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독립 찬송가 사용과 관련된 설교
서기
■상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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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21:24
5) 독립 찬송가 사용과 관련된 설교
한국 교계의 '찬송가'에 대한 입장을 반대했던 백목사님의 신앙 걸음, 그 걸음을 통해 백목사님의 신앙노선 전반에 일치하는 신앙 사상을 알 수 있는 설교입니다.
한국 교계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찬송가에 대하여 성경 새번역 버금가는 정도로 비판했던 것이 백목사님의 신앙 입장이었습니다. 찬송가에 대한 백목사님의 신앙 입장이 현재 '공회찬송가'입니다. 1987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교계에서 따돌릴까 두려워하던 몇몇 공회교역자들 중에서 엉뚱하게도 그 찬송가는 다른 사람이 배후에서 주도했다는 소문을 내고 그래서 공회찬송가를 사용치 않는다는 논리를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오늘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의 시체를 제자들이 도적질하였고 '부활'이라는 사기극으로 이룬 것이 기독교라고 합니다.
현재 사용하는 우리 공회찬송가가 백목사님이 직접 주관한 것이 아니라는 소문 때문에 '통일찬송가'를 사용한다는 논리는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시비는 그 시비에 응하는 것이 벌써 절반 손해를 보게 됩니다. 시비가 될 필요도 없는 사안이지만 혹 한 분을 위해서라도, 또는 훗날 더 큰 속화를 막는 '안내판'이라도 되겠다는 뜻에서 다음 설교 내용을 발췌 소개합니다.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에 취사 선택할 것이 있더라는 입장 때문에 공회 신앙노선을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버리는 사람은 양심이라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이 주관하지 않았던 찬송'이라며 공회찬송 대신 통일찬송가를 사용한다면, 그는 백목사님이 주관했던 모든 신앙노선을 따르겠다는 사람이라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유독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을 힘써 버리는 분들이 '찬송가'에 대한 자기 변호에서는 이런 '시체 도적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소개하는 글은 설교록에까지 명백하게 기록된 내용입니다. 그리고 수도 없이 반복되었던 내용입니다. 백목사님이 '정치적 발언'으로 설교했다면 백목사님의 모든 흔적을 자신들에게서 지우시고, 그가 영감에 붙들려 자신들을 인도했던 우리 시대의 스승이었다면 회개를 하시라는 권고, 소개문입니다.
일시: 1987년 4월 7일 화요일 새벽예배
본문: 계14:9-12
설교: (찬송가에 대한 설교가 전반부였고, 따라서 전반부 설교만 그 대로 소개합니다.)
( 찬송가에 대한 주의깊은 통찰 )
그전에는 찬송가에 주기도문 사도신경이 기록돼 있었는데 지금도 찬송가에 있습니까? '새찬송가'에 있어요? 주기도문이 끝에 있습니까, 앞에 있습니까? 찬송가가 너무 가사가 변해가고 또 장수도 변해져 가니까 우리가 익혀 놓은 것이 다 헛일이 되고 또 익혀야 되고 익혀야 됩니다.
( ① 찬송가 변동과 변질의 역사 )
우리가 '신편찬송가'를 보다가 '합동찬송가'를 보게 될 때에 이것이 좀 더 구비하고 더 정확한 그런 찬송을 하게 되는가보다 하고 좋아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또 합동찬송가가 없어지고 새찬송가가 나와서 좀 얼떨떨했습니다. 그러나 살펴보면 새찬송가에 가사가 좀 틀린 것이 있어도 그래도 조금 발달적이겠다, 발전적이겠다, 좀 더 정확한 걸 찾아간다... 이렇게 생각했었습니다. 그 뒤에 또 개편찬송가가 또 나왔습니다. 개편찬송가는 보니까 개인의 마음대로 너무 찬송가의 뜻을 자주 변개시켜서 처음에 창작한 사람의 근본대로도 되지 않았고 또 교리와 신조에도 바뀌어진 것이 있었습니다. 그 뒤에는 또 '통일찬송가'가 나왔는데 그 찬송의 느낌이 각각 다르겠지만, 그 통일찬송가는 너무 가사가 현저하게 바꾸어져서 너무 엄청나게 그렇게 바꾸어졌습니다.
