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백목사님 교훈이 이 시대를 감당할것인가?
서기
■상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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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24
5. 그 교훈이 이 시대도 감당할 것인가?
백목사님의 교훈 세계는 이 시대를 감당할 차원이었고 그와 비견될 교훈 세계를 가진 이는 이 시대에서 아직 보지 못하였으며 그 교훈이 미치는 범위가 현재 예측할 수 있는 미래까지는 포함하고 있으니 당분간은 그 이상이 나오기 어려울 것입니다. 만일 나타나게 된다면, 현재로서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세상 현실이 변화되고 교회 환경이 바뀔 때가 아니겠냐고 생각합니다. 아마 그런 경우를 생각하는 것보다 말세가 먼저 오지 않겠느냐는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의 교훈 세계는 부분적으로는 세계 각처에 있는 특별한 분들에 의하여 많은 면으로 이미 언급 되었음을 한 번씩 확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리의 근간에 관련된 것과 어느 한 분야에 해당된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① 백목사님에 대한 교계의 표현에 대한 평가
백목사님에 대하여 '시대의 종'이라는 표현이 많습니다만, 백영희목회연구회에서는 여러 시대에 한 번 나올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유아 독존적 한국의 이사야'라는 비난도 있으나, 그분의 겸손은 그의 평생 은둔이 증명하는 것이고, 그분의 신앙 차원은 비할 바가 없으니 경쟁심이나 견제 심리를 가진 분들이 '유아독존적 이사야'라는 표현을 할 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객관적 자료를 가지고 연구적으로 분석해 본다면 틀림없이 '홀로 우뚝 솟은 한국 교계의 진리 세계를 주도한 분'이라고 확신합니다. 한국뿐 아니라 이 시대를 향하여 외친 분이었습니다.
'칼빈을 능가하는 깨달음을 가진 분'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칼빈과 비교할 때 백목사님은 그 깨달음의 결과적 수준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영안의 밝음은 칼빈을 능가했을 것입니다. 칼빈은 당대 세계 신학계의 석학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벌써 성경 원어와 라틴어 등을 달통하였고 이어 1500여년 신학서를 완전히 섭렵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학자들이 단편적으로 깨달아 놓았던 것을 성경대로 정확하게 추출하여 체계화 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런 지식의 세계에 접근하게 되면 다 타서 죽어버릴 것인데, 오히려 그것들을 요약 정리할 수 있었다는 것은 칼빈이 스스로 가진 깨달음의 세계가 어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목사님은 일반 신학 지식은 잠깐 구경한 정도였고 성경 하나로 그 모든 깨달음을 이어갔습니다. 칼빈을 능가하는 깨달음이었다는 느낌은 여기에 있습니다.
② 백목사님의 깨달음은 당대뿐 아니라 오늘 21세기까지도 감 당할 정도인가?
칼빈 이후 교리사의 한 획을 그었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정도로 평가할 때는 앞으로 당분간은 그 이상으로 발전할 교리가 나오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이 나와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아니며 그 이상의 깨달음을 가지기 위해 우리는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아닙니다. 순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은 시대적인 깨달음에 대하여 각자가 스스로 자기 정리를 한번 해 보아야 하는 것이고 또 교계와 이 시대는 교리사의 전체 흐름에서 한번 확실하게 이 깨달음에 대하여 정리를 할 시간이 약간 필요합니다. 그 기간이 몇 개월이나 몇 년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당 5만원 버는 사람이 일당 500만원 버는 사람만큼 돈을 모으는 일은 100일간이라는 기간만 채우면 됩니다. 그러나 10점 짜리 학생이 90점 짜리 학생으로 성적을 올리는 일은 9일이나 9배의 노력을 더한다고 그리 되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 해봐도 안 될 수 있고 또 된다고 해도 대단히 오랜 세월이 소요될 것입니다.
