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구원론 해결의 열쇠 삼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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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24
3. 구원론 해결의 열쇠 삼분론
성경은 하나님의 목적으로부터 인간 창조, 인간 범죄와 타락, 예수님의 대속으로 구원, 영생의 소망 전부에 대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 기록을 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특별히 성경의 구성 내용은 범죄하여 영은 죽고 심신은 악령에게 붙들려 영원한 멸망을 향하여 내리 달려가는 인생에게 "구원얻는 길, 구원얻는 방법"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에서는 이 구원얻는 길, 방법 이전에 아예 그 길과 방법을 기록한 성경 자체를 흐리게 해 버리려는 악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후에는 우리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관, 또 구원 길을 내신 구속주관까지 차례로 흔들어 보았던 것입니다. 이제 이 모든 악령과의 진리 투쟁에서 앞선 성도들이 바른 진리를 체계화하여 이제 남은 것은 이 모든 기초되는 진리 위에서 실지로 "구원얻는 길, 방법"을 바로 깨달아 그대로 가기만 하면 되도록 되었습니다.
지금이 바로 선진들의 성경적 교리 정리를 본받아 "구원얻는 길, 방법"에 대한 교리 정리를 확고히 할 때입니다. 여기 대한 확고한 깨달음의 정리가 미숙하기 때문에 성경을 보고 모르는 것 없는데 실은 요약하여 확실히 아는 것 또한 없는 아쉬움이 많은 현재 세계 교회요, 특히 우리 한국 교회입니다.
1) 구원관에 대한 혼동
지금 구원관에 대한 일반적 깨달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눕니다. 첫째는 사람이 구원 얻는 길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둘째는 사람이 구원 얻는 길은 노력과 행위로서는 절대 이룰 수 없고 그래서 인간 스스로는 실패한 것이고 이제 예수님이 대속하셨으니 믿기만 하면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양측의 주장은 나름대로 성경의 성구들을 근거로 하고 있으며 또한 상대방의 주장을 무조건 반대하는 극단적인 주장도 있으나 일부 수용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즉, 전자의 주장에서도 예수님의 대속이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며 대속에 근거가 꼭 필요함을 말은 합니다. 그러나 인간 노력, 행위가 가해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이 되다 보니까 상대측이나 3자에게는 대속을 부인하는 것처럼 오해되어지기도 합니다.
또 후자의 주장에서도 대속을 믿는 믿음만을 주장하는 측도 있으나 대속을 받으면 저절로 본능적으로 의롭게 살도록 되어 있다고 설명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주장들은 다른 교리들과 달리 실제 신앙생활에 직접적이고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확고히 지식하지 않으면 많은 신앙 손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만일 첫째 주장이 옳다면 행위 없이, 노력 없이 믿기만 하면 된다고 앉아 있다가 인생 시간 기회다 보내고 죽게 되면 그의 구원은 어떻게 되겠는가? 둘째 주장이 옳다면 믿음만이면 되는데 행위를 가해서 구원 된다고 지식하고 노력했으니 그의 구원 역시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므로 두 주장에 한 주장이 옳다면 다른 주장대로 신앙노선을 가진 사람의 구원 문제에 큰 문제가 생깁니다. 물론 되는 대로 믿고 믿는 대로 살면 그만이라는 안일주의 신앙관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 문제가 문제될 일이 없겠지만 신앙은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하여 알도록 보여주신 진리를 오해하거나 무시하면 마땅히 그만한 손해가 있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양측의 주장에 근거되는 성구들을 먼저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⑴ 믿음으로 얻는 구원
① 성경 근거
㉮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
㉯ 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 요3:15-6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행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② 대표적 주장들
천주교나 감리교의 주장과 같이 하나님의 전적 은혜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이 협동되어져 구원을 이루어간다는 교리는 이런 명백한 성구들을 볼 때 절대 잘못되었다고 단정을 하는 편이 있습니다. 천주교가 극단적으로 타락하게 된 결정적인 배경이 바로 이 교리였기 때문에, 천주교에서 개혁 운동을 주도했던 초창기의 개혁 신앙가들이 구원은 믿음만으로 이루는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여 천주교의 잘못을 지적하고 나섰습니다.