( ② 찬송가의 의미 )
찬송가는 사람이 지은 하나의 교리라 신조라 볼 수 있습니다. 자기 깨달은 대로 자기가 믿는 대로 이렇게 해 놨기 때문에 교리라든지 신조라 하는 것은 그것은 성경과 같이 그렇게 바로 되어 있는 것도 있고 잘못돼 있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우리가 정확 무오한 성경으로 믿지마는 찬송가는 그것을 정확하다, 틀림이 없다는 무오라고 우리가 그렇게 믿을 수는 없습니다.
( ③ 공회찬송가 추진 동기 )
그렇지마는 그래도 일반 어린 신자들은 찬송가를 성경 다음가는 성경으로 이렇게 보고 있기 때문에 찬송가에 가사가 잘못돼 있으면 이는 어린 교인들로 하여금 잘못된 성경을 보게 하는 거와 같기 때문에 이래서는 안 된다 해서 아무래도 우리가 새로 만들 실력은 없고, 그 대신 처음에 은혜 받아서 영감으로 지은 그 사람들이 근본 저술한 그대로 우리가 옮겨 받아서 찬송을 하자, 또 이것이 성경에 틀렸나 맞았나 그것을 봐서 성경대로 해 가지고 이 찬송가를 만들어 가지고 우리가 사용하도록 하자고 결의를 한 것입니다.
세상이 자꾸 변질되어 나가지만, 두 가지입니다. 무엇이든지 보면, 두 가지로만 구별하면 잘 알 수 있는데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 가지고 모든 사색도 연구도 비판도 평가도 이렇게 하는 그런 노선도 있고 또 하나님보다도 먼저 사람이 가깝기 때문에 사람에 대해서 비위를 맞춰야 된다고 해서 사람 중심 사람 위주로 이렇게 모든 것을 사색하기도 하고 연구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고 평가하기도 하는 이런 주장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노선이 됩니다. 길이 되는 것입니다.
( 찬송가 제작과정 )
( ① 원본과 번역원본에 충실키 위해서 )
그래서 아무래도 이걸 좀 어떻게 해야겠다고 해서 오래 전부터 이 찬송가를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옛날 그 저자, 또 우리 상고 때부터 내려오는 족보 그런 것을 좀 따져 가지고, 이렇게 자꾸 세상 따라서 이렇게 타락해 가지 말고, 은혜 받아서 찬송을 지은 그 당시 그 사람들의 은혜를 그대로 우리가 전달해서 은혜 받고 전달해 가자 하는 그런 뜻에서 위원들이 나서 가지고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그 중에 수고를 제일 많이 한 분은 서영호목사님 입니다. 바쁜데도 1주간 동안을 꼬빡 기울여 모든 찬송가 족보도 참고하고 또 뭐 원어도 참고해 가지고 하는 대로 또 수정을 했습니다. 또 다른 위원들이 이제 목사님들과 또 평신도들 중에 찬송에 많은 관심을 가진 그런 사람들이 모여 가지고 여러 날 동안을 그렇게 합동 연구를 하고 대조를 했습니다.
( ② 찬송가 곡의 숫자 )
찬송가 안에 이렇게 많은 찬송을 뜻 없이 이렇게 그 곡의 수를 많이 넓히면 우리가 다 부르지 못하는 그런 찬송들이 있어 복잡하니까 거기서 예배드리는 찬송으로만 440여곡을 간추렸습니다. 물론 개인이 부르는 거야 얼마든지 자기 개인주의고 또 성경에 위반되지 않는 그런 찬송은 자기가 지어 가지고 얼마든지 부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거는 다 내버려두지만 우리가 표준으로 삼는 예배 찬송으로서는 그렇게 간추려 본 것입니다.