반론을 하는 많은 분들이, 백목사님의 탁월함은 한결같이 인정하면서도 이제 그의 사후인 지금 당장 그 이상의 깨달음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을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식적 소망과 설교는 주일학생이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과제의 제목이 '한 나라의 지도자가 가질 덕목'이라면 그 초등생들도 '선출된 사람은 국민들을 잘 살게 하고 반대편의 사람을 설득해서....' 라고 적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이래야 한다, 저랬어야 한다고 발언합니다만 그들의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그들은 지금 자기들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앵무새처럼 다른 사람의 하는 말을 듣고 기억을 재생하여 발언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대개 하나님께서 한 시대를 감당할 종과 깨달음을 주실 때는 한편으로는 과거를 정리하고 한편으로는 당대를 감당하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다가올 시대를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예언적 예비적 깨달음으로 허락하시게 됩니다. 문제는 그의 예언적 깨달음으로 다음 시대를 사는 교회들은 자기들의 당대를 쉽게 감당하게 되는데, 이는 해답을 미리 보고 문제를 푸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자기 당대를 큰소리치고 의인으로 또 각 방면을 책임진 종들로 충실히 살았다고 생각을 하고 또 존경까지 받고 그냥 전부인 줄 압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시대를 그렇게까지 다 읽어보고 전해 준 선배의 깨달음을 가지고 자기 시대만 감당하는 것까지만 볼 것이 아니고 받아가진 깨달음으로 한편으로는 자기 시대를 감당하면서 그기에서 자기들의 또 다른 앞날을 보고 교회가 준비할 것을 미리 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면을 실패하기 때문에 칼빈 때도 칼빈이 지나간 1500년 기독교를 정리했고 칼빈의 시대를 감당했고 칼빈 이후 시대까지를 고속도로 닦듯이 펼쳐놓았는데 칼빈 이후 시대는 그 고속도로가 한없이 닦여 있는 줄 알고 전부 안심하고 편리하게 그리고 신나게 달릴 줄만 알았습니다. 그 결과 얼마 세월이 지나면서 이미 곧 문제가 발생되겠다는 것을 느끼게 했고 그 예측대로 위험이 발생했으며 결국 오늘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우선 결론내릴 것은, 우리 사는 이 시대도 백목사님의 깨달음은 넉넉히 감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급격히 어떤 상황이 우리에게 주어지며 동시에 백목사님의 교훈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을 주실지는 모릅니다. 이 문제는 다음에 논하기로 하고, 오늘까지 또 오늘 현재 예측할 수 있는 여러 문제들을 고려할 때는 백목사님의 교훈은 이때까지를 다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에게 닥쳤고 또 현재까지 예측할 수 있는 미래 전개는 생명공학 문제로 인한 기독교 교리의 근본적 해체, 세계화가 말이 아니라 손끝에 와 있고 이로 인한 세계의 진정한 통합, 이런 와중에 2천년 내려온 교회의 존재 형식과 운영 형태에 관련된 모든 신앙생활의 급변 등등의 문제입니다. 백목사님의 교훈은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세상조차 공상에서나 시도해 보았지 감히 실현될 현실로 생각지 못했던 시대에 이미 닥쳐온 문제로 생각하고 그 깨달음의 범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기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수십년 이상의 세월은 감당하고도 남을 깨달음이라고 봅니다. 그 이후에 대하여를 생각하라면 아마 재림을 더 앞에 놓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는 신앙적인 자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③ 백목사님의 여러 중요 깨달음이 다른 곳에서 달리 존재할 가능성은?