당시 천주교의 탈선이 극도에 이르렀고 개혁 운동에 대하여 무자비한 탄압으로 육체의 생명까지 건 투쟁이 있었던 시대적 배경으로 이런 주장은 초창기부터 절대 은혜로 얻는 구원을 강조하고 이러한 교리의 가르침은 그 후 세대에 계승되어 오면서도 그대로 답습만 되어졌습니다. 루터파와 칼빈주의 신앙이라는 신앙노선이 바로 이들입니다.
이제 이들에게 문제점은, 그러면 믿어 구원받은 사람은 이제 아무 힘쓸 것도 없지 않느냐는 의문에 봉착하게 됩니다. 성경에 성도가 힘써 살아가야 할 교훈이 많이 있는데 이 성도의 의무 면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 것인가?
여기 대해서 이들은 믿음으로 구원은 얻은 것이요, 참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이라면, 중생된 성도라면 본능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힘쓰고 또 노력하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즉, 중생의 필연적 결과가 끊임없는 회개와 선행이며 이로 인하여 점점 성화되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닥치는 또 하나의 문제는, 그러면 중생된 성도가 다시 범죄한다면 어찌될 것인가? 사망에 이르는 죄, 즉 악의로나 상습적인 죄는 중생된 성도는 절대 짓지 않는다고 가정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생은 단번 중생이요 반복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는 또 달리 입장을 가진 주장이 있습니다. 즉 중생은 전적 믿음만이요, 중생 후 범죄하면 또 죽고 다시 믿으면 또 중생이 된다는 중복 중생론입니다.
⑵ 행위로 얻는 구원
① 성경근거
㉮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 막10:17-31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 약2:14-26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 이와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② 대표적 주장들
위와 같은 성구들을 근거할 때 "믿음만으로 얻는 구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그 큰 대속의 사랑을 인간이 어떤 값으로 노력으로 댓가를 내겠느냐는 것은 인정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은 그대로 행하지 않고 입으로만 말한다고 되느냐는 것입니다. 또 인간 노력은 전혀 필요없이 구원이 된다면 힘써 말씀대로 살려는 사람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되고 또 그 은혜를 받은 인간이 자기의 노력을 합해야 구원이 된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엡2:5-9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 . .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하신 말씀 등에 대한 해석에는 여러가지로 문제점들이 생깁니다. 특히 불신자는 죽어있는 자인데 어떻게 사는 노력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등의 문제에 대해서 확실한 대답이 나오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2) 구원관 해결의 열쇠 : 삼분론
⑴ 구원관 주장의 혼동원인
인간이 구원받는 것은 믿음만으로인가, 인간 행위가 더해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초대교회에서부터 오늘날까지 내려온 구원 교리의 핵심 난제입니다. 물론 초대교회의 전면적인 교리 문제는 성경관, 삼위일체관, 구주관이었음은 많이 재론한 바와 같습니다. 그러나 구원관에 대한 이 난제도 계속된 교리 문제였고 이제 천주교에서 개혁할 중세 이후 세대에서는 이 구원관 교리가 전면에 대두되게 된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주장이 서로 평행선을 긋고 있는 이유는 양편 주장이 구원을 얻는 "방법" 문제에 집중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방법 문제에 앞서 "무엇이 구원이냐" 하는 "구원"을 먼저 밝히면 일단 문제는 절반이 해결됩니다.
성경이 믿음으로만 얻는 구원과 행위가 있어야 이루어지는 구원으로, 구원에는 두 가지가 있음을 말했는데 구원을 하나로만 전제하고 그 방법을 따지기 때문에 여기에서 오해와 모순이 생깁니다. 즉, 믿음의 방편으로 이루어지는 구원 한 종류가 있고 또 행위가 있어야 이루어지는 구원 한 종류가 있어 두 가지 구원이 있고 두 가지 구원을 이루는 방법은 각각 다르게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두 가지 구원, 두 가지 방법으로 나누어 주신 "구원" 진리를 연구함에 있어 구원의 종류를 혼동하고 방법으로만 주장을 하는 이것이 첫째 절반이라 할 수 있는 원인입니다.