(또 그 순서는, 첫째는 하나님의 존영에 대해서 영광에 대해서 하고, 그거 다 하나님의 자체에 대해서 먼저 생각했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했고 그 다음으로는 우리들이 하나님께 대해서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는 데 생각했기 때문에 그 순서가 이렇게 바꿔졌습니다. 그런 것을 잘 이해하십시오. 1987.5.9.)
( ③ 공명심을 특히, 극히 주의하며 )
그러나 이렇게 찬송들을 간추려 만드는 것은 우리가 무슨 별개의 찬송을 하나 만들어 보려는 공명심이나 그런 것은 하나도 아닙니다. 첫째 성경도 속화되어 번역들이 자꾸 이상하게 타락해 나가지 또 찬송도 그리되어지지, 그런데 이 둘이 함께 보조를 맞춰 내려가니까 어린 교인들이 뭐인지를 모르겠고 또 후배들이 무엇이 무엇인지를 모를 것이기 때문에 간추려 본 것이 440여곡이었습니다.
작업을 할 때에 우리가 이 찬송가를 만드는 것은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과거 우리 선조들이 모두 만들어 놓은 것, 이미 지어 놓은 그 찬송가를 그대로 받아 나가려는 것이며, 또 비성경적인 표현이 섞여 있는 것은 제거하고 성경에 맞추려는 것이며, 또 단순하게 부르고 사용하기 위해서 만드는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앞으로, 될 수 있는 대로 세계 교회들이 다 한가지 단일 찬송을 쓰도록 됐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세계 교회가 단합해서 단일 찬송가를 사용하는 것이 좋기는 좋지마는 그보다도 찬송가가 성경대로라야 하기 때문에 성경대로의 찬송가로 이렇게 다 통일됐으면 좋겠다, 그리될 때에는 우리는 그것을 기쁨으로 맞이해서 사용을 하겠으나, 그때까지는 부득이 간추려 몇장을 빼 가지고 우리가 예배 찬송으로 불러야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만든다는 것이 아니고 있던 찬송가 중에서 다시 주워 모으고 고쳐서 한다는 우리 의도를 찬송가 서론에 발표를 하고, 좀 더 수정할 것이 있어 가본으로 열 권만 만들어 놨습니다. 이 가본이 완성품이 되면 이 찬송가를 우리 세계 교회들이 불렀으면 좋겠다, 그러나 세계 교회는 찬송에 능한 분들이니까 따라 올 리는 없고 그래도 우리 총공회 산하에 있는 교회만큼이라도 이렇게 이 찬송가를 사용해야 되겠다 싶습니다. 우리 공회에서만 사용하는 찬송가라도 그렇게 완전한 가본을 만들라고 하는데 아직까지도 그 가본도 완성이 덜 됐습니다. 그래도 많은 시간을 걸쳐서 수고한 사람들은 많이 수고를 했습니다.
( 찬송가 통일에 대한 문제 )
( ① 찬송가에까지 따라 붙은 돈 )
물론 교계에서 '통일찬송가'를 만드는 사람들의 정신들도 우리와 같이 어쨌든지 단일 교회이기 때문에 단일 찬송을 부르는 것이 좋다, 단일 대속, 단일 성경, 단일 또 교회, 단일 찬송가 이렇게 되는 것이 좋기 때문에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정신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찬송가를 그렇게 하게 되면 찬송가를 판매하는 판권이라는 돈이 왔다 가고, 이 돈은 참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는 것을 찬송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분들이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과거로 보면 돈이 여기 붙었기 때문에 나중에 돈벌이가 되겠다 해서 이 찬송가를 통일시키고 다른 찬송가는 다 없애 버리자 하는 것입니다.