있다면, 오늘의 형편에서 본다면 나타날 수밖에 없고 드러날 수 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백목사님같이 극단적으로 숨은 인물을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필요하여 호출하고 끄집어 내었던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존재는 했으나 그는 엘리야 시대의 숨겨놓은 7천과 같이 엘리야만한 신앙과 자신들의 경건은 있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시대를 이어가며 교회의 내려가는 정통 줄기를 세우는 일에 대목가지로 사용치 않을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있는 분들은 숨은 7천이란 항상 있을 수 있는 법이라고 알고 있으면 되고 그들을 발굴할 문제는 별개입니다.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을 집중하는 것이 만일 개별적인 취향이었다면 백영희목회연구회는 홈페이지 운영이나 출간 등으로 공개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그와 가깝거나 개인적 기억을 가진 이들의 인간적 관계 때문이 아니라 이 신앙노선은 2천년 교회사를 이어왔고 앞으로 이어갈 필연의 인물이기 때문에 이시대 어느 교회 어느 인물에게라도 이런 교훈이 있다는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984-6년까지 3년 기간에 본 연구회의 연구원에게 이곳이 집중하는 신앙세계가 혹 다른 장소 다른 현실 속에서 존재하는지 또 그럴 가능성이 있는지 등에 대하여 특별히 살펴보라는 백목사님의 지시가 이었습니다. 그는 여러 수십번 반복적으로 일반 노선과 이 노선의 차이에 대한 연구 방법을 듣고 또 서부교회 십일조 경비를 받아 세계 신학계와 교리 환경을 연구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총공회라는 교단의 그릇에 담아 준 교훈이 과연 우리가 모르는 다른 곳에도 있었다면 우리는 앞서 그곳으로 달려가 배우는 자의 입장에 서고 또 그들을 후원하는 입장에 서고 싶은 깨달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냥 쉽게 말하거나 무책임하게 발표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를 요약하라면 아마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이 소개서에서는 피하겠습니다.
백영희 목사님이라는 시대적 인물을 통해 이 시대에 전해 준 교리 세계가 과연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세계의 전 현직 신학계 인물들을 통틀어 발견할 수가 없었는가? 과연 그렇게 통틀어 살펴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도 가능할 것입니다. 기독교의 교리 세계란 세상 학문에서도 그 전반적 체계의 역사성과 복잡성을 두고 4대 학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신학, 철학, 법학, 의학 정도를 손꼽을 수 있습니다. 2천여년 또는 그 이상의 세월을 두고 세계 최고의 석학들 두뇌들의 수없는 연구와 발표 논쟁과 결론 등을 통해 내려온 이 거대한 조직 체계들은 아무나 쉽게 접근하는 것조차도 어렵기 그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도 각 대학의 4개 학과 관련 중진 교수들이 자신들의 그 전공 학문의 체계에 대하여는 어느 한 모퉁이 끝을 붙들고는 좀 안다는 정도로 말하고 있으며 감히 자신의 전공 과목 전체 체계에 대하여 안다는 말은 입에 담지를 않고 있습니다. 자기 분야 전체를 파악한 정도가 된다면 당대의 석학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수천년을 통해 쌓여진 정보의 양 자체가 천문학적이고 그 체계의 이해가 이미 하늘에 닿아 있는 피라밋이어서 그 밑에 중요한 근간 하나를 빼거나 변경하면 태산이 무너지게 되는 정도입니다.
따라서 의학에서는 엑스레이나 마취, 해부와 같은 신 개념이 한번 나올 때마다 의료 현장에 나타나는 결과는 천지를 개벽할 정도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신기술이 나타났는데 세계가 모를 리 없으며 의학계에서 숨겨져 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혹 있었다면 과거 고시대일 것입니다. 의학계보다 법학계가 법학계보다 철학계가 더 차원높고 복잡합니다. 그 꼭대기 위에 신학이 있습니다. 여기까지 설명한 것은 전부 세상 학문으로서의 외관만 가지고 말한 것입니다. 신학계에서 삼위일체 교리나 예수님의 신성, 믿음 외로도 천국을 간다든지 하는 등 근간에 관련되는 교리들은 토씨 하나를 잘못 채색하거나 손대면 이는 그냥 해 본 말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가 분해 조립이 되어 변종 동물이 되어버립니다.
