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질문) 기독교 사상과 환경파괴와 관계가 있는지요? 3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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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질문) 기독교 사상과 환경파괴와 관계가 있는지요? 3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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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질문) 기독교 사상과 환경파괴와 관계가 있는지요? 3498

목사님 안녕하신지요?
저의 인도로 이제 막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자매가 있는데요,
그 자매는 대학에서 윤리를 전공했답니다.

그런데 그 자매의 말에 의하면
기독교 사상, 즉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 등으로 인해
서구사람들이 자연을 마음대로 변형하고 취해서
이 땅의 환경이 이렇게 파괴되었다고
대학에서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반면, 중국의 경우는 일찌기 문명이 발달했음에도 자연과 조화되고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상이 깔려 있었으므로
자연파괴는 없었다고 배웠답니다.

그래서, 중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이기 때문에,
이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므로
이 학설이 과연 사실인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지
많은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와 한참을 고민해봐도,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습니다.
목사님의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샬롬!


(답변) 환경은 선물입니다. 바로 사용하면 복이고, 잘못 사용하면 저주가 따릅니다.

1.질문 내용에 관련 된 성구를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①창1:28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이 말씀은 창1:28입니다. 이때는 인간이 타락하기 전이었습니다. 타락하기 전에 이미 주신 그 명령을 따라 인간이 순종을 잘 하고 있을 때를 가르쳐 성경은 에덴동산이라고 합니다. 환경의 파괴나 악화는, 환경을 사용한 그 자체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고 환경을 사용할 때 어떻게 사용했느냐는 그 과정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타락하기 전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창2:16 말씀에 따라 아무리 숲속의 열매를 많이 거두어 먹어도 환경에 변고가 발생하지 않고 늘 에덴동산이 에덴동산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명령을 어기고 딱 한번 따먹은 '선악과 한 개' 때문에 우리가 사는 환경은 완전히 절단이 나버렸습니다. 물질계 우주 전체가 일시에 돌이킬 수 없는 변고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환경파괴는, 사람이 개발을 하고 이용을 한다 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기중심으로 환경을 이용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바로 사용하면 아무리 많이 사용해도 환경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좋은 환경으로 바뀌도록 하나님께서 자연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고 또 그렇게 되도록 하나님께서 위에서 조절해 주십니다.

그러나 잘못 사용하면, 사용한 양이 많아서가 아니고 잘못 사용한 그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환경 전체를 저주해서 감당못할 대량 파괴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환경보호주의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말씀을 연구해서 말씀대로 살게 되면, 말씀대로 사는 가운데 이용하게 된 환경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우리에게 적절하도록 조절해 주십니다. 그러나 환경주의자들이 하나님 눈에 못된 일을 하거나 그들의 주장이 인간들끼리는 좋게 들리나 하나님 비위에 거슬리는 일을 하면 환경을 사용하지 않아서 환경이 보호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사용하지 않아도 매 맞을 사람이 사는 곳의 환경은 하나님께서 특별 섭리역사로 직접 파괴를 하시는 것이 성경입니다.


②신20:19-20

'너희가 어느 성읍을 오래 동안 에워싸고 쳐서 취하려할 때에도 도끼를 둘러 그곳의 나무를 작벌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먹을 것이 될것임이니 찍지 말라 밭의 수목이 사람이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에워싸겠느냐. 오직 과목이 아닌 줄로 아는 수목은 작벌하여 너희와 싸우는 그 성읍을 치는 기구를 만들어 그 성읍을 함락시킬 때까지 쓸찌니라'

이 본문에서 성경이 말하는 환경 사용의 범위와 예를 살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라 하는 환경은 사용하는 것이 의로운 일이고 복받을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용하지 말라는 것까지 찍어 작벌하게 되면 우리가 먹을 것이 줄어 들어 오히려 그 나무들의 고갈로 우리가 고통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무를 보존하느냐, 찍어 없애느냐'는 것으로 환경을 보호하느냐 아니면 파괴하느냐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없애라고 한 것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성경과 주신 자연 현실 모든 것을 고려할 때, 믿는 사람인 나의 자연 환경 사용은 하나님께서 어느 정도로 정하셨는가, 이것을 찾는 것이 우리 할 일입니다.


③신28:1-68

너무 길어서 다 인용하지는 못하겠고, 또 질문자께서 읽어보시기도 어렵겠지만 그래도 환경 문제를 가지고 고민을 하신다면 한번 차분하게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해당 성구를 찾기 어려우면 특별히 1-24절이라도 한번 보셨으면 합니다. 하나님 없는 사람은, 인간의 노력과 자연에 대한 대처 능력에 따라 인간이 자연 환경을 잘 조성하고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 뜻에 어긋나면, 그가 아무리 노력하고 기술을 가지고 절제를 한다 해도 하늘에서부터 피할 수 없는 재앙을 내려 황폐하게 만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전쟁과 같은 인간의 재앙에서부터 토지의 사막화 같은 문제까지 우리에게 닥치는 재앙은 그 외부 모습은 자연 재앙 같이 보여도 그 내막은 하나님의 결정이고 하나님의 처리에만 달려 있습니다.


④창6:1-8

인류 역사를 통해 가장 큰 자연재앙은 노아 홍수 때였습니다. 7절에서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원인은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사람들의 환경 사용이 너무 늘어나서 사막화가 일어나고 그 결과로 인하여 홍수 재앙이 생긴 것인가요? 5절에서 '사람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2.성경의 환경 사용관

성경은 필요없는 나무는 나무 하나까지도 아끼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환경의 변화는 '환경의 사용량이 어느 수치에 이르렀는가'가 아니고, '환경을 사용하고 있는 인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아니면 진노케 하는가' 이것이 기준입니다.