찬송가를 만드는 일에 돈 문제가 생겨서 우리는 판권을 줄 수 없다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러면 판권을 우리에게 팔면 우리가 얼마를 주고 살 것이고 또 이 찬송가 만들어 가지고 이익이 나면 그때 이익 배당하겠다 이렇게 서로 의논이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 다른 나라들은 모르지만 우리나라 전국 교회가 찬송가를 전부 돈을 주고 사 가지고 전부 이렇게 해서 이제 통일찬송가를 만들었습니다.
( ② 유행을 좋아하는 교계의 타락상 )
또 만들어진 통일찬송가는 그 가사가 엄청나게 틀리니까 그걸 잘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뭐 아무나따나 사니까 뭐 찬송가야 성경도 아닌데 합니다. 이래서 찬송가가 제2의 성경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상관이 없고 또 보수성이 적고 시대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하자 하는 시대를 따르는 사람, 무엇이든 보수성이 없는 사람, 또 옳고 그른가를 구별하지 않으려는 사람, 또 잘못된 사상이 하나 들어오면 그것 때문에 자기가 현실이라는 실상을 당했을 때 그 사상이 자기에게 큰 미혹이 됐다는 그런 것을 생각해서 신앙생활을 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아닌 사람들은, 그만 될 수 있는 대로 이렇게 자꾸 유행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좀 어폐가 있을는지 모르지만 실상은 지금 이 찬송가가 유행입니다. 유행이라 해도 누가 정죄를 못 할 만치 뚜렷이 나타나 있습니다. 유행이라, 속화라 이렇게 할 수 있을 만치 이렇게 돼 나가고 있습니다.
( 공회찬송가 출간 )
( ① 찬송가 출간 자유가 없는 교계 )
새찬송가를 사용하던 교단이 통일찬송가에서 이권 배당도 받았는데, 만들어 놓고도 이 통일찬송이 너무 허무하다 해서 따로 몇 가지를 더 넣자고 했다가 시비가 나고 중지를 당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런데 우리도 이렇게 사백 몇 곡을 해 가지고 찬송가를 만들어 쓰려고 하면 시비가 들어올 것입니다. ‘우리가 이 찬송가 지은 사람에게 돈을 주고 사 왔는데 왜 도용을 하느냐?' 시비가 나면 저작법에 걸린답니다. 한 일억원 정도면 우리가 하겠는데 돈이 그렇게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만일 허락하신다면 언젠가 출판할 수 있는 자유의 때가 오지 않겠나? 또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힘을 쓰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좋은 찬송가를 좀 힘있는 누구를, 실력 있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에게 줘서라도 할 수도 있지 않겠나? 그래, 그때까지 기다리자. 그러나 우리대로는 좀 수정할 대로 수정해서 그래도 좀 바르다 한 것을 이렇게 만들어서 보장을 해 놓자 하는 그 이념으로 낙망하지 않고 만들고 있습니다.
( ② 교계와 돈 시비를 피하고 출간되는 공회찬송가 )
언제 우리가 문공부에까지 허락을 맡아 가지고 그럴지도 모르겠고, 시간만 자꾸 흘러가도 안되겠다 하여, 찬송가 몇 장만을 더 간추려 뽑아 가지고 몇 장만을 인쇄해서 사용하자고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100곡으로 생각을 했으나 은혜 받는 찬송들이 너무 많이 없어지겠고, 하다 하다 보니까 192곡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서 머리말도 없고 다른 아무것도 없고 그저 뽑아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은 하지만 그것을 팔지 않고 교인들에게만 한 권씩 나누게 되면 아무 법적 문제도 없습니다. 한 권에 4백원 정도로 제작비가 들 것입니다. 그래서 요번 주일 안으로 나옵니다.
지금도 우리는 '새찬송가'를 제일 좋아하는데, 통일찬송가가 나온 뒤 새찬송가는 다 회수가 되었으나 아직까지 남아 있는 새찬송가를 살 수는 있으나 그것이 내막으로는 불법으로 인쇄해서 나오는 것일 수 있기 때문에 뒤에 말썽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새찬송가에서 몇 곡을 뽑아서 우리 교단 교인끼리 나누어 보는 것이야 시비하겠나? 만일 시비가 나면 그때 하는 대로 해보겠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한국 교계의 '찬송가'에 대한 입장을 반대했던 백목사님의 신앙 걸음, 그 걸음을 통해 백목사님의 신앙노선 전반에 일치하는 신앙 사상을 알 수 있는 설교입니다.