지금 대학교 정규 입학 성적의 중간이 되지 못한 이들이 신학교로 진학을 하여 교계에 소위 신학자가 되고 유력한 목회자들이 되어 있는 것을 많이 봅니다. 총공회 신앙노선은 그런 것을 흠잡지 않고 오히려 자랑하지만, 세상식 학문 체계를 전제로 대하는 일반 교계적 시각에서 평한다면, 이런 분들의 지적 능력 학문적 수준으로 각급 신학교나 강단에서 교리나 교회의 신앙노선에 대하여 이 말 저 말 쉽게 뱉는 것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현 교계의 신학 관련 논문이나 유력 설교집에서 기독교가 타종교로까지 바뀔 정도로 언급된 대목을 찾으라면 그 예가 수도 없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국내에서도 세계 수준에 이르고 있는 신학자들은 장탄식을 하고 있으나 문제는 대형 교회나 대형 신학대학의 핵심 포스트에 있는 이들은 여론과 교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큰 힘이 결정하지 옳고 바른 교훈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교회사의 또 한 모습입니다.
백목사님의 깨달음은 기독교가 타종교로 개종되는 것이냐 아니면 수천년에 몇 번 없는 칼빈 같은 이가 다시 이 시대를 향해 외친 것이냐라는 정도의 대단한 발표입니다. 백목사님의 깨달음에 성경적 모순이 없다면 이는 후자가 될 것이고, 성경에 틀렸다면 전자가 될 것입니다. 아직까지 50여년 완전 공개되고 토론되어도 어떤 면에서도 성경적이라는 결론만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깨달음이 다른 곳에 있었다면 오늘 한국 교계의 세계적 정보망에 오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깨달음은 우선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 또는 천주교 교류 교단들에서는 나오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곳에서 나왔다면 어느날 세상 신문에 살해 보도가 함께 나올 것입니다. 백목사님과 같은 깨달음이 나온다면 미국의 칼빈신학교 웨스트민스트신학교 등과 같이 보수교계입니다. 또 그런 곳에서 그 연락은 받게 되고 그 소식은 전해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너무도 그 범위는 좁아지게 됩니다.
세계 신학은 영어권 신학으로 소개되지 않은 것이 없고, 영어권 신학계로 들어온 소식이 한국 신학계로 건너오거나 파악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한국의 지리적 여건이나 기타 예상치 못한 장애로 인하여 그 소식을 접할 수 없을까 하여 백목사님은 특별히 이 면에 대한 파악과 앞날의 교리 요약에 필요할 것이라는 점으로 세계 신학계의 파악을 위해 직접 영어권 중심 속에서 살피라고 한 것입니다.
그 모든 파악이 끝났고 더 이상 살피는 것은 공연한 소모일 뿐이라고 생각한 1986년 시점에서 백영희목회연구소는 이 신앙노선은 일반 교계에 없는 특별한 노선이라고 자신있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백영희 신앙노선과 같은 있다면 숨겨진 7천이니 교리사의 계통적으로 살필 일은 아니라는 단서를 달겠습니다. 이사야 때에 이사야만 훌륭했고 이사야 외에는 점L 없었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이사야가 우리에게 특별한 것은 그는 기독교 전체 역사상에서 하나님께서 이어지는 계통에까지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참고로 한 시대의 종, 한 시대를 감당하는 깨달음들이 나오는 전제 조건들은, 우선 말씀 하나에 생사를 완전히 넘어선 사선의 환경이 있어야 하고, 그의 현 신앙이 하나님께 완전히 붙들려 그에게서 뻗쳐나오는 빛이 참으로 눈이 부셔 바로 볼 수 없을 정도의 생활과 걸어온 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며 그에게 하나님이 진정 동행하신 증거들이 말씀 그대로 나타나야 합니다. 또한 그의 신앙 계통이 교회사의 정통과 전통에 이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니 이런 점을 두루 갖추는 환경을 위주로 살펴보는 것은 어려운 일만도 아닙니다.
이곳의 주장들은 이미 정상급의 신학자들과 본질적 토론과 평가를 거쳐 결론에 도달한 것들입니다. 굳이 상대방을 공개하는 것은 각자 다른 사명을 받고 더 중요한 사역을 감당하는 분들에게 필요없는 불편을 드릴까 하여 대부분 이곳의 일방적 주장만 발표하고 있습니다.