현재 교계에서도 환경문제만 나오면 목회자들이 머리를 들이밀고 세상 불신자들과 불교인들과 천주교인들과 별별 일을 다하고 돌아다닙니다. 그들이 그렇게 해서 아낀 갯벌이나 숲으로 인하여 환경이 보존되는 것은 바늘 한 개라고 비유한다면, 그들이 우상종교인들과 손잡고 다니는 짓을 보고 격노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기 위해 그들이 노력하는 그 환경을 때려부수는 양은 태산같다고 보시는 것이 성경을 아는 사람입니다.

오늘 교계 주요 교단들이 우리 사회에서 자기들의 존재를 알린다고 무슨 환경 문제만 나오면 한 마디씩 거들고 있는 그 '행위'가 밉고 괘씸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심지어 인구가 너무 많아서 자연환경이 감당을 하지 못한다는 이단론까지 주장한 것이 그리 얼마 되지 않았던 일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주신 자연을 바로 애용하면, 오늘 인구보다 몇 배, 아니 몇십 배 더 많은 인구가 살아도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지켜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앞에 예를 든 '창1:28'과 '창6:13--22'를 연구하면 쉽게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3.동양의 자연관

'동양의 친환경적인 흐름'을 주장하면서 중국은 문화가 일찍 발전했지만 환경과 조화를 이루었다는데, 중국의 그 문화를 그대로 이어받아 오늘까지 유지하고 있는 중국을 역사적으로 살펴본다면 그런 발언은 입밖에 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고대사회나 중세사회와는 많이 변모했다고 하지만, 역시 서양인들은 서양 조상의 사상과 생활 모습을 지금도 많이 보존하고 있으며, 아무리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아직까지 한국의 조상들의 모습을 제일 많이 간직한 것이 한국사람이고 중국의 경우는 현 중국사람들입니다.

중국이 과거 자연을 사랑했던 것이 자연을 사랑해서 사랑한 것인지, 아니면 자연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과 힘과 지혜가 부족해서 그리했던 것인지? 오늘 중국이 개발의 힘과 여건이 되니까 세계 원자재를 싹 쓸어가서 우리나라 철근과 세멘트까지 품귀현상을 보인다고 합니다.

물론 상대적인 차이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본능 본질은 속일 수 없습니다. 가난하면 훔치고 싶어도 훔칠 것이 없으니까 좀도둑 노릇은 해도 나라를 어지럽히는 큰 도둑은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선량한 양민이 어떤 기회에 높은 자리 올라가면 그때는 내나 앞에 사람이 했던 짓을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물론 오차 범위 내의 차이는 있겠지요?

중국이 산업개발의 주도권을 서양에 뺏긴 것을 오늘 중국 유교문화권에서 환영하고 긍지를 가지고 앞으로도 서양에 비하여 산업개발의 주도권을 뺏기고 늘 고대사회 모습 그대로 살기를 원한다면 앞에서 주장한 사람의 말에도 일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고대사회에 중국 문화가 서양 문화를 능가했는데, 이후 중세기를 지나면서 기술과 발전이 늦어진 것이 원통하다 하여 지금 이를 악물고 서양을 따라잡으려고 발버둥을 친다면, 어떤 학자가 무슨 논리를 내세워도 이론일 뿐이고 실제와는 다른 오해일 것입니다.

현재 중국이 미국 소련에 이어 우주개발까지 따라잡겠다고 난리라면서요? 지구환경파괴에 뒤늦은 것이 원통스러워서 우주환경파괴에는 세계 3위를 했다는 말인데, 유인우주선 발사를 두고 현재 중국인들이 조상들의 지혜와 처신을 저버렸다고 폭동을 일으킨다면 중국의 원래 사상은 자연사랑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주경쟁에서는 세계 3위를 하고 일본에 앞섰다고 잔치를 했다면 그 주장은 착각입니다.

참고로, 중국을 중심한 유교문화권의 가장 큰 특색 중에 하나는 '거짓말'입니다. '외식'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언행'입니다. 먹고 싶은데 안 먹고 싶다고 딱 잡아 떼고, 부러운데 부럽지 않다고 펄쩍 뛰는 일입니다. 이것을 한자로는 '겸양'이라 하고 '예절'이라고 하든데, 말장난입니다.


4.참고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는 언급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있다면, 핵심 반론 논리를 조금만 비추는 정도에서 그쳤으면 합니다. 적극적으로 기독교의 환경보호론을 주장하려고 시작하면 말에 실수를 하지 않을 분이 없을 듯 합니다. 환경개발론으로 나가면 환경지상주의자들에게 시달려야 할 것이고, 환경보호론으로 나가면 비양심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적 환경사용론을 말씀한다면 학교내에서 일부 종교의 교리를 가르쳤다고 해서, 만의 하나 문제가 되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듣기 거북하게 교회를 비판한 논리가 있다면 바로 그 해당된 교실의 해당된 학생들에게만 그 반론의 결정적인 표현을 잠깐 하는 정도에서 그쳤으면 합니다. 우리의 나라는 이 땅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나라는 하늘나라가 우리 나라고, 현재 사는 이 나라는 남의 나라이니 우리는 남의 나라를 현재 잠깐 거쳐가는 '나그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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