왜 성경이 구원을 두 가지로 나누었는데 이를 밝히지 못했는가? 원인은 사람을 마음과 몸 둘로만 되어있다고 보기 때문에 마음과 몸이 이룰 구원은 동일하니 한 종류의 구원 외에는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한번 구원에 대한 문제를 순서를 따라서 천천히 새겨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원은 범죄하여 타락한 인간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라 할 때, 범죄한 인간에게는 영이 있고 심신으로 된 육이 있어, 영의 구원과 육의 구원에 대하여 각각 필요한 방법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영 없는 육만의 구원도 없고 육 없는 영만의 구원도 없고 영육이 하나되어 비로소 사람이 되기 때문에 사람에 대하여 통칭할 때 그 속에는 영과 육이 들어 있듯이 구원도 별개의 구원이 아니라 한 사람의 한 구원이기 때문에 성경에는 통칭으로 구원이라 했으나 그 구체적인 성구에 따라서 영육 구원을 통칭한 부분, 영의 구원을 말한 부분, 육의 구원을 말한 부분을 구분해서 새겨야 할 것이고, 구원의 방법도 전체적인 방법에 대한 성구, 영의 구원 방법에 대한 성구, 육의 구원 방법에 대한 성구를 구별해서 새겨야 할 것입니다.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미리 확실히 해 두고 넘어갈 것은 대속과 구원의 본질은 하나이지만 우리에게 전달되는 과정과 영, 육의 성질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예컨대, 한 발전소의 동일 동질의 전기가 전등에 연결되어 빛으로 나오고 히터에 연결되어 열로 나오는 것처럼, 그러나 자세히 살피면 동일한 전기요 또 전등도 빛만 나오는 것 같지만 히터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좀 약하지만 열이 있고, 히터도 열만 나오는 것 같지만 전등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좀 약하지만 빛도 있는 것과 같습니다.
⑵ 구원의 종류
① 영의 중생되는 ‘기본구원’
영은 마음이나 몸과 달리 영물이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고 또 단일성의 존재이며 심신에 대한 주격임을 밝혔습니다. 이제 영의 구원이 심신과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죄의 책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로 직접 죄를 짓지 아니했으나 심신 범죄에 대한 주격적 책임으로 죽은 것이니 이 주격 책임으로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은 예수님이 대신 그 주격적 책임으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죄를 도말하심으로 영의 주격적 책임을 벗기면 영이 바로 중생케 되는 것입니다. 영은 또 단일성의 존재이니 살아난 부분 따로 있고 죽어 있는 부분 따로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이 중생되면 이는 하나님의 아들로 천국 가는 구원은 불변으로 확정됩니다. 이것이 영의 구원이니 곧 믿는 사람이면 동일하기 때문에 기본구원이라고 합니다.
이 기본구원을 이루는 방법은, 전적 믿음이며 전적 은혜로만 이루어집니다. 이는 영이 죽어 있으니 주격이 죽은 사람이 객관의 도움없이 스스로 자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으로만 이루어진다는 이 믿음이 무엇인가? 믿는 것은 그것도 마음의 행위가 아닌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 그것을 인간 자유 의사로 배척하지 않고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이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배척 않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주는 것도 전적 하나님의 은혜이지 인간 갈등이나 주관의 갈급 행위가 주동되고 원인된 것은 아닙니다. 그 마음, 그 자유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성령이 감동 감화의 역사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인격성을 살리면서 역사한 것입니다.
② 육이 성화되는 ‘건설구원’
육은 영과 달리 복합체요, 심신으로 된 소유격으로서 섬길 주인인 자기 영에게 피동되지 않고 자유 의지로서 악령에게 미혹받아 피동됨으로 죄를 지은 죄의 행위자입니다.
따라서 육이 살아나는 육의 구원은, 먼저 주격인 영을 하나님께서 살려놓으면 주격인 영을 통해서 유기적 방법, 즉 영에게 맡긴 심신 관리권, 만물 통치권을 하나님께서 월권하지 않기 때문에 영을 제외시키고 직접 심신에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먼저 살아난 영이 자기가 살아날 때 힘입은 대속을 가지고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고 전해주신 진리의 방법으로 성령이 자기를 살릴 때와 같이 이제는 주격인 영이 소유격인 심신을 구원하기 위해서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일성, 주격 책임으로 사망한 영이 단번 중생으로 중생하는 것과는 달리 육은 복합체이기 때문에 심신의 각 요소가 평생이라는 현실의 연속 속에서 만나지는 현실에 해당된 요소들이 개별적으로 다시 살아날 기회를 가지는 것입니다. 심신의 각 요소별로 볼 때는 영의 중생처럼 단번의 기회요 단번 살아나는 것이지만 육 전체를 두고 볼 때는 점차적, 중복적 살아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영과는 구원 본질은 동일이나 그 과정은 다르기 때문에 건설구원, 성화구원이라 합니다.