여러 다른 현실에 있는 하나님의 종들 중에 웨스트민스터의 '쟌 머리(John Murray)' 아현교회의 '김현봉목사님' 등 몇몇 분들에게서 대단히 주목할 만한 깨달음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교리사를 이어갈 외길에 올려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백목사님의 교훈 세계는 이 시대를 감당할 차원이었고 그와 비견될 교훈 세계를 가진 이는 이 시대에서 아직 보지 못하였으며 그 교훈이 미치는 범위가 현재 예측할 수 있는 미래까지는 포함하고 있으니 당분간은 그 이상이 나오기 어려울 것입니다. 만일 나타나게 된다면, 현재로서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세상 현실이 변화되고 교회 환경이 바뀔 때가 아니겠냐고 생각합니다. 아마 그런 경우를 생각하는 것보다 말세가 먼저 오지 않겠느냐는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의 교훈 세계는 부분적으로는 세계 각처에 있는 특별한 분들에 의하여 많은 면으로 이미 언급 되었음을 한 번씩 확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리의 근간에 관련된 것과 어느 한 분야에 해당된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① 백목사님에 대한 교계의 표현에 대한 평가
백목사님에 대하여 '시대의 종'이라는 표현이 많습니다만, 백영희목회연구회에서는 여러 시대에 한 번 나올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유아 독존적 한국의 이사야'라는 비난도 있으나, 그분의 겸손은 그의 평생 은둔이 증명하는 것이고, 그분의 신앙 차원은 비할 바가 없으니 경쟁심이나 견제 심리를 가진 분들이 '유아독존적 이사야'라는 표현을 할 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객관적 자료를 가지고 연구적으로 분석해 본다면 틀림없이 '홀로 우뚝 솟은 한국 교계의 진리 세계를 주도한 분'이라고 확신합니다. 한국뿐 아니라 이 시대를 향하여 외친 분이었습니다.
'칼빈을 능가하는 깨달음을 가진 분'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칼빈과 비교할 때 백목사님은 그 깨달음의 결과적 수준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영안의 밝음은 칼빈을 능가했을 것입니다. 칼빈은 당대 세계 신학계의 석학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벌써 성경 원어와 라틴어 등을 달통하였고 이어 1500여년 신학서를 완전히 섭렵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학자들이 단편적으로 깨달아 놓았던 것을 성경대로 정확하게 추출하여 체계화 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런 지식의 세계에 접근하게 되면 다 타서 죽어버릴 것인데, 오히려 그것들을 요약 정리할 수 있었다는 것은 칼빈이 스스로 가진 깨달음의 세계가 어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목사님은 일반 신학 지식은 잠깐 구경한 정도였고 성경 하나로 그 모든 깨달음을 이어갔습니다. 칼빈을 능가하는 깨달음이었다는 느낌은 여기에 있습니다.
② 백목사님의 깨달음은 당대뿐 아니라 오늘 21세기까지도 감 당할 정도인가?
칼빈 이후 교리사의 한 획을 그었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정도로 평가할 때는 앞으로 당분간은 그 이상으로 발전할 교리가 나오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이 나와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아니며 그 이상의 깨달음을 가지기 위해 우리는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아닙니다. 순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은 시대적인 깨달음에 대하여 각자가 스스로 자기 정리를 한번 해 보아야 하는 것이고 또 교계와 이 시대는 교리사의 전체 흐름에서 한번 확실하게 이 깨달음에 대하여 정리를 할 시간이 약간 필요합니다. 그 기간이 몇 개월이나 몇 년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당 5만원 버는 사람이 일당 500만원 버는 사람만큼 돈을 모으는 일은 100일간이라는 기간만 채우면 됩니다. 그러나 10점 짜리 학생이 90점 짜리 학생으로 성적을 올리는 일은 9일이나 9배의 노력을 더한다고 그리 되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 해봐도 안 될 수 있고 또 된다고 해도 대단히 오랜 세월이 소요될 것입니다.