한국 교계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찬송가에 대하여 성경 새번역 버금가는 정도로 비판했던 것이 백목사님의 신앙 입장이었습니다. 찬송가에 대한 백목사님의 신앙 입장이 현재 '공회찬송가'입니다. 1987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교계에서 따돌릴까 두려워하던 몇몇 공회교역자들 중에서 엉뚱하게도 그 찬송가는 다른 사람이 배후에서 주도했다는 소문을 내고 그래서 공회찬송가를 사용치 않는다는 논리를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오늘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의 시체를 제자들이 도적질하였고 '부활'이라는 사기극으로 이룬 것이 기독교라고 합니다.
현재 사용하는 우리 공회찬송가가 백목사님이 직접 주관한 것이 아니라는 소문 때문에 '통일찬송가'를 사용한다는 논리는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시비는 그 시비에 응하는 것이 벌써 절반 손해를 보게 됩니다. 시비가 될 필요도 없는 사안이지만 혹 한 분을 위해서라도, 또는 훗날 더 큰 속화를 막는 '안내판'이라도 되겠다는 뜻에서 다음 설교 내용을 발췌 소개합니다.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에 취사 선택할 것이 있더라는 입장 때문에 공회 신앙노선을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버리는 사람은 양심이라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이 주관하지 않았던 찬송'이라며 공회찬송 대신 통일찬송가를 사용한다면, 그는 백목사님이 주관했던 모든 신앙노선을 따르겠다는 사람이라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유독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을 힘써 버리는 분들이 '찬송가'에 대한 자기 변호에서는 이런 '시체 도적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소개하는 글은 설교록에까지 명백하게 기록된 내용입니다. 그리고 수도 없이 반복되었던 내용입니다. 백목사님이 '정치적 발언'으로 설교했다면 백목사님의 모든 흔적을 자신들에게서 지우시고, 그가 영감에 붙들려 자신들을 인도했던 우리 시대의 스승이었다면 회개를 하시라는 권고, 소개문입니다.
일시: 1987년 4월 7일 화요일 새벽예배
본문: 계14:9-12
설교: (찬송가에 대한 설교가 전반부였고, 따라서 전반부 설교만 그 대로 소개합니다.)
( 찬송가에 대한 주의깊은 통찰 )
그전에는 찬송가에 주기도문 사도신경이 기록돼 있었는데 지금도 찬송가에 있습니까? '새찬송가'에 있어요? 주기도문이 끝에 있습니까, 앞에 있습니까? 찬송가가 너무 가사가 변해가고 또 장수도 변해져 가니까 우리가 익혀 놓은 것이 다 헛일이 되고 또 익혀야 되고 익혀야 됩니다.
( ① 찬송가 변동과 변질의 역사 )
우리가 '신편찬송가'를 보다가 '합동찬송가'를 보게 될 때에 이것이 좀 더 구비하고 더 정확한 그런 찬송을 하게 되는가보다 하고 좋아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또 합동찬송가가 없어지고 새찬송가가 나와서 좀 얼떨떨했습니다. 그러나 살펴보면 새찬송가에 가사가 좀 틀린 것이 있어도 그래도 조금 발달적이겠다, 발전적이겠다, 좀 더 정확한 걸 찾아간다... 이렇게 생각했었습니다. 그 뒤에 또 개편찬송가가 또 나왔습니다. 개편찬송가는 보니까 개인의 마음대로 너무 찬송가의 뜻을 자주 변개시켜서 처음에 창작한 사람의 근본대로도 되지 않았고 또 교리와 신조에도 바뀌어진 것이 있었습니다. 그 뒤에는 또 '통일찬송가'가 나왔는데 그 찬송의 느낌이 각각 다르겠지만, 그 통일찬송가는 너무 가사가 현저하게 바꾸어져서 너무 엄청나게 그렇게 바꾸어졌습니다.