또 구원 방편에서는 영은 단번 믿음, 전적 은혜로 구원되었으나 육에게는 "행위"가 요구되는 이유는 영은 주격이니 주격이 죽어 있는 것은 전적 객관의 역사로만 살아나기 때문이고, 육은 주격인 영이 살아 이 영이 살려가는 책임이 있으므로 살아난 영이 대속의 공로를 가지고 육을 살리는 이 노력이 있어야 하니 이것이 바로 행위구원이라 하게 된 것입니다.
③ 따라서, 두 구원을 종합, 비교해 본다면
이름 : 기본구원 건설구원
방편 : 믿 음 행 위
: 은 혜 노력의 댓가
효과 : 천국구원 천국대우
차이 : 천국지옥 천국 안에서의 차이
해당 : 영 육 심 신
과정 : 단 번 중 복
따라서, 어느 성구가 어느 구원에 해당된 것인가를 먼저 살피지 않고 혼동을 해버리면, 기본구원에 대한 문제를 건설구원 방법으로 적용하거나 건설구원으로 이룰 방법을 기본구원 방법을 쓰면 이는 "아는 가운데서 자라가라"는 말씀에 실패케 됩니다.
따라서, 두 가지 구원관의 일반적 견해는 이 면의 오해로 말미암은 결과입니다. 그러나, 기본구원을 오해한 천주교는 교리적으로는 "천국구원이 없고" 건설구원을 오해한 개혁신앙은 "천국 구원은 가지나 천국 건설“ 면에는 손해가 있습니다.
⑶ 두 구원의 관계
구원의 원인이 한 주님이요, 구원의 대속이 하나요, 구원받는 사람이 한 인격임을 잊으면 안됩니다. 이는 기본구원 없는 건설구원은 절대 없고 또 기본구원을 힘입어 그 힘입는 정도로 건설구원이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어디까지나 전체적 결론적으로는 한 구원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반면에 구원은 하나로만 알고 둘로 나누어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을 알려주신 대로 다 알지 못하면 건설구원에 손해가 그만큼 있게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목적으로부터 인간 창조, 인간 범죄와 타락, 예수님의 대속으로 구원, 영생의 소망 전부에 대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 기록을 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특별히 성경의 구성 내용은 범죄하여 영은 죽고 심신은 악령에게 붙들려 영원한 멸망을 향하여 내리 달려가는 인생에게 "구원얻는 길, 구원얻는 방법"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에서는 이 구원얻는 길, 방법 이전에 아예 그 길과 방법을 기록한 성경 자체를 흐리게 해 버리려는 악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후에는 우리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관, 또 구원 길을 내신 구속주관까지 차례로 흔들어 보았던 것입니다. 이제 이 모든 악령과의 진리 투쟁에서 앞선 성도들이 바른 진리를 체계화하여 이제 남은 것은 이 모든 기초되는 진리 위에서 실지로 "구원얻는 길, 방법"을 바로 깨달아 그대로 가기만 하면 되도록 되었습니다.
지금이 바로 선진들의 성경적 교리 정리를 본받아 "구원얻는 길, 방법"에 대한 교리 정리를 확고히 할 때입니다. 여기 대한 확고한 깨달음의 정리가 미숙하기 때문에 성경을 보고 모르는 것 없는데 실은 요약하여 확실히 아는 것 또한 없는 아쉬움이 많은 현재 세계 교회요, 특히 우리 한국 교회입니다.
1) 구원관에 대한 혼동
지금 구원관에 대한 일반적 깨달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눕니다. 첫째는 사람이 구원 얻는 길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둘째는 사람이 구원 얻는 길은 노력과 행위로서는 절대 이룰 수 없고 그래서 인간 스스로는 실패한 것이고 이제 예수님이 대속하셨으니 믿기만 하면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양측의 주장은 나름대로 성경의 성구들을 근거로 하고 있으며 또한 상대방의 주장을 무조건 반대하는 극단적인 주장도 있으나 일부 수용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즉, 전자의 주장에서도 예수님의 대속이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며 대속에 근거가 꼭 필요함을 말은 합니다. 그러나 인간 노력, 행위가 가해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이 되다 보니까 상대측이나 3자에게는 대속을 부인하는 것처럼 오해되어지기도 합니다.