반론을 하는 많은 분들이, 백목사님의 탁월함은 한결같이 인정하면서도 이제 그의 사후인 지금 당장 그 이상의 깨달음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을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식적 소망과 설교는 주일학생이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과제의 제목이 '한 나라의 지도자가 가질 덕목'이라면 그 초등생들도 '선출된 사람은 국민들을 잘 살게 하고 반대편의 사람을 설득해서....' 라고 적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이래야 한다, 저랬어야 한다고 발언합니다만 그들의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그들은 지금 자기들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앵무새처럼 다른 사람의 하는 말을 듣고 기억을 재생하여 발언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대개 하나님께서 한 시대를 감당할 종과 깨달음을 주실 때는 한편으로는 과거를 정리하고 한편으로는 당대를 감당하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다가올 시대를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예언적 예비적 깨달음으로 허락하시게 됩니다. 문제는 그의 예언적 깨달음으로 다음 시대를 사는 교회들은 자기들의 당대를 쉽게 감당하게 되는데, 이는 해답을 미리 보고 문제를 푸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자기 당대를 큰소리치고 의인으로 또 각 방면을 책임진 종들로 충실히 살았다고 생각을 하고 또 존경까지 받고 그냥 전부인 줄 압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시대를 그렇게까지 다 읽어보고 전해 준 선배의 깨달음을 가지고 자기 시대만 감당하는 것까지만 볼 것이 아니고 받아가진 깨달음으로 한편으로는 자기 시대를 감당하면서 그기에서 자기들의 또 다른 앞날을 보고 교회가 준비할 것을 미리 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면을 실패하기 때문에 칼빈 때도 칼빈이 지나간 1500년 기독교를 정리했고 칼빈의 시대를 감당했고 칼빈 이후 시대까지를 고속도로 닦듯이 펼쳐놓았는데 칼빈 이후 시대는 그 고속도로가 한없이 닦여 있는 줄 알고 전부 안심하고 편리하게 그리고 신나게 달릴 줄만 알았습니다. 그 결과 얼마 세월이 지나면서 이미 곧 문제가 발생되겠다는 것을 느끼게 했고 그 예측대로 위험이 발생했으며 결국 오늘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우선 결론내릴 것은, 우리 사는 이 시대도 백목사님의 깨달음은 넉넉히 감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급격히 어떤 상황이 우리에게 주어지며 동시에 백목사님의 교훈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을 주실지는 모릅니다. 이 문제는 다음에 논하기로 하고, 오늘까지 또 오늘 현재 예측할 수 있는 여러 문제들을 고려할 때는 백목사님의 교훈은 이때까지를 다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에게 닥쳤고 또 현재까지 예측할 수 있는 미래 전개는 생명공학 문제로 인한 기독교 교리의 근본적 해체, 세계화가 말이 아니라 손끝에 와 있고 이로 인한 세계의 진정한 통합, 이런 와중에 2천년 내려온 교회의 존재 형식과 운영 형태에 관련된 모든 신앙생활의 급변 등등의 문제입니다. 백목사님의 교훈은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세상조차 공상에서나 시도해 보았지 감히 실현될 현실로 생각지 못했던 시대에 이미 닥쳐온 문제로 생각하고 그 깨달음의 범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기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수십년 이상의 세월은 감당하고도 남을 깨달음이라고 봅니다. 그 이후에 대하여를 생각하라면 아마 재림을 더 앞에 놓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는 신앙적인 자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③ 백목사님의 여러 중요 깨달음이 다른 곳에서 달리 존재할 가능성은?