( ② 찬송가의 의미 )
찬송가는 사람이 지은 하나의 교리라 신조라 볼 수 있습니다. 자기 깨달은 대로 자기가 믿는 대로 이렇게 해 놨기 때문에 교리라든지 신조라 하는 것은 그것은 성경과 같이 그렇게 바로 되어 있는 것도 있고 잘못돼 있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우리가 정확 무오한 성경으로 믿지마는 찬송가는 그것을 정확하다, 틀림이 없다는 무오라고 우리가 그렇게 믿을 수는 없습니다.
( ③ 공회찬송가 추진 동기 )
그렇지마는 그래도 일반 어린 신자들은 찬송가를 성경 다음가는 성경으로 이렇게 보고 있기 때문에 찬송가에 가사가 잘못돼 있으면 이는 어린 교인들로 하여금 잘못된 성경을 보게 하는 거와 같기 때문에 이래서는 안 된다 해서 아무래도 우리가 새로 만들 실력은 없고, 그 대신 처음에 은혜 받아서 영감으로 지은 그 사람들이 근본 저술한 그대로 우리가 옮겨 받아서 찬송을 하자, 또 이것이 성경에 틀렸나 맞았나 그것을 봐서 성경대로 해 가지고 이 찬송가를 만들어 가지고 우리가 사용하도록 하자고 결의를 한 것입니다.
세상이 자꾸 변질되어 나가지만, 두 가지입니다. 무엇이든지 보면, 두 가지로만 구별하면 잘 알 수 있는데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 가지고 모든 사색도 연구도 비판도 평가도 이렇게 하는 그런 노선도 있고 또 하나님보다도 먼저 사람이 가깝기 때문에 사람에 대해서 비위를 맞춰야 된다고 해서 사람 중심 사람 위주로 이렇게 모든 것을 사색하기도 하고 연구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고 평가하기도 하는 이런 주장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노선이 됩니다. 길이 되는 것입니다.
( 찬송가 제작과정 )
( ① 원본과 번역원본에 충실키 위해서 )
그래서 아무래도 이걸 좀 어떻게 해야겠다고 해서 오래 전부터 이 찬송가를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옛날 그 저자, 또 우리 상고 때부터 내려오는 족보 그런 것을 좀 따져 가지고, 이렇게 자꾸 세상 따라서 이렇게 타락해 가지 말고, 은혜 받아서 찬송을 지은 그 당시 그 사람들의 은혜를 그대로 우리가 전달해서 은혜 받고 전달해 가자 하는 그런 뜻에서 위원들이 나서 가지고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그 중에 수고를 제일 많이 한 분은 서영호목사님 입니다. 바쁜데도 1주간 동안을 꼬빡 기울여 모든 찬송가 족보도 참고하고 또 뭐 원어도 참고해 가지고 하는 대로 또 수정을 했습니다. 또 다른 위원들이 이제 목사님들과 또 평신도들 중에 찬송에 많은 관심을 가진 그런 사람들이 모여 가지고 여러 날 동안을 그렇게 합동 연구를 하고 대조를 했습니다.
( ② 찬송가 곡의 숫자 )
찬송가 안에 이렇게 많은 찬송을 뜻 없이 이렇게 그 곡의 수를 많이 넓히면 우리가 다 부르지 못하는 그런 찬송들이 있어 복잡하니까 거기서 예배드리는 찬송으로만 440여곡을 간추렸습니다. 물론 개인이 부르는 거야 얼마든지 자기 개인주의고 또 성경에 위반되지 않는 그런 찬송은 자기가 지어 가지고 얼마든지 부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거는 다 내버려두지만 우리가 표준으로 삼는 예배 찬송으로서는 그렇게 간추려 본 것입니다.