또 후자의 주장에서도 대속을 믿는 믿음만을 주장하는 측도 있으나 대속을 받으면 저절로 본능적으로 의롭게 살도록 되어 있다고 설명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주장들은 다른 교리들과 달리 실제 신앙생활에 직접적이고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확고히 지식하지 않으면 많은 신앙 손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만일 첫째 주장이 옳다면 행위 없이, 노력 없이 믿기만 하면 된다고 앉아 있다가 인생 시간 기회다 보내고 죽게 되면 그의 구원은 어떻게 되겠는가? 둘째 주장이 옳다면 믿음만이면 되는데 행위를 가해서 구원 된다고 지식하고 노력했으니 그의 구원 역시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므로 두 주장에 한 주장이 옳다면 다른 주장대로 신앙노선을 가진 사람의 구원 문제에 큰 문제가 생깁니다. 물론 되는 대로 믿고 믿는 대로 살면 그만이라는 안일주의 신앙관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 문제가 문제될 일이 없겠지만 신앙은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하여 알도록 보여주신 진리를 오해하거나 무시하면 마땅히 그만한 손해가 있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양측의 주장에 근거되는 성구들을 먼저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⑴ 믿음으로 얻는 구원
① 성경 근거
㉮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
㉯ 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 요3:15-6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행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② 대표적 주장들
천주교나 감리교의 주장과 같이 하나님의 전적 은혜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이 협동되어져 구원을 이루어간다는 교리는 이런 명백한 성구들을 볼 때 절대 잘못되었다고 단정을 하는 편이 있습니다. 천주교가 극단적으로 타락하게 된 결정적인 배경이 바로 이 교리였기 때문에, 천주교에서 개혁 운동을 주도했던 초창기의 개혁 신앙가들이 구원은 믿음만으로 이루는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여 천주교의 잘못을 지적하고 나섰습니다.
당시 천주교의 탈선이 극도에 이르렀고 개혁 운동에 대하여 무자비한 탄압으로 육체의 생명까지 건 투쟁이 있었던 시대적 배경으로 이런 주장은 초창기부터 절대 은혜로 얻는 구원을 강조하고 이러한 교리의 가르침은 그 후 세대에 계승되어 오면서도 그대로 답습만 되어졌습니다. 루터파와 칼빈주의 신앙이라는 신앙노선이 바로 이들입니다.
이제 이들에게 문제점은, 그러면 믿어 구원받은 사람은 이제 아무 힘쓸 것도 없지 않느냐는 의문에 봉착하게 됩니다. 성경에 성도가 힘써 살아가야 할 교훈이 많이 있는데 이 성도의 의무 면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 것인가?
여기 대해서 이들은 믿음으로 구원은 얻은 것이요, 참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이라면, 중생된 성도라면 본능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힘쓰고 또 노력하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즉, 중생의 필연적 결과가 끊임없는 회개와 선행이며 이로 인하여 점점 성화되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닥치는 또 하나의 문제는, 그러면 중생된 성도가 다시 범죄한다면 어찌될 것인가? 사망에 이르는 죄, 즉 악의로나 상습적인 죄는 중생된 성도는 절대 짓지 않는다고 가정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생은 단번 중생이요 반복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는 또 달리 입장을 가진 주장이 있습니다. 즉 중생은 전적 믿음만이요, 중생 후 범죄하면 또 죽고 다시 믿으면 또 중생이 된다는 중복 중생론입니다.