있다면, 오늘의 형편에서 본다면 나타날 수밖에 없고 드러날 수 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백목사님같이 극단적으로 숨은 인물을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필요하여 호출하고 끄집어 내었던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존재는 했으나 그는 엘리야 시대의 숨겨놓은 7천과 같이 엘리야만한 신앙과 자신들의 경건은 있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시대를 이어가며 교회의 내려가는 정통 줄기를 세우는 일에 대목가지로 사용치 않을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있는 분들은 숨은 7천이란 항상 있을 수 있는 법이라고 알고 있으면 되고 그들을 발굴할 문제는 별개입니다.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을 집중하는 것이 만일 개별적인 취향이었다면 백영희목회연구회는 홈페이지 운영이나 출간 등으로 공개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그와 가깝거나 개인적 기억을 가진 이들의 인간적 관계 때문이 아니라 이 신앙노선은 2천년 교회사를 이어왔고 앞으로 이어갈 필연의 인물이기 때문에 이시대 어느 교회 어느 인물에게라도 이런 교훈이 있다는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984-6년까지 3년 기간에 본 연구회의 연구원에게 이곳이 집중하는 신앙세계가 혹 다른 장소 다른 현실 속에서 존재하는지 또 그럴 가능성이 있는지 등에 대하여 특별히 살펴보라는 백목사님의 지시가 이었습니다. 그는 여러 수십번 반복적으로 일반 노선과 이 노선의 차이에 대한 연구 방법을 듣고 또 서부교회 십일조 경비를 받아 세계 신학계와 교리 환경을 연구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총공회라는 교단의 그릇에 담아 준 교훈이 과연 우리가 모르는 다른 곳에도 있었다면 우리는 앞서 그곳으로 달려가 배우는 자의 입장에 서고 또 그들을 후원하는 입장에 서고 싶은 깨달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냥 쉽게 말하거나 무책임하게 발표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를 요약하라면 아마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이 소개서에서는 피하겠습니다.
백영희 목사님이라는 시대적 인물을 통해 이 시대에 전해 준 교리 세계가 과연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세계의 전 현직 신학계 인물들을 통틀어 발견할 수가 없었는가? 과연 그렇게 통틀어 살펴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도 가능할 것입니다. 기독교의 교리 세계란 세상 학문에서도 그 전반적 체계의 역사성과 복잡성을 두고 4대 학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신학, 철학, 법학, 의학 정도를 손꼽을 수 있습니다. 2천여년 또는 그 이상의 세월을 두고 세계 최고의 석학들 두뇌들의 수없는 연구와 발표 논쟁과 결론 등을 통해 내려온 이 거대한 조직 체계들은 아무나 쉽게 접근하는 것조차도 어렵기 그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도 각 대학의 4개 학과 관련 중진 교수들이 자신들의 그 전공 학문의 체계에 대하여는 어느 한 모퉁이 끝을 붙들고는 좀 안다는 정도로 말하고 있으며 감히 자신의 전공 과목 전체 체계에 대하여 안다는 말은 입에 담지를 않고 있습니다. 자기 분야 전체를 파악한 정도가 된다면 당대의 석학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수천년을 통해 쌓여진 정보의 양 자체가 천문학적이고 그 체계의 이해가 이미 하늘에 닿아 있는 피라밋이어서 그 밑에 중요한 근간 하나를 빼거나 변경하면 태산이 무너지게 되는 정도입니다.
따라서 의학에서는 엑스레이나 마취, 해부와 같은 신 개념이 한번 나올 때마다 의료 현장에 나타나는 결과는 천지를 개벽할 정도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신기술이 나타났는데 세계가 모를 리 없으며 의학계에서 숨겨져 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혹 있었다면 과거 고시대일 것입니다. 의학계보다 법학계가 법학계보다 철학계가 더 차원높고 복잡합니다. 그 꼭대기 위에 신학이 있습니다. 여기까지 설명한 것은 전부 세상 학문으로서의 외관만 가지고 말한 것입니다. 신학계에서 삼위일체 교리나 예수님의 신성, 믿음 외로도 천국을 간다든지 하는 등 근간에 관련되는 교리들은 토씨 하나를 잘못 채색하거나 손대면 이는 그냥 해 본 말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가 분해 조립이 되어 변종 동물이 되어버립니다.
지금 대학교 정규 입학 성적의 중간이 되지 못한 이들이 신학교로 진학을 하여 교계에 소위 신학자가 되고 유력한 목회자들이 되어 있는 것을 많이 봅니다. 총공회 신앙노선은 그런 것을 흠잡지 않고 오히려 자랑하지만, 세상식 학문 체계를 전제로 대하는 일반 교계적 시각에서 평한다면, 이런 분들의 지적 능력 학문적 수준으로 각급 신학교나 강단에서 교리나 교회의 신앙노선에 대하여 이 말 저 말 쉽게 뱉는 것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현 교계의 신학 관련 논문이나 유력 설교집에서 기독교가 타종교로까지 바뀔 정도로 언급된 대목을 찾으라면 그 예가 수도 없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국내에서도 세계 수준에 이르고 있는 신학자들은 장탄식을 하고 있으나 문제는 대형 교회나 대형 신학대학의 핵심 포스트에 있는 이들은 여론과 교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큰 힘이 결정하지 옳고 바른 교훈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교회사의 또 한 모습입니다.
