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현재 공회 교회 중 찬송가 문제가 제기된다면 그 시각은 이러함
서기
■상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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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24
1) 현재 제기되는 공회 교회의 찬송가 문제
일반 교계는 교파를 막론하여 찬송가를 600여곡으로 통일해서 사용한지 약 20년입니다. 공회는 이전에 사용하던 새 찬송가를 중심으로 201곡으로 공회 찬송가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공회의 200곡 찬송을 위주로 찬송을 부르신다면 외부에서 파악하기 어려운 내면의 깊은 세계를 유지하시고 계시든지 아니면 그리하시려고 많이 애를 쓰시는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찬송 중에서 어느 찬송에 눈이 많이 가느냐는 것도 보이지 않는 신앙 성격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600곡 중에 좀더 깊은 찬송을 찾아 들어가는 사람도 있고, 할 수 없어 200곡 찬송가는 가지고 있으나 그 200곡 중에 가장 밖에 있는 것을 애용하며 탈출의 기회만 생각하는 분도 없지 않습니다. 발전적으로 본다면 분명히 안으로 들어오는 분이 복되다 하겠습니다.
현재 교계가 사용하는 600여곡 통일찬송가는 교계의 변덕병 때문 나온 것입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찬송가 가사 변경입니다.
입에 익을 만하면 바꿉니다. 왜 바꾸는지 도무지 그 이유가 이렇게 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교과서에 실려 있는 애국가의 가사가 벌써 몇십년째 계속 그 가사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에 보우라는 뜻이 애국가 외에 우리 사회에서 오늘날 사용되는 경우가 있는가? 그렇다고 쉽게 바꾸는가? 세상 나라도 공식으로 사용하는 이름이나 명칭 또는 그 표현들은 오랫동안 아끼고 있습니다. 하물며 바뀌는 것을 타락 속화라는 이름으로 늘 조심시키는 것이 교회라는 것을 생각 한다면 공회 신앙노선이 찬송가 가사를 바꾸지 않겠다고 하는 것을 이해 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변덕스럽게 무엇이든 역사성 없이 계속성 없이 조삼모사로 변개가 되고 있는 것은 실은 체질입니다. 안 믿는 사람도 그러하고 믿는 사람도 그러합니다. 우리 민족의 체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면 불신자일 것이고, 그보다는 안 믿을 때 옛사람의 요소인 변덕성을 아직 우리 교회들이 경계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공회의 노선의 변화만을 가지고 헤아려도 벌써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소속 교단의 방침을 따르는 원칙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싫다면 소속을 떠나면 되고 좋다면 따르면 됩니다. 소속은 좋으나 '찬송가'라는 단일 사안에 대하여 이의가 있다면 '질문'하면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떠난 분들이 계셨습니다. 좋아서 지금까지 따라오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리고 '질문'이 계셨던 분들도 참으로 많았습니다.
이미 백목사님 생전에 '의문'이나 '이의'가 계셨던 분들은 충분히 제기했고 설명은 지나칠 만큼 이루어졌습니다. '찬송가'라는 단일 사안을 두고 더 이상의 재질문이 필요 없어야 마땅한데도 아직까지 '의문'이 있다면 '양심 문제'입니다. 분명히 옳은 것을 작은 '이권' 때문에 또는 아무것도 아닌 '기호(嗜好) 문제' 때문에 피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사참배와 같이 측량할 수 없을 정도의 환란이 온다면 어떻게 할 사람인가?
일반 교계는 교파를 막론하여 찬송가를 600여곡으로 통일해서 사용한지 약 20년입니다. 공회는 이전에 사용하던 새 찬송가를 중심으로 201곡으로 공회 찬송가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공회의 200곡 찬송을 위주로 찬송을 부르신다면 외부에서 파악하기 어려운 내면의 깊은 세계를 유지하시고 계시든지 아니면 그리하시려고 많이 애를 쓰시는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찬송 중에서 어느 찬송에 눈이 많이 가느냐는 것도 보이지 않는 신앙 성격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600곡 중에 좀더 깊은 찬송을 찾아 들어가는 사람도 있고, 할 수 없어 200곡 찬송가는 가지고 있으나 그 200곡 중에 가장 밖에 있는 것을 애용하며 탈출의 기회만 생각하는 분도 없지 않습니다. 발전적으로 본다면 분명히 안으로 들어오는 분이 복되다 하겠습니다.
현재 교계가 사용하는 600여곡 통일찬송가는 교계의 변덕병 때문 나온 것입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찬송가 가사 변경입니다.
입에 익을 만하면 바꿉니다. 왜 바꾸는지 도무지 그 이유가 이렇게 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교과서에 실려 있는 애국가의 가사가 벌써 몇십년째 계속 그 가사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에 보우라는 뜻이 애국가 외에 우리 사회에서 오늘날 사용되는 경우가 있는가? 그렇다고 쉽게 바꾸는가? 세상 나라도 공식으로 사용하는 이름이나 명칭 또는 그 표현들은 오랫동안 아끼고 있습니다. 하물며 바뀌는 것을 타락 속화라는 이름으로 늘 조심시키는 것이 교회라는 것을 생각 한다면 공회 신앙노선이 찬송가 가사를 바꾸지 않겠다고 하는 것을 이해 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변덕스럽게 무엇이든 역사성 없이 계속성 없이 조삼모사로 변개가 되고 있는 것은 실은 체질입니다. 안 믿는 사람도 그러하고 믿는 사람도 그러합니다. 우리 민족의 체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면 불신자일 것이고, 그보다는 안 믿을 때 옛사람의 요소인 변덕성을 아직 우리 교회들이 경계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공회의 노선의 변화만을 가지고 헤아려도 벌써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소속 교단의 방침을 따르는 원칙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싫다면 소속을 떠나면 되고 좋다면 따르면 됩니다. 소속은 좋으나 '찬송가'라는 단일 사안에 대하여 이의가 있다면 '질문'하면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떠난 분들이 계셨습니다. 좋아서 지금까지 따라오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리고 '질문'이 계셨던 분들도 참으로 많았습니다.
이미 백목사님 생전에 '의문'이나 '이의'가 계셨던 분들은 충분히 제기했고 설명은 지나칠 만큼 이루어졌습니다. '찬송가'라는 단일 사안을 두고 더 이상의 재질문이 필요 없어야 마땅한데도 아직까지 '의문'이 있다면 '양심 문제'입니다. 분명히 옳은 것을 작은 '이권' 때문에 또는 아무것도 아닌 '기호(嗜好) 문제' 때문에 피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사참배와 같이 측량할 수 없을 정도의 환란이 온다면 어떻게 할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