⑵ 행위로 얻는 구원
① 성경근거
㉮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 막10:17-31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 약2:14-26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 이와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② 대표적 주장들
위와 같은 성구들을 근거할 때 "믿음만으로 얻는 구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그 큰 대속의 사랑을 인간이 어떤 값으로 노력으로 댓가를 내겠느냐는 것은 인정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은 그대로 행하지 않고 입으로만 말한다고 되느냐는 것입니다. 또 인간 노력은 전혀 필요없이 구원이 된다면 힘써 말씀대로 살려는 사람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되고 또 그 은혜를 받은 인간이 자기의 노력을 합해야 구원이 된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엡2:5-9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 . .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하신 말씀 등에 대한 해석에는 여러가지로 문제점들이 생깁니다. 특히 불신자는 죽어있는 자인데 어떻게 사는 노력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등의 문제에 대해서 확실한 대답이 나오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2) 구원관 해결의 열쇠 : 삼분론
⑴ 구원관 주장의 혼동원인
인간이 구원받는 것은 믿음만으로인가, 인간 행위가 더해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초대교회에서부터 오늘날까지 내려온 구원 교리의 핵심 난제입니다. 물론 초대교회의 전면적인 교리 문제는 성경관, 삼위일체관, 구주관이었음은 많이 재론한 바와 같습니다. 그러나 구원관에 대한 이 난제도 계속된 교리 문제였고 이제 천주교에서 개혁할 중세 이후 세대에서는 이 구원관 교리가 전면에 대두되게 된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주장이 서로 평행선을 긋고 있는 이유는 양편 주장이 구원을 얻는 "방법" 문제에 집중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방법 문제에 앞서 "무엇이 구원이냐" 하는 "구원"을 먼저 밝히면 일단 문제는 절반이 해결됩니다.
성경이 믿음으로만 얻는 구원과 행위가 있어야 이루어지는 구원으로, 구원에는 두 가지가 있음을 말했는데 구원을 하나로만 전제하고 그 방법을 따지기 때문에 여기에서 오해와 모순이 생깁니다. 즉, 믿음의 방편으로 이루어지는 구원 한 종류가 있고 또 행위가 있어야 이루어지는 구원 한 종류가 있어 두 가지 구원이 있고 두 가지 구원을 이루는 방법은 각각 다르게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두 가지 구원, 두 가지 방법으로 나누어 주신 "구원" 진리를 연구함에 있어 구원의 종류를 혼동하고 방법으로만 주장을 하는 이것이 첫째 절반이라 할 수 있는 원인입니다.
왜 성경이 구원을 두 가지로 나누었는데 이를 밝히지 못했는가? 원인은 사람을 마음과 몸 둘로만 되어있다고 보기 때문에 마음과 몸이 이룰 구원은 동일하니 한 종류의 구원 외에는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한번 구원에 대한 문제를 순서를 따라서 천천히 새겨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원은 범죄하여 타락한 인간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라 할 때, 범죄한 인간에게는 영이 있고 심신으로 된 육이 있어, 영의 구원과 육의 구원에 대하여 각각 필요한 방법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영 없는 육만의 구원도 없고 육 없는 영만의 구원도 없고 영육이 하나되어 비로소 사람이 되기 때문에 사람에 대하여 통칭할 때 그 속에는 영과 육이 들어 있듯이 구원도 별개의 구원이 아니라 한 사람의 한 구원이기 때문에 성경에는 통칭으로 구원이라 했으나 그 구체적인 성구에 따라서 영육 구원을 통칭한 부분, 영의 구원을 말한 부분, 육의 구원을 말한 부분을 구분해서 새겨야 할 것이고, 구원의 방법도 전체적인 방법에 대한 성구, 영의 구원 방법에 대한 성구, 육의 구원 방법에 대한 성구를 구별해서 새겨야 할 것입니다.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미리 확실히 해 두고 넘어갈 것은 대속과 구원의 본질은 하나이지만 우리에게 전달되는 과정과 영, 육의 성질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예컨대, 한 발전소의 동일 동질의 전기가 전등에 연결되어 빛으로 나오고 히터에 연결되어 열로 나오는 것처럼, 그러나 자세히 살피면 동일한 전기요 또 전등도 빛만 나오는 것 같지만 히터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좀 약하지만 열이 있고, 히터도 열만 나오는 것 같지만 전등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좀 약하지만 빛도 있는 것과 같습니다.
⑵ 구원의 종류
① 영의 중생되는 ‘기본구원’
영은 마음이나 몸과 달리 영물이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고 또 단일성의 존재이며 심신에 대한 주격임을 밝혔습니다. 이제 영의 구원이 심신과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죄의 책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로 직접 죄를 짓지 아니했으나 심신 범죄에 대한 주격적 책임으로 죽은 것이니 이 주격 책임으로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은 예수님이 대신 그 주격적 책임으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죄를 도말하심으로 영의 주격적 책임을 벗기면 영이 바로 중생케 되는 것입니다. 영은 또 단일성의 존재이니 살아난 부분 따로 있고 죽어 있는 부분 따로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이 중생되면 이는 하나님의 아들로 천국 가는 구원은 불변으로 확정됩니다. 이것이 영의 구원이니 곧 믿는 사람이면 동일하기 때문에 기본구원이라고 합니다.