백목사님의 깨달음은 기독교가 타종교로 개종되는 것이냐 아니면 수천년에 몇 번 없는 칼빈 같은 이가 다시 이 시대를 향해 외친 것이냐라는 정도의 대단한 발표입니다. 백목사님의 깨달음에 성경적 모순이 없다면 이는 후자가 될 것이고, 성경에 틀렸다면 전자가 될 것입니다. 아직까지 50여년 완전 공개되고 토론되어도 어떤 면에서도 성경적이라는 결론만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깨달음이 다른 곳에 있었다면 오늘 한국 교계의 세계적 정보망에 오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깨달음은 우선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 또는 천주교 교류 교단들에서는 나오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곳에서 나왔다면 어느날 세상 신문에 살해 보도가 함께 나올 것입니다. 백목사님과 같은 깨달음이 나온다면 미국의 칼빈신학교 웨스트민스트신학교 등과 같이 보수교계입니다. 또 그런 곳에서 그 연락은 받게 되고 그 소식은 전해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너무도 그 범위는 좁아지게 됩니다.
세계 신학은 영어권 신학으로 소개되지 않은 것이 없고, 영어권 신학계로 들어온 소식이 한국 신학계로 건너오거나 파악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한국의 지리적 여건이나 기타 예상치 못한 장애로 인하여 그 소식을 접할 수 없을까 하여 백목사님은 특별히 이 면에 대한 파악과 앞날의 교리 요약에 필요할 것이라는 점으로 세계 신학계의 파악을 위해 직접 영어권 중심 속에서 살피라고 한 것입니다.
그 모든 파악이 끝났고 더 이상 살피는 것은 공연한 소모일 뿐이라고 생각한 1986년 시점에서 백영희목회연구소는 이 신앙노선은 일반 교계에 없는 특별한 노선이라고 자신있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백영희 신앙노선과 같은 있다면 숨겨진 7천이니 교리사의 계통적으로 살필 일은 아니라는 단서를 달겠습니다. 이사야 때에 이사야만 훌륭했고 이사야 외에는 점L 없었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이사야가 우리에게 특별한 것은 그는 기독교 전체 역사상에서 하나님께서 이어지는 계통에까지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참고로 한 시대의 종, 한 시대를 감당하는 깨달음들이 나오는 전제 조건들은, 우선 말씀 하나에 생사를 완전히 넘어선 사선의 환경이 있어야 하고, 그의 현 신앙이 하나님께 완전히 붙들려 그에게서 뻗쳐나오는 빛이 참으로 눈이 부셔 바로 볼 수 없을 정도의 생활과 걸어온 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며 그에게 하나님이 진정 동행하신 증거들이 말씀 그대로 나타나야 합니다. 또한 그의 신앙 계통이 교회사의 정통과 전통에 이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니 이런 점을 두루 갖추는 환경을 위주로 살펴보는 것은 어려운 일만도 아닙니다.
이곳의 주장들은 이미 정상급의 신학자들과 본질적 토론과 평가를 거쳐 결론에 도달한 것들입니다. 굳이 상대방을 공개하는 것은 각자 다른 사명을 받고 더 중요한 사역을 감당하는 분들에게 필요없는 불편을 드릴까 하여 대부분 이곳의 일방적 주장만 발표하고 있습니다.
여러 다른 현실에 있는 하나님의 종들 중에 웨스트민스터의 '쟌 머리(John Murray)' 아현교회의 '김현봉목사님' 등 몇몇 분들에게서 대단히 주목할 만한 깨달음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교리사를 이어갈 외길에 올려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