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왜 공회 찬송가를 사용하는가, 또 사용해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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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왜 공회 찬송가를 사용하는가, 또 사용해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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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왜 공회 찬송가인가?

요약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과거도 그러했지만 오늘은 그 기승이 하늘을 진동하고 있는 교회 타락의 3대 요소를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⑴ 영웅심, 명예심이 큰 일

소위 전문 분야를 가진 이들, 신학자 등 한 방면에 재주가 있는 이들은 무언가 하나를 이루어야 할 강박 관념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경 다음 가는 찬송가를 자기 손에서 한번 만들어 보았으면 하는 유혹을 떨칠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90점짜리 신편찬송가를 80점짜리 새찬송가로 그다음은 기어코 '개정' '수정'등의 이름을 붙여 30점짜리 통일찬송가를 만들게 됩니다.

찬송가 방면에 전문가들이 이유를 제조하여 제시하는데 누군들 수긍하지 않겠는가? 말이 통하지 않는 무식한 총공회니까 '팥으로 메주를 쑨다'는 것과 같은 논리를 단지 신앙 본능으로 거부하고 있습니다. 유식한 타 교단들은 '팥으로 메주를 쑤게 된다'는 논리를 전문가들이 펼칠 때 이해가 되고 그 글들을 읽을 재주가 있으니 자기들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전문가들의 논리에 결국 삼켜지는 것입니다. 반식자 우환이라는 말이 바로 이때 써먹을 자연계시일 것입니다.

교인들은 찬송가를 변경할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했겠지 라고 으레 '박사'를 믿고 '학자'를 의지하고 다 맡겨 버렸고 신학자들과 해당 전문가들은 자기 이름, 자기 손을 거친 명품을 만들어 만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기 중심인 '악'이 들어 일을 냈고 그 증거는 '100점인 듯' '만년이나 가야 할 명품인 듯' 자랑하던 그 작품들이 몇 년 가지 않으면 또 개정되어야 할 논리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찬송가 개정 20년만에 현재 교계는 ‘21세기 찬송가’가 필요 하다며 또 개정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영웅과 명예 학위를 가진 이들이 나서서 이번에는 자기들 차례라는 것입니다. 천하 교회가 다 속고 따라 가도 '진리' 하나를 예리하게 또 일관되게 주목하는 공회 교회들이라면 어림도 없는 사안입니다.

⑵ 학자들의 영웅심과 만나 음모를 하고 있는 세력이 돈

학자들의 성취감, 영웅들의 호기가 잔뜩 기회를 엿보고 노리고 있는데 '돈' 냄새를 맡는 데는 아주 날랜 교단주 교단 집행부 교단 살림꾼들이 이 대목을 지나칠 리가 없습니다.

한국 교회 교인을 회원으로 본다면 그 숫자는 단일 품목을 판매 한다는 전제가 있다면 대단히 큰 시장입니다. 찬송가가 바로 그러합니다. 교단끼리 넘어갈 수 없는 신앙노선적 입장들이 많았으나 1천만 기독교인이, 당시로는 아마 5백만 기독교인이 단번에 찬송가를 구입한다는 사실은 상품을 꾸준히 바꾸어야 할 현실적 이유입니다. 일만 악의 뿌리인 돈 욕심이 한국 교회를 다 삼켜 버렸던 것입니다. 당시 찬송가 판매 수입금의 분배 문제가 빙상의 일각으로 교계 신문에 나오곤 했습니다. 찾아보시면 능히 짐작하리라 봅니다.

지금도 돈 되는 일, 돈 남는 일, 주머니에 뒷돈 들어갈 구멍만 막아 버리면, 당장에 풍비박산이 나게 됩니다. 현 교계에 돈이 진리지 성경이 진리입니까? 성경이 하나님과 맞설 상대로 하나를 뽑은 것이 바로 '돈'입니다. 이곳이 물질계이니 이연하지 않겠습니까?

⑶ 영웅심과 돈 욕심 둘만 가지고는 불안하니까 '통일 구호'가 나서서 마무리

자기 중심의 명예심,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돈, 이 중 하나만 해도 일을 충분히 낼 수가 있을 것이지만, 교회를 통째로 타락시키는 일은 너무도 큰 중대사이기 때문에 만에 하나라도 실수가 없도록 가장 큰 원수 '통일 구호'가 나선 것입니다. 이 통일 구호라는 것은 기독교만 잡고 기독교만 죽이는 기독교에게만 일대 원수입니다. 명예나 돈, 둘을 제쳐 놓고도 그 둘을 포기하고라도 큰 일을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통일 구호가 명예와 돈 둘과 합했습니다. 그렇다면 못할 일이 없을 것 아닌가? 교리와 신앙노선이라는 문제는 자고로 교회가 목숨을 걸어야 하고 교회가 간판을 내리더라도 지켜야 하는 것인데 '통일 구호'를 앞세워 각 교단과 교회들이 스스로 '교리와 신앙 노선'을 자기들 손으로 없애도록 해버렸습니다.

찬송가 하나가 문제겠는가? 그 문제 때문에 이 3가지 세속화 절대 요소가 뭉친 것이 아닙니다. 찬송가 문제는 세 가지중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이 3가지가 모인 것은 완벽하게 '찬송가'를 넘어서야, 그다음 넘을 산, '성경 개정'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교단 통합, 기독교 통합'으로 나갑니다. 그다음은? 종교 통일입니다. 그다음은? 종교와 세상 통일입니다. 그다음은? 기독교까지 포함된 종교가 통일된 세상 속에 한 분자가 된 '재림 당시'가 됩니다. '재림 시점'이 된 뚜렷하고 명백한 '징조'입니다. 두려운 것은 이미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장로교 안에서도 교리가 너무도 뚜렷하게 다른 기장, 통합, 합동과 고신 등이 합하여 찬송가를 하나로 만들었다는 것은 앞으로 불교 유교 기독교를 합해서 역사 이래 가장 큰 업적을 만들 시작의 노선이라고 보는 것이 이곳의 단호한 입장입니다. 죽을 일 아니면 따라 가는 것도 있기 때문에 성탄절 행사를 아직도 폐하지 않고 그럭 저럭 마지 못해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는 것이 쉽지 따라 가지 못할 일이 있는 바, 성경 개정이 그 첫째이며 찬송가 변경이 그 둘째에 세울 정도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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