다. 특이한 직업에 계신 분들은 그 세부사항을 알기 위해 들여다 봐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우리들로 말하면 '변태'라는 불도장으로 꽉 찍어버리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한번 들을 때는 그렇게 징그러웠는데, 두번 세번 들으면 무감각해지고 더 많이 듣다보면 자기 속에 그런 요소가 쑥이 자리를 잡고 돋아나듯이 나올 수 있습니다.

불신자가 유교같은 잠꼬대를 배우고도 그 이치대로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고 귀를 씻었다고 합니다. 하물며 우리야 하늘의 음성을 듣고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깨끗하게 씻어버렸으면 합니다. 이곳에 올리는 질문의 내용이나 종류를 피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자세를 한번 촉구해봤습니다.

세상 유행가도 인생철학을 담고 있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젊은 애들이 좋아서 펄쩍펄쩍 뛰는 음악은 쥐약 먹은 개 보듯 합니다. 이전 문학에는 인생의 경험담이 깔려 있었습니다. 지금은 변태를 넘어서게 만들고 있습니다. 백영희신앙노선은 이전 1970년대 박대통령의 통치행위 중에 장점이 많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머리를 철렁거리고 다니면 길거리에서 경찰이 잡아다가 바리깡으로 그 머리 가운데다가 고속도로를 내 버렸던 일입니다.

오늘은 이런 말을 하는 이곳이 맞아 죽을까봐, 이곳 홈에 숨어 앉아서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나 투덜거리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천하가 다 그렇게 된다고 해도 우리는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오직 한 길, 참을 향해 가셨으면 합니다.


4.성전환을 두고, 해당되는 성구를 찾으라고 한다면

신22:5에서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니라'고 했습니다. 그 옷 모습도 바꾸지 말라고 했는데, 이제는 그 옷 모습이 아니라 그 옷 모습 속에 있는 가죽껍데기까지 재단하여 반대로 나타내는 정도입니다. 안됩니다.

마지막으로 질문하신 내용에서, 그렇게 하는 이들에게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그들은' 긍휼히 여기되 그들의 '죄가 되는 행동'은 미워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죄인들의 친구라고 하여 오늘 죄인들의 죄와 친구가 되는 것이 허다 하고 이것이 기독교의 사랑과 용서라고 하는데, 기독교의 본질을 정반대로 알았습니다. 기독교는 죄를 죽여 없애고 박멸하는 하늘의 운동입니다. 그 죄를 죽여서 그 죄가 붙들고 있는 그 죄에 포로된 형제를 구하는 일입니다.

꼭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 중에 그런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본인에게 얼마나 큰 불행이며 고통이며 마구 절단나는 일이라는 것을 잘 설명하여 그런 행동에서 돌이키게 하는 것이 바로 약5:20 말씀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물론, 그렇게 수술을 받는 분이 자기가 태어나서부터 여성의 심정으로 살았고 여성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그 육체까지 바꾸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마음에 부모 간병이 지겨운 사람은 지겨우니까 그 부모를 고려장해야 한다는 말이겠습니까? 사람이 그 마음에 원하는 대로 그 행동에 내키는 대로 다 하고 살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에 따라 옳은 것은 하고 잘못된 것은 그 심정이 그렇고 그 소원이 그렇고 그 체질이 그렇다 해도 말씀에 따라 고치는 것이 바로 옳은 길입니다.

그분에게 그런 눈이 띄여 그런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면, 할 수 있겠습니다만, 문제는 그분과 신앙책임 관계가 없는 분이라고 한다면, 그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기회와 힘을 바로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위치에서 그런 분들과 같이 자기 죄에 이끌려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먼저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5.이번 글을 적으며, 이 시대를 향하여 힘껏 야단치고 있습니다.

얼른 읽으면 질문 내용에서 예를 든 그 연예인에게 거침없이 욕설을 한 듯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은 그 분 하나를 집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형태의 변태적 행위가 일반화되고 그것을 바라보는 일반인의 인식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탄식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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