(또 그 순서는, 첫째는 하나님의 존영에 대해서 영광에 대해서 하고, 그거 다 하나님의 자체에 대해서 먼저 생각했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했고 그 다음으로는 우리들이 하나님께 대해서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는 데 생각했기 때문에 그 순서가 이렇게 바꿔졌습니다. 그런 것을 잘 이해하십시오. 1987.5.9.)
( ③ 공명심을 특히, 극히 주의하며 )
그러나 이렇게 찬송들을 간추려 만드는 것은 우리가 무슨 별개의 찬송을 하나 만들어 보려는 공명심이나 그런 것은 하나도 아닙니다. 첫째 성경도 속화되어 번역들이 자꾸 이상하게 타락해 나가지 또 찬송도 그리되어지지, 그런데 이 둘이 함께 보조를 맞춰 내려가니까 어린 교인들이 뭐인지를 모르겠고 또 후배들이 무엇이 무엇인지를 모를 것이기 때문에 간추려 본 것이 440여곡이었습니다.
작업을 할 때에 우리가 이 찬송가를 만드는 것은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과거 우리 선조들이 모두 만들어 놓은 것, 이미 지어 놓은 그 찬송가를 그대로 받아 나가려는 것이며, 또 비성경적인 표현이 섞여 있는 것은 제거하고 성경에 맞추려는 것이며, 또 단순하게 부르고 사용하기 위해서 만드는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앞으로, 될 수 있는 대로 세계 교회들이 다 한가지 단일 찬송을 쓰도록 됐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세계 교회가 단합해서 단일 찬송가를 사용하는 것이 좋기는 좋지마는 그보다도 찬송가가 성경대로라야 하기 때문에 성경대로의 찬송가로 이렇게 다 통일됐으면 좋겠다, 그리될 때에는 우리는 그것을 기쁨으로 맞이해서 사용을 하겠으나, 그때까지는 부득이 간추려 몇장을 빼 가지고 우리가 예배 찬송으로 불러야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만든다는 것이 아니고 있던 찬송가 중에서 다시 주워 모으고 고쳐서 한다는 우리 의도를 찬송가 서론에 발표를 하고, 좀 더 수정할 것이 있어 가본으로 열 권만 만들어 놨습니다. 이 가본이 완성품이 되면 이 찬송가를 우리 세계 교회들이 불렀으면 좋겠다, 그러나 세계 교회는 찬송에 능한 분들이니까 따라 올 리는 없고 그래도 우리 총공회 산하에 있는 교회만큼이라도 이렇게 이 찬송가를 사용해야 되겠다 싶습니다. 우리 공회에서만 사용하는 찬송가라도 그렇게 완전한 가본을 만들라고 하는데 아직까지도 그 가본도 완성이 덜 됐습니다. 그래도 많은 시간을 걸쳐서 수고한 사람들은 많이 수고를 했습니다.
( 찬송가 통일에 대한 문제 )
( ① 찬송가에까지 따라 붙은 돈 )
물론 교계에서 '통일찬송가'를 만드는 사람들의 정신들도 우리와 같이 어쨌든지 단일 교회이기 때문에 단일 찬송을 부르는 것이 좋다, 단일 대속, 단일 성경, 단일 또 교회, 단일 찬송가 이렇게 되는 것이 좋기 때문에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정신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찬송가를 그렇게 하게 되면 찬송가를 판매하는 판권이라는 돈이 왔다 가고, 이 돈은 참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는 것을 찬송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분들이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과거로 보면 돈이 여기 붙었기 때문에 나중에 돈벌이가 되겠다 해서 이 찬송가를 통일시키고 다른 찬송가는 다 없애 버리자 하는 것입니다.
찬송가를 만드는 일에 돈 문제가 생겨서 우리는 판권을 줄 수 없다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러면 판권을 우리에게 팔면 우리가 얼마를 주고 살 것이고 또 이 찬송가 만들어 가지고 이익이 나면 그때 이익 배당하겠다 이렇게 서로 의논이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 다른 나라들은 모르지만 우리나라 전국 교회가 찬송가를 전부 돈을 주고 사 가지고 전부 이렇게 해서 이제 통일찬송가를 만들었습니다.