이 기본구원을 이루는 방법은, 전적 믿음이며 전적 은혜로만 이루어집니다. 이는 영이 죽어 있으니 주격이 죽은 사람이 객관의 도움없이 스스로 자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으로만 이루어진다는 이 믿음이 무엇인가? 믿는 것은 그것도 마음의 행위가 아닌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 그것을 인간 자유 의사로 배척하지 않고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이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배척 않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주는 것도 전적 하나님의 은혜이지 인간 갈등이나 주관의 갈급 행위가 주동되고 원인된 것은 아닙니다. 그 마음, 그 자유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성령이 감동 감화의 역사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인격성을 살리면서 역사한 것입니다.
② 육이 성화되는 ‘건설구원’
육은 영과 달리 복합체요, 심신으로 된 소유격으로서 섬길 주인인 자기 영에게 피동되지 않고 자유 의지로서 악령에게 미혹받아 피동됨으로 죄를 지은 죄의 행위자입니다.
따라서 육이 살아나는 육의 구원은, 먼저 주격인 영을 하나님께서 살려놓으면 주격인 영을 통해서 유기적 방법, 즉 영에게 맡긴 심신 관리권, 만물 통치권을 하나님께서 월권하지 않기 때문에 영을 제외시키고 직접 심신에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먼저 살아난 영이 자기가 살아날 때 힘입은 대속을 가지고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고 전해주신 진리의 방법으로 성령이 자기를 살릴 때와 같이 이제는 주격인 영이 소유격인 심신을 구원하기 위해서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일성, 주격 책임으로 사망한 영이 단번 중생으로 중생하는 것과는 달리 육은 복합체이기 때문에 심신의 각 요소가 평생이라는 현실의 연속 속에서 만나지는 현실에 해당된 요소들이 개별적으로 다시 살아날 기회를 가지는 것입니다. 심신의 각 요소별로 볼 때는 영의 중생처럼 단번의 기회요 단번 살아나는 것이지만 육 전체를 두고 볼 때는 점차적, 중복적 살아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영과는 구원 본질은 동일이나 그 과정은 다르기 때문에 건설구원, 성화구원이라 합니다.
또 구원 방편에서는 영은 단번 믿음, 전적 은혜로 구원되었으나 육에게는 "행위"가 요구되는 이유는 영은 주격이니 주격이 죽어 있는 것은 전적 객관의 역사로만 살아나기 때문이고, 육은 주격인 영이 살아 이 영이 살려가는 책임이 있으므로 살아난 영이 대속의 공로를 가지고 육을 살리는 이 노력이 있어야 하니 이것이 바로 행위구원이라 하게 된 것입니다.
③ 따라서, 두 구원을 종합, 비교해 본다면
이름 : 기본구원 건설구원
방편 : 믿 음 행 위
: 은 혜 노력의 댓가
효과 : 천국구원 천국대우
차이 : 천국지옥 천국 안에서의 차이
해당 : 영 육 심 신
과정 : 단 번 중 복
따라서, 어느 성구가 어느 구원에 해당된 것인가를 먼저 살피지 않고 혼동을 해버리면, 기본구원에 대한 문제를 건설구원 방법으로 적용하거나 건설구원으로 이룰 방법을 기본구원 방법을 쓰면 이는 "아는 가운데서 자라가라"는 말씀에 실패케 됩니다.
따라서, 두 가지 구원관의 일반적 견해는 이 면의 오해로 말미암은 결과입니다. 그러나, 기본구원을 오해한 천주교는 교리적으로는 "천국구원이 없고" 건설구원을 오해한 개혁신앙은 "천국 구원은 가지나 천국 건설“ 면에는 손해가 있습니다.
⑶ 두 구원의 관계
구원의 원인이 한 주님이요, 구원의 대속이 하나요, 구원받는 사람이 한 인격임을 잊으면 안됩니다. 이는 기본구원 없는 건설구원은 절대 없고 또 기본구원을 힘입어 그 힘입는 정도로 건설구원이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어디까지나 전체적 결론적으로는 한 구원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반면에 구원은 하나로만 알고 둘로 나누어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을 알려주신 대로 다 알지 못하면 건설구원에 손해가 그만큼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