( ② 유행을 좋아하는 교계의 타락상 )
또 만들어진 통일찬송가는 그 가사가 엄청나게 틀리니까 그걸 잘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뭐 아무나따나 사니까 뭐 찬송가야 성경도 아닌데 합니다. 이래서 찬송가가 제2의 성경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상관이 없고 또 보수성이 적고 시대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하자 하는 시대를 따르는 사람, 무엇이든 보수성이 없는 사람, 또 옳고 그른가를 구별하지 않으려는 사람, 또 잘못된 사상이 하나 들어오면 그것 때문에 자기가 현실이라는 실상을 당했을 때 그 사상이 자기에게 큰 미혹이 됐다는 그런 것을 생각해서 신앙생활을 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아닌 사람들은, 그만 될 수 있는 대로 이렇게 자꾸 유행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좀 어폐가 있을는지 모르지만 실상은 지금 이 찬송가가 유행입니다. 유행이라 해도 누가 정죄를 못 할 만치 뚜렷이 나타나 있습니다. 유행이라, 속화라 이렇게 할 수 있을 만치 이렇게 돼 나가고 있습니다.
( 공회찬송가 출간 )
( ① 찬송가 출간 자유가 없는 교계 )
새찬송가를 사용하던 교단이 통일찬송가에서 이권 배당도 받았는데, 만들어 놓고도 이 통일찬송이 너무 허무하다 해서 따로 몇 가지를 더 넣자고 했다가 시비가 나고 중지를 당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런데 우리도 이렇게 사백 몇 곡을 해 가지고 찬송가를 만들어 쓰려고 하면 시비가 들어올 것입니다. ‘우리가 이 찬송가 지은 사람에게 돈을 주고 사 왔는데 왜 도용을 하느냐?' 시비가 나면 저작법에 걸린답니다. 한 일억원 정도면 우리가 하겠는데 돈이 그렇게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만일 허락하신다면 언젠가 출판할 수 있는 자유의 때가 오지 않겠나? 또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힘을 쓰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좋은 찬송가를 좀 힘있는 누구를, 실력 있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에게 줘서라도 할 수도 있지 않겠나? 그래, 그때까지 기다리자. 그러나 우리대로는 좀 수정할 대로 수정해서 그래도 좀 바르다 한 것을 이렇게 만들어서 보장을 해 놓자 하는 그 이념으로 낙망하지 않고 만들고 있습니다.
( ② 교계와 돈 시비를 피하고 출간되는 공회찬송가 )
언제 우리가 문공부에까지 허락을 맡아 가지고 그럴지도 모르겠고, 시간만 자꾸 흘러가도 안되겠다 하여, 찬송가 몇 장만을 더 간추려 뽑아 가지고 몇 장만을 인쇄해서 사용하자고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100곡으로 생각을 했으나 은혜 받는 찬송들이 너무 많이 없어지겠고, 하다 하다 보니까 192곡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서 머리말도 없고 다른 아무것도 없고 그저 뽑아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은 하지만 그것을 팔지 않고 교인들에게만 한 권씩 나누게 되면 아무 법적 문제도 없습니다. 한 권에 4백원 정도로 제작비가 들 것입니다. 그래서 요번 주일 안으로 나옵니다.
지금도 우리는 '새찬송가'를 제일 좋아하는데, 통일찬송가가 나온 뒤 새찬송가는 다 회수가 되었으나 아직까지 남아 있는 새찬송가를 살 수는 있으나 그것이 내막으로는 불법으로 인쇄해서 나오는 것일 수 있기 때문에 뒤에 말썽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새찬송가에서 몇 곡을 뽑아서 우리 교단 교인끼리 나누어 보는 것이야 시비하겠나? 만일 시비가 나면 그때 하는 대로 해보겠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